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뻔뻔한 자들의 정체를 안다면

● 칼럼 2021. 6. 28. 03:5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한마당] 뻔뻔한 자들의 정체를 안다면

 

‘뻔뻔하다’는 말이 요즘처럼 자주 입가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나 싶다. 세상사 곳곳에서 뻔뻔한 사람과 뻔뻔한 일들을 보고 느끼며 살고 있지만, 요사이 특히 갈등이 심해지고 격렬해진 정치판의 인간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뻔뻔하기 그지없다는 탄식이 잇달아 나온다.

 

‘뻔뻔하다’의 사전적 풀이는 “부끄러워할 만한 일에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염치없이 태연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염치’란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그리고 ‘체면’은 “남을 대하는 도리”이다. 얼굴 가죽이 두꺼워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는 ‘후안무치’(厚顔無恥)도 같은 말이다.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거나 “철면피한 사람”이라는 말들 역시 표현의 차이일 뿐, 뻔뻔과 다를 바가 없다.

애완견을 기르는 이들은 강아지도 잘잘못을 아는 염치가 있음을 안다. 그런데 인간이 후안무치라면, 개만도 못하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온갖 거짓과 허풍으로 지구촌에 ‘뻔뻔한 것도 처세술이고 무기’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던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은 여전히 입심이 펄펄하다. 일본 정치를 주무르며 “일본군 위안부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일본판 대표적 뻔뻔 인물 아베 전 총리.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대통령도 그들에 못지않은 뻔뻔함을 뽐낸다. 자신의 비리를 수사하겠다는 연방경찰과 대법관을 “쓰레기”라고 비난하고 여성 국회의원에게 “강간하기엔 너무 못생겼다“고 막말을 뱉어낸 인물. 그는 코로나19 대응 잘못으로 60만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낸데다 경제마저 망친 원흉으로 탄핵요구가 130번이나 나왔지만, ”펜으로도, 판사 결정으로도 나를 끌어내릴 수 없다“고 버텨 선량한 브라질인들을 울분케 한다.

 

한국은 다른가? ‘K문화’의 열풍이 무색한 최고반열의 뻔뻔인사들이 뒤질세라 설쳐댄다.

 

상관인 참모총장에게 총을 겨눠 반역하고 수하 무리들을 동원해 정권을 찬탈한 쿠데타 주역 전두환은 저항하는 광주시민들을 무참히 짓밟은 학살자로 역사에 이름을 올린 자다. 그가 법의 심판과 국민적 단죄를 받긴 했지만, 40여년 지난 지금껏 단 한 번도 사죄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오히려 ‘재산 29만원’등의 뻔뻔한 단어만 맴돌 뿐이다.

 

그런 뻔뻔한 자를 칭송하는 ‘더 뻔뻔한 자’가 나와 다시 국민적 분노를 돋우고 있다. “전두환이 5.18과 쿠데타를 빼고는 정치를 잘했다”고 추켜세운 망발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온 전 검찰총장이다. 현직을 그만 두자마자 정치판에 뛰어들어 검찰과 정치 모두에 오물을 덧씌우고도 그의 뻔뻔한 언행의 행로는 그칠 줄을 모른다. “배울 점이 있다는 취지였다“며 해명이랍시고 궤변을 늘어놓는 그의 수준이하 본질과 감출 수 없는 본색은 ‘뻔뻔 일지’에 추가될 때마다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 곤혹스럽다.

그는 수많은 가족비리와 의혹의 증거에도 ”음해”라고 강변한다. 검찰총장 재임 중 대통령 인사권을 무시하고, 항명을 일삼은 언행을 국민들이 똑똑히 보았는데도 “정권에 맞섰다”고 호도한다, 검찰권을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증거들, 법무부의 징계가 부족할 지경이었다는 법원의 판결에도 황당하다고 되레 발끈했다. 손바닥 ‘왕’자 소란과 주변 주술인들 증언에도 “옆집 할머니” 운운 우겨댔다. 오히려 다른 대통령 후보들의 ‘눈에 티’를 맹공하는 그에겐 자신의 눈 속 ‘들보’가 뻔뻔의 훈장인 것인지, 단 한 번도 잘못이나 사과를 입에 올린 적이 없으니 참 뻔뻔의 극치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은 하나님의 추궁에 ‘하나님이 주신 여자’가 열매를 주어서 먹었노라고 ‘여자를 주신’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인다. 하와도 마찬가지, “뱀이 꾀어서 먹었다”고 들러댄다. 자기들 잘못은 없다는 뻔뻔의 원조다. 에덴에서 쫓겨난 그들의 원죄는 아들 가인에게로 흘러 동생을 쳐죽이는 살인죄로 발전한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는 하나님의 문책에 그는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죄에 무감각한 채 도리어 왜 나를 지목하느냐는 뻔뻔함의 전형을 드러낸다.

 

그렇게 ‘뻔뻔’의 역사는 인류사와 함께 해왔다. 그리고 역사가 말해주는 것은 뻔뻔한 자들은 항상 죄와 악의 편이요, 거짓과 어둠과 불의의 세력이며, ‘트러블 메이커’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빛과 진실, 양심과 선과 정의를 미워하고 두려워하여, 뻔뻔의 두꺼운 장막 뒤에 숨어 내로남불-아전인수의 변명과 궤변을 찾는 공통점이 있다. 선을 악으로 이기려다 보니 본질 흐리기, 물타기, 되치기 등 온갖 사악한 수법을 동원하고, 갈등과 이간질, 분열과 다툼을 조장하는 완력의 발버둥을 친다. 친일 매국노들, 쿠데타 독재일파, 국정농단 세력이 그랬다. 인류 역사상 크고 작은 전쟁을 일으킨 자들만 보아도 거의가 뻔뻔한 인물들이었다. 독일의 히틀러가 그랬고, 일제의 도조 히데끼를 비롯한 전범들, 6.25를 일으킨 김일성이나 배후의 스탈린 같은 인물들….

