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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1.08 통일위한 동포의 몫
  2. 2016.01.08 조국발전 동포의 몫
  3. 2016.01.08 사회주류 도약의 길
  4. 2016.01.08 동포경제 번영의 길

통일위한 동포의 몫

● 칼럼 2016. 1. 8. 21:05 Posted by SisaHan

조국 평화적 통일에 동포들 역할 막중
북 인권·핵문제 등 해결에 관심,동참을

시사 한겨레 신문에서 창간 10주년 신년 특별기획으로 ‘한인사회 100년을 향하여’라는 뜻깊은 자리를 마련하였다. 일반적으로 십년 이상이면 장기계획이라고 하는데 100년이면 말 그대로 백년대계의 멀리 바라보는 통찰력있는 큰 안목이 필요하다. 특히 오늘을 다시 성찰하고 미래의 변화까지 예측을 하여야 하니 쉬운 일은 아니지만 통일에 관해서는 의외로 결론은 명확하다. 통일은 우리의 소원이고 미래이고 희망이고 민족의 소망이요 국가와 민족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백년이 아니고 당장 해야될 일이다. 그러나 빨리 빨리 하고싶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또 해외동포들은 한반도와 지리적 거리로 인한 현실감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특히 2세대로 가면 통일에 대한 인식은 더 멀어져 있다. 한인사회는 지금까지 1세대 이민자가 이끌어 왔지만 백년을 바라본다면 앞으로의 한인사회 주역은 분명히 이곳에서 자란 2세대가 될 것이기에 2세들이 한인사회와 캐나다 사회에 진출하도록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올해가 광복 70년이고 앞으로 30년이면 분단의 한 세기가 된다. 고통의 분단이 적어도 백년이 지나면 안 된다. 이게 바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책임이다. 분단의 책임을 선조들에게 묻는다면 통일에 대한 책임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다. 더 이상 고착화되기 전에 통일이 되어야 한다. 앞으로 30년이면 백년이기에 지금의 1,2세대가 분단 백년이 되기 전에 함께 통일을 해야될 세대다. 그래서 먼 훗날 지금의 세대를 통일세대로 불리워 지길 희망해 본다. 아픈 분단의 현장인 조국의 땅에서 살다온 1세대와 이곳에서 자란 2세대가 함께 사는 이 시기는 앞으로 백년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시기다. 외교부의 2015.6.29자 자료에 의하면 해외이주 신고자 2005년 2만8,707명이 2014년엔 7,257명(한국 귀국 3,561명)이다. 십년 사이에 87%의 해외이주자가 감소되었다. 즉, 앞으로 해외 이주보다 1세대가 한국으로 귀국하는 현상이 더 커질 가능성도 많다. 이러한 추세라면 해외동포 2세의 역할은 여러 면에서 더 커진다. 지금부터 동포사회는 2세대에 대해 정체성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되고 그 핵심은 통일이다.


평화통일을 위해 해외동포들이 나서자!
탈북민에게 북한주민의 캐나다에 대한 인식을 물어 보면 캐나다는 중립국이라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한다. 캐나다는 과거 수십년 동안 수많은 난민들을 신속하게 받아들여 정착시켜왔다. 1990년대 코소보 난민위기 때에는 5000여명을, 1972년 우간다에서 5000여명을, 1979~1980년엔 베트남 보트 피플 6만명을 받아 들여 2차 세계대전 이후 총120만명 이상의 난민들을 정착시켰고 이번에도 시리아 난민 2만5000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을 보면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공헌도가 큰 나라이기에 북한에서도 캐나다는 좋은 국가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평화통일로 가는 길에 캐나다는 미국과 차별화된 역할을 할 수 있기에 캐나다 동포들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캐나다는 이민자 국가이면서 복합문화를 인정하는 국가이기에 한국과 같이 분단된 민족이 모인 한인사회는 정체성이 더 많이 요구된다.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본 받을 수 있도록 해외동포들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민자들은 살고있는 나라의 문화에 동화되는 거소주의 성향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3세대가 지나면 거주국의 현지화가 되기에 정체성의 문제는 앞으로 한인사회의 중요한 과제로서 대책이 필요하다.
이제 분단의 고통을 더 이상 후손에게 물려 줄 수 없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세대가 해야될 과제이자 숙명이다.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을 해외동포들이 주도 하였듯이 평화통일 또한 해외동포들이 주도해서 만들어야 한다. 평화통일 전에 선결해야 될 두 가지의 과제가 있다.


