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제3차 핵실험을 빌미로 2015년 12월까지 미국이 행사하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시기를 다시 연기하자는 주장이 솔솔 고개를 들고 있다. 연기론이 제기되는 상황이나 논리가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와 너무 흡사하다. 당시에도 북한이 핵실험을 한 뒤 연기론이 나오고 다음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2012년 4월로 돼 있던 환수 시기를 연기했다. 이번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5월 초 미국 방문을 앞두고 이런 주장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전작권 전환 추진 주역이었던 버웰 벨 전 한미연합사령관까지 가세해 일부 정치권과 군 주변의 연기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북한의 핵 능력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계속 전시작전권을 행사하는 게 유리하다고 말한다.
 
북한 핵위협에 맞서 억지력을 강화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북한이 함부로 도발하지 못하도록 동맹을 강화하고, 다양한 군사적 억지 수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전작권을 행사하게 되면 대북 억지력이 약화할 것이라는 논리는 너무 조잡하다. 전작권 환수 연기로 얻는 이익만 생각하고 그로 인해 잃는 것은 생각치 않는 단견이다.
전작권은 유사시에 한 나라 군대의 작전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다. 한 나라의 주권을 상징하는 척도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지원하기 위해 온 명나라군이 조선의 군권을 쥐고 횡포를 부린 역사적 경험만 돌이켜봐도 한 나라가 군권을 스스로 행사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더구나 미국은 해외 미군의 ‘첨단 기동군화’라는 자기 필요에 따라 전작권 전환을 꾀하고 있다. 상대가 주지 않겠다고 하는 주권이라도 우리 것이니 달래야 정상인데, 주는 것도 안 받겠다고 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전작권을 환수해야 우리의 대북 억지력이 더욱 강화된다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금 미군이 전작권을 행사하는 상황에서는 연평도 포격과 같은 사태 때 자체적으로 보복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되어 있다. 우리의 판단이 아니라 미군의 판단에 따라 작전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군사 주권이 걸려 있으며 대북 억지력 약화와 크게 상관없는 전작권의 환수 시기 연기론에 휘둘려선 안 된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북한 핵이 존재하는 한 우리나라는 영원히 전작권을 가질 수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기 군대를 지휘통제할 태세가 되어 있지 않은 나라의 군대로는 아무리 동맹이 강고해도 상대에게 두려움을 줄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구원’ 줄고 ‘축복’은 늘어

● 교회소식 2013. 4. 27. 19:30 Posted by SisaHan

한국인들 ‘교회 다니는 이유’ 물으니…
‘구원’ 줄고 ‘축복’은 늘어

한목협 2012 의식조사
기독교인수 정체상태
목회자 인격·인성 기대
팽창주의·분열 등 비판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대표회장 전병금 목사)가 19일 ‘한국 기독교인의 현재와 미래를 말한다!’는 주제 모임에서 한국인의 종교 생활과 의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한목협이 지난 해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만 18세 이상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각각 1,000명을 7대 도시 지역별 비례할당 후 무작위 추출해 1개월간 개별 면접했고, 종교인구 파악을 위한 조사는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5,140명을 대상으로 했다.
 

▣ 교인 수, 기독교 '정체' / 천주교 '증가' / 불교 '감소'

