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역사정의’의 침몰이 두렵다

● 칼럼 2014. 6. 23. 18:4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역사인식은 일본의 극우파들이 즐기는 수준이다. 차이라면 약육강식의 사회진화론 대신에 엉뚱하게 그 자리에 하나님을 얹어서 기독교 정신을 훼손한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남북분단이 한민족의 게으름을 고치기 위한 하나님의 뜻으로 이뤄진 역사”라는 취지는 일제의 식민사관을 옹호하기 위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매신행위다.
마치 빌라도가 예수를 처형한 것이 유대 민족의 게으름을 심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식의 억지와 같다. 그는 기독교의 섭리사관을 거꾸로 인식한 듯하다.
 
문 후보자의 역사인식은 식민사관의 종합판이다. 일제는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반도적 성격론, 타율성 이론, 정체성 이론, 당파성 이론을 날조했다. 한반도는 주변의 강대국들로 인해 독립국가가 되지 못하고 타율에 의해 국운이 좌우되어 당쟁이나 일삼고 정체된 민족이라는 비하였다. 역사가 지리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이탈리아는 반도국가인데도 로마가 지중해 세계와 유럽 대륙을 석권하고, 중국과 인도는 거대한 대륙인데도 식민지, 반식민지가 된 사례는 외면했다. 
일제는 특히 한민족의 당파성을 문제 삼았다. 어느 나라나 당파싸움은 있다. 중국 송나라의 탁당·낙당, 일본 남북조 시대의 당쟁, 영국 토리당과 휘그당, 프랑스 지롱드당과 자코뱅당의 피비린내 나는 대립과 살육은 널리 알려졌다.
 
문창극 후보자는 한민족이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다고 일제 식민사관을 그대로 답습한다. 한국 노동자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길고, 삼국시대는 물론 고려 통일 이후 일제 병탄 때까지 우리는 자립국가였다. 중국 주변 민족국가 대부분이 소멸되거나 소수민족으로 중국에 예속된 데 비해 한민족은 비록 분단 속에서나마 당당한 주권국가로 국제 무대에 서고 있다. 정작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한 것은 기회만 있으면 외세에 의존하려는 소수 사대주의 지배층일 뿐이다.
조선 총독부는 어용학자들과 거금을 동원하여 한국의 역사를 왜곡 날조하는 <조선반도사>(35편)와 <사료총서>(102편) 등을 편찬했다. 이것이 해방 후 친일사학자들에게 이어지고 뉴라이트 계열로 전승되면서 교학사 교과서 파동으로 나타났다. 문창극 후보자의 사관도 여기에 뿌리가 닿는 듯하다.
 
남북분단을 하나님의 뜻 운운하는 대목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제2차 대전 종전을 앞두고 미국과 소련이 일본군 무장해제의 명분으로 한반도를 두 동강 내고, 그 ‘원인 제공’은 일제라는 것은 웬만한 중학생도 아는 현대사의 상식이다. 그럼에도 굳이 ‘하나님의 뜻’을 역설한 데는 주류 세력의 뿌리인 친일파를 덮고, 독립운동가들의 역할을 지우고, 미·소의 책임을 면제하려는 고도의 언술이 밴 것 아닌가 의심된다. 반지성주의는 국민을 속일 수 없다.
문 후보자의 역사인식은 참으로 한심한 수준이다. “이조 500년의 허송세월” 부분은 신문사 주필을 지낸 분의 용어인가 의심스럽다. 우리나라 역사에 ‘이조’란 나라는 없다. 이성계가 창업한 나라는 조선이고, 1897년 고종이 청국과의 전통적 종속관계를 청산하고 완전한 자주독립국이 된 것을 선포하면서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1910년 국치를 당하면서 국호는 사라졌다.
 
