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몬튼 한인장로교회 9년 시무 마치고 9월 부임, 6일부터 설교 시작

미주 한인예수교장로회(KAPC) 캐나다노회 소속 토론토 중앙장로교회(임시당회장 박항배 목원교회 담임목사: 23 Fasken Dr., Etobicoke. ON. M9W 1K6)의 후임 담임목사에 임재택 목사(에드몬튼 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 사진)가 청빙 결정됐다. 중앙장로교회는 이번 주 913일 창립 48주년 기념주일 감사예배를 드린다.

중앙장로교회는 지난 712일 주일 예배에 임재택 목사를 초청해 설교를 들은 뒤 일주일 만인 19일 주일 공동의회에서 표결에 부쳐 임 목사를 후임 담임목사로 청빙한다는 데 온 성도들이 의견을 모았다. 이로써 201812월부터 시작한 유충식 목사 후임 담임목사 청빙절차가 18개월 만에 마무리 됐다.

캐나다장로교(PCC) 소속 에드몬튼 한인장로교회에서 9년간 담임목사로 시무해 온 임재택 목사는 청빙결정 이후 현지교회 사임과 노회탈회 절차를 마친 뒤 9월부터 중앙장로교회에 부임, 6일 주일 예배 설교를 시작으로 사실상 시무에 들어갔다. 임 목사는 한국의 총신 출신이어서 KAPC 캐나다 노회 가입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여, 오는 14일 열릴 노회 가을 정기회에서 무난히 가입허락과 위임절차가 진행될 전망이다.

임재택 목사는 동국대 철학과와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했으며, 2003년 캐나다에 와 에드몬튼 한인장로교회에서 교육목사로 1년간 사역하다 본 한인교회에 부임해 KM 부목사를 맡았었다. 그 뒤 2011년 전임 사역지인 에드몬튼 한인장로교회의 청빙을 받아 담임목사로 9년간 시무하며 중남미 선교회 회장을 맡는 등 이민목회와 선교사역에 매진해왔다. 본한인교회 부목사 시절에는 청소년 선교회 ‘Jesus Fan Club’을 운영하는 등 청년·문화사역에 열정을 쏟으며 차세대 정체성 확립의 해법을 성경적으로 조명한 책 파워 제네레이션(Power Generation)’을 펴내기도 했다.

임 목사는 말씀중심 신앙생활의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것이 목회소망이라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내다보며 혼자 혹은 가족이 고립된다 해도 흔들림없이 신앙을 지켜갈 수 있는 말씀무장의 믿음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는 소신을 밝혔다. < 문의: 416-798-3731 >


[목회칼럼- 기쁨과 소망] “목사님, 왜 벌써 은퇴하나요?“

임수택 목사 (갈릴리 장로교회 담임)

 요즘 내가 많이 듣는 질문들이 있다. 첫째는 "목사님 왜 벌써 은퇴 하나요?" 하는 질문이다. 주변 교회에 은퇴하는 목회자들을 둘러보면 보통 내 나이보다 더 들어서 은퇴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니까 나를 보면 은퇴하기에 좀 이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위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이렇다. 내가 나이 많아 목회가 힘들어서 은퇴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금년에 환갑을 지낸 내가 젊은 사람은 아니지만 아직도 나는 웬만한 스포츠 종목에서 젊은이들과 겨루어도 밀리지 않는 체력과 기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까운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은퇴를 결심한 것은 선교를 향한 새로운 소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방법으로 선교에 대한 부르심을 분명하게 알려 주셨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렇게 분명한 방법으로 소명하지 않으셨다면 나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담임목회를 좀 더 하다가 은퇴하였을 것이다.

내가 선교사로 니카라과에 가능한 한 살이라도 더 젊고 건강할 때에 가려고 하는 현실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내가 매년 여름마다 니카라과 단기선교단을 구성하여 현지 여러 도시에 가서, 사역을 하고, 돌아 온 경험이 20차례나 있다. 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곳은 기후가 매우 덥고, 생활하는 환경이 여러 면에서 매우 열악하여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땅에서 선교하며 산다는 게 더욱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두 번 째 많이 듣는 질문은 "왜 하필 니카라과 선교사로 가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사실 이민목회지에는 내가 아니어도 목회할 좋은 목사님들이 많이 계시지만 니카라과에는 그렇지 않다. 거기엔 자생적으로 발생한 많은 교회와 교회를 맡은 많은 교역자가 있으나 그들 가운데 다수는 성경을 체계적으로 배운 경험도 없고, 또한 배울 수도 없는 환경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나처럼 신학을 공부한 후 일생동안 성경을 연구하며 가르치고, 설교하며 목회했던 경험자가 찾아가서 도와주어야만 하는 절박함이 있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온 세계에 있는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와 좋은 강의들을 들을 수 있으나 니카라과의 거의 모든 성도들은 인터넷도 안되고, 컴퓨터도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선교사가 직접 찾아가서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필요성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세 번 째로 많이 듣는 질문은 "코로나19 때문에 어떻게 선교하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사실 세계 곳곳의 선교현장에서 선교사로 일하던 분들도 코로나19 때문에 선교를 중단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나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의료시설이 전무하다시피 한 그곳에 들어 갈 수가 없다. 하루 빨리 백신과 치료약이 나와야 한다. 이것은 나카라과 선교와 교회를 위해서 뿐 아니라 캐나다와 한국과 세계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하루빨리 이 팬데믹 전염병 사태가 해결되어야 한다.

