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상균의 죄, 정몽구의 죄

● 칼럼 2015. 12. 19. 11:22 Posted by SisaHan

작년 이맘때다. 비정규직 40명이 모인 대전의 한 수련원에 한상균이 나타났다. 민주노총 위원장 후보였다. 인사치레나 하고 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표 안 되고 영양가 없는 자리에 와서 새벽까지 이어진 토론을 말없이 지켜봤다. 대기업노조와 민주노총에 대한 원망을 들었고, 비정규직 해법을 꼼꼼하게 받아 적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가 비정규직까지 3천명을 정리해고할 때, 노조지부장이었던 그는 비정규직과 같이 싸웠다.
3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쌍용차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15만4천 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에서 171일 동안 살 때도 그의 곁에는 비정규직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을 감옥에 가뒀다. 죄명은 형법 제185조 일반교통방해. 다른 혐의도 있지만 체포영장이 발부된 건 일반교통방해다.


2008년 법원이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한 법이다. 세계 어느 나라의 입법례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법으로 한상균을 흉악범으로 몰아 수갑을 채웠다. 법원이 벌금 100만~200만원을 선고하는 범죄로 70만 조합원의 대표를 악질범 취급하며 잡아갔다. 선진국에서는 대통령이나 총리가 수시로 만나 국정을 논의하는 노동계 수장을 ‘국민악마’로 만들어 끌고 갔다.
법이 노사 모두에 공정하게 적용되고 있을까? 재계의 수장 격인 현대차 정몽구 회장. 그는 파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돼 있다. 대법원에서만 세 번이나 현대차 사내하청이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정규직을 채용해야 할 자리에 불법으로 비정규직을 썼다는 죄다.
2012년 법학교수 35명이 정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그를 처벌해 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다. 파견법 위반 징역 3년, 근로기준법 9조 중간착취 금지와 직업안정법 위반으로 각각 징역 5년 형을 살 수 있는 범죄다. 죄질도 나쁘다. 회사 조직을 동원한 범죄가 10년 넘게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뿐인가. 납품단가 후려치기로 힘없는 부품회사들의 영업이익률이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 친척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까지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한둘이 아니다. 현대차 불법파견에 대해 2013년 연말까지 수사를 완료하겠다던 검찰은 2년이 지나도록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한상균과 정몽구, 누구의 범죄가 큰가?
경찰이 한상균 위원장에게 소요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단다. 전두환이 5.18 광주항쟁과 1986년 5.3 인천항쟁에 썼던, 무덤에 들어간 법을 살려내겠단다. 세계의 유수 언론이 한국 민주주의가 독재 시절로 돌아가고 있다고 하는데 이 나라 보수언론만 태평성대다.


한상균은 해고를 쉽게 하고 비정규직을 늘리는 노동법을 막기 위해 싸웠다. “장그래가 정규직 시켜 달라고 했지, 비정규직 연장해 달라고 했냐?”는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전달한 것이 그가 지은 죄다. 곡기를 끊은 한 위원장이 노동재앙을 막기 위해 12월16일 파업에 나설 것을 호소했다. 현대, 기아, 한국GM 등 주요 대기업에 노동개악을 반대하는 ‘민주파’ 노조가 들어섰다.
금속노조 현대차 박유기 지부장은 11일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이 이 시간에도 진행되고 있다”며 “정권이 조합원들의 권리와 이익을 침탈하려 한다면 당연히 그에 맞서는 투쟁이 배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법의 잣대가 현저히 기울어진 나라. 재벌 청부법안이 노동개혁으로 둔갑해 국회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때, 귀족노조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현대차 노조가 16일 파업에 함께해 이 땅 장그래들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을까?