<종교현황> 조사 결과 ▲한국의 종교인 비율은 1980년대 급격히 증가했고, 1990년대 완만히 증가하다가, 2000년대는 정체현상을 보였고, 최근에는 감소추세로 돌아섰다 ▲종교별로는 천주교만 계속 비율이 증가하고 있고, 불교는 감소하고 있으며, 기독교는 정체되어 있다 ▲기독교는 수도권(서울 27.9%, 인천/경기 26.9%)과 호남(24.7%)에서 교세가 강한 반면, 영남권(대구/경북 13.5%, 부산/울산/경남 14.3%) 및 강원(14.0%)에서는 매우 약하다 ▲교육별로는 기독교인의 학력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재 이상’의 종교인은 기독교 24.8%, 천주교 10.9%, 불교 15.9% 순이었다.
▲기독교인의 가족 간 종교 일치율은 상당히 높고, 가구주 기준으로 볼 때 특히 그러하다 ▲기독교로의 종교 전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최근 종교간 이동은 높지 않다 ▲각 종교인은 자신의 종교에 대한 충성심이 더 강해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타종교에 대한 전도는 매우 어려워졌다 ▲종교간 이동은 기독교(불교 69.6%)와 불교(기독교 78.8%) 사이에서 많이 이뤄졌다 ▲비기독교인 가운데 개종 의향자는 거의 없으며, 비종교인이 종교를 가질 가능성도 매우 낮다. 이에 따라 앞으로 선교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신앙의식> 조사는 ▲한국 종교인들은 무엇보다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독교인의 경우 신앙의 이유가 ‘구원, 영생’이라는 응답은 1998년 41.7%에서 2012년 38.8%로 낮아진 대신에, ‘건강, 재물, 성공 등 축복’이라는 응답률은 같은 기간 6.5%에서 18.5%로 높아져 물질주의의 만연과 세속화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기독교인의 신앙의식은 높은 편이지만, 전보다 약해지는 경향이다 ▲기독교인을 포함한 한국인의 종교, 종교 교리에 대한 의식을 보면 혼합주의적이며 무교적 성향이 강해졌다 ▲한국인의 신앙은 현세지향적인 경향이 있다.
<기독교인의 교회생활>의 경우 ▲기독교인 가운데 교회에 나가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주로 목회자와 교인들에 대한 불신 때문이며, 그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헌금을 잘 내는 편이다. 1/4 이상이 정확하게 십일조 헌금을 낸다. 그러나 헌금은 대개 교회의 운영과 유지를 위해 쓰이고 있다 ▲사회봉사/구제를 위해 헌금이 쓰여야 한다는 비율은 감소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1주일 평균 48분 정도 성경을 읽으며, 하루 평균 24분 정도 기도한다 ▲찬양보다는 찬송가 중심의 예배를 더 선호한다.
▲회귀분석 결과 교인들의 소속교회 담임 목회자 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권위주의적이지 않음(영향력 26.2%)’, ‘나에 대한 이해’, ‘설교 능력’, ‘지도력’, ‘물욕 없음’, ‘행정 관리’ 순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교인들이 담임 목회자에게 기대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격, 인간성, 그리고 관계라는 것을 말한다. 이 결과는 ‘리더십’과 ‘설교 능력’이 가장 중요했던 2004년 조사 결과와는 다른 것이라 주목된다.


▣ “기독교, 대사회적 역할 잘 하지만 영적 해답 못 줘”

<한국교회의 위상 및 평가> 조사에서는, ▲기독교 비판의 내용은 기독교가 구제/봉사 등 대사회적 역할은 어느 정도 잘 하고 있으나, 지도자의 자질은 가장 떨어지고 개인적인 영적 문제에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으며, 교세 확장에만 관심이 있고, 지나치게 헌금을 강요하며, 규율을 너무 엄격하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교세 확장에 치중하고 헌금을 강요한다는 데는 기독교인들도 비판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종교인은 천주교, 불교, 기독교 순으로 신뢰하고 있다 ▲한국교회 목회자에 대한 기독교인의 평가는 다소 높은 편이다 ▲목회자 만족도에 미치는 중요한 요소는 주로 목회자의 도덕성이다 ▲비기독교인의 교인 신뢰도는 19.8%, 목회자 신뢰도는 23.6%, 교회 신뢰도는 28.5%에 불과하다 ▲불교인과 비종교인의 기독교 신뢰도는 더욱 낮다.
 
