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제국주의화 '트럼프 미국' 보이콧 호소

세계인에 "미국 여행·유학·취업 재고해달라"
"트럼프 미국에 도움 될 여행비 쓰지 말라"

실제 유럽·중국·캐나다발 여행객 급감
"독재자의 최대 적은 교육된 시민들"

 

"다른 나라에 사는 당신에게 이 글을 보냅니다. 아마 당신도 알다시피, 여기 미국의 우리는 우리 민주주의 역사상 최대의 비상사태에 직면해 있습니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로버트 라이시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골드먼 정책대학원 교수는 20일과 21일 페이스북 글들에서 극소수가 지배하는 '트럼프의 미국'이 파시스트 국가에 가깝게 독재화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전 세계의 시민을 향해 이렇게 말하고 미국 여행·유학·취업 재고 등 보이콧을 호소했다. 올해 78세인 라이시는 빌 클린턴 행정부 때 미 노동부 장관을 지낸 지성인으로 평가받는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 노동부 장관을 지낸 라이시 교수. EPA 연합

 

'트럼프 미국' 보이콧 호소
"여행·유학·취업 다시 생각"

 

라이시는 미국의 현 상황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극소수 패거리가 앞장서서 미국 정부 시스템의 기반을 허물고 있다고 봤다. 라이시는 이들이 "의회의 정부 예산권을 빼앗고, 판사의 결정을 무시하고, 평화적 시위자를 체포하고, 트럼프의 적들을 수사하며, 푸틴과 편 먹고 우크라이나에 맞서고, 극심한 편견을 부추기며, 공포의 씨앗을 널리 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가 20일 특히 취약계층 학생들의 피해가 예상되는 연방 교육부 해체 행정명령에 서명한 데 대한 그의 질타는 더 매서웠다. 라이시는 "교육, 과학, 도서관, 미술관 등 미국인의 마음에 대한 트럼프의 공격은 미국인의 자치(self-government) 능력에 대한 공격이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그건 비효율적이라 믿는 민주주의 체제를 그들이 통제하는 테크놀러지로 가득한 권위주의 체제로 대체하길 바라는 테크노 국가(techno-state)의 극소수 독재자에게서 나온다. 경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 뉴저지로 가기 위해 매릴랜드주 앤드류 공군기지에서 공군 1호기에 탑승하고 있다. 2025. 03. 21 [로이터=연합]

 

"트럼프 깡패, 모두 맞설 때 제압"
유럽·중국·캐나다 미국 여행 급감

 

라이시 교수는 "대다수 깡패와 마찬가지로 트럼프는 당신을 포함해 모든 이가 그의 깡패짓에 맞설 때만 제압된다"면서 미국으로의 여행과 유학, 취업 계획을 다시 생각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당신의 여행비로 왜 트럼프의 미국에 보상을 주는가? 미국에서 외국인이 돈 쓰는 건 상당한 세수 원이며, 미국의 주요 '수출'이다. 당신이 트럼프의 경제를 간접적으로 지원할 아무런 까닭이 없다"고 역설했다. 이어 "트럼프 권위주의를 걱정하는 많은 국제 여행객이 이미 미국 여행을 취소했다. 당신 역시 그렇게 하길 제안한다"라고 덧붙였다.

 

라이시에 따르면, 유럽연합(EU)에 대한 트럼프의 200% 고관세 위협에 맞서 많은 유럽인이 이미 디즈니월드와 미국 음악 페스티벌 여행을 꺼리고 있다. 중국발 여행객도 11% 줄었다. 이제 중국인 여행객은 미국의 국립공원 대신에 호주와 뉴질랜드를 선택하고 있다. '51번째 주'로 만들겠다는 트럼프 발언에 반발한 캐나다 여행객은 미국 대신에 유럽과 멕시코로 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올해 미국 방문 여행객은 최소 5%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유대인 행동가들'이 20일 미국 뉴욕시티에서 팔레스타안 운동가인자 컬럼비아대 대학원 졸업생인 마흐무드 칼릴의 체포, 추방 명령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손팻말들에는 "적법절차를 지지하는 유대인들" "유대인들은 말한다: 우리 이름으로 한 게 아니다"라는 글귀가 씌여 있다. 2025. 03. 20 [로이터=연합]

 

"트럼프 정권, 미국 헌법 유린"
"아무 때, 아무 이유 없이 추방"

 

