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잔씩도 건강에 득보다 실

허혈성 심질환 위험 낮출 정도 유익 근거 희박
하루 한잔도 간에 영향·여성은 유암발생↑

미국 워싱턴대학 연구진은 세계 2천800만 명의 음주 관련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음주로 인한 위험을 고려할 때 “안전한 수준의 술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영국 의학학술지 ‘랜싯’(Lancet) 최신호에 실린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년 280만여 명이 술과 관련한 질병 등으로 사망한다. 이 중 연간 전체 여성 사망자의 2%, 남성 사망자의 7% 가량이 각각 술로 인한 건강 문제로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기적으로 술을 마시는 것은 신체 내 장기와 조직 등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데, 더욱이 폭음은 부상이나 알코올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진은 기존에 진행된 694개 연구 자료를 분석해 세계적으로 술을 마시는 것이 얼마나 보편화해 있는지 살폈다. 이에 따르면 지구 상에서는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4억 명이 술을 마시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진은 또 195개국, 2천800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592개 음주 관련 연구 결과를 분석해 음주와 건강상의 위험 간의 관계도 연구했다. 2016년의 경우, 조기 사망자와 각종 질병을 유발한 위험 요인 중 7번째였다. 이 해에 술은 15세부터 49세 연령대에서 최대 위험인자였고 여성 사망자의 3.8%, 남성 사망자의 12.2%가 각각 음주 관련 결핵이나 사고, 자해 등으로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50세 이상에서는 술 관련 사인 중 암이 가장 많았는데, 여성 사망자의 27%, 남성 사망자의 19%를 각각 차지했다. 연구 결과 음주는 7가지 암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진은 알코올이 건강에 주는 유익은 허혈성 심장질환의 위험을 낮추는 정도였으며 당뇨나 허혈성 뇌졸중에도 일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정도는 아니었다고 밝혔다. 오히려 매일 알코올 섭취량이 늘어갈수록 음주로 인한 다른 건강 문제가 야기될 가능성이 점점 커졌고 건강상의 득보다 실이 훨씬 컸다고 설명했다.


논문 주저자인 워싱턴대 건강영향 측정평가연구소의 맥스 그리스월드 박사는 “하루 한 잔의 알코올 섭취로 인한 건강상 우려는 작게 시작하지만, 사람들이 더 많이 마시기 시작하면서 급격히 위험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하루 한 잔의 술을 마셔도 우리의 간 건강이 크게 손상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2015년 1월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 병원(Copenhagen University Hospital)​ 연구진도 발표한 바 있다. 이 병원 연구진은 매일 마시는 술은 알코올성 간경변에 걸릴 위험을 높인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50~64세 사이의 약 5만 6천명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음주 패턴을 체크했다. 모든 참가자는 먼저 알코올, 흡연, 신체 활동, 식습관 등 평소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설문을 진행했으며 허리둘레 측정을 포함한 간단한 신체검사를 받았다.
이후 연구진들은 이들이 20세 이후 10년 간격으로 어떤 술을 마셨는지 조사했다. 조사 결과 참가자 중 257명의 남성과 85명의 여성에게서 간질환이 발견됐다. 특히 남성이 여성에 비해 위험성이 더 높았다. 술의 종류에 있어서는 와인이 맥주나 증류주보다 알코올성 간경변의 위험이 낮은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 참여한 그로 애스크가드(Gro Askgaard) 박사는 “음주 패턴이 간경변의 위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며 “술을 매일 마시는 사람이 일주일에 5~6일 마시는 사람보다 간질환의 위험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하버드대 의대연구진은 앞서 여성들이 하루에 알코올 10g, 즉 술 한잔을 마시면 유방암 발생률이 9% 상승하며, 하루 평균 2잔에서 5잔 정도 술을 마시면 유방암이 발생할 확률이 41%나 뛰어 오른다고 밝힌 바 있다. 여성들이 술을 마시면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유방암 발생률도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미국 암협회가 9년 동안 32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결과로 확인했다고 전했다.
연구진은 여성들은 젊을 때는 아예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게 상책이고, 폐경기를 넘긴 뒤에나 조금씩 술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6회 영상제 참여자들.

