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너무나 퇴행적인 청와대 비서진 개편

● 칼럼 2013. 8. 11. 18:0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박근혜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다녀와서 청와대 비서진을 대폭 개편했다. 공석이던 정무수석을 임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서실장을 포함해 5명의 참모를 5일 전격 교체했다. 정부 출범 6개월도 안 된 시점에 사실상 2기 청와대를 출범시킨 것인데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의 기용은 여러모로 이해하기 어렵다. 김 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지내고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한 인물이다. 대표적인 공안통인 그는 전직 법무부 장관 신분으로 초원복집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초원복집 사건은 1992년 대선 당시 김기춘 전 장관이 부산 지역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 후보 지원을 위한 대책회의를 하다 발각된 것이다. 김 실장 같은 이가 그 후로도 지역구도에 기대어 국회의원을 내리 세 번이나 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우리 정치의 비극이다.
 
박 대통령이 이런 김 실장을 발탁한 것은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부리기 좋은 사람을 쓴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이로 상징성이 크다. 김 실장의 발탁은 쉽게 말해 유신 시절의 청와대로 돌아가겠다는 것으로 비친다. 김 실장 이력으로는 경제민주화나 복지, 창조경제 등 미래지향적인 정책들을 추진하기 어려워 보인다. 유신 시절처럼 상명하달 식으로 군림하는 청와대 상이 그려질 뿐이다. 김 실장이 박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는 실세그룹인 이른바 ‘7인회’ 구성원이라는 것도 꺼림칙하다. 원로자문그룹은 조언하는 일에 충실한 게 좋다. 권력에 직접 간여했다간 쏠림현상을 가져오면서 오히려 뒤탈이 날 수 있다.
공안 검사의 득세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김 실장을 필두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황교안 법무부 장관, 홍경식 신임 민정수석 등 정부 요로가 공안 검사 출신들로 가득하다. 이는 외교안보 라인이 군 출신으로 채워진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군 장성과 공안 검사 출신들로 나라를 다스리는 시대는 지났다. 그들의 갇힌 상상력으로는 나라의 미래를 이끌 수 없다.
 
박준우 신임 정무수석의 발탁도 이상하다. 줄곧 외교관으로 공직 생활을 해온 사람을 국내 정치 담당에 앉히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적당한 사람을 더 찾거나, 정무수석을 폐지 또는 통폐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제대로 일하기 어려운 사람을 굳이 데려다 앉힌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이번 인사의 최대 문제는 그 메시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정부 출범 초기의 인사 실패와 국정 난맥상에 대한 문책성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실타래처럼 얽힌 정국에도 더 적극 대처하겠다고 보기에는 새 진용이 너무 구시대적이고 무능해 보인다.


[사설] 역주행 본격화한 일본, 고립무원을 바라는가

● 칼럼 2013. 8. 11. 18:04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4일은 일본 정부가 군대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 발표 20년이 되는 날이었다. 하지만 아베 신조 정부는 위안부 문제는 물론이고 집단적 자위권 및 개헌, 독도, 신사참배 등 제국주의 역사와 관련된 모든 현안에서 역주행을 본격화하고 있다. 7월21일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뒤에는 움직임이 더 거세져 국제사회 우려도 커지고 있다.
아베 내각의 전문가회의는 집단적 자위권을 전면 허용하는 내용의 새 헌법해석을 곧 제안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 회의는 2006~2007년 1차 아베 내각 당시 집단적 자위권을 금한 정부 헌법해석을 바꾸기 위해 처음 설치됐으며, 새 해석은 집단적 자위권을 네 경우로 제한했던 그때 작업보다 훨씬 나간 것이다. 아베 총리는 또 헌법해석을 담당하는 법제국 장관에 집단적 자위권 도입 찬성론자인 고마쓰 이치로 주프랑스 대사를 임명키로 했다 한다. 이른바 ‘해석개헌’을 통해 본격적으로 평화헌법 무력화를 꾀하는 것이다. 앞서 ‘독일 나치의 수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해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고 있는 아소 다로 부총리 역시 핵심적인 개헌추진론자다.
 