 

뻔뻔한 자들의 실체를 모르면 불행과 고통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정체를 알고도 방관하거나 환호하면 평화와 정의를 거스른 역사의 죄인들이 된다. 그들을 옹호하며 즐기는 세력의 교활한 속셈 또한 알아내고 경계하지 않으면 큰 낭패와 곤욕을 치르게 된다. < 김종천 편집인 >

 

한마당 - 공존·공생은 숙명이다 

 

지난 주 시사 한겨레 신문(15면)에 실린 ‘기적의 mRNA’기술‘은 온갖 질병으로 고통받는 인류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mRNA 백신의 기적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새로운 하이테크 mRNA 의학은 수많은 중증질환을 치료할 잠재력이 있다. 에이즈, 독감, 결핵, 암, 다발성경화증, 류머티즘, 각종 알레르기, 위염, 알츠하이머, 낭포성섬유증, 무릎관절염, 척추디스크 등 온갖 질병에 대해 mRNA 기술을 이용한 치료법이 연구개발 중이다.』

 

독일 슈피겔지 기사를 소개하는 이 글에는 mRNA 기술의 발견과 COVID-19 백신 개발과정, 그리고 향후 만능 치료제로 발전해 ‘슈퍼 약물’로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 그러면 어떤 놀라운 의료혁명이 일어날지를 전망하면서 ‘중증질환과 불치의 감염병에 대항할 신무기’라고 강조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정말 꿈같은 이야기다. 코로나에 이르기까지 쉴 새 없이 인간을 괴롭히는 전염병들은 물론 현대의술로도 손쓸 수 없는 불치병들을 퇴치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지상천국이 도래하지 않겠는가.

 

인간이 질병에 도전해온 발자취를 보면, 획기적인 의약품 개발이 대부분 발상의 전환, 혁신적 접근과 함께 오랜 고난을 견딘 과학자들의 도전과 실험정신의 산물들이다.

전염병의 원인이 세균임을 증명해 의학의 새 시대를 연 ‘세균학의 아버지’ 루이 파스퇴르는 어려서는 미술에, 대학에서는 화학을 공부한 평범한 젊은이였다. 그는 고깃국물 오염이 자체 미생물 증식 때문이라는 당시의 통설을 뒤집고, 외부의 세균 때문이라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해 살균의학의 길을 열었다. 그의 역발상에서 나온 발견들은 이후 과학사에서 ‘눈에 보이는’ 세계 뿐만 아니라 미시 세계에 대한 연구로 확장시켰다.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 개념도 그에게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그 후 알렉산더 플레밍에 의해 발견된 항생제의 원조 페니실린은 근 40년 동안 별다른 진척이 없다가 세계 2차 대전이 끝날 무렵에야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하는 기적의 빛을 발했다.

생소한 생물과학 용어 ‘mRNA’, 즉 ‘전령 리보핵산’(messenger RiboNucleic Acid)은 핵산의 한 종류에서 일약 질병에 대항하는 신기원을 연다. 바이러스 단백질의 설계도를 암호화하는 mRNA를 만들어 해당 mRNA를 인체에 주입하면 인체는 자체 면역체계가 ‘낯설다’고 인지한 mRNA를 대량 만들어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 기억을 형성해 방어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통적 백신은 기존 생균이나 죽은 균을 몸에 투여한 뒤 해당 세균과 싸워 이기도록 연습시켜 항체를 형성하는 방식인데, 에이즈나 뎅기열 등의 감염병에는 힘을 쓰지 못한다.

mRNA는 발상의 전환이었고, 그런 작동 메커니즘을 적용한 혁신적 백신이 발명되기까지는 오랜 시일 많은 과학자들이 시련과 실패을 거듭했다. 미국 유전학자 존 울프가 1990년 mRNA를 거론한 이후 10년 만에 코로나 사태에 직면해서야 백신이 응급 등장할 수 있었다.

효능이 뛰어난 획기적 백신과 치료제 개발은 질병에서 인류를 지키고 생존을 보장해주는 지름길이다. 하지만 지난 2년, 그리고 현재진행형 COVID-19 팬데믹은 백신이 만능일 수 없음도 보여주고 있다. ‘고성능’ mRNA 백신의 효능이 90~95%에 달한다는데 2차 완료자들의 돌파감염률이 25%를 오르내린다. 부스터 샷에, 상시적 접종을 해야 할 거라는 말도 나온다.

 

인간은 질병 정복을 위해 끈질긴 투쟁을 해나간다. 그러나 항생제 역사 백년도 안되는 사이에 수많은 항생제가 무력화되며 갈수록 초강력이 필요해지듯이, 교활한 변신과 신종 병원체들은 뛰는 인간 위에 나는 탁월한 존재들이다. 여전히 암이나 당뇨, 알츠하이머, 파킨슨 등 불치의 영역은 치유의 영토보다 넓다.

 

COVID-19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니 자만하지 말라는 것이고. 둘째, 자연은 인간 머리 위에 있으니 이기려 하지 말 것이며, 셋째는 공존과 공생의 지혜로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전세계적인 코로나 몸살을 앓으며 양극화와 이념대립의 심화로 갈등과 분열도 극심해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숙명은 공존과 공생임을 상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너 죽고 나만 살기’를 고집한다면 자멸에서 공멸로 갈 뿐이다.

