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살특공대를 세계유산이라니

● 칼럼 2014. 2. 17. 16:12 Posted by SisaHan
일본 규슈의 가고시마현 미나미큐슈시가 태평양전쟁 당시 자살비행특공대 ‘가미카제’의 유서를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관내에 있는 ‘지란특공평화회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살특공대원들의 유서와 편지 등 기록물 1만4000여점 중 본인 이름이 확인된 333점을 ‘지란으로부터의 편지’라는 이름으로 신청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어이없고 뻔뻔한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들이 제정신인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가미카제는 태평양전쟁 말 궁지에 몰린 광기의 일제 군부가 젊은 청년 병사를 비행기에 태워 미 함정을 자살공격하도록 한 행위와 거기에 동원된 병사를 말한다. 바다에서 1인용 어뢰정을 타고 미 군함으로 돌진했던 ‘가이텐’과 함께 전쟁사에서도 가장 비인도적이고 잔혹한 공격 방법으로 꼽힌다. 지란은 당시 가미카제 특공대가 출발했던 비행기지가 있던 곳인데, 이곳 등에서 출격해 희생된 특공대는 모두 1036명이나 된다. 이 중에는 조선인 대원 11명도 포함되어 있다. 이름이 확인된 333점에는 조선인 대원의 것도 들어 있는 만큼 우리 정부도 제3자처럼 개탄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일본의 후안무치와 몰역사성을 지적하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당사자로서 적극 나서야 한다.
 
시모이데 간페이 시장은 세계유산 등재 추진 배경에 대해 “내년에 전후 70년을 맞아 특공대원의 메시지를 널리 알려 전쟁의 비참함과 전쟁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20살 미만의 조선인을 비롯한 순진한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몬 것에 대한 자성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고 전쟁의 비참함을 운운하는 정신 상태가 놀라울 뿐이다. 마치 아베 신조 총리가 태평양전쟁의 에이(A)급 전범을 합사해 놓고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하고, 다시는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짐하기 위해 갔다고 궤변을 늘어놓는 것을 꼭 빼닮았다.
일본의 뻔뻔함은 여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의 상징인 하시마(일명 군함도)도 메이지시대 산업혁명의 유산이라는 명목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해달라고 신청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곳은 조선인 강제징용자 122명이 숨진 곳이다. 일본으로서야 산업혁명의 상징일지 모르지만 우리로서는 식민지 시대의 고통과 한이 사무쳐 있는 장소다.


[사설] 여야 정치권의 기만과 무능

● 칼럼 2014. 2. 17. 16:12 Posted by SisaHan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의 축소·은폐 지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 이후 정치권이 특별검사제 도입 문제를 놓고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민주당은 “특검을 통한 재수사만이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새누리당은 “재판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특검을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일축하고 있다. 특검을 둘러싼 여야의 충돌은 우리 정치의 한심한 주소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진정성 없는 약속, 합의사항의 번복, 책임 방기, 뒷북 정치 등 각종 고질병이 낳은 씁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여야는 지난해 12월3일 정국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특검의 시기와 범위 문제는 계속 논의한다’는 내용을 분명히 포함시켰다. 그렇지만 당시부터도 이 문구의 해석을 놓고 여야는 각기 딴소리를 했고, 새누리당은 “특검 실시를 합의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합의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곧바로 약속을 깨버린 셈이다.
문제는 새누리당보다 오히려 민주당에 있다. 웬만큼 치밀한 전략이나 단호한 결기로는 새누리당의 몽니를 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민주당은 아예 손을 완전히 놓아버렸다. ‘특검은 이미 물 건너갔다’는 말이 나오도록 민주당 스스로 행동한 것이다. 그러다가 김용판 전 청장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오자 뒤늦게 특검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래서야 특검의 동력이 생길 리 없다.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특검이 도입돼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현직 대통령이 사건의 관련 당사자라는 점에서 검찰의 독립성을 기대하기 어려운데다, 국정원뿐 아니라 국군 사이버사령부 등 다른 정부기관들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안이다. 검찰 특별수사팀에 대한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의 갖가지 압력과 수사 방해 행위는 사실상의 수사팀 해체로까지 이어져 이제는 공소유지마저 어려울 정도에 이르렀다. 김 전 청장에 대한 무죄 판결은 해당 판사의 편견 및 진실 외면에다 이런 상황이 겹쳐진 결과다.
참으로 답답한 정국이다. 그 속에서 국가기관 국기문란 행위의 진실을 밝힐 기회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가고 있다.


