청 “선거 결과 겸허히 수용하고 국정과제 성공적 마무리”

 

문재인 대통령은 정세균 국무총리 후임으로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발탁했다고 청와대가 16일 밝혔다.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김 전 장관 발탁 이유에 대해 “정치·사회 현장에서 공정과 상생을 실천해온 4선 국회의원 출신의 통합협 정치인이다. 지역구도 극복, 사회개혁, 국민화합을 위해 헌신해왔다”며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풍부한 경륜과 식견, 균형감있는 정무감각, 소통능력,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품을 가진 분으로 코로나19 극복, 부동산 부패청산, 경제회복과 민생안정 등 지난 선거에서 보여준 국민들의 절실한 요구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김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2017~2019년)을 지냈고, 17·18·19·20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원래 경기 군포를 지역구로 했던 김 전 장관은 2016년 총선에서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 ‘31년 만의 대구 승리’라는 기록을 세웠지만, 지난해에는 낙선했다. 지난해 8월 민주당 당 대표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이번에 교체된 5개 부처 장관은 모두 관료 출신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는 임혜숙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이 내정됐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문승욱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 고용노동부 장관은 안경덕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을 각각 내정했다. 해양수산부 장관으로는 박준영 해양수산부 차관이 승진 기용됐다. ‘시한부 유임’됐던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임으로는 노형욱 전 국무조정실장이 발탁됐다.

 

유 실장은 “노 후보자는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해 국정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최근 부동산 부패청산이라는 국민적 시대적 요구를 충실히 구현하고 국토부와 엘에이치(LH)에 대한 환골탈태 수준의 혁신을 해내며 부동산 시장 안정, 국토균형발전 등 당면한 과제를 속도감 있게 해결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 실장은 “이번 개각은 일선에서 정책을 추진해오던 전문가를 각 부처 장관으로 기용함으로써 그간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국정과제를 안정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동력을 새롭게 마련하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성과를 이어가기 위해 단행됐다”며 “지난 선거에서 보여진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요구를 겸허히 수용하고 심기일전해 국정과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정무수석 이철희·대변인 박경미…첫 ‘방역기획관’에 기모란

 

청와대는 16일 개각과 함께 정무·사회수석 교체 등 참모진도 개편했다. 이철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무수석으로 내정됐으며, 사회수석은 이태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상임감사가 내정됐다. 강민석 대변인 후임으로는 박경미 교육비서관이 발탁됐다. 윤창렬 사회수석은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법무비서관에는 서상범 법무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승진됐고, 방역기획관에는 기모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암관리학과 교수가 내정됐다

 

하지만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진석 국정상황실장은 이날 교체 대상에서 빠지며 유임됐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 권상대)는 이 실장을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 실장은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으로 일하던 지난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울산시장 재선에 도전하던 김기현 당시 시장(현 국민의힘 의원)의 핵심 공약인 산업재해모병원의 예비타당성 조사 발표를 늦추는 데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영지 기자

 

사고 해역 마주하자 유족 오열…"꿈에서라도 나와줬으면"

 

7년 지나도 아픔은 그대로: 세월호 참사 7주기인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인근 세월호 참사 해역에서 유가족 등 선상추모식 참석자들이 바다에 헌화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우진아 사랑해!" "보고 싶어!" "꿈에 자주 나와줘!"

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에서 남쪽으로 약 3.3㎞ 떨어진 곳. 꼭 7년 전 이날 생때같은 아이들이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스러져간 사고해역을 찾은 부모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세월호 참사 7주기가 된 16일. 새벽부터 경기 안산에서 출발한 0416단원고가족협의회 유가족 22명은 목포해경이 준비한 3015 경비함을 타고 세월호가 침몰한 시각에 맞춰 오전 10시 30분부터 선상추모식을 진행했다.

 

유가족들은 3015함 탑승이 시작된 오전 7시께만 하더라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게 담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해경 전용부두를 출발하고 약 96㎞ 항로를 이동해 사고해역에 도착할 즈음에는 흰 장갑이 눈물에 젖어 들기 시작했다.

고(故) 이호진군 아빠이자 0416단원고가족협의회 대변인인 이용기(52) 씨는 추모사에서 "오늘은 특별한 게 우리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갔던 요일도 겹치고 날씨도 사고 난 날과 비슷하다"며 "목이 메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세월호는 진실규명이 하나도 되어있질 않고 아직도 진행형"이라며 "국회와 정부는 세월호 침몰 원인을 하루속히 밝혀주시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추모식 진행을 맡은 이씨가 단원고 2학년 250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동안 유족들은 세월호 사고지점에 떠 있는 부표를 응시하거나 고개를 숙이고 묵념했다.

 

세월호 참사 해역서 헌화하는 유가족들: 세월호 참사 7주기인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인근 세월호 참사 해역에서 유가족 등 선상추모식바닷물 속에서 참석자들이 바다에 국화를 던지며 헌화하고 있다.

