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사진, 무언가 반영…북, 북러조약 조항 진지하게 여겨"

"트럼프와 막후 대화한 기억 없어…미 대선 후 양국 관계, 미에 달려"

 

브릭스 기자회견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타스 연합]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북한군이 러시아군을 지원할 병력을 파견했다는 보도를 부인하지 않으면서 "북한과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타스, AFP 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타타르스탄공화국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 결산 기자회견에서 미국 기자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정황을 뒷받침하는 위성사진에 대한 견해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푸틴 대통령이 북한군 파병과 관련해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위성사진은 진지한 것이고, 만약 사진들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무엇인가를 반영한다는 것이 틀림없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하원(국가두마)이 이날 오전 러시아와 북한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비준했고 이 조약에는 상호 군사원조 관련 조항이 있다고 언급하면서 "이 조항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우리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 "북한 지도부가 이 합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절대로 의심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우리의 북한 친구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군의 러시아 배치가 군사적인 확전을 의미하는 게 아니냐는 물음에는 "우크라이나 상황을 확대한 것은 러시아가 아니다"라며 정색하며 반박했다.

그러면서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쿠데타'(친러시아 대통령을 몰아낸 유로마이단 혁명)가 확전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군인들이 분쟁에 직접 관여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지금까지 러시아는 북한군 파병 보도를 "가짜 뉴스", "허위 정보"라며 일축해왔다.

그러나 한국 국가정보원과 우크라이나 당국이 파병 정황을 지속해서 제시하고 미국도 전날 "북한이 10월 초에서 중반 사이 최소 3천명의 군인을 러시아로 이동시켰다고 평가한다"고 발표한 이후 입장에 다소 변화가 생겼다.

러시아는 지난 6월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체결한 북러조약을 발효하기 위한 비준 절차도 진행하며 북러관계를 '군사동맹'으로 격상시키고 있다.

 

푸틴, 브릭스 정상회의 기자회견 [타스/크렘린궁 연합]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분쟁 종식을 위한 어떠한 평화협정도 고려할 준비가 됐지만, '현장의 현실'에 근거한 대화여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6월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동·남부에서 군을 철수하고 나토 가입을 포기해야 휴전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조건을 제시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분쟁을 종식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그는 진심으로 말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우리는 누가 말했는지에 관계없이 그런 발언을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미 대선 주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모스크바 한복판에서 당신을 때리겠다고 말했다'고 공개한 것에 대해서는 "그런 대화를 한 기억이 없다"며 부인했다.

새로운 미국 대통령이 선출된 후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미국이 러시아와 정상적 관계를 구축할 의향이 있다면 우리도 화답하겠지만,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며 "이는 미래 미 정부에 달렸다"고 밝혔다.

켄 매캘럼 국내정보국(MI5) 국장이 러시아가 영국과 유럽 거리에서 혼란을 일으키려고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는 "완전히 쓰레기"라며 일축했다.

푸틴 대통령은 올해 러시아가 의장국으로서 주재한 브릭스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자평했다.

서방의 금융·경제 제재를 받는 러시아가 서방 주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와 별도로 브릭스 자체 결제 시스템 구축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과 관련해 푸틴 대통령은 "우리는 SWIFT의 대안을 만든 적도 없고 만들 계획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결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며 브릭스 국가들이 자국통화 사용과 각국의 자체 결제 시스템 사용을 확대할 방침이며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브릭스가 확장을 위해 '브릭스 파트너 국가'라는 새로운 형식을 도입할 예정인 가운데 푸틴 대통령은 "미래의 파트너 국가들에 초대장과 제안서를 보낼 것이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으면 명단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약 1시간 동안 질의응답을 진행한 뒤 여러 국가 정상과 양자회담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며 자리를 떴다.                   < 모스크바=연합 최인영 특파원 >

"동부 기지 5곳서 훈련…러 국방차관이 지휘 책임"

 

