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결과 위계’ 라는 낡은 보수 본색

● 칼럼 2013. 10. 6. 15:04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미국발 경제위기가 지구촌 전체로 확산된 지난 6년 동안 유럽에서는 대부분의 집권 정당이 바뀌었다. 위기의 구조적 요인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점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기도 한 현상이다. 그 와중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기민당의 의석수를 크게 늘리며 3선에 성공했다. 경제가 다른 나라보다 순항하는 이유가 크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한마디로 ‘엄마 리더십’으로 불리는 중도적 실용주의의 승리다. ‘유연성, 포용, 신중함’이 그를 수식하는 수사다. ‘뉴라이트’나 ‘네오콘’과는 구별되는 ‘통합형 보수’다.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켈과 가깝다고 하지만 두 사람은 여성이라는 점 이외에 공통점이 거의 없다. 오히려 정반대다.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유연성 대신 대결, 포용 대신 위계(또는 지배), 신중함 대신 밀어붙이기(본인은 ‘원칙’이라고 할 것이다)를 앞세운다. 게다가 이런 경향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불과 취임 7개월 만에 자신의 복지 공약 가운데 핵심인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무상보육 등의 사안에서 공약 파기를 공식화하고 있다. 여기에 사회적 차원의 진지한 토론도, 야당과의 타협도 없다. 정부가 해직자의 조합원 가입을 이유로 전교조의 노조설립 취소 수순에 들어간 것은 노동 문제에서도 대결 기조로 가겠다는 선언이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역사전쟁’을 사실상 주도하는 사람도 박 대통령이다. ‘역사 교육에 문제가 많다’고 불을 지폈던 그는 뉴라이트 성향의 부실 교과서가 큰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이 교과서와 긴밀한 관계를 가진 사람을 새 국사편찬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대결과 지배의 무대가 역사관에까지 확장된 것이다.
박 대통령은 국가정보원의 불법 대선 개입 사실이 속속들이 드러났는데도 사과와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는 야당에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다. 민주당이 서울시청 앞에 천막당사를 설치하고 54일 동안 장외투쟁을 했다고는 하지만, 민주당의 요구 내용은 박 대통령에게 ‘부탁’하는 수준의 온건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야당이 자신의 정통성과 권위에 부당하게 도전하는 것처럼 야당의 굴복을 요구해 왔다.
 
남북 관계도 다시 기약 없는 냉각기에 들어갔다. 현상적으로는 예정된 이산가족 상봉을 북쪽이 일방적으로 연기시킨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 이면에는 대결과 지배를 추구하는 정책기조가 깔려 있다. 새누리당 소속 안홍준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엊그제 “최근 개성공단 가동 재개 협상에서 7차 회담까지 진행된 끝에 북한이 재발 방지에 합의한 것은 북한으로서는 굴욕에 가까운 것이었다”며 “박근혜 대통령 취임 뒤 소신 있는 원칙을 강조하면서 지금은 주도권이 한국에 있다”고 했다. 북쪽이 남쪽의 ‘하위 주체’임을 분명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남북 관계도, 핵 문제를 풀기 위한 대화도 필요하지 않다는 이런 태도는 정부 안에서 일반적이다.
재벌과의 관계에서는 위계가 정반대다. 재벌들이 집요한 로비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 경제민주화 공약들이 후퇴를 거듭하는 가운데 대통령이 직접 재벌 총수들을 만나 고개를 숙이고 투자를 ‘구걸’하기에 이르렀다.
 
박 대통령은 8월 초 청와대 개편을 전후해 여권 안 수직적 위계질서 구축을 끝내고 이제는 이를 사회 전체로 확산시키려 한다. 앞서 이명박 정권은 ‘한국 사회 전체의 시장화’를 추구했으나 거센 역풍을 맞았다. 현 정권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의 굴복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권보다 더 폭력적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대에 형성된 보수 본류의 본색이 드러나고 있다고 하겠다.
메르켈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폐기를 선언해 녹색당 바람을 가라앉혔고, 22일 치러진 총선에서는 가정복지 정책 강화와 징병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어 사민당의 표를 가져갔다. 박근혜 정권은 이와 반대로 낡은 보수의 본색을 강화해 나간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당분간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큰 대결과 갈등을 불러 부러지거나 내파할 가능성이 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생생한 사례다.
< 김지석 - 한겨레 신문 논설위원 >


