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 칼럼] 아이들은 지금

● 칼럼 2020. 10. 18. 11:52 Posted by SisaHan

[칼럼]  아이들은 지금

 

임순숙 수필가

 

아침, 커튼을 젖히며 습관적으로 눈길이 닿는 곳은 이웃의 주차장들이다. 늘 첫 새벽에 출근하던 옆집엔 오늘도 이슬 맺힌 차 두 대가 망부석처럼 서 있고, 어린 아이들을 떼어놓느라 아침마다 출근전쟁을 벌이던 건넛집 주차장도 조용하긴 마찬가지다. 오늘처럼 집집마다 빼곡히 서있는 차들을 보면 마음이 답답하다가 어느 날은 듬성듬성 빠져나간 흔적이 읽혀지면 실낱 같은 기대가 꿈틀거린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세상이 온통 엉켜버린 지 십여 개월, 언제쯤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지 가늠조차 안 되는 요즘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자기기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부모 곁에서 신학기가 시작된 아이들은 또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지, 그들의 근황이 궁금해진다.

 

며칠 전 아이들과 함께 하룻밤 자고 가겠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꽃 보다 더 예쁜 손녀들의 방문은 언제든지 환영이지만 주중이라 등교는 어떡하나 내심 걱정되었다. 세 식구가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서두를 것이 염려되어 물었더니 아들은 태연하게 어머니 집에서 등교하면 된단다.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아들의 여유로운 답변에서 감을 잡았다. 신학기부터 아이들은 등교수업이 아닌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곤 온라인 수업도 등교라는 표현이 적절한지 곱씹으며, 아이들의 수업참관을 은근히 기대하게 되었다.

 

얘들아, 얼른 일어나 학교 늦었어.’ ‘빨리 씻고 밥 먹어.’ 애비는 아이들을 채근하면서 각 방에 노트북을 연결하고 간식과 물컵도 비치해 준다. 느긋한 아이들에 비해 혼자 동동거리는 아들의 모습이 예전의 우리와 흡사하면서도 또 다른 느낌이다.

초등학교 2학년인 리아의 방을 들여다봤다. 쾌활한 성품인 평소와 달리 집중 모드인 리아, 그 앞 모니터엔 여섯 명의 아이들과 교사가 올라와 있었다. 아마도 출석체크를 하는 모양이었다. 선생님이 ‘good morning, Lia.’ 하고 호명하니 조그만 손으로 마이크 버튼을 누르더니 ‘Good morning Mrs. Thomas’ 하고는 익숙한 듯 다시 버튼을 눌러 마이크를 끈다. 이 과정조차도 아이들에겐 벅차서 어느 학교에서는 40명 출석체크 하는데 한 시간이 소요됐다고 한다.

신학기 들어서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알아가야 할 시기에 아이는 컴퓨터 작동법을 배우고 익히며 온라인 수업에 매진하고 있다. 실체가 없는 교실에서 영상으로만 접하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훗날 아이는 어떻게 묘사할지 궁금하다. 아마도 무궁무진한 아이의 상상력이 모니터 속에 갇힌 그들을 훨훨 날아다니게 하지 않을까 싶다.

 

4학년 서현이의 방을 살짝 들여다 봤다. 교사와 학생들 모두 진지하게 수업에 임하고 있었다. 등교수업처럼 서로 교감하며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진 못해도 반 토막이나마 가정에서 학교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책을 읽거나 전자게임을 하며 자매끼리 깔깔거렸다. 등교수업을 받는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한창 친구들과 뛰어 놀 시간인데, 애잔한 마음에 먹거리에 더 신경이 쓰였다.

 

오후 수업시간이 채 끝나기 전에 서현이 방에서 나왔다. 선생님이 바빠서 과제만 주셨단다. 자주 이런 수업을 받고 있다며 제법 서운해 하는 눈치다. 그리곤 프랑스어 선생님은 며칠째 결근이란다. 그 부분은 내가 더 서운했다. 무엇보다 아이의 프랑스어 수업을 꼭 참관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 비상시국이다. 학교는 온라인수업과 등교수업으로 나뉘고 교사들은 양쪽으로 오가며 최선을 다한다.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께, 비록 결근이 잦더라도 건강한 몸으로 아이들 곁을 지켜주십사 간곡히 간청 드린다.