 

인간 몸의 세포는 30조개인데 비해 세균은 39조나 된다고 한다. 사실상 몸의 99%가 미생물이라는 수치도 있다. 공존 공생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 생태계를 교란·파괴하는 인간의 교만을 역습하는 독한 병원균의 발생과 변이를 따라잡는 데는 한계가 뚜렷하다. mRNA의 슈퍼약물이 나온다해도 다시 능가하는 엑스트라 슈퍼 바이러스가 등장하리라는 예측은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인간의 도전과 과학으로 적극 대처해야 하겠지만, 도달할 수 없는 ‘초과학’의 영역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공생 가운데 생존의 지혜, 어차피 ‘With Corona’의 시대는 오고 있다.

 

[한마당] 동맹바라기의 업보

 

지난 9월24일 캐나다 국민들은 전혀 낌새를 몰랐던 대형 뉴스가 터져나왔다.

밴쿠버에 억류 중이던 중국 통신장비회사 화웨이의 부회장인 ‘멍완저우’라는 여성이 전격 석방돼 중국으로 떠나고, 중국에서는 간첩혐의로 옥살이를 하던 캐나다인 마이클 스페이버와 마이클 코브릭 씨가 역시 전격 석방돼 캐나다로 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전세여객기까지 동원해 멍완저우를 ‘모셔간’ 중국은 마치 국빈방문 영접 행사처럼 그녀의 귀환을 환영하는 대대적인 법석을 떨면서 ‘미국을 상대로 한 외교적 승리’라고 안팎에 선전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인질로 잡아두었던 두 명의 캐나다인 석방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뉴스에 올리지도 않았다. 애초에 캐나다는 화풀이 대상이었을 뿐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자국민이 억류되는 바람에 속앓이를 해왔던 캐나다는 어떻든 앓던 이 빠지는 격이어서 특별기를 보내 두 사람을 데려왔고, 트뤼도 총리는 25일 캘거리 국제공항에 직접 나가 이들을 포옹하며 환영했다.

그런데 이 희대의 사건에서 캐나다란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아무리 따져 봐도 이해가 안되는 허탈감을 느끼는 것은 필자만의 과문(寡聞) 탓인가, 국제정치 역학에서 당연한 일인데 너무 과민한 것인가.

 

들리는 바로는 미국 법무부와 중국 정부가 멍완저우의 기소 연기에 합의하면서 캐나다 법원이 그녀의 범죄인 인도 재판을 기각하고 연금해제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러자 중국도 '멍완저우 석방용 교섭 카드'로 중형을 때려 감금했던 캐나다인 두 명을 석방했다. 그 해결과정에 캐나다의 표면적인 역할은 없었다. 거론도 되지 않았다. 캐나다는 두 강국 간 대립에 말려들어 실컷 수모를 당하기만 하고는 그들이 화해한 덕에 어정쩡하게 수렁을 벗어난 것이다.

 

멍완저우가 밴쿠버에 있었던 것이 발단이기는 하지만, 캐나다가 처했던 신세는 미국이 중국을 격하게 몰아부치는 압박에 공연히 말려들어 미국의 행동대요 총알받이가 되었고, 선량한 자국민들이 인질로 잡히는 유탄을 맞아 3년간 곤욕을 치른 게 전말이다. 바꿔 말해 미국의 몇 마디에 따라 ‘죄인’을 억류해 주었을 뿐인데, 미국인들을 인질로 잡지는 않고 만만한 캐나다인들을 붙잡은 중국의 돌려차기에 얻어맞고 비틀거렸던 것이다. 공권력 허비와 원칙없는 사법판단, 외교와 무역의 마찰, 국민 수난 등 손해만 잔뜩 보고, 나라 위상마저 애매 해졌으니, 세계 최강국을 이웃 우방으로 둔 업보인 것일까.

 

두 달 전 철수사태가 벌어진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있었다. 미국이 주도한 아프간 전쟁에 연합군으로 참전한 캐나다와 영국·프랑스 등 우방국들은 도주하듯 철군해버린 미국에 뒤통수를 맞고는 ‘맹방’의 허구와 자국 이익에만 철저히 몰두한 ‘양키’의 비정함을 절감해야 했다.

 

동키호테처럼 종잡을 수 없던 장사꾼 트럼프가 사라진 뒤 “미국이 돌아왔다”며 기대를 부풀린 바이든이 등장했지만, 갈수록 나아지기는커녕 실망이 커져가는 모양새다.

지난 9월15일 영국·호주와의 ‘오커스’(AUKUS) 동맹 결성을 발표해 또 하나의 파장을 부른 게 결정적이다. 화기애애했던 G7 정상만남 때부터 다른 우방을 따돌리고 3국이 은밀히 논의해 왔다는 말까지 나오면서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배신감은 컸다. 특히 호주와의 잠수함 수출계약까지 파기된 프랑스는 즉각 대사소환 등 노발대발했다. 장 이브 르드리앙 외무장관은 “트럼프나 할 만한 행동”이라고 성토했고, 플로랑스 파를리 국방장관도 “미국이 동맹국을 어떻게 대했는지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고 칼을 갈았다.

 

살벌한 국제사회에서 동맹국은 필요하고 국익에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역사적인 전통의 맹방이 언제 뒤통수를 칠지 알 수 없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피로맺은 혈맹이 언제 적으로 돌아설지 알 수 없고 영원한 적도 없는 게 인간사회다. 결코 자국의 이익을 포기하는 나라는 없다.

 

6.25전쟁에서 한국을 구했다지만, 6.25를 부른 분단의 설계자는 자국전략을 우선한 미국이었다. 한국을 따돌리고 정전협정을 맺은 미국은 지금껏 종전(終戰)의 열쇠를 건네지 않고 있다. 일제를 철저히 징벌하고 해체시키지 않아 지금까지 친일 잔재와 독도와 극우일본 등등의 골치아픈 문제들이 횡행하는 것도 시발은 미국의 계산에서 비롯됐다.