[한마당] 메르켈과 박근혜

● 칼럼 2013. 10. 6. 15:0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며칠 전 끝난 독일 총선 과정에서 최대 화제는 ‘손’이었다. 
집권 기민당이 두 손만 클로즈업한 70m×20m짜리 ‘기괴한’ 대형 선거포스터를 베를린 중앙역 청사에 내건 것이다. ‘독일의 미래가 달린 선한 손’이라는 글귀만 아주 작게 달렸다.
요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손 모양”이라 불리는 이른바 ‘메르켈-마름모’ 사진이다. 유심히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항상 배 앞에서 두 손을 아래쪽으로 겸손히 모아 마름모 모양을 만드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손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도대체 ‘손짓’만으로 3선을 확정지으며 세계 최장 여성 총리 자리를 예약한 메르켈은 누구인가.
 
메르켈은 세계 정치무대에서 ‘수수께끼’로 불린다. 누구는 무명의 동독 출신 여성 물리학자가 일약 국제적 지도자가 된 것은 헬무트 콜의 발탁과, 독일 역할이 절대적이었던 유로 위기라는 상황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외부 조건만으로 메르켈을 다 설명할 순 없다.
보수주의자 메르켈의 힘은 ‘실용주의’에서 나온다. 대표적인 게 원전 정책이다. 그는 집권 뒤 전임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권이 정해놓은 노후 원전 폐기 시기를 더 뒤로 미뤘지만,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진 뒤 전격적으로 탈원전을 결정했다. 물리학 박사 출신이자 환경 및 원전안전 장관을 몇년씩 했던 원전 신봉자였기에 이런 전환은 더 극적으로 비쳤다. 
여성 정책도 마찬가지다. 유럽연합 차원의 기업 CEO 여성 쿼터제 도입에 반대한 것 등을 이유로 그는 ‘반여성적’이라는 비난에 내내 시달렸다. 그런데 지난해엔 독일 기업들을 향해 “여성 쿼터 증가에 자발적 움직임을 기대했지만 이제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고 있다”며 법제화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매섭게 경고했다. 
전업주부 대상의 ‘어머니 연금제’가 여성의 사회진출을 저하시키는 보수적 정책이라는 지적이 일자 3살 이하 탁아소의 전면확대 같은 대안도 동시에 내놓았다.
 
이런 그에겐 ‘신념이나 비전이 없는 정치인’이라는 꼬리표가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합의가 형성될 때까지 논쟁이 무르익기를 기다리고, 미리 정답을 정하지 않고 여러 대안을 모색해놓는 신중한 스타일은 그를 차츰 “이데올로그가 아닌 문제해결사”로 불리게 했다. 
“메르켈은 독일 정치의 핵심이 합의와 연합 구축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한다. 자신이 지키지 못할 정책을 그가 쉽게 뱉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야당은 언제든 파트너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을 기계적으로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파이낸셜 타임스>)
지난해 12월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한겨레신문사에 들렀던 일이 떠오른다. 편집국을 돌다 마침 내 자리에 놓여 있던 책 제목을 본 그가 웃으며 물었다. 
“그래, 여성이 대통령이 되면 세상이 달라진답디까?” <왜, 여성대통령인가?>라는 그 책의 상당부분은 메르켈 총리 얘기였다.
 
그 책을 이후 박 대통령이 읽었는지 확인한 바는 없지만, 책 없이도 박 대통령 본인은 메르켈을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을 것 같다. 이달 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는 두 사람이 반갑게 악수하는 사진이 보도됐다. 2000년 각각 야당이던 시절 만나 친분을 유지한 이래 벌써 네번째 만남이란다.
자국의 첫 여성 지도자이면서 이공계 전공자, 보수 야당을 집권당으로 올려놓았다는 점 등 공통점이 적잖은 두 사람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메르켈의 힘을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USA투데이>는 메르켈을 두고 “도그마의 수렁에 빠지지 않는 보수정치인이 어떻게 사회를 분열시키지 않고 이끌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고 말했다.
< 한겨레신문 김영희 문화부장 >


[1500자 칼럼] 신(新) 현모양처

● 칼럼 2013. 9. 30. 10:59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얼마 전, 한 TV 오락 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연예인 참가자들에게 장래희망을 일일이 물어보았다. 일부는 진지하게 또 소수는 오락적인 답변으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중에 가장 반전을 일으켰던 장래희망은 요즘 대세를 이룬다는 걸 그룹 중의 한 멤버가 대답한 ‘현모양처’였다. 상상외의 답변에 좌중은 웃음바다를 이루었으나 정작 본인은 진지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가 보인 진지함 마저 오락적 연출인지 아닌지 불분명했지만 화려함의 극치에 있는 소녀의 답변에서 나는 한 생각을 키워보았다. 현대적 감각을 가진 현모양처는 어떤 모습일까, 혹시 이웃의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고. 
 