하나는 북한인권 문제다. 2015.12.17.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북한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 ICC에 회부하도록 권고한 북한인권 결의안이 2년 연속 유엔총회 본회의를 통과하였고 인권위에서는 “북한 당국이 유엔 인권 메커니즘의 권고사항 이행 및 협조, 정치범수용소 폐쇄, 인권침해 가해자 처벌, 탈북자 보호, ILO 협약 가입 및 비준 등을 하루 속히 이행해 북한 주민의 인권이 개선되도록 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힌 것 처럼 캐나다에서도 북한인권협회(회장 이경복)가 주도하는 북한인권법이 제정되도록 캐나다 서부에서 동부에까지 동포사회의 대대적인 제청이 필요하다.


둘째는 북한 핵문제다. 북한의 핵개발은 한반도의 민족간의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와 세계평화를 불안정하게 하고 미국과 캐나다의 본토까지 위협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되어 캐나다에서도 관심이 높다. 북한은 실전적으로 전술적 핵배치가 이미 되었고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사출시험까지 성공하므로써 핵무기의 종합세트를 갖추었다고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북한의 정권은 헌법상 불법거주집단이고 김씨 유일 왕조국가로써 지극히 불안정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김정은의 손에 핵단추가 있다는 것은 국가의 안위가 마치 ‘우연’에 의해서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그래서 한반도의 비핵화는 평화통일로 가기 전에 반듯이 선결되어야 할 과제다.
한반도가 평화통일로 가는 길에 해외동포의 역할은 지극히 중요하다. 거주국에서 한인사회의 역량과 위상이 높아지려면 먼저 바른 국민이 되어야 함께 사는 국민들이 한인을 존중하고 중요한 시기에 한인들의 뜻을 따른다. 바른 국민은 거주 국가가 요구하는 가치체계와 법질서를 존중하고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동참하고 기여하는 것이다. 쉬운 말로 세금 많이 내는 부자가 되고 국민의 권리인 투표에 열심히 참여해서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표현해 주고 자녀교육 잘 시켜서 이 국가에 필요한 인재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민자세대는 문화와 언어의 제한으로 동족 중심의 섬나라에 산다. ‘井底之蛙’(정저지와) 의 우물안 개구리에서 넓은 바다로 1,2세대가 함께 손잡고 앞으로 백년을 바라보며 나가는 한인사회가 되기를 새해를 맞이하여 간절히 바란다.
새해 병신년은 붉은 원숭이 해로써 ‘건강,부귀,명예’를 뜻한다고 하니 동포 여러분 모두가 새해를 맞이하여 성취하시길 기원드린다.

< 최진학 - 민주평통자문회의 토론토 지부 회장 >



조국발전 동포의 몫

● 칼럼 2016. 1. 8. 21:02 Posted by SisaHan

동포 애국심 밑거름 발전… 현실 한숨
이민 경륜·캐나다 선진문화 이전 노력을

신뢰의 신문을 향해 10년을 달려 온 시사 한겨례 다운 발상이라고 여겨지지만, 필자에게 주어진 제목이 너무 큰 것은 물론, 모국이 정의로운 나라로 도약해서 민주적인 선진문화를 확립하는데 캐나다 동포들이 어떤 몫을 해야 할 것인지를 제시하기란 사실 부담스런 일이다.


독일 통일의 교훈: ‘라인강의 기적’을 공부한다면서 독일에 유학간 필자는 동서독간 장벽을 뛰어 넘어 선물, 편지를 교환하는 것이 꿈 세계 같았다. 당시 동아일보 통신원으로 칼럼을 게재한 적도 있지만, 서독이 동독에 관용과 포용의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며 ‘1민족 2국가’를 근간으로 한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을 발전시켜 1989년 11월 통일 성업을 성취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통일 독일이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이 되고 캐나다의 20배가 넘는 100만명의 시리아난민을 받아들이는 점을 보면 유일한 분단 국가로 남은 우리 입장에서 진지하게 연구하고 꼭 본받아야 되지 않을가?