임순숙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에세이스트'로 등단

[한마당] “분별의 지혜가 없으면”

● 칼럼 2020. 10. 18. 11:48 Posted by SisaHan

[한마당]  분별의 지혜가 없으면

 


인권에 있어 암흑의 날

국제 인권단체들이 1013일을 이렇게 개탄했다.

이날 유엔총회가 인권이사회의 새 이사국을 뽑는 투표를 통해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한 15개국을 새 이사국으로 선출해, ‘설마가 현실로 나타나자 암흑이라는 외마디를 쏟아낸 것이다.

휴먼라이츠 재단을 비롯한 인권단체들은 새 이사국 선출에 앞서 부적합국으로 중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쿠바, 우즈베키스탄 등 6개국을 지목해 반대운동을 폈는데, 사우디만 제외하고 다른 나라는 모두 당선된 최악의 결과가 나온 때문이다.

유엔을 감시하는 NGO유엔워치의 힐렐 노이어 대표는 이날 반체제 인사인 러시아의 나발니, 중국의 왕빙장, 쿠바의 오스왈도 파야를 생각해 보라유엔은 오늘 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진 것일까라고 비판했다. 러시아 푸틴 정권은 야권 정치인 나발니를 독살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중국 시진핑 정부는 반정부 인사 왕빙장을 18년째 감옥에 수감해 두고 있다. 쿠바의 반체제 할동가인 오스왈도 파야는 2012년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국가권력으로 감시하고 찍어 누르는 정보독재 하에서 언론과 집회결사의 자유를 통제하고 있는 이들 나라 중에서도 특히 중국은 신장위구르 등지에서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있다는 지탄을 받고 있고, 러시아는 시리아 민간인 살상에 관여돼 있다는 의혹이 나오는 등 대표적인 인권 무시국으로 꼽힌다.

 

모두 47개국으로 구성돼 임기가 3년인 유엔 인권 이사회(United Nations Human Rights Council, UNHRC)유엔 가입국의 인권상황을 정기적,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국제 사회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철저하고, 조직적인 인권 침해를 해결하고자 만든 상설위원회.이다.

인권침해를 해결하겠다는 유엔 인권이사국에 평소 인권 무시혹은 인권 파괴인권 압살국으로 평판이 자자한 나라들이 포함됐다는 것은, 어찌보면 선과 악이 뒤바뀌고, 그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말도 된다. ‘암흑의 날’‘방화범이 소방관 된 격이라고 한탄한 이유다.

암흑의 날193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 투표권을 행사한 나라들의 인권에 대한 개념과 정의(定義), 그 수준이 과연 무엇인지, 우리에게 의문을 갖게 만들고도 남는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에게는 관대해도 남에게는 엄격하고 원칙을 따지는 게 일반적이다. 설령 자신은 죄를 지었어도 내 자식이나 이웃은 죄짓지 말라며 법을 지키기를 당부한다. 자기나라 인권상황이 부끄럽다고 해도 인류 보편의 인권정의를 구현해 나가야 할 유엔 기구의 기준은 엄정하기를 바라는 게 도리이고 양심적이며 이른바 집단지성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내가 더러우니 남이 더럽든 말든 뭐가 대수냐가 아니면 나 보다 더 더러운 놈이 와야 내 맘이 편하지라는 심보들은 아니었을지, 아마 그런 유유상종의 범법 동류의식이 표출됐을 거라는 짐작을 낳는다.