국정원 "북한군 러시아 파병 위한 병력 이동 시작"=국가정보원은 북한이 지난 8일부터 러시아 파병을 위한 특수부대 병력 이동을 시작했다고 밝히며 위성 사진 등 관련 자료를 18일 공개했다.국정원은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 군인들은 극동지역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하바롭스크,블라고베셴스크 등에 분산돼 현재 러시아 군부대에 주둔 중"이라며,"적응 훈련을 마치는 대로 전선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사진은 지난 16일 러시아 하바롭스크 소재 군사시설을 촬영한 위성사진. 위성사진 분석을 통해 국정원은 이 사진에서 북 인원이 240여명 운집한 것으로 추정했다. 2024.10.18 [국가정보원 제공]
 

러시아에서 훈련받은 북한군 첫 번째 병력이 러시아 본토 쿠르스크를 비롯한 전장에 배치됐다고 우크라이나군이 24일(현지시간)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군 정보총국은 특히 자국군이 작전 중인 쿠르스크에서 23일 북한군이 목격됐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우크라인스카프라우다 등 우크라이나 매체들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장성 3명과 장교 500명을 포함해 약 1만2천명의 북한군이 러시아에 있으며, 우수리스크와 울란우데·카테리노슬랍스카·크냐제볼콘스코예·세르게이옙카 등 러시아 동부 5곳의 기지에서 훈련 중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북한군 장병들이 탄약과 침구류·방한복·위생용품 등을 지급받았고 러시아군 규정에 따라 한 달에 휴지 50m, 비누 300g을 받게 된다고 주장했다.

또 러시아가 유누스베크 옙쿠로프 국방차관을 북한군 훈련·통제 책임자로 임명했으며, 전장에 투입할 북한군에게 몇 주간 훈련할 시간이 있다고 덧붙였다.

키릴로 부다노우 우크라이나군 정보총국장은 지난 22일에도 각종 매체 인터뷰에서 23일 쿠르스크 방면에 북한군이 배치될 것이며, 북한이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장성 3명과 장교 500명을 포함한 병력을 보내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국경 [AP 연합]
 

러시아 남서부 쿠르스크는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8월 6일 진입해 일부 영토를 점령하고 러시아군과 교전 중인 접경지역이다.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침공 당시 러시아가 도네츠크주를 중심으로 한 동부전선 병력을 쿠르스크에 재배치하길 기대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러시아가 현재 쿠르스크 방어에 약 5만명을 투입한 것으로 관측하고 있으나 동부전선에서 러시아의 공세는 오히려 더 거세지고 있다.

러시아는 쿠르스크에서도 우크라이나군 격퇴를 시도 중이다. 우크라이나군은 8월말 한때 서울시 면적(605㎢)의 배를 넘는 1천250㎢를 장악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9월 이후에는 점령지를 조금씩 내주고 있는 것으로 서방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브릭스(BRICS) 정상회의 결산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군이 쿠르스크의 우크라이나군 2천명을 포위했으며 "제거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교도통신은 우크라이나군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군 병사 약 2천명이 훈련을 마치고 우크라이나 국경과 가까운 러시아 서부로 이동 중이라고 보도했다.

한국 국가정보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 간담회에서 현재까지 러시아로 이동한 북한 병력이 3천여명에 달하며 12월까지 파병 규모가 모두 1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도 23일 브리핑에서 "북한이 10월 초에서 중반 사이에 최소 3천명의 군인을 러시아 동부로 이동시켰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  베를린=연합김계연 특파원 >

미 북한군 참전 확인 못했다면서도 "무기 지원 환영"
나토 수장 "한-우크라-나토 3각 방산협력 강화하자"

국빈 방한한 방산 고객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살상무기 직접 공급, 현지 방산공장 참여 위한 포석?