배달민족의 애국심 유전인자: 대학시절 어느 교수가 ‘수많은 타민족으로 구성된 미국인들의 애국심이 매우 큰것 같은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봅니까?’ 라는 필자의 질문에 ‘첫째 국내에서는 노력한 만큼 잘 살수 있고, 해외에 나가서도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게 국가가 잘 보호해 주기 때문이지’라는 대답을 해준적이 있다.
우리 배달민족은 많이 다른 것 같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임금과 관료들이 자기들만 살겠다고 피난했을때 외적에 맞선 농민들이 의병을 일으켜서 나라를 구했다. 일제 침략자들에게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삶의 터전을 강탈당하고 만주 벌판으로 쫓겨간 농민들이 형언할수없는 비참한 새삶을 꾸려가면서도 재정적으로 독립군을 돕고 독립군으로 직접 자원하기도 했다. 역시 일제의 속임수에 빠져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노예노동자로 팔려갔던 조선인들이 미국에서는 물론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우리 배달민족의 애국심과 민족사랑은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사랑에 버금가리만큼 남다른 것 같다. 아마도 우리 민족의 피속에는 애국적 유전인자가 담뿍 들어있음이리라.
그런데 1945년 해방이후 6.25 전후의 혼란기에 위정자들이 국민들의 애국심을 정치적 목적에 악용한 패단때문에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아니 21세기인 오늘날까지도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에서 처럼 그러한 폐습이 연장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의 조국은 남한만인가?: 90년대 중반 북쪽에 ‘사상 최악의 기근’을 만나 수백만명이 아사하고 있을 때 서방세계가 식량원조에 발벗고 나섰을때, 흥청망청 잘사는 남쪽에서는 버리는 음식물만도 1인당 하루 500그람이 넘는데도 굶어 죽어가는 동족을 모른체 외면했었다. 세계인의 눈에 이러한 남북관계와 한국인이 어떻게 인식되었을까?
박정희 개발독재시절 적정임금의 1/3이하를 지급한 노동자 임금착취, 한국의 젊은이들이 독일의 1000피트 지하광산, 베트남의 밀림전쟁터, 중동의 얼사에서 희생적으로 봉사한 덕택에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성취하고 이젠 잘사는 나라가 됐다.
그런데 중일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은 갖가지 도전을 받고 있다. 뒤쫓아 오는 중국의 도전으로 그동안 3대효자 산업중의 하나였던 조선업이 선더미처럼 증가하는 적자로 반토막이 된 것은 노임격차가 그 원인이다. 남북간의 교류협력만이 그 해결책일 것이며, 개성공단이 입증하듯이 남쪽이 북쪽보다 수십배 더 큰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남북이 상호협력을 통한 공생공영의 길을 택하지 않을수 없는 숙명이라 하겠다.
다행스럽게도 2000년 6월 진보적인 DJ 정권이 남북 교류협력의 역사적인 물꼬를 트고 뒤이은 MH정권에서 계속해서 남북공생공영의 터전을 닦았다. 그러나 사상 최악의 무능부패 MB 정권이 분단 55년만에 트였던 남북협력의 물꼬를 다시 막아버리더니, 현 정권하에서도 적대적 대치상태가 더 악화되고 있다.


나누고 보살피는 선진문화사회 지향: 선진화를 추구하려는 한국이 북구나 캐나다를 모델로 삼아야 할가, 아니면 나라의 구석 구석 까지 만연한 갑질행패, 늘어나는 외국인 노동자는 물론 동족인 조선족과 탈북인들 까지 온갖 멸시와 차별을 다하면서 남북이 대치적인 공포정치체재를 계속 해야 할까?
캐나다 역시 유색인종은 물론 앵글로색손 이외의 모든 타민족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던 국가였으나 생산인구의 필요성 때문에 1960년대에 이민법을 개정하여 모든 이민자를 환영하고 복합문화정책을 채택하면서 급변하게 되였다. 82년 획기적인 ‘인권헌장’을 헌법에 추가하므로서 인종차별을 헌법으로 금지한 후 지금은 11살때 아프가니스탄 피난민으로 캐나다에 정착한 ‘몬세프’라는 무슬림 여성 초선의원을 최근 투루도정부에서 31세의 최연소 장관으로 임명할 만큼 널리 포용하는 선진 복합문화국가로 변신했다.


