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학의 출금과 정의의 형평

● 칼럼 2021. 2. 3. 05:0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박용현 논설위원

1.

지난 2004년 독일에서는 경찰이 유괴범에게 아이를 숨겨놓은 장소를 말하지 않으면 고문을 하겠다고 위협한 사건이 격렬한 사회적 논쟁을 일으켰다. 사흘째 어딘가에 감금돼 있는 아이를 구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면 정당한 조처였다는 주장과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고문 위협은 어떤 상황에서도 허용돼선 안된다는 주장이 부딪쳤다. 여론은 경찰관 쪽에 우호적이었고, 법원은 유죄를 인정했지만 벌금형에 집행유예라는 ‘상징적 처벌’을 내렸다.

내가 저 논쟁에 참여했다면 경찰관의 반대 편에 섰을 것이다. 수사기관이 추구하는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적법절차를 지켜야 하고, 특히 고문이나 사찰, 자의적인 구금 등은 그로 인한 인권 침해의 심각성에 비춰볼 때 절대적이고 양보불가능한 금지 영역이기 때문이다. 실체적 정의와 절차적 정의의 충돌은 이런 사례에선 쉽게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어떤가.

열살 소녀를 납치한 용의자를 체포한 경찰은 변호사가 입회하지 않은 상태에서 취조를 진행해 소녀의 주검이 묻힌 장소를 알아냈다. 그 즈음 경찰 수색팀이 주검이 묻힌 장소에 접근하고 있었는데, 범인의 자백 직후 경찰은 수색을 중단하고 범인을 앞장세워 주검을 찾아냈다. 그런데 이후 범인은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침해당했고 그 결과로 발견한 소녀의 주검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며 석방해달라고 주장했다.(미국에서는 1966년 ‘미란다 판결’ 이후 변호사의 조력을 받지 않는 조사는 원칙적으로 위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에야 검찰 조사 때 변호사가 입회할 권리가 인정됐고 변호사가 피의자와 떨어진 뒷자리가 아니라 바로 옆에 앉을 수 있게 된 것은 2017년부터다. 아직도 변호사는 조사가 끝난 뒤에야 또는 검사의 승인을 얻어야 진술할 수 있는 등 변호사 조력권의 실질적 보장은 여전히 미흡하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는 고문을 받지 않을 권리만큼 절대적이지는 않더라도 중요한 적법절차다. 이를 위반했으니 범인은 무죄 방면을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정의 관념을 자극하는 찜찜함을 지울 수 없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 사건(닉스 대 윌리엄스·1984년)에서 만장일치로 경찰의 손을 들어줬다. 경찰의 적법절차 위반(변호사 없는 취조)이 없었더라도 합법적인 다른 방법(수색팀의 수색)을 통해 같은 결과(주검의 발견)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므로, 이 경우에까지 적법절차 위반의 책임을 물어 증거 사용을 금지함으로써 실체적 진실을 덮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연방대법원은 ‘불가피한 발견 원칙’(inevitable discovery rule)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법원칙을 세움으로써 실체적 정의와 절차적 정의의 균형과 조화를 꾀했다.

우리 대법원도 “실체적 진실 규명을 통한 정당한 형벌권의 실현도 형사소송 절차를 통해 달성하려는 중요한 목표이자 이념이므로, 형식적으로 보아 정해진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라는 이유만을 내세워 획일적으로 그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것 역시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형사소송에 관한 절차 조항을 마련한 취지에 맞는다고 볼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즉 “절차 조항의 취지와 그 위반의 내용 및 정도, 구체적인 위반 경위와 회피 가능성, 절차 조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권리 또는 법익의 성질과 침해 정도, 수사기관의 인식과 의도 등을 전체적·종합적으로 살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대법원 2007도3061 전원합의체 판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019년 3월22일 밤 해외 도피를 시도하고 긴급 출국금지가 이뤄진 시간대별 상황.

2.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금지 절차 위반을 두고 검찰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는 것을 보며 위의 사례와 법원칙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해외 도피를 방치하는 게 정의에 부합하는가’, ‘봐주기 수사를 한 검사들은 놔둔 채 본말전도 아닌가’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다. 출국금지 과정에 절차 위반이 있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출국금지 자체의 정당성에 대한 평가는 출국금지의 필요성, 절차 위반의 심각성 정도, 그로 인한 기본권 침해의 정도 등 여러 요인을 살필 필요가 있다.

우선 김 전 차관의 출국금지 필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고위 검찰 공직자가 사람의 성을 뇌물로 주고받으며 인권을 유린한 범죄의 심각성으로 보나, 검찰이 두차례나 봐주기 수사로 국가 형벌권을 무력화시킨 전비로 보나 해외 도피를 허용할 경우 형사사법 정의에 끼칠 해악은 너무나 컸다.