라이시는 "당신이 학생이나 심지어 고숙련 외국인 시민이 미국에서 살고 일하도록 허가하는 H-1B 비자를 갖고 미국에 오려고 생각한다면, 역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며 "아마도 트럼프 정권이 종식될 때까지 몇 년 기다리길 바란다. 어떤 경우든 당신이 여기 있는 건 완전히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라고 조언했다. 이어 "당신이 민주주의에 마음을 쓴다면 지금은 학생 또는 H-1B 비자를 들고 여기로 올 때가 아니다. 왜냐하면 트럼프 정권은 미국 헌법을 유린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라이시는 "당신은 아무 때나, 어떤 이유 또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추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의 가자 대학살에 대한 항의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추방 명령을 받은 컬럼비아대 대학원 졸업생인 마흐무드 칼릴과 함께, H-1B 비자를 갖고 고국인 레바논을 방문하고 미국에 재입국하려다 추방된 브라운대 신장이식 전문의인 라샤 알라위에 박사, 그리고 전쟁 시기에만 사용했던 '적성국 국민법'(Alien Enemies Act)에 따른 추방 명령을 받은 베네수엘라인들의 최근 사례들을 염두에 둔 것임은 물론이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소수 독재자들과의 투쟁' 집회가 열리고 있다. 2025. 03. 21 [로이터=연합]

 

라이시, 트럼프 미국 독재화 질타
"교육된 시민, 독재자의 최대 적"

 

라이시 교수는 테크노 국가(techno-state)인 파시스트적 '트럼프 미국'을 대표하는 극소수 인물로 대통령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DOGE) 수장,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캐시 파텔 연방수사국(FBI) 국장,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팸 본디 법무장관 등을 거론했다.

라이시는 "독재자들은 교육받은 시민을 자신의 최대 적으로 여긴다. 노예주는 읽는 걸 배우지 못하게 했다. 나치스는 책을 불태웠으며, 독재자들은 미디어를 검열한다. 트럼프가 교육, 과학, 미술관과 예술을 공격하는 것도 그래서다. 우리가 배우지 못하도록 하고자."라고 썼다.  < 이유 기자 >

 

미국 노교수의 '트럼프 스트레스' 대처법 6가지

'윤석열 내란 스트레스' 우리한테도 요긴할 듯

"입만 열면 거짓말, 굳이 분석하지 않는다"
"지금이 정상이라는 정치인, 미디어는 패스"
"현실 타개할 지성의 목소리를 찾아 나선다"

"시민 불복종에 동참하는 젊은이와 소통한다"
현실 부정과 체념은 '노'…불운하다 여기면 불운해져

 

"영겁인 줄 알았는데, 이 비열한 정권은 이제 7주가 됐다...7주 동안 (도널드) 트럼프와 (JD) 밴스, (일론) 머스크는 수백만 명을 해치는, 정말 끔찍한 짓을 벌인 게 현실이다." 시대의 지성인으로 평가받는 로버트 라이시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골드먼 정책대학원 교수는 9일 '자신감 갖기'란 페이스북 글에서 이렇게 개탄하고 "그러나 이 (트럼프) 정권은 희망과 결심을 완전히 없애지 못하고 정반대로, 행동주의에 불을 붙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 노동부 장관을 지낸 라이시 교수. EPA 연합

 

라이시 '트럼프 스트레스' 6가지 대처법 공개

'막장 트럼프 정권'에 현실 부정, 체념은 금기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 노동부 장관을 지낸 라이시 교수(78)는 이 글에서 극도로 비정상적이고 폭력적인 트럼프 시대의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6가지 방안과 2가지 금기를 소개했다.

먼저 금기 사항으로 현실 부정과 체념을 거론했다. 라이시는 "내가 아는 몇몇 사람은 현실 부정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며 "그들은 계속해서 △ 공화당 대 민주당 △ 우파 대 좌파 △ 보수 대 리버럴 등과 같은 익숙한 관점에서 지금의 사태를 정상적인 것으로 여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기를 속이고 있다. 현 사태와 관련해 정상적인 건 없다. 이제 우리는 다른 세계에 있다"고 강조했다.