 

신냉전이 조성되는 글로벌 전략의 소용돌이에서 막연한 선의의 ‘동맹바라기’나 ‘동맹 우산살이’가 과연 바람직한 생존전략인지. 어정쩡한 강국들인 캐나다도, 한국도, 도약을 위해서는 ‘자국이익’을 깊이 성찰해 보는 게 현명한 일이다.

 

[편집인 칼럼]  선택적 불의와 방종

[한마당] 불변의 법치농락 카르텔

 

법원과 검찰을 출입하던 법조 기자시절 기억나는 이야기다.

아침에 이방 저방을 기웃거리다 보면 얼굴이 부시시 하고 충혈된 눈에 열심히 껌을 씹는 검사를 볼 때가 있다. 야근에 지쳤거나 어떤 스폰서와 밤을 지샌 것이려니 궁금해 슬슬 몇 마디 던져보면 십중팔구는 역시 주취 탓이다. 민망했는지 공연한 선심성 빈말도 빼놓지 않는다. 다음에는 꼭 연락 할테니 같이 한 잔 하자구….

 

그날 검사들을 접대했던 ‘스폰서’는 모 행정관서 공무원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모종의 비리혐의로 그 관서의 장이 몇 차례 검찰청을 들락거렸던 적이 있었지, 그런데 그 후 어쩐지 조용하다 싶더라니…. ‘증거’를 쥐고는 곧바로 차장검사에게 쫓아가 유도질문을 꺼내는 기자에게 차장은 대수롭지 않은 듯 “어 그 친구, 강 검사가 불러서 알아봤는데, 뭐 별거 아니더라구”란다. 부하직원이 승진 청탁을 하며 봉투를 건넸다는데, 수사해보니 이미 돌려주었고, 액수도 미미해서 그 기관장을 혼내주되 기소는 하지 않기로 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그 기관장의 비위는 돈 싸들고 청탁한 부하들이 여럿이라는 소문까지 파다했지만, 알고보니 그의 동생이 정보기관에 있었고, 결국 불문에 부치는 봐주기로 끝냈던 것이다. 어쩐지 수사는 시작했는데 그 뒤 감감 무소식이더니, 슬그머니 덮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선처에 보답하느라 검사를 모셔다 양주에 곤죽이 될 정도로 향응을 베풀었고….

 

공직 기강과 부정부패를 감독해야 할 검사가 공직자의 범죄를 덮어버리고, 형벌권과 기소권을 행사하지 않은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에, 청탁을 들어 준 대가로 접대를 받은 ‘사후 수뢰’까지 아무런 죄 의식 없이 범죄를 저지른 셈이다. 부정한 금품을 주고 받았던 행정관서 부패 공무원들은 본분을 저버린 부정청탁에 국민의 세금으로 향응을 ‘공여’했으니, 결과적으로는 선량한 국민들과 국가에 고스란히 피해를 전가한 것이다. 검찰도 행정기관도 철퇴를 맞아야 할 사안이 분명했다.

 

취재를 확인한 검찰과 해당 관서가 가만있을 리 없었다. 확실한 팩트의 기사였지만, 분통을 터트리는 기자에게 편집 데스크는 “김 기자, 방법이 없네, 중정(中情)에 보안사에, 총동원됐어, 이해하게!”하곤 달랠 뿐이었다. 신문사도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 수 있는 때 였으니, 언론의 자유와 사명이란 단어는 고상한 수사에 불과했고, 분기탱천을 삭이며 위험한 줄타기에 도전해야 했다.

‘인혁당 사법살인’처럼 초대형 공작은 아니어도, 검찰은 물론 법원까지 그런 식으로 크고 작은 민·형사 사건들이 왜곡·조작되거나 묻히는 사례는 당시에 흔치않게 있었다. 언론 역시 재갈이 물린 채 공생의 멍에와 카르텔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 때가 언제적 인데, 그런 법조 안팎의 속성과 풍속도가 바뀌기는 커녕 고착화·지능화 되었다는 사실은, 논란이 되고 있는 근래의 사건들에서 뚜렷하게 그 불편한 실체를 본다. 널리 알려진 노무현 수사와 이명박 BBK사건을 필두로, 김학의 사건, 옵티머스 사건 등 일탈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흐지부지 덮어버린 ‘나경원 사건’과는 달리, 수사도 하기 전에 기소해버린 ‘조국 사건’에, 최근의 이른바 ‘고발 사주’ 사건까지. 사회정의와는 너무 거리가 먼, 참 교활하고 사악한 선택적 형벌권의 민낯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변함없이 그 카르텔의 일원으로 헤어나지 못하는 언론까지….

 

공직 당사자와는 관련없는 일가친족을 ‘멸문’지경으로 내몬 무지막지한 별건·연좌제 수사의 비열한 숫법은 조폭의 칼부림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그런 냉혹한 칼끝이 정작 자신에게 향한다면 어떻게 달라지는가. 검찰총장의 일가를 집적거렸다고 친위검사가 고발장을 만들어 야당과 민간단체에 고발을 ‘청부’했다는 폭로는 그야말로 ‘내로남불’의 극치를 보여준다. 자기방어를 위해 국가사법체계를 악용한 범죄요 법치농락에 다름 아니다.

 

어디 검찰 뿐인가. 사법거래를 일삼았던 대법원장과 행정처의 판사들은 법관의 양심은 팽개친 채 뭘 잘못했느냐고 고개를 쳐들고, 제식구 감싸기 덕에 면죄부를 챙겨 다시 재판을 맡아서는 보복하듯 요상한 판결을 쏟아낸다.

