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

 

여성 11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사퇴 압박을 받아온 앤드루 쿠오모(63) 미국 뉴욕 주지사가 14일 물러난다고 10일 밝혔다. 30년 동안 중앙 무대에서 탄탄대로를 걸으며, 1년 전만 해도 ‘코로나19 위기의 영웅’으로 대통령 선거 출마까지 거론됐던 인사가 몰락했다.

 

쿠오모는 1983년부터 1994년까지 뉴욕 주지사를 3번 연임한 마리오 쿠오모의 아들이다. 마리오는 민주당에서 대표적인 이탈리아계 정치인으로, 대선 출마까지 거론되던 거물이다. 뉴욕 포덤대와 뉴욕주립대 법과대학원을 졸업한 쿠오모는 아버지의 최측근 참모로 정계에 발을 내디뎠다.

 

아버지는 그에게 후광이자 그늘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출세길을 열었으나, 그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평생 몸부림쳤다. ‘철인 왕’이라고 불린 지적인 면모의 아버지와는 달리, 쿠오모는 야심만만하고 무자비한 ‘거리의 투사’로 부상했다. 정적들에 대해서는 보복도 서슴지 않았고, 사석에서도 직설적인 언행으로 상대를 불편하게 했다. 그가 공격적이고 냉혹한 면모를 보인 것은 자신의 독립성을 과시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 것이라고 <뉴욕 타임스> 등 미국 언론은 분석했다.

 

쿠오모는 아버지가 대선 출마 의사를 접은 뒤인 1993년 빌 클린턴 행정부에 들어가 자신의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주택도시개발부 차관보로 시작해 1997년에는 장관을 지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최대의 정치적 자산을 얻었다. 1990년 미국의 최대 정치 명문가인 케네디 가문의 딸 케리 케네디와 결혼을 한 것이다. 존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으로 법무장관을 지내고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다가 암살당한 로버트 케네디의 딸이다. 쿠오모는 이 결혼으로 민주당 내 최대 정치 기린아로 부상했으나, 15년 뒤 이혼했다.

 

2002년에는 뉴욕주로 돌아와 주지사 출마를 시도했으나,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패했다. 하지만 2006년 뉴욕주 검찰총장 선거에서 승리해, 뉴욕 주지사로 가는 길을 닦았다. 그는 주검찰총장 때 전임 주정부와 주지사들의 부정부패, 월가 금융가에 대한 수사로 정치적 입지를 쌓았다. 그의 공격적인 수사로 2010년 데이비드 패터슨 당시 주지사가 재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2011년, 뉴욕 주지사 선거에서 대승한 그는 민주당의 진보적 의제들을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그는 동성결혼 합법화, 시간당 최저임금 15달러로 인상, 직장 성폭력에서 여성 보호 정책 등을 입법화했다. 노동자, 소수자, 젠더 문제에서 뉴욕주를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곳의 하나로 만드는 데 힘쓴 그가 성추행 문제로 사임한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정치적 위상은 지난해 코로나19 위기로 급상승했다. 그는 파워포인트를 사용한 일일 브리핑으로 뉴욕주의 코로나19 대처 현황을 주민들에게 상세히 전달했고, 미국민을 사로잡았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코로나19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며 손을 놓고 있는 상황과 대비되면서 유력 대선후보로 급부상했다.

 

쿠오모의 동생은 <시엔엔>(CNN)에서 주요 앵커로 활약하는 크리스 쿠오모다. 크리스는 당시 형과의 인터뷰에서 “당신의 업무 수행에서 얻는 이런 칭찬들 때문에 대통령에 출마할 생각이 있는 것이냐?”라고 질문했다. 그는 지난해 상반기, 주지사로 87%의 지지를 얻었다. 쿠오모를 도널드 트럼프에 맞설 민주당 후보로 내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쿠오모는 비록 대선에 출마하지 않았지만, 주지사 4선 출마는 거의 확실했다. 그러나 뉴욕 주검찰이 그의 자화자찬 자서전을 수사하면서 정치적 추락이 시작됐다. 쿠오모가 코로나19 위기에 대처하는 지도력에 대해 쓴 책이 “주정부 직원 동원” 혐의를 받았다. 쿠오모가 주검찰총장 시절 주지사를 향해 칼날을 겨눈 것이 자신에게도 똑같이 돌아온 것이다. 더욱이 뉴욕주가 노인요양시설의 코로나19 사망자 수를 축소·은폐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쿠오모는 사면초가에 몰렸다.