출국금지라는 조처의 법적 성격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 하는 체포·구금·압수수색 등 형사소송법상 절차와 달리, 출국금지는 법무부 장관이 “범죄 수사를 위해 출국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하면 내릴 수 있는 행정조처다. 세금·벌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도 출국을 금지시킬 수 있다. 해외로 출국할 자유 또한 보장돼야 할 기본권이지만 체포·구금·압수수색 등으로 침해되는 기본권과는 차이가 있다는 입법적 판단이 깔려있는 셈이다. 그래도 김 전 차관이 외국에 사는 가족을 만날 목적이나 사업상 필요로 출국하다 제지당했다면 권리 침해에 더 무게를 실을 수 있을 것이다. 하다 못해 해외여행 목적이었다면 여행의 자유가 침해됐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심야에 위장까지 해가며 공항에 나타난 김 전 차관이 출국금지로 침해당한 법익은 ‘해외 도피의 자유’ 외에는 생각하기 어렵다.

문제가 되고 있는 출국금지는 밤 11시가 넘어 김 전 차관의 출국 시도가 알려지는 등 긴박한 상황에서 이뤄졌다. 검사가 출국금지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사건번호나 내부 결재 등 필요한 절차를 위반했다는 게 논란의 주된 이유다. 그러나 출입국관리법상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법무부 장관이 직접 출국을 금지키는 방법도 있었다. 앞서 살펴본 ‘불가피한 발견 원칙’에 비춰보면 어떤가. 절차 위반(요건을 갖추지 못한 검사의 출국금지 요청)이 없었더라도 합법적인 다른 방법(장관의 출국금지 조처)을 통해 같은 결과(김 전 차관의 출국금지)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 대법원도 출국금지 처분의 위법성 판단과 관련해 “출국금지 요청이 있는 경우에도 법무부 장관은 이에 구속되지 않고 출국금지의 요건이 갖추어졌는지를 따져서 처분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며 “따라서 출국금지 요청이 요건을 구비하지 못 하였다는 사유만으로 출국금지 처분이 당연히 위법하게 되는 것은 아니고, 출국금지 처분의 요건이 (실제로) 갖추어졌는지 여부에 따라 그 적법 여부가 가려져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대법원 2012두18363 판결)

2019년 3월22일 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해외 도피 시도를 보도한 사진.

3.

거듭 말하지만 김 전 차관 출국금지 과정에서 위법이 확인되면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물으면 된다. 다만 이 사안을 어떤 수위와 방식으로 다룰지는 제반 상황을 “전체적·종합적으로 살펴” 결정할 필요가 있다. 압수수색 등의 과정에서 형사소송법 절차를 어긴 검사에 대해 검찰이 수사팀을 꾸려 대대적인 수사에 나선 사례를 들어보지 못했다. 김학의 전 차관 출국금지 사안만 유독 심각하게 절차 위반에 대한 ‘응징의 시범 케이스’로 삼는 건 아무리 봐도 형평성과 공정성의 원칙에 반한다.

검찰이 김 전 차관 출국금지 과정의 문제점을 따져보겠다면, 출국금지를 주도한 검사와 법무부 관계자만 겨냥할 게 아니다. 해당 검사가 대검찰청에 출국금지 요청을 해달라고 했지만 “소명이 더 필요하다”며 거부당했다고 한다. 과거에 검찰이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덮어버린 사건을 다시 수사하는 상황에서 어떤 소명이 더 필요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법원은 이후 김 전 차관 재판에서 성접대 혐의의 유죄가 인정되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대검이 보인 소극적인 태도가 적절했는지, 당시 대검 지휘부는 어떤 입장이었으며 어떻게 관여했는지도 밝힐 필요가 있다. 또 당시 법무부·검찰 내부자가 김 전 차관에게 출국금지 관련 상황을 알려줘 도피 시도를 도왔다는 의혹도 함께 규명해야 한다. 당시 법무부가 이런 의혹에 대해 수사 의뢰를 했으나, 검찰은 공익법무관 2명이 호기심에서 정보를 조회했을 뿐 김 전 차관 쪽에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다며 수사를 종결한 바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김 전 차관을 두차례나 봐준 검사들과 그를 출국금지시킨 검사를 대하는 검찰의 이중성에 있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의 얼굴이 드러난 동영상을 보고도 덮어버린 수사 검사들과 그 윗선에 대해 형사처벌은커녕 징계 등 최소한의 책임 묻기도 시도한 적이 없다. 김 전 차관 출국금지의 적법성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다면 앞선 두 차례의 무혐의 처분에 대해서도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일이 병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본말전도’라는 의문을 풀어줄 도리가 없다. 상식의 잣대로 보나 법적 잣대로 보나 ‘수사 농단’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진다.

