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부의 세습, 창업의 세습

● 칼럼 2013. 9. 1. 18:48 Posted by SisaHan
지난달 고급 스피커로 유명한 ‘보스 코퍼레이션’의 창업자 아마르 보스 박사의 부고기사를 접하고 블로그에 글을 쓴 일이 있다.
원래 그런 인물이 있는지도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그의 생애에는 남다른 점이 많이 있었다. 그는 미국으로 망명한 인도 독립운동가의 아들이다. 1950년대 MIT 학생일 때 쓰던 오디오 스피커의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직접 좋은 스피커를 만드는 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64년 아예 보스를 창업한다. 이후 그는 거의 반세기에 걸쳐 보스를 2조8000억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세계적인 회사로 키워냈다. 하지만 회사를 끝까지 주식시장에 상장하지 않고 비공개로 가져갔다. 단기수익을 요구하는 월가의 압력을 받지 않고 장기적인 비전이 있는 연구개발을 추진하려면 기업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MBA가 이끄는 회사에 있었다면 100번은 잘렸을 겁니다”라는 그의 말은 그런 의미에서 여운을 남긴다. 그는 또 회사를 경영하는 것과 동시에 평생 엠아이티 교수로 후학을 기르는 데 전념했으며 83살로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에는 보스의 주식 등 몇 조 단위가 될 대부분의 재산을 MIT에 기부했다.
 
국내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은 이런 그의 생애에 대해서 글을 쓰자 놀라울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내 개인 블로그인데도 거의 2만에 가까운 조회수를 올린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보스 박사의 생애에 감동한 듯싶었다. 그리고 어떤 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무엇보다 그런 부를 축적하고도 자식에게는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고, 아들도 자기 이름으로 따로 회사를 창업해서 성공했다는 것에 감탄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에 모 재벌 방계 회사의 총무부서에 다니는 지인의 푸념을 들은 일이 있다. 해외유학까지 하고 왔는데 기껏 자신이 하는 일은 오너 가족의 먹고사는 일을 챙기는 것이 대부분이란 이야기였다. 오너의 친인척에게 돌아갈 이권사업을 문제가 안 되는 한에서 찾아서 챙겨주는 것이 그의 업무였다.
한국의 수많은 재벌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에서도 1세대 기업인들은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려는 궁리를 한다. 자식들은 어떻게 하면 부모의 회사에서 떡고물을 더 얻어먹을 수 있을까를 궁리한다.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더라도 처음부터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모회사의 우산 속에서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을 궁리한다. 외부 투자를 받기보다는 부모 회사의 쌈짓돈을 가져다 회사를 만들고 부를 증식한다. 위험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한국식 부의 세습 문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올해 4월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실리콘밸리의 성공 비밀에 대한 토론회를 본 일이 있다. 그 행사에 토론자로 참석한 원로 여성기업인 샌드라 커치그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아기 엄마로서 방 한구석에서 소프트웨어 벤처를 시작한 커치그는 나중에 회사를 성공시켜 거액에 대기업에 매각하는 성공을 거뒀다. 그런데 이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창업에 도전하고 있으며, 장성한 두 아들도 각각 회사를 창업해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은 돈을 댄 것이 아니고 선배 창업가로서 조언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대를 잇는 왕성한 창업정신이 실리콘밸리가 진정으로 번성하는 비결이라는 얘기를 했다. ‘창업의 세습’인 것이다.
창조경제는 단순히 돈을 많이 풀고 창업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정책지원과 돈줄이 없어지면 다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구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창업은 문화가 되어야 한다. ‘부의 세습’이 아니라 ‘창업의 세습’을 자랑스러워하는 문화로 말이다. 한국 부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쉽다.