 

하지만 결정타는 성폭력이었다. 사실 쿠오모의 마초적인 언행은 지속적으로 입길에 올랐다. 급기야 지난 2월 전직 보좌관 등이 그의 성추행 행위를 폭로했다. 뉴욕주 검찰은 지난 3일 쿠오모가 뉴욕 주정부의 전·현직 직원 11명을 성추행했다고 발표했다. 러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은 지난 3일 수사보고서에서 쿠오모 주지사가 여성들에게 원치 않는 키스 등 신체 접촉을 하고 부적절한 발언들을 했다고 자세히 기술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등은 “쿠오모 주지사가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고, 뉴욕주 의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쿠오모 주지사 탄핵소추 움직임이 일었다.

 

쿠오모 주지사는 이날 사퇴를 발표하면서도, 자신의 행위가 성추행으로 간주돼선 안 되고 이번 조사가 “정치적 동기를 가진 조사”라는 기존 태도를 유지했다. 피해 직원들에게는 “너무 가깝게 생각했다. 불쾌한 마음이 들게 했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영국 일간 <가디언>은 쿠오모의 몰락을 “인과응보”라고 평했다. 젊은 여성들이 의원으로 등장하는 정치 환경의 변화에서도 여전히 마초적인 정치력만을 행사하면서,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언행을 보인 것에 대한 인과응보라는 지적이다.

 

쿠오모 주지사가 물러나면 남은 임기는 캐시 호컬(62) 부지사가 이어받는다. 그는 뉴욕주 첫 여성 주지사가 된다. 정의길 기자,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필리핀인 등, 항공편 끊겨 귀국 못해

두달째 귀국 못하면서 돈도 떨어져

미군은 “소속 업체 문제” 무관심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통역사로 일하던 현지인이 미군의 도움을 받아 미국에 입국하고 있다. 하지만, 현지 민간 업체에서 군 지원 업무를 하던 아시아 출신 노동자 상당수는 갑작스런 철수로 귀국 항공편을 구하지 못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떠돌고 있다. 새크라멘토/로이터 연합뉴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서둘러 철수하면서, 현지에서 미군 지원 업무를 맡던 민간 보안업체 소속 아시아 노동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을 구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던 미군이 8월말까지 철수를 완료하기로 한 가운데 수송이나 건설 사업, 기지 유지 관리 등을 맡던 민간 업체 소속 노동자 수천명의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에이피>(AP) 통신이 1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미군이 아프간에 20년 가량 주둔하면서, 수송이나 건설 사업부터 청소, 요리 등 다양한 지원 업무를 위해 많은 민간 업체들이 현지 미군 기지에 함께 머물렀다. 아프가니스탄 재건 특별감사관 자료를 보면, 현지 주둔 비전투 민간 인력은 지난 4월 6399명이었고, 미군이 본격 철수에 나선 6월 초에는 2491명으로 줄었다.

 

미군이 카불 인근 바그람 공군 기지 등에서 사전 예고도 없이 철수하는 바람에, 민간 업체 소속 노동자들도 갑자기 현지를 떠났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필리핀, 방글라데시, 네팔, 스리랑카 출신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이들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무사히 도착했으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항공편을 구하지 못해 현지 호텔에 묶여 있다. 코로나19 방역 조처에 따라 항공기 운항이 중단된 탓이다. 현지에 묶여 있는 노동자 대부분은 지난 6월15일 두바이에 도착한 이들이라고 <에이피>는 전했다.

