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 진용이 총체적인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과거 일은 차치하고 최근 불거진 사안만 보더라도 도저히 그냥 가서는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전면적인 인적 쇄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먼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행태는 무능력과 무책임의 극치다. 그는 한-미 정상회담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과 관련해 “남중국해의 ‘남’자도 나오지 않았다. 일부 언론이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19일 국회에서 말했다. 이는 상대 말뜻도 알아채지 못하는 무능력의 고백이 아니라면 이미 존재하는 문제를 없는 것처럼 얘기하는 무책임한 태도일 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이 그런 면(국제규범과 법의 준수)에서 실패한다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공개 주문했으며, 대부분 이를 남중국해 갈등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했다. 게다가 윤 장관은 21일 어떤 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을 두고…”라고 말을 바꿨다가 얼마 뒤 실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장관 수준이 이 정도인데 외교가 잘될 리 없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의 핵심기술 이전 무산과 관련한 책임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는 국방부 장관으로 있던 2013년 9월 차기전투기(F-X)의 기종 결정을 앞두고 국회에 나와 “(핵심기술 이전을 포함해) 어떤 것도 다 장관 책임”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사안과 관련해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며칠 전 물러난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본인이 쉬고 싶어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관진 실장을 보호하는 것이 18조원이 걸린 전투기 사업의 성패보다 중요한 건지 묻고 싶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 방미에 따라가 미국 쪽에 핵심기술 이전 얘기를 꺼냈다가 바로 거부당한 것도 가벼운 일이 아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국민을 상대로 쇼를 벌인 꼴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일본 방위상이 20일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자위대의 북한지역 활동 여부를 두고 ‘한국의 주권 범위는 휴전선 남쪽’이라고 한 발언과 관련해서도 그의 책임이 크다. 국방부는 이 발언을 숨겼다가 다음날 들통났다. 역시 국민을 속이려 한 행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외교·안보 분야에서 크고 작은 일이 생길 때마다 책임 문제가 거론됐으나 대부분 흐지부지됐다. 그러다 보니 이제 손대기 어려울 정도로 모순이 누적된 상태다. 이대로 가다가 더 큰 ‘외교·안보 참사’가 닥친다면 어떻게 할 건가.



교육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을 추진하는 비밀 TF를 운영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교육부는 “역사교과서 관련 업무의 증가 때문에 역사교육지원팀 인력을 한시적으로 보강했을 뿐”이라며 비밀조직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해명이 어설플뿐더러, 백번 양보하더라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공론을 거쳐 가장 투명하게 진행해야 할 교과서 편찬을 그렇게 비밀작전 벌이듯 추진하는 저의가 무엇인가. 뭐가 그리 켕기는가. 우선, 교육부 해명대로 인력보강 차원이라면 구성 자체를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TF 단장을 맡은 오석환 충북대 사무국장은 정식 발령이나 파견이 아닌 ‘출장’ 형태로 팀에 합류했다고 한다. TF를 구성하더라도 최소한의 인사 절차는 따르는 게 정상인데 ‘국정화 TF’는 그 기본을 어겼다. TF 사무실을 교육부가 있는 세종시가 아닌 서울의 국립국제교육원에 둔 점도 수상쩍다. TF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았던 의도가 역력하다.


문제는 국정교과서처럼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을 이런 식으로 몰래 추진해도 되는가 하는 점이다. 과거 정부의 금융실명제처럼 극비리에 추진해야 하는 정책도 있긴 하지만, 교과서 편찬은 그런 유의 정책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추진과정을 공개하고 국민 의견을 수렴해서 국정교과서 추진을 계속할지 아니면 중단할지를 결정하는 게 정상적인 정부의 자세일 것이다.


TF를 숨기려는 이유는, 새정치연합이 입수한 ‘TF 운영계획과 업무분장’ 문서를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이제까지 청와대는 “국정교과서 추진은 교육부가 알아서 하는 일”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상황관리팀 업무로 ‘BH(청와대) 일일점검회의 지원’이란 항목이 문서에 적혀 있다. 청와대가 직접 국정화 작업 추진을 챙겨왔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국정교과서 추진의 주체임을 왜 자꾸 숨기려 하는지 참으로 해괴하다. 지난주엔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이 ‘국정교과서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식으로, 정당하지 못한 일을 추진하려니 자꾸 뒤로 숨기려는 게 아닌가 싶다. 이 문서에 나온 ‘언론동향·온라인동향 파악’ ‘기획기사 언론 섭외, 기고·칼럼자 섭외’ 등의 업무내용은 TF 구성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짐작게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불리한 여론을 반전시키려는 ‘여론 조작’이 TF의 진짜 목적이 아닌가 짐작된다. 그러니 떳떳하게 기구를 공개해서 활동할 수 없었을 테다.


여론이란 TF따위로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다. 대통령은 개인 신념을 고집부려 애꿎은 공무원들로 ‘비밀 TF’를 꾸릴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여론에 따라 국정화를 취소해야 한다. 퇴행적 국정화 작업은 그 어떤 ‘비밀작전’으로도 성공할 수 없다.



