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1, 2호 법안’으로 불려온 하도급법 개정안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임시국회를 통과했다. 하도급법 개정안은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강화했고,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연봉 5억원 이상 등기임원의 개별 보수를 공개하도록 했다. 국회는 정년을 60살까지 보장하는 정년연장법도 일부 수정한 뒤 통과시켰다. 대선 이후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첫 결실을 맺은 것은 이번 임시국회의 큰 소득이다. 여야 정치권이 모처럼 공약 이행을 위해 힘을 모았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진통도 적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를 대선과 총선의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입법 단계에서는 재계 로비와 내부 동조세력의 반발로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새누리당의 김진태 의원 등은 지난 29일 법사위에서 하도급법 개정안을 두고 “기업활동 위축 우려가 없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고 딴죽을 걸었다. 30일 법사위에선 유해물질 배출기업에 매출액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제동이 걸렸다.
법사위에서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진통을 겪는 것은 재벌의 로비에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 동조한 탓이 크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5개 경제단체 부회장들은 29일 국회를 찾아 기업의 이해관계가 걸린 법안 처리에 신중을 기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몇몇 새누리당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나온 것이다.
국회 법사위가 해당 상임위에서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그 내용을 문제 삼아 처리를 지연시키는 것도 문제다. 형식적으로는 법체계 등의 이유를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법안을 틀어쥐고 통과를 막는 경우가 일쑤다. 법사위의 비정상적인 월권행위도 이번 기회에 시정할 필요가 있다.
 
경제민주화 관련법의 원활한 입법 여부는 결국 새누리당이 어떻게 내부 합의를 이뤄내느냐는 문제와 직결된다. 차기 원내대표에 출마할 최경환 의원이 “너무 과도한 부담을 줘서 경제 자체가 위축돼선 안 된다”는 등 발언을 하는 것은 곤란하다. 황우여 대표가 “경제민주화는 중견기업, 중소기업, 소상공인까지 경제의 피가 흐를 수 있도록 해주는 법”이라고 한 것은 적절하다. 다소간 완급 조절은 있을 수 있지만 경제민주화는 대선 때 국민적 합의를 이룬 사안인 만큼 뚝심 있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비록 진통을 겪었지만 입법이 첫 결실을 거둔 만큼 여야 정치권은 더욱 속도를 내주길 바란다.


개성공단에 머물던 남쪽 인력이 거의 철수했다. 개성공단관리위원회와 연결된 유선전화도 끊김으로써 이제 남북은 모든 접촉 창구가 단절된 상태가 됐다. 사태를 더 악화시키지 말고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기사회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북한의 개성공단 담당 실무기관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은 개성공단이 완전하게 폐쇄되는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 쪽에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폐쇄 조처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했다.
 
개성공단을 정상화하려면 이제까지 드러난 여러 문제점부터 극복해야 한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개성공단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일부 강경세력이 부추기는 공단 폐쇄론이 정부 안에서 거론돼선 안 된다. 아울러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긍정적 검토를 비롯해 다른 경협 사업을 함께 강화해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경협 활성화는 핵·미사일 문제 등을 풀기 위한 다각적인 국제대화를 뒷받침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대북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있도록 체제를 정비하는 일도 중요하다. 돌발 결정이 되풀이돼서는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나라 안팎의 신뢰를 얻기도 어렵다.
개성공단 정상화가 이뤄지려면 북쪽의 자세가 바뀌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북쪽의 비합리적 행태만 강조해서는 이전 정부와 다를 게 없다. 긴 시야를 갖고 남북 관계의 큰 틀을 만들어 내용을 채워나갈 책임은 어디까지나 정부에 있다. 정부는 좀더 전향적이면서 현실적인 대북정책을 세워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절대다수의 국민은 남북 관계 개선을 바란다. 미국과 중국 등 관련국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북쪽은 개성공단을 ‘6.15의 옥동자’로 표현하며 당분간 남쪽의 후속조처를 지켜보겠다는 모습을 보인다. 개성공단 정상화는 정부의 노력에 달려 있다.
 
남북 당국은 개성공단이 단지 서로 물질적 이익을 꾀하는 합작사업이 아니라, 통일 여정에 큰 디딤돌을 놓는 화해·협력사업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성공단이 금강산 관광 중단, 천안함 침몰 사건, 연평도 포격과 같이 남북 사이에 극도의 긴장이 벌어졌던 이명박 정권 시절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런 큰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와 김정은 정권은 사소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개성공단을 제물로 바쳐선 안 된다. 어떤 명분으로건 민족 화합과 통일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건 민족과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일본에 다시 ‘텐노 헤이카 반자이! (천황폐하 만세)’의 외침이 튀어나오고 있다. 동아시아 대륙을 짓밟아 2천만명 이상을 살상한 ‘대일본제국’ 시절에 횡행했던, 당시의 피해국 사람들에게는 공포와 폭압의 외침이었던 맹신적 호기의 군중합창-. 그 두려운 역사의 퇴물이 장막 뒤에서 다시금 변장한 얼굴을 비죽이 내밀고는 무대 위 확성기를 타고올라 괴성을 내기 시작했다.
 
