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11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사퇴 압박을 받아온 앤드루 쿠오모(63) 미국 뉴욕 주지사가 14일 물러난다고 10일 밝혔다. 30년 동안 중앙 무대에서 탄탄대로를 걸으며, 1년 전만 해도 ‘코로나19 위기의 영웅’으로 대통령 선거 출마까지 거론됐던 인사가 몰락했다.
쿠오모는 1983년부터 1994년까지 뉴욕 주지사를 3번 연임한 마리오 쿠오모의 아들이다. 마리오는 민주당에서 대표적인 이탈리아계 정치인으로, 대선 출마까지 거론되던 거물이다. 뉴욕 포덤대와 뉴욕주립대 법과대학원을 졸업한 쿠오모는 아버지의 최측근 참모로 정계에 발을 내디뎠다.
아버지는 그에게 후광이자 그늘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출세길을 열었으나, 그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평생 몸부림쳤다. ‘철인 왕’이라고 불린 지적인 면모의 아버지와는 달리, 쿠오모는 야심만만하고 무자비한 ‘거리의 투사’로 부상했다. 정적들에 대해서는 보복도 서슴지 않았고, 사석에서도 직설적인 언행으로 상대를 불편하게 했다. 그가 공격적이고 냉혹한 면모를 보인 것은 자신의 독립성을 과시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 것이라고 <뉴욕 타임스> 등 미국 언론은 분석했다.
쿠오모는 아버지가 대선 출마 의사를 접은 뒤인 1993년 빌 클린턴 행정부에 들어가 자신의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주택도시개발부 차관보로 시작해 1997년에는 장관을 지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최대의 정치적 자산을 얻었다. 1990년 미국의 최대 정치 명문가인 케네디 가문의 딸 케리 케네디와 결혼을 한 것이다. 존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으로 법무장관을 지내고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다가 암살당한 로버트 케네디의 딸이다. 쿠오모는 이 결혼으로 민주당 내 최대 정치 기린아로 부상했으나, 15년 뒤 이혼했다.
2002년에는 뉴욕주로 돌아와 주지사 출마를 시도했으나,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패했다. 하지만 2006년 뉴욕주 검찰총장 선거에서 승리해, 뉴욕 주지사로 가는 길을 닦았다. 그는 주검찰총장 때 전임 주정부와 주지사들의 부정부패, 월가 금융가에 대한 수사로 정치적 입지를 쌓았다. 그의 공격적인 수사로 2010년 데이비드 패터슨 당시 주지사가 재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2011년, 뉴욕 주지사 선거에서 대승한 그는 민주당의 진보적 의제들을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그는 동성결혼 합법화, 시간당 최저임금 15달러로 인상, 직장 성폭력에서 여성 보호 정책 등을 입법화했다. 노동자, 소수자, 젠더 문제에서 뉴욕주를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곳의 하나로 만드는 데 힘쓴 그가 성추행 문제로 사임한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정치적 위상은 지난해 코로나19 위기로 급상승했다. 그는 파워포인트를 사용한 일일 브리핑으로 뉴욕주의 코로나19 대처 현황을 주민들에게 상세히 전달했고, 미국민을 사로잡았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코로나19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며 손을 놓고 있는 상황과 대비되면서 유력 대선후보로 급부상했다.
쿠오모의 동생은 <시엔엔>(CNN)에서 주요 앵커로 활약하는 크리스 쿠오모다. 크리스는 당시 형과의 인터뷰에서 “당신의 업무 수행에서 얻는 이런 칭찬들 때문에 대통령에 출마할 생각이 있는 것이냐?”라고 질문했다. 그는 지난해 상반기, 주지사로 87%의 지지를 얻었다. 쿠오모를 도널드 트럼프에 맞설 민주당 후보로 내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쿠오모는 비록 대선에 출마하지 않았지만, 주지사 4선 출마는 거의 확실했다. 그러나 뉴욕 주검찰이 그의 자화자찬 자서전을 수사하면서 정치적 추락이 시작됐다. 쿠오모가 코로나19 위기에 대처하는 지도력에 대해 쓴 책이 “주정부 직원 동원” 혐의를 받았다. 쿠오모가 주검찰총장 시절 주지사를 향해 칼날을 겨눈 것이 자신에게도 똑같이 돌아온 것이다. 더욱이 뉴욕주가 노인요양시설의 코로나19 사망자 수를 축소·은폐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쿠오모는 사면초가에 몰렸다.
