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동남아에 희망의 빛 밝히는 K-민주주의

● COREA 2025. 7. 29. 13:4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권위주의가 일으키는 전쟁, 민주주의로 막아야

 

                                                                         김종대 국방 전문가. 전 국회의원

 

2025년, 아시아는 다시 분쟁의 불길에 휩싸였다. 중화기 포격, 전투기 공습, 수만 명의 난민.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고지에서, 총성이 울리고 피난 행렬이 이어졌다. 이는 단순한 국경선 분쟁이 아니다. 식민지 시절 제국주의가 남긴 불완전한 경계는 이미 한 세기 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런데 왜 지금, 이토록 격렬한 충돌이 재발하고 있는가? 그 핵심에는 무너진 민주주의, 부활한 권위주의, 그리고 균열된 아시아‑태평양 질서가 있다. 이 분쟁들은 단순한 국지전이 아닌, 거대한 정치 질서의 재편을 알리는 경고음이기도 하다.

 

국경에서 대포 쏘며 자기 권력 강화하는 권위주의 정치세력

 

2025년 4월, 인도와 파키스탄은 카슈미르에서 대규모 포격전을 벌였다. 인도는 공습으로 보복했고, 파키스탄은 전차와 특수부대를 투입했다. 군사 충돌의 외피를 두르고 있었지만, 그 정치적 배경은 더욱 깊고 어두웠다. 인도에서는 극우 민족주의가 선거를 앞두고 기세를 올렸고, 나렌드라 모디 정부는 야당과 언론을 탄압하며 ‘국민통합’이라는 미명 아래 표현의 자유와 민주적 견제를 무력화시켰다. 디지털 검열과 미디어 통제는 일상이 되었고, 소수자와 반대 의견은 배척되었다.

 

반면 파키스탄은 외형적으로 민간정부 체제를 유지했지만, 실제 권력은 군부로 이동해 있었다. 국가안보위원회(NSC)라는 이름의 틀 속에서, 실질적 결정은 육군참모총장이 주도하고 있었고, 총리는 형식적인 존재로 전락했다. 카슈미르 무력 충돌은 단순한 방어가 아닌, 군부의 위상 강화와 국내 정치 질서 개편을 겨냥한 의도된 시나리오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적 단결을 유도하고, 권위주의적 통치 기반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쟁이 선택된 것이다.

 

7월 28일 타이 국경지대에 설치된 피난센터에서 대파자들이 공연을 보면서 웃고 있다. 타이와 캄보디아 지도자들은 이날 무조건 휴전에 합의했다. 이에 앞서 닷새동안 정글로 뒤덮인 국경전투에서 최소 36명이 사망했다. AFP 연합
 

인도와 파키스탄이 카슈미르에서 위기를 겪은지 두 달 뒤인 7월 말. 비슷한 양상이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에서도 재현되었다. 캄보디아의 훈센 전 총리와 태국의 파이통탄 총리 간의 비공식 통화가 유출되며, 외교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다. 이 유출은 단순한 외교 실수가 아니라, 정보전과 여론전이 동반된 정치적 도발이었다. 태국에서는 통화 내용이 군부 비판으로 해석되며 파이통탄 총리는 직무 정지 상태에 놓였고, 보수 진영은 이를 정치적 숙청의 기회로 활용했다. 캄보디아 측은 군복을 입은 권력자들이 전면 에 등장하면서 위기 상황을 군 중심 체제로 끌고 갔다.