우크라 전쟁의 불길 한반도로 불러들인다면 "파국"

 

북한군 특수부대의 러시아 이동을 계기로 한국의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직접 지원을 기대해 왔던 미국과 나토의 오랜 희망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장기 소강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크라에 대해 재래식 무기의 '현지 생산, 현지 사용'을 추구하는 구도가 한국의 자발적 참여로 완성되기를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의 포탄제조공장에서 12일 우크라이나 지원할 155㎜ 포탄이 운송을 기다리고 있다. 2023.4.12.  AFP연합
 

미국, 나토 앞당겨 퍼붓는 "갈채"

직접적으로 이를 드러낸 것은 미국이었다. 베단트 파텔 국무부 부대변인은 22일 정례브리핑에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공격용 무기 제공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말한 데 대해 "물론 우리는 우크라에 대한 어떤 나라의 지원이건 환영한다"라고 반겼다. "자국의 안보지원(결정)은 한국에 맡기겠다"는 전제를 달았다. 제임스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23일 북한군의 러시아 이동을 공식 확인하기 전 한국의 공격무기 제공을 앞당겨 환영한 셈이다.

지난 21일 마르크 뤼터 신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도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에서 "북한군 파병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우크라-나토 간 방산 협력과 안보 대화를 강화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뤼터 총장이 말한 '방산 협력'은 바로 155㎜ 포탄을 비롯해 전장에서 수요가 높은 재래식무기의 직접 지원을 말한다. 우크라전 개전 이후 미국과 나토가 줄곧 보여 온 태도의 연장이다. 2023년 1월 29~30일 방한했던 당시 옌스 스톨덴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은 "한국이 지원을 더 했으면(step up) 한다"라면서도 "군사적 지원이라는 구체적 이슈는 결국 한국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었다.

2차 대전 당시를 방불케 하는 포격전과 참호전이 벌어지는 우크라 전선에서는 포탄의 수급이 단기적 승패를 좌우한다. 한국은 그동안 포탄을 미국과 나토 회원국에 수출하고, 해당국이 우크라에 자국 비축용 포탄을 제공하게 하는 방식으로 간접 지원을 해왔다. 폴란드는 한국산 다연장로켓 천무와 K2 전차, K9 자주포 등을 사들인 뒤 자국의 낡은 무기체계를 우크라에 보냈다. 포탄이나 무기의 최종 사용자(end-user)를 해당국으로 제한하는 안전장치가 달린 계약이었다. 한국이 살상무기를 직접 지원한다면, 우회 지원으로 인한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우크라 전쟁에 상당한 변수가 될 수 있다. 공교롭게 한국의 최대 방산 수출국인 폴란드의 안제이 두다 대통령이 국빈 방한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볼로디미르젤렌스키 대통령과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악수하고 있다. 2023.07.15. 로이터 연합
 

남북한과 우크라 전쟁

미국과 나토는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 이후 자국의 탄약과 포탄, 대전차 미사일 등의 생산량을 늘려 왔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고부가가치 첨단무기 생산으로 전환한 상태였기 때문에 재래식 무기 공급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미국은 펜실베이니아 스크랜턴의 포탄 생산라인을 늘렸지만, 막대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왔다. 미국과 나토 회원국의 방산업체들은 그렇다고 재래식 무기 생산 설비를 대폭 늘리지도 못하는 처지다. 우크라 전쟁이 끝나면 다시 쓸모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국제협약을 위반하면서까지 집속탄 공급에 이어 열화우라늄탄까지 제공하고 있겠나.

미국과 유럽을 합한 것보다 많은 생산능력을 갖고 있는 한국산 포탄에 눈독 들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포탄의 국제정치학에는 남북한과 미국, 러시아가 모두 포함된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전쟁 첫해인 2022년 11월 2일, "북한이 상당량의 포탄을 러시아에 제공했다는 정보가 있다"라면서 "중동 또는 북아프리카에 보내는 방식으로 목적지를 숨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작년 9월부터 북한이 러시아에 122㎜ 포탄과 미사일을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무관치 않다. 미 중앙정보국(CIA)과 한국 국가정보원은 러시아 함정의 북한 항구 기항, 적재된 컨테이너 등의 위성사진을 증거로 내놓으며 북-러 간 포탄 거래를 주장해 왔다. 펜타곤은 같은 해 9월 5일 북한의 포탄 공급을 주장, 여론을 조성해 놓은 뒤 바로 다음 날 우크라에 10억 달러 상당의 열화우라늄탄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잠깐만 뜯어보면 속이 빤히 보이는 '언론 플레이'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크렘링궁에서 진행한 기자 회견에서 발언 도중 조용히 해달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2022. 12. 22 [AP=연합뉴스 자료사진] 푸틴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린 안제이 두다 폴라늗 대통령 국빈 방한 공식 환영식에서 함께 국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방산 수출이 미래 먹거리라고 주장해 온 윤석열 정부에 최대 방산 수입국의 하나인 폴란드는 중요한 협력 파트너다. 2024.10.24. 연합
 

나토가 말하는 방산 협력의 정체는?