하지만 결정타는 성폭력이었다. 사실 쿠오모의 마초적인 언행은 지속적으로 입길에 올랐다. 급기야 지난 2월 전직 보좌관 등이 그의 성추행 행위를 폭로했다. 뉴욕주 검찰은 지난 3일 쿠오모가 뉴욕 주정부의 전·현직 직원 11명을 성추행했다고 발표했다. 러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은 지난 3일 수사보고서에서 쿠오모 주지사가 여성들에게 원치 않는 키스 등 신체 접촉을 하고 부적절한 발언들을 했다고 자세히 기술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등은 “쿠오모 주지사가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고, 뉴욕주 의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쿠오모 주지사 탄핵소추 움직임이 일었다.
쿠오모 주지사는 이날 사퇴를 발표하면서도, 자신의 행위가 성추행으로 간주돼선 안 되고 이번 조사가 “정치적 동기를 가진 조사”라는 기존 태도를 유지했다. 피해 직원들에게는 “너무 가깝게 생각했다. 불쾌한 마음이 들게 했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영국 일간 <가디언>은 쿠오모의 몰락을 “인과응보”라고 평했다. 젊은 여성들이 의원으로 등장하는 정치 환경의 변화에서도 여전히 마초적인 정치력만을 행사하면서,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언행을 보인 것에 대한 인과응보라는 지적이다.
쿠오모 주지사가 물러나면 남은 임기는 캐시 호컬(62) 부지사가 이어받는다. 그는 뉴욕주 첫 여성 주지사가 된다. 정의길 기자,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통역사로 일하던 현지인이 미군의 도움을 받아 미국에 입국하고 있다. 하지만, 현지 민간 업체에서 군 지원 업무를 하던 아시아 출신 노동자 상당수는 갑작스런 철수로 귀국 항공편을 구하지 못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떠돌고 있다. 새크라멘토/로이터 연합뉴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서둘러 철수하면서, 현지에서 미군 지원 업무를 맡던 민간 보안업체 소속 아시아 노동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을 구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던 미군이 8월말까지 철수를 완료하기로 한 가운데 수송이나 건설 사업, 기지 유지 관리 등을 맡던 민간 업체 소속 노동자 수천명의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에이피>(AP) 통신이 1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미군이 아프간에 20년 가량 주둔하면서, 수송이나 건설 사업부터 청소, 요리 등 다양한 지원 업무를 위해 많은 민간 업체들이 현지 미군 기지에 함께 머물렀다. 아프가니스탄 재건 특별감사관 자료를 보면, 현지 주둔 비전투 민간 인력은 지난 4월 6399명이었고, 미군이 본격 철수에 나선 6월 초에는 2491명으로 줄었다.
미군이 카불 인근 바그람 공군 기지 등에서 사전 예고도 없이 철수하는 바람에, 민간 업체 소속 노동자들도 갑자기 현지를 떠났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필리핀, 방글라데시, 네팔, 스리랑카 출신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이들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무사히 도착했으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항공편을 구하지 못해 현지 호텔에 묶여 있다. 코로나19 방역 조처에 따라 항공기 운항이 중단된 탓이다. 현지에 묶여 있는 노동자 대부분은 지난 6월15일 두바이에 도착한 이들이라고 <에이피>는 전했다.
