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생활은 자동차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번은 교회 동료들과 함께 모두 같은 차를 타고 밖에 나가 식사를 하고 돌아오니 주차장에 세워 둔 올스모빌 내 차가 보이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를 하니 LAPD 소속 경찰관 두 명이 이내 달려 왔다. 그들은 “우리가 찾으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자동차 도둑들이 훔쳐 가면 보통 5시간 안에 자동차를 완전 분해해서 부품 별로 다 팔아 버리기 때문에 범인을 잡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오래 된 차라 보험을 들 때 자차 보험은 들지 않았던 터라 손해는 100% 내가 져야만 했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특별기도에 들어갔다. 하루에도 수도 없이 자동차를 찾게 해달라고 절박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매어 달렸다. 화요일에 차를 잊어버렸는데 토요일이 되자 교인들에게 소문이 좍- 퍼졌다. 토요일 아침예배를 마치고 나오니 “목사님! 자동차 잊어버렸다면서요?” 하면서 여러 성도들이 안부를 물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날 아침 내 마음에는 자동차를 꼭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무 근거도 없고, 정보도 없었지만 마치 자동차를 찾은 것 같은 확신이 들어서 묻는 사람들에게 “예! 오늘 찾을 거예요.”하고 말했다.
아침기도회를 마치고 교회를 떠나 집으로 가기 위해 2-3Km 정도 운전하고 가다가 사거리 신호등이 빨간불이어서 정지선에서 멈추어 대기하고 있었다. 그 때 내 마음 속에 이 사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가면 잃어버린 자동차가 있을 거란 생각이 갑자기 강력하게 떠올랐다. 그래서 차를 우회전하여 골목 안으로 진입했다.
 
골목에 들어서자 토요일 이른 아침이라 모든 종류의 자동차가 주택가 길 양쪽에 좍- 줄지어 서있었다. ‘아! 내가 지난 며칠간 너무 잃어버린 자동차에 집착을 하다보니 정신에 문제가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제 잊어야지, 이래선 안되겠다’며 다시 차를 돌려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가 뒤에서 내 머리를 잡아당기는 듯 한 느낌이 들면서 ‘조금만 더 가면 자동차가 있을 텐데’ 하는 마음이 강렬하게 다시 일어났다. 그래서 다시 방향을 돌려 차를 몰았다. ‘아! 이렇게 해서 내 머리가 진짜 도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1분 정도 앞으로 더 차를 몰고 갔다.
그런데 오른쪽 전방에 내 차와 똑 같은 색깔의 구형 올스모빌이 주차된 것이 보였다. ‘아이구! 미국에서 같은 모델 자동차가 얼마나 많은데 이젠 헛것이 다 보이는 구먼’ 하며 가까이 가보니 번호판이 내 차 번호판과 동일하였다. ‘뭐야! 구형 올스모빌 차에다 번호판이 같으면 이건 내 차잖아!’ 차 안을 살펴보니 내가 쓰던 물건 중에 돈 될 만한 물건은 다 가져가고 빈 차만 거기에 파킹을 해놓은 것이었다.
 
나는 목사지만 그 때까지 성경에 제비뽑기를 해서 누가 당첨되는 것에 대해 과연 그렇게 될 확률이 있을까? 하는 일말의 의심이 있었다. 예를 들면 아이성 전투 실패 후 범죄한 아간을 잡아내기 위해 제비를 뽑는데 이스라엘 12지파 중 유다지파가 뽑히고, 유다지파 중에서 삽디가문이 뽑히고, 삽디가문 모든 남자들 중에서 삽디의 손자 아간이 뽑혔다. 수학적으로 볼 때 아간이 뽑힐 확률은 당시 이스라엘 인구 수백만 분의 일의 확률이다.
사실 확률로 보면 LA 자동차 숫자가 훨씬 더 많다. 그 중에 내 차를 찾을 확률은 몇 천만 분의 일이다. 나는 내 차를 찾는데 그 유명한 LAPD 경찰의 도움을 받은 적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그들은 낙심되는 말만 하고 갔다. 내가 한 일은 절박함 속에 오직 주님께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찾은 것 뿐 이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6-7절)

< 임수택 목사 - 갈릴리 장로교회 담임목사 >


▶아버지학교 참가자들이 수료 봉사자들과 함께 민경석 목사 인도로 무릎꿇고 회개하며 죄와 잘못들을 태우는 의식을 하고 있다.

토론토 아버지학교 23기
감동과 은혜 가운데 진행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는 슬로건으로 올해 첫번째 열린 토론토 제23기 아버지학교가 지난 14일과 15일 오후 수정교회(담임 주권태 목사)에서 개강, 전반부 10시간 프로그램을 감동과 은혜 속에 진행했다. 후반부는 이번 주말 22일(토)과 다음 주 29일(토) 오후 5시~10시 속개된다.
‘가정을 세우는 사람들’ 두란노 아버지학교 운동본부 토론토 운영위원회(위원장 조충호 디모데장로교회 장로) 주관으로 열린 이번 강좌에는 14개 교회에서 30명의 일반성도와 불신자 등이 참석, 진행을 돕기 위해 헌신적으로 모인 수료자 30여명과 함께 정해진 프로그램과 간증, 강사의 강의, 조별 나눔 및 찬양과 기도 등으로 진행됐다. 이번 강좌에는 수료자의 장인과 은퇴장로 등 2명의 72세 고령 참가자에서 28세 젊은 아빠까지 참가했고, 영어권 성도들도 1개 테이블을 이뤘다.
참석자들은 이틀간 선배 수강자의 인도를 따라 간증과 강사의 말씀, 조별 테이블 나눔 등을 통해 자신과 가정을 돌아보며 서로 상처를 감싸 안고 ‘아버지와 남성 회복’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위로와 성찰의 기회를 가졌다.
 
