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전 동아일보사에 들어가 기자가 되었다. 입사해 보니 언론자유는 박정희 독재의 폭압에 압살당했음을 매일매일 온몸으로 느꼈다. 유신 이후는 더욱 참담했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절벽의 가장자리로 내몰린 우리들은 빼앗긴 자유언론을 찾아오기 위해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유신정권과 결탁한 동아일보사 경영진에 의해 쫓겨났다.
6월항쟁 이후 역사의 축복으로 <한겨레>가 탄생하기까지 언론 현장을 떠나 있었으나, 마음 한가운데는 늘 ‘언론’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오면서 기자인 것이 부끄럽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다. 군부독재 시절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언론자유가 활짝 꽃핀 민주정부 시절에도 언론이라 불리는 무리들이 권력집단이 되어 수구 기득권 세력의 강력한 성채가 되었던 터다.
특히 자본의 힘과 시장 약탈로 성장해온 족벌 수구신문들은 신문시장을 독과점하면서 거대권력이 되어 수구·냉전·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유지·강화하기 위해 별짓을 다 해왔다. 왜곡·과장은 기본이고, 주요 뉴스까지도 자기 세력에 불리하면 아예 무시해버린다. 날조와 거짓도 서슴지 않는다.
언론이 아니다. 조중동은 말할 필요도 없고, 경제지도 강자와 자본의 편에서 한쪽 논리만 편다. 이런 구조에서 건강한 여론을 위해, 아니 최소한의 여론 균형을 위해 방송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 들어 방송은 정권 친위대에 의해 완벽하게 장악되어버렸다.
이런 절망적인 언론 상황 속에 희망의 불빛이 보인다. 디지털 혁명 덕분이다. 과거에는 신문이나 방송을 하려면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자본이 필요했다. 방송의 경우 정부 승인까지 필요하다. 디지털 혁명은 이 모든 조건을 바꾸어 놓았다. 큰돈 들이지 않고 방송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해직·파업 방송 저널리스트들이 시작한 <뉴스타파>는 조중동 같은 수구언론, 그들이 만드는 삼류 종편 방송, 정권 방송이 되어버린 지상파 방송에 일대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폭발적 가능성을 보였다. 뉴스타파 첫회분은 순식간에 90만명이 조회했다. 수천억원을 들인 조중동 종편의 시청자를 죄다 끌어모아 봐야 기껏 20만가구 안팎인 것에 비하면 뉴스타파의 폭발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된다. 진정한 방송뉴스에 대한 갈증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지난 7월1일까지 21회 진행되던 뉴스타파에 변화가 생겼다. 노종면 앵커가 YTN 노동조합으로 복귀하게 되고, 파업 언론인들이 방송사로 복귀하면서 제작에도 어려움이 생기고, 재정적인 어려움도 겪게 되었다. 그래서 뉴스타파의 산파이자 제작의 중심역인 이근행 PD(전 MBC노조위원장, 해임 806일째), 박중석 KBS기자(언론노조 파견) 등은 40일 동안 쉬면서 시즌2를 준비, 마침내 지난주 금요일 시즌2의 막이 올랐다. 올림픽 열기에 묻힌 주요 뉴스들이 22회에 담겨 있다. 새 앵커는 용산참사의 기록을 담은 <두 개의 문> 연출자 김일란 감독이 맡았다. “진실을 찾아가고, 이를 우리 사회에 전달하는 작업은 그 형식이 영화장르든 언론이든 연계돼 있다고 판단해 참여를 결심했다”고 그는 인터뷰에서 밝혔다.
수구언론과 제대로 맞짱 뜰 수 있는 뉴스타파의 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제작인력과 제작비 때문이다. 디지털 혁명 덕분에 기존 방송사와 같은 어마어마한 인프라 구축비야 필요없지만, 방송은 여러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 제작비가 만만치 않다. 결국 이 혁명적 방송의 성공 여부는 시민의 참여가 얼마나 적극적인가에 달려 있다.
비단 뉴스타파 뿐만이 아니다. 국내에서 소위 진보 언론들은 정부와 대기업 광고에서 소외되는 경영상의 어려움 뿐만 아니라, 보수 극우세력들의 폄훼로 고난에 직면할 때가 많다. 해외에서도 열악한 환경속에서 언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작지만 소중한 한인 신문·방송들의 사례가 많다.
어느 곳에서든 참된 언론이 무시되는 사회에는 거짓과 불의가 기생하게 마련이다. 사회의 감시자는 언론이며, 언론의 감시자는 시민들이다. 시민들의 의식이 언론에 투영되고 시민들의 정성과 참여가 언론의 성쇠를 가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 정연주: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