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파병' 긴급 논의한 NSC회의 불참, 돌연 부산행
세계자원봉사대회 참석 뒤 초량시장서 '민생 행보'
작년 '서울 무인기' 침범 때 입양견 소개 장면 연상돼
군, 드론 전력 확충…'평양 무인기'는 과연 무관한가
정부 침묵 일관 속 유엔사, 왜 엄격한 조사 착수했나
'이상한 여유' 바라보는 대한민국 국민은 '극한 직업'
비정상의 정상화인가, 정상의 비정상화인가.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안전이 걸린 외교안보 사안이 돌출할 때 마다 공개된 대통령실 홍보사진을 보면서 굳어지는 생각이다. 세간에서는 "이러다 전쟁 나는 거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고 있지만, 사진 속 대통령은 지극히 평화롭다 못해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북한이 '평양 무인기' 경고를 내놓은 뒤 22일 국가안보회의(NSC)까지 11일 간의 장면들을 돌려보자.
사진 뉴스가 보여주는 장면들
평양 무인기 침범을 공개한 북한 외무성 '중대성명'이 나온 건 지난 11일.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한 '위협의 균형'이 유지되던 호수에 돌을 던졌다. 우리 국방부는 1시간 가량 멈칫하더니 "확인해 줄 필요가 없다"라는 입장을 정했다. 14일, 러시아 외교부가 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향해 "대북 도발을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수교 34년 동안 일관되게 한반도 남쪽 국가와 정치적·외교적·경제적 관계를 중시했던 러시아가 보인 사상 초유의 파격이었다. 15일 북한이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 철도-도로의 북측 구간을 각각 60m씩 폭파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사진 뉴스'에 따르면 15일 모처럼 많은 일정을 소화했다. 제44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연세대 논술시험 문제 유출과 관련해 책임자 문책을 지시했다. 제주대 병원을 방문, 의료 대란의 현장을 점검하고, 제주에서 29번째 '민생토론회'를 열었다. 16일 하반기 재·보궐선거 투표를 했다. "바르게 살자"는 다짐도 내보였다. 17일 바르게살기운동 전국회원대회에 참석, "바르게살기운동은 바로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제대로 건설하자는 운동"이라는 어록을 남겼다. 일상의 지속이었다. 안팎에서 제기된 안보 불안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물 위의 오리처럼 물 밑에선 발질을 계속하고 있었음이 다음 날 밝혀졌다.
18일 오후, '평앙 무인기'와 한반도 안보,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의 대한국 강경 태세를 일거에 뒤덮는 대형 뉴스가 서울에서 터졌다. 북한군 특수부대의 러시아 파병을 확인했다는 국가정보원의 대대적 발표였다. 대통령은 '긴급 안보회의'를 열어 "우리나라와 국제사회에 중대한 안보위협"이라며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하겠다"고 다짐했다. 대한민국이 요동을 쳤지만, 국정원은 언론의 의혹에 침묵했다. 전형적인 신비주의 컨셉트였다. 그 덕에 대통령 탄핵 여론과 부인 김건희씨가 관련된 뉴스가 뒤로 밀렸다.
이달 초부터 북한군 시신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발견됐느니, 1만 1000명이 러시아에서 훈련을 받고 있느니, 하는 뉴스가 우크라이나 발로 나왔지만 세계는 흘려들었다. 전쟁 뒤 우크라 측이 허위, 과장 소식을 전한 게 어디 한 두 번이었나? 11월 미국 대선 전까지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지원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의 안간힘으로 간주됐다.
"심각하다, 심각하다, 심각하다"
국정원 발표와 대통령의 긴급 회의 덕에 젤렌스키의 '외로운 목소리'가 힘을 받았을까? 놀랍게도 아니었다. 미국과 나토는 침묵했다. "사실이라면 우려되지만 아직 확인이 안 됐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결국 국내에서만 시끄러웠던 셈이다. 월요인인 21일, 대통령은 제79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을 다녀 온 뒤 드디어 안보 문제를 챙기기 시작했다. 안이 아니라, 밖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통화를 한 뒤 방한 데이비드 라미 영국 외교장관을 접견했다. 최근 한반도 안보 상황과 북한군 파병과 러·북 협력 정보를 공유했다, 고 한다. 뤼터 총장에겐 국정원 발표내용을 새삼 건넸다. 정보당국간 협력 사안을 굳이 대통령이 전달해주는 세심한 배려를 보였다. 대통령은 "북한군 파병이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면서 심각한 사안임을 되풀이 강조했다.
