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8일 노동과 경제 관련 법안, 테러방지법의 입법에 신중한 야당을 겨냥해 ‘명분과 이념의 프레임에 갇힌 기득권 집단의 대리인’, ‘청년과 나라의 미래에 족쇄’라는 거친 표현을 쓰며 맹비난했다.
전날 여당인 새누리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러 매우 강경한 어조로 법안 처리를 ‘지시’하더니, 그걸로는 성이 안 찼는지 이번엔 야당을 직접 겨냥하고 나섰다.
여야를 번갈아가며 독설을 퍼붓는 걸 보면서, 도대체 박 대통령은 국회를 뭐로 보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나라가 삼권분립의 정신이 작동하는 민주공화국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헌법에서 입법권을 대통령 손에 쥐여주지 않고 국회에 맡긴 건, 권력을 견제하고 균형을 잡기 위해서다. 이것이 민주주의 체제의 기본이고, 이걸 부정하는 순간 왕정과 다를 바 없게 된다. 권력 분산 속에서 대통령이 원활하게 국정을 운영하려면, 국회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설득하려 노력해야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민주당뿐 아니라 야당인 공화당 의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법안을 직접 설명하고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그게 정도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역대 대통령들이 야당 의원과 직접 대화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그래도 정무장관이나 청와대 정무수석을 통해 야당과 수시로 접촉하며 이견을 좁히려 애써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다르다. 여당 지도부를 마치 부하 다루듯이 하는 건 물론이고, 야당은 아예 설득할 생각조차 않고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국민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협박’한다. 박 대통령에게 국회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권력의 한 축이 아니라, 청와대의 시종쯤으로밖에 보이질 않는 모양이다.


대통령에게 야당과 소통하라는 건, 야당 국회의원들의 민원을 들어주란 얘기가 아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에 반대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란 것이다.
박 대통령은 노동 관련 법안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게 청년 고통을 가중시키는 행위라고 비난하지만, 지자체의 청년수당은 ‘범죄’라고 까지 제지하는 이중성에, 법안이 통과되면 아버지들을 해고하는 게 쉬워질 거란 우려가 더 많은 게 현실이다. 대통령은 이런 우려를 제기하는 노동조합을 직접 만나 설득해보지도 않고 왜 기득권 세력이라 비난만 하는가.
박 대통령은 야당의 비협조를 탓할 처지가 아니다. 대통령 스스로 국회와 국민에게 얼마나 열린 자세를 보였는지부터 먼저 반성해야 한다.



[사설] 검찰은 망할 길을 찾을 것인가

● 칼럼 2015. 12. 11. 17:53 Posted by SisaHan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한 임은정 의정부지검 검사가 강제로 퇴직당할 위험에 처하게 됐다. 일을 잘한다고 검찰총장상을 받고 우수 여성검사로도 선정됐던 임 검사가 올해 적격심사를 받은 검사 250여명 가운데 몇 안 되는 심층적격심사 대상이 된 것이다.

임 검사가 퇴직 명령까지 받게 되면, 부패 검사나 무능 검사가 아닌데도 쫓겨나는 어이없는 일이 현실이 된다. 임 검사가 이런 일을 겪게 된 것은 2012년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달라’고 ‘백지구형’을 하라는 검찰 상부의 지시와 달리 ‘무죄’를 구형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당시 임 검사가 다른 검사에게 사건을 넘기라는 부장검사의 지시를 어기고 법정 출입문을 잠근 채 무죄를 구형했다며 정직 4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이는 매우 부당하다.


과거사 재심에서 백지구형을 하는 것은 이미 무죄임이 역사를 통해 증명된 이들에게 또다시 매질을 가하는 짓이 된다. 임 검사의 무죄 구형은 그래서 검찰의 과거 잘못에 대한 사과일 수 있다. 소신에 따른 무죄 구형이 징계를 받아야 할 잘못일 순 없다.
조작 증거를 법정에 버젓이 제출해 형사사법 체계의 근간을 위협한 검사들이 받은 징계가 고작 정직 1개월이었으니 형평에도 어긋난다. 법원도 1·2심에서 임 검사에 대한 징계를 취소하라고 판결한 터다.

그런데도 검찰은 임 검사를 조직에서 끝내 쫓아낼 기세다. 임 검사의 소신과 때마다 쓴소리를 해온 강단이 거슬렸던 모양이다. 검찰 조직에는 소신을 드러내지 말고 입을 닫으라는 ‘으름장’이 될 수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검사 적격심사의 주기를 단축하고 부적격 사유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제출해뒀다. ‘제2의 임은정’이 될 싹을 일찌감치 자르겠다는 것으로 의심된다.
그렇게 검사들을 길들여 자성도 소신도 없이 말만 잘 듣는 조직으로 만들면 검찰의 정치권력 예속은 더 심해지게 된다. 곧, 검찰이 망하는 길이다.