일본 내각부는 지난 1일 독도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처음 발표했다. 정부 차원의 독도 영유권 공세를 더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2차 아베 내각 출범 직후인 2월22일 시마네현에서 열린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는 차관급 인사를 처음으로 참석시키기도 했다. 최근 한-일 축구전 응원과 관련해 ‘한국 국민의 문화 수준이 낮다’는 자극적인 발언을 한 시모무라 하쿠분 일본 문부과학상을 비롯해 이미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한 아베 내각의 각료도 여럿이다. 행정개혁상과 자민당 정조회장 등도 오는 15일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할 예정이다. 아베 내각에서 고노담화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7월30일 해외에서는 처음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에서 위안부 소녀상이 개막되자, 관방장관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지극히 유감”이라고 정면으로 반발했다.
 
아베 내각의 이런 총체적인 역주행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오만한 언행과 그릇된 역사인식을 되풀이하는 것은 개탄스러우며, 일본은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특히 지구촌 전체가 반인륜적 범죄로 보고 있는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 정부가 발뺌하는 데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분노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아베 정권이 우경화 행보를 강화하는 배경에는 지도부 인사들의 그릇된 신념 외에 국민감정을 부추겨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꼼수가 있다. 하지만 그 대가는 갈수록 커질 것이다. 아베 정권은 이제라도 현실을 냉철히 살펴보길 바란다.


[1500자 칼럼] 지지지지

● 칼럼 2013. 7. 23. 18:2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지지? 아이들이 더러운 물건을 입에 가져가려 할 때.. 아가 지지야 지지 ! 그렇게 말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는 당연하게, 쉽게 이 단어를 써왔다. 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지저분하다는 뜻이겠거니 했는데 그 말에 심오한 의미가 있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지지라는 말은 주역에 ‘능히 그칠 바를 알아서 그친다’는 구절에서 나온 것이며, 노자의 도덕경 44장에는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곳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오래갈 수 있다)라는 표현으로 등장한다. 또한 불교에서 지지는 ‘몸과 말로 하는 나쁜 짓을 억제하여 죄업을 짓지 아니함’ 을 뜻하는 용어다. 결국 知止(지지)하라는 뜻이겠다.

이규보(1168-1241)는 ‘파한집’, ‘동국이상국집’, ‘동문선’ 등의 작품을 남긴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문인 학자중의 하나다. 그는 아홉 살에 시를 지어 신동으로 이름이 알려졌으며 원나라 황제에게 보내는 ‘진정표’( 陳情票) 라는 외교문서를 통해 몽골군을 스스로 물러나게 할 만큼 시재가 뛰어났지만 그 일생은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그가 태어난 이듬해 무신의 난이 일어났고 그는 평생을 무신 집권하의 문인으로서 미관 말직과 유배지를 오가며 살아야 했다. 그는 훗날 개경 동쪽에 초가를 짓고 그 거처를 지지헌(止止軒)이라 명하였다. 지지헌기(止止軒記)에서 그는 “대저 이른바 지지라는 것은 능히 멈춰야 할 곳을 알아 멈추는 것을 말한다. 멈춰야 할 곳이 아닌데도 멈추게 되면 그 멈춤은 멈출 곳에 멈춘 것이 아니다’ 라고 했다.(국문학자 정민 교수의 해석) 
정민 교수는 또 ‘지지’를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첫째, 그칠 수 있을 때 그쳐야 한다. 나중엔 그치고 싶어도 그칠 수 없다. 둘째, 그쳐서는 안될 곳에 그쳐서도 안된다. 설자리 앉을 자리를 가려야 한다.’ (정민, 죽비소리, 2005) 
지지(止止), 이것이야말로 고려 말,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아내며 그가 터득한 삶의 방식이며 철학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그 시대만의 삶의 철학이겠는가.
오래 전부터 선조들이 아이들에게 그침의 지혜를 말없이 가르친 이유를 새겨 볼만하다 

며칠 째 止止를 생각하고 있어서였을까? 지난 주말 한 연예 프로그램에서 아빠와 아이들이 게임을 하면서 부르던 동요가 번쩍하고 귀에 들어왔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 눈도 감지 말고 웃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 움직이지 마 /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 서 있지도 말고 앉지도 말고 눕지도 말고 움직이지 마…’
제목을 찾아보니 ‘즐겁게 춤을 추다가’라는 노래다.
주위를 돌아보면 멈추고 그쳐야 하는 자리가 어디인지 한참 모르는 어른들이 너무 많은 세상.. 
머물러야 할 자리와 그렇지 않은 자리를 분별하기 위해 가끔은 멈추어 서라고 아이들은 노래한다. 그리하면 보일 것이다. 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가.