기독청년들 「There Movement」, 단편 응모작 상영

‘메마른 마음에 십자가의 감동을 전하는 영상운동’을 기치로 젊은이들이 모인 기독영상물 제작 및 보급운동 단체 ‘There Movement’가 제7회 ’떡과 물고기 영상제‘를 오는 10월20일(토) 오후 3시 노스욕 Fairview 도서관 극장(35 Fairview Mall Dr,. M2J 4S4)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2012년부터 시작된 ‘떡과 물고기 영상제’는 매년 한인들이 만든 영상작품 가운데 상업적 영상물을 제외한 단편작품들을 상영하고 제작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의 이벤트를 진행한다. 올해도 크리스천 영상물을 비롯한 감동적인 단편작품 8~10편을 상영하고 객석과 감독이 대화를 갖는 시간도 마련한다. 또 영상작품 상영 외에 테마에 맞춰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와 선물도 준비한다고 There Movement가 밝혔다.


주최측은 아울러 이번 영상제 작품의 절반 가량은 토론토 지역 제작자들의 작품이며, 그 중에는 고등학생이 제작한 작품도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독청년들을 중심으로 “꿈과 신앙의 신념을 따라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기독영상물 제작 및 보급활동을 위한 비영리단체로 출범한 ‘There Movement’는, 7년 전부터 “화려하거나 세련됨보다는 서툴고 투박해 보이지만 꿈을 쫓아 계속 영상을 만들 수 있도록 격려하는 영상제가 되어 ‘오병이어’가 예수님의 축도로 수천 명을 배불리 먹인 양식이 된 것과 같은” 비전을 이루어간다는 취지로 ‘떡과 물고기 영상제‘를 해마다 열고 있다.


< 문의: theremovement.toronto@gmail.com >


우리는 ‘모든 이방인’가운데 “믿어 순종”을 낳게된 기독교 신앙고백자 들이다. 곧 마침내 예수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모두가 그리고 오직 이 사람들만이 <믿음의 순종>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다(롬1:5). 바로 <복음>의 역사성은 의의 태양을 맞아들이는, 아침 햇살이 되는 ‘복음’을 두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주하나님께 감사할 일은 우리에게 다른 길이 열려져 있으나, 곧 <복음>안에서 “율법 외에 주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난” 것이다.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고도 ‘칭의’를 얻을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곧 이것을 가리켜 “주하나님의 의” 바로 예정 하시고 공급하시며 영접해 주시는 그분의 ‘의’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것은 마치 크리스쳔의 갑옷을 가르켜 “하나님의 전신갑주”(엡6:10) 라고 하는 말씀과 같다. 곧 ‘칭의’는 모두에게 곧 전체 일반에게 제공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주하나님을 구주로 섬기는 것이니, 그를 의지하고 영접하여 매달리는 면에 있어서 모두 그러해야만 한다. “신앙은 우슬초 다발이요, 그리스도의 보혈은 흩어 뿌리는 피다”. 우리가 죄악의 현장에서 붙잡히지 않았다는 것은 주하나님의 인내의 덕분이다. 즉 주 하나님의 참으심으로 인해, 집행유예가 바로 <속죄>함 받은 우리 들이다.


