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Jesus in the City」‥ 참가준비·연습 성도들 참여 호소


 “믿음을 가진 성도들, 교회들이 영적 타락으로 가는 이 시대와 이 땅의 회복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도심을 행진하는 선하고 뜻깊은 행사를 외면한다면 말이 됩니까!” 
“게이(동성애자) 퍼레이드는 갈수록 참가인원이 늘어 성대해진다는 데, 우리 예수 퍼레이드는 관심과 참여가 줄어 행사 존립이 위태로울 정도라니, 정말 애가 탑니다!, 해외선교 못지않은 도심선교라는 생각으로 한국교회들이 적극 나서 행사를 살릴 때라고 믿습니다” 
오는 9월10일(토) 낮 토론토 다운타운 퀸즈파크 일원에서 열리는 ‘Jesus in the City’ 퍼레이드 참가 준비에 심혈을 쏟고있는 토론토 전도대학 허인희 장로(소망교회: 교협 회계)를 비롯한 실무진들은 한인 교회들과 성도들의 무관심에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참여를 호소했다. 
성극 ‘노아의 방주’와 ‘예수 십자가 고난의 행진’을 선보이기 위해 소망교회 체육관에서 매일 연습하고 있는 10여명의 성도들도 이구동성으로 많은 교회들의 도움이 아쉽다고 애를 태웠다. 두 성극에는 40명 정도의 인원이 필요해 각 교회들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몇몇 교회를 제외하고는 반응이 없어 사기가 말이 아니다. 며칠 전에는 연출을 맡은 전경희 집사가 인원 부족으로 애를 태우다 눈물을 펑펑 쏟는 바람에 참가한 성도들이 함께 눈물로 기도하기도 했다고 허 장로는 전했다. 이같은 형편을 보다 못한 서인구 담임목사와 박신숙 사모가 연습에 합류해 함께 구슬 땀을 흘리고 있다.
 
올해로 12회째인 다민족 행사 Jesus in the City 퍼레이드에는 그동안 토론토 전도대학(학장 서인구 목사)과 유학생선교회(대표 김지연 목사)를 중심으로 소망교회, 수정교회(담임 주권태 목사), 토론토 순복음교회(담임 양요셉 목사), 영락교회(담임 송민호 목사), 등대교회(담임 송창규 목사), 은평교회(담임 김은대 목사) 등 몇몇 한인교회들이 참여해 왔다. 그러나 참가인원이 갈수록 줄어 토론토시에서 도심행진을 허용하는 12개 행사 가운데 11번째로 밀리는 존폐위기에 직면해있다.  
이에 따라 올해는 온주교협(회장 주권태 목사)이 주도적으로 범교계 차원의 참여와, ’캐나다를 위한 기도의 날’을 제안키로 하는 등 행사를 살리고 한인교회의 세를 보여주기 위해 교회들의 협조를 적극 독려하고 있다. 행진에 선보일 이벤트도 몸찬양과 태권도 시범, 농악행진 등 한국을 알릴 종목과 함께 ‘노아의 방주’ 등 성극도 보여주기 위해 실감나는 장식과 소품을 한국·중국 등에서 어렵게 구하는 등 준비하며 연습에 들어갔다. 그러나 소망교회 성도와 유학생선교회 학생 등 외에는 인원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망교회 직분자들이 연습팀을 위해 순번으로 식사를 준비해 주는 등 애를 쓰고 있지만, 성극의 소품구입과 참가인원 식대 등 행사에 필요한 1만 달러 가량의 재정적인 애로도 겹쳐 교회들의 참여와 도움이 절실한 형편이다.
 
주권태 교협회장은 “토론토와 캐나다가 영적으로 퇴락해가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찬양하는 평화행진에 한인교회가 기도하며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는 간절함으로 올해부터 교협이 주도해 참가하기로 했다”면서 “교회와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며 물심양면으로 십시일반 힘을 모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인희 장로는 “성극과 행진에 필요한 80명 정도의 인원은 각 교회 청년·학생부에서 한 두명 씩만 참가해도 거뜬히 채워질 것”이라며 ““이 행사는 허가받고 큰 길에서 목소리 높여, 또 각종 악기를 동원해 찬양하며 하나님을 높이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날인 만큼 교회들이 전도와 선교의 일환이라고 여기고 중보기도하며 인적·재정적 협력의 손길을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Jesus in the City’ 는 10일 낮 12시부터 퀸즈파크에서 소수민족 성도들이 모여 노래와 연주, 율동, 행진을 하며 기독교인들간의 연대와 교세를 과시하고 시민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감사, 신앙생활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한인교계는 공연팀과 함께 중보기도팀, 원주민선교팀 등도 퍼레이드에 참가하며, 앞서 드리는 예배와 기도시간에 주 회장이 ‘캐나다를 위한 기도의 날’ 제안 취지를 설명하고 비전을 함께 나눌 예정이다.