 

통신은 “건설·토목 회사 플루어 소속으로 아프간 현지에서 일하던 필리핀 노동자 10여명이 두바이의 한 호텔에 머물고 있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며 “하지만 고향에 아직 돌아가지 못한 노동자들이 모두 몇명인지는 정확히 확인할 길이 없다”고 전했다. 노동자들은 두바이 체류가 거의 두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수중에 돈이 떨어지기 시작해, 아무 조처도 취하지 못한 채 마냥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식사는 소속 기업에서 제공하지만, 텔레비전을 보거나 가족들과 화상 통화를 하는 것 외에 별다른 일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미군은 이들 노동자 문제가 소속 업체 소관이라고만 밝혔으며, 민간 업체들도 상황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아시아 담당자 존 시프턴은 “모두가 철수 미군과 아프간 통역사, 현지 주민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는 떠돌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해 ‘소속 기업과 자국 정부가 귀국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만 말할지 모른다”고 비판했다. 신기섭 기자

 

한국기관 근무 아프간인 수백명 "탈레반이 쫓고 있다. 도와달라"

병원·직업훈련원 등서 일한 현지인 안전 위협 고조

가족 등 200여명 한국 정부에 이주 지원 요청

 

 괴한의 폭탄 공격으로 다친 아프간인= 2017년 괴한의 폭탄 공격으로 크게 다친 아프가니스탄인 미르 지아우딘 세디키의 형. 세디키는 2010∼2015년 바그람 한국 병원에서 통역으로 근무했으며 최근 탈레반이 세력을 넓히면서 가족 안전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 미르 지아우딘 세디키 제공]

 

"탈레반이 우리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한국을 위해 충실하게 일했습니다. 우리가 안전한 곳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미군 철수와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의 세력 확대로 치안이 무너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과거 한국 관련 기관에서 근무했던 현지인들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점령지를 넓혀가는 탈레반이 이들의 소재지를 파악하기 위해 추적하는 상황 속에 이미 일부 관련 현지인은 총격 테러 등을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아프간에서 병원과 직업훈련원 등을 운영하는 지방재건팀(PRT) 공식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미군 기지인 바그람 기지에 자리 잡았던 한국 병원은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약 23만명의 환자를 진료하기도 했다.

 

한국 직업훈련원도 '아프간의 매사추세츠공대(MIT)'로 불리며 400여명의 인력을 배출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한국 기관에서 근무했던 통역, 의료진, 사무직 직원 등 현지인이 아프간 정부와 외국을 위해 일했다는 이유로 목숨이 위험해진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바그람한국병원에 근무했던 이들의 수만 45명가량 된다.

 

2010∼2015년 바그람한국병원에서 통역으로 근무했던 미르 지아우딘 세디키(40)는 연합뉴스와 이메일, 문자메시지 등을 통한 인터뷰에서 이같은 현지 상황을 구체적으로 전했다.

 

세디키에 따르면 한국 기관 근무자와 그 가족 중 한국 정부로부터 현지 탈출과 이주 지원을 바라는 이들의 수는 현재까지 파악된 인원만 200여명이다.

 

카불 이외 지방 거주자까지 포함하면 이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현재 자국에 협력했다가 탈레반의 보복 위험에 처한 현지 주민을 구제하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동원 중인데 이들 한국 기관 근무자들은 한국에 구원의 손길을 기대하는 상황인 것이다.

 

아내와 4자녀를 둔 세디키도 가족을 데리고 아프간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이주하기 위해 동료와 함께 최근 한국 정부에 관련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수도 카불에서 20㎞가량 떨어진 마을에 사는 세디키는 "밤에 탈레반이 마을로 들어와 정부나 외국 기관에서 근무했던 이들을 찾고 있다"며 "잘 모르는 이들이 마을 주민에게 내 집의 주소를 묻기도 했다"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세디키는 "탈레반은 2주 전에도 정부 기관에서 근무했던 마을 주민 6명을 끌고 가 신체를 잔인하게 훼손하면서 살해했다"며 "지난달에는 한국 병원 동료였던 수나툴라가 바그람의 개인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괴한의 총격으로 중상을 입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7년 11월에는 가족 차에 설치된 폭탄이 터지면서 나와 함께 있던 형이 크게 다쳤고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도 했다"며 "형은 이 사고로 거동이 불편해 탈출 시도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12살 때 아버지가 탈레반에 의해 살해된 후 가족 생계를 책임져왔다.

 

바그람한국병원에서 근무했던 의사 아브 파힘도 연합뉴스에 "탈레반이 곳곳에서 출현하고 있어 매우 걱정되는 상황이며 가족은 외출이나 여행도 두려워하고 있다"며 "우리의 삶과 안전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형편"이라고 우려했다.

