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조금씩 풀리면서 6자회담 재개 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관련국들이 이견을 해소해 회담을 빨리 시작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을 때다.
6자회담 주최국인 중국은 회담 조기 재개와 관련해 미국 쪽 동의를 얻으려고 시진핑 국가주석까지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은 분위기 조성을 위해 9.19 공동성명 8주년 하루 전인 18일 베이징에서 참가국 모두가 참여하는 반관반민(1.5트랙) 회의를 열자고 제안한 상태다. 앞서 우다웨이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8월 말 북한을 방문해 의견을 조율한 바 있다. 중국의 이런 움직임에 발맞춰 미국도 지난주부터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글린 데이비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한·중·일 등 관련국을 순방 중이다. 언뜻 보면 2008년 12월 이후 중단된 6자회담이 곧 재개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회담 조기 재개를 바라는 북한·중국·러시아와 북한의 ‘비핵화 선 조처’를 요구하는 한국·미국·일본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러셀 차관보는 7일 “협상 재개가 완전한 비핵화에 이르는 신속한 로드맵(청사진) 도출에 성공할 것이라는 확실한 신호를 바란다”고 밝혔다. 회담 재개보다 북한의 구체적인 행동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미국 정부의 이런 정책기조는 지난 몇 해 동안 북한 핵 문제를 악화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전략적 인내’의 연장선에 있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지금 시리아 군사개입 문제에 몰두하고 있어 대북정책과 관련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도 회담 재개에 소극적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 올해 안에 6자회담이 재개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조기 회담 재개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부가 베이징 반관반민 회의에 고위 관리를 보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민간 전문가의 참석을 만류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회담 재개 동력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리려는 무책임한 태도다. 과거 경험에서 보듯이 우리나라가 적극적 의지를 갖고 미국·중국 등 참가국들을 추동해야 핵 문제가 진전될 수 있는데도, 정부의 행태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위험요소만 관리하며 기다린다는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는 북한 핵 문제를 풀 수 없다. 대북 압박에만 기대서는 사태가 오히려 악화하기 쉽다는 점도 분명하다. 북한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핵 문제 해결이라는 6자회담의 핵심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회담 재개는 논의 진전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정부와 미국은 모처럼 다가온 회담 재개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지 말기 바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큰아들 전재국씨가 10일 기자회견을 열어 아버지의 미납 추징금 완납을 위해 가족들의 재산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대법원 확정판결로부터 무려 16년이 흐른 뒤에야 감춰둔 재산을 내놓겠다고 했으니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것도 검찰 수사의 칼날이 압박해 들어오고 여론의 비난이 홍수처럼 밀려들자 마지못해 두 손을 든 인상이 짙다.
이번 추징금 완납은 크라우드소싱을 통해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낸 <한겨레>를 비롯한 언론의 집중보도와 특별팀까지 편성한 검찰의 집요한 추적이 이끌어낸 성과다. 권력을 이용한 부당한 축재는 결국 꼬리 잡히고 만다는 중요한 교훈을 남긴 것으로, 그동안 환수 과정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낸 민심의 승리라고도 할 만하다.
 
그러나 아직 문제는 남아 있다. 우선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탈세 등 여러 불법행위를 그대로 둘 것이냐 하는 점이다. 검찰은 “원칙대로 수사하되 자진납부 등 여러 정상을 감안해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선처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래선 안 된다. 부정축재한 비자금을 종잣돈으로 해서 불린 재산이 1조원에 이른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천문학적 축재를 해놓고도 “29만원밖에 없다”며 국민을 우롱한 게 불과 얼마 전이다. 돈을 감추는 과정에서 온갖 불법을 다 저질렀음도 드러났다. 불법행위는 법대로 엄정 처리함으로써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이는 것만이 권력형 비리의 재발을 막는 길이다.
조세회피처에 유령회사를 두고 돈을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는 전재국씨와 미국 캘리포니아에 1000억원대 포도주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받는 셋째아들 전재만씨 등의 해외재산이나 금융재산은 이번 납부재산 목록에 하나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대신 서울 연희동 집과 경남 합천군의 선산을 목록에 올려놓았다. 선산까지 팔아서 납부하는 모양새를 통해 여론에 호소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그러나 2004년 둘째아들 전재용씨 소유의 채권 73억원이 아버지의 비자금으로 드러났듯이 감춰둔 금융자산과 해외재산이 여전히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만일 부정축재한 종잣돈을 이용해 불린 재산이라면 추징금 완납과 별개로 이 역시 어떤 형태로든 사회에 환원하는 게 맞다.
그동안 열심히 수사해온 검찰은 이런 점들을 두루 고려해 마지막까지 엄정한 잣대를 유지해 유종의 미를 거두기 바란다. 또 이번 기회에 차명계좌를 개설해준 금융기관만 처벌하게 돼 있는 금융실명제법이나, 체납하더라도 가산금이나 이자가 붙지 않는 형사소송법상의 추징금 제도 등도 손볼 필요가 있다.