 

훈센 일가는 장남 훈 마넷에게 권력을 이양한 데 그치지 않고, 차남 훈 마니트와 훈 매니 등 형제들이 군과 정보기관, 내각 요직을 장악함으로써 일가 통치 체제를 구축했다. 그 결과 외교는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전락했고, 국경 분쟁은 정권 안정용 무대로 재구성되었다. 이들 국가는 모두 권위주의적 체제와 군사 중심 정치가 결합된 구조 속에서, 외부 충돌을 내부 권력 통제의 방편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지 분쟁 아닌 동아시아 전체 시스템의 붕괴 현상

 

이처럼 인도‑파키스탄, 태국‑캄보디아 분쟁은 국경 문제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권위주의 정치의 내면이 밖으로 터져나온 결과물이다. 군부의 정치 개입, 세습 권력의 확산, 언론과 야당에 대한 조직적 탄압은 각국에서 민주주의의 최소 조건마저 붕괴시키고 있으며, 이는 곧 지역 전체의 안보 질서를 해체하는 동인이 되고 있다. 그런데 동남아 국가들 중에는 아직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브루나이, 필리핀, 말레이사아 등 동남아 국가들은 아직 불안한 민주주의 기초 위에 있다.

 

그렇다면 다음 분쟁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알 수 없는 형국이다. 분쟁은 더 이상 국지적 충돌이 아닌, 시스템 자체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민족주의는 이 모든 과정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으며, 전쟁은 오히려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어버렸다. 그 속에서 민주주의는 가장 먼저 희생된다. 민주주의를 이끌어야 할 민간 정부가 위기에 처하고, 권위주의 권력과 군부가 부상하면서 국내의 불만을 외부로 전가하려는 행태가 바로 분쟁의 확산이 나타난 일차적 배경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1975년 베트남 전쟁의 종결 이후, 동남아시아는 오랜 시간 실용주의와 다자협력의 시대를 유지해왔다. ASEAN의 탄생, ASEM과 EAS의 출범, 경제개발 중심의 외교 전략은 과거 식민 경계와 민족 감정을 봉인한 채, 생존과 번영의 질서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 미국과 중국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이 지역의 안정에 공동 이해를 가졌던 시기였고, 민족주의는 절제된 채 경제와 협력 중심의 외교가 우선되었다. 국경 문제는 봉합되었고, 전쟁은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다자협력 포기하고 분열과 대결 국면 들어간 동남아 국가들

 

그러나 2010년 이후, 이 질서는 눈에 띄게 균열되기 시작했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인공섬을 건설하고, 인도 국경에서 충돌을 유도했으며, 동중국해에서 일본과 무력시위를 벌였다. 미국은 이에 대응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라는 전략을 펼치며 동맹국들과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중국에 대한 경제적 디커플링 정책을 추진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필리핀 민병대 내전, 아프가니스탄 무정부화 등의 사태는 이 지역이 협력보다 충돌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지표였다.

 

이제 아시아는 다자협력의 이상을 상실하고 있다. ASEAN은 미얀마 사태에서 사실상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고, 남중국해 갈등에서는 회원국 간 내부분열을 드러냈다. 경제적 상호의존이 전쟁 억제에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크게 흔들렸다. 역사적 감정과 민족주의는 다시 동원되고 있으며, 각국은 협력보다는 진영 선택과 안보 블록화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분명한 교훈을 제시한다. 민주주의 없는 평화는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부상한다. 2024년 12월, 한국은 헌정 사상 최대의 정치적 위기였던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경험했다. 당시 일부 정치세력과 군 내부가 결탁하여 계엄령을 통해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려 했고, 야당 인사, 언론, 시민사회는 그 표적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무너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었고, 언론은 침묵하지 않았으며, 사법부와 입법부는 헌법적 절차를 통해 이를 저지했다. 민주주의는 위기 앞에서도 스스로를 복원해냈고, 헌법의 방어력이 증명되었다.

 

내란 극복한 한국의 경험은 퍼지고 나누어져야 한다

 

한국이 자칫 군국주의 국가로 회귀할 뻔한 이 사건은 단지 국내 정치의 위기 극복을 넘어, 아시아 전체에 던지는 메시지다. 민주주의는 취약하지만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위기 속에서 더욱 단단해질 수 있으며, 그 중심에는 시민이 존재한다. 오늘날 아시아의 민주주의는 수세에 몰려 있다. 권위주의가 전쟁을 낳고, 전쟁이 다시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은 새로운 역할을 요청받는다.