 

세디키는 현지 치안이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매일 수천명이 국경을 넘어 탈출하고 있다"며 "지난 5월 미군 등 외국군 철수가 시작된 후 이런 상황은 더 악화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 외교 당국은 "아프간 현지인으로부터 비자 발급, 이주 등과 관련한 공식 서류 신청은 아직 받지 못한 상태"라며 "당국도 아프간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 중"이라고 밝혔다.

 

탈레반은 2001년 9·11테러 직후 오사마 빈 라덴을 넘기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가 미군의 침공을 받고 정권을 잃은 후 정부군 등과 장기전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미군 철수가 본격화되자 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여러 주도(州都) 등 주요 도시를 잇달아 장악하고 있다.

대법원 배상 판결 확정했는데도 뒤집는 하급심 판결 잇따라

 

김명수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이 2018년 10월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들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하기 위해 자리에 앉고 있다.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또다시 패소했다.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 판결을 확정했는데도, 이를 뒤집는 하급심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법리적으로 기존 대법원 전합 판결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보긴 힘들지만, 결과적으로 또다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5단독 박성인 부장판사는 11일 강제노역 피해자 ㄱ씨 등 5명이 미쓰비시 마테리아루(옛 미쓰비시광업)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11일 밝혔다. 피해자들은 일제 강점기, 일본에 강제연행된 뒤 강제노역을 당해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입었다며 미쓰비시를 상대로 2017년 2월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날 재판에서는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 기산점을 언제부터 봐야 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민법상 손해배상청구권은 불법행위의 손해나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안에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가 소멸된다. 이에 ㄱ씨 등 피해자들은 2018년 대법원 전합 확정판결을 기준으로 소멸시효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일본 기업 쪽은 2012년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을 기준 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맞섰다. 즉, ㄱ씨 등은 2017년에 소송을 냈기 때문에 2012년 대법원 판결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소멸시효가 완성되고, 2018년을 기준으로 할 경우 손해배상청구권이 인정되는 것이다.

 

2012년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당시 대법관)는 일본제철 강제노역 피해자 이춘식씨 등 4명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소멸하지 않았다”며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승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한국 법원이 처음으로 강제노역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한 것이다.

 

이어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2013년 7월 대법원 판결 취지대로 “일본 기업은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대법원은 5년 넘게 재상고심 심리와 선고를 미뤘고, 그 사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이 사건과 관련해 재판을 늦추거나 대법원 판결을 뒤집는 방안을 박근혜 정부와 논의하는 등 ‘재판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에 대법원은 뒤늦게 2018년 7월에서야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고, 그해 10월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사건 쟁점이었던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했는지’를 두고 전합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관 7대6의 의견이었다.

 

재판부는 이날 일본 기업 쪽 주장을 받아들였다.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되지는 않았지만, 이를 인정한 2012년 대법원 첫 판결이 나오고 5년이 지나서야 ㄱ씨 등이 소송을 냈다는 이유에서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이 또다시 나온 것이다.

 

재판부는 “대법원이 2012년 판결을 통해 강제노역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고, 이는 파기환송심과 재상고심을 거쳐 2018년 10월 확정됐다”며 “ㄱ씨 등의 손해배상청구권은 2018년 대법원 전합 판결이 아닌, 2012년 대법원 판결로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ㄱ씨 등은 민법상 소멸시효 기간인 3년을 넘긴 2017년에 소송을 냈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밝혔다.

 

앞서 같은 법원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양호)는 지난 6월7일 강제노역 피해자 송아무개씨 등 85명이 일본제철 주식회사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각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한 개인청구권은 한·일청구권 협정에 의해 소멸하거나 포기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며 대법원 전합 판결을 정면으로 뒤집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손현수 기자

이재용, 13일 가석방... 이후 보호관찰 받는다

● COREA 2021. 8. 12. 02:00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오는 13일 가석방된 뒤 보호관찰을 받게 된다.

