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 코로나19 항체치료제 식약처,심사 착수

● COREA 2020. 12. 30. 11:0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전세계적으로 3번째 승인 신청40일 이내 결론

 

서울 강남구 진원생명과학 연구소에서 연구원이 코로나19 백신 개발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셀트리온의 코로나19 항체치료제 렉키로나주에 대한 품목 허가 신청이 접수돼, 심사에 착수했다고 29일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 릴리와 리제네론에 이어 3번째로 허가 당국에 사용 승인 신청한 사례다. 셀트리온은 미국과 유럽에서도 긴급사용승인을 얻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렉키로나주는 코로나19 완치자의 혈액에 존재하는 중화항체를 선별해서 만든 항체치료제다. 경증부터 중등증 수준의 코로나19 환자에 약 90분간 정맥 투여하는 주사제로 개발됐다.

식약처는 기존 허가 심사 처리 기간인 180일 이상을 단축해 40일 이내에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식약처로부터 2상과 3상을 동시에 승인받은 다국가 임상시험 중 2상을 완료한 상태다. 3상 시험은 경증과 중등증의 코로나19 환자 720명을 대상으로 진행되며, 이번 허가 신청과는 관계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식약처는 설명했다.

한편 이날 양동교 질병관리청 의료안전예방국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모더나 최고경영자 간 영상 통화 내용과 관련해, “내년 1월 중 계약 체결을 목표로 실무협상을 진행해 왔으나, 이번 영상 통화를 계기로 계약 시기를 더 당길 수 있는 합의가 이루어진 것 같다당초 실무 협의 차원에서는 상반기 공급이 어려운 형편이었는데, 2분기에 공급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모더나사의 위탁생산과 관련해서는, 아직 구체화된 내용은 없다. 다만 모더나의 기술력과 국내 기업의 생산능력을 고려하면 서로에게 이득이 될 것이어서 협력방안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보연 기자

81회차 접종한 지 21일만91세 고령에도 별다른 이상 없어

 

영국에서 8일 세계 최초로 일반인 대상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가운데, 이날 아침 631세계 1코로나19 일반 접종자로 기록된 영국의 마거릿 키넌이 잉글랜드 코번트리 대학 병원에서 간호사 메이 파슨스에게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가 공동개발한 백신을 맞고 있다. 키넌은 지금까지는 거의 혼자 지냈는데 새해에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만날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가장 좋은 생일 선물을 미리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코번트리/AP 연합뉴스

           

전 세계 최초로 화이자-바이오엔테크가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맞았던 영국 여성이 2회차 접종을 연합뉴스완료했다.

29BBC 방송에 따르면 코번트리 대학병원과 워릭셔 국민보건서비스(NHS) 트러스트는 이날 마거릿 키넌(91) 씨가 화이자 백신을 추가로 접종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81회차 백신을 맞은 지 21일 만이다.

화이자 백신은 1회차 접종 이후 면역력이 어느 정도 형성되지만 3주 간격을 두고 2회차 접종을 해야 95%의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병원의 앤디 하디 교수는 "마거릿 키넌 씨가 오늘 대학병원으로 돌아와 안전하게 2회차 접종을 받아 기쁘다"고 말했다.

하디 교수는 "우리 직원들이 그동안 마거릿의 가족들과 연락해왔다"면서 "그녀는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간 뒤 잘 회복해왔다"고 덧붙였다.

영국 정부는 지난 2일 세계 최초로 화이자-바이오엔테크의 코로나19 백신 사용을 승인한 뒤 8일부터 접종을 개시했다.

키넌씨는 8일 오전 631분 코번트리 대학병원에서 백신을 맞아 '세계 최초 접종자' 기록을 갖게 됐다.

그녀는 북아일랜드 에니스킬렌 출신으로 코번트리에서 60여년을 살았다.

