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여성 대통령을 보고 싶다

● 칼럼 2012. 9. 3. 19:09 Posted by SisaHan
시간의 흐름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눌 때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단연 미래입니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의 확실성에 비해 미래는 불확실하니 어떤 사람의 미래를 점치는 근거는 그의 과거와 현재입니다. 
사람은 변하는 것 아니냐, 어제까지 악행을 저지르다가도 내일부터 선하게 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스스로 과거의 자신과 결별하고 참으로 변하겠다고 마음먹고 노력하는 사람만 변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지난 월요일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박근혜 의원 때문입니다.
 
박 의원은 그날 기자회견에서 5.16 쿠데타와 유신과 관련해 “과거로 자꾸 가려고 하면 한이 없다”고 말하고, 장준하 선생 타살 조사에 대해서는 “조사할 게 더 있다고 하면 해야 되겠지만 저는 우리 정치권이 미래로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박 의원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사람이 저 하나는 아닐 겁니다. 지금 우리나라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정치인 중 가장 과거지향적인 분이 “과거로 가려면 한이 없다, 미래로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니 말입니다. 
박 의원의 말에서 일본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도 저 하나가 아닐 겁니다. 지난 세기 초 한국인을 상대로 저지른 잔인무도한 식민지배에 대해 진실하게 사죄하고 보상하라고 하면, 일본 정부는 또 과거 타령이냐고, 이제 과거 얘기 그만하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합니다. 그러나 과거를 잊고 미래로 가자는 말은 가해자가 하면 안 되는 말입니다. 그건 가해자가 진심으로 뉘우치며 사죄할 때 피해자가 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5.16 쿠데타, 유신, 장준하 선생 얘기 같은 과거사를 자꾸 들먹이는 건 박 의원이 자기 아버지가 저지른 과오에 대해 아버지 편을 들기 때문입니다. 
박 의원은 지난달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5.16은 당시 상황에서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하여 5년 전 ‘구국의 혁명’이라 했던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그 발언으로 지지율이 하락하자 5.16은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말을 바꾸었지만 그의 속내를 모르는 국민은 없습니다. 12월 대통령 선거가 임박해서 그가 이 문제에 대해 뭐라고 하든, 그가 아버지 박정희씨의 정신적 아바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박 의원이 대통령 후보가 되니 그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것인지를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나라가 민주공화국으로 출범한 후 줄곧 남성 대통령만 나왔으니 이제 여성 대통령이 나올 때도 되었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여성 대통령을 바랍니다. 아무개의 딸이라는 최초의 정체에 갇혀 나이가 들어서도 ‘딸’로만 살려는 여성이나 권력가 집안에 태어나 권력 없는 삶의 비애를 짐작도 못하는 여성 말고, 남성과 동등하게 이지적이며 어떤 남성에게도 뒤지지 않는 경험을 쌓은, 미래지향적인 여성, 아니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미래는 과거에 출발한 기차의 목적지입니다. 엉뚱한 길로 간 기차가 제 목적지로 가려면 잘못 갔던 곳으로 돌아가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박근혜 의원이 자신이 원하는 미래로 나아가는 길은 ‘독재자의 딸’이라는 과거를 인정하고 아버지의 잘못을 막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며, 고통받았던 사람들의 해원을 돕는 데서 출발합니다. 
여성 대통령을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올해엔 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 김흥숙 - 시인 >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구 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종군위안부로서 무수한 고통을 경험하고 몸과 마음에 걸쳐서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진 모든 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전한다.”
국가 차원의 일본군 위안부(이하 성노예) 동원 책임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의 일부다. 당시 일본 정부는 1년8개월간의 조사를 통해 성노예 모집 등에 국가가 관여한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당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담화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일본 쪽은 말로는 마지못해 이 담화를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를 훼손하는 언동을 해왔다. 2007년 아베 신조 자민당 정권 때 미국 의회에서 성노예 결의안을 채택하려 하자 정권 차원에서 이를 무마하려다 망신을 당한 게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번엔 노다 요시히코 총리와 내각의 각료들이 한꺼번에 고노 담화를 부정하고 나섰다. 노다 총리는 그제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이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해결됐다”고 말했다.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은 한발 더 나아가 “각료들이 고노 담화에 대해 (존폐 여부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극우파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나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시장, 자민당 정권이라면 모를까, 야당 시절 정부 차원의 법적 책임을 촉구하는 ‘전시 성적 강제 피해자 문제해결 촉진법안’을 냈던 민주당 정권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건 모순이다. 더구나 성노예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은 유엔이나 미국·유럽의회에서도 이미 수차례 확인된 국제사회의 상식이다.
 