캐나다 한인사회의 역할: 겨우 20만을 웃도는 캐나다 한인사회가 미국의 1/10에 불과하리 만큼 크지 않고 역사도 50여년 밖에 되지 않지만, 70년대의 한국 민주화운동 주도, 남북간의 첫 이산가족상봉이 성사된 2000년도 보다 21년 앞선 79년의 ‘이산가족상봉 사업’ 시작, 북미주에서 가장 먼저 신용조합 및 협동조합운동의 시작, 세계에서 유일하게 교민사회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캐나다 최고인 토론토대학에 한국학과를 성공적으로 설치한 ‘토론토대학 한국학과 후원재단’ 설림-78년, 북미주 최초의 ‘캐나다한인장학재단’설립-78년, 과 같은 사례가 입증하듯 이민1세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함은 물론, 2세, 3세 자녀들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수있게 된것이 캐나다의 포용적인 복합문화사회 덕택이겠다. 이러한 캐나다를 모국이 자진해서 선진화 모델로 삼으면 최상일 것이다.


캐나다 교민사회가 모국의 여러 분야에 스카웃된 전문인들과 수많은 유학생들을 통해서 모국의 캐나다형 선진화 노력에 벌써부터 상당한 보탬이 되고 있으리라. 초대이사장을 역임한 윤택순박사 같은 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매년 30여명의 장학생을 배출함은 물론, 벌써 1.5세대로 주역의 세대교체까지 성공시킨 ‘캐나다한인장학재단’에서는 모국의 포항공대생 2명에게도 각 1만불의 장학금을 매년 지불하고 있다. 이재단에서 벌써 여러해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지도자양성 프로그램’을 크게 보강, 발전시킨다면 현지 캐나다 사회는 물론 캐나다의 선진문화를 모국에 이전하는 역할에도 큰 몫을 하게될 것이다.

< 김병권 - 무궁화사랑모임 창설, 전 평통지부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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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류 도약의 길

● 칼럼 2016. 1. 8. 21:00 Posted by SisaHan

100년 미래를 보면 우리 후손이 주역
배려하고 돕고 밀어주면… 꿈이 현실로

2016년 희망의 새해 존경하는 동포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행복과 만복이 깃드시고, 건강한 한 해가 되시기를 먼저 기원드린다.
 ‘한인사회 100년을 향하여’ 특집 글을 구상하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 곳 한인들은 100년 후에 어떤 삷과 어떤 위상으로 살고 있을지를 그려 보면서 지금 보다는 몇 십, 몇 백배 나은 이민 후세들이 번성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다. 세계적으로 가장 열심히 일하며 두뇌도 우수한 한인들은 틀림없이 이곳 캐나다에서도 ‘민족중흥’을 이루어 복합문화 사회를 선도하는 주류로 자리매김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미래는 점치기 어려우나 과거역사에 대해서는 돌이켜 볼 수 있어 잘 알 수 있다.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흥미로운 영화 ‘Back to The Future’를 떠올려 본다. 우리가 미래를 미리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미래세계로 가서 100년전의 지구로 과거 여행을 떠나보자.
22세기 100년 후에 과거인 지금을 돌이켜 보면서, 이런 일은 이래서 그렇게 되고, 그렇게 않했으면 우리 동포사회나 캐나다, 한국사회가 더 좋았을 텐데 하면서 돌아보면 한편 흥미롭지 않을까?
나는 2116년 미래에서 과거를 와 본다. 그렇게 ‘Back to The Future’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
 