저녁 산책길에 전나무 숲에 걸쳐진 도톰한 반달이 눈에 들어왔다. 한가위 보름달이 엊그제였는데 불과 며칠 사이 몰라보게 기울어져 있었다. 평소의 밤하늘은 만월이건 그믐이건 메마른 감성에 물기를 나르는 사색의 창구였는데 팔월 한가위 즈음의 밤하늘은 다른 의도로 자주 올려다보게 된다. 차오르는 달을 보며 다가 올 명절 걱정을 했고 기우는 달과 함께 해방감을 맞은 맏며느리의 속내가 그 속에 묻혔기 때문이리라.


매운 시집살이가 극에 달했던 때는 뭐니 뭐니 해도 명절 즈음이었다. 차례 음식 장만부터 수많은 친지들 접대까지 애송이 새댁이 넘어야 할 산은 왜 그렇게 많던지, 시어머니 불호령에 벌벌 떨어가며 눈물바람 몇 구비 돌고 나면 달은 저렇게 기울고 있었더랬다. 장손 며느리 자리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버거웠던 그 시절, 기우는 달을 보며 명절 내내 응어리졌던 가슴을 쓱쓱 문지르면 명치끝에 뭉쳐있던 해소 덩어리가 뿌리째 빠져 나가는 상쾌함이 있었다. 그때의 버릇대로 가슴을 문지르며 산책길 내내 한 생각에서 맴돌았다.

만 년 며느리로 머물 줄 알았던 내가 눈 깜빡 할 사이 시어머니가 되고 나니 시시때때 나의 처신이 올바른지 자문 할 때가 많다. 나의 시어머니께 보고 배운 대로 가자니 시대에 안 맞고, 시대에 맞추어 자유롭게 가려니 가족에 대한 며느리의 운신의 폭이 늘 그 자리이다. 우리의 윗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집안을 이끌어 갈 좋은 재목으로 훈육하면서 돈독한 고부 관계를 유지할 좋은 방법은 없을까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마침 우리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장에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자연히 서양 사람들의 고부 관계는 어떨지 궁금하여 그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한다. 델리와 베이커리 파트를 담당한 시어머니는 깐깐한 인상의 소유자이고 주로 고기 파트를 담당한 며느리는 누가 봐도 선한 인상의 웃음 많은 새댁이다. 거기다가 시어머니는 경력 15년차이니 경력 5년차의 며느리가 집에서나 일터에서나 많이 힘들겠다는 상상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쥴리! 어제 저녁에 토마스랑 영화 봤는데 좀 슬픈 장면에서 그가 눈물을 짰어요.”
“그랬어? 불쌍한 녀석, 쯔쯔. 근데 케티 넌 어땠는데?”
“약간 슬프긴 했지만 눈물 흘릴 정도는 아니었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전날 있었던 화제를 양념삼아 일을 하는데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적잖이 쇼크를 받았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이름을 거침없이 부르고 나서는 덴, 아무리 문화차이라지만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과 함께, 내 마음은 약자로 여겼던 며느리 편에서 시어머니 쥴리 편으로 급선회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시콜콜한 대화를 듣고 있으니 두 사람 모두 사심이 없어 보였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진득하게 나누며 궁금증을 풀어가는 관계, 일손이 달리면 양쪽에서 왔다 갔다 하며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 주인의 눈에 들도록 서로 엄호 해주는 가족애가 그대로 읽혀져 나는 색안경을 벗고 그들 곁으로 바짝 다가섰다. 서로 품고 토닥이고 나누는 그들의 고부 관계가 합리적이란 생각을 하면서 까짓 것 문화차이쯤이야 넘어서기로 했다.
 
거나했던 명절차림이 칠면조 구이로 대체된 지 오랜데 이 시기만 되면 일어나는 타향살이의 명절 증후군, 시어머니께 혼이 나서 눈물 찔끔거리던 것 까지도 그리움으로 남는다.
훗날 나의 며느리는 칠면조를 구우면서 가슴 부비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Thanks Giving 저녁이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



겁쟁이 토끼 한마리가 야자나무 아래에서 ‘혹시 땅이 꺼지면 어쩌지?’ 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그때 야자열매 하나가 ‘쿵’하고 떨어졌다. 깜짝 놀란 토끼는 ‘큰일이다! 드디어 땅이 꺼진다’ 며 정신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큰일 났어! 땅이 꺼지고 있어!”
다른 토끼도 놀라서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토끼 두 마리의 줄행랑을 보고 또 다른 토끼들도 서둘러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토끼들을 본 사슴이 물었다. “토끼들아, 왜 그리 허겁지겁 달아나니?”
“지금 땅이 꺼지고 있거든!”
이 말을 들은 사슴도 도망가기 시작했고, 이웃 멧돼지도 날 살려라 뒤따랐다. 그러자 여우, 기린, 늑대, 코끼리, 표범… 동물들이 모두 영문도 모른 채 날 살려라 도망치는 것을 본 호랑이가 의아하게 생각하곤 모두를 불러 세웠다.
“누가 땅이 꺼진다고 했지?” 표범에게 묻자 코끼리를 가리켰고, 코끼리는 늑대를, 늑대는 기린…식으로 거슬러 올라간 끝에 마침내 토끼가 지목됐다. 호랑이는 토끼를 끌고 야자나무 아래로 가 보았다. 땅이 꺼진 흔적은 없이 위에서 떨어진 야자열매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게 아닌가.
호랑이는 토끼를 호되게 나무라고, 다른 동물들에게도 호통을 쳤다. “이 놈들아, 공연히 부화뇌동 하지마!”