< 박정규 -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



[1500자 칼럼] 다시 역사 이야기

● 칼럼 2015. 12. 11. 18:01 Posted by SisaHan

나는 역사가 과거에 이미 생긴 일이어서 멈추어선 것이 아니라, 계속 흐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국사는 한공동체(국가)가 어디서 왔으며, 지금 어디에 서있으며,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방향을 제시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기는 정부가 계획한 대로 진행되고 있다. 누가 어떻게 만드는 지는 비밀리에 부쳐져 있어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지금까지 과정을 지켜보며 찬성과 반대로 국민들이 찬반으로 나누어져 심각하게 다투고 있음은 슬픈 일이다. 한 나라의 역사를 두고 보면서도, 더욱이 문제가 되는 근현대사를 함께 체험하고 지켜보았는데,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게 역사다. 왜곡이고 편향이고를 떠나 사람들은 어떤 연유에서든 같은 사건을 다르게 보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걸 하나로, 올바른 역사로 만든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역사책을 정부에서 만들면, 정작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대학진학을 위해 국정교과서 한 페이지 페이지를 생각없이 무조건 암기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의 교육 현실이 아닌가?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역사문제는 정치가들이 올바른 정답을 내고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역사학자들에게 맡겨야할 문제이다. 역사는 한 시대의 정치가 관여하기 이전에 학문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국정화 과정의 짧은 기간 동안에 정치인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정치인이 현재 역사학자의 90%가 좌파이기 때문에 국정화해야 한다는 말은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 한국사책이 폐지되어야 할 정도로 문제가 있다는 말도 이해 안가는 것이, 그럼 검정교과서란 무엇인가? 정부가 어떻게 써야한다고 지침을 주고, 역사학자들이 써온 책을 놓고 검열을 한 후에 승인을 해주어야 책이 출판될 수 있는 제도라 알고 있다. 애초 좌파사상이나,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의 교과서라면, 교육부에서 시정을 요구할 수 있고, 나가서 승인을 취소하면, 언제든지 출판을 금지시킬 수 있는 책들이 아니었는지…. 더우기 ‘역사전쟁’이란 말까지 서슴없이 하는 것을 보면…. 정치인이 하는 말이라 다분히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단어의 선택이라 할 수 있지만, 전쟁이 아니라 논쟁이라 해야 맡는 것이 아닐까? 서로 다른 학설이 있어 어느 것이 맞는지 역사적인 사료를 내세워 그 진위를 판단하는 것이고, 설사 논쟁에서 패하더라도 그 이론을 사장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누가 주장한 하나의 설로 남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왜 국정교과서가 나쁜가? 나에게  당장 떠오르는 것이, 닫힌 사회, 폐쇄된 사회, 독재국가에서 주로 사용하는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역사교육의 본질에 상반되고, 학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며, 교육의 궁극 목적인 창의력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지구상에서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는 나라가 몇 되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대답이 우리가 ‘분단국가’라는 말이다. 그러나 분단국가 일수록, 오로지 유일사상 아래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는 북한과는 달리, 우리는 더 자유스럽고 다양한 의견을 말하는 열린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또한 민주주의의 장점이기도 하다. 걱정되는 것은 많은 역사학자들의 불참으로 인한 것인지, 각계각층의 전문가를 참여시킨다고 한다. 이것은 정말 역사연구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영웅이나 왕을 중심으로 서술하던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났고, 역사학자들은 어떤 사건에 대한 이유를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를 종합 분석하여 해석하는 것이  역사학자다. 그런 이유로 역사교과서는 역사학자가 쓰고, 역사교사가 가르치고, 학생이 배우는 것이라 생각한다. 선진국은 물론이고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이렇게 하고 있다. 이제 곧 일인당 국민 소득이 3만 불을 넘게 되는 선진국 중의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놀라운 발전을 해온 우리나라가 역사교육에 있어 그 반대로 가려하는지 나는 이해 할 수가 없다. 만약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책이 바뀐다면, 그 얼마만한 국력의 낭비이며, 배우는 학생들에게 혼돈을 주는 일인가? 사실 역사는 당당하게 계속 흐르는 것이어서 사람이 그 흐름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한마당] “지구촌을 떠나야 하나…”

