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망년에 사라져야 할 괴물들

● 칼럼 2020. 12. 26. 12:15 Posted by SisaHan

[한마당] 망년에 사라져야할 괴물들

 

다시 한해가 저물어 가는 세월의 분기점을 맞는다.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유난히 답답하고 불안하고 초초했던, 강박 속에 참고 견디며 살아야 했던 한해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당연히 COVID-19 이야기로구나 하고 직감할 터이다. 하지만 그 것만을 거론하기엔 부족하다. 지난 일년 동안 우리를 괴롭히고 피곤하게 하고 상처를 준 것들이 어디 한 둘 이랴만, 그 중에도 코로나에 버금가는 다른 두 인물이 인상적이었다. 그들 역시 코로나 못지않게 비슷한 기질로 기승을 부리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들면서, 지겨운 한 해를 넘기는 마당에 어서 사라줘졌으면 하는 강한 소망으로 오버랩된다.

아무래도 그들 세 군상은 곰곰 따져볼수록, 범위와 영향력은 다르나 정말 유별나고도 징그럽고 독한 물건들이라는 점에서는 묘하게도 닮은꼴들이 아닌가 하는 감이 든다.

먼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괴물은 다들 보고 듣고 겪은 그대로 일 것이다.

가까운 이웃에서 전염병 감염 소식을 들으면서 얼굴은 늘 마스크로 감싸고 끈을 단단히 조여야 했다. 요양원에서 죽어나가는 노인들 이야기가 TV에서 쏟아져 나올 때는 머잖아 다가올 인생말기에 다들 저런 취급을 당하겠구나 하는 실감이 스며들곤 했다. 일이 멈추고 수입이 막혀 나라에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난감한 처지는 사람들을 속병이 들게 했다. 누구를 만나기도 겁나고,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도 없으니 이게 무슨 징벌이란 말인가.

어느 날 갑자기 차단된 일상 속에서 마치 창살없는 감옥처럼 제한된 반복의 나날은 정신력과 삶의 역량을 불시 점검 당하는 인생 재수시험같은 감이 들 정도였다.

비단 어느 한 사람 뿐이랴. 현재까지 지구상의 220개 국가와 지역에 감염자를 내며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내노라 하는 거대 선진국들이 속수무책으로 짓밟혔다. 8천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걸려들어 병을 앓고, 그 중에 170여만 명은 목숨을 잃었다. 첨단과학을 동원해 만들어 낸 백신으로 기세가 꺾일려나 했더니 절묘하게도 변종으로 빠져나가려는 지능적이고 끈질기고 교활한 근성을 드러낸 존재. 보이지도 들리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그 기괴한 위력과 파장을 보면, 쩔쩔매는 인간을 향해 분명히 오만한 헛웃음을 치고있을 것이다.

 

대국 미국에서 기행을 일삼은 한 인물 때문에 미국사람들은 물론 전 세계인이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금세 트럼프를 떠올릴 것이다.

그는 미국이 우선이라며 세계 각국을 압박하고 강짜를 부렸다. 동맹국이라면서도 갈취공갈수준의 예우를 일삼았다. 흑인을 죽인 백인경찰을 두둔하면서 항의시위를 폭동이라고 매도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며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있는 사실을 없는 것처럼 범벅을 만들어 버리는 억지와 허언의 재주꾼.

