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해 6. 2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데는 ‘부패’에 대한 단호한 척결 의지가 크게 작용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전임 공정택 교육감이 인사청탁 대가로 1억46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들통나 구속된 것에 대한 심판의 측면도 있었겠지만, 곽 교육감이 법학 교수 시절 등을 통해 보여준 깨끗하고 도덕적인 이미지가 단단히 한몫을 했다. 삼성그룹 편법승계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그가 힘을 쏟은 ‘스톱 삼성’ 운동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부패 전사’를 자임했던 곽 교육감이 후보 단일화를 이룬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원을 건넨 혐의로 검찰 소환이 임박했으니 참으로 유감스럽고 잘못된 처신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이유로든 곽 교육감이 2억원을 건넨 것은 합리화되기 어려운 행위다. 돈을 전달한 방법이나 횟수, 금액 규모 등을 고려할 때 ‘선의’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박 교수의 처지가 아무리 어려웠다고 해도 후보 단일화를 한 특수관계자에게 거금을 준 것은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에서 용인되지 않는다. 단일화의 대가로 비칠 소지가 크다. 이런 상황이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이라는 말로 설명되리라 판단했다면 수도 서울의 교육수장이라는 자리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고 할 것이다. 
설령 선의를 인정한다 해도, 곽 교육감은 또다른 불법 시비에 휩싸일 수 있다. 당장 ‘2억원에 대한 증여세를 냈느냐’는 질문이 나오면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고위 공직자들이 자녀에게 수천만원을 줬다가 인사청문회에서 증여세 탈루로 곤욕을 치르는 게 현실이다. 우리 사회의 도덕적 잣대는 그만큼 엄격해졌다.
 
이번 사건으로 국민들이 반부패 교육 등에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곽 교육감 당선에 애를 쓴 진보·개혁 진영의 정치적·도덕적 상처 또한 적지 않다. 사법 처리의 관건인 대가성 여부와 관계없이 그가 교육감 자리를 지속할 수 있는 권위와 도덕성을 잃었다고 판단하는 이유다.
정치권은 물론 교육감 선거에서 그를 지지했던 시민사회단체들까지 나서서 사퇴를 요구한 것은 시민의 지지라는 근본 토대가 무너졌음을 보여준다. 곽 교육감은 스스로 물러나는 게 옳다. 이와 별개로 서울시민들이 곽 교육감 선출을 통해 표출한 교육부패 추방, 학생인권 강화, 교육복지 확대 등의 가치들이 이번 사건으로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헌법재판소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배상청구권 문제에 대해 정부가 해결 노력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확인했다. 뒤늦었지만 매우 뜻깊은 결정이다. 정부는 그간 1965년 한일협정 내용을 소극적으로 해석하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요구를 수수방관해왔으나 이번 결정을 계기로 적극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그동안 위안부 피해자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가 무자비하고 지속적으로 침해됐고, 모두 고령이라 지체할 경우 회복이 불가능한 절박성이 있음에도 정부가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은 헌법 위반”이라며 정부에 책임이 있음을 명확히 했다. 특히 이렇게 된 데는 1965년 한일협정을 맺으면서 “청구권의 내용을 명확히 하지 않고 ‘모든 청구권’이라는 포괄적 개념을 사용한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소모적인 법적 논쟁으로의 발전 가능성’이나 ‘외교관계의 불편’을 내세워 반박했으나 헌재는 “(이는)진지하게 고려돼야 할 국익이라고 보기 힘들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어린 나이에 일본군의 성노예로 당한 고통을 가슴에 새기며 힘겨운 투쟁을 벌여왔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배상,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매주 수요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여온 수요시위가 벌써 985번째다. 그 20년 동안 우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할머니 234명 가운데 생존해 있는 분은 79명으로 줄었다.
 
가해 당사자인 일본의 외면만큼이나 할머니들을 가슴 아프게 한 것은 우리 정부의 무관심이었다. 한국 정부는 이들의 고통을 해결하려는 외교적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고 피해자들에게 문제 해결을 떠넘겼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과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의 역사를 후대에 전하고자 시민사회가 건립운동을 벌이고 있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에도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헌재 결정을 계기로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해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기구 설치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또 공식적으로 일본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외교협상을 벌여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확인시키고, 공식 사죄와 배상 등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이것만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진정한 화해에 기초한 한-일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는 길이다. 