키넌씨는 백신 접종 순간의 느낌에 대해 "정말 좋았다""나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백신 접종 다음 주 자신이 91세 생일을 맞는 것과 관련해 "내가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생일선물을 앞당겨 받았다. 한 해 대부분을 혼자서 보내다가 드디어 새해에는 가족 및 친구들과 보내는 것을 고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 25일 기준 화이자 백신은 미국, 영국 등 8개국에서 긴급사용 승인을 받았고,유럽연합과 스위스에서 조건부 허가를 받았다. BBC는 키넌씨에 이어 두 번째로 백신을 접종한 워릭셔 출신의 윌리엄 셰익스피어(81) 씨의 2회차 접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족벌신문 조선·동아 100년…욕망은 펜보다 강하다

● COREA 2020. 12. 30. 10:5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뉴스타파 제작 다큐 영화 족벌-두 신문 이야기

 

영화 <족벌-두 신문 이야기>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언론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스스로 권력이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언론은 날이 잘 드는 양날의 칼과 같아서 그것이 정의를 위해서 쓰일 때에는 그야말로 역사를 진전하게 하는 훌륭한 힘이지만, 그것이 잘못 쓰일 때, 그것이 권력에 결탁했을 때, 그 폐해는 엄청날 수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이 육성으로 들린다. 화면에 잡힌 곳은 서울 광화문 한복판. 그곳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사옥이 있다. 자신들을 각각 일등신문’ ‘민족정론지라고 일컫는 두 신문은 올해 나란히 창간 100돌을 맞았다. 두 신문은 지난 100년을 일제에 항거하고 독재에 저항한 역사였다고 자랑하고 나섰다. 정말일까? ‘뉴스타파 함께센터가 제작해 31일 주문형비디오(VOD)로 선공개하는 다큐 영화 <족벌두 신문 이야기>는 이를 하나하나 추적한다.

영화 <족벌-두 신문 이야기> 포스터. 엣나인필름 제공

어떻게 조선일보가 과거 일제 앞잡이를 했다고 모독하고 매도하고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1988년 국회 언론청문회에 출석한 방우영 당시 조선일보 사장이 소리친다. 하지만 영화는 곧바로 1앞잡이에서 이들의 행태를 조목조목 짚는다. 193711일 조선일보는 일왕 부부 사진을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동아일보도 이에 질세라 이듬해 11일 일왕 부부 사진을 1면에 실었다. 이때부터 두 신문은 일본의 주요 명절마다 일왕 부부를 신문 1면에 배치했다. 일본 신문보다 더한 충성 경쟁이었다.

더 나아가 조선일보는 194011일치 제호 위에 일장기를 내걸었다. 흑백신문에 일장기만 붉은색으로 컬러 인쇄했다. 조선일보는 반년 동안 11차례나 일제 주요 기념일에 일장기를 올렸다. 두 신문은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테러, 흉악 범죄 등으로 매도하고, 조선인들이 제국주의 침략 전쟁에 지원하도록 부추겼다. 두 신문은 1940년 폐간한 것을 두고 민족의 존립을 위해 끝까지 싸우다가 폐간됐다고 주장하지만, 영화는 조선총독부와 두 신문이 거액의 보상금 거래를 통해 폐간을 결정했음을 밝혀낸다. 두 신문은 해방 이후 반성과 사죄 없이 슬그머니 복간했다.

영화 <족벌-두 신문 이야기>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2밤의 대통령에선 두 신문이 새로운 권력 편에 서서 몸집을 불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신문은 박정희의 5·16 쿠데타를 혁명이라 칭송하며 군부 독재정권을 옹호했다. 3선 개헌, 유신 쿠데타 등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때마다 지지와 찬양을 일삼았다. 참다못한 동아일보 기자들이 1974년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고 언론자유수호운동을 벌였지만, 사주는 이에 가담한 100여명을 해고했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의 시작이었다. 조선일보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해고된 기자 30여명이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결성했다. 영화에는 신홍범 전 조선일보 기자, 정연주 전 동아일보 기자 등 당사자들이 등장해 생생하게 증언한다.