유엔에 모인 나라들, 인류 대표기구의 전반적 인권의식 퇴보를 보여줄 뿐 만 아니라, 갈수록 인권 수준과 평가의 애매모호함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인류 보편의 정의(正義)와 불의, 선과 악의 구별과 경계선을 분간 못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쉽게 말해 무엇이 바르고 뒤틀린 것인지, 옳고 그른 것인지 헷갈리는 세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구촌에 창궐한 재앙의 시기에도 사람들은 성찰이나 회심은 커녕 갈수록 약육강식의 이기적이고 사악한 행태에 빠져드는 것처럼 보인다. 4천만 명 가까운 발병에 1백만명이 죽어 나갔고, 아직 백신이나 치료제도 못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는 독감보다 덜 치명적이라며 음모론을 부추긴다. 감염된 것이 축복이고 기분 좋다고 떠든 트럼프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오로지 권력에 눈이 멀어 온갖 가짜뉴스와 선동으로 미국인은 물론 세계인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혼란시키는 오염원이다.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거짓과 독설의 선동과 반발 폭력이 난무한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정신파괴 병균이 아닐 수 없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상대를 죽이고 내가 득세하겠다는 이기의 파쟁에 날을 지새며 생트집과 침소봉대, 무고와 음모가 사람들을 미혹한다. 거짓과 진실, 정의와 불의 사이에서 좌나 우, 진보나 보수 편갈라 대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들에게 국민의 안위나 민족의 장래는 털끝만큼도 안중에 없기에 짜증만 더할 뿐이다. 아무리 애매하고 분별이 어렵다하나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동물의 정글이나 지옥에 사는 것에 다름없는 일이다.

말세에 미혹과 난리와 소문이 횡행한다고 성경은 깨우쳤다. “너희가 천기는 분별하면서 어찌 시대는 분별하지 못하느냐고 예수님은 꾸짖었다. 이런 때 일수록, 참으로 분별의 지혜가 절실하다.

< 김종천 편집인 >

 

 

 

 


[목회칼럼] 기쁨과 소망

교회를 닫지 않았습니다!

     

밀알교회 노승환 담임목사

           

교회건물을 닫았지 교회를 닫지 않았습니다.

정부에서 비필수 사업체 (non-essential business) 영업금지령을 내린 직후부터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무엇이 필수업종으로 분류되는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혼란한 때 더 이상 Covid-19 이 확산되지 않도록 정부가 하는 노력에 교회도 적극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건물을 닫았습니다.

현관문에 출입금지 안내도 붙여놓았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닫은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본래 건물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건물에 함께 모이지 못해도 우리는 여전히 교회로 존재해야 합니다.

온라인으로 예배하고, 동영상을 보며 묵상하고 기도하며, Zoom으로 순모임하는 것이 우리는 아직 많이 어색합니다. 그럼에도 인터넷을 비롯해 통신 기술이 많이 발달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현대기술은 칼과 같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 손에 들린 현대기술은 서로를 살리는 도구로 사용되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이 불편해도 노력하여 온라인으로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한 공동체, 한 식구입니다. 같은 시간에 온라인으로 모여 예배하고 물리적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과 영은 하나 되는 은혜를 체험하기를 소원합니다.

 교회는 예배 공동체이며 또한 섬김의 공동체입니다.

순 별로, 공동체 별로 혹시라도 어려움 당하는 분이 계시지 않은지 살펴주시고 공동체 장로님과 목회자에게 연락을 주셔서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도 마련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인들 뿐 아니라 토론토 한인사회 내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계실 줄 압니다.

사업이 파산할 지경에 이르고, 직장을 잃게 되신 분들도 많습니다. 바이러스에 감염이 될까 계속 불안해하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데 이럴 때 정신적으로 힘들어져 문제가 생기는 분들도 속출할 것입니다. 교회는 이에 대비해야 합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주님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한인사회를 넘어서 토론토 내 많은 Food bank에도 식품이 떨어져가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조금만 눈을 들어 살펴보면 우리의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 우리도 어렵습니다.

교회도 당연히 재정이 힘들어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을 믿고 그 독생자의 몸이 된 교회는 늘 세상을 위해 존재했습니다.

역사에서 손꼽을 고통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 때 교회의 존재 가치는 더욱 확연히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사회적 거리를 두자하는데 표현이 적절치 않습니다.

물리적 거리를 두자는 것이 더 옳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또 영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친밀해져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온라인으로나마 계속해서 모이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서로의 아픔을 돌보고 필요를 채워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어렵고 힘들 때 세상에 소외되고 약한 자들을 돌보며 섬겨야 할 것입니다.