지난 4월28일은 패전국 일본에 대한 미군의 점령통치를 마감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된지 61년이 되는 날이었다. ‘역사 부정’으로 국제사회에서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아베 신조 내각은 이날 일본 정치사상 처음으로 ‘주권회복·국제사회 복귀 기념식’이라는 희한한 행사를 열었다. “이날은 굴욕의 날”이라며 오키나와의 전 주민이 궐기해 반대하는 데도 콧방귀를 뀌듯 버젓이 성대한 식전을 자랑했다. 우익들이 하늘처럼 떠받드는 ‘천황폐하’를 모시고, 국회와 정부의 수장이 모두 모여 “자랑스런 일본” “강한 일본‘을 들먹이며 기세를 올렸고, 아베는 ”지금까지 걸어온 족적을 생각하면서 미래를 향해 희망과 결의를 새롭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자리에서 아베를 비롯한 일본의 수뇌들은 아키히토 천황에게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리더니, 그 부부가 퇴장하려 하자 양 손을 치켜들고 입을 모아 ”텐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쳤다. 
태평양 전쟁 이후 사라졌던 이 장면은 최근 가속되고 있는 일본 우경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A급 전범의 손자인 아베가 집권한 이후 군대위안부 부정과 독도망언, 일제의 침략전쟁 부인, 그리고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과 북한 핵위협을 빌미로 한 자위대 국방군화와 무장 강화 추진 등 일련의 ‘복고책략’이, 그동안 다수 국민들 사이에 터부시 돼온 ‘천황만세’까지 3부 요인들이 공공연하게 외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전례없는 장면에 일본의 언론들도 우려를 나타냈다. 아사히 신문은 “일본이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과오를 범한 끝에 패전을 맞이한 역사를 되새겨야 한다”면서 국회의원 168명의 야스쿠니 신사 집단 참배, 아베의 ‘침략 물타기’ 발언 등을 비판했다. 우익성향의 요미우리도 “내외에 참화를 가져온 ‘쇼와 전쟁’은 국제감각을 잃은 일본 지도자들에 의해 시작됐고, 패전과 점령은 그 결말”이라며 냉정히 되돌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왜 그렇게 역사를 정직하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운가?”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가 독일과 비교하며 일본의 퇴행적인 역사인식과 행태를 비판한 말이다. 이 신문은 아베 총리와 일본의 우익들 발언을 ‘자기파괴적 수정주의‘라고 질타했다. 앞서 뉴욕타임즈도 “일본은 적대감에 불을 지르는 미욱한 행동을 하고 있다”면서 “아베는 역사의 상처를 악화시키는 일을 그만두라”고 타일렀다.
 
하지만 안팎의 거센 눈총에도 불구하고, 아베의 내셔널리즘 자극에 편승한 일본국민 수는 날로 늘고 아베 정권의 인기는 치솟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팽창화가 더욱 가속될 조짐인 것이다. 앞으로 영토문제를 포함해 한국·중국 등 주변국과 격한 마찰은 불가피해 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요즘 미국정부가 우려의 눈초리를 보내고는 있지만, 미국의 행태야 말로 ‘병주고 약주는’ 식의 아이러니이며, 뒷북치기다. 근대 일본 우경화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 바로 미국 아닌가. 일본을 점령한 맥아더는 침략 원흉들을 뿌리뽑지 않고 오히려 군정에 이용했다. ‘천황’을 폐위시키지 않았고, 전범들을 처단하지 않은 채 다시 그들로 하여금 일본을 재건하게 만들었다. 아베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가 바로 그 대표적 인물이다. 그렇게 일본의 전쟁책임은 유야무야되면서, 우익은 독버섯처럼 세를 부풀릴 수가 있었다. 그런 근시안적인 미국의 ‘성원’으로 재활한 것이 바로 침략을 부인하는 오늘의 일본 우익세력이니, 그 책임이 막중하다.
 
