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의 중요성 - 2

협상 해결 드물고 소송 중재는 비용 막대‥ 철저 계약 최선

지난 컬럼에서는 계약서의 의미에 대한 설명과 함께, 사전에 계약서를 치밀하게 작성하여 불필요한 분쟁을 피하고, 피치 못할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는 최대한 방어할 수 있는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당부를 드렸습니다. 이제, 이번 칼럼에서는 지난 시간에 말씀 드린대로 ‘계약 불이행 또는 조항해석의 이견에 대한 해결방법’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일 예로, 한 회사가 특정 모양으로 된 젤리(Jelly)를 생산하도록 외주를 주었는데, 제품을 납품 받은 후에 몇 일이 지나면 그 모양을 유지하지 못하고 변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외주 회사에 수차례에 걸쳐 시정을 요구했지만 같은 현상이 반복되자 결국 법적인 분쟁이 발생했습니다.

발주회사는 제품의 모양이 변형되는 것이 계약 불이행 또는 위반이라고 주장했고, 외주회사는 처음부터 발주회사로부터 제공받은 제조방법(Recipe)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법적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 취할 수 있는 해결방법으로, 가장 먼저 협상 (negotiation)이 있습니다. 말그대로 양당사자가 대화를 통해 원만한 피해보상 등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협상은 이해 당사자가 직접 하는 경우도 있고, 변호사를 동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개 법적인 분쟁에서 자기의 잘못을 어느 정도 인정하며 원만한 선에서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협상을 통해 분쟁이 해결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소송을 준비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즉 상대방의 의중과 전략을 미리 파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협상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에서 예로 든 분쟁의 경우에도 결국 협상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소송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두번째 해결방법은 소송(litigation)입니다. 소송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당사자가 상대방을 대상으로 법원에 구속력 있는 해결을 요청하는 것 입니다. 소송의 잇점은 자료 제출 (document production) 및 증인 신문 (examination for discovery) 등의 절차를 통해서 상대방으로부터 자료를 수집해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불리한 증거를 소유하고 있는 상대방을 압박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소송의 경우 법원의 일정과 상대방의 지연 전략 등으로 인해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소송과 비슷하나 전혀 다른 세 번째 방법은 중재(arbitration)입니다. 중재는 계약서상에 양당사자가 이미 모든 분쟁을 중재로 합의할 것임을 명시한 경우에 가능합니다. 소송과 달리 중재는 시작부터 양당사자가 합의를 통해 진행 절차 (timetable)를 정하기 때문에 중재의 시작과 끝이 꽤 명확하고 지연 전략을 사용할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따라서, 소송과 달리 신속하게 진행됩니다. 다만, 중재인 (arbitrator)이 판사가 아니고 해당 분야의 정통한 변호사이기 때문에 판사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편견없는 공평성은 다소 부족 할 수 있고, 중재판결에 불복하여 법원에 항소하는 방법이 있기 때문에 소송을 두번하는 것과 같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계약 불이행 또는 해석의 이견으로 인해 발생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는 이상의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절차들을 통해서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통상 손해배상, 가처분, 또는 계약 이행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협상을 제외하고, 소송이나 중재의 경우에는 그에 따른 막대한 비용과 함께 시간도 길게는 수년이 소요될 수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는 물론 일상 생활에도 적지 않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 아무리 이전에 좋은 관계였었다고 하더라도 그 관계를 쉽게 깨뜨릴 수 있는 것이 법적인 분쟁입니다. 그래서 소송을 진행하기 전에 대부분 ‘협상’을 시도하지만, 실제로 분쟁이 협상으로 마무리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당부를 드린바와 같이, 처음부터 계약서를 작성할 때 차후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잘 검토하며 작성하시어 법적인 분쟁의 발생과 그로 인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예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박영신 변호사 - Marrianne Y. Pak 법률 사무소 >
문의: 647-216-3042


북, 고위급회담 연기 이어 남쪽 취재진만 방북 불허
남쪽에 대한 불만에 ‘북-미 정상회담 집중’ 작용한 듯
정부, 6·15공동행사 계기 남북관계 재진전 궁리 중

남북관계가 난기류에 휩싸였다.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한 고위급 상호 방문을 밑돌 삼아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까지 급가속 페달을 밟아온 남북관계가 ‘노란 신호등’에 걸려 급정지한 형국이다. 짧게 잡더라도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세기의 정상회담 때까지는 남북관계가 다시 가속 페달을 밟기 어려우리라는 우려가 많다.

