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여성운동” “성차별에 말려든 것”‥전세계로


“우리는 슬럿(헤픈 여자)처럼 입을 권리가 있다.”
캐나다에서 시작한 ‘슬럿워크’(SlutWalk)가 점차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과연 새로운 여성운동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지난주 영국 카디프, 뉴캐슬, 에든버러 등에서 슬럿워크가 열린 데 이어 이번 주말 런던에서는 최소 수천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행진이 계획돼 있다고 영국 ‘가디언’이 전했다. 4월3일 토론토에서 시작된 슬럿워크는 벌써 미국,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등 30여곳에서 진행됐고, 앞으로 열릴 예정인 곳까지 더하면 100여곳에 이른다고 슬럿워크 누리집(slutwalktoronto.com)은 밝히고 있다.

지난 1월 토론토 요크대학에서 열린 ‘안전포럼’에서 경찰관 마이클 생귀네티가 “(성폭행)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여자들은 슬럿처럼 입지 말아야 한다”고 한 말이 이 새로운 여성운동을 촉발시켰다. 이 말은 성폭행의 책임이 여성에게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고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 다음달 로버트 듀어 판사가 성폭행 사건에서 ‘피해자의 옷차림이 피고에게 잘못된 인상을 줬고, 피고의 잘못은 단지 여성이 (성행위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라는 취지로 피고에게 벌금형만을 선고한 것이 캐나다 여성들을 폭발시켰다. 토론토 여성 3000여명은 4월3일, 말 그대로 슬럿처럼 입고 다운타운을 행진했다.
이 운동은 여성의 ‘슬럿처럼 입을 권리’를 포함한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운동으로 발전했고, 전세계 여성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이건 내 몸이고, 내 맘이야”라는 구호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이들은 아예 슬럿이라는 말의 뜻을 바꾸기를 원하고 있다. 미국 정신분석학자인 수지 오바크는 영국 BBC방송에서 “슬럿이라는 말은 단지 여성들이 성적 욕구를 드러냈다는 이유만으로 선입견을 갖게 하는 말”이라며 “이 말에서 비꼬고 야유하는 의미를 제거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슬럿워크는 여성계 내부에서도 논란에 휩싸여 있다. 미국에서 활동중인 게일 다인스나 오스트레일리아의 멀린다 라이스트 등 유명 여성학자들은 슬럿이라는 용어 자체가 여성을 ‘마돈나와 창녀’로 나눈, 오랜 역사를 가진 성차별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다인스는 ‘가디언’투고를 통해 “여성들은 슬럿이라고 불려질 권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성폭력을 비난하기 위해 거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어제 동생 박지만씨와 삼화저축은행 신삼길 명예회장의 관계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본인이 확실히 밝혔으니 그걸로 끝난 것”이라며 더이상 해명이 필요없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박씨가 직접 해명한 것도 아니고, 친박 의원들이 전언 형식으로 “친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누나에게 해명했다더라”고 말하는 것으로 적당히 넘어갈 사안은 분명 아니다.
지금까지 야당과 언론을 통해 제기된 의혹은 “신씨와 박지만씨,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이 아주 긴밀한 관계”이고 “박씨 부인 서향희씨는 삼화저축은행 고문변호사였다가 삼화저축은행 사건 직후 사임”했으며, “박씨는 신씨가 연행되기 두 시간 전에도 같이 식사를 했고, 구속 뒤에는 면회도 몇차례 갔다”는 것이다. 친박 의원들도 “박씨와 신씨가 58년생 동갑으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는 것과 면회 사실 등은 시인하고 있다. 다만 “로비를 하거나 비리에 연루된 사실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신씨의 행태에 비춰보면, 이런 해명을 그대로 믿으라는 것은 무리다. 그는 임종석 전 민주당 의원 보좌관에게 매달 300만원씩 1억원,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의 동생에게도 매달 500만원씩 1억8000만원을 전달한 것으로 문건에 나와 있다고 한다. 신씨는 삼화저축은행 사외이사였던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에게도 4년간 매달 300만원씩 건넸다. 신씨가 자선사업가도 아닌데 아무 대가 없이 정치권에 돈을 뿌렸을 리는 없다. 더구나 올해 1월 신씨가 곽승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장, 이웅렬 코오롱 회장 등과 만난 뒤 삼화저축은행이 우리금융지주에 인수돼 살아났다는 주장도 있어 그를 둘러싼 의혹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다. 동생 부부가 이런 정도로 비리의 핵심 인물과 각별한 사이였는데도 전화로 몇마디 물어보고 “아니라고 하니 그걸로 끝”이라며 국민에게 그대로 믿으라는 것은 매우 오만한 태도다. 박씨가 그 정도 친한 사이라면서 신씨에 대한 구명로비를 전혀 한 적이 없는지, 서씨는 고문변호사라면서 아무 활동도 하지 않았는지, 돈은 얼마를 받았는지 등 미심쩍은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더구나 검찰이 한창 수사중인 상황에서 “그걸로 끝난 것”이라고 선을 그어버리면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중앙지검은 여러차례 권력의 그림자도 밟지 않고 비켜 간 전력이 있다. 이번에는 ‘미래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뭉개려 해선 안 된다. 박 전 대표도 수사에 영향을 주는 발언은 자제해야 한다.