 

그것은 단지 전쟁 억제의 군사력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화를 수출하고 제도를 공유하며 시민의식을 확산시키는 역할이다. 민주주의는 결코 군사적으로 수출될 수는 없지만, 경험과 사례, 제도와 문화로는 확산될 수 있다. 한국의 경험은 단지 한 나라의 정치적 성공이 아니라, 이 지역에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실증적 증거다. 아시아의 미래는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한국은 이제 아시아의 희망이자 이정표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통해 위기를 이겨냈다면, 이제는 그것을 나누고 확산시켜야 할 때다. 한국은 민주주의의 발화점이 되어야 한다. 다시 그려질 아시아의 지도에는 전쟁의 선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선이 그어져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책무이고, 시대의 요청이다.                    < 김종대  국방전문가, 전 국회의원 >

 
 

[논평] 새정부 출범 55일 만에 나온 공식 북한반응

'적대적인 국가관계'에서 '국가 대 국가' 관계로 변화
대북 확성기방송·전단 살포 중단 등 '성의 있는 노력'

"한국 주민의 북 개별 관광, APEC 초청은 헛된 망상"
"동맹 맹신도 마찬가지"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 예상

 

"대조선 확성기방송 중단, 삐라 살포 중지, 개별적 한국인들의 조선 관광 허용…. 리재명 정부가 우리와의 관계 개선의 희망을 갖고 집권 직후부터 나름대로 기울이고 있는 '성의 있는 노력'의 세부들이다. 신임 통일부 장관 정동영은 실종된 평화의 복귀와 무너진 남북관계의 복원을 운운하면서 강대강의 시간을 끝내고 선대선, 화해와 협력의 시간을 열어갈 것을 제안하였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 수뇌자회의(APEC 정상회의)에 그 누구를 초청할 가능성까지 점쳐보며 헛된 망상을 키우고 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24일 담화에서 "(한국) 국민들은 윤석열 저 천치바보들이 들어앉아 자꾸만 위태로운 상황을 만들어가는 '정권'을 왜 그대로 보고만 있는지 모를 일이다"라며 "그래도 문재인이 앉아 해먹을 때에는 적어도 서울이 우리의 과녁은 아니였다"라고 말했다. 사진은 그가 2022년 8월 10일 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2022.11.24. 조선중앙TV 화면 연합
 

이재명 정부 출범 55일 만에 북한의 첫 공식 반응이 나왔다. 28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의 담화를 통해서다. 북한 주장의 요지는 '조·한 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담화문 제목에 함축돼 있다.

 

남북관계를 동족이 아닌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규정한 것은 종래 입장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2023년 말 당 중앙위 전체회의 이후 강조해 온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완전한 두 교전국 관계'와는 뉘앙스를 달리한다. '적대적' '교전국'이라는 표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남측 지도자에 대한 모욕적인 표현도 거뒀다. 나쁘지 않은 시그널이다. 

 

김여정은 누가 한국 대통령에 당선되든, 어떤 정책이 수립되든 개의치 않았고, 지금껏 그에 대한 평가 자체를 일체 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새 정부의 잇따른 대북 긴장완화 조치는 '한국이 스스로 초래한 문제거리'이기에 "평가받을 만한 일이 못 된다"고 못박았다. "이제 와서 감상적인 말 몇 마디로 뒤집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면 '오산'이라는 것.

 

담화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성의 있는 노력'과 지난 25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취임사에 대한 반응이었다. 정 장관이 '화해와 협력, 평화와 공존'을 제안한 것에 대해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한국은 절대로 화해와 협력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게 (자신들이 도달한) 역사적 결론"이라고 되받았다. 정 장관의 '통일부 정상화' 계획에 대해서도 "해체돼야 할 통일부의 정상화를 시대적 과제로 내세운 것을 보아도 확실히 흡수통일의 망령에 정신적 포로가 된 한국 정객의 본색을 확인할 수 있다"고 통박했다. 통일부가 없어져야 할 조직이라는 말은 "국가 대 국가관계가 영구 고착된 현실"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논리에서다.