 

라이시는 "선택은 민주주의냐, 아니면 독재냐이다. (시민의) 자기 통치냐 소수 독재냐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한 편을 선택해야 한다"면서 "선택하지 않는 건 지금의 통제 세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트럼프가 훨씬 더한 독재자가 되고 그의 소수 억만장자 후원자와 절친들이 부와 권력을 빨아가도록 허용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 워싱턴D.C.에서 진행된 비즈니스 라운드데이블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 03. 11 [로이터=연합]

 

"민주주의와 독재 중 반드시 선택해야"

"우리가 불운하다고 여기면 불운해져"

 

라이시는 "그(현실 부정)만큼 위험한 또 다른 대처법은 체념이다. 모든 게 희망이 없다고 믿으면서 냉소주의에 굴복하는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런 패배주의 진영 사람들은 미국의 종말, 문명의 종식, 지구의 죽음 같은 파멸로부터 어떤 것도 우리를 지키지 못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책 읽기도 뉴스 보기도 끊고 행동과는 담을 쌓게 된다.

 

패배주의에 대해 그는 "트럼프, 밴스, 머스크, 그리고 푸틴이 우리가 느꼈으면 하는 바로 그것이다. 냉소주의와 절망은 그들의 더러운 손에 놀아나게 된다"라며 "그건 또한 자기충족적 예언이다. 우리가 불운하다고 여기면 우리는 불운해진다"라고 경고했다.

 

라이시는 '트럼프 스트레스' 대처법 6가지를 제시했다. 12‧3 윤석열의 불법 계엄령 선포 이후 100일 가까이 상식을 지닌 대한민국 국민 거의 전부가 극심한 '내란성' 불면증과 우울증을 겪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상당한 시사점이 있어 주요 부분을 그대로 번역해 소개한다.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생일을 기념하는 '대통령의 날'인 17일  수도 워싱턴D.C. 연방 의회 의사당 앞에서 '나의 대통령날 아니다'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2025. 02. 17 [AFP=연합]

 

[6가지 트럼프 스트레스 대처법]

 

첫째, 나는 트럼프의 발언을 듣는 일을 그만뒀고 심지어 그의 비뚤어진 마음을 분석하려는 시도도 중단했다. 이미 나는 그가 거짓말만 내뱉는다는 걸 알았다. 이제 나는 그의 악성 나르시시즘(자기애)에 익숙해졌다.

 

둘째, 나는 지금의 사태를 정상적인 정당 정치의 한 변형으로 간주하는 정치인, 언론계 인사, 첩보원, 전문가들에게 더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은 식상하고 틀렸다.

 

셋째, 그 대신, 나는 사태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내게 희망을 가질 이유와 당신과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실천적 아이디어를 주는 목소리들을 찾고 있다. 몇몇은 과거로부터의 목소리다. 히틀러와 무솔리니, 스탈린 시절에, 또는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이나 폴 포트의 '킬링 필드' 때 살았던 사람들이다. 일부는 무슨 사태였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자들(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이거나 역사가들(윌리엄 샤이러의 '제3제국의 흥망: 나치 독일의 역사')이다.

 

넷째, 나는 버클리대의 내 학생들과 '불평등 미디어'의 내 동료과 같이 평균 연령이 나보다 반세기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들의 에너지, 유머, 헌신은 내 정신을 계속해서 고양시킨다.

 

다섯째, 나는 나의 친구 관계를 즐기고 사랑하는 이들을 꽉 껴안는다.

 

끝으로, 나는 이런 모든 방안이 당신의 대처를 돕는다는, 당신을 고무해 훨씬 더 행동주의와 저항, 반항, 좋은 말썽, 평화적 시민 불복종에 나서도록 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날마다 이런 편지를 당신에게 쓰고 있다.

 

 11일 서울 종로구 동십자각 인근에서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연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즉각 파면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3.11 연합

 

"악몽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안은 투쟁"

백악관, 지역구 의원 항의 전화 걸기 제안

 

이런 방안들은 시민권과 베트남전 관련 투쟁을 기억하는 우리에게는 친숙한 것들이다. 그것들은 그 당시 그랬듯이 지금 우리가 상황을 헤쳐 나가는 데도 의미가 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지금의 악몽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안 중 하나는 그것과 싸우는 것이다. 자신감을 갖도록 하자. 우리는 이걸 헤쳐 나갈 것이고 그래서 더 강해질 것이다.