< 김유경 시인 - ‘시.6.토론토’동인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칼럼] ‘관제 극우’라는 사회악

● 칼럼 2013. 7. 23. 18:1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북한은 국가 권력이 이념 선동을 직접 기획하고 행사한다. 이를테면 ‘이데올로기 포르노’를 상영하는 극장이다. 일방적이고 노골적이며 말초적인 동어반복이란 의미에서 ‘포르노’다. 
그런데 시민들에게 닥치는 대로 ‘종북’ 딱지를 씌워 공격하는 국가정보원과 소위 ‘보수언론’ 및 ‘애국보수세력’들의 행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념 극장’ 북한의 속성과 끔찍할 정도로 닮았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시도와 인터넷 여론 조작은 남한 지배 권력과 북한 지배 권력이 권력 유지를 위해 얼마나 서로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지, 또 얼마나 서로가 닮았는지를 가장 수치스런 형태로 환기시킨다.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국정조사가 결정되었는데도 국정원은 당당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구속영장(알선수재 혐의)이 발부된 날, 국정원은 기습 성명을 발표해 “노무현 대통령 엔엘엘(NLL) 발언은 휴전선 포기나 마찬가지”라며 또다시 남북정상회담 내용을 자의적으로 왜곡했다. “자체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제2의 개혁을 하겠다”고도 한다. 임기가 아직 4년 반이나 남은 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의회 다수당은 ‘NLL 포기’ 논란을 주도한 새누리당이다. 저들의 결기와 오만이 어디서 나오는지 짐작할 만하다.

국정원은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뿐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포털사이트나 커뮤니티 대부분에서 ‘댓글 공작’을 벌였다. 그중 일베 등의 우익 성향 사이트들은 이들에게 최적의 활동 공간이었을 것이다. 국정원 직원들이 남긴 댓글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는데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참담한 수준이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잖아… 간첩들이 폭동 일으켰다는 거”, “홍어종자 절라디언들은 죽여버려야 한다”, “아따 전(두환) 장군께서 확 밀어버리셨어야 하는디 아따.” 
최근 사회문제로 떠오른 넷우익 현상의 ‘몸통’이 바로 국정원이었던 걸까? 확실히 현상을 좀더 증폭시킨 면은 있을 게다. 하지만 인종주의, 호남 차별, 여성 혐오, 반이주노동자 담론 등은 국정원 직원 몇몇의 ‘댓글 공작’으로만 환원할 수 없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한 사회문제다. 시민들의 혐오 발언을 국가가 나서서 형사처벌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흔들 수 있기에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 반면 국정원 여론 조작은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이라는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다. 오히려 이런 시도의 근절이 시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정원의 여론 조작에 대해 어떤 이들은 ‘안보기관이 공동체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 결과적으로 안보를 해쳤다’는 점을 들어 비판한다. 소위 사회통합론에 기반한 일리 있는 주장이다. 첨예한 갈등이 사회가 진보하는데 일정부분 필요하긴 하지만 국가기관이 갈등과 분열을 보장한다면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다. 특히 국가권력이 ‘이념 전쟁’의 형태로 여론에 개입할 경우, 다양하게 분출하는 사회적 여론과 공론들 대신 특정한 갈등만 부각되고 약자의 목소리는 공론장에서 더 배제되기 쉽다. 요컨대 국정원이 나쁜 진짜 이유는 엄밀히 말해 갈등의 조장 뿐만 아니라 어떤 갈등의 특권화, 즉 ‘갈등의 은폐’다.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해지고 있다. 중정-안기부-국정원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이 조직이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공동체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보다 권력자를 위해 국민을 기만하고 탄압하는 기능에 충실했다는 점이 또렷이 드러난다. 국정원은 이미 괴물이다. 저들은 개혁 대상이지 개혁의 주체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정보공개 관련법을 포함해, 썩어 문드러진 조직에 대한 전면적이고 외과수술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국정원이 ‘관제 극우파’로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 박권일 -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