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이 전공을 선택할 때 일부러 법대를 기피하던 시절이 있었다. 법대에 가면 꼭 고등고시를 봐야 할 것 같은 엉뚱한 강박감 때문이었다.
고시에 합격한다고 반드시 권력 편에 서야 하는 것도 아니건만 그때만 해도 고시를 보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여긴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굳이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당시는 서슬 퍼런 박정희 군사독재가 마지막 발악을 하던 유신 말기였다.
잠시 숨쉴 여유가 있었던 ‘서울의 봄’이 지나자 대학은 더욱 살벌해졌다. 광주 시민을 학살하고 들어선 전두환 군사독재는 유신 독재 못지않게 폭력적이었다. 꽃다운 젊은이들이 몸을 불사르고 내던지며 독재 타도를 외쳤다. 학교 옥상에서 분신한 뒤 바로 눈앞에서 떨어져 불타던 후배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런 암울한 시대에도 대학도서관은 고시 공부하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유신 독재가 극성을 부리던 1970년대 중반부터 6월 항쟁이 일어난 1987년 사이에 대학 시절을 보낸 세대가 어느덧 40대 중반~50대 중후반의 나이가 되었다. 그 세대 중 시대의 부름을 외면하고 출세의 길로 들어섰던 이들은 이제 우리 사회의 강고한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다. 권력 핵심부도 대부분 이들이 장악하고 있다.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건 그들이 동세대의 희생을 완전히 잊고 지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그들은 과연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포기한 동세대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또 한 줌의 부채의식이라도 가지고 있을까.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기는커녕 일말의 부끄러움조차 없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향유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어찌 보면 그들은 동세대의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안락한 무대 위에서 여전히 끊임없는 권력 추구에 몰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검찰의 경우는 유독 심하다. 현재 검찰 수뇌부는 대부분 박정희·전두환 독재 시절에 대학에 다녔던 세대로 구성돼 있다. 한상대 검찰총장과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 국민수 법무부 검찰국장, 임정혁 대검 공안부장 등 검찰 핵심 실세들은 모두 전두환 독재의 폭압이 기승을 부리던 1981~85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들이다.
동료나 선후배들이 바로 곁에서 분신하고, 경찰에 두들겨 맞으며 끌려가고, 학교에서 쫓겨날 때 그들은 이들을 애써 외면한 채 미래의 안정된 삶을 위한 고시 공부에 매달렸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랬다면 조금이라도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부채의식을 갖는 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이마저도 힘들다면 적어도 그들의 희생으로 이룩된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일만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일부 ‘정치검사’들은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권력의 뒤를 좇아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게 오늘의 모습이다.
6.10 항쟁 25돌이었던 엊그제, 검찰은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매입 의혹 사건 관련자를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눈치 보기가 아니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이명박 정권이 어떤 정권인가. 6월 항쟁으로 이룩한 민주주의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다는 호된 비판을 받고 있는 반민주적인 정부다.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군사독재에 맞서 싸웠던 동료를 외면하고 출세 가도를 달렸던 이들이, 동료의 희생으로 이룩된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공자는 일찍이 “나라에 도(道)가 없는데도 (관리가 되어)녹봉을 받아먹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맹자는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수오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지금이야 직업관료제가 확립된 시대라 비록 부도덕한 정권이라도 그 아래서 검사 노릇 하는 자체를 탓할 수는 없지만 검찰권을 행사하면서 최소한 부끄러움이 뭔지는 알고서 해야 하지 않겠는가. 무슨 말을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그들에게 이런 글이나 쓰고 있는 필자 자신이 더 부끄러워지는 6월이다.
<정석구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