[칼럼] 그들만의 “우리”

● 칼럼 2014. 2. 17. 16:10 Posted by SisaHan
박근혜 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성폭력을 큰 범죄로 규정하고 엄단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말뿐인가 싶다. 지난해 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소속 검사들과 출입기자단의 송년회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이 처리되는 과정을 보면서 더욱 그렇게 느낀다.
지난달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술자리에서 여기자들을 성추행한 이진한 대구지방검찰청 서부지청장(전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에 대해 ‘감찰본부장 경고’ 처분을 내렸다. 정식 징계에 해당하지도 않는 솜방망이 처분이라며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지난 6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노골적으로 이 지청장을 감싸고돌았다. 비슷한 사건으로 무거운 징계를 받았던 검사와 왜 처분이 다르냐고 묻자, 황 장관은 “우리 이 차장”이라고 언급한 뒤 “모든 상황을 종합 판단해 징계양정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가 말하는 ‘우리’란 과연 어디까지일까?
 
검찰의 성 인식은 무척 낙후돼 있다.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부적절한 언행으로 견책, 면직, 감봉, 정직을 받았다고 공개된 검사만 5명이다. 술김이란 핑계로 공적인 관계를 무시한 채 검사, 기자, 변호사를 ‘여자’, ‘몸’으로 대상화했다. 입 맞춰달라 하고, 블루스 추자고 하고, 신체를 어루만졌다. 하지만 비슷하게 소름 끼치는 일을 겪은 피해자들은 혼자 끌탕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알려진 사건은 빙산의 일각인 셈이다. 그나마 대등한 관계라는 사람들에게 하는 행동이 이럴진대, 일반 국민한테는 오죽할까. 잊을 만하면 터지는 검사 성추문 사건뿐만 아니라, 여성단체들이 해마다 선정하는 ‘여성인권 걸림돌’에도 검사들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성폭력 사건을 연애로 둔갑시키거나 피해자를 ‘꽃뱀’ 취급하고, 고소인의 개인정보를 재판정에서 공개하는 등 비슷한 문제가 개선 없이 반복된다. 내부에 성희롱 예방지침도 있고, 교육도 하지만 학습 효과가 없다. 이런 가운데 터져나온 이번 성추행 사건을 보면, 검찰이 각종 성폭력 사건을 공평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2012년 3월 회식 자리에서 여기자 등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한 검사는 정직 3개월 처분에 사표까지 냈다. 황 장관은 “사건마다 정도나 양질이 다르다”고 하지만, 검사들 내부에서조차 “징계를 받지 않을 정도인 부적절한 신체 접촉과 강제추행에 해당하는 부적절한 신체 접촉의 경계가 무엇인지” 묻는 일갈이 터져나온다.
 
정답은 황 장관이 말한 “우리”의 경계에 있을지도 모른다. 권력자가 친밀한 관계로서 “우리”를 강조하면, 나머지는 배제되고 만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은 줄줄이 좌천됐지만, 사건 축소를 주장하고 ‘살아있는 권력’에 충성한 공안 검사는 성추행을 한 뒤에도 징계 없이 좋은 자리로 갔다. ‘국정원 댓글 직원’은 ‘여성 인권 침해’를 들먹이며 보호해준 반면, 댓글 수사 외압을 폭로한 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은 승진에서 탈락시켰다.
정말 우려되는 건, 권력이 이런 식으로 “우리”한테 알아서 협조하라는 간접명령을 온 사회에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눈 밖에 나면 개인의 안온한 삶은 언제든 배척당하고 승인이 취소될 수 있다는 대사회적 경고, 아니 협박성 메시지다. 이쯤 되면 배제된 사람들이 모여 ‘감시 크라우드소싱’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지청장을 비롯한 문제적 인물들의 행동을 눈여겨보고 정보를 한데 모으는 것이다. 배제의 범위는 갈수록 넓어질 것이고, ‘그들의 우리’가 아닌 사람들이 가진 눈과 귀와 입은 점점 더 많아질 테니까 자료가 부족할 걱정은 없겠다.

< 이유진 - 한겨레신문 문화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