< 임정욱 - 다음 커뮤니케이션 임원 >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 유출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도쿄전력은 냉각수 저장탱크 1곳에서 300톤가량의 오염수가 유출됐다고 확인한 데 이어, 다른 저장탱크 2개를 비운다고 24일 발표했다. 저장탱크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저장탱크는 접합부분을 용접하지 않고 볼트로 연결하고 고무패킹 처리한 것이라고 한다. 여름철 열기와 탱크 내 고압으로 고무패킹이 훼손되기 쉽다는 얘기다. 한 전문가는 일본 언론에 나와 “공사기간도 짧고 돈도 적게 들여 만들었기 때문에 탱크가 장기간 버틸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고 털어놨다. 그런데 이런 탱크가 원전 부지에 350기가 설치돼 있다니 곳곳이 지뢰밭인 셈이다.
오염수 유출이 알려진 뒤 우리나라 수산물 시장을 찾는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다고 한다. 서울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은 “해산물 진열하는 데 쓰는 하루 얼음값 3만5000원도 못 번다”거나 “차라리 일본산은 수입금지를 하면 좋겠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 대책을 보면 심각성을 깨닫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4일 태평양에서 잡힌 수입 수산물 6종에 대한 방사능 검사 빈도를 주 1회에서 2회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명태, 꽁치, 가자미, 다랑어, 상어, 고등어 등이다. 하지만 오징어 같은 난류성 어종은 후쿠시마 해역과 한국 연근해를 회유하기 때문에 원산지와 관계없이 방사성 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수산물에서 세슘이 기준치 이내로 나와도 인체에 쌓이면 치명적인 만큼 방사능이 ‘기준치 이하면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정부의 대처 방법도 너무 공안적이다. 정홍원 총리는 “괴담이 돌고 있으니 적극 대처하라”는 투의 지시를 내리고 있으나, 이는 사태를 해결하려는 자세가 아니다. 그저 사회불안을 잠재우겠다는 얘기로만 들린다. 일본 농수산물에 대한 검역기준을 한층 강화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세세하게 알려야 한다. 또 조금이라도 위험이 있는 식품은 즉각 수입을 금지하는 게 최소한의 대처가 될 것이다.
 
일본 정부에도 할 말은 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의 태도를 보면 투명하지 않은 구석이 많다. 외신들은 후쿠시마를 ‘보이지 않는 위기’라고 부르고 있을 정도다. 일본 당국이 뒤늦게 사고 등급을 부여한 것도 더는 이를 숨길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많다. 일본 정부가 관련 정보를 은폐하거나 축소하지는 않았는지 꼼꼼히 따져보고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해야 한다. 우리 정부에 대한 국민의 믿음은 거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양건 감사원장이 임기를 1년7개월 남겨두고 전격 사퇴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양 원장이 청와대의 논공행상식 인사 개입에 반발해 물러났다거나, 4대강 감사 결과를 둘러싼 권력 내부의 갈등 탓에 사퇴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유야 어찌됐든 임기 4년의 감사원장이 중도에 사퇴한 것은 감사원의 중립성이 또다시 훼손된 중대사안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양 원장 사퇴가 청와대의 무리한 인사 개입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청와대는 공석인 감사위원에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선대위 정치쇄신특위 위원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 인수위의 정무분과 위원을 지낸 장훈 중앙대 교수를 내정하고 양 원장에게 제청하도록 종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양 원장은 캠프 출신 인사가 독립기관인 감사원의 감사위원으로 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결국 사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양 원장 사퇴가 감사위원 인사 때문인지는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도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만한 인사가 추진된 것만으로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선 캠프 출신인 은진수 감사위원을 임명함으로써 감사원 독립성이 크게 훼손된 것을 지켜본 터에 또다시 현 정부에서 캠프 인사를 감사위원으로 임명하려 든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다. 과거 정권의 잘못된 인사를 반면교사 삼아도 모자랄 판에 이를 따라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양 원장 사퇴가 4대강 감사를 둘러싼 권력다툼 때문이라는 설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가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4대강 사업을 했다는 지난 7월의 3차 감사 결과를 놓고 권력 내부에서 이런저런 분란이 일자 양 원장이 결국 토사구팽됐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감사원장이 감사 결과 때문에 정치적 희생양이 됐다면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감사원의 4대강 감사를 둘러싼 이런저런 논란이 양 원장 사퇴로까지 번진 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그 진상이 명확히 규명돼야 할 것이다.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정권이 감사원을 통치에 이용하려 들기 때문이다. 국가기관에 대한 감사가 독립적으로 이뤄지는지 여부는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다. 지금처럼 감사원 중립성 논란이 매번 되풀이돼서는 선진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감사 기능의 국회 이관 등 제도적 방안도 더욱 연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권이 감사원을 수족 부리듯 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그것이 당장은 편할지 모르지만 결국은 정권에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500자 칼럼] 34년만의 공개