2016년엔 북한에 억류됐던 임현수 목사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큰빛교회의 원로목사로 사목을 하고 있다, 남북통일의 물꼬가 트여서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이산가족의 고통도 굶주림이 없는 사회, 북에서 발목지뢰를 설치할 DMZ도 없다. 종북·친북도 없는 통일된 조국이 되어있다.
컨비니언스 스토어에서는 주류 판매가 허가되어 새롭게 열심히 일하고 있고, 글 쓰는 사람은 글을 쓰며, 연구하는 사람은 연구를, 감투자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은 여전히 눈동자를 돌리며 아직도 허세를 피고 있고, 음식을 만드는 식당에서는 새로운 요리가 개발되고, 좋은 집 짓는 사람은 훌륭한 집을 건축하고 있다.
가진 자는 더 나누고 없는 자는 가진 자로 부터 쟁취나 폭력이 아닌 상호 협력으로 싸움과 투쟁이 없이 노사가 만족해 하고 있다. 붉은 머리띠 동여 매고 굴뚝에 올라가는 일이 없다. 돈 많이 버는 기업이나 재벌들은 수입의 90%를 정부 세금이나 기부금으로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여당이 야당에게 많은 것을 양보하고 야당은 투쟁이나 투정이 없어 여당은 심심해 불만을 터트린다. 대통령은 할 일이 없어 골프만 친다. 공무원은 부정부패에서 모두 벗어나 있어 서로가 약속한 ‘룰’대로 원칙을 지켜나가고 있다. 세월호와 같은 무책임한 침몰도 없다. 감옥은 관광 휴양지가 되어 있고, 법원은 재판 스케줄이 텅 비어 있다.
2020년대 중반기에는 대한민국에서 캐나다로 온 많은 동포들이 토론토로, 오타와로, 밴쿠버로, 캘거리로, 위니펙으로, 에드먼튼, 몬트리올, 핼리팩스에 흩어져 한인 인구가 2백만 명이 넘게 살고 있다. 자연히 한인들의 자력 경제단위가 형성되어 식당도, 의류산업도, 자동차 딜러도, 언론사도, 부동산 사업도, 회계사, 변호사, 여행사, 소규모 첨단산업, 한국에서 진출한 공장, 현지법인, 지상사 등 모든 분야에서 투자 등 경제활동이 왕성하다.
한국인 젊은이들이 정치계에서 캐나다 정책을, 재정을 재단하고, 어르신들은 회장, 의장 자리에서 물러나 서로 양보해 후배들을 적극 밀어주고, 많은 뜻있는 분들이 사회와 국가에 공헌하는 봉사단체나 조직에 적극 참여하여 몇몇 그 사람이 그 사람으로 채워지는 인재 빈곤에서 벗어나 있어 풍요롭고 존경스럽다. 무지한 판단에서 종업원이나 직장 동료를 함부로 쫓아내 버리는 사리사욕에 쌓이지 않게 되어 모두가 안락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 보람을 얻고 저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리더쉽이있는 사람은 리더로서 우리사회를 지켜주고 있고 그렇지 못해 지켜온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 어디엔가 자리 차지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 그래도 아직 조금 남아 있어 보인다. 딱해 보인다…
거리에 세워진 우아한 건물들은 한인 공학도들의 손에 설계된 대로 아름다운 건축물이, 호수 위에는 한국에서 건조된 선박들이, 자동차.비행기는 통일된 대한민국 태극기가 세계 각지에서 휘날리고, 중국의 황사 미세먼지도 한국인들의 손으로 제거해 맑고 투명한 하늘을 열어 놓았다.
 
모두 소박한 나의 꿈이지만 우리 동포들이 열심히 노력한다면 못이룰 꿈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로 화합하고, 단합하여 이웃과 후배와 후손들이 잘 되도록 협력하고 돕고 밀어주면, 우리가 중국이나 다른 주류진출 커뮤니티들을 부러워할 까닭이 없다. 정치든 사회든, 문화예술·경제·체육과 NGO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능력이 부족한 면이 어디있는가. 나는 가장 중요한 힘은 단합과 배려라고 생각한다.
현실로 돌아와 이제 2016년 붉은 원숭이 해를 맞이 하여, 우리 동포사회 모두가 새해에는 더 많은 지혜와 슬기, 재치가 넘쳐 ‘마음이 여유로 가득찬’ 일상의 도약하는 삶을 일궈나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래서 어서 더 많은 우리의 인재들과 2세 3세들이 주류사회에 진출하여 한인사회의 위상이 높아지고 캐나다 사회에서 당당히 인정받고 주도권을 쥐고 나가는 한인사회가 되기를 고대한다.

병신년(丙申年) 새 아침 친애하는 동포들의 만복을 거듭 기원드리며, 한인사회의 정직한 지킴이 시사 한겨레가 창간 10주년을 맞이한 것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기뻐하고 진심으로 축하한다.