토끼 우화는 이해하기 쉽게 ‘부화뇌동’(附和雷同)을 묘사한다. 천둥치는 소리에 맞추어 천지 만물이 함께 울린다는 뜻이니, 곧 자기 생각이나 주장없이 남의 의견을 뒤쫓는다는 말이 부화뇌동이다. 맨 처음 중국의 고서 ‘예기’(禮記)에 실린 “남의 주장을 가져다가 자기 것이라고 하지 말며, 다른 사람의 의견에 무조건적으로 동조하지 말고, 반드시 옛 것을 모범으로 삼고 ….”(毋剿說 毋雷同 必則古昔 稱先王) 는 구절에서 유래된 고사성어라 한다.
공자는 여기에 ‘화합은 하되 맹목적으로 따라가지는 말라’는 뜻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언급하며 “군자는 화합하지만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하지만 화합하지 않는다.”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라고 논어를 통해 가르쳤다.
‘화이부동’과 ‘부화뇌동’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이성적으로 판단해 소신껏 행동하느냐, 아니면 분별력이나 줏대없이 남의 꽁무니만을 뒤쫓아 가느냐의 행동패턴 차이를 말해준다. 아울러 세상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저마다의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서 자율이냐 타율이냐를 특징지어 주는 단어들이기도 하다.

남과 북, 좌와 우, 지역과 계층과 세대 등 갈수록 심한 대립과 갈등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모국의 상황을 보면서, 맹목적으로 부화뇌동하는 무리가 너무 많아진 데 놀라고 또 걱정하게 된다. 그 놀라움은 비단 모국 땅에 그치지 않고 머나먼 이민 사회에까지 해일처럼 밀려 와, 위세와 파장이 극히 우려스럽다.
예를 들면, 지난 서울시장 선거 당시 박원순 후보를 “빨갱이”라고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왜 그런지를 입증하는 근거도 없이, 단지 시민단체 활동을 했고, 야당 후보라는 점을 빌미로 흑색선전을 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캐나다 한인 가운데서도 “박원순이 빨갱이여서 당선되면 서울시가 공산화 될 것”이라는 말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마 박 시장이 서울시정을 잘 이끌고 있는 지금도 그런 주장을 펴고 있을 것이다. 여당 편을 든다는 ‘애국적’인 생각 하나로, 앞 뒤 가릴 것도 없이 ‘야당후보 죽이기’에 부화뇌동한 것이다.


이성적으로, 아니 간단히 상식적으로 따져봐도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대한민국에서 ‘빨갱이 서울시장 후보’를 방관하고 있을 리가 없다. 멀쩡한 사람도 간첩으로 만드는 살벌한 정보기관이 득세하는 반공국가에서 빨갱이가 그렇게 많이 설친다니, 이치에 맞는 일인가. 그런데도 ‘종북’이니, ‘좌파’니 떠들면 전혀 개념없이 뒤따라 합창을 한다. 공공연히 국민 편가르기를 일삼고, 이념대결로 몰아야 승산이 있다는 꿍꿍이로 좌-우 대결을 조장하는 권력의 비겁하고 파렴치한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것이다. 고위 공직자라는 사람이 대놓고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야당대표를 모욕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는 것도 그런 연유가 있어서다. 무조건 정부 편을 들어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도 없이 윽박지르고 나서는 어버이연합과 관변단체들이 활개치는 비정상적인 현상도….


역사교과서를 정쟁거리로 만든 대통령과 여당은 현행 교과서가 주체사상을 가르치는 등 좌편향이고 역사학자들이 90%가 좌파여서 국정화가 불가피하다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렇다면 왜 진작 처벌하지 않고 이제 와서야 세계적 수치를 자초하는가?. 현 정부가 지시한 검정지침을 기반으로 만든 교과서들이 북한을 찬양한다? 어불성설이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고 침뱉는 꼴이니, 자가당착과 모순도 유분수다.
그런데 거기에 부화뇌동하여 이 곳 한인사회에서도 그런 류의 주장을 펴거나 막연한 선동적 자료를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어 탄식을 자아낸다. 조금만 따져보면 공자의 가르침처럼 ‘부화뇌동이 아니라 화이부동’의 생각과 언행을 하게 될 터임에도 말이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