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안보 여론몰이의 한계

● 칼럼 2013. 7. 7. 19:4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독일 나치스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남긴 말들이다. 히틀러와 괴벨스는 국민 여론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괴벨스는 선전 수단으로 라디오에 주목했다. 그는 국가 보조금을 풀어 노동자들의 일주일분 급여인 35마르크만 있으면 라디오를 살 수 있도록 했다. 독일인들은 라디오를 ‘괴벨스의 입’이라고 불렀다. 그는 매일 저녁 7시 라디오 뉴스에 ‘오늘의 목소리’라는 코너를 만들어 총리 관저 르포를 하도록 했다. 나치스 지지 군중대회 실황도 전국에 생중계했다.
괴벨스는 하켄크로이츠와 제복, 웅장한 행사 등을 활용해 대중이 최면상태에서 파시즘에 젖어들도록 몰아갔다. 나치스 당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부터 괴벨스는 대중을 사로잡는 연설로 유명했다. 괴벨스가 펼친 정치 연출의 핵심은 한마디로 “이성은 필요 없다. 대중의 감정과 본능을 자극하라”는 것이었다.

10.4 정상회담 대화록 무단 공개 사건의 파장이 길어지고 있다. 대화록 공개 행위의 불법·부당성은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다. 주목할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했다’는 거짓 주장이, 괴벨스의 정치선전을 빼닮았다는 점이다. 그 주장은 무엇보다 사실이 무엇인지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로지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자극하고, 영토 아닌 영토 논란을 일으켜 대중을 감정적으로 격동시키려 한 게 전부였다. 
보수 언론이 국정원과 새누리당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대변한 점도 괴벨스 시절과 비슷했다.

‘안보 여론몰이’는 한국 권위주의의 오래된 정치문법 중 하나다. 박정희 시대로부터 1980년대까지는 ‘좌경 용공’ 몰아붙이기가 성행했다. 근래 들어선 ‘종북 좌파’ 찍어내기가 주된 흐름이다. 과거에 북한의 위협과 공포를 부각시키는 데 주안점을 뒀다면, 요즘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보다는 경제난이 부각되면서 북한을 ‘찌질한 존재’로 멸시해버리는 새로운 프레임이 떠오르고 있다. 어느 경우든 공격 대상 정치세력과 북한을 한 묶음으로 만들어 고립시키려는 그릇된 선동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 권위주의 세력이 볼 때 좀 뜻밖의 방향으로 여론이 흘러갔다. 한국갤럽의 지난달 28일치 여론조사를 보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 담긴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NLL 포기가 아니다’라는 의견이 ‘NLL 포기 의사를 밝힌 것’이라는 의견보다 갑절 이상 많았다. 국정원의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행위는 ‘잘못한 일’이라는 응답이 우세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덩달아 떨어졌다.

우리 정치에서 안보 여론몰이가 먹히지 않게 된 것은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있다는 지표다. 이런 현상이 처음도 아니다. 2010년 지방선거 국면에서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갖고 여론몰이를 펼쳤지만, 바닥 민심이 정반대로 조성되고 여당이 참패한 적이 있다.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은 “국민의 일부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속일 수는 있다. 국민의 전부를 일시적으로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국민의 전부를 끝까지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여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괴벨스의 믿음이 아니라, 여론 앞에 겸허해야 한다는 링컨의 말이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 박창식 - 한겨레 신문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