[1500자 칼럼] 교회의 위기 Ⅳ

● 칼럼 2015. 11. 20. 17:27 Posted by SisaHan

다시 한 번 더 교회의 위기를 말하려고 한다. 그만큼 위기는 닥쳤고 그런 것에 대한 내 마음이 다급했다고 하는 것이 좋겠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문제는 교회가 위기를 느끼지 못한데서 그 위기성이 크지 않겠나? 만약 위기를 느꼈다면 재를 덮어쓰고 옷을 찢으며 회개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되풀이 되어야 하는데 도무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최근에 들은 이야기로는 이제 토론토 시내에서도 전도대가 나와 길거리에서 찬양을 인도하며 전도하는 일도 막겠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서서히 교회를 압박하는 일이 잦아질 것이다. 우리 신앙의 뿌리라고 말하는 한국 교회는 어떤가? 이제는 대형 교회도 헌금난에 부닥치고 있다. 워낙 교회가 헌금을 함부로 사용하고 그에 따른 속칭 비자금의 이야기가 교회 안에서 떠돌고 있으니 아무리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이라 해도 너무 하다는 생각에 인간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어떤 목사든 은퇴만 했다 하면 그 뒷자리가 너무나 어수선함은 무슨 이유인가? 세습의 이야기에서부터 지금까지 목회의 모든 행적이 오히려 지탄의 대상이 되는 오늘의 교회이다. 그렇게 존경했고 정말 성도를 사랑하는 목사로 믿고 살았는데 분쟁 속에 떨어질 때는 저가 진정 나의 목회자였는가 하는 의구심을 낳게 함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한 뉴스가 눈과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한 교단의 총무로 일했던 목사가 그와 함께 일했던 목사를 칼로 찌르고 자해를 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것도 횟칼을 들고 찌르고 찔렸다니. 과거의 그들의 삶을 우리는 모른다 쳐도 오늘은 목사가 아닌가.
성도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를 외쳐 왔을 목사가 과연 얼마나 자신은 변화되어 살아왔겠는가? 그것이 오늘 교회의 한 모습처럼 보이니 이것이 과연 교회라 할 수 있겠는가? 이 뉴스를 접하면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슬픈 이야기들 부정적인 모습을 나누면서 우리는 괴로워한다. 그러나 거기에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다. 이제 근본적인 치료와 대책을 이야기하자.
교회나 목회자는 이제 성장과 부흥을 말하던 시대에서 벗어나자. 전도해 오면(실제로 전도가 아니라 인도다) 금가락지를 주고 세탁기를 줘서 남의 교회까지도 흔들던 그런 태도를 버리고 정말 죄를 말하고 회개를 가르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목회자 먼저 성경도 읽고 기도도 앞장서서 하고 진정으로 목회자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온 정성을 다 기울이자.
목회자 자신이 묵상해 온 말씀을 가르친 뒤 스스로 실천도 하고 정말 성도를 사랑하는 모습을 가지자. 그리고 성도들도 나와 생각이 같지않은 목회자라 해도 그분을 존경하면서 함께 온전한 목회를 이루도록 힘써야 한다.
목회자나 교회에 대한 비판은 쉽다. 그러나 내가 정답은 아니지 않는가.

가끔은 그렇게 생각한다. 예전 한국교회는 경제나 문화가 그렇게 낙후되었음에도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섬김에 있어서는 그 얼마나 뜨겁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였는가 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하는 아쉬움도 있으나 교회의 본질면에서 안타까워 탄식해보는 것이다.