 

과거 독재시대 무소불위로 저지른 정치공작과 조작의 그림자, 멀게는 일제치하 고등계 형사들의 악독했던 행적의 뿌리가, 여전히 21세기 민주정치 시스템의 그늘아래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은 한심하고도 경악할 일이다. 그런데도 당사자들은 죄의식도 미안한 양심도 없다. 오히려 큰소리치며 역정을 낸다. 그들은 민주화든 문민화 든 관심도 변함도 없이 손에 쥔 권력을 즐기며 안주해왔기에, 늘상 그런 습벽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자들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어 국민을 ‘돌보겠다’니, 위장된 양의 손을 내민 늑대처럼, 소름 돋을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래서 검찰 개혁, 사법개혁·언론개혁을 통한 카르텔 혁파는 여전히 미완 상태인 이 시대 최우선의 국가적·국민적 과제다.

                                                                                              < 김종천 시사한겨레 편집인 >

 

 

[편집인 칼럼-한마당]  선택적 불의와 방종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기 원한다. 하기 싫은 일은 피하고 미루기 일쑤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 싫증이 나고, 더디고 힘들다. 그래서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자유의지가 있어서 하고 싶은 일을 택하고 거기에 집중하고 매진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른 의무도 따른다. 마땅히 책임도 져야 한다. 그런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과 집중’,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과 권리와 한계는 비단 개인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부여받고도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원죄의 길을 간 것처럼, 자유의지는 끊임없이 선과 악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재촉한다. 선악과를 택한 순간의 탐욕이 에덴 추방을 불렀고, 자손만대를 징벌의 세계로 내모는 천추의 한을 낳았다. 한 마리 나비의 날개짓이 마침내 거대한 태풍으로 번지듯이, 작은 선택의 여파가 미래의 진로를 좌우한다.

 

무미건조한 주제지만, 되짚어 봐야 할 절실한 화두다. 개인을 위한, 나아가 공공을 위한 지혜롭고 공의로운 선택과 집중의 길을 심각하게 재론해 봐야할 이유, 사회적 공정과 정의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삶에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 피하고 싶어도 부딪혀야 하는 사안들이 허다하다.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일들도 많다. 그래서 공공을 위한 직업인들의 자유의지와 선택적 행동에는 제약과 규범이 있고, 직업윤리도 엄존한다.

 

그런데 단체나 회사에서 혹은 공조직에서 개인적 선호나 이기적 태도로 불의한 자유의지의 고수나 자의적 행동에 몰두 한다면, 그는 공인(公人)이기를 포기했거나, 자질과 소양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직업의식과 책무를 망각한 것이 아니라면 전혀 자신의 취향과는 달라서 흥미를 갖지 못하는 경우, 그도 아니면 나태와 해이, 혹은 유착과 편애 등의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교사가 자기 좋아하는 학생만 가르치고 다른 학생들은 알아서 공부하라고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 소방관이 불끄기 싫어 화재현장에서 불구경만 하다가, 막상 자기 집에 불이 나니 초특급 출동해선 동료들 빨리 안온다고 난리친다면?

경찰이 도둑은 보고도 모른 체 하고는 교통단속만 나선다고 고집하면?, 혹은 지인은 잘 봐주고, 괘씸죄 대상은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인다면…틀림없이 그 사회는 엉망이 될 것이다. 미래는 희망이 사라지고 먹구름이 뒤덮을 수밖에 없다.

 

결코 있어서는 안될 그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애석하게도 실제 상황임을 부인 할 수가 없게 되었다. 특히 권력을 쥔 자들의 본분을 저버린 선택적 일탈이 도를 넘었다.

대표적인 권부라고 할 검찰, 법원, 언론, 그리고 정치인들이, 공동체를 위한 봉사자라는 공직인의 책무를 망각한 채 ‘유착과 편애의 선택적 자유의지 발동’으로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근래 선명하게 드러난 검사들의 선택적 표적-기획수사 습성은 검찰개혁에 거세게 반항하며 질긴 파열음을 내고 있다. 판사들은 법과 양심을 팽개치고 사법농단을 감싸면서 서슴없는 감정적 판결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미 ‘기레기’니 ‘구더기’ 소리를 듣는 언론들은 자사 이기와 진영에 매몰된 선별보도로 국민을 오도하며 양극화와 대결을 부추긴다. 일부 정치인들은 국민은 안중에 없이 오직 권력쟁취에만 눈먼 헐뜯기와 혹세무민으로 날을 지새고 있다.

 

안타깝게도 생생했던 기억을 벌써 잊어가고 있지만, 가깝게는 불과 몇 년 전이었다. 길어도 한 세기가 채 안된다.

서슬퍼런 권력 앞에 국회는 거수기였고, 기자와 언론은 어용 나팔수들이었다. 검사들은 권력의 개 답게 짖으라면 짖고 물라면 물었을 뿐이다. 판사들은 개들이 짖는 구형대로 앵무새 판결에 자족하며 살아야 했다. 그들에게 자유의지와 선택은 사치였다.

 

굴종과 침묵이 능사였던 그들에게 어느 날 권력의 자유의지가 선한 ‘시혜’를 베풀자, 원죄의 습성과 사악한 근성이 살아난 것이다. 그들에게 자유의지의 선한 선택은 방종이고 무법이고, 불의에 다름 아니었다.

검찰과 법원의 선택적 양심과 정의, 언론의 표적 보도와 편의적 곡필, 적폐 정치인들의 내로남불…그야말로 선을 악으로 갚는 행태가 아니고 무엇인가. 저들에게는 자유의지를 부여할 자격도 가치도 없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근자에 가장 우려되는 것은 역사가 거꾸로 갈 조짐이다. 이 망국적 선택의 불의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는 조바심이다. 저들에게 치욕의 시대 기억을 되찾아 주어야 비로소 깨어들 날지 모른다.

 

결국은 국민과 집단지성의 선택이 가장 강한 무기가 아니겠는가. 다시 촛불을 들어도 좋다. 광장의 촛불이 아니라, 사람들의 가슴과 머리에, 눈길 마다에 촛불을 살리는 것이다.