전쟁이 장기화하자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 내에 재래식 무기 생산공장을 건설해 자체 수급토록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우크라에 일자리를 공급, 경제회복에 도움을 주는 동시에 서방의 골칫거리였던 재래식 무기, 포탄의 수급 문제를 해결하는 일석이조의 방안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의 '버티며 건설하기(hold & build)' 전략에도 부합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은 작년 9월 워싱턴 회담에서 "우크라와 모든 파트너국을 강화할 새로운 방위산업 생태계를 만들 것"에 합의했다.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도 우크라를 '유럽의 무기고'로 만드는 것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우크라에 직접 재래식 무기 생산라인을 깐다면 '횡재'가 아닐 수 없다. 바로 뤼터 총장이 윤 대통령에게 전달한 한국-우크라-나토의 방위산업 3각 협력의 요체다.

미국과 나토가 여전히 러시아 이동 북한 특수부대의 우크라 전쟁 참전 의도를 확인도 하기 전에 '행복한 상상'을 하게 된 건 전적으로 한국 정부의 적극적 의지 덕분이다. 한국이 살상무기를 직접 공급하고, 방위산업 3각 협력을 한다면, 북한군의 참전과 무관하게 우크라 무기 공급의 고민이 해결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으로선 "방산 수출을 늘렸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할 것이 분명한 사안. 그러나 우크라 살상무기 공급은 타산으로만 접근할 사안이 절대 아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크렘링궁에서 진행한 기자 회견에서 발언 도중 조용히 해달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2022. 12. 22 [AP=연합]
 

미국과 나토에 행복은 우리에게 단순히 불행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우크라 전쟁의 불길이 한반도로 날아오는 파국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국산 포탄의 미국 수출이 확인된 2022년 10월 27일 모스크바 발다이 국제회의 석상에서 "한국이 우크라에 무기나 포탄을 제공하면, 한러 관계는 파탄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작년 7월 우크라 방문 두 달 뒤 북러 보스토치니 정상회담이 열렸다. 무기 수출 및 방산 협력으로 푼돈을 챙길는지 모르지만, 섶을 지고 불길에 뛰어드는 행위다.     < 민들레 김진호 기자 >

각본‧연출 바이든, 주연 배우는 한국 윤석열
무기‧병력 지원 먼저 정하고 분위기 조성

러시아 "허위, 과장 정보…한국 반응 당혹"
살상 무기 주면 "가시적이고 가혹한 대응"

김용현 국방장관 "총알받이 용병에 불과"
예비역 준장 "북한 파병하면 한국 안보 더 안전"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살상 무기와 필요하다면 한국군 파병 지원의 명분을 쌓기 위한 윤석열 정부의 빌드업 작업이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18일 국가정보원이 '음지'에서 활동해야 할 정보 부처답지 않게 '북한군 파병'을 공개 발표한 것을 계기로 대대적인 대내‧외 여론몰이 중이다.