일제는 조선을 ‘이조’라 불렀다. 한 나라가 되지 못하고 이씨의 부족사회 수준으로 깔보는 멸칭이었다. 그래서 조선백자는 ‘이조백자’, 조선왕조실록은 ‘이조실록’ 따위로 불렸다. 한국의 식민사학자들이 따라 하고 아직도 잔재가 남아 있다.
일제 식민지배가 축복이라는 논리는 그동안 일본관학자들과 극우정치인들 사이에 끊이지 않았고 한국의 식민지근대화론자들에게 전승되었다. 일제가 패전 때까지 조선에 투여한 자금이 60억~70억엔 정도이고, 빼앗아 간 자금과 물자는 440억엔이 넘는다. 수백만명에 이르는 인명살상과 여성 위안부, 문화재 탈취 등은 계량하기 어렵다. 36년 식민지배로 근대적 발전의 기회를 빼앗고 민족분단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용납되기 어려운 일본의 죄업이다.
일본 언론들이 문 후보자의 총리 지명을 반기고 조롱하는 것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역사정의’가 침몰하는 것 아닌가 두렵고 분노한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칼럼] ‘적폐 청산’, 시작부터 다시 하라

● 칼럼 2014. 6. 23. 18:4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박근혜 대통령의 적폐 청산과 정부·관료 개혁은 시작부터 잘못됐다. “그동안 쌓여온 모든 적폐”를 도려내겠다고 하는데 도려내기는커녕 반대로 적폐를 더 쌓을 태세이고, 국가개조를 하겠다고 하지만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좋게 개조되기는 틀린 것 같다.
 
박 대통령이나 전임 이명박 대통령이나 부지런하기로 치자면 우리 헌정사상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나. 그러나 이 대통령이 그렇게 열심히 일해도 대통령으로서 실패했듯이, 박 대통령도 ‘깨알 지시’를 해가며 부지런히 일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근정’(勤政)의 바른 뜻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부지런해야 하는 것만 알고 부지런해야 하는 바를 모르면, 그 부지런하다는 것이 오히려 번거롭고 세밀하게 흘러 보잘것없는 것이 된다”고 했다. 예부터 “임금은 사람을 알아보는 것을 밝음으로 삼는다”고 하였고, 오직 “어진 이를 구하는 데에 부지런하고 어진 이를 쓰는 데에 빨리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옆 나라 아베의 수첩을 몰래 훔쳐보고 뽑았냐는 비아냥이 돌 정도인 ‘이상한 사람’을 일국의 총리랍시고 지명해놓고, 무엇이 문제냐는 듯이 밀어붙일 기세다. 적폐의 누적이다.
 
새로 교체된 장관, 수석비서관이란 사람들도 대부분 충성스러운 측근들 돌려막기 수준이라니, 이들 또한 개혁과는 거리가 상당히 먼 것 같다. 하기야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휘두를 수 있는 힘은 인사권에서 나오고, 궁지에 몰릴수록 그 인사권을 가지고 자신의 주변을 맹목적인 충성파들로 둘러싸는 것이 다반사이니 그런 인사를 한다고 놀랄 일은 아니지만 국가개조 운운하는 대통령이 할 인사는 아니다. 더욱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리고 관료·정부 개혁이 화두가 되니 정치적 계산에 따라 적폐 청산, 관료개혁에 혼신의 힘을 다 바칠 것처럼 말하지만 선거만 끝나면 다시 흐지부지될 것은 뻔하다. 경제민주화, 복지를 단물만 빨아먹고 버렸듯이. 정치적 계산에 따라 오직 개혁하는 척만 할 뿐이지, 개혁해야 하는 바는 알고 싶지 않다는 것인가. 그러니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지, 왜 개혁해야 하는지,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지, 누가 개혁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다. 무엇이 적폐이고 왜 그것이 적폐인지, 그 적폐를 어떻게 청산해야 하는지, 그리고 누가 그 적폐를 청산할 수 있는지를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개혁방안이랍시고 며칠 만에 밀실에서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처음으로’ 듣기만 했다고, 그것도 장장(?) 세 시간 동안이나, 자랑스럽게 보도자료를 뿌려댔다. 그리고 청와대 밀실에서 주말 내내(?) 열심히 일해 만들었다니 참 대단하다. 그렇게 졸속으로 만들어낸 것을 가지고 국가개조를 하겠다니 국가개조라는 것이 그렇게 가벼운 것이었던가. 그런 개혁방안이 제대로 되었을 리 만무하다. 그러니 해경을 해체하네, 소방청을 해체하네 하는 황당한 방안을 내놓고 있다. 관피아를 청산하겠다면서 여전히 ‘정피아’ 내려보내기 바쁘고, 관료개혁은 고작 5급 행정고시 공채를 줄이고 민간 경력자 몇 명 더 늘리겠다는 것이 전부이니 관료개혁이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던가.
대한민국 정부부처에는 부처당 장관 이하 선임사무관까지 평균 480여명이나 상급자들이 있는데, 이런 층층시하 명령조직에 민간 경력 신입 5급 사무관을 매년 부처당 두어명씩 더 뽑아 보낸다고 관료개혁이 되겠나. 황당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오직 개혁하는 척만 하고자 할뿐인 것 같다.
 
