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캐나다의 소매 매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 봉쇄 조치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 통계청은 216월 소매 매출이 530억 달러로, 전월보다 23.7%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경제 봉쇄 조치를 시행하기 전인 2월보다 오히려 1.3% 늘고 작년 같은 기간보다는 3.8% 증가한 수준이다.

한 분석가는 "6월 실적은 완연한 V자형 회복이라 할 만하다"면서 "자동차 판매가 강세를 보이며 실적을 이끌었고 의류·가구 등 경제 봉쇄 타격이 컸던 품목들도 수요를 회복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동안 억제됐던 수요가 충족된 만큼 7월에는 다시 퇴조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온타리오 자폐 연합 로라 커비 맥킨토시 회장


온타리오 자폐 연합 (Ontario Autism Coalition 이하 OAC)과 온타리오 장애인 동맹 (Accessibility for Ontarians with Disabilities Act Alliance 이하 AODA)21일 온라인 회의를 열어 가을학기 개학에 앞선 정부 방침에 대해 논의, 안전한 개학에는 크게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OAC의 로라 커비-맥킨토시 회장은 회의에서 온타리오 정부가 장애아동을 학교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에 대해 너무 최소한의 일을 하고 있으며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부의 개학 지침은 계획이라기 보다 그저 듣기 좋은 말들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맥킨토시 회장은 온주 내의 학교 시스템은 주로 비장애 아동들 위주로 설계되었으며, 장애 아동들은 사후 고려로 취급된다고 지적, "COVID가 효과적으로 한 일 중 하나는 우리 사회의 인종차별, 의료 인프라 등의 제도적 문제를 노출시켰고 이제 학교 시스템 문제에 도달하고 있다"고 개선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스티븐 레체 교육부 장관 대변인은 주 정부가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 기금으로 1,000만 달러를 추가로 배정했다고 말했다. 또한 특수 교육에 어느 지방보다 많은 돈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맥킨토시 회장은 학교들이 단지 돈으로만 운영되는 것이 아니며 좋은 계획이 필요하다면서 정부가 학교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발표를 듣기까지 너무 오래 기다려야 했으며 아직 우린 준비가 되 있지 않다.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레포프스키 장애인 동맹 AODA 의장은 AODAOAC자폐 연합이 COVID 19 이전과 유행 기간 동안 장애 학생들과 관련하여 정부에 많은 제안과 조언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부 공무원 중 누구도 전화를 하지 않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장애 학생들이 이 어려운 시기에 충분한 교육 지원을 받지 못할 위험이 있으며 새 학기가 시작했을 때 대면 수업에 참가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크다고 밝혔다.

한편 토론토 TDSB교육 위원회 대변인 라이언 버드는 올 가을에 특수 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을 위한 교육 시설이 준비 되어있다고 학부모들을 안심시켰다. 그는 이들 학교는 장애 아동들을 위한 전문학교들이며 앞으로도 지원이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TDSB가 학부모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많은 학부모들이 좌절감을 느끼고 있고 9월에 자녀를 학교로 돌려보내는 데 있어 어려운 결정을 하고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리문답  특수 상황에 교회 모임 금한다면 따르는 게 의무

모든 성도 하나님 성전마르틴 루터 영성 상담 편지도 회자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시행 후 처음 맞는 23일 수도권 교회에서는 비대면 주일예배가 드려지고 있다. 경남도와 부산·광주광역시도 권역 내 교회들에 비대면 예배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경북·전북도, 세종시 등은 비대면 예배를 권고했다. 반면 일부 교회들은 예뱨는 목숨과도 바꿀 수 없다며 현장예배를 고집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교회들이 기존대로 현장 예배를 실시하겠다고 나오자, 일선 목회자들 사이에서는 교회 역사 속 사례와 신학적 근거를 들어 정부 방침에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쏟아내고 있다. 목회자들은 이번 정부의 방침은 코로나19 방역이라는 특수하고 한시적 상황에서 나온 조치이기에 교회 탄압이나 박해와는 거리가 있다는 반응이다. 정부 시책을 따르는 것이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페이스북에서는 다수의 목회자들이 17세기 영국 청교도 목회자, 리처드 백스터가 말한 요리 문답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백스터는 목회자 중 목회자로 불렸으며, 대표작 참 목자상은 국내 주요 신학교 교재로도 사용 중이다. 문답 내용은 이렇다.

질문109 : 만약 위정자가 금한다면 교회는 주일에 모이는 것을 생략할 수 있는가?

답변 : 1. 전염병이나 화재, 전쟁 등의 특별한 이유로 금하는 것과 상시적으로 혹은

불경스럽게 금하는 것은 경우가 다릅니다.