[1500자 칼럼] 철부지 수박

● 칼럼 2011. 9. 3. 18:11 Posted by SisaHan
뒷마당에서 수박을 처음 발견한 날, 나는 손끝이 떨릴 만큼 흥분되었다. 커다란 수박을 한없이 축소해놓은 것 같은 초록 알갱이를 들여다보는 순간, 모든 생명들이 함께 숨을 죽이는 듯했다. 시장에 있는 것으로만 알던 수박을, 올 봄에 그저 호기심으로 뒷마당 텃밭에 심었던 것인데 초록 결실까지 보게 된 것이다. 위로 자라던 줄기가 바닥으로 내려가 덩굴손을 내밀어 풀잎을 끌어안으며 씩씩하게 벋어갔다. 별을 닮은 노란 꽃들이 군데군데 피더니 밤톨만한 수박을 달고 있던 게 불과 열흘 전이었다. 엊그제는 주먹만해졌다며 사진까지 찍었었는데 그새 수박 알갱이가 몇 개 더 생겼다. 수박을 처음 심어봐서 그런지 사슴 뿔을 닮은 이파리를 들춰볼 때마다 대단한 비밀이라도 엿보듯 짜릿했고 그렇게 신통할 수가 없었다. 절기에 맞춰 햇볕 냄새를 품은 정직한 수박으로 자란다면 무얼 더 바랄까 싶었다.
 
언젠가 여름도 물러갈 무렵 철 지난 수박 한 통을 사왔었다. 옅은 초록색 항아리에 행서로 붓글씨를 써 내려간 듯한 모양새가 꼭 한국 수박 같았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다르던 모양과 맛이 글로벌 시대를 맞아 획일화, 동질화되는지 한국 수박과 서양 수박이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들뜬 마음에 반으로 갈라놓자 웬걸, 수박은 연분홍빛 속살과 듬성듬성 생기다 만 것 같은 하얀 씨를 드러내는 게 아닌가. 
수박을 고를 때 남편과 내가 서로 몇 번씩 번갈아 두드려보며 기분 좋은 ‘탱탱’ 소리를 듣고 장담하며 사온 것이었다. 식구수가 적은 우리에게는 부피가 큰 과일을 잘못 만날 때처럼 심란한 일도 없기 때문에 수박을 고를 때 여간 긴장하는 게 아니다. 새까만 씨에 단물이 줄줄 흐르는 빨간 속살을 기대했는데 이럴 수가. 남편과 아들은 어느새 도망치듯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일은 익다가 만 것 같은 색에서 어찌 그리 단맛이 나느냐였다. “맛만 있으면 되지 색깔이 무슨 상관이냐”고 시위하는 것 같았다. 철을 모르는 수박을 내놓으려고 사람까지 철이 없어졌는지 인위적인 단맛이 첨가되지 않고서야 그럴 수 있을까 싶었다. 
요즈음은 제철 과일이나 제철 음식이라는 명칭이 어색할 만큼 먹을 거리에 계절 구분이 없다. 아무 때나 만나게 되는 과일과 채소로 계절에 따른 단어 연상도 혼란스럽다. 냉이나 취나물로 봄을, 사과와 붉은 감으로 가을을 연상하던 일도 옛이야기가 되었다.
 