이런 논란과 의구심을 해소하는 방법은 객관적인 공수처가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것이다. 검사의 직무상 위법 혐의를 다루는 이 사건은 공수처 관할일 뿐만 아니라, 다른 고위공직자 사건과 달리 검사 관련 사건은 공수처장의 이첩 요구와 무관하게 무조건 공수처에 넘기도록 돼 있다. 물론 공수처는 아직 검사와 수사관 선발이 이뤄지지 않아 수사를 곧바로 진행할 수 없다는 사정이 있다. 하지만 법 규정대로라면 검찰이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것은 위법인 상태다. 이 또한 절차 규정을 현실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사안이다.

박용현 논설위원

변이 확산 우려 높아져

 

지난 1월14일 브라질 북부 아마조나스주 주도인 마나우스의 한 병원에 구급차들이 대기하고 있는 가운데 주민들이 입원한 친지들의 상황을 전해 듣기 위해 입구에 몰려 있다. 브라질이 전국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비상인 가운데 아마조나스주는 사실상 공공의료 체계 붕괴 상황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마나우스 로이터/연합뉴스

 

브라질에서 세계 최초로 두 가지 종류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변이에 동시 감염된 환자들이 확인돼 코로나19 변이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일 로이터통신, 폭스뉴스 등에 따르면 브라질 남부 피발레 대학 연구진 등이 지난해 11월 말 코로나19에 걸린 30대 환자 두 명을 연구한 결과 이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과 브라질에서 시작된 변이 2종에 동시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내용은 지난 29일 의학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 '메드아카이브'(medRxiv)에게재됐으며, 아직 동료 학자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상태다. 만약 논문이 사실로 인정받으면 변이 코로나19 2종에 동시 감염된 세계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

첫 번째 환자는 마른기침을, 두 번째 환자는 기침, 인후통, 두통 등 증상을 호소했으며, 모두 증세가 심하지 않아 입원 치료 없이 완치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한 환자의 신체에 두 가지 변이체가 공존할 경우 또 다른 변이의 생성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리우그란데두술주(州) 피발레 대학의 페르난도 스필키 바이러스학 연구원은 "이런 동시 감염은 변이체의 조합을 유도해,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새로운 변이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이러스의 또 다른 진화과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번 사례는 브라질에서 바이러스가 크게 유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면서 "확산 수준이 심각할 때만 동시 감염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영국, 남아공 등에서 발견된 코로나19 변이는 기존 바이러스보다 전염력이더욱 강하고 백신에 대한 저항력이 클 것으로 분석됐다. 연합뉴스

 

의회 난입 폭로들에게 생명 위협 받은 경험 설명하며
“‘잊고 넘어가자고 하는 건 성폭력범들이 쓰는 수법

 

미국 민주당 소속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이 1일 지난달 6일의 의사당 난입 사건을 설명하며 자신이 성적 학대를 당한 적 있다고 밝혔다. AP 연합뉴스

 

미국 ‘진보 정치의 상징’이 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민주당 하원의원이 1일 온라인으로 진행한 개인 방송에서 성폭력 생존자임을 밝혔다고 <CNN> 방송이 보도했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이날 밤 인스타그램을 통해 진행한 생방송에서 지난달 6일 의사당에 난입한 폭도들을 가까이에서 마주쳤고 살해당할 것 같은 위험을 느꼈다고 설명하면서 성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회 난입 사건에 대해 일부 인사들은 이제 ‘그냥 넘어가자’고 하거나 심지어 나에게 사과하라고 한다”며 “그들은 성적 학대자들과 같은 전술을 사용한다”고 비판했다. 또 “내가 성폭력 경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사람들이 ‘이제 넘어가자. 별일 아니다. 지난 일을 잊자’고 말하고 심지어 나에게 사과를 요구하기 때문”이라며 “이는 성폭력 등을 저지르는 자들이 쓰는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이 과거에 어떤 일을 당했는지를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극우 세력의 의사당 난입 사건과 관련해 “가장 충격적인 것은 어떤 남성이 내 사무실로 들어와 문을 발로 차며 ‘그녀 어디 있어?’라고 했을 때”라며 “당시 나는 살해당하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이 사람이 폭도인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의회 경찰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당시 두려움에 떨며 사무실로 들어가 화장실에 숨었다”며 “숨어 있으면서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처럼 느꼈다”고 털어놨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대학을 졸업한 뒤 뉴욕에서 바텐더로 일하다가 2016년 대선 때 버니 샌더스 선거운동에 참여하면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 하원의원 선거 때 뉴욕시에서 출마해 당선됐으며, 지난해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신기섭 기자

 

이란, 나포 한달 만에 한국 유조선 케미호 선원 19명 석방

● WORLD 2021. 2. 3. 04:3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한국-이란, 물밑 접촉 극적 합의... 선장은 계속 억류, 석방 조건 미공개

 

지난달 4일 걸프해역에서 한국 유조선 한국케미호를 이란 혁명수비대가 쫓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란과 한국이 지난달 초 이란에 나포된 한국인 선원 등 19명 석방에 합의했다. 한국인 선장과 선박은 잔류한다.