 

곧이어 헌화하는 순간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유족들은 경비함 갑판 난간에 붙어 국화꽃 한 송이를 쉽사리 던져버리지 못하고 꼭 쥐고 있다가 끝내 던지고선 꽃잎이 파도에 흐트러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떤 이들은 차가운 물 속에서 숨이 꺼져갔을 아이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바닷속으로 연신 "사랑해"를 외쳤다.

일부 유족들은 갑판에 주저앉아 오열했고, 서로를 위로하듯 어깨를 토닥여주고 안아주기도 했다. 많은 부모가 헌화를 마친 후에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세월호 침몰 장소를 바라봤다.

 

이날 선상추모식에는 2014년 광화문광장에서 문재인 대통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단식을 한 '유민아빠' 김영오(53)씨가 오랜만에 모습을 보였다.

3년 전 광주에 정착한 김씨는 선상추모식 참석이 이날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속에 유민이가 느껴져 사고해역을 가까이서 보는 게 두려웠는데 유민이가 언제부턴가는 꿈에도 나오질 않아 오게 됐다"며 "여기 와서 보면 유민이 생각이 더 나고, 생각을 더 하면 꿈에라도 나와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세월호가 침몰한 지 7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의혹으로만 남아있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권이 바뀌면 세월호 진상규명이 어마어마하게 힘들어질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고 박정슬 양의 외할아버지 장모(67)씨는 아내와 함께 외손녀의 7주기를 배 위에서 맞았다. 정씨는 "지금도 (손녀딸이) 잊히질 않고 같이 있는 것 같다"며 "꿈에라도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지윤 양의 아버지 박영배(59)씨는 "딸이 가끔 꿈에 나타나는데 위험한 데로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없어지고 그러다가 깨곤 한다"며 "아직도 기억이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자원봉사를 위해 선상추모 배에 탄 완도 주민 김모(44)씨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처가 미비했던 것 같다. 참사가 날 때까지 말 그대로 (승객들을) 내버려 둔 것 아닌가"라고 정부의 구조 대응을 지적하며 "단원고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과 같이 뛰어놀던 아이들인데 지금도 눈물이 난다"며 눈물을 흘렸다.

 

정치적 대립 벗어나 한마음으로 기억할 세월호 [사설]

 

 

세월호 참사가 16일 7주기를 맞는다. 16일 오후 4시16분부터 1분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일대에서 사이렌이 울리는 등 전국 각지에서 참사의 아픔과 교훈을 기억하는 추모 행사가 이어진다. 사진은 참사 7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서 세월호 선체 너머로 해가 저무는 모습. 연합뉴스

‘어느덧 7년’이라고 말하기에는 미안할 뿐이다. 2014년 4월16일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서 처절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던 304명 희생자들을 고즈넉이 추모할 수 없는 2021년 4월이다. 살아 있었더라면 20대 중반이 됐을 단원고 청년들에게 그 비극의 전말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지도 못했고, 책임도 분명히 가리지 못했으며, 그 희생이 안전사회의 값진 교훈이 됐다고 자신있게 말해줄 수도 없는 채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는다.

 

다행스러운 것은 올해 추모식이 여야 정치권 모두 참석한 가운데 엄수된다는 소식이다. 그동안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작업을 사사건건 방해-저지해 온 국민의힘은 16일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열리는 ‘세월호 참사 7주기 기억식’에 처음으로 참석하기로 했다.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권이 여야 함께 추모식을 여는 것은 5년 만이다. 국민의힘은 최근 세월호 특검 후보추천위원도 선정했다. 지난해 12월 세월호 특검법이 통과된 지 4개월 만에 특검 구성 작업이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과 안전사회를 위한 후속 조처가 7년이라는 미완의 시간을 보낸 데는 정치적 덧칠과 곡해가 크게 작용했다. 보수진영은 정략적 태도로 구조 실패의 책임을 흐리며 유족들을 매도하고 국민들 간에 반목을 조장했다. 진상 규명을 방해하고 망각을 강요하는 정치권의 비인간적인 행태가 이제라도 바로잡아진다면 만시지탄은 있을지언정 반가운 일이다. 정치적 입장의 차이를 떠나 모든 국민이 세월호를 기억하고, 생명과 안전이 우선이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정상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지난 7년의 기간 중 4년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라는 사실도 뼈아프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방해했던 전 정권과 달리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사회적참사특별위원회 등을 통해 진상 규명의 의지를 보였으나 아직 사고 원인도 확정하지 못하는 등 충분한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검찰이 부실했던 과거 수사를 반성하며 설치했던 특별수사단 역시 ‘면죄부 수사’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초라한 결과만 내놓고 말았다. 활동이 연장된 사참위와 앞으로 구성될 특검은 객관적 진실을 확정하고 제기된 의혹을 해소하는 데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내년 4월, 또다시 맞이할 기억의 날에는 이제껏 반복된 한탄과 절망을 벗고 작으나마 희망의 불씨를 피워 304명의 영혼을 온전히 달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문 대통령 “세월호 기억으로 가슴아픈 4월…잊지 않고 있다”