 

그다음 라이시 교수는 행동강령도 소개했다. 여기에는 △ 백악관에 계속 전화 걸기 △ 자기 지역구 상‧하원 의원들에게 계속 전화 걸기 △ 다가올 각급 선거에 대비해 조직하고 동원하기 △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 성소수자, 트럼프 자경단으로부터 보호가 필요한 적극적 반트럼프주의자, 우크라이나 난민 등 자기 지역의 취약층 보호하기 등이 담겼다.  < 민들레 이유 기자 >

한중일 외교 회동 앞두고 ‘아사히’와 서면 인터뷰

을사늑약 120년, 한일협정 60년 '돌아온 을사년'
강제동원 피해자들 ‘제3자 변제’ 지지 강변

한일 대륙붕공동개발 실무협의 일본어로 진행
일한의원연맹 전 간사장 “윤 대통령 복귀 기대”

 

조태열 외교부장관. 2024년 12월 18일 외신기자회견 모습.   아사히신문 3월 21일

 

조태열 외교부장관은 21일 <아사히신문>에 실린 서면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국제사회를 놀라게 하고, 한국 외교와 경제에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며 “(그로 인한) 정상외교의 공백에 따른 손실이 큰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비상계엄, 경제와 외교에 악영향

 

조 장관은 22일 도쿄에서 열릴 한중일 외교장관회담을 앞두고 한 <아사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같이 얘기하면서 그나마 국회 결의로 계엄령이 “즉시 해제됐기에 실제 영향은 걱정한 것만큼 크진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탄핵정국이 끝날 때까지는 권한대행체제 아래서 최대한 그 (정상외교) 공백을 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내가 외교 현장에서 느낀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강인함과 회복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와 기대가 우려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이라고도 했다.

 

2024년 5월 27일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에 참석한 기시다 후미오 당시 일본총리(왼쪽부터)와 윤석열 대통령, 리창 중국총리.    아사히신문 3월 21일

 

강제동원 피해자들 ‘제3자 변제’ 지지 강변

 

조 장관은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확정판결 이후 한일 사이에 생긴 ‘부정합’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외교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은 지난한 과제”라며, 한국대법원이 2018년에 (배상하라고) 확정판결한 “‘징용공’(강제동원 피해자) 등 15명 가운데 14명이 배상금 상당액을 받았다”며 “당사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가해기업 등 일본 쪽이 아니라 한국정부 주도 아래 한국기업과 정부가 출연한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지원재단’(행안부 산하) 기금을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조로 지불하는 ‘제3자 변제’ 방식에 의한 편법 처리를 두고 하는 얘기다.

 

이 편법이 피해 당사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조 장관의 발언은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의 가해 기업들이 배상을 거부하고 있는데 대한 법원의 해당기업들 자산(주식 등) 압류 및 처분을 통한 배상 명령 이행을 일본정부가 방해하고 있고, 한국정부 또한 사실상 일본정부 편을 들고 있는 상황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법원 판결에 따른 정상적인 법적 절차를 통해 배상을 받을 수 없게 된 고령의 피해자나 그 유족들이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로 제3자 변제 방식의 한국정부 주도 재단 기금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는 약자일 수밖에 없는 피해자 쪽의 어려운 처지를 악용한 아전인수식 주장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받지 않고 있는 한 사람의 피해자(또는 그 유족들)만 사라지면 문제는 다 해결된다고 보는 것인가.

 

여전히 상응 조치 없는 일본 재확인

 

조 장관은 또 재단이 기업 등으로부터 기부금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재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일본의 ‘성의있는 호응’이 있다면 해결책의 지속 가능성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라며 일본기업 등의 기부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이는 지금까지 한국 내의 격심한 반대에도 일본정부 쪽 요구를 거의 그대로 수용한 윤석열 대통령의 제3자 변제 방식 위로금 지불 강행을 칭찬하면서 마땅히 그에 상응한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얘기해 온 일본 쪽에서 실제로는 아무런 상응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해 주는 말이다. 전 정부 때보다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한일관계 개선은 한국정부의 일방적 양보와 일본 요구의 무조건적 수용 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1991년 1월 당시 한일21세기위원회 스노베 료조 의장(전 주한 일본대사)이 가이후 도시키(오른쪽) 당시 총리에게 보고서를 제출한 뒤 얘기를 나누고있다.   아사히신문  3월 21일

 

한일 대륙붕공동개발 실무협의 일본어로 진행

 