 

박태성 북한 내각 총리를 비롯한 당과 정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무력기관 간부들이 27일 조국해방전쟁승리(정전협정 기념일) 72주년을 맞아 신미리 애열사릉을 방문하고 있다. 2025.7.28. 조선중앙통신 연합
 

김여정 담화가 정 장관이 취임사에서 밝힌 포부에 찬물을 끼얹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정 장관은△한반도 평화 특사의 역할 △개성 평화도시 재건 △금강산 가는 길 연결 △통일부 교류협력국, 남북회담본부 복원 등을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의 첫 반응을 두고 이재명 정부가 좌절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되레 "적대적인 관계에서 '적대적'이라는 표현이라도 거둬내야 한다"라는 1차 목표가 달성됐음을 확인하게 됐다. 이종석 국가정보원장을 비롯해 윤석열 정부하에서 남북관계 악화를 우려해 온 이들이 가장 중점을 두었던 대목이다. '자유의 북진'과 같이 북한에 대해 먼저 공세적, 적대적 메시지를 내보내지 않겠다는 것 역시 이재명 정부의 방침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부터 현상변경을 겨냥한 담대한 대북 구상을 내놓지 않았다. 대북(평화번영)-외교(실용외교)-국방(스마트강국)으로 순위를 배치한 2022년 공약과 달리 이번엔 국방개혁(내란극복)-외교·대북(경제안보와 한반도 평화)-방위산업 순이었다. '종전선언'과 '한반도 평화경제체제'를 없애고, '평화협정'도 핵협상 진전에 따른다고 조건화 했다. (조성렬 북한대학원대학 초빙교수)

 

북한은 당이 지배하는 국가다. 조선노동당의 '당적 지도'로 국가적인 방향을 설정한다. 현재의 대남 관계 규정부터가 2023년 12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결정한 것. 내년 초로 예상되는 제9기 당대회 전까지 노선 수정은 쉽지 않다. 그때까지 남북관계의 적대성을 덜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를 지난 17일 만나 "두 나라 간 조약의 범위 내에서 협조할 내용을 확정하고 관련 계획을 수락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8일 보도했다. 2025.6.18 연합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작년 1월 16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80년 남북관계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통일' '화해' '동적' 개념을 제거하겠다고 다짐하고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 담긴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을 철거하고 경의선·동해선 도로·철로도 끊었다. 군사분계선에서는 남쪽을 향해 대전차방벽을 구축했다. 김여정의 담화 역시 대남 도발 의지를 내보이기는커녕 한미동맹에 대한 맹신과 북한과의 대결 기도가 이재명 정부하에서도 확인되고 있다고 짚었다. "미구에 대규모 (한미) 합동군사연습의 연속적인 강행으로 (한반도 안팎에) 초연이 걷힐 날이 없을 것이며 미·한'은 정세악화의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하려 획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여정 담화에 대한 우리 정부의 반응은 간단명료했다. 대통령실은 "지난 몇 년간의 적대, 대결 정책으로 인해 남북 간 불신의 벽이 매우 높다는 걸 확인했다"라면서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 정착은 이재명 정부의 확고한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이번 담화는 북한 당국이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면서 "북한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한반도 평화 공존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일관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이 서로에 대해 적대적이고, 대결적인 언어를 걷어낸 것은 나쁘지 않은 조짐이다.                                          < 김진호 기자 >

 

김여정 “조미 정상 관계 나쁘지 않아…비핵화 전제 만남은 우롱”

백악관 “김정은과 대화” 언급 뒤
김 부부장 조선중앙통신에 담화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조선중앙통신 연합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조미수뇌(북-미 정상)들 사이의 개인적 관계가 비핵화 실현 목적과 한 선상에 놓이게 된다면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우롱”이라고 말했다.

 

김여정 부부장은 29일 조선중앙통신으로 공개한 ‘담화’에서 “최근 미 백악관 당국자가 조선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조선 영도자와의 대화에 열려 있다고 밝혔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김 부부장의 담화는 대외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으로 발표하고, 일반 인민도 읽을 수 있는 노동신문에는 실리지 않았다.