진정 적폐를 청산하고 관료•정부 개혁을 하고자 한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부터 시작해서, 우리 사회가 개혁해야 할 적폐가 무엇인지, 왜 그것이 문제인지, 그리고 어떻게 청산해야 하는지 국민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찾아내야 한다. 여야, 시민단체가 참여한 범국민 위원회를 만들고 대통령은 이 일에서 손을 떼야 한다. 대통령도 조사 대상이고 개혁의 대상이니까.
< 이동걸 -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


[1500자 칼럼] SNS와 휴대폰

● 칼럼 2014. 6. 17. 11:1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인류의 역사를 볼 때, 그런 일이 있다. 역사의 흐름을 바꾼 발명이라고 할까? 얼핏 생각나는 대로 불, 철기 ,화약, 전기, 자동차, 티비, 컴퓨터 같은.., 오늘 날에 있어 SNS와 휴대폰이 우리 생활을 가장 크게 바꾸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처음에는 그냥 신기한 물건이 새로 나왔나 생각했지만, 어느 덧 우리의 일상생활에 떼어 놓을 수 없는 물건이 되고, 나아가서는 우리 생활 자체를 바꾸어 놓는 것이다. SNS는 Social Nework Service로 Facebook, Twitter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카툭이란 것도 유행한다지만 ,난 잘 모른다. 사실 이것이 휴대폰과 만남으로 놀라운 가속도가 붙어 발전하고 있다. 그러니까 휴대폰이 인테넷 연결을 항상 할 수 있게 만듬으로, 언제 어디서도 SNS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서, 사진기와 비디오의 기능을 함께 갖춤으로, 언제든지 사진과 비디오를 원하는 사람에게 또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소통과 공유’라고 할까? 그것이 진정한 소통이며 공유인지 그 점은 나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것이 우리의 개인생활 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정말 큰 변화를 가져왔고, 또 앞으로 가져 올 것이라 믿는다.