요즘 눈여겨보는 젊은 여인이 있다. 향기로 말한다면 바닐라나 오렌지 향보다 라벤더 향에 가깝고, 꽃으로 치면 목련이나 장미보다 해바라기 꽃 같은 건넛집 여인이다. 
그녀는 서른 중반의 연령대에 S라인 몸매를 가졌으며 미모라고 할 수는 없으나 세련미를 겸비했다. 사회생활을 한다면 전문직에 종사할법한데 전업주부로 돌아와 육아에 전염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그렇게 특별하다고 할 수 없지만 가정을 이끌어 가는 솜씨는 수십 년 경력자인 나 보다 훨씬 월등해 보인다. 
그녀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차고 안을 우연히 들여다보면서 부터였다. 흔히 창고로 사용하는 차고의 벽면을 마치 상품 진열장처럼 깔끔하게 손질 해 놓은 살림솜씨는 가히 일품이었다. 집안에서 가장 허접한 물건들이 모이는 곳임에도 주부의 손길이 자주 미치지 못하는 곳이 창고이다. 하지만 그곳조차 삶의 군더더기를 허용 않는 그녀의 성품은 생활 곳곳에서 나타났다. 정원 일을 하는 날은 하루 종일 숙련된 조경사의 솜씨로, 집 외관을 손 볼 때는 남편과 똑 같은 역할을 하며 적극적으로 주어진 일을 처리한다. 
 
또한 그녀는 대인과의 교류를 절제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손님의 방문도 그렇다고 외출도 잦지 않다. 자신의 대외활동으로 인해 가족들이 혹시 모를 불편을 겪게 되거나 그들을 소홀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가 깔려있음이리라. 대신 언제 어디서나 네 식구가 똘똘 뭉쳐 무엇이든 함께 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그녀의 일과 중에 가장 내 마음에 드는 부분은 여가시간 활용이다. 정오가 되면 나는 집안일을 대충 마무리 하고 출근길에 오르지만 그녀는 대문 앞 돌계단에서 태양열을 쪼인다. 차를 후진하면서 온몸으로 태양 에너지를 흡입하는 그녀를 훔쳐보는 것은 부러움이면서 즐거움이다. 
보통 홀로 자유를 만끽하는 그 시간엔 신문이나 책을 읽으며 차를 마시던 그녀가 오늘은 웬일로 한 뼘도 안 되는 핫팬츠에 끈 달이를 걸쳤고 챙 넓은 밀짚모자를 얼굴에 가렸다. 그리고 다리는 최대한 벌린 상태로 상체를 뒤로 젖힌 포즈가 여느 때와 사뭇 다르다. 포즈가 다소 강렬해도 그녀는 요염하거나 헤프게 보이지 않고 오히려 힘겨운 오전이었음을 연상하게 한다. 그녀만의 독특한 치유법인 셈이다.

현모양처의 변화된 모습은 매사 소극적에서 적극적으로, 절대 희생에서 상생으로 그리고 자부심과 열정으로 건강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그녀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


[한마당] 닮은 꼴 역주행 망령

● 칼럼 2013. 9. 30. 10:5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근래 일본을 보면 한심하고 걱정스런 일들이 한 둘이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방사능 오염수가 인근 바다로 엄청난 양이 흘러나갔고, 수산물이 오염돼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국제사회에 오염수는 철저히 차단된다고 큰소리 쳐 올림픽을 유치한 것 까지는 원래 낯 두꺼운 사람들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이웃 여러 나라들이 자국의 수산물을 수입 금지시켰는데, 유독 최근린국인 한국에 대해서만 항의사절단을 파견하는 쇼를 부리고,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겠다는 둥 씩씩거리는 작태는 무엇인가. 참 가소로운 섬나라 근성이다.
과거사를 부인하고 깔아뭉개고 되돌리는 몰염치한 짓을 정부수반인 총리가 앞장서서 외친다. 오죽하면 여러 선진국들이 일본의 행태를 비난할까. 아베 총리 취임 1년이 가까워 오는데도 사상 유례없이 가장 가까운 이웃 한국과 중국과는 정상회담 조차 여태 못하고 있을 정도다. 
많은 사료와 증거들을 못 본체 외면하며 일제의 전쟁 성노예인 군대위안부 강제동원 사실마저 부인하고 묵살하는 ‘양심에 털난’ 총리가, 유엔총회에 나가서는 ‘여성인권’ 운운하는 연설을 하겠다고 벼른단다. 참 웃기는 이야기다.
 