박정희가 암살당하고 전두환이 신군부로 떠오르자 두 신문은 재빨리 태세를 전환했다. 경쟁하듯 용비어천가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축구부 주장을 맡았으며, 부인이 만든 된장찌개를 즐기고, 애창곡은 김삿갓이라는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보도했다. 광주민주화운동 참여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한 건 물론이다. 신군부는 엄청난 당근을 제공했다. 이 시기 동아일보 매출은 3, 조선일보 매출은 6배나 증가했다. 2등이던 조선일보가 동아일보를 추월한 것도 이 시기다. 이때 축적한 자본을 바탕으로 거대 족벌 기업이 된 이들은 밤의 대통령을 자처하며 스스로 권력이 됐다.

영화 <족벌-두 신문 이야기>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3악의 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언론개혁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수구 언론의 저항은 완강했고, 언론개혁은 실패로 돌아갔다. 두 신문은 이제 시장 권력과 결탁해 자사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사주 집안은 혼맥으로 정계·재계·관계와 결합하고, 전국에 막대한 부동산을 갖고 있다. 독자 신뢰를 무너뜨리는 기사형 광고, 기업과 사이비 종교 단체 돈을 받고 쓴 홍보 기사 등으로 저널리즘 윤리를 무시하고 돈벌이에 나서는 현실을 폭로한다.

<족벌>은 국가정보원 간첩조작사건을 다룬 <자백>, 정부의 언론장악을 폭로한 <공범자들>,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이야기 <김복동>, 한국 핵발전의 현주소를 직시한 <월성>을 만든 뉴스타파의 다섯번째 장편 다큐 영화다. 뉴스타파의 김용진 대표와 박중석 기자가 연출을 맡았다. 상영시간이 2시간48분에 이르지만, 블랙코미디·스릴러·드라마 등 요소들이 녹아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영화 <족벌-두 신문 이야기>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김용진 감독은 두 신문의 문제를 다룬 출판물, 기사 등은 간혹 나왔지만, 더 많은 시민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 이들의 정체를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두 신문이 100년 역사를 자화자찬한 2020년은 역설적으로 이 작업을 하기에 딱 맞는 시기였다. 조선·동아 두 미디어 기업의 겉모습만 보신 분들은 영화를 꼭 보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영화는 추후 극장에서도 개봉할 예정이다.      서정민 기자

[송년시론] 세상의 민낯을 본 뒤에 무엇을 할까

● 칼럼 2020. 12. 30. 10:5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세상의 민낯을 본 뒤에 무엇을 할까

 

백낙청 교수 송년 특별기고

 

백낙청 <창작과 비평> 명예편집인, 서울대 명예교수

 

2020년은 정말 길고 힘든 한해였다. 유달리 어수선한 정국에다 전에 없던 코로나19 대유행까지 겹쳐 살림살이가 극도로 힘들어진 세월이었다. ‘세상이 왜 이래?’라는 탄식이 곳곳에서 들려오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세상은 늘 이랬고 여러 면에서 더 나쁘기도 했다. 물론 감염병 대유행이 겹친 점이 새롭지만, 이 경우도 주로 예전에 힘들었던 사람들이 더욱 힘들어진 사례가 대부분이다.