< 문의: 416-749-0191, 647-207-0702 >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해 6. 2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데는 ‘부패’에 대한 단호한 척결 의지가 크게 작용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전임 공정택 교육감이 인사청탁 대가로 1억46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들통나 구속된 것에 대한 심판의 측면도 있었겠지만, 곽 교육감이 법학 교수 시절 등을 통해 보여준 깨끗하고 도덕적인 이미지가 단단히 한몫을 했다. 삼성그룹 편법승계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그가 힘을 쏟은 ‘스톱 삼성’ 운동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부패 전사’를 자임했던 곽 교육감이 후보 단일화를 이룬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원을 건넨 혐의로 검찰 소환이 임박했으니 참으로 유감스럽고 잘못된 처신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이유로든 곽 교육감이 2억원을 건넨 것은 합리화되기 어려운 행위다. 돈을 전달한 방법이나 횟수, 금액 규모 등을 고려할 때 ‘선의’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박 교수의 처지가 아무리 어려웠다고 해도 후보 단일화를 한 특수관계자에게 거금을 준 것은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에서 용인되지 않는다. 단일화의 대가로 비칠 소지가 크다. 이런 상황이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이라는 말로 설명되리라 판단했다면 수도 서울의 교육수장이라는 자리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고 할 것이다. 
설령 선의를 인정한다 해도, 곽 교육감은 또다른 불법 시비에 휩싸일 수 있다. 당장 ‘2억원에 대한 증여세를 냈느냐’는 질문이 나오면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고위 공직자들이 자녀에게 수천만원을 줬다가 인사청문회에서 증여세 탈루로 곤욕을 치르는 게 현실이다. 우리 사회의 도덕적 잣대는 그만큼 엄격해졌다.
 
이번 사건으로 국민들이 반부패 교육 등에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곽 교육감 당선에 애를 쓴 진보·개혁 진영의 정치적·도덕적 상처 또한 적지 않다. 사법 처리의 관건인 대가성 여부와 관계없이 그가 교육감 자리를 지속할 수 있는 권위와 도덕성을 잃었다고 판단하는 이유다.
정치권은 물론 교육감 선거에서 그를 지지했던 시민사회단체들까지 나서서 사퇴를 요구한 것은 시민의 지지라는 근본 토대가 무너졌음을 보여준다. 곽 교육감은 스스로 물러나는 게 옳다. 이와 별개로 서울시민들이 곽 교육감 선출을 통해 표출한 교육부패 추방, 학생인권 강화, 교육복지 확대 등의 가치들이 이번 사건으로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헌법재판소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배상청구권 문제에 대해 정부가 해결 노력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확인했다. 뒤늦었지만 매우 뜻깊은 결정이다. 정부는 그간 1965년 한일협정 내용을 소극적으로 해석하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요구를 수수방관해왔으나 이번 결정을 계기로 적극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그동안 위안부 피해자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가 무자비하고 지속적으로 침해됐고, 모두 고령이라 지체할 경우 회복이 불가능한 절박성이 있음에도 정부가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은 헌법 위반”이라며 정부에 책임이 있음을 명확히 했다. 특히 이렇게 된 데는 1965년 한일협정을 맺으면서 “청구권의 내용을 명확히 하지 않고 ‘모든 청구권’이라는 포괄적 개념을 사용한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소모적인 법적 논쟁으로의 발전 가능성’이나 ‘외교관계의 불편’을 내세워 반박했으나 헌재는 “(이는)진지하게 고려돼야 할 국익이라고 보기 힘들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어린 나이에 일본군의 성노예로 당한 고통을 가슴에 새기며 힘겨운 투쟁을 벌여왔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배상,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매주 수요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여온 수요시위가 벌써 985번째다. 그 20년 동안 우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할머니 234명 가운데 생존해 있는 분은 79명으로 줄었다.
 
가해 당사자인 일본의 외면만큼이나 할머니들을 가슴 아프게 한 것은 우리 정부의 무관심이었다. 한국 정부는 이들의 고통을 해결하려는 외교적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고 피해자들에게 문제 해결을 떠넘겼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과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의 역사를 후대에 전하고자 시민사회가 건립운동을 벌이고 있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에도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헌재 결정을 계기로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해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기구 설치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또 공식적으로 일본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외교협상을 벌여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확인시키고, 공식 사죄와 배상 등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이것만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진정한 화해에 기초한 한-일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는 길이다. 