그는 마침내 표로 결판이 난 선거마저도 부정·불복하는 막무가내 아집으로 여전히 몽니를 부리고 있다. 국력과 국격과 민주주의의 세계 최고인 나라 국가원수 함량이 그 정도라는 게 믿기는가. 그것도 집단지성이 택했다고 볼 수 있는 선거로 뽑힌 지도자다. 더구나 그런 꼴을 보고, 당하고 겪고 나서도, 미국인의 절반 가량은 여전히 그에게 환호하고, 그래서 그 걸 믿고 버티며 임기 말에 국정을 성깔대로 뒤흔들다니, 과연 미국은 죽어 가는가. 미국인들의 분별력도 그렇지만, 도대체가 공직자와 지도자의 덕목이란 찾아볼 수가 없는 그로인해 분열되어 신음하는 미국은 그리고 불안한 장래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농락당한 그 이상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제 세 번째 대상, 한국으로 들어가 보자, 지난 1년여 동안 코로나 바이러스 말고 나라와 민심을 뒤흔든 존재라면 누가 떠오르는가. 좌우를 떠나 국론을 분열시켰고, 국정 최고책임자와 상급자에게 반항하여 공직의 기강을 무너뜨렸다. 국민 대표기관의 검증시스템을 무력화하여 삼권분립 원칙을 침해했다. 국민이 선출한 임명권자에게 도전하여 문민통제를 위태롭게 한 그는 장관급 공직자다. 사상 유례없는 항명과 국정요동의 소란, 거기에 가족비리 의혹을 보는 국민적 원성 만으로도 진작 부덕의 소치로 물러나는 게, 구태여 목민심서를 들출 필요도 없는 상식이고 도리였다. 그런데 그는 이해가 맞아 떨어진 패거리들을 부추겨 자기만의 법치를 외치며 감찰도 거부했다. 입맛대로 수사하고 기소하는 내로남불의 칼을 휘둘러 국가 사정기관을 사조직이나 정당처럼 만들었다. 마치 핍박받는 정의 투사 행세로 대선주자인 양 정치검찰의 상징이 된 그가, 지난 한해 나라와 국민들 가슴을 얼마나 후벼파고 불안케 했던가. 머잖아 트럼프는 퇴장할 것이다. 이제 남은 두 괴물, 제발 코로나 바이러스도, ‘검찰 두목도 망년과 함께 말끔히 사라져, 새해에는 세상에 평화가 충만할 지어다!.     < 김종천 편집인 >

[기쁨과 소망] B.C.와 A.C. 시대

● 칼럼 2020. 12. 26. 12:11 Posted by SisaHan

B.C.A.C. 시대 : Before Corona & After Corona Era

           

서기 2020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연호, A.D.2020년의 기준은 예수님이십니다. 기원 전을 뜻하는 ‘B.C.’‘Before Christ’의 약자이고, 기원 후를 뜻하는 ‘A.D.’는 라틴어로 주의 해를 뜻하는 ‘Anno Domini’의 약자입니다. , 우리가 쓰는 A.D.2020년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왕으로 즉위하신지, 2020년이 되는 해“라는 의미입니다.

연호 A.D.525, 동로마의 수도자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Dionysius Exiguus)가 당시 기독교를 박해했던 로마 황제 디오클레시아누스의 즉위년을 기준으로 연도를 계산했는데, 폭군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싶어 예수님의 탄생 시점을 기준으로 연호를 계산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역사적 기준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COVID-19)은 짧은 시간 안에 전 세계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인류의 생활 양식은 예전처럼 돌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코로나-19가 지나가도 또 다른 코로나 바이러스가 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견합니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나누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의 기준을 말합니다. 코로나(Corona) 이전을 뜻하는 ‘B.C.’(Before Corona)와 코로나 이후를 뜻하는 ‘A.C.’(After Corona)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A.D.’(After Disease)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만큼 코로나 감염증(Corona Disease)가 우리 사회에 가져다 준 충격은 너무나 큰 것이었습니다.