▲비기독교인은 주로 언론 매체를 통해 한국교회 활동에 대해 정보를 얻고 있기 때문에 언론에 비친 기독교인(목회자, 교인)의 이미지가 매우 중요하다 ▲교회의 양극화 현상에 대해서는 기독교인 다수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목회자 납세에 대해서는 절반 정도가 찬성하지만, 교회 세습에 대해서는 다수가 반대하고 있다 ▲여성 목회자나 장로 제도에 대해서는 아직도 거의 절반이 반대하고 있다 ▲한국 교회의 문제에 대하여는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의 생각이 비슷하다 ▲한국교회가 극복해야 할 문제는 팽창주의(성장 제일주의), 교파분열, 목회자의 낮은 도덕성, 개교회주의, 세속화 등으로 나타났다.
<일반적 생활의식 평가> 를 보면 ▲일상생활 만족도는 기독교인이 높다 ▲기독교인은 사회봉사 활동과 기부금 헌납을 더 잘 하고 있다 ▲오늘날의 여러 가지 윤리 문제에 있어 기독교인이 가장 보수적이지만, 과거보다는 상당히 개방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기독교인은 불교인과 함께 이념적으로 상당히 보수적이다 ▲기독교인은 인생에서 종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옛날에 게으르기로 소문난 농부가 있었습니다. 모두 밭으로 일하러 간 후, 그 게으른 농부만이 남아 빈둥거리다가 대청마루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 농부는 게슴츠레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간 큰 도둑이 담을 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농부는 “어어, 도둑이네! 저놈, 담장을 넘어 마당에 들어오기만 해봐라” 중얼거리며 다시 잠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내 다시 “쿵”하는 소리에 농부가 졸린 눈을 떠보니 도둑이 마당을 살금살금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농부는 “집안에 들어오기만 해봐라” 중얼거리며 다시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도둑은 살금살금 집안으로 들어와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농부는 잠에 취한 채 “저놈이 안방으로 들어가네. 뭐 가지고 나오기만 해봐라” 속으로만 중얼거렸습니다. 얼마 후 한 보따리 짊어지고 대문을 열고 나가는 도둑의 뒷모습을 보면서 잠꼬대처럼 농부는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이놈, 다시 오기만 해봐라”

이 이야기는 참 재미는 있지만 인간 게으름의 단면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게으른 자에 대한 많은 예들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특별히 잠언 22:13에서는 게으른 자를 “밖에 사자가 있다. 나가면 나는 그 사자에게 찢겨 죽을 것이다” 하면서 집안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이 글이 기록될 당시는 농경 사회였으므로, 밖으로 나가지 않고는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집안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도, 장사를 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계속 빈둥빈둥 놀면서 도무지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은 게으른 사람이 일의 의무를 회피하는 방식에 시선이 모아져 있으며, 그 회피하는 방식은 바로 핑계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게으른 사람들은 이렇게 핑계를 대는 것일까요? 왜 게으른 삶을 정당화하고자 끊임없이 변명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본질적으로 잘못된 자기 사랑에 깊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게으른 사람은 자신의 삶의 태도의 옳지 못함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그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따라 충실하게 살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자기 사랑은 잘못된 방식으로 자신을 위하는 부패한 성품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옹호해 주어야 할 육체의 요구와 죽이고 눌러야 할 정욕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삶 가운데 끊임없이 우리의 발목을 붙드는 잘못된 자기 사랑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 보다 자기 자신을 더 위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인간의 게으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얻는 보람보다, 지금 당장 좀 더 편하게 살고자 하는 자기 자신의 육적인 요구를 붙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간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결코 온전히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향한 온전한 사랑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인생의 위치와 목적, 그 하나님께 받는 사랑의 정체, 그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행복, 그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창조된 자신을 분명히 이해하고 살아갈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영적으로 변화 받아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사랑하셨는가를 깨닫게 되면 우리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변화되기 마련이고, 온전한 자기 사랑도 그 안에서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잘못된 자기사랑의 표현! 게으름! 이제, 이 게으름에서 벗어나 새롭게 봄을 맞이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최유민 목사 - 생활성결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