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마다 활짝 핀 봄꽃들을 보며 걷다가, 집에 들어오자 테러 뉴스로 가득 찬 신문을 펼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아니, 괴롭다기보다 뭐라고 꼭 집어 말하기 어려운 혼돈에 사로잡힌다. 어느 쪽이 내가 서 있는 현실인지 확실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감각의 화면에 떠오른 두 이질적 대상을 하나의 틀로 통합하는 인식작용에 착오가 발생하고 있다고나 할까.

문득 박완서 선생의 자전적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한 대목이 떠오른다. 6.25전쟁으로 한창 피난하던 중에 주인공은 밤에는 걷고 낮에는 으슥한 데서 시간을 보내는 고난을 이어간다. 국도 연변 마을은 모조리 불타고 부서져 쑥대밭이 되어 있는데, 어느 날 그는 마을 장독대 옆에 서 있는 바짝 마른 나뭇가지에서 꽃망울이 부푸는 것을 보았다. 목련나무였다. 주인공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얘가 미쳤나 봐” 하는 비명이 새어나온다.
누가 미쳤다는 것인가. 박완서의 통찰이 빛나는 것은 비명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다. 그는 나무를 “얘”라고 의인화한 게 아니라 거꾸로 나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거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비명은 “내가 나무가 되어 긴긴 겨울잠에서 눈뜨면서 바라본, 너무나 참혹한 인간이 저지른 미친 짓에 대한 경악의 소리였다.” 계절이 바뀌고 꽃망울이 부푸는 자연의 질서에 대비될 때 인간의 폭력행위는 명분이 무엇이든 광란임이 분명했던 것이다.

보스턴 마라톤대회를 피로 물들인 테러도 변명의 여지 없는 범죄다. 그것은 모든 테러가 그렇듯 광기의 발로이고 맹목의 소산이다. 그러나 지금 전세계 주류 언론에서 하고 있듯이 범인 형제의 사생활을 들추고 그들의 행동을 극화하는 데만 골몰하는 것은 사건의 전체적 맥락을 은폐하는 결과에 이를 수도 있다. 따라서 진상에 접근하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그들 자신의 발언을 들어보는 것이다. 그런데 형은 죽었으므로 말이 있을 수 없고, 아우도 중상이므로 입을 열기 전에 온갖 추측보도의 홍수에 휩쓸릴 것이다. 이미 그들 차르나예프 형제는 사법적 판단이 착수되기도 전에 어떤 일방적 관점에 의해 절반쯤 악마화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보스턴 테러 자체보다 테러 배후에 있는 구조적 불의에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
보도를 보면 차르나예프 형제는 러시아 국적의 체첸계로서 10여년 전에 미국에 건너와 영주권을 얻었다고 한다. 형은 권투선수이고 아우는 의학도로서, 형제의 기질이 좀 다르기는 하지만 주위의 평판은 비교적 호의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요컨대 그들은 미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해가던 평범한 이주민 청년들이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런 청년들이 이처럼 끔찍한 테러리스트로 변신하게 되었는가. 이 비밀을 푸는 것이 바로 테러를 근절하고 미국이 더 건강한 사회로 가는 길이다.

돌이켜보면 9•11 테러 이후 미국이 했어야 할 가장 요긴한 작업은 상식적인 말로 해서 자기반성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미국이 한 일은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무력침공이었다. 부시 행정부의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는 2011년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침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반대로 미국의 평화운동가 더글러스 러미스는 며칠 전 이라크전쟁 10돌 기자회견에서 “만약 이라크에 정말 대량살상무기가 있었다면 미국 정부는 군대를 투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어찌 됐든 미국 침공 이후 이라크에서는 10만명 이상의 민간인이 죽고 168만명의 난민과 500만명의 고아가 생겨났으며, 한마디로 나라 전체가 박살이 났다. 9•11 테러가 비록 엄청나다고 하지만, 어찌 이라크가 당한 국가적 참화에 비할 수 있겠는가.

강자의 폭압이 지속되는 세계에서 약자들의 저항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보스턴 테러의 근원에 있는 것은 체첸 민족주의도 아니고 이슬람 극단주의도 아니다. 범죄적 세계질서에 대한 비판의 정서야말로 그 뿌리다. 다만 정의에 대한 열망이 테러와 같은 자기부정으로 나타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순진한 소리지만 꽃의 마음으로, 나무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 염무웅 문학평론가 >


▶테러 음모적발을 발표하는 연방경찰(RCMP). 가운데가 제임스 말리지아 치안감.