SNS에 세월호 참사 추모글 올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세월호 참사 7년을 맞아 “아이들이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이 된 지 7년이 되었다”면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국민들의 외침, 잊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에스앤에스(SNS)에 ‘세월호의 기억으로 가슴 아픈 4월입니다’로 시작되는 글을 올렸다. 문 대통령은 “살아 우리 곁에 있었다면 의젓한 청년이 되어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짧지 않은 시간이다. 미안한 마음 여전하다”라며 “서로의 버팀목으로 아린 시간을 이겨오신 가족들과 함께해주신 분들께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지난해 국회에서 ‘사회적참사 진상규명특별법’이 개정되고 특검이 통과되었다고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통해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도록 끝까지 챙기겠다. 속도가 더뎌 안타깝지만, 그 또한 그리움의 크기만큼 우리 스스로 성숙해 가는 시간이 필요한 까닭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문 대통령은 4·16 민주시민교육원이 문을 열고, 올해 해양안전체험관의 본격 운영과 국민해양안전관이 준공된다고 소개했다. 4·16생명안전공원과 국립안산마음건강센터 역시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슬픔에 함께하고, 고통에 공감하면서 우리는 진실에 다가가고 있다”면서 “지금의 위기도, 언제 닥칠지 모를 어떤 어려움도 우리는 이겨낼 것이다. 안전한 나라를 위해 오늘도 아이들을 가슴에 품어본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이완 기자


잊지 않을게’…교육부, 세월호 참사 7주기 추모 주간 운영

각 시·도 교육청 12~16일 교육·행사

 

지난 2014년 7월1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가족버스 전국순회 보고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학생들을 추모하는 내용이 적힌 카드를 들고 있다.

 

16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난 지 꼭 7년이 된다. 지난 2014년 4월16일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당시 수학여행을 떠나기 위해 배에 탔던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5명 가운데 250명이 숨졌다. 이들을 포함해 희생자는 304명에 이른다.

교육부는 12~16일을 세월호 참사 추모 주간으로 지정한다고 11일 밝혔다. 교육부는 참사 이후 해마다 추모 주간을 지정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추모행사를 진행해왔다. 추모 주간에는 교육부의 모든 직원이 노란 리본 배지를 착용하고, 교육부 누리집을 추모 형태로 전환하는 등 추모 분위기를 조성한다. 참사가 일어난 16일 오전 10시에는 1분간 추모 묵념을 하고 희생자들을 애도한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6일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열리는 ‘세월호 참사 7주기 기억식’과 ‘4·16생명안전공원 선포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13일에는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갖고 더 안전한 학교를 만들기 위한 정책 개선방향 등을 논의한다.

각 시·도 교육청도 자체적으로 추모 계획을 수립했다. 단원고의 관할 교육청인 경기도교육청은 4월 한 달을 ‘노란 리본의 날’로 지정하고 누리집에 마련된 온라인 추모 게시판 ‘0416우체통’에 추모의 글 남기기 등 추모행사를 진행한다. 전북도교육청 역시 4월 한 달을 ‘4·16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념의 달’로 지정했다. 전북도교육청은 세월호 참사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희생자 유가족을 강사로 초청한 학부모 프로그램 등을 진행한다.

 

서울시교육청도 12~16일을 추모 주간으로 운영한다.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추모 영화제(12~16일)와 추모 대담회(23일)는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영화제 상영작은 세월호 참사를 흉터처럼 간직하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을 담은 다큐멘터리 ‘당신의 사월’이다. 이 영화는 지난해 디엠제트(DMZ)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특별상과 배급지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 소속 교육 관계자와 직원, 학생은 안내된 링크 주소에 접속해 관람하면 된다. 추모 대담회에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당신의 사월’ 감독과 출연자, 세월호 유가족 등이 함께 할 예정이다. 이유진 기자


아직도 보낼 수 없는 사월…‘세월호 7주기’ 기억하는 문화계

방송·영화·공연·전시 등 추모 프로그램들

 

다큐 <열여덟의 기억, 스물다섯의 약속>. 문화방송 제공

 

18살이던 아이들은 어느새 25살 어른이 됐다. “사람이 싫고 어른이 무서웠던” 아이들에겐 어른이 되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박준혁, 전혜린, 장애진, 김주희, 전영수, 박솔비. 2014년 4월16일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 2학년 학생(325명) 가운데서 살아남은 75명 중 6명이다.

그들이 어렵게 용기를 냈다. 세월호 참사 7주기인 16일 밤 10시5분 방영하는 특집 다큐 <열여덟의 기억, 스물다섯의 약속>(문화방송)에서 그날 이후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선다. 아이들은 고인 물만 봐도, 타고 있는 버스가 커브만 돌아도 두려움에 떠는 등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그랬던 그들이 7년 만에 자신의 삶을 공개한 이유는 단 하나, 점점 잊혀가는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그 순간을 기억하는 게 여전히 힘들지만, 하늘의 별이 된 친구에 대한 미안함과 그 친구들을 오랫동안 기억해준 수많은 분에 대한 고마움 덕분에 저희가 용기 낼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의 죽음이 허망하지 않도록 그 아픈 기억을 되돌아보고 잊혀가는 이름을 불러준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그 따뜻한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그들의 바람처럼 그날을 기억하려는 노력이 문화판 곳곳에서 펼쳐진다.