 

 21일 강원 철원군 문혜리 훈련장에서 호국훈련의 일환으로 열린 실사격 훈련에서 육군 8사단의 K9A1자주포가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이날 훈련은 남한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수기사단(공격부대·청군)과 8기동사단(방어부대·황군)이 본격적인 교전에 돌입하기 전 포병화력으로 상대의 전투력을 최대한 파괴 및 저하시키고자 포병사격을 전투상황과 연계해 진행했다. 2024.10.21 연합
 

우크라에 살상 무기 주려는 치밀한 빌드업

'북한 파병' 발표 이후 대대적인 여론몰이

국정원의 18일 발표 핵심은 △ 북한이 특수작전부대인 11군단(폭풍군단) 소속 4개 여단 병력 1만2000명을 러시아에 파병하기로 했고 1차로 1500명이 러시아 연해주의 군부대들에 분산돼 적응훈련 중이다 △ 북한이 지금까지 컨테이너 1만3000개 이상 분량의 포탄·미사일·대전차로켓 등 인명 살상 무기를 러시아에 지원했다는 두 가지다.

이 발표를 사실로 단정한 곳은 한국과 우크라이나 둘뿐이었고, 닷새가 더 지난 23일에야 그동안 "확인되지 않았다"고 거리를 두던 미국의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이 "북한이 병력을 러시아에 보낸 증거가 있다. 그러나 병력 배치 목적은 아직 분명치 않다"고 처음으로 공식 확인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다. 오스틴 장관의 확인 이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도 "동맹국들이 북한의 러시아군 파병 증거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22일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6000명씩, 2개 여단의 북한군이 훈련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조태용 국정원장은 23일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서 △ 지금까지 러시아로 이동한 북한 병력이 3000여 명이며 12월경 총 1만여 명에 이를 것이다 △ 전투 현장에는 없고 러시아 내 다수 훈련시설에서 분산돼 현지 적응 중이다 △ 북한군 파병 대가가 1인당 월 2000달러 수준이다 △ 북한 내에 파병 소문이 유포돼 '선발 군인 가족이 오열해 얼굴이 상했다'는 말도 회자된다 등의 추가적 내용을 공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광화문광장 관람 무대에서 건군 76주년 국군의날 시가행진을 지켜보던 중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2024.10.1 연합
 

김용현 국방장관 "총알받이 용병에 불과"

북한 특수작전부대란 국정원 발표와 대조

24일에는 대통령 경호처장을 지낸 실세 김용현 국방부 장관도 가세했다.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북한은 러시아 군복으로 위장하고 러시아군 통제하에 아무런 작전 권한도 없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며 "총알받이 용병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김정은(국무위원장)이 자기 인민군을 불법 침략 전쟁에 팔아넘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군 파병' 이슈를 어떻게든 크게 키우고자 애쓰는 모양새다. 북한군 파병 대가가 1인당 월 2000달러 수준이라거나 북한의 '선발 군인 가족이 오열해 얼굴이 상했다'는 말이 회자된다거나 하는 세밀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휴민트'(인적 정보)를 통해 획득한 것일 텐데 국정원이 휴민트의 정체 탄로를 감수하면서까지 공개하고 나선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윤 정부는 국정원의 첫 발표 당일인 18일 기다렸다는 듯이 대통령 주재의 긴급 안보회의를 열어 '북한군 파병'이 국제사회는 물론 '한국'에 중대한 안보 위협"이라고 규정한 데 이어, 22일에는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주재의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북한군의 즉각 철수를 촉구하고 러·북 군사 협력 진전 추이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방어용에 이어 공격용 무기도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2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공식 제기함으로써 국제사회로 전파하는 데도 주력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 달만에 포병학교를 다시 찾아 실탄사격훈련을 지도했다.김 위원장이 오진우 포병종합군관학교 제75기 졸업생들의 포실탄사격훈련을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6일 보도했다. 2024.10.6 연합
 

무기‧병력 지원 먼저 정하고 분위기 조성

각본‧연출 바이든, 주연 배우 한국 윤석열

한국의 안보 상황과 직접적 연관성이 없고, 사실이라더라도 북한의 전력이 그만큼 약화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안보 측면에선 오히려 반길 '북한 특수부대의 러시아 파병' 이슈를 두고 맨 앞에 서서 '호들갑'을 떤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안보와 관련된 이 사안을 억지로 '한국 안보 위협'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윤 정부의 일사분란한 움직임을 보면 북한군 파병 문제 때문에 윤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제공이나 파병을 검토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일 공산이 더 크다. 다시 말해 사전에 살상 무기 제공이나 파병을 이미 결정해놓고 '북한군 파병' 이슈를 키워 한국민의 비판 여론을 잠재우려는 시도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 분석이 진실에 더 가깝다면 당연히 미국이 배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닷새가 더 지나서야 뒤늦게 '일부 사실'을 확인하는 등 적당히 거리를 두고 뜸을 들인 것은 각본과 연출의 주체가 미국이고 윤 정부는 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숨기고자 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23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 리셉션에서 글래스를 부딪히고 있다. 2024. 10. 23 [AP=연합]
 