● 칼럼 2013. 8. 26. 12:20 Posted by SisaHan
‘一心(일심)’이 처음 내 마음을 끌었던 건 대략 여섯 살쯤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 우리 집은 제법 큰 ㄷ자 형으로, 대문을 들어서면 세 들어 살던 마부 아저씨의 마구간이 있었고, 마당 가운데는 큰 우물이 있었다. 
여름날 저녁이면 마부 아저씨는 웃통을 벗고 말없이 그러나 힘차게 몸을 씻었다. 그때마다 울퉁불퉁 어깨 위에서 움직이던 一心이란 푸른 표식이 참 묘했다.

입대 후 1년이 조금 지난 연말에 카드를 1장 받았다. 엽서 크기의 화포(畵布)에 담긴 묵화와 一心이란 단어. 화가인 자형의 그림 뒷면엔 시와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담은 작은 누나의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원입대를 했던 그 시절, 여러 구차한 사정들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그림 속의 一心을 꺼내 보았다. 그래 할 수 있다면 이걸 삶의 방향으로 삼자. 1979년이 저물어 가던 겨울, 혼자만의 어설픈 다짐을 새겨 보았다.

“아빠, 우리 집 가훈이 뭐야?”. 
“一心”.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의 학교 과제물 덕분에 엉겁결에 가훈이 생긴 셈이었지만, 단번에 그렇듯 고전적인 가훈을 일러줄 수 있는 가장이 된 자신이 마냥 대견했다.
“아니, 그게 무슨 조폭 문신 같은 소리예요. 좀 뼈대 있는 집안처럼 일러주지 못하고!”.
이후로 가훈 얘기만 꺼내면 여지없이 아내의 핀잔을 들어야 했지만, 
어쨌거나 그 엽서 그림이 까만 테두리 액자에 담겨 슬그머니 가훈으로 등장하게 된 것도 그 날이 시작이었다.

‘지어진 대로/ 온 힘을 다해 몸짓하는/ 바람 들녘의 야생화.// 한 떨기 엉김 속에 이는/ 참, 아름다운 거/ 참, 자유로운 거.// 평생을 바라며/ 매일을 새기는/ 한마음 한목숨.’
가족을 한국에 두고 먼저 캐나다행 비행기에 오를 때 그 까만 액자도 함께 품었다. 지금은 친척처럼 지내는 매카트니 아저씨 댁에서 몇 달을 머물던 어느 날, 엽서 그림 뒤에 눌러 쓴 다짐이었다.

‘집안 어른들이 그 자녀나 제매에게 주는 교훈’, 내가 사용하는 민중서림 국어사전에 나오는 정의다. 인터넷 다음사전을 열어보니 ‘법도 있는 집안에는 자손 대대로 물리는 가훈이 있다’는 예문도 보인다. 
그랬다. 이게 우리 가훈이요 자신 있게 내세우지 못했던 것은 아내의 핀잔 탓이 아니었다. 후대 교훈은커녕 서툰 삶의 몽상이 될 공산이 크니, 사전적 정의에도 안 맞고 예문에 비춰 보긴 더욱 어림없는 노릇인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오늘 느닷없이 아내와 아들을 불러 앉혀놓고 34년 된 엽서 그림의 뒤를 내보여 주며 장광설을 늘어놓게 된 까닭은, 며칠 전 만났던 닥터 로이트만의 미소 띤 얘기에 힘입어서다.
“오래 잘 참았다. 수고했다. 6년이 넘도록 아무런 이상 없이 모든 게 좋으니 더는 올 필요가 없다.”
캔서 서바이벌을 선언하는 의사의 음성이 자꾸 귓가를 맴돌았다. 이제 살아라, 마음 품은 대로 힘껏 살아서, 사랑할 것들을 더욱 사랑하라는 하나님 말씀 같아서.

34년만의 공개와 함께 시작된 우리 집 가훈의 전설 따라 삼천리. 얘길 듣던 아내의 눈에 살짝 물기가 어리고, 아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약하지만 비로소 가훈이 흐르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 김준태 - 시인. ‘시.6.토론토’동인 / ‘시와 시론’으로 등단 >
펜클럽 회원,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