촛불이라는 화두와 표준

따라서 세상이 왜 이래?’라는 물음도 그냥 탄식에 그칠 것이 아니다. 지난해 신년칼럼에서 나는 촛불혁명을 섣불리 정의해서 찬반 어느 쪽을 고집하기보다 이를 화두 삼아 연마할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는데(졸고 촛불혁명이라는 화두’, <한겨레> <창비주간논평> 20191230), ‘이런 세상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더욱 그렇다. 민낯들의 드러남이 촛불혁명의 성과인 동시에, 드디어 민낯을 보여준 세력이 이제는 그야말로 안면몰수하고 나설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으로 가장 일찍 진면목을 드러낸 것이 거대 수구정당이었다. 그런 면에서 그들이야말로 가장 크게 변한 집단이다. 국민을 속여서 집권하는 게 목적이었고 2007년과 2012년 모두 그 목적을 너끈히 달성했던 정당이 촛불 이후 국민을 속이는 능력뿐 아니라 속이려는 성의마저 상실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최근에는 2012년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공약을 입안했던 분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돌아와 다시 국민을 속일 수 있는 정당으로 만들고자 분투하고 있지만, 그사이 국민의 의식수준이 엄청 높아진데다 당내에 솔직한 인사들이 너무 많아 자기들끼리 손발을 제대로 맞춰갈지도 의문이다. 일시적으로 여론의 지지도가 좀 오르더라도 반촛불세력의 지휘부라기보다 누구든 앞장서 정부를 흔들어대는 인사의 서포터스 역할에 머무는 형국이다.

검찰의 민낯도 온 천하에 드러났다.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음을 아는 이들은 전부터 꾸준히 늘어왔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개혁을 추진한 대통령과 정부도 잘 몰랐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윤석열 총장이 이끈 대대적 반항사태를 지켜보면서 철저한 검찰개혁이 수구정당 제압에 못지않은 시대적 과제임이 분명해졌다. 또한 검찰처럼 직접 칼을 휘두르지 않는다 뿐이지 국민을 죽이고 살리는 최종적 권한을 가진 법관들의 정체도 드디어 국민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그 동네야말로 설마가 사람 죽이는 곳인데, 사실 설마는 배부른 계층들 얘기이고 돈 없고 힘없는 백성들은 일찍부터 그곳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본고장임을 실감해왔다. 아무튼 학습의 소중한 기회를 얻었는데, 이럴 때일수록 관성적인 개탄이나 옥석을 안 가리는 과격한 공격이 아니라 촛불을 표준 삼은 냉정한 형세판단과 착실한 제도개혁으로 대응할 필요가 절실하다.

아직 덜 드러난 민낯들

경제관료들, 특히 예산권을 틀어쥔 관료들의 실상도 드러나는 중이다.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매우 양호한 축인데도 코로나 사태로 거의 사경에 처한 사람들 도와주자고 할 때마다 재정건전성을 들고나와서 한푼이라도 덜 주려고 한다. 케이(K)방역이 진단과 추적에서 모범적인 성과를 내면서도 국민들의 전폭적인 협조를 얻는 데 한계를 보이는 것도, 정부 관료가 서민을 죽게 내버려두는속마음으로 재난 극복에 임하고 있지 않나 하는 불신을 사기 때문은 아닐까.

이 밖에도 우리 사회의 숨겨졌던 진실이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언론계가 정직한 보도를 하지 않는다는 점은 이미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대중이 직접 참여한 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언론이 실상을 보도하지 않음을 체득하는 사람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계의 문제가 일부 기자들의 타락, 또는 특정 언론사들의 진실 왜곡에 국한되지 않은 현상임을 더 깊이 연마할 시점에 왔다. 이제는 저들의 왜곡보도가 단순한 사실 왜곡의 수준을 넘어 촛불정부의 실패를 위한 면밀한 작전의 일환이며 그런 점에서 제1야당보다 대형 수구언론이 반촛불세력의 전략본부로 기능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또한 소위 진보신문이 이에 효과적인 대응을 못 하는 것이 단지 물적 자원의 부족과 발행부수의 열세 탓이 아니라, 손쉬운 양비론에 안주하면서 포털의 클릭 수에 누구 못지않게 집착하는 자세에 기인하기에 이른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 배경에는 정권보다 금권이 우위에 선 지 오래된 우리 사회에서 언론인 집단 자체의 체질에 일어난 변화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미진한 공부거리를 열거하자면 한이 없으나 여당에 대한 지적을 빼놓을 수 없다. 민주당이 수구야당과 동일한 수준의 적폐세력은 아니지만 줄곧 우리 사회 기득권 구조의 일부로 기능해왔음은 엄연한 사실이며, 의석 180석을 동원할 수 있는 지금도 툭하면 말을 뒤집고 개혁에 발을 끄는 모습은 결코 대충 넘길 일이 아니다. 대통령 자신은 여전히 촛불정부의 초심을 잃지 않았다고 믿기에 나는 계속 지지를 보내는 축이지만, 촛불혁명의 개념조차 희박한 고위관료와 여권 정치인들을 제대로 통어하지 못하는 책임마저 불문에 부칠 수는 없다. 이는 정치적 개인기의 문제라기보다 촛불시민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그들의 선한 기운을 북돋우는 노력의 문제인 것이다.