몇 해 전에 중동지역에서는 쟈스민 혁명이라고 있었다. 이집트에서 시작하여 리비아 그리고 아직 진행 중인 시리아 등에서 일어난 일종의 민중봉기를 말한다. 독재자를 몰아내고 민중을 위한 정부를 세운 일이었다. 그 혁명이 오래 된 비민주적인 사회를 얼마나 바꾸었는지 에는 의심이 든다. 왜냐하면 아직도 진행 중인 일이기 때문이다. 이집트만 해도 다시 군부쿠테타로 사실상의 군사정권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독재정권이 무너진 이유 중의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SNS와 휴대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것은 하나의 모이는 장소와 시간을 한 번에 여러 사람에게 빨리 알리는 연락매체가 되었고 나름대로의 생생한 현장 정보를 사진을 찍어 신속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알림으로 정보 전달의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가령 부상당한 데모대의 모습을 찍어 사진을 올리면, 순식간에 퍼져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시리아의의 경우 화학무기에 의한 희생자의 모습을 올려 자국 내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알려져 사람들의 분노를 사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한국에서 일어난 세월호 사고를 보아도 그렇다. 해경책임자가 희생자 가족들 앞에서 지금 현장에서 수색작업이 진행 중이며, 잠수활동을 하고 있다고 브리핑을 하는데, 전화가 온다. 가족 중 배를 타고 현장에 나가있는 사람에게 전화가 왔는데, 아무런 활동도 하고 있지 않다는 내용이다. 빨리 구조작업을 하라고 다그치자 해경간부는 또 전화를 걸어 잠수부를 투입하라고 현장에 명령한다. 그뿐이 아니다. 침몰하는 배안에서 전화를 하고, 어떤 학생은 최후의 순간까지 휴대폰으로 촬영을 하여 그 내용을 부모에게 보낸다. 그런 통화내용이나 사진, 그리고 동영상이 SNS에서 떠오르면서, 급속도로 사람들 사이에 퍼진 것이다. 게다가 초기 공영방송의 오보와 실수로 인하여, 더 많은 말들이 인터넷상에 떠돌지 않았나 생각한다. 유언비어도 있었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제 통제하려는 입장에서는 더 이상 정보의 독점이 힘들다는 사실이다. 아는 것이 힘이란 말이 있듯,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은 힘이다.

한국은 오래 전부터 IT강국이라고 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핸드폰의 보급률, 사용률, 그리고 SNS의 활동률은 최고가 아니가 생각한다. 캐나다는 내 또래의 나이든, 50대, 사람치고 SNS를 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 중에는 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같다. 사실 캐나다가 한국에 비해 많이 뒤쳐진 셈이다. 아니 세계적으로 비교하면 캐나다는 평균 이상이지만, 한국이 앞서간다는 게 정확한 표현같다. 최근에 한국에 갔다 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지하철을 타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휴대폰의 문자를 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 파급효과가 만만치 않다기 보다 엄청나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SNS라는 것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며,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인간관계의 소통을 가상공간인 인텨넷에서 찾아야할 만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외롭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추세는 갈수록 늘어났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비단 한국 뿐 아니라 여기도 점점 그렇게 변할 것이다. 우리세대가 아니라 할지라도 다음 세대에는….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한마당] 후진 못벗은 ‘고무줄 법치’

● 칼럼 2014. 6. 17. 11:1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고대중국의 법가사상가인 한비자(韓非子)는 나라가 망하는 10가지 징조를 열거했다. 그 중에 첫째로 꼽은 것이 법치(法治)의 와해였다. “법을 소홀이 하고 음모와 계략에만 힘쓰며 국내정치는 어지럽게 두면서 나라 밖 외세만을 의지하다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2천2백여년 전에 설파한 이 경고가 마치 오늘의 시대상을 꿰뚫어 보고 일갈한 것만 같은 감이 드니, 한비자의 혜안에 혀를 차게된다.
 