여름의 끝에 본 영화가 하필이면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1966년 작 <페르소나>였다. 영화 속에서 여자주인공이 경악을 하며 보고 있는 텔레비전 화면은 1963년 베트남에서 일어난 승려의 분신 전과정을 끈질기게 비추고 있었다. 월남의 응오딘지엠(고딘디엠) 정권이 사찰을 폐쇄하고 무차별 폭압정치를 할 당시 월남에선 서른명이 넘는 스님이 길거리에서 분신했다. 미국과 세계 여론이 월남에서 등을 돌리게 한 기폭제가 되었다.
50년의 세월이 지났다. 베트남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호찌민 묘에 조신하게 헌화하는 모습을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본다. 호찌민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가 빨갱이 나라 월맹을 무찌르기 위해 월남 파병을 했던 그 월맹의 괴수였고 지금은 베트남의 국부이자 베트남 국가정통성의 아이콘인 인물이다.
 
그렇게 역사는 흘러가는 것이다. 호찌민도 박정희도 김일성도 묻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역사고 그렇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현존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베트남 국가주석이 ‘사돈 나라’라는 외교적 언사를 쓴 것도 실은 숱한 민간인 학살에 간여했던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하기에는 베트남 사람들 입장에선 쓰린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국가 간의 현실적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새롭게 미래를 구축하기 위한 길이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엔 과거의 망령이 어른거리고 과거로의 회귀 조짐이 스멀스멀, 아니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모르겠다. 러시아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의 정치철학과 국가관이 자신에게 가장 영향력을 끼쳤다고 발언한다. 자세한 인터뷰 내용을 보니 그의 아버지는 그지없이 훌륭하다. 그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떼어내놓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란 걸 모를 정도로 순진한 건지 아니면 의도된 것인지 경악스럽다.
 
자신에겐 비할 수 없는 훌륭한 아버지였을지 몰라도 그 이름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엄연히 살아 있다. 20년 독재정권을 이끌었던 아버지가 자신의 ‘워너비’가 되어서는 박근혜 대통령에겐 희망이 없다. 아버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하는데도 왜 자꾸 닮아가려 하는 것인지. 우리 사회가 긴급조치 시대로 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의 해답이 여기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와 아버지의 시대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의중이 이런 방식으로 자꾸 표현되기 때문이다.
늙은 남자들이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팔을 휘두르며 설친다. 빨갱이 잡으러 간첩 잡으러 가자고 길 가는 시민들을 위협하고 가스통을 들고 난동이다. 이들에게 누가 완장을 채워주었는가. 영화상영 중단이라는 일제 때에나 있었을 법한 일이 벌어진 것도, 대학생이 자본론을 가르친 교수를 국가정보원에 고발한 것도, 역사교과서 왜곡도 다 같은 맥락이다. 국정원이 온갖 공작을 하는 것도 일일이 지시하지 않았어도 알아서 긴 것이다. 적어도 신변이 위험하지 않으리라는 믿음과 보이지 않는 손의 비호가 있고 어쩔 수 없이 그 정점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실제로 지시하지 않았어도 의중을 헤아려 딱 그만큼 하는 거다. 대통령 말씀과 의중은 곧바로 정책이 되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과 아버지의 정치철학과 국가관에 가장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본격적으로 박정희의 정치철학과 국가관을 토론해보면 박근혜 대통령도 아버지가 역사에 대한 반동의 정치를 한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박정희가 저세상 사람이 된 때가 예순세살이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내년이면 예순셋이다. 곧 아버지보다 나이 많은 사람으로, 대통령으로, 아버지가 가보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부산에서 열차를 타고 러시아를 지나 유럽까지 가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했다. 어쩌다 보니 대통령의 꿈과 나의 꿈이 같다. 북한을 건너뛰고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냥 한번 해본 농담이 아니라면 재임 기간에 그걸 하면 된다. 박정희 딸이 호찌민의 묘에 헌화하는 믿기 어려운 광경을 보았다. 모든 게 박근혜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대통령이 진정으로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하면 된다.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본다.
< 김선주 - 언론인 >