 

법무부는 “가석방 예정자인 이재용 부회장은 원칙에 따라 보호관찰을 받게 됐다”고 11일 밝혔다. 수원보호관찰심사위원회는 이날 이 부회장 등 8·15 가석방 예정자의 보호관찰을 결정했다. ‘보호관찰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가석방자는 원칙적으로 보호관찰을 받는다. 다만 보호관찰심사위원회가 보호관찰이 필요없다고 결정하는 가석방자의 경우, 예외적으로 보호관찰을 받지 않게 된다. 통상 보호관찰을 받지 않는 자는 중환자나 고령자, 추방예정인 외국인 등이다.

 

보호관찰을 받게 된 이재용 부회장은 국외출장 등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 보호관찰 준수사항에 따라 보호관찰 대상자는 주거를 이전하거나 1개월 이상 국내외 여행을 할 때는 미리 보호관찰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보호관찰 대상자는 주거지에 상주하고, 생업에 종사해야 하며 범죄로 이어지기 쉬운 나쁜 습관을 버리고, 선행을 하며 범죄를 저지를 염려가 있는 사람들과 교제하거나 어울리지 말아야 한다.

 

한편,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날 이 부회장 가석방을 둘러싼 특혜 의혹과 관련해 “장관으로서 상당히 유감”이라는 뜻을 밝혔다. 박 장관은 “가석방 제도는 전 세계적으로 진보적인 교정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특혜냐 아니냐 여부는 지난 7월부터 올해 연말, 내년 초까지 복역률 60% 이상 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가석방 심사기회를 지속적으로 부여하느냐, 그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석방률을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13일 오전 10시 서울구치소에서 가석방 될 예정이다. 전광준 기자

 

이재용 같은 가석방 1%도 안 돼…이래도 특혜가 아닐까?

 

국정농단 사건으로 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을 승인한 법무부 결정을 두고 ‘특혜’라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최근 10년 동안 이 부회장처럼 형기의 70%를 채우지 못하고 가석방된 이들은 전체 가석방 허가자의 1%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부회장처럼 다른 사건으로 재판받는 수감자 가운데 가석방된 인원도 전체의 1%가 안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가석방 결정이 ‘이 부회장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해명에도 특혜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0일 법무부의 ‘2021 교정통계연보’를 보면, 최근 10년 동안 이 부회장처럼 형기의 70%를 채우지 못하고 가석방된 이들은 275명으로 전체 가석방 인원(7만553명)의 0.4%에 불과했다. 형기의 60%를 채우지 못한 이들은 54명으로 0.08%였다. 이 가운데 대다수는 종교적 신념 등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였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28일, 형기의 60%를 채웠다. 지난해로 범위를 축소해도 70%를 채우지 못하고 가석방된 이들은 전체의 0.6%뿐이었다.

 

특히, 이 부회장처럼 다른 사건으로 별도의 재판을 받는 이들 가운데 가석방된 인원도 극히 드물었다. 이 부회장은 현재 ‘불법승계 의혹’ 및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로 별도의 재판을 받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해 수감 중인 사건 외에 다른 사건으로 수사나 재판을 받던 중 가석방된 인원은 67명이었다. 이는 지난해 전체 가석방 인원(7876명)의 0.85%다. 이 부회장처럼 형기의 70%를 채우지 못하고, 동시에 다른 사건으로 별도의 재판을 받는 이들 가운데 가석방된 인원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 비율은 훨씬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가석방이 이 부회장 ‘맞춤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가석방 자문 경험이 많은 김정범 변호사는 “이번 8·15 가석방 때 형기 79%를 산 초범도 가석방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통상 수감된 사건 외에 추가로 수사나 재판을 받는 사건이 도로교통법 위반 등으로 벌금형이 예상되는 경우에나 가석방이 가능한 편인데, 이 부회장처럼 ‘불법승계’ 의혹 등 남은 재판에서 중형이 나올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가석방된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반면, 박범계 장관은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이어갔다. 박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번 가석방은) 이재용씨만을 위한 가석방이 아니다”라며 “가석방 요건에 맞춰 절차대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 교정 시설의 수용률은 110%로 세계적으로 이렇게 수용률이 높은 나라가 거의 없다”며 “단계적으로 100%에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이재용씨 복역률이 60%인 점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니, 적어도 복역률 60% 이상의 수용자에 대해선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가석방 심사 기회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13일 오전 10시 서울구치소에서 가석방된다. 하지만 곧바로 경영 일선으로 복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5년간 취업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2월 법무부는 이 부회장에게 취업제한을 통보한 바 있다. 경영 복귀를 위해선 법무부에 취업승인 신청을 해야 하지만 박범계 장관은 이날 기자들에게 “(취업승인 제한 해제는) 고려한 바 없다”고 말했다. 가석방된 이 부회장이 취업승인을 요청하고, 법무부가 이를 허용하면 사실상 법무부가 이 부회장 범죄 혐의에 완전한 면죄부를 주는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전광준 기자