방송사들은 이날 저마다 관련 프로그램을 내보낸다. <시비에스>(CBS) 라디오 특집 콘서트 <너의 목소리가 들려>(저녁 6시)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출연해 진행을 맡은 변영주 영화감독과 함께 아이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제작진은 “7년이 지난 지금도 유가족들은 아이들이 꿈 이야기를 할 때의 눈빛과 목소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 더 적극적으로 응원해주지 못한 것에 못내 가슴 아파한다”고 전했다. 가수 말로, 제이훈, 제니스, 강허달림, 노브레인, 허클베리핀 등이 ‘거위의 꿈’ ‘벚꽃엔딩’ 등 아이들의 애창곡을 대신 부른다. 세월호 추모 특집 <독립영화관―한강에게>(한국방송1 밤 12시10분)와 지난해 아카데미 단편 다큐 부문 후보에 올랐던 이승준 감독의 <부재의 기억: 감독판>(문화방송 오전 10시45분)도 방영한다.

 

다큐 <당신의 사월> 포스터. 시네마달 제공

 

영화계에서도 세월호를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 <당신의 사월>을 이날 오후 4시16분에 씨지브이(CGV)와 롯데시네마 등 전국 18개 극장에서 특별 상영한다. 주현숙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유가족이 아닌, 그날을 기억하는 일반 시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상 속 기억과 연대의 힘을 강조한다.

온라인에서도 세월호 관련 다큐를 볼 수 있다. 디엠제트(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상영 프로그램인 ‘디엠제트랜선영화관 다락(Docu&樂)’이 세월호 단편 다큐 7편을 선보인다. 이승준 감독의 <부재의 기억>부터 청소년인 김묘인 감독이 연출한 <599.4㎞>까지 2014~2020년 사이에 제작된 작품을 기획전으로 구성했다. 애니메이션, 관찰 카메라 등 다채로운 접근을 통해 기억이 곧 남은 자들의 책무라는 사실을 아프게 일깨운다. 상영작들은 27일 밤 9시까지 영화제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볼 수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영화제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무용 <빛, 침묵, 그리고…>. 김용걸댄스씨어터 제공

 

세월호 참사의 고통을 몸짓으로 그려내며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야기하는 무대도 마련된다. 16~18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무대에 오르는 무용 <빛, 침묵, 그리고…>가 2014·2015년에 이어 6년 만에 다시 관객과 만난다. 연출가이자 안무가인 김용걸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그날 일을 되새김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구명조끼를 입고 울부짖던 여자아이를 검은 남자가 지하로 끌고 가는 장면으로 극은 시작한다. 안무가 강렬하고 처절해, 보는 내내 숙연해진다. 김용걸댄스씨어터 소속 무용수 등 19명이 출연한다. 전석 무료이며, 아르코예술극장 누리집에서 예매 가능하다.

 

그날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전시도 펼쳐진다. 아이들이 다녔던 단원고, 합동분향소 터와 지척인 안산 경기도미술관은 4·16재단과 함께 이날부터 7월25일까지 세월호 참사 7주기 추념전 ‘진주 잠수부’를 펼친다.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선배 학자 발터 벤야민을 애도하면서 쓴 글의 제목을 딴 이 전시는, 경내 야외 조각공원에 희생과 애도의 과정을 각자의 조형언어로 풀어낸 현대미술 작가 9명(팀)의 13개 작품을 펼쳐놓고 지금 우리 공동체와 일상을 재조명한다. 세월호 합동분향소가 있던 주차장 터에 소금 가루로 선을 그렸다 다시 지우는 예술행위의 흔적을 남기며 슬픔의 모양을 형상화한 박선민 작가의 퍼포먼스 설치작품, 합동분향소 터가 내다보이는 미술관 앞마당에 당시 풍경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구도로 설치한 최진영 건축가의 ‘파빌리온 윗 위’ 등이 눈길을 끈다. 남지은 오승훈 노형석 기자


“유족 힘내라고, 모두 기억하자고” 노란리본 떼지 않는 사람들

 “진상규명 위한 최소한의 참여”  “유족들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해”
 왜 아직 달고있나 묻는 이 있어도 시민들의 ‘리본 기억연대’ 이어져

 

세월호 참사 7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후 세월호 선체가 거치된 전남 목포 신항을 찾은 한 가족이 미수습자 5명을 비롯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애도하고 있다.

 

“왜 아직도 리본을 달아요?”