음력 날짜로 절기를 가늠하던 시절, 우리는 기다림을 통해 참는 법을 배웠다. 계절이 분명하던 때라 수박을 먹기 위해 여름을 기다려야 했고 떡국이 먹고 싶어 설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기다릴 필요 없이 즉석에서 수요와 공급이 이루어지는 물질적인 풍요로움 속에 계절의 맛을 모르는 현대인의 식생활은 삶에 뭔가 하나쯤 빠진 듯 허전하다. 여름도 덥지 않고 겨울도 맵지 않은 인위적인 생활에 인성마저 변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칼바람 부는 마당에서 빨갛게 언 손으로 김장을 담그면서도 겨울을 호령할 줄 알았고, 연탄을 들여놓고 흐뭇해하던 어머니의 표정이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온다. 요즈음엔 사철음식이 되어버린 김치나 동치미도 그렇게 겨울에나 만나던 음식이었다. 
채소나 과일은 흙과 물과 태양과 바람이 사람의 정성과 화합하여 빚은 초록의 결실이고 받은 만큼 정직한 보답을 할 줄 아는 생명체들이다. 아마 그때 만났던 수박에는 어떤 요소가 하나쯤 부족했으리라. 눈 앞의 편함과 이익을 따르기 보다는 권태로운 질서를 받아들이는 여유, 조급해 하지 않고 때가 차기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 먹이사슬을 인정하는 자세가 있어야 자연과의 유대를 맺을 수 있다. 그런 환경에서 살아야 육체뿐 아니라 정신도 건강하다. 이글거리던 한여름의 태양 볕을 터질 듯 가득 안고 있어 칼 끝만 살짝 들이대도 쩍 갈라지며 빨간 세상을 열어주던 수박으로 여름을 식히던 그때가 그립다. 숲을 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행복해진다더니 제법 꼴을 갖춰가는 텃밭의 수박을 바라보는 것으로 나는 작은 행복을 맛본다.  

<김영수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협 회원/한국 문인협회 회원>


피의 보복전, 이라크 답습?

● WORLD 2011. 9. 3. 18:08 Posted by SisaHan

리비아 완전 장악 반군 “보복없다” 다짐불구
피의 보복전, 이라크 답습?

 반군이 완전 장악한 리비아에서 우려했던 보복극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달아난 무아마르 카다피의 행방이 오리무중이어서 ‘리비아의 이라크화’라는 최악 시나리오의 현실화 가능성에 리비아 안팎의 신경이 곤두서고 있다.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남부지역의 한 창고에서 지난 주 처형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탄 시신 53구가 또다시 무더기로 발견됐다고 영국 언론이 보도했다. 이는 지난 27일 트리폴리 남부의 한 병원 건물에서 최소 200구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BBC방송 보도에 뒤따른 것이어서 국제사회에 더욱 큰 충격을 주고 있다. BBC는 26일에도 트리폴리 미티가 지역의 한 병원에 포로가 된 상태에서 정부군에 살해당한 것으로 보이는 주검 17구가 안치돼 있다고 보도했었다. 이밖에 트리폴리의 아부 살림 교도소가 반군에 넘어가기 전 교도관들이 재소자들을 성폭행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반군 쪽의 보복 살해 의심 사례도 발생했다. 트리폴리 시내에서 친정부 무장대원 주검 10여구가 발견됐는데, 2명은 손이 뒤로 묶인 채였다. 다른 주검들은 심하게 불에 그슬려 있었다. 국제앰네스티는 양쪽에서 보복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유력한 증언들”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집단 보복 살해 사례가 발생하자 유엔은 “모든 당사자는 범죄와 보복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실질적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도 “새로운 리비아에 보복 공격과 복수의 자리는 없다”며 자제를 요구했다. 
보복의 악순환이 발생할지 여부는 리비아인들뿐 아니라 서구 국가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대목이다. 
반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손쉽게 수도 트리폴리를 접수했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와는 달리 프랑스와 영국이 주도한 이번 전쟁에서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고 경제적 부담도 별로 없어 ‘새로운 (제한적) 분쟁 개입 방식’이 성공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종전을 선언한 뒤에도 미군과 무장세력이 교전하고, 이어 이슬람 시아파 대 수니파의 내전이 일어나 수만~수십만명이 숨진 이라크전과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특히 과도국가평의회의 무스타파 압둘잘릴 의장이 ‘피의 악순환’을 경계하며 반군이 보복행위에 나선다면 자리를 내놓겠다고까지 밝혔는데도 보복 범죄 조짐이 나타나는 것은 심상치 않다. 잘릴 위원장은 “카다피와 그의 협력자들이 투항한다면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고 그들을 보호해 불법적으로 처형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군이 버리고 달아난 무기까지 다양한 집단들에 넘어가면서 안정화 기대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지난 23일 카다피의 관저 밥 알아지지야를 점령한 반군 병사들은 저마다 무기를 기념품처럼 챙겨갔다. AP통신은 리비아 정부군이 보유하던 1만5000~2만5000기의 견착식 로켓 등의 처분 방안이 확실하지 않은 가운데 현지에서는 무기 가격이 내려가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군 무기가 시장에 흘러나오고 있다는 추정을 낳게 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