물론 코로나(Corona)가 새로운 연호의 기준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코로나가 가져다 준 충격이 너무나 크기에, 코로나 사태 이후는 다른 세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벌써 교회의 예배의 형태가 바뀌고 있습니다. 기존에 지켜왔던 예배의 형식, 방법에 대한 새로운 고민과 적용을 하고 있습니다. 대그룹 모임 보다는 소그룹 모임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신앙생활이 단순히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모습이 삶의 현장에서 실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선교도 바뀌고 있습니다. 매해 방문했던 선교지를 올해는 가지 못했기에, 새로운 선교의 방법을 구상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선교 현장을 방문하여 교회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을 전달하기 보다, 선교 현장의 사역자들, 현지인들에 의해 개발된 프로그램과 선교의 방법이 적용되어질 수 있도록 후원교회는 도와가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 이전 시대와 코로나 이후 시대가 어떻게 달라지게될지 예견하기 쉽지 않지만, 흩어진 디아스포라(Diaspora)를 통해 복음의 파급력이 더욱 강력하게 나타났던 사건을 생각해 봅니다. 코로나로 말미암아, 오히려 이곳 저곳에서 더욱 강한 영적 그리스도인들이 나타나고, 교회됨을 지켜가는 교회들이 더욱 많이 나타나고, 선교 현장마다 현지인 사역자들로 말미암아 복음이 더욱 강력히 나타날 것을 기대해 봅니다.

빌라델비아장로교회 김치길 목사


[목회칼럼-기쁨과 소망] 얕은 뿌리라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  


송만빈 목사

노스욕 한인장로교회 담임


캘리포니아 북부에 위치한 요세미티 국립공원 초입을 자동차로 드라이브해서 들어가다 보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게 자란 레드 우드 군락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레드 우드가 수십 미터 높이로 자라니까 자기 몸을 지탱하고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뿌리 또한 깊이 뻗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라는 겁니다. 식물학자들이 발견한 바에 따르면, 뿌리가 그리 깊지 않게 뻗어 있다는 거예요. 이상하죠. 뿌리가 얕으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쉽게 넘어질 것이 뻔한데, 어떻게 수십 미터까지 자랄 있는 것인가요?

비밀을 파헤쳐보았더니,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표면 아래 얕게 뻗은 뿌리가 수십 수백 그루의 나무 사이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겁니다. 뿌리가 서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으니까, 서로를 지탱해 주고, 그래서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 닥쳐도 넘어지지 않고 높이 자랄 있었던 겁니다. 참으로 놀라운 생존 전략인데요.

레드 우드의 생존 전략은 영적으로도 심오한 교훈을 던져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사람 사람을 놓고 보자면 신앙의 뿌리가 얕을 있어요. 그래서 약한 바람에도 쉽게 넘어질 있습니다. 하지만 얕은 뿌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강한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하더라도 극복해 나가며 나무로 자라갈 있어요.

에베소서 5:29 보면, 예수님께서 교회를 어느 정도로 사랑하셨는지에 대한 사도 바울의 언급이 나오는데요.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기의 몸을 미워하지 않고 영양분을 공급하며 소중히 여기고 보호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교회를 양육하고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에게도 서로 이렇게 사랑할 것을 바라십니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벌써 1년이 되어갑니다. 2 유행을 맞이한 요즈음, 확진자 수는 1 유행 최고점 때보다2 가까이 증가했고 날씨가 추워지면 수치가 얼마나 증가할지 모릅니다. 지금도 많은 교회들이 현장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최소한 내년 봄까지는 함께 모여 예배 드리고 교제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교회를 제대로 다니고 있는 것은 맞는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은 맞는지 헷갈립니다. 정신적인 우울증과 함께 영적 우울증을 겪기 쉽습니다. 만약 서로 만나지 못하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고립되어 버린다면 그래도 믿음의 뿌리가 얕은 우리로선 넘어지기 좋아요.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기도의 끈으로 묶여 있어야 합니다. 조금 신경을 써서 연락을 하고 안부를 묻고 기도제목을 나누며 서로의 신앙을 챙겨야 해요. 얕은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서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기에 하늘 높이 자라는 레드 우드 나무처럼, 토론토 모든 교회의 성도들이 성령과 기도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믿음의 거목들로 자라 가기를 소망합니다.      