<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



유명배우가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대체로 관객이 몰린다. 사람들이 그 배우에 대한 호감과 인기도를 작품의 상품성에 그대로 투영하는 호의적 선입관 때문이다. 실제로 특출난 배우는 작품의 질과 흥행 성패를 좌우한다. 그리고 인기가 치솟는 주인공은 그의 액세서리 모방품까지 불티나게 팔리는 것을 본다. 사람들이 주인공과 같은 삶을 산다는, 또 살아보겠다는 착시현상과 자아실현의 동격화 선망에 빠지는 것을 입증한다.
그래서 인기배우나 유명인은 간판 광고에 많이 활용된다. 사람들은 광고에 반복해 등장하는 인기인을 통해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형성하게 되어 기업과 상품의 호감도는 덩달아 높아진다. 그런데 역으로 부도덕한 스캔들의 주인공이 전면에 등장한다면…, 그 기업의 이미지는 부정적이 되고 호감도 역시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 비슷한 ‘모델효과’는 각 분야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종교계의 경우 확인된 대표적 사례가 ‘프랜치스코 신드롬’이다. 한국을 방문한 교황의 언행일치의 선행과 인자한 풍모는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면서 가톨릭에 대한 호감도를 같이 끌어올렸다. 그래서 천주교 신자가 부쩍 늘었다는 말이 나왔다. 신부들의 성적추문이나 교황청의 재정난맥 등 부정적 일화가 끊이지 않음에도, 가톨릭을 대표하는 인물 한사람의 어진 품행이 사람들 눈에 호감의 안경을 씌워버린 것이다.
개신교의 한국 교회들이 위기에 처했다는 말이 요즘 부쩍 회자된다. 부흥의 열기가 사그러든지 오래이고 신자수가 갈수록 줄어들며, 특히 젊은 층의 이탈과 외면이 심각해 장래가 암울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안티그룹은 갈수록 늘 뿐만 아니라 노골적으로 활개친다는 걱정이 나온다.
기독교는 한국 근대화의 기초를 닦고, 일제 항거와 독립운동에도 기여했으며, 한국인의 정신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종교로, 세계에 유례없는 양적·질적 성장을 이뤄왔다. 그런데 선교 100년, 평양대부흥 100년을 지나오며 오히려 위축과 퇴락을 염려하게 되었으니 어인 일인가.


교회와 성직자의 성장주의와 물신주의로 인한 영적 변질과 타락을 큰 원인으로 꼽는 이들이 많다. 윤택해진 생활문화가 사람들을 형이하학적 삶에 안주하도록 만들어, 영적 평안을 향한 갈증과 전능자에게 기댈 갈망이 차츰 사라졌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모두 맞는 말일 것 같다.
하지만 그에 더해, 요즘 더욱 심화되는 듯한 ‘교회위기’의 가장 강력한 가속화 요인이야 말로 바로 앞서의 ‘모델효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회의 간판격인 인물들의 그리스도인 답지못한 잇따른 실추와 비행, 심지어 ‘망동’수준의 모양들이 교회에 치명상을 입히고 먹칠을 해 사람들을 부정적 그룹으로 내몰고 있기에 그렇다.
법적 제재까지 받은 세계 최대 교회 설립자의 재정적·가족적 비리와 불화, 강남교회 목회자의 초대형 건축 논란과 학위논문 표절·변명 등은 교회와 성직자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키웠다. 유명 목회자의 성추문과 교회세습, 재정비리 등이 교회에 대한 지탄을 불렀다.


허나 그런 불상사들은 개교회가 가장 큰 피해를 입고, 물질적 탐욕과 육체적인 부도덕의 문제로 볼 수도 있다. 그에 비해 치명적인 ‘모델효과’의 부정적 여파는 교회중직자 출신으로 나라의 통치권에 근접한 정치인들의 반 신앙적인 행태들에서 더 똑똑히 볼 수가 있다.
국토를 난도질하며 천문학적인 혈세로 건설족을 배불린 4대강 사업, 수십조의 나랏 돈을 날린 해외자원개발 등 신실한 기독교인 지도자의 발상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전직 대통령이 소위 일류교회 장로 출신이었다. 교계의 열띤 성원으로 최고권좌에 오른 그는 민주질서와 나라의 도덕 수준마저 망가뜨려 ‘안티기독교 바이러스’를 확산시킨 최고의 ‘악역’이 되어버렸다.
악역 변신의 인물이 한둘이 아니지만, 요즘 교과서 국정화 강행과 갈등 부추기기에 총대를 멘 두 지도자, 총리와 부총리 겸 교육장관도 둘 다 독실한 장로님들이다. 장로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니 아마 성경을 열심히 묵상했을 것이다. 그들은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성경이 ‘올바른 역사’만을 기록했기에 최고의 기독교 경전이며 복음으로 사랑받는다는 믿음을 가진 것일까?


모세오경만을 보아도 살인과 근친상간, 타락과 불순종과 노예생활 등 이스라엘 민족에게 부정적이고 자학적인 내용 투성이인 것을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약자를 향한 사랑과 섬김의 선하고 의로운 그리스도 정신을 그들은 어디다 팽개친 것일까.
기독교출신 정치인들의 이같은 영적인 혼돈과 권력영합은 물질적 타락과는 격이 다른, 암이 번지듯 치명적인 ‘반 교회적 모델효과’의 극대화 요인이 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당사자들은 모르는지 외면하는지, 영적 무뇌(無腦)와 난청들인 것 같아 참으로 답답할 밖에….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