건물은 닫았어도 교회는 여전히 open입니다.

노승환 밀알교회 담임목사

[1500 칼럼] 조국의 시간

● 칼럼 2020. 10. 5. 04:53 Posted by SisaHan

박성민 작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한국은 지금 새로 출간한 책 때문에 난리다. 조국 전법무장관의 쓴 회고록, <조국의 시간> 때문이다. 출간한지 몇 시간 만에, 하루 만에 4만 권이 판매 됐다. 서점에는 6월1일에 나왔지만 나오는 즉시 다 팔리고 인터넷으로 예약해도 10일간 기다려야 한단다. 그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남아있다. 나는 최근에 2가지 조국에 대한 사실을 접했다. 표창장 재판에서 검찰들이 증거를 조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못할 일이 없었다. 다른 한 가지는 5명의 더불어 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이번 4.3 선거가 조국 때문에 패했다고 주장했다. 초선 의원이라면 젊고 패기에 찬 의원들로 앞으로 더불어 민주당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의원들이다 그런 그들이 선거의 패배를 남에게 전가하고, 그리고 현실 판단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국은 검찰개혁을 위해 앞장서 싸운 사람이다. 막강한 검찰 권력과 언론권력에 앞장서 혼자 두들겨 맞았다. 이 상황에서 더불어 민주당은 무엇을 했는가? 개혁을 위해 그리고 조국을 위해, 조국은 자신을 밟고 가라 했지만, 믿었던 사람이 등 뒤에서 찌르는 칼이 가장 치명적인 법이다. 그리고 개혁은 하다가 쉬었다 다시 하는 것이 아니다. 개혁은 도도하게 흐르는 물결 같아서, 흐르다 멈추고, 부딪칠까 두려워 쉽게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조국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한국의 검찰 권력이 얼마나 막강한 지를 보았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을 낙마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대통령의 뜻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검찰은 분명 행정부 공무원이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뜻을 따라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정책까지 조사하겠다 달려드는 것은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것이다. 만약에 그들이 사법부에 속해 있다면 그들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의해, 행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지난 1년이 그와 그의 가족에게는 길고 잔혹한 시간이었다. 그의 아내는 이제 감옥에 갇혀있고, 아직도 재판 중이지만 4년이라는 중형을 1심에서 선고 받았다. 사적인 표창장 위조로 4년이라는 선고를 받은 적이 있는가? 딸은 졸업장을 취소하라는 압박을 하고, 아들은 또 구속영장을 받을지 모르는, 본인 자신은 물론이고 온 가족이 죄와 연루된 한마디로 풍비박산 난 집이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가족사기단’이라고 부른다. 그가 만약에 법무부 장관이 되지 않고 민정 수석으로 남아 있었다면, 민정 수석이 아닌 서울대 법대 교수로 남아 있었다면 이런 수모는 당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자리에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그의 회고록이 불평불만이나 자기변명일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 만약 글에서 조그만 실수나 거짓이 발견되면, 소위 말하는 종편 언론에서 난리를 칠 것이다. 그들은 조국과 조국 가족의 몰락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자신들이 했던 지난 시간에서의 언론의 폭력을 합리화 시킬 것이다 어느 신문에서는 벌써 회고록을 부정적으로 보는 기사를 올리며 책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 비판을 위한 비판은 책을 오히려 선전해주고 있다. 지난 조국의 시간이 아픔과 고통의 시간이었다면, 우리는 남의 일처럼 외면을 했고 또 우리에게는 잊혀진 시간이 아니었을까? 아픔을 같이 한 시간은 아니었다. 검찰개혁은 우리를 위한, 우리 시회를 위해 우리가 참여해야 할 시간이었다. 다가올 조국의 시간은 기쁨의 시간이라 믿는다. 그 시간을 위하여 우리는 함께 나가야 한다. 조국의 시간을 통하여 우리는 보았다. 검찰이란 조직이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막강한 조직인가를, 그들은 그 누구도 수사할 수 있다, 없는 증거나 증인도 만들어내고 기소할 수 있다, 재판에 회부하여 자기들이 원하는 판결을 얻어낼 수 있다. 판사들도 검찰을 두려워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이 아닌 민주공화국이다. 지난 조국의 시간이 헛되지 않게, 이제 앞으로 올 조국의 시간은 기쁨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210610>

