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지난달 12일 발생한 농협 전산망 마비 사태의 범인으로 북한을 지목했다. 이번 사태는 2009년 7월7일과 지난 3월4일 디도스 공격을 감행했던 집단이 장기간 치밀하게 준비해 실행한 것으로, ‘북한이 관여한 초유의 사이버 테러’라는 것이다. 검찰은 북한 당국이 관리하고 있는 아이피 가운데 하나가 이번 공격에 사용됐다는 점 등을 그 근거로 들었다. 일부 보안 전문가들은 이런 검찰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사이버 테러를 당할 정도로 우리의 보안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다.

이번 농협 사태는 관공서 등 다수의 누리집(홈페이지) 운영을 일시적으로 방해하는 기존 디도스 공격과 달리 특정 기관에 대해 공격을 집중하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나타났다. 수백대의 좀비피시로 데이터 과부하를 일으켰던 것과 달리 장기간 조종한 좀비피시로 정밀 타격을 가한 것이다. 좀비피시에서 공격 명령이 내려지면 유기적으로 연결된 프로그램이 순차 공격을 하는 구조로 설계돼 농협 전산망은 데이터 일부가 영구 유실될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검찰의 발표대로 북한이 이러한 사이버 테러를 주도한 것이라면 이는 무차별적인 도발로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마땅하다.

하지만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짓기에는 여전히 미심쩍은 점이 없지 않다. 검찰은 상당한 규모의 인적·물적 지원 없이는 실행하기 어려운 범죄라는 점도 북한의 소행을 뒷받침한다면서도 공격의 실체를 명확하게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보안 전문가들은 아이피 조작이 가능한 만큼 아이피만 가지고 농협 사태의 범인이 이전 디도스 공격과 동일범이라고 하기엔 근거가 약하다고 지적한다. 또 앞선 디도스 공격도 북한이 개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정황적 결론일 뿐 확정된 사실은 아니다. 검찰은 이러한 의문을 해소해야 한다.  이번 사태로 보안 시스템과 보안 의식이 얼마나 허술한지 여지없이 드러났다. 지난해 9월부터 원격조종으로 좀비피시를 만들어 입력 정보를 낚아채고 도청 프로그램까지 사용됐는데도 보안당국과 농협 모두 감쪽같이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이나 디도스 공격을 당하고도 차단했다는 아이피를 통해 또 공격을 당했다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보안당국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 당국과 주요 기관 역시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어제 파키스탄 은신처에서 미군에 사살당했다. 2001년 9.11 테러를 일으킨 지 10년 만이다. 이로써 지난 10년간 세계를 흔들어온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도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구심점을 잃은 알카에다 조직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빈라덴의 죽음이 테러 없는 세상을 향한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기원한다.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테러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3000여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9.11 테러의 주모자를 끝까지 추적해 응징한 미국의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빈라덴 사살을 두고 “정의가 이뤄졌다”고 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선언에 대한 평가는 아직 유보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빈라덴의 죽음이 테러조직의 와해로 직결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으로 테러 없는 세상이 저절로 실현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알카에다의 전사 빈라덴을 만든 것은 사실상 미국이다. 1979년 소련이 중앙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 아프간을 침공하자 미국은 이슬람 무장세력을 양성해 대적했다. 빈라덴은 그 가운데 하나였다. 이슬람 근본주의에 경도된 그가 반미로 돌아선 것은 1991년 걸프전을 계기로 미국이 여군이 포함된 30만의 미군을 이슬람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장기 주둔시킨 데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 그와 알카에다는 1993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 폭파 기도에 이어 1998년엔 케냐와 탄자니아 미국대사관을 폭파했다. 9.11 사태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여기엔 서방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양극화와 아랍세계의 좌절감도 큰 영향을 끼쳤다.

9.11 사태 직후 미국은 탈레반 정권에 빈라덴의 인도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아프간을 침공했다. 탈레반 조직도 중앙아시아 원유들을 인도양으로 실어내는 아프간 내 송유관 건설을 위해 미국이 양성한 세력이다.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란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고, 이에 맞선 테러가 빈발했다. 결국 미국은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며, 자신이 뿌린 씨를 스스로 거둔 셈이 됐다. 이것이 9.11 사태 이후 전개되는 불안정한 세계의 실상이다.  빈라덴 사살이 미국에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거둔 최대의 성과이자 그 전쟁을 정당화해주는 사건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그 성과에 우쭐해 자신의 힘을 더욱 확장하는 계기로 활용해선 안 된다. 오히려 대내외 정책과 테러와의 전쟁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특히 아프간 침공 명분이 사라진 만큼 신속히 아프간에서 철군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 아프간 파병부대도 조속한 철수안을 마련해야 한다.