러시아 "허위, 과장 정보…한국 반응 당혹"

살상 무기 주면 "가시적이고 가혹한 대응"

이에 러시아 외무부는 사실상 첫 공식 답변을 내놨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마리야 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은 23일 브리핑에서 북한군 파병 보도를 "허위, 과장 정보"라며 일축했다. 이어 국정원이 왜 북한군 파병 발표로 소란을 일으켰는지 의문이라며 "추적해보면 우크라이나의 영문 매체에서 첫 메시지가 등장한 이후 한국 정보당국이 이를 포착했다"고 말했다.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사실을 확인했다는 지적엔 즉답을 피한 채 "그들(북한군)이 어디에 있는지는 평양에 물어보라"라고 덧붙였다.

특히 자하로바는 한국의 북한군 파병 발표와 대응책에 대해 "한국 정부의 반응이 당혹스럽다. 한국 정부는 '테러 정권'인 우크라이나 정권에 놀아나면 안 된다"면서 한‧러는 서로 다른 정치적·지정학적 견해를 가졌지만 경제·인도주의 분야에서 서로 교류‧협력한 훌륭한 경험을 쌓았다면서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협력은 한국에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는다"고 거듭 주장했다.

자하로바는 공격용 살상 무기까지 포함한 단계적 우크라이나 지원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라는 윤 정부의 발표에 대해 "러시아는 우리 국가와 국민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모든 조치에 가혹하게 대응할 것이며 이러한 조치는 가시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한국이 우크라이나 분쟁에 참여했을 때 한국 안보에 발생할 수 있는 결과를 생각해야 한다"며 "한국 당국이 신중하고 상식적으로 판단하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윤 정부가 살상 무기 제공이나 파병에 나설 경우 러시아가 북한에 △ 핵무기 완성도 제고와 △ 전략 미사일 고도화 △ 노후 재래식 무기 현대화 등에 도움을 줌으로써 한국의 안보에 직접적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이 20일 백악관 웨스트윙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24 09. 20 [로이터=연합]
 

북한군 파병, 한국 안보와 직접 연관 없어

한설 "북한 파병하면 한국 안보 더 안전"

정부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방독면과 의약품 등 비살상용 군수물자를 지원해왔지만 살상 무기 제공은 유보해왔다. 우리 군은 155㎜ 포탄 55만 발을 미국을 통해 우회적으로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공식으로 확인된 적은 없다. 윤 정부는 지난 6월 19일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통해 북‧러가 사실상 군사동맹 관계를 맺자 당시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국방부 정책기획관실 총괄을 지낸 한설 전 장군(예비역 준장)은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국정원의 정보 발표, 윤석열의 안보회의 소집과 우크라이나에 군대 및 무기 지원이라는 것이 이미 사전에 기획되어 움직였다는 매우 합리적인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며 "최근 미국과 나토의 행동을 보면서...윤석열 정권이 군대와 무기를 우크라이나로 보내기 위한 준비 작업의 일환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왜 윤석열은 이런 각본에 따라 움직였을까?"라고 반문한 뒤 국내 정치적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미국과 일본의 정치적 지원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특히 한 전 장군은 "북한이 우크라이나에 파병하는 것은 한국의 안보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히려 한국의 안보는 더 안전해진다"며 "북한이 우크라이나에 파병하고 있는 동안 남한에 도발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우크라이나 전황이 러시아에 매우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고 러시아의 병력도 부족하지 않아 "러시아가 북한군을 전투 현장에 배치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 민들레 이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