<아사히>는 그 기사에서 1979년에 외교부에 들어간 조 장관이 당시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에 관한 실무협의자의 일원으로 양국 실무회의에 참석했을 때 “회의가 일본어로 진행돼 (회의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서 회의장을 나간(퇴석)” 사실을 거론하면서 “그때 스노베 료조 당시 주한 일본대사가 조 씨를 배려해 말을 걸어 한국어로 얘기해 주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는 조 장관 저서의 일부 내용을 인용한 것으로, 조 장관은 “스노베 대사의 배려와 성심성의의 태도 속에 한일관계가 밝은 미래를 향해 갈 수 있는 열쇠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일본인들이 먼저 과거사로 인한 한국인들의 아픈 마음에 다가가서 손을 내민다면 한국인들은 틀림없이 그 손을 잡고 미래를 향해 더 큰 일보를 내디디게 될 것이다.”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 실무협의가 일본어로 진행됐다면 당시 한국은 주권국가가 아니라 사실상 일본의 한 지역이었다는 얘긴가? 그리고, 거기에 일본어를 모르는 외교부 직원이 한국대표로 참석했다면, 그 협의가 제대로 이뤄졌을까? 스노베 주한 일본대사가 거기에 참석한 일본어도 모르는 한국의 한 실무대표에게 한국말로 설명해줬다는 얘기는 상대국 대표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추후 말썽이 날지도 모를 사태에 대한 응급 수습책이 아니었을까.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 잘못된 일본쪽 추도사 탓

 

조 장관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노역을 당한 사도광산 추도행사에 지난해 한국쪽이 불참하고 따로 행사를 연 것과 관련해 올해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원만히 진행되지 못한 것에 유감을 표시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정부가 (일본정부) 추도식에 불참한 배경에 일본정부 대표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적이 있다는 (잘못된 뉴스로 인한) 오해가 있다고 보는 듯하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일본 쪽 추도사 내용이, 한국이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때 국내의 비판을 무릅쓰고 합의해 준 내용의 수준에 훨씬 못 미쳤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불참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쪽이 주최한 추도식에 한국 쪽이 참석하지 않은 이유가, 추도식에 참석한 일본정부 대표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석했다는 일본 언론의 오보로 인한 한국 쪽의 오해 때문이라는 일본 쪽의 주장이나 보도가 잘못된 것이고, 실상은 일본 쪽이 마련한 추도사 내용이 한국이 요구한 강제동원 사실 명기 등 과거사 반성적 내용을 제대로 담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반발로 참석을 보이콧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본 사도광산 현지 전시장에는 지금도 한국 쪽 요구보다는 오히려 일본 우익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이 주로 전시돼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군함도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일본 우파 월간지 '문예춘추'(분게이슌주) 2025년 4월호에 실린 '윤 대통령을 옹호한다' 특별대담

 

일한의원연맹 전 간사장 “윤 대통령 복귀 기대”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이 과거사와 관련해 이미 수십 번이나 사과했다며, 100년 전의 일로 일본이 무릎을 꿇게 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으나, 일본은 이제까지 근대 이후 일본이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해 단 한 번도 무릎을 꿇은 적이 없다.

 

그런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일본, 특히 우익세력의 ‘사랑’은 각별해서, 그가 비상계엄 발동으로 국회 탄핵 결의 뒤 헌법재판소의 탄핵 및 내란죄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우익 월간지 <분게이슌주>(문예춘추) 4월호에 ‘윤 대통령을 옹호한다’는 제목의 ‘특별 대담’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는데 윤덕민 전 주일 한국대사의 대담 상대인 다케다 료타 전 일한의원연맹 간사장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선거법 위반혐의 1심 유죄판결 등과 관련해 이렇게 얘기한다.

 

“그런 이재명 씨가 윤 대통령을 너무 몰아붙이는 것에 대한 혐오감이 서서히 침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면 탄핵재판 행방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한일관계를 생각하면, 윤 대통령이 (권좌에) 돌아오는 것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우파 주류는 한국 야당이 왜 그렇게 고위직에 대해 탄핵이라는 비상수단을 자주 꺼냈는지, 윤 정권의 실정과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 등 그 원인에 대해서는 눈감아버리는 한국 우익과 같은 사고구조를 갖고 있다. 그들은 윤이 왜 대통령직을 건 비상계엄 발동을 결행했는지 자신들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윤의 대통령직 복귀를 고대하고 있다.

 

을사늑약 120년, 한일협약 60년 을사년

 

올해는 1905년 을사년 11월 17일 일본이 군대를 동원해 제2차 한일협약(을사늑약)을 강제해 사실상 대한제국(한국)을 식민지로 만든 지 120년만의 을사년이다. 그 해에 조선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통감으로 서울에 부임했다.

 

일본 내각총리 가쓰라 다로는 그해 7월 29일 도쿄에 들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미국 전쟁부장관(당시의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뒤를 이어 제27대 대통령이 됨)과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각기 조선과 필리핀에 대한 사실상의 식민지배를 상호보장했다.