4. 만약 위와 같은 특수상황에서 위정자가 더 큰 유익을 위해 교회의 모임을

금한다면, 그에 따르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우리의 일상적 의무는 더 큰

자연적 의무에 양보해야 합니다. 어느 한 주일이나 하나의 모임을 생략해서 더

많은 모임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중요한 일입니다.

김관성 행신침례교회 목사는 인간의 삶이란 이렇게 돌고 도는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신실하게 목회하고 살았던 목회자의 분명하고 선명한 답을 우리의 네비게이션으로 삼으면 안 되는가. 제발 이웃을 생각합시다라고 썼다.

해당 내용은 한국내에서도 출판된 리처드 백스터의 기독교 생활 지침4: 교회윤리’(부흥과개혁사, p452)에 나오는 구절이다. 완전한 내용은 이렇다.

질문109. 만일 통치자들이 교회가 모이는 것을 금지한다면 교회는 주일에 모이는 것을 생략할 수 있는가.

대답 : 1. 특별한 이유로(가령, 전염병이나 화재나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처럼) 일시적으로 모이는 것을 금지하는 것과, 정규적으로 또는 신성모독적으로 모이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2. 일시적으로 모이지 않는 것과 정규적으로 모이지 않는 것은 다른 것이다.

3. 법에 대한 형식적인 순종으로 모이지 않는 것과, 신중하게 또는 필요해서 우리가 모일 수 없어서 모이지 않는 것은 다른 것이다.

4. 모임과 모임의 상황과 관련된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1)만일 통치자가 공공의 안전 같은 더 큰 유익을 위해 전염병이 일어나거나 적의 공격이 있거나 화재가 났을 때, 일시적으로 모이는 것을 금지한다면, 그에게 순종하는 게 의무이다.

적극적인 의무는 그 의무의 목적인 자연적인 의무에 자리를 내주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자신과 자신의 제자들이 외적으로 안식일의 휴식 규정을 어기는 것을 정당화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적극적인 의무가 언제나 우리를 구속하는 것은 아니며, 시기에 맞지 않는 의무는 죄가 되기 때문이다.

한 번의 주의 날이나 모임보다, 그 한 번을 생략해 얻는 많은 주의 날이나 모임이 선호되어야 한다.

2)만일 왕들이 거룩한 모임과 공적인 예배를 고정적으로나 그리스도와 종교를 제거할 목적으로 신성모독적으로 금지한다면, 그들에게 형식적으로 순종하는 것은 합법적이 아니다.

3)현재의 필요에 따라 우리가 공적으로 모일 수 없어서 은밀하게 모이고, 많은 수가 모일 수가 없어서 적은 수로 모이며, 더 자주 모일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신중하게 어떤 모임을 일시적으로 폐하는 것은 합법적이다. 그것은 형식적이 아니라 오직 내용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4)그러나 금지된 것이 모임이 아니라 모임의 상황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것은 다음 질문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주제다.

이에 대해 한 사역자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4:24)는 말씀을 인용했다. 그는 모임을 잠시 멈추고 흩어져서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그 예배가 결코 진정성이 없는 예배는 아니며, 더 간절하게 다시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날을 고대하며 나가야 한다. 그런데 문제의 중심은 예배를 못 드리는 경우가 아니라 모임이다. 모임과 예배가 동일한 맥락으로 압박을 받고 있으니 혼동을 겪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개교회들이 많아 더 타격을 받는 것 같다. 이럴 때 참된 예배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올바른 예배의 보기를 안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목회자들은 복음서에 등장하는 참된 예배와 안식일 개념을 살펴보면서 진정한 예배와 안식일의 의미를 논의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요한복음 4장과 마태복음 12장 본문들이 거론된다. 목회자들은 이 본문들과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이 어떻게 서로 관련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4:21~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12:6~8)

일각에서는 현장 예배 고수가 지나치게 구약의 성전 환경에서 동물 제사를 고집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약 이후 성전 개념은 교회로 부르신 모든 성도 자체가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이며 성령의 전’(고전 6:19)으로 묘사된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영성 상담 편지에 나오는 치명적 전염병에서 도망해야 하는가일부 내용도 회자되고 있다.

나는 하나님께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를 지켜달라고 간구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소독하여 공기를 정화할 것이고, 약을 지어 먹을 것이다. 나는 내가 꼭 가야 할 장소나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아니라면 피하여, 나와 이웃 간의 감염을 예방할 것이다. 혹시라도 나의 무지와 태만으로 이웃이 죽임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기 원하신다면 나는 당연히 죽게 되겠지만 적어도 내가 내 자신의 죽음이나 이웃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웃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는 누구든 어떤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보라,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다. 왜냐하면 너무 야단스럽지도 무모하지도 않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시험하지도 않는다.”                                      < 신상목 기자 >

                                  

 

[칼럼] 교회로부터 ‘거리두기’

● 칼럼 2020. 8. 24. 04:58 Posted by SisaHan

[칼럼] 교회로부터 거리두기

          

세계 50개 초대형교회 중 23개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은 한국 교회가 세속도시의 한 성소가 아니라 업소가 된 현실을 씁쓸하게 증명한다.