[한마당] 누가 자유민주주의의 적인가

● 칼럼 2013. 9. 16. 18:26 Posted by SisaHan
새누리당의 김무성 의원이 지난 4일 근현대역사교실이란 의원모임을 출범시켰다. 
출범식에서 그는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가 못난 역사로 비하되고 한국을 부정하는 역사가 학생들에게 가르쳐질 때 국론이 분열되고 나라가 어지러워져 이석기 사건 같은 현상으로 나타난다”며 “역사를 바로잡을 방안을 모색해 좌파와의 역사전쟁을 승리로 종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그가 역사전쟁의 진군나팔을 분 다음날 우편향 사실왜곡으로 비판받는 교학사 역사 교과서 집필자들과 그들이 속한 신우익 계열의 한국현대사학회 회원들은 심포지엄을 열고, 기존 역사 교과서들이 대한민국을 극복 대상으로 보고 있다며 싸잡아 비판했다. 그들은 현장을 찾은 새누리당 의원에게 지원을 요청하면서 교학사 교과서 비판자를 반민주세력으로 몰아가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잠깐! 자학사관에 빠진 기존 역사교육을 바로잡아 자랑스런 역사를 전해야 한다는 이 주장,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일본의 전후 역사 교육은 … 일본인의 긍지를 상실하게 하는 것이었다. 특히 근현대사에서는 일본인이 자자손손까지 계속 사죄할 운명을 타고난 죄인과 같이 취급되고 있다. 냉전 종결 후는 자학적인 경향이 강화돼 … 종군위안부 같은 옛 적국 프로파간다를 사실로 기술하고 있다.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은… 일본 국가와 일본인의 자화상을 품격과 밸런스를 가지고 그림으로써 선조들의 활약에 감동하게 하고 실패의 역사에도 눈을 돌리게 하는 … 교과서를 만들 것이다.” 역사왜곡으로 해마다 우리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돼온 일본 ‘새역모’의 취지문이다.
새역모가 만든 일본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대해 한국현대사학회 일원인 허동현 교수는 “자긍 과잉과 성찰 결여로 요약된다. 성찰이 결여된 과거사 학습은 한 민족이나 국가의 미래를 잘못된 길로 이”끈다고 비판했다. 이어 왜곡세력이 침략에 대한 반성을 자학이라고 매도하며 역사의 기억에 분칠하려는 이유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주도한 세력의 적자로서 제국 일본의 옛 판도와 영화를 되찾고 싶어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옳은 지적이다. 문제는 새역모 교과서에 대한 이런 비판은 그가 지지하는 교학사 역사 교과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 교과서의 필자 권희영 교수는 20세기 역사는 전체주의에 맞서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한 역사라며 우리 근현대사도 자유민주주의 체제 발전의 역사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적 주장이지만, 그의 주장에 비춰 봐도 이 교과서 기술은 이상하다. 자유민주주의를 중시한다면, 역사 평가의 잣대는 인권 보호와 주권재민이란 그 핵심 가치 구현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는 식민지근대화론에 기대 민족자결권을 유린한 일제와 그에 부역한 친일파의 복권을 꾀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해 쫓겨난 독재자 이승만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만든 위대한 인물로 추어올렸다. 박정희 쿠데타는 미국의 지지 등을 거론하며 그 부당성을 희석했고, 종신지배를 위한 그의 10월 유신은 미-소 데탕트에 대한 대응으로 설명했다. 전두환의 광주학살은 계엄군의 광주 장악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고 얼버무렸다.
왜일까? 그들의 자유민주주의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자유민주주의에 이르지 못하고 냉전적 반공주의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부각시키는 북한은 원조로 연명하는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그들 말대로 남·북한 체제 경쟁은 남한의 완승으로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여당 대표가 제1야당을 종북세력의 숙주라고 비난하는 등 여전히 철 지난 반공 칼춤을 추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친일 세력과 쿠데타 세력의 적자인 현 집권세력이 자유민주주의를 참칭하며 권력을 유지하게 해온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북세력의 진정한 숙주는 자유민주주의를 왜곡해 시대착오적 주사파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키워온 수구우익세력이다. 
자랑스런 우리 역사는 좌파에 대한 역사전쟁의 승리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과거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더 성숙한 민주국가를 가꿔갈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 한겨레신문 권태선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