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기 가을학기 9월3일까지 등록


‘인생의 새 날을 아름답게 경험하며, 황혼에도 춤추고 감사할 수 있는 가보고 싶은 명소’ 캐나다 에녹대학이 제20기 가을학기를 오는 9월6일(목) 오전 10시 개강을 앞두고 참가희망자 예비등록을 받기 시작했다. 해마다 1백명 이상이 참여하는 성황과 인기리에 진행되는 서부장로교회(담임 박헌승 목사: 3637 Grand Park Dr.Mississauga) 부설 에녹대학은 이번 가을학기도 반편성과 교재 준비를 위해 전화로 예비등록을 받아 오는 9월3일(월) 등록을 마감한다.
9월6일 개강해 11월1일까지 9주 동안 진행하는 에녹대학은 이번 학기 주제를 ‘은총의 사람들’로 정하고, 8개의 합동강의와 12개의 선택과목을 통해 노년학생들에게 다양하고 유익한 문화·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웃음과 기쁨이 넘치는 이벤트들을 함께한다.
 
합동강의는 찬양과 천국교실, 명곡교실, 건강태권도. 문학교실, 시조교실. 한문교실, 역사교실 등이며, 선택과목은 초·중급 생활영어, 수채화반, 리빙아트, 워쉽댄스, 라인댄스, 한국무용, 국악교실, 하모니카 및 리코더 반, 서예반, 전통공예, 기초골프, 에어로빅 등 희망과 기호에 따라 다채롭게 참여해 즐길 수 있다. 생일잔치와 행복이벤트, 수학여행 등도 마련한다. 교재와 점심식사는 학생들을 위해 헌신·봉사하는 서부장로교회 ‘천사팀’에 의해 무료로 제공된다.
서부장로교회 김경예 전도사는 “에녹대학은 새로운 만남을 통해 영원한 청춘을 노래할 수 있는 웃음과 가쁨이 넘치는 곳”이라며 “이번 학기에도 많은 분이 참여해 함께 즐거움을 나누기 바란다”고 전했다.

< 등록 및 문의·자원봉사: 905-803-8800, 김경예 전도사 416-993-3134 >


[1500자 칼럼] 손 편지의 숨소리

● 칼럼 2012. 8. 20. 16:59 Posted by SisaHan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비에 마음까지 축축한 듯했다. 물어물어 찾아간 그곳은 전주에 와서 <혼불>의 작가를 만나지 않을 수 없다며 들른 문학관이었다. 날씨를 핑계 삼아 아늑한 곳에 들어가 따끈한 커피나 마셨으면 하는 마음을 달래주려는 듯 밝게 웃는 커다란 사진이 우리를 맞이했다. 최명희는 1990년대에 한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알게 된 작가였다. 
당시 나는 도서실 관리 업무를 맡고 있어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도서실에 상주하며 자연스럽게 신간 서적을 읽을 수 있었다. 도서실에서는 학생들뿐 아니라 마음이 맞는 교사들이 책을 돌려가며 읽은 후에 이따금씩 감상을 나누고 토론을 하기도 했다. 기억도 아득한 일이지만 그때 만난 책이 <혼불>이었다. 요즈음과는 달리 그때만해도 대하소설이 꽤 읽히던 때라 열 권이라는 부피가 그리 부담스러운 줄 모르고 읽던 시절이었다.
 
실은 최명희 문학관에 들어서면서 큰 기대는 없었다. 여느 문학관처럼 비슷한 형태로 작가 소개와 작품, 원고지 등을 전시해놓았겠지 싶었기 때문이다. <혼불>을 연구한 논문들이 유리 진열장 아래 한 줄로 놓여있고 정면에 간단한 약력이 적혀있었다. 그 보다는 전시실 중앙에 작가가 누군가에게 보낸 엽서에 더 관심이 가서 그 앞을 서성이는데 바로 옆 진열장에서 뭔가 강렬하게 시선을 잡아당기는 게 있었다. 옛 선비들이 서신용으로 주고받던 둘둘 말린 한지를 길게 펼쳐 놓은 듯한 종이의 염력(念力)에 아마 나도 모르게 끌렸나 보았다. 
조금 바랜 듯한 하얀 종이에 왼편에서 시작해 세로로 써 내려간 글, 그건 작가가 친구에게 육필로 쓴 편지였다. A4 용지만한 크기의 종이를 2미터 이상 늘어놓은 길이인데 여러 장을 이어 붙인 게 아니라 온전한 한 장이었다. 대체 어디에서 그렇게 긴 종이를 구했는지 몰라도 모나지 않은 글씨들이 정스럽게 조근조근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작가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예민한 필체를 예상했는데 의외로 부드럽고 편안한 글씨체였다. 어떤 마음으로 썼기에 그렇게 긴 글을 한결 같은 필체로 이어갈 수 있었을까. 단숨에 썼을까, 며칠을 두고 썼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나는 그 앞에서 발이 붙은 것처럼 서 있었다. 원고지 위에서 사각거리던 만년필 소리가 들려오고 종이에 배어든 잉크 냄새가 나는 듯한 환각이 일었다. 편지를 쓰고 있는 작가 바로 곁에 앉아있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 긴 종이에 끝도 없이 조용조용 풀어놓았을 작가의 마음이 만져지는 것 같아 나는 감히 발을 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문득 어디선가 찬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내 다음 다음 세대쯤 되는 작가의 문학관은 어떤 광경일까, 펜을 사용하지 않고 컴퓨터로 글을 쓰는 차세대 작가의 타이핑한 편지가 전시되어 있다면 관람객의 마음에 어떤 파장이 일까 상상해보았다. 친필이 아닌 인쇄된 편지를 보고도 내가 느끼는 것처럼 작가와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며 감정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듯한 착각으로 가슴이 뛸 수 있을까 싶었다. 
요즈음은 전화도 음성보다는 문자를 선호하는 세대이다.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기계문명에 기대어 문화 성향이 음성에서 문자로 바뀌어간다는 것은 주관보다는 객관에, 감성보다는 이성에, 이해보다는 책임 쪽으로 무게가 더해간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육필도 육성도 사라져가는 문명 사회에서, 희미해져 버린 아날로그적 흔적을 그리워하며 한쪽 귀퉁이가 무너진 듯한 불균형을 느끼는 것이 비록 나 한 사람뿐일까. 기계문명의 편함을 누리는 대신에 어쩌면 우리는 그 이상의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손으로 쓴 편지에서는 세월이 지나도 숨결이 느껴진다. 영혼의 숨결이 스며든 살구빛 체온을 글자마다 품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녀의 체온이 묻어있는 편지를 받은 행운의 주인공이 누구였을까. 작가가 쓴 문학적인 글이라서 감동을 받은 게 아니기에 내용이 어땠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편지에 배어있던 살 냄새를, 그 따스한 숨결을 오래 기억하고 싶을 따름이다.
 