열매 못맺는 포도나무가 포도원에 남겨진 이유는 그 주인의 인자함과 정원사의 조정 때문이다. 중재자와 속재물이 없이는 용서 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한 시도 참으실 수 없다는 점에서 볼때 이 양자에 있어서 밝히 들어나는 것은 ‘주하나님의’ <의>다. “바로 이것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3:28)”. 하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3:31)” 는 뜻은 율법의 지위와 기초를 확고하게 하고, 율법은 아직도 우리의 과거를 확신 시켜주고, 미래를 향하게 하는데 효용가치가 있다는 말 이다. 물론 <율법>이 직접 우리를 구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율법을 <중보자(주하나님)>의 손에 들린것으로 알고 그걸 소유하고 거기에 복종하며 “은혜의 율법(사랑)”에 순종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폐기하는 것과는 거리가 너무 멀고 오히려 이 ‘율법’을 확고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 크리스천들은 서로가 도덕률의 이행을 부정하거나 부정할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된다. ‘칭의의 열매’ 즉 우리가 의롭게 됨이 우리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주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철저한 순종과 의지 때문이요, 이것을 조건으로 우리의 무죄와 구원에 대한 원리를 주장 할 수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은혜와 타락의 갈등’에서 머뭇 거리지 말자! 즉 주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그걸 행하지 않는 영혼이요, 보다 더 탁월한 것이 된 줄 인정하며 주님의 교훈을 받으면서도 한결같이 그걸 어기며 사는 영혼들이다 (롬2:17-23). 즉 자신의 욕정의 지배에 짓눌려 사는 노예로 머무는 자들인 것이다. 율법에 의해서 확신은 되었으나 <복음>에 의해서 변화되지 않은 그런 자들이다. 더러움을 지적은 하면서도 씻어 없애지는 못하는 것이다. 곧 일반적인 확신으로 머리가 깨어 있으면서도 자책하는 양심을 가지고 악마를 섬기는 것이다. 즉 주하나님의 법도 알기를 즐거워하기도 하고, 마음 속의 죄를 반대하고 성결의 편을 드는게 있으면서도, 죄에 대한 지배적인 애착에 이 모든 것이 압도 되고 마는 것이다. 참된 <은혜>는 이러한 죄와 타락을 상대로 투쟁하지, 그것을 허용치 않으며 그걸 증오하며 슬퍼하고, 짐 같이 여기며 꿍꿍대고 있다는 사실 또한 확실한 말씀이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5:17). 이 말씀이 바로 <성화의 특성>이고 <성화의 목적>이 되는 것이며, 경건 생활의 실천에 대한 강조이기도 하다.

우리는 “기도에 항상 힘쓰며” 기도는 소망과 인내의 친구요, 우리는 기도 가운데 주님을 섬겨야 한다. 즉 <기도>의 열정과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이 <기도>임무에 냉담하거나 싫증 내어도 안되고 ‘기도’는 주하나님을 중히 여기는 우리의 임무다. <기도>를 등한히 하는 것은 게으름이요 교만이고, 교만이란 우리 모두가 천성으로 타고난 ‘죄’이다. 진지한 기도로 더 없이 귀한 영적 은사를 행사하는데 있어서 이 온전하고 겸손한 배려를 우리는 본 받아야 겠다. “스스로 지혜있는 체 말라”(롬12:16절 하반). 우리 주하나님은 심판보다는 자비를 베푸시는 것을 즐겨하신다. ‘자비’를 구하려고 하는 자는 자기 죄를 먼저 회개(자백)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주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의 선하심 그리고 그의 존엄과 자비를 결합해서 바라보아야 한다. 개개의 신자들에게 선행이 풍부하며 주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증가 하며 온갖 선한 은사가 늘어날 때는 그들의 가지가 퍼진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때는 속 사람이 날로 새롭게 된다. 선한 일을 할 수있는 기회를 포착하려고 서성대는 마음씨야 말로 고결한 <마음>이 아닐수 없다. “주하나님은 자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 주실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베푸신다.”(시21:4). 할렐루야! 아멘.

< 김진규 - 밀알교회 장로 >


<복음>은 우리를 주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이끌어주고 즉 우리의 영혼을 위로하고 영면케 하며, 우리의 마음이 주하나님을 향해 고양되고 개방될 수있게 함으로써 우리가 주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해준다. <복음>은 주하나님을 창조주로, 섭리자로, 통치자로, 그리고 은혜를 베푸시는 자로 경외하는 경건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의 영혼에 등불을 켜주는 <빛>이 되신다. <복음>은 위대하고 뛰어난 진리와 선과 악에 관한 율례(법칙)가 쓰여진 말씀이고, 또한 ‘복음’은 우리 모두가 기쁨의 우물을 길을 수 있는 풍성한 우물인 것이다. 만일 크리스천들이 먼저 주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던져 버리고 그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소홀히 한다면 ‘악인’이 되는 것이고, 더욱이 믿음의 봉사를 젖혀 놓을때 그들은 ‘죄인’이 되는 것이다. 또한 태만은 범죄의 길을 만들어 놓는다. 그러므로 태만으로 인해 마음이 매우 경화 되어서 마침내 그들은 ‘오만한 자’가 된다.