캐나다선 처음… 연방경찰, 중동 유학생 2명 체포 기소

캐나다 본토에서 처음으로 알카에다와 연계된 테러 모의가 적발됐다고 연방경찰(RCMP)이 22일 밝혔다.
경찰은 이날 토론토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란의 알카에다 조직으로부터 지령을 받아 캐나다 국영 철도인 ‘비아 레일’ 소속 열차를 탈선시키려는 계획을 꾸민 혐의로 몬트리올과 토론토에서 각각 시헵 에세가이에르(30)와 라이드 자세르(35)라는 남성 2명을 체포, 조사한 뒤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사건은 보스턴 마라톤 테러와는 관련성이 없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테러는 계획 단계였으며 즉각적인 위협은 아니었다”며 이들이 겨냥한 열차의 목적지·출발지를 특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아 레일은 미국 철도인 암트랙과 연계해 토론토~뉴욕 펜 스테이션 왕복 노선을 운영하고 있어 미국을 노린 공격을 모의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용의자들은 각각 튀니지, 아랍에미리트 출신으로, 특히 에세가이에르는 캐나다 대학을 다녔으며 현재는 국립과학연구소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테러 용의자 검거는 테러 사건 수사를 위해 경찰·정보기관의 권한을 확대하는 문제를 놓고 국회에서 본격 논의를 하기 직전 이뤄졌다.
제임스 말리지아 치안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들 남성이 “이란의 알 카에다 연계 단체로부터 지도와 지침을 받았지만, 이란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고 생각할 만할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말리지아 치안감은 알 카에다가 이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지는 않았다고도 덧붙였다.
경찰은 이들의 국적, 범행 동기 등에 대해 “캐나다인은 아니지만 캐나다에 상당 기간 거주했다”고만 밝히고 자세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슬람 사회를 대변해 온 변호사 후세인 함다니는 “피의자 중 한 명은 튀니지, 다른 한 명은 아랍 에미리트 출신”이라며 “둘은 모두 이슬람 공동체 지도자 그룹의 일원이었다”고 말했다.
경찰 당국은 이 그룹의 또 다른 일원으로부터 사건 제보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피의자들이 캐나다 유학생이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캐나다 셔브룩대학의 대변인은 “피의자 중 한 명인 에세가이에르가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우리 대학에서 공부했다”고 밝혔다. 캐나다 국립과학연구소 대변인도 “최근에는 그가 이곳에서 박사학위 과정 연구를 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 네트워크 서비스인 ‘링크드인’(LinkedIn)에서 ‘에세가이에르’라는 이름의 페이지를 검색해 보면 그의 프로필과 함께 이슬람 신앙증언이 새겨진 검은색 깃발 사진이 뜬다.
이번 검거 활동은 RCMP가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토안보부 등과 공조하고 있는 대테러 공동작전 ‘스무스’(SMOOTH)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제니퍼 스트라찬 총경은 “경찰이 지난해 8월부터 이들을 주시해온 결과 열차와 철도를 관찰하는 등 테러 공격을 개시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온 것으로 판단했다”며 검거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적발 당시 테러 모의 단계여서 즉각적은 위협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스페인 정부도 23일 알카에다의 북아프리카 지역 지부인 ‘마그레브’와 연계된 테러 용의자 2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용의자들은 알제리, 모로코 출신인 것으로 전해졌다. 스페인 정부는 체포된 이들의 경력이 보스턴 마라톤 테러 용의자들과 비슷하다고 밝혔으나 세부 사항은 밝히지 않았다.
< 이유주현 기자 >

 

그리운 아들아…


3.15 부정선거에 맞서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 민주혁명 53주년 기념일인 지난 19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 4.19 민주묘지 앞에서 아들을 그리며 눈물을 닦고 있 한 시민. 그러나 이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자꾸 줄어 잊혀져가는 현대사가 되고 있다.
대학가의 경우 중간고사 기간과 겹치는 등 많은 학생들의 무관심 속에 기념행사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대학가에는 서울북부대학생연합이 개최하는 마라톤 행사를 제외하면 대학 캠퍼스 안에서 학생들이 4.19를 체감할 수 있는 행사는 드물었다. 4.19에 앞서 행사를 마련한 학교도 서울대와 고려대, 경희대, 중앙대, 국민대 등 5곳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