사그러드는 개혁의 불씨, 선한 선택의 횃불을 활활 살려서, 저들의 방종과 악습을 불살라 태우는 것이다. 공정과 정의를 바로세울 최선의 길은 바로 깨어있는 국민의 자유의지와 선한 선택의 힘이다.         

                                                                                                  < 김종천 시사 한겨레 편집인 >

 

범죄를 옹호하는 조선일보

● 칼럼 2021. 6. 17. 13:14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조선일보> 진짜 문제는, 이 범죄를 찬양하는 것이다.”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조선일보>의 입장은 익히 잘 알고 있다.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다 끝난 일인데 피해자들이 왜 소송으로 뒷북을 치냐는 입장. 억지 소송을 대법원이 덜컥 받아주어 한-일 관계가 지금 이 모양으로 파탄 났다는 입장. 동의할 수 없지만, 최소한 하나의 의견으로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선을 넘었다. 지난 10일치 <조선일보>에 실린 주필 칼럼 얘기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청구권을 인정한 2012년 대법원 “판결 때문에 외교부와 대법원이 소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국에서도 외교가 걸린 판결에선 이런 과정이 흔히 있다. 현 정권은 여기에 ‘사법농단’이라는 모자를 씌웠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고초를 당하고 있다”. 진보든 보수든, 강제동원 문제에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든 범죄를 옹호할 수는 없다. 삼권분립과 재판의 공정성이라는 법치주의의 핵심 가치를 똥물에 빠뜨린 범죄를 찬양해서는 안 된다. <조선일보>는 그걸 했다.

 

먼저, 사법농단이라 명명되는 사건이 외교부와 대법원 간의 정상적이고 적법한 소통이었나? 박근혜 정부는 2012년 대법원 판결을 뒤집고 싶어 했다.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등 당시 양승태 대법원의 숙원사업을 위해 청와대 비위를 맞추고자 했지만, 이미 존재하는 대법원 판결을 뒤집기란 쉽지 않았다. 범죄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법원행정처는 사인 간 분쟁을 해결하는 민사소송임에도 정부 부처가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제도를 신설하고, 그 제도를 이용해 외교부가 강제동원 사건에 의견서를 내면, 이를 계기로 판결을 뒤집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해당 재판부가 아닌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이런 계획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직권남용죄이다. 그리고 해당 소송 일방 당사자인 일본 기업 대리인 김앤장 소속 변호사들에게 위 계획, 즉 재판 기밀사항을 누설한다. 명백한 공무상 비밀누설죄이다.

 

이제부터는 정말 가관이다.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 임종헌은 김앤장 변호사에게 ‘빨리 프로세스를 시작해야 하니 조속히 의견서를 제출해달라’며 외교부 의견서 제출을 촉구하는 취지의 서면을 제출하라 지시한다. 김앤장 변호사는 그 지시에 따라 서면을 작성했고, 임종헌에게 사전검사도 받았다. 임종헌은 제목과 내용을 친절히 수정해서 돌려보내고, 그 서면은 피고 대리인 김앤장 변호사 명의로 재판에 제출되었다. 이후 외교부에서 제출한 의견서 역시 판사들에 의해 사전에 검토·수정된 것이었다. 판사들이 소송의 일방 당사자와 노골적으로 결탁한 희대의 범죄다.

 

사법농단 관련 판결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에 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 가능할까? 위 사실은 대부분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객관적 증거로 확인된 내용이고 널리 보도되었다. 특히 공무상 비밀누설죄 부분이 그러하다. <조선일보> 칼럼이 외교부와 대법원이 ‘소통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벌어졌던 주요 사실관계들을 일절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은 의도적 생략, 즉 사실 왜곡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칼럼의 진짜 문제는 이 범죄를 찬양하는 것이다. “외국에서도 외교가 걸린 판결에선 이런 과정이 흔히 있다.” 부디 부탁드린다. 세상 어느 나라에서 고위 법관들이 소송 일방 당사자를 비밀리에 만나 ‘이런 서면 내라’, ‘이렇게 써라’ 코치하는지 알려달라. “흔히 있다”고 하셨으니 다수의 사례를 꼭 알려주시라. 그래서 조선일보의 입장은 무엇인가? 국익을 위해서라면 청와대, 외교부, 법원이 결탁한 범죄라도 가능하다는 것인가?

 

강제동원과 관련된 사법농단 행위는 ‘한-일 간 외교갈등을 피해야 한다’는 명분을 달고 있었지만, 실제 행위 주체들의 셈법은 꽤 천박했다. 법원행정처는 외교부 입장 반영의 대가로 외교부에 ‘법관 재외공관 파견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법관쯤이나 되어서,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으려는 큰일을 꾸미면서도, 본인들 외국 나갈 자리를 만드는 것에 집착했다. 사법농단의 맨얼굴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고초를 당하고 있다”는 부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억울한 재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공정하고 중립적이어야 할 절차를 사유화한 것에 대한 책임이 고초라면, 왜 이렇게 판결이 늦게 나오냐며 ‘공정한 재판’만을 기다리다가 돌아가신 강제동원 소송 원고들이 당한 것의 이름은 무엇인가?

 

 

이제훈의 남북관계 조망

 

1991년 7월 노태우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테니스를 치고 있다. 6개월 뒤인 1992년 1월6일 부시 대통령은 서울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한테 ‘북한이 핵무기 개발 포기에 대한 구체적 증거를 보일 때까지 한국은 북한과 협상을 너무 서두르지 말라’고 “조용히 경고”했다고 당시 외무장관 이상옥은 증언했다.

 

‘북핵 문제’란 비대칭 탈냉전기 북한의 위험천만한 생존전략 탓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소련이 사라진 동북아에서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며 ‘잠재적 지역 패권국’ 중국을 견제하는 데 필요한 ‘북한 악마화’와 더불어 남북관계를 제어할 목적으로 동북아 국제정치에 깊이 심어놓은 ‘트로이 목마’이기도 하다.