바라건대 금년 안에 믿을 만한 백신이 나와 우리 모두가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회복하고, 내년엔 내가 꿈꾸던 니카라과 선교를 할 수 있게 될 것을 소망하며 간절히 기도한다.

< 임수택 목사: 갈릴리장로교회 담임 >

[1500 칼럼] “빼앗긴 계절에 대하여”

● 칼럼 2020. 9. 15. 12:44 Posted by SisaHan

[1500 칼럼] 빼앗긴 계절에 대하여

 장 계 순

 

 지난 8월에는 주말이 다섯 번이나 있었다.

 그 반가운 휴일도 외출다운 외출을 못한 채 지나갔다. 마치 봄이 훌쩍 건너뛴 낯선 세상에서 여름을 맞이했던 것 같다. 분명 그곳에 있었을 텐데, 한창 벚꽃이 만발한 하이파크(High Park)에도 다녀갔을 아지랑이 봄날은 내 기억 어디에도 머물러 있지 않다. 도시의 폐쇄(Lockdown)가 시작된 늦봄, 옅은 잠에서 깨어난 아침이면 이름 모를 우울이 몰려오곤 했다. 생명체도 아닌 COVID19이 창궐하던 계절 한가운데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확진자와 죽어간 사람들의 숫자에만 온통 시선을 빼앗긴 채 멍하니 하루하루를 보냈다. 코로나에 전염된 시체를 거두어 들이는 냉장 트럭이 매일 질주한다는 뉴욕 거리를 상상하노라면 책 읽는 내 머릿속이 어지럽기만 했다. 도무지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계절에 책을 읽은 들 무슨 소용인가, 내 일기장에도 회의에 찬 무력감이 묻어난다.

 처음 우한 폐렴으로 불리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두어 달 만에 세계적 유행병이 된 이후로 오직 세 단어만 무성했다. 거리 두기, 마스크 쓰기, 손 자주 씻기. 어린이 놀이터에서부터 내가 즐겨 찾던 산행길 마저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거의 다 닫혔다. 노마드적인 내게 갈 곳이 없어 졌다. 도심의 공원길을 찾아 나섰다.

 모처럼 맑아진 공기와 새소리 냇물 소리에 갑갑했던 마음을 씻고 돌아오곤 했다. 띄엄띄엄 거리를 두고 경계의 빛으로 걷는 사람들에 비해 밀착한 채로 노니는 오리들이 부럽기조차 했다. 그러나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거리 두기는 아주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전보다 더 자유로워졌다고나 할까. 거리를 두다 보니 내 자신에 집중할 시간도 많아졌다. 그런 만큼 상대방도 더 잘 보였다.

  정상적인 삶이 뒤바뀐 그 계절에서야 비로소 아름다운 슬픔을 발견했다. 코로나에 전염된 엄마를 저세상으로 떠나 보낸 딸의 통곡 소리에도, 병원 중환자실에서 코에 호스를 낀 아버지가 아이패드 화면을 통해 가족들과 만나는 장면에서도 온통 슬픔이 배어 있었다. 서로 부둥켜 안을 수 없는 그 안타까움이 불현듯 아름답게만 여겨졌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그리운 마음은 더 애절했을 거라고, ‘아름다운 슬픔이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일 것이라고그런 경황 가운데서도 나 우선이 아닌, 따뜻하게 내민 손길이 항상 있었다.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 독거 노인들에게 음식을 나르는 젊은이들과 장애인들의 집집을 돌면서 식품을 배달해 주는 숨은 봉사자들사람 사이를 갈라 놓았던 코로나였지만 이 아름다운 모습만은 앗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다. 서로 양보하면서 타인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코로나가 설 곳이 없을 거라는, 마침내 왕관을 벗고 시나브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계절이 올 것이란 믿음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누구나 각자의 생애에서 한 번쯤은 빼앗긴 계절을 경험하는 것 같다. 전쟁터에 불려간 젊은이들,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들로부터 학대받은 원주민이나, 어린 나이에 납치범에게 유괴당해서 유년 시절을 강탈당한 여인에 이르기까지이런 극단적인 예가 아니라도 운명적으로 자신의 계절을 빼앗긴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진리 아닌 진리를 전파하는 거짓 종교에 세뇌 당한 사람들 역시 생애의 중요한 계절을 빼앗긴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나 또한 내 생애 절반을 타인의 시선에 구속당한 나 아닌 나로 살아온 게 아닌가 싶다.

  이러한 처지에 놓인 우리 인간들에게 들려주는 메시지가 있다. 19세기 독일 철학가 니체의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 , <좋든 나쁘든 고난과 역경까지도 받아들이라, 달라진 운명 앞에서 비관이나 증오에 앞서 삶의 주체인를 창조적으로 바꾸라, 고통, 상실 같은 불운을 탓하지 말라, 앞으로 나아갈 책임은 바로 에게 있다>는 개념이다.

이 바이러스로 인해 생계의 위협에 휘말린 사람들, 일상이 허무가 되어버린 계절을 맞은 이들에게 진정한 삶의 태도가 어떠해야 할 지에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비바람이 휘몰아쳤다. 장미 넝쿨 아래 흐트러진 꽃잎에서 여름의 끝을 본다. 

그 어떤 비극적인 일에도 별로 놀라지 않은 시대에 사는 현대인, 백신도 낫게 할 수 없는 정신적으로 시달리는 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amor fati “. 빼앗긴 계절에 연연치 말자. 이것 또한 지나 가리라

< 장 계 순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