북쪽은 16일로 예정된 남북고위급회담을 당일 새벽 일방적으로 ‘연기’ 통보한 데 이어, 22일에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북부핵시험장 폐기 행사’를 현장 취재할 남쪽 취재진한테 끝내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 북쪽은 애초 풍계리 행사에 초청하겠다고 밝힌 한국·미국·중국·영국·러시아 5개국(12일 외무성 공보) 가운데 남쪽 취재진만 부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전문가들은 고위급회담 연기를 통보하며 밝힌 남쪽에 대한 ‘불만’ 표출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북쪽 회담 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은 16일 <조선중앙통신>(중통) 인터뷰에서 “무분별한 북침전쟁 소동과 대결 난동”을 회담 연기의 이유로 제시했다. 앞쪽은 한-미 연합 ‘맥스선더’ 훈련을, 뒤쪽은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14일 국회에서 ‘반(反) 김정은’ 강연을 한 것을 겨냥한 것이다. 리 위원장은 17일에도 <중통>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를 “무지무능한 집단”이라고 이례적으로 강도높게 비난하고는 “엄중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조선의 현 ‘정권’과 다시 마주앉는 일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19일엔 조선적십자회 중앙위 대변인이 <중통>과 인터뷰에서 2016년 4월 남쪽에 온 중국 닝보의 북한식당인 류경식당 종업원들의 송환과 ‘책임자 처벌’을 공개 요구했다. 이쯤 되면 파상 공세에 가깝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남북의 정상이 “관계 개선과 발전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 나가겠다”고 공언한 ‘4·27 판문점 선언’ 채택 직후인 만큼 정부가 역지사지하는 태도로 사려깊고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해 남북관계 사정에 밝은 여러 전문가들은 북쪽의 고위급회담 연기 통보 직후 나온 ‘통일부 대변인 성명’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북쪽의 태도가 판문점 선언의 근본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유감’을 표하고 회담에 나오라고 ‘촉구’한 게 핵심 내용인데,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의 남북 상호 공방을 연상시키는 관성적 대응이라는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역지사지의 성찰이 필요한 때에 북쪽에 책임을 떠넘기는 식의 반응이 불을 지른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정부 안에서도 ‘유감’이라는 표현을 쓸지를 두고 고민이 있었는데 우리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나름의 고충이 있었음을 내비쳤다.

최근의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정부는 22일 남쪽 취재진의 풍계리 방문 무산과 관련한 공식 반응을 따로 내지 않았다. 대신 ‘통일부 장관’ 명의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관련 정부 입장’을 통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는 점은 주목하며, 북한의 이번 조처가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고위급회담 무산 때와 달리 공방을 피하려는 태도가 눈에 띈다.

다른 한편, 북쪽의 남북관계 ‘중지’ 조처엔 남쪽에 대한 불만 표시 말고도 임박한 북-미 정상회담에 집중해야 할 내부 사정이 작용했으리라는 분석도 많다. 북-미 정상회담은 ‘김정은 체제’의 명운이 걸린 역사적 승부처인데다 남북관계의 실무 총책임자인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대미·대중 외교의 전면에도 나선 터라 남북관계에서 가속 페달을 밟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6·15 공동선언 17돌을, 멈춰선 남북관계 전진의 계기로 삼으려 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6·15 남북공동행사’를 위한 협의를 북쪽과 해야 한다”며 “6·15 공동행사를 잘 치르면 상황이 지금과 달라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한-미 외교장관 16일 전화통화
외교부 “오전 미쪽 요청으로”
고위갑회담 연기 등 의견교환
한 “판문점 선언 충실히 이행”

북쪽의 갑작스러운 16일 남북고위급회담 ‘중지’(연기) 통보에 한-미 외교장관이 전화통화를 하고 회담 연기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외교부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6일 오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요청으로 동인과 전화통화를 갖고 북한의 남북고위급회담 연기 통보문제 등 상호관심사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16일 밝혔다. 외교당국이 양자 관계에서 고위급 간 전화통화가 어느쪽의 요청으로 이뤄졌는지를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외교부는 강 장관이 북쪽의 회담 연기 통보와 관련해 폼페이오 장관에게 “우리 정부는 ‘판문점 선언’을 충실히 이행해 나가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으며, 북측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조속히 회담에 호응해 나올 것을 촉구할 예정”이라고 우리 쪽 입장을 설명했다고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에 강 장관의 설명에 사의를 표하고 “미측으로서는 금번 북측의 조치에 유의하면서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준비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언급했다.