<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협 회원, 한국 문인협회 회원 >


런던올림픽은 끝났지만 아직도 자리에 누우면 가끔씩 박주영의 감각적인 드리블, 양학선의 그림 같은 착지 장면이 아른거릴 때가 있다. 장미란, 손연재의 눈물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이보다 더 전이긴 하지만 개막행사 2부, 병상 위에서 뛰어놀던 영국 아이들 모습도 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일부에선 좌파 올림픽이라 비난했다지만 무상의료제도(NHS)에 대한 영국의 자부심이 오롯이 담겨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상징되는 영국 복지제도는 지식인사회의 정책 개발과, 정치권의 타협을 몰아붙인 대중들의 힘이 결합해 만들어낸 작품이다. 전문가들의 복지국가 청사진이 자유당 사회개혁가 윌리엄 베버리지 주도로 1942년 발간한 ‘베버리지 보고서’에 담겼고, 그 핵심이 무상의료였다. 수십만부나 팔릴 정도로 보고서가 대중들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는데도 기득권 세력을 대변한 처칠의 보수당은 이를 외면했다가 총선에서 쓴맛을 봐야 했다. 보수당과 영국의사협회의 저항을 무력화시킨 건 노동당에 대한 지지로 복지사회에 대한 기대를 폭발시킨 유권자들이었다. 이후 1979년 대처의 보수당 정부가 들어선 뒤 89년부터 일부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등 변화가 있었으나 무상의료의 큰 틀은 흔들림이 없었다.

좀 다른 얘기지만, 핀란드의 교육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시민들의 압도적 지지가 바탕이 됐다. 1966년 제1당이 된 사회민주당은 인민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꾸렸고 다른 정당까지 가세해 범정파적으로 ‘교육개혁’을 최우선 목표로 정했다. 이후 정권은 바뀌었으나 ‘평등과 협동’ 원칙은 손대지 않았다. 초당적으로 교육개혁의 방향과 원칙에 합의한 뒤 세부 설계는 국가교육청장을 비롯한 교육전문가들에게 맡겼다. 교사 출신의 에르키 아호는 1972년부터 1991년까지 20년간 국가교육청장을 연임하며 오늘날 세계 제1로 평가받는 핀란드 교육개혁을 완성해냈다.

올림픽뿐 아니라 이제는 우리 정치에서도 ‘양학선2’ 같은 남부럽잖은 정책이 나올 때가 됐다. 대선을 앞두고 일자리와 복지, 경제민주화가 최대 쟁점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는 게 교육문제다. 우리 교육은 ‘위기’에서 ‘붕괴’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사교육비는 살인적 수준으로 치솟고 청소년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1위다. 그런데도 교육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평등’에서 ‘경쟁’으로 냉·온탕을 오가는 바람에 학생들만 실험실 모르모트처럼 피해를 보고 있다. 백낙청 교수가 이미 갈파했듯이 2013년 체제에서 가장 달라져야 할 것도 교육이다. 이제는 혁명적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고 초당적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될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정파를 넘어 교육개혁기구를 설치하자는 제안이 나온 지는 10년 이상 됐고, 여야와 진보·보수단체 모두 사실 비슷한 얘기를 해왔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도 한나라당과 민주당, 전교조와 한국교총 모두 국가교육위나 교육개혁국민회의 등 이름만 달랐지 초당적 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해 6월 진보교육감들의 교육혁신 선언에 이어 최근 교육개혁100인위원회 등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초당적인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운동을 벌이고 있다. 국회에 교육계획위원회를 두어 정권과 무관하게 장기계획을 세우자는 심상정 통합진보당 의원의 제안은 검토할 만하다.

교육혁명의 초석을 놓는 데는 이번 국회가 적기다. 대통령 선거 뒤엔 임기 안에 실적을 내려는 욕심 때문에 장기적 계획도, 초당적 접근도 어렵다. 여야가 협력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힘은 유권자들만이 갖고 있다. 깨어 있는 시민들이 움직일 때다.
 
< 김이택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