그런고로 어떤 확실한 규범에 의해 행하는 자가 아니라 모든 정욕의 지배와 유혹에 따라 행하는 자를 ‘악인’이라고 정의 할수있다. 또한 ‘죄인’이라는 단어는 죄의 일을 하기로 결심하여 그것을 그들의 업으로 삼고 있는 자를 의미하고 있다. 또한 ‘오만한 자’란 ‘하늘을 대적하여 입을 벌리는’ 자들이다. 주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즐거워하는 자들은 모두 주하나님과 그의 뜻에 대한 계시, 그리고 주하나님 안에서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인도해 주는 <성서-복음>가 있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해야 한다. 우리는 종종 지혜롭고 선한 자가 될 가능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생각(숙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즉 깊이 반성함으로써 오류를 잘 살피고 알아서 고치도록 하여야 한다. 거룩하고 경건한 묵상에 잠기도록 하자! 선한 것에 나의 생각들을 고정시키고 그것을 견실히 지키도록 하자!

밤에 잠들기 전에 그날 우리가 향한 것에 관해, 특히 잘못 행한 것에 관해 우리 양심을 살펴 그것에 대해 회개(자복)할 수 있도록 하자! 우리가 밤 중에 깨어 있을 때 주하나님께 대해 그리고 우리를 화평케 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해 묵상하며 살아가자. 소란한 때일지라도 우리 심령을 평온하고 조용하게 지키도록 하자! 크리스천들은 인도와 보호를 구하는 기도를 끈질기게 드려야 되고 우리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는 주하나님께 깊숙히 다가가자. 주하나님을 의지하고 주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느끼는 생을 사는 것이 참되고 순수한 <신앙>인 것이다. 우리는 믿음에 의해 우리 자신을 주하나님의 인도와 돌보심 아래 두어야 한다. 주하나님의 약속을 부여받은 모든 신자들이 우리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도록 하자. 그리하면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들 모두에게 주하나님의 은혜가 영원히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님의 긍휼과 은혜 속에서 기뻐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주하나님께 늘 진지하고 간곡한 기도를 드려야 됩니다. “그것은 거짓 되지 않은 입술에서 나온것”이어야 되고 우리의 감정은 입에서 나온 표현과 일치하는 <기도>이어야 됩니다. 거짓된 기도는 효과가 없고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다면 주하나님은 은총으로써 <기도>를 맞아 주실 것이다. 우리는 ‘소망의 기도’를 간절히 드려야 한다.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시27:7), 우리가 기도하고 믿는다면 주하나님은 은혜롭게 들어 주시고 응답하실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가장 훌륭한 성도들까지도 그들의 고통이 심하고 괴로울 때는 쓰러지기 쉬울 것이며, 그들의 영은 압도되고 몸과 마음은 지쳐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는 <믿음>이 특효 있는 활력제가 된다. 그러므로 계속 소망을 갖고 기도하고 기다리게 해 주며, 주하나님께 대해 선한 생각을 유지하고, 스스로 편안한 즐거움을 갖도록 해준다.

우리는 믿음과 기도의 힘으로 주하나님과의 우리의 의무를 철저히 지키고, 주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겸손한 마음으로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주하나님을 바라는 자들은 담대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신뢰하는 주하나님께서 그 <신뢰>에 의하며 우리 마음을 강하게 해 주실 것이다. 주하나님께 희망을 거는 자들은 강하고 담대할 만한 이유를 가지며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되도록 할 만한 근거가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또 누가 우리에게 상을 찡그리든지 간에 우리 자신과 아울러 서로 서로를 격려하여 그리스도의 여정을 계속해 나가고 그 걸음을 굽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기 ‘죄악’이 사해짐으로써 위로를 받고자 원하는 이들은 그 죄악을 뉘우쳐 고백함으로써 스스로 부끄러워 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수치감과 성스러운 부끄러움을 가지고 죄를 고백하여야 하며, 두려움과 성스러운 떨림으로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경건한 사람들은 죄를 고백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회심한 즉시의 ‘사도 바울’을 바라보자! 우리는 기도없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보다는 호흡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발견 하기가 더 쉬울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 김진규 - 밀알교회 장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