 

그 전해인 1904년 8월 22일 일제는 ‘한일 외국인 고문 용빙(초빙)에 관한 협정’(제1차 한일협약)을 강제해 외교 재정권을 박탈했다. 한국의 외교 안건은 일본정부와 협희해서 결정하고 처리해야 한다며, 일본인 1명을 외교고문으로 임명하고, 외국인 1명을 재정고문으로 임명하도록 강제했다. 그 재정고문이 일본 외무성에서 근무한 미국인 더럼 스티븐스였다. 1908년 3월 스티븐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장인환 전명운 의사 총에 사살당하고, 다음해 10월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 총에 사살당한 건 사필귀정이었다.

 

올해는 또 1965년 을사년에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몇 푼의 돈으로 ‘없었던 일’로 치부해 버린 한일협정이 체결(‘한일 국교 정상화’)된 지 60년이 되는 을사년이고, 일본 패전으로 광복이 된 지 80년이 되는 해다.

 

일제가 이 땅을 침범하지 않았다면

 

제1차 세계대전 때 일본은 남태평양의 마셜제도를 점령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일본군을 몰아내고 그곳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1946년부터 1958년까지 그곳 비키니 섬 등에서 수많은 원수폭 실험이 강행됐다. 마셜제도의 모든 원주민들이 피폭자가 됐고, 그들 중 2만여명이 미국으로 이주해 아칸소 주 닭고기 가공공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처참했던 선조들의 피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일본을 원망하고 있다는 얘기를, 최근 미국에서 그들을 만나 보고 온 김찬휘 전 녹색당 대표가 했다. 일본이 마셜제도를 점령하지 않았다면 미국이 그곳을 식민지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고, 미국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미국이 핵무기 실험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들은 얘기했다.

 

같은 얘기를 한국인들도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의 만행은 제쳐 놓고라도) 일본이 20세기 초에 조선을 참략해 강점하지 않았다면, 미국이 한반도를 점령해 북위 38도선으로 양분하지 않았을 것이고, 분단이 되지 않았다면 6.26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1천만 이산가족이 생겨나지도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지도 않았을 것이고, 남북대치도 윤석열 친위쿠데타도 없었을 것이다.

 

근대 이래의 만행에 대한 성찰과 사죄부터

 

조 장관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 게이조의 한일 공동선언(‘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대체할 ‘새로운 선언’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말했다. “‘신 선언’에 대해서는 정상회담 등 고위급 교류와 제휴를 통해 검토될 문제인 만큼, 한국의 정치상황 등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 일본정부와 함께 추진하는 것을 검토하겠다.”

 

‘신 선언’을 하겠다면, 을사늑약 120년, 일제 패망 80년, 한일청구권협정 60년을 맞는 올해 을사년에 일본이 근대 이후 조선과 이웃나라들에 저질러 온 만행에 대한 성찰과 진심어린 반성, 사죄 표명으로 먼저 그 죄과부터 털고 가야 한다. 그 바탕 위에 비로소 동아시아 공동의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단초가 열릴 것이다.   < 민들레 한승동 기자 >

 

이번 주도 흘려보낸 헌재, 24일이면 100일째

26일 선고도 어려울 듯…고3 '학력평가' 시행일

헌재 주저할수록 더 포악해지는 내란 동조 세력
계란 테러에도 "민주당 자작극"…폭력 수위 높여
윤석열, 극렬 지지자 고무‧선동…"뜻 잘 받들겠다"
여당은 헌재 흔들기 효과에 "기각·각하" 기세등등

민주 "국힘 궤변에 끌려다녀…헌재 너무 정치적"
"의도적 지연 의심…더 극악해질 극우 망동 우려"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차량에 장착된 확성기로 대통령 탄핵 촉구 기자회견 참석자들을 향해 지속적으로 욕설을 한 윤석열 대통령 극렬 지지자(오른쪽)에게 한 남성이 항의하자 차에서 내려 강하게 밀치고 있다. 2025.3.21. 연합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내란 수괴가 국회에서 탄핵소추된 지 100일이 넘도록 파면되지 않고 관저에서 요원들의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극우 세력의 난동을 조장하는 이 초현실적 상황은 언제쯤 끝날까.

 

국가적 대혼란의 장기화 속에 시민들은 피가 마르지만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최우선으로 신속하게 심리한다"고 공언했던 헌법재판소는 거꾸로 윤석열 대통령 사건을 가장 마지막까지 미루며 결과적으로 사태를 악화시키고만 있다. 야권과 시민사회는 오늘이라도 윤 대통령 선고기일을 공지해줄 것을 간절히 요청했으나 헌재는 변함없이 침묵을 고수하면서 이번 주도 다 흘려보냈다.