따지고 보면 한반도에서도 피점령국의 ‘건강한 재건’보다는 자국 이익에만 몰두한 미국의 원죄가 오늘의 수많은 대립과 분열과, 마찰을 생산해 냈음을 알 수 있다. 일제 당시의 친일부역자들을 남한 군정에 활용해 부활시킴으로서 식민청산의 길을 막았고,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독도의 한국령 임을 인정치 않아 일본에 빌미를 준 것도 미국이었음은 강자의 만용이요 약자의 한(恨) 일 뿐인가. 
당쟁과 사대(事大)의 습벽으로 나라를 망친 역사의 거울을 망각한 우리네 한반도에서는 남북간 평화의 보루며 상징인 개성공단 마저 폐쇄 위기에 처했으니,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늘 한스런 역사가 반복되는 것일까.

< 김종천 편집인 >


얼마 전에 저스틴 트뤼도 (Justin Trudeau)가 자유당 당수로 뽑혔다. 젊은 나이에 사실상 제1야당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당의 당수가 된 것이다. 캐나다는 미국 및 한국하고는 달리 내각책임제이므로 그가 차기 캐나다의 수상이 될 가능성이 많다. 그는 41세라는 젊은, 또는 보는 이에 따라 어린 나이에 캐나다라는 큰 나라의 미래를 떠맡는 책임있는 자리에 앉은 셈이다. 사실 나는 그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캐나다 국민도 그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 그가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된 것은 당연히 그의 아버지 피엘 트뤼도(Pierre Elliot Trudeau) 때문이다. 그는 몬트리올에서 태어난 프랑스계의 수상이다. 어느 정치인보다 인기가 있었고, 자유분방한 행동으로 인해, 나중에는 지난친 행동으로 뉴스거리가 되었던 결국 이혼하게 된 부인 마가렛 때문에 항상 이야기 거리가 주변에 있던 정치인이다.
 
캐나다의 정치인이라면 나는 피엘 트뤼도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그는 내가 처음으로 이름을 들은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이민 올 당시의 캐나다의 수상이었다. 그에게는 내가 보아온 어느 정치인보다 국민들을 믿고 따르게 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특히 내 기억에 남는 것은 그의 어느 정책보다, 늘 가슴에 꽂고 다니던 빨간 장미다. 보통 사람도 그러기 힘든데, 연예인도 아니고 한 나라의 수상이 그런다니… 그의 빨간 장미가 더 선명하게 나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은 그의 장례식 때의 모습 때문이기도 하다. 오타와에서 한 그의 장례식이 끝나고, 그의 운구가 실린 기차가 고향인 몬트리올로 돌아갈 때, 사람들이 빨간 장미를 들고 길 옆에 나와 서있는 모습이 오래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새겨져있다. 그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군대를 동원해 강압적으로 퀘벡 분리주의자를 제압한 사실로 그의 고향에는 그를 좋아하던 사람도 많았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진정으로 존경받는 정치인라면 그가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그리고 장례식 때도 진심으로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부자가 또는 부녀가 한 국가의 지도자로 활동을 하는 경우는 민주주의가 발달했다는 서방국가에서는 드문 일이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그랬고, 지난 선거에서의 박근혜 대통령이 뽑혔지만…, 아무리 본인의 능력에 따라 뽑혔다 해도, 아버지의 후광을 업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저스틴 트뤼도가 수상이 될지, 수상이 되면 아버지 못지않은 훌룡한 정치인이 될지 그건 모르지만, 그래도 젊은 나이에 앞으로 어떤 길을 갈지 사뭇 궁금하다. 아버지는 캐나다 최장수 수상중의 한 명이었다. 무려 11년 간 수상직을 수행했다. 벌써 여당인 보수당에서 그를 깎아내기에 열중이다. 아니나 다를까, 무엇보다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사실 그건 동전의 양면으로, 젊고 패기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까? 그도 아버지 못지않게 카리스마 또는 쇼맨쉽이 있는 것 같다. 지난 해 말에 자신보다 덩치가 큰 여당 국회의원과 자선모금을 위한 권투시합을 해서 매스컴을 탄 일이 있었다. 젊고 패기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것이 자신의 이미지를 쌓으려는 계산된 행동인지는 나는 모르겠다. 아무튼 신문을 본 사람은 대부분 젊고 패기있는 모습을 보았으리라. 사실 선진국이라 불리우는 안정된 사회일수록 대다수의 국민들은 정치인의 실생활에 바로 연결되지 않는, 다른 말로 피부에 바로 와 닿지않는 정책보다, 그들이 보여주는 이미지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사회와 정치가 안정되기를 원하지만, 또 생활이 힘들다고 느껴지거나 지루하다 느껴지면 그 어떤 변화를 요구한다. 지금이 캐나다 사람들이 변화를 요구하는 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의 아버지가 수상이 되었을 때처럼, 캐나다는 새로운 수상, 새로운 지도자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다수의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