정부는 더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1년 전 헌법재판소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대일배상 청구권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을 당시 생존 할머니는 235명 중 69명이었다. 그로부터 8명이 더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일본은 헌재 결정 이후 이 문제를 다루자는 우리 정부의 요청을 “이미 한일협정으로 해결된 문제”라며 거부하면서 정부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형태의 정치 타결을 꾀해왔다.
고노 담화의 내용과 정신을 부인하는 노다 정권의 민낯이 백일하에 드러난 이상 정부가 할 일은 자명하다. 한일협정 3조에 규정된 대로 일본에 중재위원회 구성을 통한 분쟁 해결을 제안하는 것이다. 일본 쪽이 응하지 않겠지만 그럴수록 정공법으로 대응해 그들의 몰역사적이고 비인도적인 모습을 국제사회에 적극 알려야 한다.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9기 이사장에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동문인 김재우 8기 이사장이 연임됐다. 김 이사장은 문화방송의 공정성 훼손을 방치한 잘못은 차치하고 논문 표절과 공금 유용 의혹 등 도덕적으로 흠결덩어리였다. 그런 탓에 연임이 가능하겠느냐는 전망도 있었지만, 이 대통령은 보란듯이 그를 방문진 수장으로 다시 앉혔다. 최소한의 상식조차 내팽개친 임기말 ‘측근 인사’ ‘오기 인사’의 극치다. 그 뻔뻔함에 분노보다 허탈감이 앞선다.

김 이사장의 연임으로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문화방송의 공정성 회복이 요원해졌다는 사실이다. 그의 연임은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이 문화방송의 김재철 사장 체제를 12월 대선 때까지 끌고 가겠다는 명시적인 의사표시이기 때문이다. 8기 위원장 시절에 김 사장을 노골적으로 비호했던 그가 이제 와서 새삼스레 김 사장의 책임을 묻고 나설 리는 만무하다. 방문진은 김 이사장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가 결론날 때까지 ‘조건부 연임’이라고 설명하지만, 이는 소낙비를 피해가려는 얕은 술수에 불과하다. 김 사장 퇴진을 통해 문화방송을 정상화시킬 마음이 있다면 현시점에서 김 이사장을 연임시킬 이유는 눈곱만큼도 없다.
 
김 이사장 연임을 묵인·방조한 새누리당, 특히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태도 역시 실망스럽긴 마찬가지다. 공영방송의 공정성은 정치권력이 여론을 제 입맛대로 유도·조작하지 않고 민주주의의 토대를 건강하게 유지시키고 있는지 가늠하는 주요한 잣대다. 그런 점에서 박 후보가 그동안 문화방송의 공정성 상실을 줄곧 외면해온 것은 그의 민주주의적 소양을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지금의 ‘불공정 문화방송’이 대선 가도에 유리하다고 판단해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살 소지가 있다. 여권의 일인자나 다름없는 박 후보가 적극적으로 반대하는데 이명박 정부가 김 이사장의 연임을 밀어붙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김재우 이사장과 김재철 사장이 물러나야 할 이유는 이제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여야는 지난 6월 문화방송 파업사태와 관련해 ‘8월 초 구성되는 방문진 새 이사회가 방송의 공적 책임과 노사관계에 대한 신속한 정상화를 위해 합리적 경영판단과 법 상식, 순리에 따라 처리되도록 협조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이는 김 사장을 물러나게 한다는 사실상의 약속이다. 아울러 여야는 국회 문방위 차원의 언론청문회 개최에도 합의했다. 새누리당은 하루빨리 이 약속들을 이행해 공당으로서 최소한의 면모를 지키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