<로이터> 통신은 2일 밤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교부 대변인이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페르시아만에서 환경오염을 일으킨 혐의로 억류된 한국 선원들이 인도주의적 조처에 따라 출국 허가를 받았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한국 외교부도 “이날 밤 오후 6시50분부터 약 30분간 이란 외교부 차관과 전화 통화를 실시했다”며 “이란과 선원 석방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외교부가 낸 자료를 보면, 이란 정부는 한국케미호의 선장을 제외한 나머지 선원들에 대한 억류를 우선 해제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케미호에는 총 20명의 선장·선원이 탔는데, 한국인 5명, 미얀마인 11명, 베트남인 2명, 인도네시아인 2명이다. 이 가운데 한국인 선장은 석방 대상에서 제외됐다. 선원들이 언제 석방돼 귀국하는지, 이란과 한국 정부가 어떤 합의를 했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이란과 수차례 만나 선원 석방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왔다.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은 “잔류 예정인 선장과 선박 또한 조속히 억류에서 해제될 수 있도록 이란 정부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촉구했다. 세예드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부 차관은 사법 절차가 진행 중인 동안 선장에 대해 인도적 처우와 충분한 영사 조력을 보장할 것임을 약속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지난달 4일 걸프해역에서 한국 유조선 한국케미호(1만7426t급)가 해양환경법을 위반했다며 선박과 선원을 나포했다. 이후 이란은 한국 정부가 이란의 원유 수출대금 70억달러(약 7조7천억원)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선박 나포에 다른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외교부는 이란 동결자금과 관련해서도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속도감 있게 추진해나가고, 미국 측과 협의가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대미 협의를 투명하게 진행해나갈 것임을 이란 측에 설명했다”고 밝혔다. 최현준 김지은 기자


이란, 동결자금 미해결에도 한국선원 석방…미 새정부 의식도

동결자금 문제 환기 목적은 달성 · 장기화는 '역효과' 판단한듯

 

이란 정부가 2일 억류 중이던 한국 화학 운반선 '한국케미'호의 선원 대다수를 석방한다고 발표한 것은 충격요법을 통해 '동결자금 문제 환기'라는 소기의 성과는 달성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어차피 미국의 협조 없이는 동결자금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상황에서 사태 장기화는 오히려 역효과만 낼 수 있다는 생각도 깔려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선박과 선원을 억류한 이유로 대외적으로는 해상오염에 따른 사법절차를 들고 있지만, 속내는 한국 시중은행에 동결된 이란중앙은행 명의의 자금 70억 달러(약 7조6천억 원)의 해제에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이란 측에서 선박 나포와 동결자금 문제는 무관하다면서도 '동결자금 문제에 진전이 있으면 석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의 메시지가 계속 흘러나오면서 '동결자금 해결없이 석방은 어려운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됐다.

결국 지난달 4일 억류 이후 한 달 가까이 지나면서 사태 장기화에 대한 걱정마저 나오던 와중에 전격적으로 석방 결정이 이뤄진 셈이다.

이번 조치는 동결자금 해제 문제에 있어 눈에 띄는 진전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국과 이란은 동결자금으로 의료 장비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0) 백신 등 의약품을 구매하는 방안, 유엔 분담금을 내는 방안 등을 협의해왔지만, 아직 최종 결론에 이르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아직 해결이 된 것은 없지만 이란 측이 우리의 조속한 동결자금 해결 노력을 믿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도 이날 오후 세이에드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교부 차관과 통화하면서 거듭 동결자금 문제의 해결을 약속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양 차관은 동결된 원화자금 문제 해결을 통해 서로가 어려울 때 돕는 전통적 우호관계를 회복해 나가자는데 공감했다.

최 차관은 동결자금과 관련,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가면서 미국측과 협의가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대미 협의를 투명하게 진행해 나갈 것임을 이란측에 설명했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이란 측에서 미국과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에서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어차피 동결자금 해제를 위해선 미국 측의 협조가 필요한데 한국인을 계속 억류하고 있어봤자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이라고 여겼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란 측은 '해상오염'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증거는 제시하지 않은 채 장기간 억류를 한 데 대해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다.

이란은 한국 정부의 요구에도 지금까지 어떠한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