세월호 참사 7주기가 다가오면서 노란 리본을 마스크에 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증사진을 올린 고교생 심아무개(17)군은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심군은 지난해 4월 진상규명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받은 리본을 가방에 달고 다녔고, 2주 전부터는 마스크에도 걸고 다닌다. 에스엔에스에서 리본을 비하하는 메시지를 받고, “가방에 왜 달고 다니냐”는 친구의 얘기를 들어도 그는 리본을 놓지 않으려 한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이 커요. 길에서 누군가 한명이라도 리본을 보고 세월호 사건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7년이 흘렀지만 노란 리본을 몸에 지니거나 에스엔에스 프로필 사진에 걸어놓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심군처럼 “왜 계속 다느냐”는 질문을 받아도 이들의 마음은 변치 않는다.

참사 7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노란 리본을 뗄 수 없다는 시민 7명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문제 해결 촉구’, ‘기억’, ‘연대’ 등으로 마음을 전한 이들은 노란 리본과 단단히 연결돼 있었다.

 

이들은 여전히 근본적 문제 해결이 되지 않았고, 한국 사회의 안전 의식이 높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리본을 뗄 수 없다고 했다. 가방과 핸드백에 리본을 단 이원우(40)씨는 “참사 당시 육아를 하고 있어 행동하지 못했고 이후에도 아이가 어려 많은 것을 하지 못했다. 내게 노란 리본은 최소한의 참여”라고 말했다. 그는 “유족들이 아직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7년이 지났지만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는 제대로 된 ‘백서’가 나오지 못했고 책임자 처벌도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다”며, 계속 변화를 촉구하는 의미로 리본을 달겠다고 했다. 변희영(53)씨는 “노동자가 과로사하거나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 조의 리본을 맞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처럼 노란 리본을 다는 건 세월호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최소한의 표시”라고 말했다.

 

서촌노란리본공작소에서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 7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나눠줄 노란리본을 제작하고 있다. 부산과 전주지역 시민들이 온라인을 통해 함께 참여했다. <참여연대> 제공

 

노란 리본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며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서촌노란리본공작소에서 리본 제작 자원봉사를 하는 이애형(42)씨는 “정부가 바뀌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할 거라고 기대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세월호 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잊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기억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봉사활동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함세은(20)씨도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리본에) 담고 있다”고 말했다.

잊지 않겠다는 마음은 ‘연대’로 이어진다. 김아무개(32)씨는 “유족이 언론 인터뷰에서 ‘노란 리본을 단 사람을 보면 우리에게 공감해주는 것 같아 힘이 된다’고 말씀하신 걸 본 뒤 (리본을) 한번도 떼지 않았다”며 “언제 어디서라도 유족들이 저를 스쳐 지나가다 리본을 본다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힘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세월호를 잊고, 헐뜯는 목소리가 커질까 봐 걱정한다. 길을 가다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을 본 중년 남성이 “왜 이런 걸 아직 달고 있냐”고 시비를 걸어 당황한 적이 있다는 박아무개(32)씨는 “‘신경쓰지 말라’고 태연하게 대꾸하고 돌아섰지만 내심 속상했다”며 “아직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추모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질까 두렵다”고 말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추모 활동이 위축될 법도 하지만 7주기 추모 행사에 대한 관심은 움츠러들지 않는다. ‘노란리본 제작 키트’ 나눔 행사를 하는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김효선 간사는 “코로나19 탓에 모여서 제작하지 못하고 제작 키트를 신청받아 우편으로 배송하는데 440명이 2만5천개를 주문해 지난해보다 주문이 두배 늘었다”고 전했다. 이재호 장필수 이주빈 기자

 

목포신항에 잠든 세월호, 1.3㎞ 거리 고하도로 옮겨 영구보존

이르면 세월호 10주기인 2024년부터 이동 시작
목포시 고하도에 세월호생명기억관 건립해 거치

 

 

15일은 7년 전 여객선 세월호가 인천항을 떠난 날이었다. 이후 2557일이 지났지만 세월호는 아직도 목적지인 제주항에 닿지 못했다. 출항 이튿날 참사를 당해 3년은 진도 맹골수도의 40m 바닷속에서, 인양된 뒤 4년은 목포신항의 차량부두에서 죽은 듯 잠들어 있다.

이날 추모객 50여명이 세월호가 서 있는 목포신항을 찾았다. 이들은 항구 울타리에 매달린 빛바랜 리본들을 어루만지거나 미수습자 5명의 얼굴 사진을 바라보며 아픔을 삼켰다. 김인순(69·경기 성남)씨는 “객실 안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아이들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참사 3년 만에 인양된 세월호 선체는 반잠수정에 실려 목포신항에 거치됐다. 세월호를 안은 목포는 시내 거리를 노랗게 장식하며 위로를 보냈다. 올해도 세월호가 놓인 길목의 가로수와 전신주에 매달린 노란색 천 수천장은 추모 분위기를 연출했다. 시민들은 현장성을 살려 선체를 영구히 보존하자는 안에도 기꺼이 동의했다.