[사설] 득보다 실이 큰 ‘정상 대화록’공개 의결

● 칼럼 2013. 7. 7. 19:4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2일 국회 본회의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과 녹음기록물 등 자료 일체의 열람과 공개를 요구하는 자료제출요구안을 의결했다. 국가기록원은 금명간 이들 자료의 열람과 공개 여부 등을 결정하게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엔엘엘(NLL) 발언 논란이 국회의 대화록 공개 요구로 또다른 풍파를 맞게 됐다. 국회가 비록 자료제출요구안을 통과시켰지만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법적·정치적으로 문제가 많다. 현행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의결 등 제한적인 경우에만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열람, 사본 제작 및 자료 제출을 허용하고 있다. 일부에선 사본 제작 등을 들어 공개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지만 법 취지는 꼭 확인이 필요한 경우 제한적으로 열람을 허용하는 쪽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국회의 공개 요구는 법이 정한 범위를 뛰어넘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정치적으로 소탐대실의 우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국가정보원의 대화록 전문 공개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NLL포기 발언은 없었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됐다. 이제 와서 다시 대화록을 공개한다고 해서 더 명확하게 논란이 종식될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소모적인 논란만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여야의 정략적 담합에 따라 대통령기록물을 언제든 볼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이런 상황에선 누가 후대를 위해 정확한 기록을 남길 수 있겠는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국회의 요구로 실제 공개된다면 저급한 우리 정치 수준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꼴이 될 것이다. 국정원이 본분을 망각하고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것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묻고 재발하지 않도록 대처하는 게 국회가 할 일이다. 국회가 오히려 국정원의 못된 짓을 인정하고 따라하는 형국이라면 곤란하다. 여야 지도부가 NLL 국면을 손쉽게 모면하려는 정략적 판단에 따라 담합했다면 위험천만하다. 국회 의결에 의한 대화록 공개는 앞으로 정상회담 등 남북관계를 극도로 위축시키는 것은 물론 대외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국회가 열람 및 공개를 요구했다고 국가기록원이 무턱대고 대화록을 공개해선 안 된다. 국가기록원은 현행법에 따라 열람은 허용하되 공개 여부는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우선 열람을 통해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과 차이가 있는지 살펴본 뒤 공개 여부를 추후 결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여야 지도부는 이제라도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책임 있는 자세로 대화록 공개 문제를 재고하기 바란다.


[사설] 한국 등 우방국도 불법 도청해온 미국

● 칼럼 2013. 7. 7. 19:44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미국이 우방국에 대해서도 불법적인 정보수집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영국 <가디언>과 독일 <슈피겔> 등의 보도를 보면, 미국 국가안보국(NSA)은 우리나라 등 38개국의 미국 주재 대사관에 대해 도청과 사이버 공격 등을 해왔으며, 유럽연합 본부의 전산망에 침투하기도 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유럽 나라들이 크게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프랑스와 유럽연합 등은 미국을 비판하면서 조사 등을 요구했다. 특히 미국이 전화통화, 전자우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 매달 5억건의 통신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나타난 독일의 분노는 크다. 독일 정부는 미국이 자신을 ‘냉전시대의 적인 소련처럼 다뤘다’고 비난했고, 연방검찰은 미국 정보기관을 기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추진중인 자유무역협정 협상도 영향을 받게 됐다. 유럽연합 쪽이 자신의 모든 정보가 미국에 노출될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유럽 나라들은 기술적 대비책은 물론이고 관련 규정과 법률의 점검에 들어갔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대사관이 도청당했다는데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손을 놓고 있다. 주미 대사관 쪽은 “보도가 정상적인 경로가 아니라 폭로에 의해 나온 것이므로 외교당국이 뭐라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잘못된 태도다. 동맹국이라고 해서 불법 행위를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진상 설명과 재발 방지책을 미국에 요구해야 한다. 도청 등을 피하기 위한 자체 점검도 필요하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일본의 관방장관은 ‘미국 쪽에 확인을 요구하겠다’고 했다.
미국은 잘못된 행위에 대해 사죄하고 재발 방지책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은 중앙정보국 전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국가안보국의 불법 정보수집 실태를 폭로하기 시작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났으나 한 번도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다. 심지어 미국 정보기관들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은 30일 “미국은 다른 모든 나라가 수집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외국 정보를 수집한다”고 변명했다. ‘당신들도 능력이 있으면 우리처럼 불법 행위를 해라’라는 식이다. 지구촌 지도국을 자처하는 나라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앞서 미국은 테러범, 극단주의자, 조직범죄자 등을 가려내려고 정보 수집을 한다고 했으나 이 또한 거짓으로 드러났다.
 
외국 대사관 등에 대한 도청은 국제관계의 신뢰를 근원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미국의 진지한 반성을 전제로 세계가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나가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관련 국제기구 등이 나서는 것도 한 방법이다.


