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국을 방문했다가 그곳 학자로부터 난감한 얘기를 들었다. 누구보다도 친한적인 학자가 조심스럽게 “한국 사람들은 왜 자기 나라를 남에게 지켜달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 정부에 애걸하다시피 해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시기를 3년7개월이나 연장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내 나라 흠집에 맞장구칠 수는 없었지만, 남북 간 경제력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져 있고 남한이 북한에 비해 최소한 10배 이상의 국방비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에게 구차하게 변명하기도 어려웠다. 내 나라는 내가 지켜야 하며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그만큼만 도움을 요청하면 되는 것이 상식인데, 주권국가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군사주권조차 돌려주겠다고 해도 못 받겠다는데 무슨 변명을 하겠는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과 여권은 야권 단일후보인 박원순 변호사에게 ‘종북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평양시장도 아니고 서울시장이 된다는 게 정말 끔찍한 일”이라며 막말을 해댔다. 집권세력은 고질병이 도진 듯 오로지 시민운동 한길을 걸어온 그에게도 선거에 이기기 위해 터무니없는 색깔론의 패악을 행한 것이다.
국정운영세력의 행태치고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이런 일들이 왜 벌어지는 걸까? 나는 그들의 본질이 수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상식과 원칙을 존중하면서 전통을 고수하는 보수라고 주장할지 모르나, 그것은 위장에 불과하다. 반칙과 특권이 몸에 밴 기득권을 고수하고자 하는 수구일 뿐이다.
그들의 뿌리는 친일이다. 속성은 반주권적 기회주의이며 생존방식은 배타적 독식이다. 해방 후 친일파는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아래서 청산은커녕 오히려 집권세력으로 소생하였다. 그리고 장면, 박정희 시대를 넘나들며 기득권 세력으로 뿌리를 내렸다. 반민족 행위의 전력 때문에 그들에게 국가주권이나 민족이라는 말은 ‘경기’가 날 만큼 부담스러운 용어였다. 그래서 생존을 위해 대신 붙잡은 것이 반공의 끈이었으며 미국 숭배주의였다. 그들의 반공은 맹목적 반공주의로 흘러 오늘의 색깔론으로 이어졌으며 숭미는 우리 사회에 과도한 대미의존심리 구조를 고착시켰다. 수구세력이 번성할 수 있는 토양은 분단체제이며 남북대결구조였다. 그들은 정치적 반대세력을 ‘빨갱이’로 몰기를 서슴지 않으며 여러 세력 간의 공존을 거부하고 부와 권력의 독식을 추구해왔다.
수구세력은 진보진영에 ‘친북’ ‘종북’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겨 억압하려 하지만 따져보면 이것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진보가 ‘친북’ 혹은 ‘종북’이라면 북한의 세습체제가 진보적이라는 말인가? 터무니가 없다. 내가 보기에 북한의 세습정권은 북한판 수구세력이다. 그렇기에 굳이 남한에서 북한 정권과 유사성을 지닌 집단을 찾는다면 오히려 수구세력일 것이다. 그럼에도 수구세력이 진보를 북한 정권과 얽어매려는 것은 그들이 분단의 모순을 먹고 사는 비합리적 반칙 집단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친일에 뿌리를 둔 수구세력은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킨 뒤 기고만장하여 자신을 키워준 독재를 정당화하고 조선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미화한 식민지근대화론을 역사교과서에까지 넣으려 하고 있다. 특히 과거 수구세력은 자신의 뿌리인 친일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라도 식민지 시대를 정당화할 엄두를 못 냈는데, 지금의 수구는 정부·정치·언론·경제를 망라한 광범한 연대를 통해 뉴라이트라는 이념 집단을 전면에 내세워 역사교육을 흔들어대며 민족정기에 말뚝을 박으려 하고 있다. 이제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는 수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이어져서는 안 된다. 수구는 보수와 본질이 다르기 때문에 보수로 진화할 수도 없다. 이제는 수구세력을 우리 공동체의 지도적 위치에서 몰아내고 상식과 원칙이 통하고 국가주권과 남북평화가 당연한 것으로 인정되며 여러 세력 간의 공존이 실현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대한민국 제대로 세우기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할 2013년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오직 2012년 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을 통해서만 가능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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