 

오는 24일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이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지 100일째가 되는 날이다. 박근혜 대통령 때의 심리 기간 91일 기록은 진작 깨졌고 이제 세 자릿수로 접어들게 됐다. 그러나 이날엔 한덕수 총리 사건 선고가 잡혀있을 뿐 윤 대통령 선고일은 여전히 '미정'이다. 예상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날짜는 26일인데 이날도 난망해 보인다.

 

시민들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설마 설마' 했지만, 윤 대통령 선고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선고일인 26일보다 더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는 고3 학생들의 첫 번째 수능 모의고사인 '전국연합학력평가'가 26일 시행되기 때문이다. 헌재가 윤 대통령 선고일을 지정하면 중앙고‧덕성여고 등 인근 학교들은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임시 휴교를 하기로 했는데, 26일은 수능 모의고사가 예정돼 있어 휴교가 불가능한 탓에 헌재는 그 이후로 택일을 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면 남는 건 28일이다. 노무현‧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금요일에 선고할 확률이 현재로선 가장 높다. 일각에서는 아예 4월로 넘어가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데,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임기가 4월 18일로 만료되기 때문에 그렇게 촉박하게 윤 대통령 선고일을 잡을 경우 위험 부담이 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극렬 지지자가 경찰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탄핵 촉구 기자회견 참석자들을 향해 욕설을 하고 있다. 2025.3.21. 연합

 

헌재가 이처럼 결단을 못 내리고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에 내란 동조 세력의 언동은 점점 더 포악해지고 있다. 헌재 주변 극우 집회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기자회견 도중 얼굴에 계란을 세게 맞는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민주당 측의 자작극"이라는 패륜적 의혹을 제기했고 윤 대통령의 변호인인 검찰 출신 석동현 변호사도 "명백히 자작극이거나 아니면 99% 유도극"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이들의 망언에 맞장구를 치는 지지자들은 피해자인 백 의원을 향해 입에 담지 못할 극언을 배설하는가 하면, 경찰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민주당 이재정 의원의 허벅지를 걷어차는 등 폭력의 강도를 계속 높여가고 있다.

 

이 같은 '테러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배후에는 물론 윤 대통령이 존재한다. 야당과 헌법재판소 등을 비난한 뒤 '윤석열 대통령 만세'라는 문구가 적힌 유인물을 뿌리고 분신했던 70대 남성이 숨지자 윤 대통령은 빈소에 참모를 보내 "유서를 몇 번이나 읽어봤다. 뜻을 잘 받들겠다"고 전했다. 탄핵 반대를 외치며 단식 투쟁 중인 지지자들에게는 국민의힘 인요한 의원을 통해 "탄핵심판 결과가 중요해도 단식을 멈추고 건강을 회복하라"고 당부했다. 극렬 지지층을 고무시키고 선동하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탄핵심판에 승복하겠다는 의사는 절대 밝히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은 헌재가 윤 대통령보다 한 총리 선고를 먼저 하기로 하면서 화색이 가득한 분위기다. 그동안 헌재를 줄기차게 압박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판단 아래 한 총리 탄핵안이 기각 또는 각하될 게 확실하다고 자신하고 있다. 그에 더해 이재명 대표가 항소심에서 또 징역형을 선고받을 경우 대대적인 파상공세를 벌이며 그 여세를 몰아 윤 대통령 사건도 기각 또는 각하를 받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국민의힘 김기현·나경원·윤상현·박대출 의원 등 30여 명은 21일에도 헌재 앞에서 윤 대통령 탄핵심판의 기각·각하를 촉구하는 '시국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민의힘 윤재옥 의원이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각하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3.21. 연합

 

헌재의 선고 지연이 내란 세력 및 그 잔당의 기를 살려주고 반동을 북돋는 결과를 초래하면서 민주당에서는 헌재를 향한 의구심과 원망이 도처에서 분출하고 있다. 한편으론 헌재의 '의도적 지연'이 윤 대통령 파면을 위한 '빌드업' 과정이 아니겠냐고 기대하면서도 국민의힘에 너무 끌려다니는 모양새에 불안감이 확산되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헌재가 좌고우면하는 것으로 비치고 탄핵 결정이 한없이 늘어지면서 극우 시위가 갈수록 과격해지는 양상을 우려하고 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헌재가 최우선 처리하겠다고 한 윤석열은 선고 일정조차 잡히지 않았는데 한덕수 총리 먼저 선고를 한다니 이를 납득할 국민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윤석열 파면이 늦어질수록 나라와 국민이 입을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이 자명한데, 헌법재판소는 왜 거북이걸음인지 국민께서 묻고 계신다. 오늘 바로 선고기일을 지정하고 가장 빠른 날에 윤석열을 파면함으로써 헌정질서 수호라는 본연의 책무를 다하길 거듭 촉구한다"고 했다.