 

1991년 9월27일 오후 8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텔레비전에 나와 “세계 각지에 배치된 미국의 지상·해상 발사 전술핵무기를 모두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소련의 상응 조처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지 않은, 패권국 미국의 전례 없는 일방적 행동 계획이었다. 놀란 건 저녁 식탁을 물리고 나른한 행복감에 빠져들던 미국 사람들만이 아니다.

 

북한은 바로 다음날 “미국이 실지로 남조선에서 핵무기를 철수하게 되면 우리의 핵담보협정(국제원자력기구 핵안전조처협정) 체결의 길도 열리게 될 것”이라는 외교부 대변인 성명으로 화답했다.

 

부시의 이 발표는 1990년대 초 비대칭 탈냉전 시기 남-북, 한-미, 북-미 양자관계에 연쇄 반응을 일으켜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남·북·미 삼각관계’를 성립·작동시킨 역사적 원점 구실을 했다.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몰고 온다는 카오스 이론의 비유처럼.

 

발표의 직접적 원인은 한달 전 소련 보수파의 쿠데타다. 그들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겸 공산당 서기장을 흑해 연안 크림반도 포로스 별장에 50시간 동안 감금했다. ‘사흘 천하’로 막을 내린 이 쿠데타는 휘청이던 소련을 연방 해체의 낭떠러지로 떠민 결정타가 됐다. 미국의 전략가들은 소련의 핵무기가 ‘불량국가’ 등에 흘러드는 악몽의 현실화를 막으려 ‘전술핵무기 일방 철수’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부시 회견 여드레 뒤인 10월5일 고르바초프는 “전술핵무기 폐기를 포함한 광범위한 감축 조처를 취하겠다”고 화답했다.

 

30년 전 일을 새삼스레 꺼낸 까닭은, 부시가 ‘세계 전술핵무기 철수 발표’와 별도로 지시한 한반도 관련 ‘극비 명령’ 때문이다. 한국에 있는 40개 남짓한 포병용 더블유(W)-33 포탄과 함정용 전술핵무기는 물론, 군산 공군기지의 에프(F)-16기에 장착한 60여기의 비(B)-61 핵탄두를 제거·철수시키라는 명령이다. 공군의 전술핵무기는 당시 주한미군 핵전력의 알짬인데다, 애초 부시가 철수 지시를 한 ‘지상·해상 발사 전술핵무기’가 아니다. ‘북의 우호적 반응’을 이끌어내려는 유인책이었다.

 

북은 부시 회견 얼마 뒤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4차 남북고위급회담(1991년 10월22~25일)에서 ‘긴급제안’이라며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에 관한 선언(초안)’을 내놨다. 북쪽 단장 연형묵 정무원 총리는 1·2차 회담에서 “미군과 그의 핵무기 철수”를 언급했으나 정작 3차 회담 때 내놓은 ‘북남 불가침과 화해협력에 관한 선언(초안)’에선 주한미군 핵무기 철수를 요구하지 않은 터다. 1~3차 회담에서 핵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지 않던 북의 이 ‘긴급제안’은 이례적이었다. “남조선 배치 핵무기가 완전 철수되면 핵사찰에 응하겠다”는 연형묵의 4차 회담 발언은, 부시의 ‘전술핵무기 철수’ 발표를 기정사실화하려는 회담 전략 전환이라 할 수 있다.

 

남쪽 수석대표인 정원식 총리는 4차 회담에서 “귀측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고 모든 핵물질과 시설에 대한 국제기구의 사찰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짚었다. 하지만 정원식의 A4용지 11쪽 분량 기조연설문에서 ‘북한 핵문제’ 관련 언급은 세 문장 아홉 줄이 전부다. 핵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언급한 정도에 그친 셈이다. 남이 ‘한반도 비핵화 등에 관한 공동선언(초안)’을 ‘긴급제안’으로 제시해 북의 핵문제 회담 의제화 전략에 적극 호응한 시점은 1991년 12월10일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열린 5차 회담 첫날 전체회의였다.

 

남은 4차 회담 이전엔 ‘핵문제’의 의제화를 애써 피했다. 1~3차 회담 수석대표인 강영훈 총리의 기조연설문엔 “핵”이라는 단어가 아예 없다. 남이 1~3차 회담에서 ‘핵문제’의 의제화를 회피한 데에는, 긴급현안이 아니라는 판단과 함께 이를 전면에 내세우면 남북관계 진전이 어려우리라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고 이상옥 당시 외무장관은 회고록(<전환기의 한국외교>, 420쪽)에 적었다.

 

노태우 정부가 4차 회담부터 ‘핵문제’를 의제로 다룬 데에는 “요청”이라는 외교적 수사로 포장된 미국의 집요한 압박이 있었다. 폴 울포위츠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1991년 5월10~12일), 로널드 리먼 국무부 군축처장(1991년 6월4~6일) 등이 잇따라 방한해 ‘재처리시설 포기 확약’ 등 핵문제를 남북고위급회담 의제로 다루라고 압박한 것이다.

 

부시의 ‘전술핵무기 철수’ 명령과 4~5차 고위급회담 때 남북의 회담 전략 전환을 동력으로 “한반도 비핵화”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그 뒤 30년째 한반도의 평화와 8천만 시민·인민의 삶을 인질로 잡을 ‘핵문제’가 그렇게 한반도의 자궁에 똬리를 틀었다.

 

남북은 5차 고위급회담 직후 ‘핵문제 협의 대표접촉’(1991년 12월26·28·31일, 판문점)을 벌였고, 12월31일 3차 접촉 때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유엔 동시·분리 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에 이어 ‘비핵화 공동선언’으로 1991년을 희망차게 마무리한 것이다.