[1500자 칼럼] 철부지 수박

● 칼럼 2011. 9. 3. 18:11 Posted by SisaHan
뒷마당에서 수박을 처음 발견한 날, 나는 손끝이 떨릴 만큼 흥분되었다. 커다란 수박을 한없이 축소해놓은 것 같은 초록 알갱이를 들여다보는 순간, 모든 생명들이 함께 숨을 죽이는 듯했다. 시장에 있는 것으로만 알던 수박을, 올 봄에 그저 호기심으로 뒷마당 텃밭에 심었던 것인데 초록 결실까지 보게 된 것이다. 위로 자라던 줄기가 바닥으로 내려가 덩굴손을 내밀어 풀잎을 끌어안으며 씩씩하게 벋어갔다. 별을 닮은 노란 꽃들이 군데군데 피더니 밤톨만한 수박을 달고 있던 게 불과 열흘 전이었다. 엊그제는 주먹만해졌다며 사진까지 찍었었는데 그새 수박 알갱이가 몇 개 더 생겼다. 수박을 처음 심어봐서 그런지 사슴 뿔을 닮은 이파리를 들춰볼 때마다 대단한 비밀이라도 엿보듯 짜릿했고 그렇게 신통할 수가 없었다. 절기에 맞춰 햇볕 냄새를 품은 정직한 수박으로 자란다면 무얼 더 바랄까 싶었다.
 
언젠가 여름도 물러갈 무렵 철 지난 수박 한 통을 사왔었다. 옅은 초록색 항아리에 행서로 붓글씨를 써 내려간 듯한 모양새가 꼭 한국 수박 같았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다르던 모양과 맛이 글로벌 시대를 맞아 획일화, 동질화되는지 한국 수박과 서양 수박이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들뜬 마음에 반으로 갈라놓자 웬걸, 수박은 연분홍빛 속살과 듬성듬성 생기다 만 것 같은 하얀 씨를 드러내는 게 아닌가. 
수박을 고를 때 남편과 내가 서로 몇 번씩 번갈아 두드려보며 기분 좋은 ‘탱탱’ 소리를 듣고 장담하며 사온 것이었다. 식구수가 적은 우리에게는 부피가 큰 과일을 잘못 만날 때처럼 심란한 일도 없기 때문에 수박을 고를 때 여간 긴장하는 게 아니다. 새까만 씨에 단물이 줄줄 흐르는 빨간 속살을 기대했는데 이럴 수가. 남편과 아들은 어느새 도망치듯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일은 익다가 만 것 같은 색에서 어찌 그리 단맛이 나느냐였다. “맛만 있으면 되지 색깔이 무슨 상관이냐”고 시위하는 것 같았다. 철을 모르는 수박을 내놓으려고 사람까지 철이 없어졌는지 인위적인 단맛이 첨가되지 않고서야 그럴 수 있을까 싶었다. 
요즈음은 제철 과일이나 제철 음식이라는 명칭이 어색할 만큼 먹을 거리에 계절 구분이 없다. 아무 때나 만나게 되는 과일과 채소로 계절에 따른 단어 연상도 혼란스럽다. 냉이나 취나물로 봄을, 사과와 붉은 감으로 가을을 연상하던 일도 옛이야기가 되었다.
 
음력 날짜로 절기를 가늠하던 시절, 우리는 기다림을 통해 참는 법을 배웠다. 계절이 분명하던 때라 수박을 먹기 위해 여름을 기다려야 했고 떡국이 먹고 싶어 설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기다릴 필요 없이 즉석에서 수요와 공급이 이루어지는 물질적인 풍요로움 속에 계절의 맛을 모르는 현대인의 식생활은 삶에 뭔가 하나쯤 빠진 듯 허전하다. 여름도 덥지 않고 겨울도 맵지 않은 인위적인 생활에 인성마저 변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칼바람 부는 마당에서 빨갛게 언 손으로 김장을 담그면서도 겨울을 호령할 줄 알았고, 연탄을 들여놓고 흐뭇해하던 어머니의 표정이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온다. 요즈음엔 사철음식이 되어버린 김치나 동치미도 그렇게 겨울에나 만나던 음식이었다. 
채소나 과일은 흙과 물과 태양과 바람이 사람의 정성과 화합하여 빚은 초록의 결실이고 받은 만큼 정직한 보답을 할 줄 아는 생명체들이다. 아마 그때 만났던 수박에는 어떤 요소가 하나쯤 부족했으리라. 눈 앞의 편함과 이익을 따르기 보다는 권태로운 질서를 받아들이는 여유, 조급해 하지 않고 때가 차기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 먹이사슬을 인정하는 자세가 있어야 자연과의 유대를 맺을 수 있다. 그런 환경에서 살아야 육체뿐 아니라 정신도 건강하다. 이글거리던 한여름의 태양 볕을 터질 듯 가득 안고 있어 칼 끝만 살짝 들이대도 쩍 갈라지며 빨간 세상을 열어주던 수박으로 여름을 식히던 그때가 그립다. 숲을 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행복해진다더니 제법 꼴을 갖춰가는 텃밭의 수박을 바라보는 것으로 나는 작은 행복을 맛본다.  

<김영수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협 회원/한국 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