 

경제 내세워 재벌총수 특혜…복역률 기준 완화 ‘이재용 맞춤’

대통령 고유 권한인 사면 부담

재계 가석방 요구 응답한 타협책

임기말 국정 동력 회복 포석도

 

법무부가 국정농단 사건으로 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9일 가석방하기로 결정한 것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경제상황과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말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전통적 지지층의 반발에도 이 부회장의 사면 및 가석방을 요구해온 재계의 요구에 응답함으로써, 투자와 고용을 끌어내 임기 말 국정동력을 회복하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통령 고유 권한인 특별사면과 달리, 가석방은 법무부 장관의 결정 사항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이 덜하다는 점도 이번 결정의 배경으로 꼽힌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이날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결정하며 밝힌 표면적인 이유는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국가적 경제상황과 글로벌 경제환경 악화’로 요약된다. 박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가적 경제상황과 글로벌 경제환경에 대한 고려 차원에서 이 부회장이 (가석방) 대상에 포함됐다”며 “사회의 감정과 수용생활 태도 등 다양한 요인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혜 시비를 의식한 듯 “복역률 60% 이상의 수용자들에 대해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가석방 심사의 기회를 부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진보 진영의 반발에도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결정한 것을 두고 ‘결코 불리할 게 없다는 정치·경제적 셈법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기 말 경제 활성화가 중요한 상황에서 기업들의 협조가 절실한데다, 세계적으로 반도체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한국의 대표적 기업인 삼성전자의 국가경쟁력 등을 정부가 고려하지 않을 순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장기화로 국민들의 피로감이 커진 상황에서, 정부가 이 부회장 가석방을 통해 경제 살리기에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도 전략적 판단의 요소가 됐을 것”이라며 “지금보다 경제가 더 나빠지면 여권은 대선에서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사면에 견줘 정치적 부담이 덜하다는 점도 가석방 이유로 거론된다. 사면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어서 대통령이 책임을 피할 수 없지만, 가석방은 법무부 장관 소관인 만큼 정치적 책임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과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 요구는 대통령 입장에서 부담이 있지만, 가석방은 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이 부회장의 가석방 결정을 앞두고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아온 것도 이런 분석에 무게를 더한다.

 

이날 가석방심사위원회와 법무부 장관의 결정으로 이 부회장이 오는 13일 가석방되지만, 그가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5년간 취업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경영 복귀를 하기 위해선 법무부 특정경제사범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박 장관은 이날 취업 승인과 관련해 “생각해 본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가석방은 형을 면제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주지 제한 등 일정한 준수 사항이 따르고 통상 보호관찰을 받게 된다. 가석방 상황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가석방 효력은 정지되고 다시 형이 집행될 수 있어, 이 부회장의 남은 재판 결과가 또 다른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손현수 전광준 기자

 

“이재용 가석방은 재벌 특혜”… 시민사회 반발

참여연대·민변 등 비판 논평 “사법제도 공정성 해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9일 오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브리핑룸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 여부가 결정된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심사위)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가석방하기로 한 법무부의 결정에 시민사회계가 강하게 반발했다. 시민단체들은 이 부회장이 ‘불법승계 의혹’ 등 다른 혐의로도 재판을 받고 있음에도 가석방된 것은 ‘이례적인 특혜’라고 비판했다.

 

9일 참여연대는 이 부회장 가석방 결정이 발표된 직후 논평을 내고 “이 부회장 가석방은 재벌총수에 대한 특혜 결정이며 사법정의에 대한 사망선고”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국정농단의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가석방이 된다면 향후 앞으로 어떤 재벌총수가 법을 지킬 것이며, 어떤 중범죄자에게 가석방을 불허할 수 있겠는가”라며 “이번 가석방은 우리 사회에 퍼진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인식을 다시 공고히 하는 결과”라고 우려했다.