미국 정부가 오는 8월 임기가 끝나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 후임으로 성 김(51) 6자회담 수석대표 겸 대북특사를 내정했다. 그가 차기 대사로 오면, 1882년 양국 수교 이래 129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계 외교관이 주한 미국대사가 된다. 그의 임용은 지난 3월 중국계로 첫 주중 미국대사에 내정된 게리 로크의 사례에 이어, 상대국의 정서와 소통, 일 수행 능력을 중시한다는 버락 오바마 정부의 독특한 외교관 임용 스타일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미국 외교관인 그가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의 독특한 이력과 능력이 특히 최근의 경색된 북-미 및 남북 관계 개선에 어떤 힘을 발휘할지 기대를 걸게 한다. 한편으론 그가 미국의 대북 및 동아시아정책 일선 실무책임자로 오래 일해왔기에 앞으로 새로운 솜씨를 보여줄지 의구심 또한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민 1.5세대로, 두 나라 모두와 교감할 수 있는 정서의 소지자인 내정자는 역대 어느 대사들보다도 더 큰 소통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 미국의 대북정책 일선 실무책임자로서 미국 조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은 대북관계 전문가다. 바로 이 점이 특히 기대를 걸게 한다. 2003년 주한 미국대사관 1등 서기관이 된 뒤, 한국계 첫 국무부 한국과장, 6자회담 대표 등을 거치면서 10여차례나 방북한 그는 다시 6자회담 수석대표 겸 대북특사로 발탁돼 대사 직급으로 승격됐으며, 오바마 정권에서도 그 임무를 계속 맡아왔다.
그러나 그가 이제까지 대북 전문외교관으로서 능력을 인정받은 것은 실무 차원이다. 6자회담 수석대표와 대북특사로서의 능력은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제대로 발휘할 기회조차 없었다. 이제 주한 대사직까지 초고속 승진한 그가 실무 차원 이상의 지휘능력을 어떻게 발휘할지 지켜볼 일이다.

짚어둘 것은, 주한 미대사의 긴요한 역할들 가운데 하나는 한국 사회 여론을 편견 없이 고루 청취해서 본국 정부에 전달하는 일이다. 대북정책의 경우 집권세력과는 다른 시선과 주장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음에도 최근 미국의 귀는 한쪽으로만 열려 있었다. 그래서는 제대로 된 사실을 토대로 한 올바른 관계를 바랄 수 없다. 성 김 내정자는 자신의 성공적인 대사직 수행을 위해서도 새겨듣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