이날 외교부가 초치한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는 정부의 '북한군 즉각 철수' 요구에 "러시아와 북한의 협력은 대한민국의 안보 이익에 반하지 않으며 국제법의 틀 안에서 실현되고 있다"고 밝혔다.
22일, 마침내 긴급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회의가 열렸다. 이번에도 긴급 회의였다. 18일 '긴급 안보회의'에서 달라진 게 없었다. 국내 언론이 나흘째 춤을 춘 뒤에나 연 회의가 왜 '긴급회의'인지 알 길이 없다. 국가안보실 고위 당국자들은 실명·익명을 넘나들며 "러·북 군사협력 진전에 따라 '단계별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엄중한 경고를 던졌다.
어찌된 일인지, 나토와 미국은 그럼에도 '북한군 파병'을 확인하지 않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이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단호한 조치'를 예고한 나라가 됐다.
'평양 무인기' 반응은 사뭇 달랐다. 모처럼 미-러가 어슷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러시아가 엄중한 '대남 경고'를 한 14일 유엔군사령부는 "정전협정에 따라 이 문제를 엄격하게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사 과정에서 우리 국방부의 모호한 입장도 파헤칠 게 분명하다. 정부는 "확인 불가"를 외치지만, 유엔사 모자를 쓴 주한미군은 심각하게 보고 있음을 말한다.
심상찮은 반응의 유엔사
대통령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가 공개된 건 이즈음이다. '북 파병'이 국내외에 널리 알릴만큼 위중한 사안이라면서 이날 NSC 상임위회의에 불참했다. 부산세계자원봉사대회에 참석한 뒤 초량시장으로 달려가 상인과 악수하는 사진을 남겼다. 엄중한 안보 사안이 진행되는 시점에 대통령이 '기행'을 보인 건 처음이 아니다. 북한 무인기가 백주 대낮에 서울 상공을 침범한 작년 12월 26일 상황을 돌아보자.
북한 무인기 5대가 침범, 이중 한대가 서울 도심을 비행했다는 상황 보고 뒤 24시간 동안 군통수권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날 대통령은 수석비서관들에게 입양견(새롬이)을 선보였다. 북한 무인기 1대가 오전 10시 25분 군사분계선 이남으로 넘어왔다는 첫 보고가 전달된 즈음이었다. 대통령 경호를 위해 설정된 비행금지구역(P-73)까지 침범당했다. 그런데 NSC '긴급 회의'를 소집했어야 할 대통령이 국민 눈 앞에서 사라졌다. 김포, 인천 국제공항 민항기 이륙이 중단되고, 수도권 2600만 주민이 불안에 떠는 동안 대통령의 행적은 공개되지 않았다. 무인기를 요격하려고 긴급 출동하던 우리 군의 KA-1 경공격기 1대가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다.
더 황당한 일은 다음 날 벌어졌다. 27일 국무회의에서 드디어 나타난 대통령은 "그동안 대체 뭐한 거냐"면서 진노했다, 고 한다. 전날까지 "안보실장(김성한)을 중심으로 실시간 대응을 했다"던 대통령실도 말을 확 바꿨다. 대통령이 "우리도 몇 배의 드론을 북쪽으로 올려보내라"고 지시, 군이 전날 정찰용 무인기 2대를 올려보냈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3일 한국방송에 나와 이를 새삼 소개하며, 당시 우리가 무인기 보낸 걸 "북한이 몰랐다"는 점을 강조했다.
작년 12월 시작된 무인기 경쟁
작년 상황을 복기한 것은 멀리 보면 '평양 무인기' 사태가 이미 11개월 전 '서울 무인기' 사태에서 비롯됐다는 의혹이 짙다. 정부는 생뚱맞게 "무인기 대책부실은 전 정부 탓"이라고 우기더니 수십, 수백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드론작전사령부를 창설하고 공중 감시, 무인기 요격 자산을 확보했다. 그 끝에 대한민국이 기어코 북한과의 무인기 경쟁에서 승리한 것일까.
'평양 무인기' 사태 뒤 대통령의 행동 궤적은 1년 전의 의아함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했다. 대통령은 입양견을 소개하고, 전통시장을 둘러보는 데 국민은 왜 불안할까? 지금처럼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게 '극한 직업'이 된 적이 있었나? 대통령은 한없이 여유로운 데 국민과 언론은 숱한 의문을 품은 채 불안한 안갯 속을 헤매이고 있다. < 민들레 김진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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