 

김 부부장은 “조선인민의 총의에 의하여 최고법으로 고착된 우리 국가의 핵보유국 지위를 부정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철저히 배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2023년 9월 개정 헌법 58조에 “책임적인 핵보유국”으로서 “핵무기 발전을 고도화한다”는 문장을 명문화했다.

김 부부장은 북한의 “불가역적인 핵보유국 지위”와 “근본적으로 달라진 지정학적 환경”에 대한 “인정은 앞으로의 모든 것을 예측하고 사고해보는 데서 전제로 되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김 부부장은 “나는 우리 국가수반과 현 미국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2919년 세 차례 만나고 27통의 친서를 주고받는 등 각별한 관계를 맺은 ‘과거’를 상기시키는 문장이다.

 

다만 김 부부장은 “지금 2025년은 2018년이나 2019년이 아니다”라며 “미국이 변화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실패한 과거에만 집착한다면 조미 사이의 만남은 미국측의 ‘희망’으로만 남아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핵화’를 전제로 한 협상에는 응할 생각이 없지만, 북한의 ‘핵무장’을 인정한 대화는 하고 싶다는 신호이다.            < 이제훈 기자 >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인식 연장선
“이재명 집권 50일, 선임자와 다를 바 없어”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조선중앙통신 연합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한국과 마주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공식 입장을 다시금 명백히 밝힌다”고 28일 밝혔다. 지난 6월4일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54일 만에 나온 북쪽의 첫 공개·공식 반응이다. 일단은 부정적이다.

 

김여정 부부장은 조선중앙통신으로 발표한 ‘담화’에서 “리재명 정부가 아무리 동족 흉내를 피우며 온갖 정의로운 일을 다하는 것처럼 수선을 떨어도 한국에 대한 우리 국가의 대적 인식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으며 조한관계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역사의 시계초점은 되돌릴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 부부장은 “조한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이미 완전히 되돌릴 수 없게 벗어났다”고 덧붙였다. 김 부부장의 담화는 대외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만 실리고, 일반 인민이 접할 수 있는 노동신문에는 실리지 않았다.

 

이는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의 “북남관계는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2024년 12월 노동당 중앙위 8기9차 전원회의)라는 인식의 재확인이다. 아울러 북쪽은 김정은 총비서의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버려야 한다”라는 지침(2024년 1월15일 최고인민회의 14기10차 회의) 이후 민족 관계를 염두에 둔 기존의 ‘북남관계’라는 표현 대신 두 국가 관계를 뜻하는 “조한관계”(조선-한국 관계)라는 개념을 쓰기 시작했는데, 김 부부장의 담화도 ‘조한관계’를 쓰고 있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남북관계가 ‘적대적 두 국가관계’라는 원론의 재확인을 넘어 이재명 정부가 ‘흡수통일’과 ‘대결 기도’를 버리지 않고 있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25일 취임사에서 “통일부 정상화”를 강조한 사실을 겨냥해선 “확실히 흡수통일이라는 망령에 정신적으로 포로된 한국 정객의 본색은 절대로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고 폄훼했다. 정 장관의 “통일부 정상화”는 윤석열 정부 시기 통일부의 교류협력과 회담 담당 조직의 사실상 해체와 81명 인력 감축을 지적하며 이의 원상 복구 의지를 강조한 것인데, 김 부부장은 ‘통일’이라는 단어를 겨냥해 문제삼은 것이다. 김 부부장은 통일부를 “조선반도에 국가 대 국가 간 관계가 영구고착된 현실과 더불어 해체돼야 할 통일부”라고 주장했다.