 

세월호 보존 조감도

지난해 목포신항에서 직선거리로 1.3㎞가량 떨어진 고하도가 보존 장소로 정해지면서, 세월호 선체 보존계획의 윤곽도 나왔다. 선체는 침몰→인양→절단→직립 등을 거쳤지만 구조적 안정성에 문제는 없는 상태다. 2019년 변형된 선박의 구조, 두께, 하중 등을 해양수산부가 검사한 결과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후 3년마다 안정성을 평가하기로 했다.

해수부는 최근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에서 기초한 선체 처리계획의 실행안을 국회에 보고했다. 2028년까지 1523억원을 들여 목포시 고하도 배후단지에 선체를 거치하고, 세월호생명기억관을 건립해 기억·추모·교육 등에 활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세월호 보존 예정지인 고하도 갯벌

앞서 국무조정실 세월호지원추모위원회는 지난해 8월 목포 고하도를 선체 보존지로 결정했다. 기획재정부는 두달 뒤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했고, 오는 8월까지 예산편성 적정성 검토를 마치기로 했다. 이후 해수부는 내년까지 18억원을 들여 기본설계를 마치고, 곧바로 실시설계를 진행한다. 세월호 영구보존은 2024년 시작해, 2028년 거치를 완료한다는 일정을 세웠다. 해수부는 이를 위해 구상권을 소송 중인 청해진해운한테 대물변제 방식으로 소유권을 확보하고, 고하도 배후단지 갯벌의 매립과 보강, 모듈트랜스포터를 활용한 육상 이동 등의 작업도 준비 중이다. 이민중 해수부 세월호선체관리지원과장은 “원형 복원을 선체 인양 상태로 할지, (선체를 절단한) 수색완료 상태로 할지 미정”이라며 “원형 보존의 장소와 방향 등 중요 사항은 결정된 만큼 세세한 부분은 유가족, 목포시의 의견을 들어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4·16참사가족협의회에서도 목포 거치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이 우선이고, 선체 보존은 다음”이라는 원칙을 내비쳤다. 2기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 중인 만큼 참사의 결정적인 증거인 선체를 당분간 현상태로 보존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성욱 가족협의회 선체분과위원장은 “방향을 정하는 기본설계 때부터 참여해 의견을 내겠다. 유가족들은 내년 9월 사회적참사위원회 활동이 끝나야만 비로소 선체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고 전했다. 안관옥 기자

코로나19, 기나긴 팬데믹 목록에 하나 더해진 것뿐

과도한 행동면역체계가 타자 혐오·배제로 이어진다는 점 인식해야

 

14세기 벨기에 지방에서 만들어진 필사본의 삽화로 1349년 흑사병 유행 시기의 유대인 학살을 그리고 있다. 유대인을 모아 불에 태워 죽이고 있다. <감염병인류>는 감염병이 유행하는 시기, 타자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더 강하게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창비 제공

 

“그는 이 연대기가 결정적인 승리의 기록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를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이후 자주 소환되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마지막 대목이다.(<감염병 인류>에서 재인용) 인류는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아직 ‘결정적인 승리’는커녕 일시적 승리조차 거두지 못하고 있다. 백신과 항생제가 등장하고 영양과 위생조건이 개선되면서 인류는 한때 감염병을 정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하지만 아직도 매년 150만명이 결핵으로, 70만명이 에이즈로, 40만명이 말라리아로 사망한다. 감염성 질환은 전체 사망의 25%를 차지한다.

 

신경인류학자 박한선과 인지종교학자 구형찬이 공저한 <감염병 인류>는 인류가 감염병과 어떻게 싸워왔는지, 또 이에 어떻게 적응해왔는지를 다룬다. 설명의 틀은 진화인류학과 진화의학, 인지종교학이다. 저자들은 감염병과의 본격적인 투쟁의 시작을 신석기혁명, 즉 농경과 목축 생활 이후로 본다. 구석기 시대에도 감염병이 존재했지만 100여종이 채 되지 않았다.

                      감염병 인류: 균은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켰나 {박한선·구형찬 지음/창비}

수렵채집 생활이 정착생활로 바뀌면서 인류를 찾아온 불청객이 감염병이었다. 농경과 함께 ‘도무스(라틴어로 농장과 농장 주변을 의미) 복합체’가 형성되고, 여기에 인간과 가축의 분변과 각종 쓰레기가 쌓인다. “쥐와 모기, 파리가 찾아오고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도 동거를 감행한다. 인류가 맞닥뜨린 현실은 말 그대로 시궁창이었다.” 특히 가축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동물과 감염균을 나누게 된다. 이른바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수많은 질병이 새로 생겼다. 콜레라, 천연두, 홍역, 볼거리, 인플루엔자, 수두 등 전통적 감염병은 모두 인수공통감염병이다. 홀로세(현세) 내내 인류를 괴롭힌 감염균의 종류는 약 1400종인데, 그중 800종이 인수공통감염병이다.역사시대에 접어들어서도 감염병의 위력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서기 541년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 로마제국을 덮쳤다. 절정기에는 콘스탄티노플에서만 매일 5000명이 죽었고, 당시 유럽 인구의 절반이었던 1억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인은 페스트균이었다. ‘제1차 구세계 팬데믹’으로 불린다. 14세기께, 또다시 흑사병으로 유럽인 세 명 중 한 명이 죽었다. ‘제2차 팬데믹’이다. ‘제3차 팬데믹’은 19세기 인도를 시작으로 중동, 아프리카, 지중해 등으로 퍼져나간 아시아 콜레라다.

