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소망] 돌아가는 길도 은혜입니다

● 교회소식 2015. 9. 11. 13:0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몬트리올에서 자주 보는 사인 중의 하나가 ’Detour’라는 사인입니다. 몬트리올엔 겨울철과 공사철 두 철밖에 없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길이 막혔으니 돌아가라는 사인이지요.
바쁜 중에 만날 때면 괜히 애꿎은 공사장 근로자들과 시청 직원들을 욕하기도 합니다. 불편하기도 하고 일을 제대로 못한다고요.
그러나 그 사인이 없어서 그 길로 바로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무슨 일이 생겨도 생겼을 겁니다. 제가 아는 분은 이 사인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가 큰 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 답니다. 그리고 보니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우리를 위한 길이고 사는 길이었네요.좀 불편하기는 해도요.


하나님도 때론 길을 돌리십니다.
누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고, 우리 앞의 길도 아시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3장 17,18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앞에 detour 사인을 두셨습니다.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가장 가까운 길은 블레셋 땅을 경유하는 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물론 빠른 길로 가면 좋겠지만 그 길에는 길목마다 그 지역 나라의 주둔군이 배치되어 있어서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겁먹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애굽의 종살이로 돌아갈 수 있기에 하나님은 돌아가는 길을 택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나 늦기는 해도, 돌아가는 수고가 있기는 해도 돌아갔기에 약속의 땅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늘 빠른 길을 찾습니다. 빠른 응답을 기다립니다. 빠른 복을 사모합니다. 그것이 형통함이고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안그러면 의심하고 실망하고 불신하고 원망하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돌아가는 길도, 더디더라도, 그 길 또한 주님의 계획 안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알고 보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빠른 길은 오히려 해가 되는 길이었습니다. 혹 하나님의 도움으로 빠른 길도 통과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스라엘은 “무엇보다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모른다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오늘도 기도하고 간구하면서 주님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기도 응답이 빨리왔으면 하지요? 그러나 늦어져도, 더뎌도, 너무 초조해 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려 보세요. 하나님은 우리를 잘 아십니다. 우리의 앞길도, 필요도 잘 아십니다.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우리를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시지요?
그러면 응답뿐만이 아니라 응답의 때도 맡기세요.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에 우리의 기도와 간구에 응답해 주실 겁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 더딘 길도 주님이 동행하는 길임을 기억하십시오.
출애굽기 13:21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함께 하시며 걸음을 인도하시고 계시네요.
몬트리올과 토론토의 detour는 우리가 알아서 갈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생명의 길 가다 만나는Detour는 주님이 친히 인도하십니다. 참으로 감사하시고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지금 혹 가던 갈 한복판에 크게 자리잡은 Detour 사인 보고 계신가요? 아니면 투덜대며 벌써 돌아가는 길로 접어 들었나요? 서로 원망하기 보단 크게 감사하면서, 목청 높여 찬양하며 드라이브 하면 어떨까요?
그 길도 하나님이 열어주신 은혜의 길이거든요.
오늘도 막다른 길 앞에서 씩씩 대고 있을 주님의 자녀 모두에게 평안을 기원합니다.

< 김진식 목사 - 몬트리올 한인연합교회 담임목사 >



이산상봉 후보 탈락 ‘아쉬움의 눈물’

● COREA 2015. 9. 10. 20:0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평양 대동군 출신의 이산가족 이창용(91)씨의 부인 조갑순(82) 할머니가 9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강당에서 열린 ‘2015 추석 이산가족 상봉 후보자’ 선정 추첨에서 함께 온 남편이 떨어지자 아쉬움의 눈물을 훔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이날 오전 열린 인선위원회의 고령자와 직계가족 우선 원칙에 따라 생존자 6만여명을 대상으로 상봉 후보자 500명을 컴퓨터로 무작위 추첨했다.
<이종근 기자>