 

그런데 남북은 ‘비핵화 공동선언’에서 국제비확산체제가 요구하는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자기 포박’을 확약했다.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1항)에 더해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3항)고 선언한 것이다. 핵재처리·우라늄농축시설은 “핵에너지의 평화적 목적 이용”(2항)에도 필요한 것이라, ‘핵무기의 비확산에 관한 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안전조처협정’도 금지하지 않은 시설이다. 당시 남북이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중대 난관을 초래할 재처리·농축 시설 포기를 공개 선언한 게 ‘비핵평화’라는 숭고한 가치 때문은 아니다. ‘미국의 압력’이 가장 큰 요인이고, 이를 뿌리치지 못한 노태우 정부, ‘워싱턴(북-미 관계 정상화)으로 가는 길’을 어떻게든 뚫으려 한 북의 양보가 두루 뒤엉킨 전략적 선택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우리가 재처리시설을 갖겠다고 하면 한-미 동맹 관계가 깨지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었다고 회고록(<노태우 회고록> 하권, 371쪽)에 적어, 재처리·농축 시설 포기가 미국의 압력 때문임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앞서 노 대통령이 1991년 7월2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한테 밝힌 ‘한국 단독 비핵화 선언 구상’엔 재처리·농축 시설 포기가 없었다. 다만 1991년 5월 방한한 울포위츠 국방차관이 ‘남북이 핵재처리시설을 포기하는 방안을 남북대화에서 협의해달라’고 하는 등 미국의 압박은 집요했다. 요컨대 미국의 한반도 비확산 정책의 표적은 ‘북핵’을 넘어 ‘남북한 모두의 핵능력 제거’였다.

 

미국은 ‘핵’을 빌미로 남북관계에 깊이 개입했다. “상호 상대방이 선정하는 자기측 지역의 군사 및 민간 시설에 대한 동시사찰 실시”를 5차 고위급회담 남쪽 수석대표 기조연설문에 담게 하더니, 부시는 1992년 1월6일 청와대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무기 개발 포기에 대한 구체적 증거를 보일 때까지 한국은 북한과 협상을 너무 서두르지 말라’고 노 대통령한테 “조용히 경고”했다고 당시 외무장관 이상옥은 증언했다(<전환기의 한국외교>, 494~495쪽). 1992년 2월23일 더글러스 팔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서울에서 김종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압박해 ‘북한의 핵문제가 해결돼야만 본격적인 남북 간의 경제협력을 추진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노태우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핵문제 해결 병행 추진 기조’를 꺾고 ‘핵 포기 먼저 전략’을 관철한 것이다.

 

이렇듯 ‘북핵 문제’란 비대칭 탈냉전기 북한의 위험천만한 생존전략 탓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소련이 사라진 동북아에서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며 ‘잠재적 지역 패권국’ 중국을 견제하는 데 필요한 ‘북한 악마화’와 더불어 남북관계를 제어할 목적으로 동북아 국제정치에 깊이 심어놓은 ‘트로이 목마’이기도 하다.

 

이게 ‘편견에 찬 반미적 분석’이라 여겨지는 이들은, 부시 행정부가 1990년 4월 발표한 ‘동아시아 전략구상’(EASI Ⅰ)을 되짚어보는 게 좋겠다. 이 구상의 “동북아에서 미국의 전략적 이익 8개항”엔 “역내 헤게모니 국가의 출현을 막을 힘의 균형 유지” “미국의 정치경제적 접근성 유지” “핵확산 억지” 따위가 목표로 적시돼 있는데, 이후 순서대로 △중국 견제 △북-미·북-일 관계 정상화 거부·차단 △‘1차 북핵위기’로 현실화했다. 이제훈 한겨레신문 통일외교팀 기자

▲이제훈 기자는= 1993년 한겨레에 들어와 1998년부터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사업의 시작과 중단, 다섯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여섯 차례의 북한 핵시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3세 승계’,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 사상 첫 남·북·미 정상 회동 등을 현장에서 취재·보도해왔다. 반전·반핵·평화의 한반도와 남북 8천만 시민·인민의 평화로운 일상을 꿈꾼다.

 

[목회칼럼] 하나님의 나라

● 칼럼 2021. 6. 13. 14:24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기쁨과 소망] 하나님의 나라 

송민호 목사/ 토론토 영락교회 담임

 

하나님은 우리의 반석이 되시고 구원이 됩니다.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반석이시기에 우리가 두려움 없이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 수 있습니다. 죄악이 많은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아직도 인종 차별이 심각한 세상입니다. 1년 전 오늘 미네소타주에서는 백인 경찰관이 한 흑인 용의자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릎으로 목을 눌러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죠지 플로이드라는 이름은 정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인종차별을 거부하는 운동이 세계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의 희생으로 인해 이제는 인종차별이 없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공정한 세상뿐만 아니라 투명한 세상이 되길 기다립니다. 지난 15개월 동안 우리의 삶을 흔들어놓은 코로나 19의 기원설이 또다시 수면으로 올라왔습니다. 미국 정부가 중요한 증거를 입수했다는 기사가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렸습니다. 우한바이러스의 첫 타격이 2019년 12월이었다는 주장을 의심케 하는 내용인데, 이미 한 달 전에 (2019년 11월)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직원 3명이 코로나 19와 유사한 증세로 치료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우한 연구소에서 새어 나간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혹을 줍니다. 사실이 그렇다고 해도 중국 정부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온전히 다스리시는 나라를 갈망합니다. 공의와 진실이 넘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시작되었고, 다시 심판주로 오실 때 완성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곳에 있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을 인정하면 바로 그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 나라의 실체는 온전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바로 이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을 삶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증인 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라고 말하지 못한다며,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17:21).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증인된 삶을 사시길 축원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