한비자는 중국의 전국시대 인물로, 군왕의 원만한 치세를 위해 법치와 엄벌주의를 강조했다. 법을 엄격히 적용해 잘잘못을 상벌함으로써 나라의 기강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법과 원칙이 바로 서야한다는 명제는 현대 국가에서도 사회정의 구현과 질서 유지, 공동선을 이루어 나가는 기본이요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법과 원칙이 생활화·보편화 되어있는 것은 그걸 말해준다. 그러나 불행히도 후진적 사회에서, 특히 권위주의 체제에서 법치의 주장은 독재자들 구미에 딱 들어맞는 말로 통치의 방편에 활용돼 왔다. 백성 위에 군림하려는 군왕적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법치주의를 강조했다. 스스로는 법과 원칙을 고무줄처럼 여기면서, 백성이 권위에 도전하는 경우에는 매섭게 적용해 처벌한다. 그런 ‘두 얼굴의 법치’에서 ‘유권무죄 무권유죄’니 ‘유전무죄 무전 유죄’라는 조어가 생겨나 비아냥을 산다. 실제로는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닌 권력의 편의적 방편으로 이용하는 데 따른 것이다.
요즘 그 고무줄 같은 권력 위주 법치의 모습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와 후진성을 ‘과시’하고 있다. 법치를 최전방에서 수호하고 집행해나가야 할 국가기관이 법치의 기본정신을 훼손하고, 권력 편에 서서 법치를 ‘권치’(權治)로 변질시키고, 만인을 위한 법이 아닌 권력자를 위한 방패막이와 때론 ‘몽둥이’로 악용하고 있는 격이다.
 
국가기밀로 분류된데다 외교적 협약이라고도 볼 수 있는 국가 정상간의 대화록을 불법 유출해 정치선전에 활용한 집권여당의 유력자들이 모두 면죄부를 받고 단 한 명만 벌금형으로 기소됐다. 특히 최고의 보안기관 책임자가 기록물을 까발려 정치적 파동을 부른 ‘국기문란’ 행위에도 검찰은 ‘무혐의’란 선물을 안겨줬다. 그 정보기관이 조직적으로 인터넷 댓글공작을 벌여 선거민심을 왜곡한 ‘헌정문란’ 사건에도, 현장에서 적발된 여직원이 방안에서 버티며 증거인멸에 안간힘을 쓴 사이 밖에서 지켰던 야당인사들은 4명 모두가 ‘감금죄‘로 몰려 벌금형에 약식 기소되는 역발상의 법적용으로 사람들을 아연케 했다. 대선 직전이던 그 당시 “댓글공작은 없었다”고 국민을 속였던 경찰책임자는 죄가 입증되지 않는다고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민중의 몽둥이‘라는 경찰이나, 권력 눈치만 보며 성의없이 공판에 임한 검찰이야 어차피 ’견찰‘(犬察)이나 ’권력의 시녀‘라고 전락한지가 오래니 그렇다고 치자. 그래도 국민이 한가닥 희망을 걸고있는 법원마저 ‘무죄’를 선고한데서는 마지막 보루가 무너져 내리는 절망을 보게된다.
 
대법원은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선거법위반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까지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국회의원들의 선고기일을 자꾸 늦춰 “금배지를 연명시켜 주고 있다”는 비판이다. 기소로부터 1심이 6개월, 그 후 항소심과 상고심은 각 3개월 내 사건을 종결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음에도 최고법원이 법을 어기는 비정상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법원까지 권력의 눈치를 보는 ‘권치’의 확산을 본다. 세월호는 과연 몇번 침몰해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한비자 보다 1천여년 전인 BC 13세기 무렵에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의 인도로 애굽 땅에서의 노예생활을 벗어나 가나안을 향한 광야생활을 맞이한다. 이 때 60여만 명의 백성은 오합지졸이요 온갖 악행에 빠져들지만, 하나님이 명한 규례와 율법을 지킴으로써 비로소 질서있고 품위있는 백성으로 거듭난다. 율법은 지도자 모세도, 백성도 모두가 지킴으로서 ‘법치’를 이루고, 하나님의 언약을 구가하는 축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비단 한 사람 권력자만을 위한 법치가 아닌 백성을 위한, 만인을 위한 공평한 법치는 정의롭고 차별없는 세상, 모두가 행복한 선진사회를 이루는 첩경이다.
 
성경 구약 신명기(4장 6절)에서 모세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 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국격’을 자랑하는 품격있는 선진국으로의 열망을 지녔다면, 한국의 권력자와 사정기관들이 새겨듣고 명심할 성구가 아닐 수 없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