 

김민석 최고위원도 "원칙이 흔들리니 신뢰가 흔들린다. 한덕수 총리 선고기일 지정으로 '선입선출' 원칙도, 헌재가 스스로 밝혀온 '중요 사건 우선' 원칙도 무너졌다"면서 "다음 주 윤석열 파면 선고를 위한 선행 조치라는 해석도 있지만, 윤석열 파면 선고가 기약 없이 더 늦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또한 커지는 이유는 결국 원칙이 무너진 탓이다. 오죽하면 '헌재가 국힘의 요구를 다 들어주며 끌려가나'라는 지적이 나오겠느냐. 헌재의 파면 선고를 향한 국민의 인내는 이미 한계점을 넘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민주당 여성위원회 주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5.3.21. 연합

 

전현희 최고위원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헌재가 너무 정치적이다. 국민의힘이나 보수 측에서 주장하는 말도 안 되는 궤변에 끌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진행자가 "국민의힘 요구 중 하나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이재명 대표 선거법 위반 사건 2심 판결 뒤에 해야 한다였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돼가고 있다. 헌재가 의도한 것으로 보냐"고 묻자 전 최고위원은 "그런 생각과 불안감이 들고 있다.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라며 "헌재가 국민의힘 요구에 맞춰가는 듯한 상황이다. 그래서 저희는 매우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로 보고 있다"고 했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내란수괴 윤석열 지지자들이 야당 국회의원에게 계란 테러와 폭행을 감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국민의힘이 부추기고 경찰이 방치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되지만,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를 늦추고 있는 헌법재판소에도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지연되고 있는 기간 동안 발생하는 일들에 헌법재판소는 책임이 없는가? 헌법재판관들이 숙고에 숙고를 거듭해 왔겠지만 지금은 '의도적 지연'이라는 의심까지 확산하고 있다. 민주당은 여전히 '윤석열 파면'을 확신하지만 시간이 지연되면서 더 극악해질 극우 망동, 다른 한편 선고 지연을 규탄하는 국민적 분노 표출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 민들레 김호경 기자 >

 

유흥식 추기경 “헌재 더 이상 지체 말라…정의에는 중립이 없다”

 

 
 
지난 2022년 8월27일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에서 거행된 추기경 서임식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흥식 추기경에게 추기경의 상징인 각모를 씌워주고 있다. 바티칸/EPA 연합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이 21일(현지시각)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지체하지 말고 “정의의 판결”을 해달라고 헌법재판소에 호소했다. 그는 “정의에는 중립이 없다”며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내린 이들에 대한 책임을 명백히 밝혀달라고도 했다.

 

연합뉴스의 이날 보도에 따르면 유 추기경은 영상 담화문을 통해 “위기의 대한민국을 위한 갈급한 마음으로 헌재에 호소한다”며 “우리 안에, 저 깊숙이 살아있는 정의와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면 더 이상 (선고를) 지체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고통에는 중립이 없다’고 말씀하셨다”며 “이와 마찬가지로 정의에는 중립이 없다. 우리 헌법이 말하는 정의의 판결을 해달라”고 했다. 유 추기경은 “여러 언론 종사자와 사회 지도층, 종교계로부터 교황의 건강에 대한 우려와 함께 비상계엄 후의 우리나라의 무질서하고 어려운 현실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표명해 줄 것을 요청받았다”며 담화문을 내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연합뉴스는 유 추기경이 법과 양심이 사회의 근본이 돼야 함에도 법을 가볍게 무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특히 사회지도층이 법과 정의를 지키지 않고 있다며 이러한 현실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가 헌재의 선고 지연으로 극도의 혼란과 불안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며 갈등이 깊어지면 공영의 길이 멀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유 추기경이 우리 사회가 조속히 회복될 수 있도록 헌재가 신속히 판단을 내려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내린 이들에 대한 책임을 명백히 밝혀달라고 강력히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유 추기경은 지난 2021년 6월 한국인 성직자로는 최초로 교황청 장관에 발탁됐다. 2022년에는 김수환·정진석·염수정 추기경에 이어 한국인 네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 한겨레 김지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