 

이어 참여연대는 기업인 사면에 대한 정치권의 ‘말바꾸기’를 꼬집었다. 참여연대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재벌 총수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은 약속 뒤집기라는 비판여론이 일어나자 ‘국민 공감대’를 운운하며 공을 법무부 장관에게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태를 보였다”며 “문 대통령은 이 부회장 가석방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 대해서는 “관련 자료를 모두 투명하게 공개하고 특혜성 결정이 내려진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부회장이 다른 혐의로 재판을 받는 가운데 가석방이 결정된 것에 대해 ‘이례적인 특혜’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은 현재 삼성그룹 지배권 승계 의혹에 대한 형사재판 1심이 진행 중이다. 사실상 하나의 사건 중 일부에 해당하는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가석방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바, 명백한 특혜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재용은 일반 범죄자라면 결코 받을 수 없는 엄청난 사법적 특혜를 이미 받은 바 있었다. 배임·횡령·뇌물공여 등으로 중대경제범죄를 저질렀음에도, 2년 6월의 징역형 특혜를 받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삼성 재벌총수만을 위한 가석방 특혜’를 이번에 또 받은 셈이다”고 비판했다.

 

이번 가석방으로 가석방 제도의 원래 취지가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중대 범죄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가석방이 이루어진 선례가 거의 없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가석방심사위원회가 검찰의 부동의 의견과 선례를 무시하면서까지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을 허가한 것은 재벌에 대한 특혜”라고 지적했다. 이어 “가석방은 수형자가 참회하면서 성실히 형벌을 수행하는 경우 사회에 조기에 복귀시켜 올바른 시민으로서 살도록 하는 제도”라며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재벌이라는 이유로 쉽게 가석방이 된다면, 이는 우리 사법제도의 공정성을 중대하게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노동계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민주노총은 “국정농단의 몸통이자 주범에 대한 단죄를 거부한 것이며 이 나라가 재벌공화국, 삼성공화국임을 증명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정부가) 입 아프게 외치며 강조하던 정의·공정·공평은 자본의 정의·공정·공평이었다”라며 “이 부회장의 가석방은 촛불 정신의 후퇴이자 훼손”이라고 비판했다. 천호성 기자

 

재계, 이재용 부회장 가석방 ‘환영’…“사면 아니라 아쉬워”

 

국내 주요 경제단체들은 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 결정에 아쉬움과 함께 환영의 뜻을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우태희 상근부회장 명의로 낸 성명에서 “기업의 변화와 결정 속도가 중요해진 상황에서 (정부가) 이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 결정으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허용해준 점을 환영한다”면서도 “이 부회장이 사면이 아닌 가석방 방식으로 기업 경영에 복귀하게 된 점은 아쉽다. 향후 해외 파트너와의 미팅 및 글로벌 생산현장 방문 등 경영 활동 관련 규제를 관계 부처가 유연하게 적용해주기를 바란다”고 취업제한 통보를 받은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를 정부가 지원할 것을 요구했다. 상의 쪽은 최태원 회장이 아닌 부회장 명의로 입장을 낸 이유에 대해선 “특별한 배경은 없다”고만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같은 날 성명을 내어 “세계는 반도체 패권전쟁 중이며,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위기 극복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 질서 구축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이러한 엄중한 상황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법무부의 결정은 우리나라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나아가 새로운 경제 질서의 중심에 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삼성전자는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재계 내에선 이러한 분위기를 비판적으로 보는 의견도 나온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주요 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개인 의견을 전제로 “아버지(고 이건희 회장) 때 제대로 된 처벌이 집행됐다면, 이 부회장에 대한 정부의 가석방 결정은 좀더 수월했을 것”이라며 “삼성 입장에선 (정치적 특혜 논란이 있는) 이번 가석방으로 더 궁지에 몰리게 됐다. 바로 경영에 복귀하기보다는 원래의 형 기간을 마칠 때까지 조용히 자숙하며 지내는 게 적절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고 이건희 회장은 비자금 사건으로 중형을 선고받았으나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원포인트 특별사면을 받고 수감조차 되지 않았다. 선담은 김경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