 

김 부부장은 아울러 “리재명의 집권 50여일만 조명해보더라도 앞에서는 조선반도 긴장완화요 조한관계 개선이요 하는 귀맛좋은 장설을 늘어놓았지만, 한미동맹에 대한 맹신과 우리와의 대결기도는 선임자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세상이 목격하게 될 일이지만 또다시 우리의 남쪽 국경 너머에서는 침략적 성격의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의 연속적인 강행으로 초연이 걷힐 날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부부장이 한-미 연합군사연습을 특정해 문제삼은 대목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만 김 부부장은 “대조선 확성기 방송 중단, 삐라 살포 중지, 개별적 한국인들의 조선 관광 허용” 등을 일일이 거론하며 “한국이 리재명 정부가 집권 직후부터 나름대로 기울이고 있는 ‘성의있는 노력’의 세부들”이라 묘사했다. 이어 “신임 통일부 장관 정동영”은 (25일 취임사를 통해) “무너진 남북관계의 복원을 운운하며 강대강의 시간을 끝내고 선대선, 화해와 협력의 시간을 열어갈 것을 제안했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정부가 지난 6월4일 출범 이후 취해온 대북 조처들을 간접인용부호를 달아 자기 생각은 아님을 강조하는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성의있는 노력’이라 표현한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부부장은 이재명 정부의 이러한 조처들을 “진작에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을 가역적으로 되돌려 세운데 불과한 것”이라며 “평가받을만한 일이 못된다”고 낮춰 평가했다. 나쁘지는 않은데 ‘후한 점수’를 줄 일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김 부부장은 이어 “지난 시기 일방적으로 우리 국가를 주적으로 선포하고 극단의 대결 분위기를 고취해오던 한국이 이제 와서 자초한 모든 결과를 감상적인 말 몇마디로 뒤집을 수 있다고 기대하였다면 그 이상 엄청난 오산을 없을 것”이라 주장했다. 신뢰 회복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는 문장이다.

 

김 부부장은 남쪽 일부 언론에서 오는 10월말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정부가 김정은 총비서를 옵서버 자격으로 초청할 수도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과 관련해 “헛된 망상”이라 일단 선을 그었다.

 

김 부부장이 이재명 정부의 일련의 대북 조처를 두고 “가역적”이자 “감상적인 말 몇마디”라고 낮춰 평가한 대목은, 역설적으로 “불가역적인 중요 행위”에는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여지를 둔 것으로 풀이해볼 수도 있다.                      < 이제훈 기자 >

 

대통령실 “적대·전쟁 없는 한반도 위해 필요한 행동 일관되게 할 것”

김여정 “마주앉을 일 없다” 담화에 입장문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4차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대통령실은 28일 ‘한국과 대화할 의지가 없다’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발언에도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실은 이날 김 부부장의 담화가 공개된 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북 고위 당국자의 첫 대남 대화를 통해 표명된 북측 입장에 대해 유의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대통령실은 이와 관련해 “지난 몇 년 간의 적대·대결 정책으로 인해 남북 간 불신의 벽이 매우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인 평화 정착은 이재명 정부의 확고한 철학”이라며 “적대와 전쟁 없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일관되게 취해 나가고자 한다”고 했다.

 

김여정 부부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으로 발표한 담화에서 “우리는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나오든 흥미가 없으며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다”며 “이재명 정부의 한미동맹에 대한 맹신과 우리와의 대결 기도는 선임자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한 바 있다.  < 고경주 기자 >

 

통일부 “북 반응에 일희일비 않고, 평화 공존 노력 일관되게 추진할 것”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 연합

 

통일부가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없다”는 이재명 정부에 대한 북한의 첫 입장 발표에 대해 28일 “북한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한반도 평화 공존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차분히 일관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에 대해 “북한 당국이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 보여준 것으로 평가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구 대변인은 “지난 몇 년간의 적대 대결 정책으로 인해 남북 간 불신의 벽이 매우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북한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화해와 협력의 남북관계를 만들고 한반도 평화 공존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차분히 일관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부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조·한(남북)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제목의 담화에서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흥미가 없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김 부부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이다.

 

김 부부장은 또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공식 입장을 다시금 명백히 밝힌다”라고 말했다. 2023년 12월부터 취해온 남북 ‘적대적 두 국가’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 부부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이다.  < 곽희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