[1500자 칼럼] 우울한 당신에게

● 칼럼 2013. 7. 1. 13:1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현대인은 옛 사람들에 비하여 물질적으로 엄청난 혜택을 누리고 산다. 여름이 되면 오늘날 가난한 서민들도 손쉽게 냉장고에서 얼려 즐길 수 있는 얼음도 천오백년 전 신라시대에는 임금을 비롯한 최고권력층만이 석빙고에 저장하였던 그것을 맛 볼 수 있었던 특별한 것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요즈음 우리가 누리는 온갖 가전제품들, 기성복 등 온갖 재화들,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다채로운 음식들은 18세기 세계를 거의 다 식민지로 집어 삼킨 영국의 여왕도 누리지 못했던 호사스러운 것들 일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사회의 가장 하층계급 이었던 농노들 조차 중노동의 질곡에서 해방되어 삶의 여유를 즐기게 된 오늘날, 이러한 물질적인 풍요로움 속에서 오히려 정신질환은 더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의료기술의 발달로 그 동안 진단치 못하였던 질병들을 이제야 제대로 진단하게 되어 그렇다고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물질적 풍요와 넘치는 시간적 여유가 오히려 우리에게 독으로 작용한 것은 아닌지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특히 요즈음 한국에서 매일 신문을 도배하는 자살에 관한 뉴스를 읽다보면 유행처럼 번져가는 생명경시 현상, 반복되는 자살의 뉴스에 면역이 되어 이러한 심각한 현상에조차 무관심해져 가는 사회 풍조가 느껴져 더욱 안타깝고 안스럽다. 정신과 통계에 의하면 우울증의 평생 유발율 (사람이 평생 살아가면서 한번이라도 우울증에 걸릴 확율)은 약 20% 라고 한다. 즉 다섯 사람 중 한사람이 우울증에 걸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꿈꾸는스트레스가 없는, 완전히 행복한 삶이란 지리하고 무기력한 삶이 되기 쉽다.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사람들에게 긴장과 자극을 주어 그것에 도전하고 극복하는 동기부여가 되므로 오히려 정신건강에 유익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약간의 스트레스도 못견뎌하고 고통스러워 하다가 쉽게 자살의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 까닭은 이런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 달리 적은 스트레스에도 뇌에서 감정을 제어하는데 관여하는 신경전달 물질들인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 -아드레날린 등의 균형이 깨져 우울증이 유발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프로작, 졸로후트, 쎌렉사 등의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 등의 약물로 치료하면 70% 이상이 2개월 이내에 완치된다. (재발 방지를 위하여 최소한 1년 이상 이들 약물들을 복용하여야 한다) . 즉 우울증은 불치의 병이 아니며 정확한 진단과 올바른 치료로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한 병이다. 나는 주위에서 캐나다로 이민 온 한인들 중에도 사회적, 경제적, 언어적인 면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적응에 어려움을 겪어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 또는 가족들이 자신이 무기력하거나 의지가 약하고 성격이 괴퍅하여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착각하여 치료 받기를 주저하는데 있다. 우울증은 당뇨병이나 다른 질환들과 마찬 가지로 환자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걸리게되는 병으로 치료시기를 놓치면 자기 자신도 통제가 불가능하고 병이 더 깊어져 자살하게 되는 무서운 병이다. 한 예로 10년전 이곳 토론토에서 젊은 정신과 여의사가 산후 우울증에 걸려 아기를 안고 달리는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하였다. 우울증에 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이는 정신과 의사도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아 자신의 자살충동을 제어하지 못하고 죽고만 것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가정의를 찾아가도 우울증의 진단을 받지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까닭은 이들이 호소하는 주 증상이 “슬프다, 자주 운다, 우울한 느낌이나 자살의 충동이 든다” 가 아니라 “입맛이 없다, 체중이 빠졌다, 정력이 떨어졌다, 기운이 없다, 온몸이 나른하고 아프다, 늘 피곤하다, 잠이 잘 안 온다, 만사가 귀찮고 의욕이 없다, 평상시에 즐기던 일들이 다 귀찮다, 항상 불안하고 초조하고 두렵다, 죄책감이 든다, 주의가 산만하고 학교성적이 떨어진다 “등의 우리들이 흔히 우울증이라고 생각하는 주증상들과는 다소 동떨어져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 이러한 문제가 생기면 친구들의 꼬임에 넘어가 자가치료를 한다고 마리화나를 피거나 마약에 손을 댈 수도 있으므로 올바른 상담과 치료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주위에서 앞서 말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올바른 일상을 되찾아주고 소중한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빨리 가정의나 정신과 의사를 만나 상담하고 치료하도록 권고하기를 강력히 권한다.

< 김영제 - 시인, 시.6.토론토 동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