< 이진수 - 직전 한인회장, 전 향군 지부 회장 >



동포경제 번영의 길

● 칼럼 2016. 1. 8. 20:57 Posted by SisaHan

곡절 겪었지만 한인사회 괄목할 성장
당분간 경제 어려워도 단결노력이 관건

한인들의 캐나다 이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이후 지난 50여년 동안 캐나다 한인 사회는 경제적으로 많은 발전과 성장을 이루어냈다. 문화, 예술, 학문을 포함한 다른 분야에서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비교적 발전이 저조한 분야는 정계 진출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이민 초기의 한인 이민자들은 거의 맨손으로 캐나다에 도착하여 열심히 일하였다. 그 결과 1980년대 쯤에는 상당 수의 성공한 기업가들을 배출하게 되었고 일반 교민들의 생활수준도 많이 향상 되었다. 한인 경제의 주축을 이루고있는 편의점, 세탁업, 요식업, 식품점, 여행 숙박업, 부동산 중개업 등등에서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효과가 보이는 비교적 순탄한 비즈니스 환경이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예기치 못했던 부동산 시장의 붕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축적해 놓았던 자산을 하루 아침에 날려버리는 경우가 속출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한 부동산 경기는 중앙은행의 지속적인 저이자율 정책에 힘입어 아직까지도 호황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교민경제를 지탱해 주는 커다란 활력소 중의 하나였다. 이와 더불어 꾸준히 증가하는 이민자 수와 어학연수 붐으로 인한 유학생 수의 증가는 교민경제에 한동안 지속적인 성장요인을 제공해 주었다. 1980년대 초부터 캐나다에 진출한 한국계 은행들은 한인 사업가들과 주택 구입자들에게 필요한 자금을 제공함으로서 한인사회 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한인사회 경제발전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하였다. 한인경제의 주축을 이루고있는 편의점 업계가 일요영업 허용, 대형 할인점 체인의 진출, 정부의 담배 판매에 대한 규제강화 등등으로 인하여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여기에 한인 이민자 수의 지속적인 감소가 겹쳐 한인경제가 전반적으로 활력소를 잃게 되었다. 다만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저이자율 정책으로 인한 부동산 시장의 붐은 부동산 중개업의 호황을 지탱해 주어왔다. 그러나, 최근 미 중앙은행의 기준 이자율 상승은 저이자율 시대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어 부동산 시장의 호황이 얼마나 더 지속될 것인지 그 전망을 불투명하게 하고있다.


이 시점에서 한인동포 경제의 앞날을 내다볼 때 단기적인 전망은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다. 우선 캐나다 경제 자체의 단기적인 전망이 밝지 않다. 캐나다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산업 전체가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상태가 좀처럼 쉽게 호전될 것 같이 보이지 않는다는데 있다. 다만 미국경제의 호황과 캐나다 달러 가치의 약세는 캐나다 수출업계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다. 이 수출 증가 효과가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의 하락으로 인한 캐나다 서부지역 경제에 대한 충격을 상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이다. 낮은 유가는 일반 소비자들의 실질소득을 향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나 이로인한 캐나다 달러가치의 하락은 수입물가를 상승시켜 이 효과를 상쇄할 것이다. 새로 들어선 연방정부의 사회간접자본 투자 증가를 통한 경제 활성화 정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생산성 향상을 통한 경제성장 효과를 가져올 것이 확실시 되지만 당장 피부에 와 닿는 단기적인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일년 전에 발효된 한캐 자유무역 협정도 장기적인 효과를 바라볼 수는 있겠지만 당장 그 효과를 기대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경제의 지속적인 호황, 유럽경제의 서서한 회복, 그리고 중국경제의 연착륙, 이 세가지가 현실화 되는 행운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캐나다 경제의 침체가 당분간 계속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낮은 루니 가치가 오랫동안 유지되면 한인 여행객들이나 유학생들이 캐나다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게 되어 동포경제에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새 연방정부로 부터 기대해 볼 수있는 보다 관대한 이민정책도 동포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인 동포경제 활성화를 위한, 그리고 한인들의 장기적인 생황 향상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경제적인 요소뿐 만은 아닌 것 같다. 한인사회 100년을 향한 경제번영의 길을 모색해 본다면 우리가 풀어야 할 몇가지 숙제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첫째는, 동포사회의 단합이다. 캐나다 동포사회는 부끄럽게도 우리 모국의 분열된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이념적인 면에서, 정치적인 면에서, 아니 한인사회 전반에 걸쳐 너무 분열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자기 생각만이 옳고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틀렸다는 생각 자체가 틀렸다는 생각도 때로는 해볼만 하다. 둘째는, 한인들이 단결하여 주류사회에 적극적으로 온 힘을 다하여 진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른 민족처럼 말이다. 예를 들면, 캐나다 인구의 1.5%로서 10%가 넘는4명의 연방장관을 배출한 시크(Sikh)계 인도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한인 동포경제 번영의 지름길은 단합과 노력이다.
끝으로, 시사 한겨레의 창간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앞으로 한인 동포사회와 함께하는 시사 한겨레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 유종수 - 경제학 박사, 공인은퇴-재정상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