● 칼럼 2015. 12. 11. 17:58 Posted by SisaHan

밖에 나와 있으면,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조국을 향한 마음이 든든해지며 보고 듣는 것이 편안해져야 하련만, 어찌하여 갈수록 답답하고 안타깝고 불안해지기만 하는가.
세월이 갈수록 조국의 상황이 나아진다면 누가 뭐래도 맘이 편안할 것이다. 아예 잊어버리고 고국미련을 벗어나 현지에 적극 동화되어 버린다면 그 또한 속이 편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둘 다 그렇지 못해서 편치 못한 거다.
한국사람이 유별나다는 흔한 말처럼 이민 땅에 재빨리 스며들지 못해 현지화가 더디고 서툰데다, 애국적 향수는 강해서 자나 깨나 고향에서 눈과 귀를 떼지 못하는 민족적 천성들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렇게 안테나를 돌려놓고 귀를 쫑긋해 날마다 듣고 보자 하니, 겉으론 화려해 보이는데 속으론 찢기고 병들고 곪아가는 병색이 깊어져 회복과 치유의 날이 언제려나 요원하기만 하기에 무척 불편하고 답답한 것이다.


밖에 나와 살아도 고국을 향한 마음은 그저 그 곳에 남은 가족과, 친지와, 모든 이웃과 백성들이, 그리고 우리 네 후손들이 풍요롭고 안락하게 사는 것이다. 나라가 물질적으로 강성해질 뿐만 아니라, 지식과 문화가 융성하고 창대하여 정신적인 자존감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가 됐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꿈이다. 비록 작은 나라지만, 영특하고 지혜로운 민족이니 얼마든지 강소국(强小國)으로 세계를 호령할 수 있다는 믿음도 있다. 국난과 압제를 극복하고 단기간에 이룬 경제와 민주의 기적들, 최고를 떨치는 많은 인재와 기술들이 그 가능성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작고 이른 성공에 환호작약하고 도취해 꿀단지에 빠져든 파리와도 같은, 불꽃을 향해 날아드는 부나방처럼, 방향감각을 잃은 어리석은 모양새로 퇴락하고 있지 않은가.


잘 살게 됐다는 지나친 자만과는 거꾸로 문화민족 선비정신의 기개와 민족혼은 날로 퇴색하여 졸렬하고 저급하고 이기적인 싸움만이 치열해진다. 사람들이 완악해져 포용과 상생과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어간다. 나라는 백성이 주인이 아니라 권력자가 상전이 되어 부려먹고 다그치려 한다. 나라 안에서 권력을 휘둘러 떵떵대고 기고만장한 것과는 달리 밖으로는 눈치나 보고 끌려 다니는 비굴과 사대근성을 벗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돈 좀 꿰찬 졸부처럼, 아무리 잘 먹고살며 빈국들에 적선의 눈을 돌려도, 문화·문명의 선진국이라는 선망과 존경의 눈초리는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까짓 남이야 뭐라든, 외국의 언론이 무슨 대수냐며 그들 평판에 신경쓰는 것이야 말로 사대적 발상이라고 폄하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체통을 중시하고 체면에 사는 한국사람이요 동네에서 나쁜 평판을 들으면 이사를 떠날 정도의 고고한 민족이다.
초고속 정보시대 지구촌에서, 그 것도 세계적으로 영향력있는 매체들이 잇달아 추한 꼴을 들먹이는데도, 한국과 한국 사람들은 얼굴을 들고 살 수 있는가. 우리들 자존심은 가만 있어야 할까. 어디로 떠나야 하나?


“민주적 자유를 퇴행시키려고 골몰하는 것처럼 보여 우려스럽다.” 유력지 뉴욕 타임즈가 사설로 한국의 대통령을 강력 비판한 것은 근래 없던 일이다. 소위 선진국 언론들이 최근 한국의 뒷걸음질을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가운데, 그 강도도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유력 주간지 ‘더 네이션’의 기사는 아예 “독재자의 딸이 노동자를 탄압하다”라고 대문짝만한 시위진압 사진과 제목을 달았다. 그런데 가관인 것은, 뉴욕총영사관이 이메일과 전화로 언성까지 높이며 항의했다는 후속 뉴스다. 해당기자는 이렇게 비꼬았다. “사실관계 오류 지적이나 반박도 없이…외교관 업무가 이런 것인가. 언론사 겁주려는 시도였던 듯…” 한국 사람들의 창피요, 국격의 모독이며, 외교의 망신이다. 제 잘못은 눈감고서 나무라는 이웃에 주먹질을 한 셈이니, 나라 꼴을 삼류 후진국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귀를 막고 난폭 운전을 하면서도, 똑바로 하라는 국민들을 테러리스트라고 적대시하며 물대포를 직격하는 품성이 바로 그들의 수준이다. 영국은 물대포의 위험성도 크지만 경찰에 대한 국민신뢰를 깬다며 물포사용을 절대 금했단다. 그게 선진국이다.
공자는 국민신뢰와 애민(愛民)을 정치와 지도자의 최고 덕목으로 가르쳤다. 국민을 사랑하기는 커녕 삶에 절규하는 60대 비무장 농민을 식물인간 만들어 놓고도 잘못한 게 없다며 더 큰소리치는 권력, 이제는 소도 웃을 ‘소요죄’까지 들먹이는 무지하고 막가는 정권 호위무사들이 한국인의 자존심을 망가뜨리고 한국의 위상을 누더기로 만들고 있다.