         

노모에게 교회는 구원이었다.

남편을 잃고 딸 여섯에 아들 하나를 혼자 건사해야 했을 때, 교회가 있었다. 삶은 언제나 춥고 바람 불었지만, 교회에 가면 견딜 만했다. 거기엔 오늘의 위안이 있었고 내일의 믿음이 있었다. 어렵게 본 아들이 학교에서 잇따라 사고를 치자, 시누이의 권유로 개종한 기독교였다. 다니던 점집에서 철마다 굿을 하던 노모는, 정화수를 떠놓고 자식들의 안녕과 무탈을 빌었듯 매일 새벽기도에 나갔다. 또 하나의 기복신앙이었지만, 그 열의는 바지런한 것이어서 훗날 권사가 됐을 정도였다. 교회에서 받았다고 여긴 만큼, 어렵게 모은 재산의 10분의 1을 교회에 십일조로 냈다가 자식들과 한때 소원해진 일도 있었다. 노모가 십일조를 낸 뒤 교회 목사는 에쿠스로 차를 바꿨다. “물질 있는 곳에 마음 있다며 예배시간마다 헌금을 채근하던 목사를 비난하면, “교회 보고 다니지 사람 보고 다니는 게 아니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신천지부터 사랑제일교회까지 코로나19의 진앙지는 공교롭게도 교회였다. 두번의 코로나19 팬데믹이 문제적 두 교회를 중심으로 번져나갔다는 사실은, 대다수 교회엔 억울한 일이겠지만, 한국 교회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인식을 더 강화시켰다. 종교의 자유가 아닌 종교로부터의 자유를 고민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까닭이다.

부동산 정책, 홍수 대책, 경제 파탄 등 범죄행위를 숨기고 마치 전광훈이 중국 우한 바이러스(코로나19)를 전파하는 사람으로 매도하는 범죄적 행위를 하고 있다.” “문재인과 그 패거리들은 저희 신도들이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흑색선전 중이다. 격리 수용을 핑계로 국민을 체포, 연행하고 있다. 계엄령보다 더 무서운 방역공안 통치다.”

현재 코로나19 확진으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전광훈 서울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21일 오전 유튜브 채널 너알아티브이(TV)’와 변호인을 통해 밝힌 성명서의 한 대목들이다. 시민적 상식을 가졌다면, 아니 상식을 떠나 사리분별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내뱉지 못할 말들이다.

전광훈과 이만희로 대표되는 극우기독교세력이 벌인 일은 비단 코로나19의 대유행만이 아니다. 그들은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살림살이를 나락으로 빠뜨렸고 수많은 중증환자들을 위험에 처하게 했으며, 학생들의 학창시절을 시들게 했고 일하는 사람들의 여가와 휴식을 망쳤다. 의료비용의 낭비와 국가재정의 손실은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신천지와 같은 이단도 아니고 사랑제일교회와 같은 사이비도 아닌, 노모가 다녔던 교회를 비롯한 대다수 교회는 종교의 순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고난받는 이들 곁에 머무르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교회도 적지 않다.

그러나 물신주의와 배금주의를 운영 원리로 삼은 두 문제적 교회와 한국 교회 일반의 성장제일주의의 간극이 그리 멀지 않은 것도 엄연하다. 세계 50개 초대형교회 중 23개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은 한국 교회가 세속도시의 한 성소가 아니라 업소가 된 현실을 씁쓸하게 증명한다. 그곳에 예수는 없다.

물론 한국 교회가 이 꼴이 된 책임을 전광훈과 이만희 같은 자들에게만 물을 순 없다. 정치적 자유를 철저히 금압했던 독재정권은 종교적 자유만은 무한정 허용했고, 한국 교회는 독재자의 왼편에 앉아서 그를 축복한 대가로 세금 안 내고 세습되는 교회를 누렸다. 극우기독교에 일용할 양식을 준 것은어제의 공화당과 민정당이자 지금의 미래통합당이었고, 전광훈의 황당한 말을 받아 그를 태극기부대의 스타로 만들어준 것은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었다. 21세기 한국 사회를 여전히 중세시대에 머물게 만든 건 기독교-통합당-수구언론의 삼각동맹이었다.

교회발 코로나 확산의 역설은 있다.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던 노모도 이젠 자식의 말을 듣고 집에서 예배를 본다. 장삼이사들의 소박한 바람 위에 거대한 바벨탑을 지은 한국 교회로부터 이제 본격적인 거리두기를 해야 할 때다. 예수는 교회 밖에도 있다.

 < 오승훈 한겨레신문 전국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