[평신도 글마당] 낚시

● 교회소식 2015. 8. 28. 13:29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자의반, 타의반으로 올해들어 낚시를 자주 다녀왔습니다. 낚시를 하다보니 낚시에서도 느끼는 점이 많이 있습니다.
보통 “몇마리 잡았어요?”하고 묻습니다. 마리 수에 따라 “와!”, 아니면 “애걔!”라는 대꾸를 하십니다. 그러나 마리 수와 관계없이 수없이 여러 번 미끼를 갈아 끼우고 던지기를 반복하였기에, 그 열정(?)은 칭찬 받을만한 것 입니다. 놓친 물고기가 크다고 하는데, 정말 대부분 놓친 고기가 클 확률도 높습니다. 고기가 커서 몸부림 치는 과정에서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드넓은 호수에 낚시 하나 던져 놓고, 거기에 물고기가 걸려들기를 원하는 낚시꾼의 마음이 허황돼 보이기도 합니다. 곧은 낚싯바늘을 강물에 던져놓고 하염없이 기다렸다는, 세월을 낚는 강태공은 누구나 다 아시는 인물입니다. 강태공 만큼은 아니지만 낚시는 기다림 입니다. 그리고 물고기가 낚싯바늘에 달린 미끼를 먹을 때의 챤스를 놓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쩌면 얄팍한 인간의 마음 같기도 하지만, 배울 점과 느끼는 감정은 참 많습니다.
낚시를 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것도 참으로 많습니다. 어떤 고기를 잡을 것인가에 따라서, 낚싯대를 골라야 합니다. 낚싯줄도 그 굵기가 수없이 많고, 낚싯바늘도 크기가 아주 다양합니다. 미끼의 종류도 수 없이 많습니다. 혹시 모를 사고를 예방하려면, 상비약도 챙겨야 하고, 음식과 빈봉투까지 챙겨야 할 것들이 수 없이 많습니다. 낚시터에서는 몫이 좋은 곳이 따로 있습니다. 장소와, 때도 중요 합니다. 세상에 절대 공짜는 없습니다. 노력과 정성을 다 하지 못하고 수고의 대가를 바라는 것은 잘못입니다.


낚시에서 인생을 배웁니다. 낚시를 하면서 어부의 마음도 읽게 됩니다. 생선은 우리가 기르는 것이 아니요 창조주께서 기르십니다. 스스로 자라는 생물을 노력과 기술과 정성을 합하여 취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부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배드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 하셨으니, 예수님께서 이미 낚시에 도통(?) 하신 것 같습니다. 물고기와의 밀고 당기는 씨름은 경력에 따라 더욱 숙달되게 됩니다. 낚싯대를 잡고 있는 손으로 전해 오는 감각으로 물고기가 크다, 작다를 판단합니다. 너무 큰 고기는 억지로 끌어 올릴 수 없습니다. 낚싯줄이 끊기기 때문입니다. 줄을 풀어주기도 하며 살살 달래어서 끌어 와야 합니다. 다 잡았다고 방심하는 순간 뜰채 바로 앞에서 줄을 끊고 도망가기도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모든 과정을 너무나도 잘 아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어부들을 제자로 삼으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이제와서 돌이켜 보면, 서툴렀고, 준비가 완전하지 못하였고, 때와 장소를 구분하기에 서툴렀습니다. 끈기와 인내도 부족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어둠을 뚫고 낚시터에 도착하면 동이 틉니다. 그러면 좋은 몫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아침의 고요함과 떠오르는 여명의 아침은,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공짜입니다. 수 없이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왔습니다만, 차마 아버지의 귀한 선물을 사진에 담기엔 역부족 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공짜로 주셨지만, 수고와 노력이 없다면, 부지런하지 못하다면, 은혜로 주신 선물들을 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다면, 그 은혜에 감동을 받았다면 기쁜 소식을 이웃에게 전해야겠습니다. 여기에도 낚시의 이론이 성립됩니다. 끈기, 인내, 때와 장소, 부지런함과 정성, 그리고 방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 입니다. 요즘, 아내가 낚시의 맛을 알아버렸습니다. 함께하니 기쁨이 열 배 입니다.

< 정훈태 - 동산교회 장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