근대세계와 중근고비

이런저런 민낯들을 보면서 우리가 반드시 할 일은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상식적으로 추론해도 세상이 온통 이런데자신만 온전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런 세상을 만드는 데 각자가 스스로 해온 몫이 당연히 있게 마련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한민국을 기후악당국가로 만드는 데 알게 모르게 기여한 바 있을 것이고, 노동을 멸시하고 생명을 경시하며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사회에서 무심코 살아왔다면 그것도 반성하고 참회할 대목이다. 나는 분단체제가 괴물이라면 그 속에서 살아온 우리 내부에도 괴물 하나씩은 있게 마련이라는 주장을 펴왔는데, 분단체제를 포괄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괴물스러움 또한 팬데믹 시대를 맞아 한층 뚜렷해지고 있다.

불가에서는 부처님의 교화를 받을 능력과 소질을 근기(根機)라 하고 상··하 등급으로 나누곤 한다. 물론 하근기라도 수행을 통해 중·상근으로 진급할 수 있는데 가장 위태로운 것이 오히려 중근(中根)의 고비라고 한다. 이 단계에서는 아주 몽매한 상태를 벗어나 분별력이 늘고 더러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자기 기준으로 매사를 재단함으로써 상근으로 못 가고 심지어 하근보다 못한 지경에 떨어지기 일쑤라는 것이다.

주변에서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언행을 일삼으며 혼자 똑똑한 척하는 중근병자들을 식별하기는 어렵지 않다. 반면에 자신이 동조하는 사람들 중에서 그런 부류를 인지하기는 한결 어렵다. 무엇보다 스스로 중근 고개에 걸려 있다는 생각은 중근기일수록 하지 못한다. 이런 때야말로 스승이나 목자, 도반의 일깨움이 필요한데, 우리 시대에는 어떤 스승의 존재보다 촛불혁명의 거대한 흐름을 마음에 모시고 정진하는 것이 중근 고비 넘기의 관건이다.

굳이 불교 용어를 빌려온 것은 근대세계체제야말로 중근병자를 대량생산하도록 설계된 체제라는 생각에서다. 교육의 확대와 지식산업의 발달, 특히 디지털정보기술의 극대화로 하근에 멈춘 인구가 대폭 줄어든 대신, 중근 고개를 넘어 상근기로 진급하는 공부는 공식적인 교육과정이나 교육이념에서 아예 자취를 감춘 형국이다. 아니, 자기 몸을 닦아 인간 세상을 평안하게 하는 공부, 스스로 부처가 되어 중생을 건지는 공부, 또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공부는 진지하게 하면 할수록 손해 보게 되어 있는 세상이다.

촛불혁명을 화두로 삼고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런 세상에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는 엄청난 도전이다. 2020년의 고난과 혼란 속에서도 이런 작업이 멈추지 않았다는 믿음을 갖는 것은 감염병 대유행에 대처해온 공동체의 분투, 사회운동, 시민정치, 학문, 예술, 기술 등의 수많은 현장에서 촛불을 화두로 삼은 창의적 노력들이 계속 벌어져왔음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