< 김종천 편집인 >



[칼럼] 정말 테러를 막고 싶다면

● 칼럼 2015. 12. 11. 17:56 Posted by SisaHan

프랑스에서 ‘테러’라고 부르는 인명살상 범죄가 있었다. 이를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에 테러 관련 입법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14년 동안 테러방지법을 반대한 시민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 근거를 내놓지는 못했다. 과연 테러는 왜 발생하며, 한국에서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현재 테러 방지 및 대응 체계는 어떠한지, 어떤 문제 때문에 대한민국이 테러에 대해 속수무책이라는 것인지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하다못해 그동안 테러방지법이 없어 어떤 테러가 일어났는지 증거를 제출하지도 않았다.


그동안 명멸했던 그리고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테러방지법안의 핵심은 테러에 대응하는 조직을 개편하자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이 출입국, 금융거래 및 통신이용 등 광범위하게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국가정보원이 중심이 되어 각 부처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테러의 개념은 명확하지 않다. 거의 모든 범죄행위를 망라한다. 국가정보원을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만드는 법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테러방지법안은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는 법이다. 국가정보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테러방지법안은 평시에도 군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헌법은 비상사태 시 계엄을 선포한 경우에 한해서만 군 병력 사용을 허용한다. 평시 군사독재를 가능케 하는 위헌 법안 아니냐는 의심을 하는 까닭이다.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테러 방지를 빌미삼아 정보기관이 권력을 강화했다는 비판이 있다. 광범위한 예방조처의 결과 자국민과 외국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적지 않게 일어났다는 평가다. 그런데도 테러방지법안은 국회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비밀정보기관을 무작정 믿어달라고 강요한다. 헌법에 대한 무지다. 주권자는 통제받지 않는 권력을 믿지 않는다.


테러에 대한 대응이 급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작은 사건으로도 큰 재앙에 직면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특히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는 재난 대처에 취약하기 때문에 대형 사고의 위험성이 높다. 세월호 참사에 볼 수 있듯이 정부는 재난 대처에서 무능력을 드러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규모 인명 피해를 초래하는 재난을 방지하기 위한 대응체계를 어떻게 수립할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 재난방지법이 있었지만 참사를 막지 못했고, 국가의 대응체계는 무력했다. 전문가들은 그 어떤 법을 동원하더라도 테러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어떤 사건이든 왜 그 사건이 일어났는지 진상을 규명하고 다각도로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기존의 대응 체계와 능력을 진단•평가하고,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국민에게 고백해야 한다. 입법이 필요하다면 정부는 국회에 법률안을 제출하고, 국회는 국민의 입장에서 정부의 대책을 면밀히 검토하여 최종적으로 정부에 권한을 부여함과 아울러 민주적 통제 장치가 있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민주공화국에서는 상식에 속하는 해법이다.


정부가 진정 국민의 안위를 걱정한다면, 잠재적인 테러 가능성에 대처하는 것에 앞서 죽어가고 있는 국민들을 살리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9년 동안 이라크 ‘전쟁’에서 사망한 이라크 군인, 경찰, 반군의 수가 3만9천명인데, 같은 기간 한국의 자살자 수는 자살예방법이 있음에도 11만명이 넘는다. 대통령은 전쟁보다 참혹한 현실에 직면한 국민의 삶을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 과연 박근혜 정부가 그런지 국민이 판단할 수 있는 잣대는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정부 태도의 변화다.
< 오동석 -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