그 총리 정부가 이번에는 수많은 조선인 징용자들의 피와 땀과 목숨이 절절이 찌들고 배어있을 태평양전쟁 당시의 군수공장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겠다고 나섰다. 과거 잘못을 두고두고 기억하자는 독일식 ‘사죄 기념물’이 아니라, 근대일본의 산업화를 상징하는 역사적 자산이라는 것이다. 참 뻔뻔한 이야기다. 
평화헌법을 고치겠다고 서둘고, 해외파병도 마음먹은 대로 하겠다는 집단적 자위권 발동에도 목을 맨다. 교과서 역사왜곡 문제나 야스쿠니 참배, 독도주장 같은 사안들은 이미 ‘옛 버전’이다. 일본의 우경화는 소극에서 적극으로, 당당하고 빠르게, 또 폭넓게 전개되고 있다. “해볼 테면 해보라, 우리 식대로, 우리 맘대로 달린다”는 마이 웨이 일본의 걱정스런 과거망령이 괴물처럼 내습하고 있다.
그런데, 국제규범도, 인간적 도덕과 양심도 내팽개치는 그 저질과 안하무인의 일본 극우병이 부러운 것일까. 아니면 요즘 자꾸만 커지는 외침들처럼 거기서 비롯된 혈맥이 흐르는 때문일까. 바로 한국 땅에도 그런 류의 몰염치·몰양식에 비민주적인 망발사례들이 늘어만 가고, 거리낌없이 닮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아무리 “일본을 넘지 못하는 아류국”이라고 스스로를 비하한다손 쳐도, 어떻게 우리가 그토록 혐오해온 일제망령과 수준이하의 모리배 정치를 따라하고 닮아 갈 수가 있는 것일까?
 
새로 내정된 국사편찬위원장이 가담했다는 뉴라이트 교과서라는 것은 그 간판 상품이다. 일본인이 쓴 것 같다고 할 정도라면 변명의 여지도 없다. 3.1정신과 임시정부와 4.19이념을 부정하면서, 일제에 의해 조선이 근대화됐다고 평가한다면, 일본의 우익들 주장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군사쿠데타와 유신과 독재를 불가피했다고 감싼다면, 조선병탄과 일제침략은 잘한 일이고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급 전범들이 당시엔 불가피했던 시대의 영웅이라며 기를 쓰고 참배하는 일본 극우의 그 것과 얼마나 다른가. 
지지율 착시 속에 오만불손한 정치도 오십보 백보다. 정보기관이 법과 원칙을 깔아뭉개고 선거와 정치에 개입한 일이 드러난 뒤에는 아예 ‘어쩔거냐’는 듯 정치를 쥐고 흔드는 모양이 됐다. 야당은 무시당하고, 정당하게 법대로 하겠다는 검찰총수를 편법으로 몰아내는 무리수에도 뻔뻔한 퇴물권력과 언론은 낯 두껍기만 하다. 
거짓을 거짓으로, 불법을 불법으로 막으려다 자꾸만 병소가 깊어지고 커진 꼴이다. 중앙정보부를 정치수단으로 삼았던 과거망령이 되살아난 것이다. 오죽하면 수많은 사제와 성도들이 시민에 합세해 서울광장에 몰려나와 장탄식의 외침으로 정의회복을 토해낼까. 
선거 때 국민 앞에 다짐했던 공약들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고, 전교조 취소를 공언하는 등, 국제사회 웃음을 살 일에도 거리낌이 없는 얼굴들, 정의가 짓밟히고 나라는 병들어 가는 데도 태평성대 찬양일색인 관변언론과 단체들만 설친다. 한-일의 닮은 꼴 역주행 망령이 정말 걱정스럽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