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김홍일 전 방통위윈장, 이진숙 현 방통위원장. ⓒ연합
지난 17일 법원이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인터뷰’를 인용한 MBC ‘PD수첩’에 부과된 과징금 1500만 원 처분을 취소하며 2인 체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위법성을 인정했다. 법원은 “최소 3인 이상 구성원의 존재와 그 출석 기회가 부여된 바탕 위에서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동관·김홍일·이진숙 위원장의 2인 체제는 물론, 한상혁 위원장 면직 후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된 김효재 위원장 직무대행의 3인 체제 시절 김현 위원(야당 추천)이 위원회의 불법성을 주장하며 불출석한 채 김효재 대행과 이상인 부위원장만 출석해 의결한 안건들에도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지난 8월1일 윤석열 대통령과 이진숙 방통위원장의 모습. ⓒ연합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부장판사 이주영)는 지난 17일 MBC가 과징금 부과 처분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방통위를 상대로 낸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 소송 1심에서 MBC 승소 판결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지난해 11월13일 뉴스타파 ‘김만배-신학림 인터뷰’를 인용한 MBC ‘PD수첩’ <대선 D-1, 결정하셨습니까?>가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아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다며 1500만 원의 과징금 부과를 의결했다. 이후 지난 2월 김홍일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 2인으로만 구성된 방통위는 과징금 처분을 의결했다.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방통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확인한 결과 이동관·김홍일·이진숙 위원장까지 방통위는 총 140건 넘는 안건을 의결했다. 2023년 이동관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 체제에서 의결한 주요 안건들로는 김성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강규형 EBS 이사 임명(8월28일), 이동욱 KBS 이사 추천(10월11일), 신동호 EBS 이사 임명(10월18일), 김병철 방문진 이사 임명(11월29일), YTN·연합뉴스TV 최다액출자자 변경 심사 기본계획(11월16일), YTN 최다액출자자 변경승인 취지의 보류(11월29일), 방송3법 개정안 재의요구(11월30일), ㈜매일방송 재승인에 관한 건(11월30일) 등이다.
▲(왼쪽부터) 이상인 전 부위원장과 이동관 전 위원장이 방통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결하는 모습. ⓒ연합
▲(왼쪽부터) 김홍일 전 방통위원장과 이상인 전 부위원장이 국회 과방위에 출석해 이야기 나누는 모습. ⓒ연합
지난해 12월29일 취임한 김홍일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이 함께 의결한 주요 안건들로는 YTN 최다액출자자 유진기업으로 변경승인(2월7일), MBC 등 지상파방송사 재허가 세부계획(6월12일), KBS·방문진·EBS 이사 선임 계획(6월28일) 등이다.
지난 7월31일 임명된 당일 바로 출근한 이진숙 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은 KBS 이사 및 방문진 이사 후보자 선정, KBS 이사 추천 및 방문진 이사 임명 등을 강행해 졸속 심의 논란이 일었다. 이진숙 위원장은 출근 이틀 만에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직무가 정지된 상황이다.
▲(왼쪽부터) 김태규 부위원장과 이진숙 위원장이 지난 7월31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방통위에서 열린 취임식에 나란히 자리에 앉아있다. ⓒ연합
이동관·김홍일·이진숙 위원장의 2인 체제는 물론 김효재 직무대행의 3인 체제 시절 김현 위원(야당 추천)이 위원회의 불법성을 주장하며 불출석한 채 김효재 대행과 이상인 부위원장만 출석해 의결한 안건들도 살펴볼 여지가 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독일 행정절차법은 위원회는 모든 구성원이 소집되고 과반이 참석해야 의결할 수 있으며 적어도 의결권한이 있는 3인 이상의 위원이 회의에 출석해야만 정족수가 충족된다고 규정한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의 경우 5인의 위원 중 3인 이상이 출석해야만 회의가 개의된다. 재판부는 “회의체 등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 2인을 초과하는 3인 이상 구성원의 출석을 의결 성립을 위한 필수 전제요건으로 보는 것은 비교법적으로도 일반적”이라고 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디어언론위원회의 김성순 변호사는 22일 미디어오늘에 “이번 판결 취지에 있는 의사정족수 요건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김효재 직무대행 시절 3인만 재직 중인 상황에서 2인이 출석해 의결했던 안건들도 위헌성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2인 의결 안건 중에서도 방송사들은 의결 안건 중 침익적 손해에 대해 주로 위법성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방송사 재허가·재승인처럼 방송사에 큰 문제가 발생하는 사건이 아닌, 절차적 하자가 제기되고 있는 YTN 유진기업 매각이나 공영방송 이사 해임 및 선임 안건과 같은 방송사들의 이익에 문제가 있는 안건들에 대해 취소 소송이 제기될 거라는 것이다.
▲ 방송통신위원회 2인 주요 의결 현황. 그래픽=안혜나 기자, 사진=ⓒ연합
고민수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는 22일 미디어오늘에 “해임됐던 이사 개인들이나 YTN 우리사주조합이 원고가 돼 소송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한 뒤 “수많은 가처분 신청 사건에서 인용 결정을 받은 원고들이 본안에서의 승소 가능성이 높아지겠다는 기대감을 높였을 것이고, 소를 아직 제기하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동일 사유면 승소 가능성이 높아지겠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방통위는 즉각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8일 방통위는 보도자료를 내고 “위원 2인 체제와 관련해 국회의 위원 추천이 없으면 2인 체제가 강요되는데, 2인 체제를 부정하는 경우 중앙행정기관인 방통위의 기능이 마비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방심위의 심의 제재 결정도 효력 자체가 발생될 수 없다”면서 “최근 헌법재판소가 7인의 심판정족수를 강요하는 헌법재판소법 규정이 기관의 마비를 초래하므로 이를 우려해 가처분을 통해 효력을 정지시킨 바 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방통위 마비 방지를 위해 2인 체제가 불가피했다는 것.
같은 날 언론단체들은 여야가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안한 ‘방송법 범국민협의체’를 수용해 공영방송지배구조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윤창현)은 “출구는 하나뿐이다. 국회의장이 직접 나서 두 번이나 제안한 국민협의체를 집권 여당이 수용하는 것뿐이다.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를 재개하라. 각 공영방송사의 특성에 맞춘 이사회 구성 방안과 특별다수제 등 과거 정부여당 의원들이 제안했던 내용까지 총망라하여 머리를 맞대라”라고 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도 “이번 판결은 현행 방통위에 대한 사망선고다. 야당이 협력하지 않는 방통위는 아무 결정도 내릴 수 없고, 주요 기능의 마비 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불법적인 운영을 포기하고 모든 걸 원점으로 되돌려 방통위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11월29일 YTN 사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전경. 사진=미디어오늘
이동관·김홍일 위원장 체제에서 최대주주가 변경된 YTN 구성원들도 목소리를 냈다. 언론노조 YTN지부(지부장 고한석)는 “위법 2인 방통위에서 내린 가장 위법한 결정은 YTN 매각”이라며 “노조와 우리사주조합은 현재 위법적인 YTN 매각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 소송을 벌이고 있다. 방통위는 2인 체제 의결이라도 문제없다고 또 우길 테지만, 이미 행정법원이 명쾌한 결론을 내렸으니 소송의 결과는 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