[1500 칼럼] 터널의 끝은 아직도

박성민 작가

요즘 힘들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이다. 며칠 전에 온타리오 주의 하루 확진 자가 거의 500명이 되며, 캐나다 전체에서는 1000명이 되고, 이제 막 개학한 고등학교에서도 확진 자가 나왔다는 뉴스를 보았다. 깜짝 놀란 이유는 이제 9월이면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 있고, 그 동안 해왔던 많은 사회적 제약들을 풀어 줄 수 있고,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어떤 해결책이 나오리라 믿었다. 지금 어떤 예방책이나 해결 방법이 나와서 규제들을 풀어준 것아 아니다. 이 상태로 계속 나가다 보면, 국가의 경제 자체가 위기를 맞을 수 있고 많은 사업체들이 더는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캐나다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방역 시스템에 관한한 한국이 선진국이고 미국과 캐나다는 후진국이다.

이제 계절이 바뀌어 가을로 접어 들었는데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우리는 지루하게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속을 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은 캐나다에 국한 된 상황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어느 나라가 더 심하고 덜한 차이거나, 어느 나라가 솔직히 밝히거나 숨기려느냐는 차이이다. 코로나라는 전염병 때문에 전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가장 모범적으로 그리고 잘 대처하고 있다는 소식은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은 처음부터 문제를 숨기려 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 밝히고 정면으로 부닥쳐, 빠른 검사를 하였다. 정은경 질병 본부장과 직원들의 노력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들을 전적으로 믿고 밀어준 국민과 정부도 잘 했다고 생각한다. 처음 사태가 터졌을 때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은 아베 총리가 상황을 설명했는데, 한국은 솔직히 웬 초라한 그리고 피곤해 보이는 아줌마가 나와 설명하는가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전문가답게 할 말을 하고 차분하게 설득력 있게 브리핑하는 것이 더 신뢰감을 주었다. 그녀는 늘 피곤한 표정이었다. 어느 기자가 안쓰러운지 하루에 몇 시간을 자느냐고 물어본 기억도 난다. 그러나 얼마 전에 그런 그녀를 두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죄로 누가 고소를 했다.

이건 정말 해도 너무한 상황이고 나가도 너무 막 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광화문 집회에 연관된 사람들의 행동이다, 그들은 정부가 광화문 집회를 탄압하기 위해 확진 자 수를 늘렸고 코로나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주장이다. 정치판에서는 공작과 음모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한 행동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해선 생각도 않고 있다. 그들의 행동이 세계적으로 얼마나 웃음거리가 되는 일인지 모르고 있다. 캐나다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50몀 이상 모이면 안되게 임시 법이 제정되어 있었다. 거기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요즘 상황이 나빠지자 50명이 10명으로 하향 조정 되었다. 실내이든 실외이든 상관 없이, 그런데 제일 모범적인 방역 국가인 한국에서 여기는 10명도 못 모이는데, 몇 만 명이 모여 집회를 한다는 게 과연 정상적인 일일까? 당연히 막고 금지시켜야 하는 일이 아닐까? 이 상황에서 야당은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기 보다 은근히 집회를 지지하고 있다. 근래에 보기 드문 전염병과 싸우는데, 여당과 야당의 구별이 있어야 하는가? 야당은 이번 일에 정부가 하는 일에 대놓고 반대하지는 못하지만, 비협조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을 의심하면 끝이 없다. 그리고 야당이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처음부터 끝까지 반대만 하지 말고, 야당이 신뢰를 잃는 것은 무조건 반대만 하기 때문이다. 반대할 땐 반대하고 찬성할 땐 찬성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이 번에 개천절에 또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계획한다고 한다, 정부는 이 번에는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다시 전 세계에 모범이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 잘 할 수 있지 않는가? 우리 잘 해오지 않았는가? 여야나 진보 보수의 구별 없이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박성민 작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