[칼럼] 원숙한 삶의 길을 향하여

● 칼럼 2011. 5. 5. 14:36 Posted by Zig

인생이 그래도 무엇인가 알만하려면 적어도 50은 넘어야 한다는 말을 숫하게 들어왔다.
그러나 이 말에 동의하기까지 이순을 넘어서야 겨우 할 수 있었으니 철이 조금은 난 건지 모르겠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물의 이치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면서 다듬을 것은 더 다듬고 포기 할 것은 포기하며 한 우물이나마 정성스럽게 파서 맑은 물 나올 때 까지 인내해보자는 마음이 생긴다. 남의 실수를 관용으로 받아줌은 실수 많았던 지난날의 부끄럼 때문이오, 비판의 눈이 이해하려는 눈보다 날카로웠을 때는 남에게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이 진리가 내 것이 안 되었기 때문이오,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를 보고 질타했던 것을 뼈아프게 후회한 것은 내가 그 꼴을 당하고 난 후 몸살을 겪고 난 경험 때문이었다. 과거의 노예가 된 사람은 불행을 만들고 현재에 만족한 사람은 어리석게 살지만 먼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은 지혜와 행복을 얻는다는 어느 분의 말이 살면서 조금씩 알겠더라.
때가 되어야만 이해되고 현실감이 생기는 일이 있다.

나이테가 바로 그것이다. 나이테가 굵어질수록 관념적으로만 이해되었던 것이 구체적인 사실로서 우리 앞에 나타난다. 비로소 어른들이 일러주고 말해주었던 당신들의 경험 이야기가 피부로 전달되면서 아 ! 그래서 그런 말씀들을 어른들이 들려주었구나. 내가 어른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품위와 맵시를 잃지 않고 쓸모있는 사람으로 늙어갈 수 있는 길을 걷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의 소원이 아닌가.
멋있게 창의적으로 완숙의 미를 최대한으로 발휘하며 연륜의 테를 쌓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국이 낳은 노인학의 선구자이며 의사요 병리학자요 문필가인 알렉스 콤퍼트 박사는 그의 저서 「A Good Age」란 책에 수북이 실어 놓았다.
20세기의 거장으로 영향력있는 사상가요, 철인인 버드란트 럿셀이 핵무기 반대 캠페인에 앞장서서 일하다 사임한 것이 그가 88세였던 1962년이었고 그의 자서전이 출판된 것은 1969년 그의 나이 95세 세상 떠나기 1년 전이었다. Cecil B. Demille은 헐리우드 창설자로 영화 감독이며 동시에 연출가이기도 했다. 그가 ‘The Greatest Show on Earth’란 영화를 감독하여 아카데미 수상을 받은 것이 71세였던 1952년이었고 4년 후엔 그의 70번째 영화가 된 그 유명한 ‘십계명’을 만들어 냈다. 위대한 현대 미술의 거장 피카소는 91세로 그가 운명 할 때까지 젊은이들이 따를 수 없는 힘찬 정력으로 16세 첫 번 전시회를 가졌을 때부터 75년 동안 그림과 조각 드로잉 등 불멸의 작품을 창작해 냈다.

역사적인 인물에서만 찾아 볼 필요도 없다. 오늘 날 우리와 함께 같은 하늘 아래서 숨 쉬고 있는 우리들의 어른들이 계시다. 9순에 접어드신 종교음악. 동요작곡가의 거장 박재훈 박사는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공연을 목표로 오페라 ‘순교자 손양원 목사’작곡에 노혼을 불태우고 계시다. 그분에 의하여 한국의 성자로 불리우는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가 오페라로 재생되고 있다. 나의 청년시절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양아들로 받아드린 손양원 목사님의 일대기 ‘사랑의 원자탄’을 무척이나 감명깊게 읽었던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또한 우리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신 87세 되신 이상철 목사님이 계시다. 2011년 1월 그분의 자서전 출판 기념회장에서 보여주신 그분의 삶의 일대기는 현재 이민을 살고 있는 동포사회에서나 캐나다 교계의 지도자로 우뚝 서 계심을 극명하게 들어 올려놓는데 손색이 없었다. 문필가로서의 예지로 가득한 글은 후학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주시기도 한다. 지금도 당신이 필요하다면 달려가시는 홍안(紅顔)의 백발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노욕(老慾)은 추하다. 그러나 원숙한 삶의 모습은 향기를 발산한다.

<민혜기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