[1500칼럼] 징역 7, 벌금 9억원, 그리고 국정농단 유사

박성민 작가

징역 7, 벌금 9억 원 그리고 국정농단 유사. 이 것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인 정겸심 교수에게 검사가 내린 구형이다. 표창장 위조 외에 증거인멸 등 비슷한 죄목으로 엮어서 만든 14개의 범죄에 대한 형벌이다. 물론 마지막 판결은 판사가 내릴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난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떻게 위조를 했는지 조차 증명되지도 않은 일인데, 설사 사실이라 하더라도 봉사활동에 대한 표창장 위조가 그렇게 대단한 범죄인가? 그것이 국정농단 운운 할 문제인가? 내 개인적으로는 지난 한 해 우리나라가 그 문제로 떠들썩했던 사실도 이해가 안간다. 특히 보수 언론에서는 틈만 나면 온갖 추측 기사로 떠들었는데, 정말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었는가? 우리 나라에서는 뉴스거리가 없었는가? 더욱이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사실을 가지고 죄인인 것처럼 단정을 내려 말하는 것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기꾼 가족이라 단정짓는 것에 대해선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온 가족을 파헤칠 뿐 아니라 친인척까지 까발기는 것은 도가 지나친 것처럼 보였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고 그렇게 저인망처럼 수사하여 안걸릴 사람이 있는지 의문이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였다. 더욱이 검사님께서 말씀하시면 그게 진리였다.

 이번 사건의 상징적인 사건인 표창장만 해도 그렇다. 부산대나 서울대 의대를 들어가기 위하여 동양대 표창장을 위조하여 제출했다. 얼핏 그런 착각을 들게 만드는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동양대 표창장이 꼭 필요한가? 한국은 아직도 대학에 서열이 있다. 그 대학 사이에는 하늘과 땅 사이의 차이가 있는데, 동양대 표창장이 서울대나 부산대 의대를 들어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인가? 아니 필요한 것인가? 어쩌면 입학하기 위해 전혀 필요없는 표창장이다. 그걸 위해서 위조까지 했을까? 그래도 제출한 것은 학교생활을 하면서 봉사활동, 사회활동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왕 있는 것 같이 제출하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곡해시켜, 일반 독자들에게 입학을 위해 위조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실이 우습지 않은가? 그리고 여기식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한 개인이 서류 한 장 입학을 위해 위조했다면, 그 정도의 범죄는 학교 자체 내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닌가? 위조 표창장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학교다. 동시에 위조를 가려내지 못한 학교에도 책임이 있다. 그리하여 그 것이 개인이 아닌 조직적인 범죄 단체가 개입되고 수많은 피해자가 있었다면, 그 걸 경찰이나 검찰에 신고해야 할 것이다. 입학서류에 대한 위법행위가 있었다면, 그걸 제일 먼저 처벌해야 하는 곳은 학교다. 그 정도의 권위는 학교가 가지고 있다. 위조행위가 조국 전 민정수석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그게 왜 국정농단과 상관이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정말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모르는데, 이 모든 어마어마한 책임을 정경심 교수 혼자 떠맡으라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

무엇보다도 나를 이해 할 수 없게 만든 것은 검찰의 수사과정 그 자체다. 70차례의 압수 수색과 수 십 명의 검찰이 매달려 조사를 했다. 1심 재판만 해도 30변이 넘었는데. 전두환, 노태우의 내란음모 죄보다 더 많았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형량을 구형하는데도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봉사활동 표창장이 누구에게 육체적 피해를 주었는지, 금전적으로 피해를 주었는지(많은 사람에게), 정말 국정을 농단했는지, 이 모든 점을 판단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그 수사과정을 통해 개인의 인격이 너무 침해 당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사실 난 검찰의 구형대로 형이 확정 되리라 믿지 않는다. 당연히 무죄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검찰은 항소를 하여 대법원까지 판결을 끌고 가리라 생각한다. 그래야 그들의 억지 수사가 나름대로 명분이 있고, 자신들의 기득권에 도전했던 조국 교수를 괴롭힐 수 있지만, 국민이 보고 있다.

박성민 작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