외교부는 “(양 장관이)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바탕으로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완전한 비핵화 및 한반도 평화정착을 이룰 수 있도록 한-미 간 긴밀한 공조를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두 장관은 또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긴밀히 소통해 나가기로 했다.

강 장관은 지난 11일 미국 워싱턴에서 폼페이오 장관과 첫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연 바 있다.

<김지은 기자>


몇 년 전 미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A 씨가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와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만일 지난 날, 기독교가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기독교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성취해 갔다면 오늘 북한 땅에 사회주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실망한 것은 사회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 속에 숨어있는 무서운 ‘독선’과 ‘위선’속에 있는 ‘절대주의’라고 말했다. 나는 너보다 우월하고, 너는 나에게 복종해야 하는, 나의 원칙은 절대이고, 네 원칙은 잘못된 것이라고 보는 절대주의! 요즘 유행하는 사자성어 가운데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네가 하면 불륜이라는 말과 같은 잘못된 가치관이다. 사실 오늘 현대의 위기는 이기주의 속에 숨어있는 인간의 절대주의란 병에 있다.


하나님은 요나를 찾아와 말씀하셨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곳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라”… 이는 하나님의 이방선교의 첫 명령이었다. 그런데 요나에게 이 하나님의 명령은 납득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았다. 어째서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는 니느웨를 멸망시키지 않고 도리어 그곳에 가서 구원을 선포하게 하시는가? 라는 의심이었다. 하나님의 주권 앞에 저항을 느끼면서 결국 요나는 스페인의 남쪽 항구 다시스를 향하여 도피행각을 시작하고 만다. 하나님께 향한 요나의 저항! 요나의 도피! 우리는 여기서 요나 속에 깊숙이 깔려 있는 가장 무서운 인류 공동의 병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이기주의 속에 숨어있는 ‘절대주의’라는 교만이었다. 이스라엘만이 구원을 받아야 하고, 니느웨는 의당 멸망되어야 한다는 바로 이 이분법(二分法)! ‘나는 흥하여야 하고, 너는 망해야 한다는 자기 절대화에 있었다. 요나가 이 자기 절대화라는 병에 걸려있을 때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심령 속에 여백이 없었다. 그는 민족주의라는 미명의 위장을 쓰고 다녔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보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죄를 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내 것’과 ‘우리 것’만의 절대화와 이기주의가 있는지 깊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내 말과 행동은 옳은 것이요, 내 지식, 내 가치관, 내 것은 최고라는 교만과 독선! 또 우리 교회만 부흥해야 하고, 내 사업만 흥해야 하고, 우리 가정만 행복하면 그만이라고 하는 속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 때문에 정녕 하나님의 뜻을 보지 못하는 이 비극이 우리 속에는 없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부와 명예를 누리는 재벌들, 정치인들과 교수들, 성공했다고 자랑하는 큰 교회 목회자들 중에도 보면 정의와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실상은 ‘나’는 ‘나’를 우상으로 만들고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보시며, 정의의 잣대로 우리들을 향한 치수를 재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만의 성공! ‘나’만의 절대화! 이는 하나님도 너도 부정해 버리는 죄가 되기 때문이다. 성경을 보면 결국 요나의 교만과 절대주의가 깨어진다.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요나의 이기주의와 절대주의를 부정하셨다.

결국 요나는 큰 물고기 배속에서 3일 동안 큰 고통을 받다가 드디어 붙잡힌 바 되어 니느웨로 끌려가게 된다. 자신은 원치 않았지만 그곳에서 요나는 복음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니느웨 백성들이 죄를 회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리시고 니느웨 백성들을 심판에서 구원해 주셨다. 이 모습을 요나는 분명하게 보았다. 이는 구약에 처음으로 증언된 이방 나라의 첫 구원 사건이었다. 성경은 ‘요나’의 교만함과 부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 하나 하나를 사랑하시므로 인류 전체를 구원하시려는, 전 우주적인 뜻을 이루어가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늘 감사해야 하며, 혹시 내 속에 지나친 이기주의나 절대주의라는 교만이 있지나 않은지 말씀에 비추어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 선교와 전도 사역에 동참하여 하늘나라를 확장하는데 귀하게 사용되어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 정태환 목사 - 한인은퇴목사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