통신은 “건설·토목 회사 플루어 소속으로 아프간 현지에서 일하던 필리핀 노동자 10여명이 두바이의 한 호텔에 머물고 있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며 “하지만 고향에 아직 돌아가지 못한 노동자들이 모두 몇명인지는 정확히 확인할 길이 없다”고 전했다. 노동자들은 두바이 체류가 거의 두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수중에 돈이 떨어지기 시작해, 아무 조처도 취하지 못한 채 마냥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식사는 소속 기업에서 제공하지만, 텔레비전을 보거나 가족들과 화상 통화를 하는 것 외에 별다른 일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미군은 이들 노동자 문제가 소속 업체 소관이라고만 밝혔으며, 민간 업체들도 상황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아시아 담당자 존 시프턴은 “모두가 철수 미군과 아프간 통역사, 현지 주민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는 떠돌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해 ‘소속 기업과 자국 정부가 귀국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만 말할지 모른다”고 비판했다. 신기섭 기자
한국기관 근무 아프간인 수백명 "탈레반이 쫓고 있다. 도와달라"
병원·직업훈련원 등서 일한 현지인 안전 위협 고조
가족 등 200여명 한국 정부에 이주 지원 요청
괴한의 폭탄 공격으로 다친 아프간인= 2017년 괴한의 폭탄 공격으로 크게 다친 아프가니스탄인 미르 지아우딘 세디키의 형. 세디키는 2010∼2015년 바그람 한국 병원에서 통역으로 근무했으며 최근 탈레반이 세력을 넓히면서 가족 안전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 미르 지아우딘 세디키 제공]
"탈레반이 우리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한국을 위해 충실하게 일했습니다. 우리가 안전한 곳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미군 철수와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의 세력 확대로 치안이 무너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과거 한국 관련 기관에서 근무했던 현지인들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점령지를 넓혀가는 탈레반이 이들의 소재지를 파악하기 위해 추적하는 상황 속에 이미 일부 관련 현지인은 총격 테러 등을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아프간에서 병원과 직업훈련원 등을 운영하는 지방재건팀(PRT) 공식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미군 기지인 바그람 기지에 자리 잡았던 한국 병원은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약 23만명의 환자를 진료하기도 했다.
한국 직업훈련원도 '아프간의 매사추세츠공대(MIT)'로 불리며 400여명의 인력을 배출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한국 기관에서 근무했던 통역, 의료진, 사무직 직원 등 현지인이 아프간 정부와 외국을 위해 일했다는 이유로 목숨이 위험해진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바그람한국병원에 근무했던 이들의 수만 45명가량 된다.
2010∼2015년 바그람한국병원에서 통역으로 근무했던 미르 지아우딘 세디키(40)는 연합뉴스와 이메일, 문자메시지 등을 통한 인터뷰에서 이같은 현지 상황을 구체적으로 전했다.
세디키에 따르면 한국 기관 근무자와 그 가족 중 한국 정부로부터 현지 탈출과 이주 지원을 바라는 이들의 수는 현재까지 파악된 인원만 200여명이다.
카불 이외 지방 거주자까지 포함하면 이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현재 자국에 협력했다가 탈레반의 보복 위험에 처한 현지 주민을 구제하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동원 중인데 이들 한국 기관 근무자들은 한국에 구원의 손길을 기대하는 상황인 것이다.
아내와 4자녀를 둔 세디키도 가족을 데리고 아프간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이주하기 위해 동료와 함께 최근 한국 정부에 관련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수도 카불에서 20㎞가량 떨어진 마을에 사는 세디키는 "밤에 탈레반이 마을로 들어와 정부나 외국 기관에서 근무했던 이들을 찾고 있다"며 "잘 모르는 이들이 마을 주민에게 내 집의 주소를 묻기도 했다"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세디키는 "탈레반은 2주 전에도 정부 기관에서 근무했던 마을 주민 6명을 끌고 가 신체를 잔인하게 훼손하면서 살해했다"며 "지난달에는 한국 병원 동료였던 수나툴라가 바그람의 개인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괴한의 총격으로 중상을 입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7년 11월에는 가족 차에 설치된 폭탄이 터지면서 나와 함께 있던 형이 크게 다쳤고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도 했다"며 "형은 이 사고로 거동이 불편해 탈출 시도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12살 때 아버지가 탈레반에 의해 살해된 후 가족 생계를 책임져왔다.
바그람한국병원에서 근무했던 의사 아브 파힘도 연합뉴스에 "탈레반이 곳곳에서 출현하고 있어 매우 걱정되는 상황이며 가족은 외출이나 여행도 두려워하고 있다"며 "우리의 삶과 안전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형편"이라고 우려했다.
세디키는 현지 치안이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매일 수천명이 국경을 넘어 탈출하고 있다"며 "지난 5월 미군 등 외국군 철수가 시작된 후 이런 상황은 더 악화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 외교 당국은 "아프간 현지인으로부터 비자 발급, 이주 등과 관련한 공식 서류 신청은 아직 받지 못한 상태"라며 "당국도 아프간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 중"이라고 밝혔다.
탈레반은 2001년 9·11테러 직후 오사마 빈 라덴을 넘기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가 미군의 침공을 받고 정권을 잃은 후 정부군 등과 장기전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미군 철수가 본격화되자 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여러 주도(州都) 등 주요 도시를 잇달아 장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