 

20세기 초반에는 스페인 독감이 최대 2억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1948년 창설된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정한 공식적 팬데믹은 1968년의 홍콩 독감, 2009년의 신종플루, 2019년의 코로나19, 세 번이다. 결핵과 발진티푸스, 매독, 장티푸스, 천연두, 한센병, 말라리아,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등 ‘공식적인 팬데믹’으로 취급하지 않는 수많은 감염병 역시 인류의 목숨을 앗아갔다. “우리는 늘 팬데믹 지구에서 살아왔다. 코로나19 유행으로 팬데믹이 시작된 것이 아니다. 수많은 팬데믹에 낯선 목록이 하나 더해진 것뿐이다.”

 

인류가 감염병의 공격에 ‘손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선천면역과 획득면역이라는 정교하고 복잡한 신체면역체계가 수억년 전부터 진화해왔다. 하지만 저자들이 중점을 두어 설명하는 것은 ‘행동면역체계’라는 개념이다. 행동면역체계는 감염 이전에 감염 가능성이 있는 대상을 미리 피하는 것이다. 인간은 “행동 도메인에서 회피(avoidance)를 보이고, 감정 도메인에서는 역거움(disgust)을 보인다.” 역겨움은 더러운 음식, 배설물, 해로운 곤충, 감염된 사람이 보이는 기침이나 구토, 설사, 부자연스러운 행동, 피부 발진 등을 대상으로 생긴다. 역겨움은 회피 행동을 유발한다.

 

더 나아가 “성관계에 대한 도덕적 기준, 음식에 대한 금기, 외국인 터부와 소수집단에 대한 편견” 등도 행동면역체계에서 기원했다는 것이 저자들의 견해다. 문제는 역겨움과 회피행동이 “금세 분노와 배척의 문화적 코드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신체면역체계가 오작동하면 알레르기나 자가면역반응이 생기듯이, 행동면역체계가 오작동하면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와 배제, 차별의 행동반응이 일어난다. 코로나19 이후 세계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외국인 혐오가 대표적인 예다.

 

정확한 의학지식이 없었던 과거에는 과민한 행동면역체계가 생존에 유리한 측면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현대에서는 오히려 반대다. 새로운 문화나 질서를 꺼리는 태도 탓에 혁신적인 보건의료 개선을 거부하거나, 외향성과 개방성이 낮아져 글로벌 시대에 부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타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쉽게 일어나는 것은 우리 안에 과거의 행동면역체계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를 활보하는 원시인”이라는, 이런 우리 자신의 한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넘어서야 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중세시대까지 의사들은 ‘미아즈마’, 즉 냄새나는 나쁜 공기가 전염병의 원인이고, ‘프네우마’, 숨을 쉴 때 몸으로 들어오는 우주의 기운이 건강을 유지하는 힘이라고 믿었다. 저자들은 “급속한 도시화와 환경 파괴, 공장식 사육, 무분별한 세계화로 인한 물자와 인원의 급격한 이동, 충분한 의료자원을 비축하지 않는 적시공급시스템, 집중화된 대형병원에 의존하는 의료시스템 등”을 현대의 미아즈마라고 표현한다. 사실상 지구 전체가 “하나의 도무스 복합체”이고, 현대사회는 “신종 감염병을 배양하는 배지”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앞에서 인류의 온 신경이 백신과 치료제에 쏠려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미아즈마를 좀더 맑고 건강한 프네우마로 바꾸지 못하면 새로운 코로나가 계속 나타날” 것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안선희 기자

박완주 의원에 104대 65표로 압승... 결선투표 없이 당선

 

전임 김태년 원내대표와 함께 승리 인사하는 윤호중 대표(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새 원내대표에 4선의 윤호중(58·경기 구리) 의원이 선출됐다.

윤 의원은 16일 원내대표 선출 의원총회에서 3선인 박완주 의원을 누르고 새 원내 사령탑의 자리에 올랐다.

윤 의원은 1차 투표에서 169표 가운데 과반 이상인 104표를 획득하면서 결선 투표 없이 바로 당선됐다. 박 의원은 65표를 얻었다.

윤 신임 원내대표는 당선 후 기자들과 만나 "당이 철저히 반성하고 혁신해서 유능한 개혁정당, 일하는 민주당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앞으로 야당과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협력적 의회를 만들어나가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4·7 재보선 참패로 한 달 가량 일찍 진행된 이번 선거에서 윤 의원이 압승을 거두면서 한동안 지지부진했던 개혁노선에 탄력이 예상된다.