강의는 첫날 유충식 목사(중앙교회 담임)가 남성회복 운동과 아버지학교에 대해 설명하고 ‘아버지의 영향력’을 들려줬다. 유 목사는 “가정 회복의 중심인 아버지 영향은 3~4대까지 이어진다”면서 “저주는 끊고 좋은 영향력을 주기 위해 가족을 결속·사랑·인도·파송하는 역할을 감당하면서 기도로 축복을 간구하라”고 조언했다. 둘째 날은 민경석 목사(한울교회 담임)가 ‘아버지의 남성’이라는 제목으로 아버지의 남성이 파괴되어 가는 남성문화들의 폐해를 들고 “그로인해 아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하고 자녀들에게서 한숨이 나오게 하지는 않았는지 묵상해보자, 나는 과연 어진 왕·부드러운 전사·참된 스승·다정한 친구였는지, 폭군·비겁자·위선자·배신자는 아니었는지 돌아보자”며 회복을 위한 성결운동을 역설, 가정과 사회에서의 책임과 사랑을 다하는 남성성을 제시했다. 참석자들은 조별 나눔으로 지나온 부정적 발자취를 되짚으며 민 목사 인도로 죄와 상처와 잘못 등을 적어 불태우는 ‘태우기’ 의식도 진행했다. 또 아버지와 자녀, 아내에게 편지쓰기, 아내와 자녀가 사랑스런 20가지 이유 쓰기와 포옹하기·데이트하기·축복기도 등 숙제를 통해 가족사랑을 되짚어보는 자성의 시간이 됐다.
 
아버지학교는 22일 오후 강좌를 재개, 준비된 순서와 함께 고영민 목사(이글스필드교회 담임)가 ’아버지의 영성’ 강의를 하며, 29일에는 아내초청 및 세족식 등과 장성환 목사(런던 한인교회 담임)의 ‘아버지의 사명’ 강의 등 프로그램을 마치고 파송식으로 23기를 마무리 한다.
 
< 문의: 647-907-0021, 905-482-9676, www.gcfather.org >


최근 들어 대한민국 ‘건국’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일부 인사와 언론이 중심이 되어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민국 건국이 사라졌다’거나 ‘건국을 부정한다’며, 연일 교육부를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2008년에 ‘건국’ 문제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대한민국은 1948년에 ‘건국’된 것이라며, 정부 주도하에 ‘건국 60년’을 기념하는 위원회가 조직되어 활동하였고, 이를 계기로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하거나 심지어는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고도 하였다. 이로 인해 ‘건국’ 문제를 가지고 논란이 일어났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엄청난 예산을 들여 ‘건국 60년’을 기념하는 각종 사업을 추진하였고, 또 일부에서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고 시도하였지만, 이는 실현되지 못하였다. 이유가 있었다.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되었다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설득력 있는 근거나 논리를 마련하지 못한 채 고교 교과서와 교육부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되었다는 것을 주장하려면, 최소한 몇가지 문제에 대해서라도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우선 1919년에 수립된 ‘대한민국’과 1948년에 수립된 ‘대한민국’의 관계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한국 민족 역사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국가는 두 번 수립되었다. 1919년 4월11일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한 임시정부를 수립한 일이 있고, 1948년 8월15일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한 정부를 수립한 일이 있다. 이 둘 중에서 1948년을 ‘건국’으로 보아야 한다면, 1919년에 수립된 ‘대한민국’은 왜 그렇게 볼 수 없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논리가 있어야 한다.
 
둘째는 제헌국회에서 ‘대한민국’을 건국하였다고 한 일이 없는데, 왜 1948년에 ‘건국’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지를 납득하도록 해야 한다. 제헌국회에서는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한 정부를 수립하고, 그 근거를 제헌헌법 전문에 밝혀 놓았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라고 한 것이다. 기미삼일운동은 1919년에 일어났다는 것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당사자인 제헌국회가 “대한민국은 기미삼일운동으로 건립”되었다고 하였는데, 왜 1948년에 건국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지, 국민들은 납득하기 어렵다.
 
셋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이라는 똑같은 연호를 사용하였는데, 1919년과 1948년의 ‘대한민국’을 왜 서로 다른 존재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납득하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 9월1일 <관보> 제1호를 발행하면서, 발행일자를 ‘대한민국 30년 9월1일’이라 표기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대한민국’은 연호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수립 당시부터 국호인 ‘대한민국’을 연호로 사용하였고,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 1945년을 ‘대한민국 27년’이라고 하였다.
연호는 국가가 바뀌면 달리 쓴다. 같은 국가에서도 황제만 바뀌어도 새로운 연호를 사용한다. 중국이나 일본의 예를 들 것도 없다. 대한제국에서도 고종이 ‘광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지만, 순종은 황제로 즉위하면서 ‘융희’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사용하던 연호를 그대로 사용하였고, 1919년부터 계산하여 1948년을 ‘대한민국 30년’이라고 한 것이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인데, 왜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된 것인지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지면 관계로 세 가지 예만 들었다.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된 것이라고 주장하려면, 최소한 이 세 가지 문제에서 국민들을 납득시켜야 한다. 
근거와 논리 없이 주장하고, 그 주장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면 모두 비난하는 것은 지식인이나 언론의 올바른 자세라 할 수 없다. 국민들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나라답게 주장이나 논쟁에도 국격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 한시준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