다음 달 2일 전당대회 때까지 비상대책위원장도 겸하는 원내대표로 윤 의원을 선택하면서 당내 의원들의 구심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당청 관계도 원팀 기조에 따라 유기적 협력 체제가 모색될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에 대해서도 대화를 토대로 협력을 모색하되 필요할 때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결정하는 강경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윤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독식하고 있는 상임위원장 재배분 문제에 대해서도 "협상 권한이 없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윤 원내대표는 정견 발표에서 "개혁의 바퀴를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면서 "속도 조절, 다음에 하자는 말은 핑계일 뿐이다.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검찰 개혁, 언론 개혁, 많은 국민들께서 염원하는 개혁 입법을 흔들리지 않고 중단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민생 입법과제로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경제 대책 마련 ▲ 소상공인·자영업자 소급 손실보상 추진 ▲ 1가구 1주택을 원칙으로 실수요자를 위한 공급 확대 및 금융·세제 지원 검토 등을 강조했다.

 

민주당 새 원내대표 윤호중 누구? 대야 ‘강경 기조’ 유지 전망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새 원내대표는 1963년생으로 경기도 구리 지역구 국회의원이다. 춘천고 출신으로 서울대(철학과 81학번)에서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학생운동을 했다. 1987년 평화민주당 기획조정실 기획위원으로 정치에 입문해 한광옥 의원 비서관, 민주당 부대변인 등을 지냈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가 18대에는 낙선하고 19대, 20대, 21대에 당선한 4선 국회의원이다. 당내에서는 이해찬 전 대표와 가깝다.

그의 원내대표 압도적 당선은 21대 총선 당시 사무총장으로 초선의원들의 공천에 관여하며 우호적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윤호중 후보가 정견 발표를 하고 있다.

 

윤호중 원내대표 체제에서 여야 관계는 강 대 강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원내대표 후보 토론회에서 개혁과 협치의 우선순위에 대해 윤호중 원내대표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개혁이다. 협치는 우리가 선택할 대안이 아니다. 일종의 협치 계약이 있지 않은 한 협치는 불가능하다. 적당히 상임위를 나눠 가진 뒤 발목잡기 하는 것은 협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검찰총장의 대통령 인사권 침해”로 명확히 규정했다. 따라서 윤호중 원내대표 체제의 더불어민주당은 김태년 전임 원내대표 때와 마찬가지로 강경한 대야 관계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성한용 기자


윤호중 "새 지도부와 협의해 검찰개혁 추진절차 결정"

취임 일성 "철저히 반성·혁신…대선에서 국민 사랑받겠다"

"2030 민심 확인하고도 변하지 못해"…강성지지층에 "인신공격 삼가달라"

 

인사하는 민주당 윤호중 신임 원내대표: 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신임 윤호중 원내대표(왼쪽)가 함께 경쟁했던 박완주 의원과 함께 인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신임 원내대표는 16일 취임 일성으로 "철저히 반성하고 혁신해 유능한 개혁정당, 일하는 민주당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21대 국회 2기 원내사령탑으로 선출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대화와 타협을 통해 협력 의회를 만들어나가는 데에 노력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개혁과제와 관련, "이미 제출된 법안이 많이 있고, 앞으로 제출될 것도 있다"며 "검찰개혁 법안은 새 지도부가 선출되면 협의해서 추진 절차를 결정하겠다"고 언급했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현장 점검이 우선이다. 어떤 효과를 내고 부작용이 있는지부터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주택정책 템포를 조절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렇게 볼 수는 없다. 현재 진행되는 것은 그대로 진행하고, 제도를 미세조정할 부분이 있는지 검토하겠다는 뜻"이라고 부연했다.

 

국민권익위에서 진행 중인 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부동산 투기 여부 전수조사에 대해서는 "촛불혁명 이후 시민들의 도덕 기준에 대한 요구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며 "조사 결과를 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4·7 재보궐선거 참패 요인 중 하나로 거론되는 '조국 사태'에 대한 질문에는 "지난 총선에서 2030 세대 청년들이 공정 문제에 관심이 많고 민감하다는 것을 확인했는데도 스스로 변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우리 안에서 해야 한다"고 답했다.

당내 강성 지지층을 향해서는 "당원들이 의원들의 입장을 한 번 더 숙고해 판단하고, 인신공격이나 폄하 발언 등 부적절 표현은 서로 삼가달라는 요청을 반복해 드린다"고 당부했다.

 

윤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의 원구성 재협상 요구에 대해 "2년차 원내대표는 원구성 협상 권한이 없다. 이미 작년에 원구성 협상이 마무리됐고, 본회의에서 상임위원장 선출이 모두 이뤄졌다"며 "더이상 그 문제로 여야 관계가 파행할 이유가 없다"고 국회 원구성 재협상 관측을 일축했다.

현재 국회 법사위원장인 그는 후임자 인선과 관련해 "당내에서 적임자를 찾겠다"고 언급했다.

윤 원내대표는 "새 지도부가 선출되면 함께 혁신 작업이 계속되도록 해서 내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국민의 깊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