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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다녀 오신분 들께서는 제가 무슨 소리를 할지 이미 아셨을 것입니다. 시절이 변한 것보다 더 군대는 많이 변했다 합니다. 하여, 요즈음의 선임하사들은 제가 잘 모릅니다.
저희 때만 해도 우리는 가난 속에 살았을 때 입니다. 그래서 군인들의 직업이나 학력등이 천차만별이었습니다. 군대를 3년 마치고 세상에 나가도 할 일이 마땅치 않은 병사들이 하사관을 지원하여 소위 말뚝을 밖으면 직업군인이 됩니다. 전투능력의 가장 작은 단위인 소대에서 소대장은 전투를 책임지고, 선임하사는 장병들의 장비, 음식등 모든 안살림을 책임지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그 시절, 봉급도 넉넉치 않았기에 ‘비리’라기 보다는 어쩔수 없이 부대의 식당 부식이나 소대원들이 수고한 땔감 등을 집에 가져가 사용하였습니다. 그런 선임하사의 부인들은 대부분 부대주변 마을에서 농사일을 하는 처녀들 가운데 서로 소개, 소개로 중매가 이루어져 결혼하였고, 산골 마을에서는 큰 경사가 아닐수 없었습니다. 고된 농사일에서 벗어난 선임하사 부인들은 서로 모여 자기 남편의 소대원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눈다고 합니다. 못된 선임하사는 아예 소대원 한명을 자기집 머슴으로 삼아 밥도 하게 하고 빨래까지 시킨다는 일도 있어서, 이 선임하사의 부인은 콧대가 하늘로 치솟게 됩니다. 자기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는 소대원들을 ‘우리 아이들’이라고 호칭하였습니다.

저 역시 겨울철이면 내무반 교육받기 싫어서 산에 나무를 하러 다닐때가 많았습니다. 일단 부대를 벗어난다는 해방감을 맛보며, 가게에 들려 라면도 사가지고 끓여먹고, 또 술을 좋아하는 병사들은 막걸리도 한사발 걸치고… 아무 장비도 없이 나간 군인들이 땔감을 해오는 것을 보면 깜작 놀랍니다. 우리 스스로도 놀랍니다. 좋은 장작감은 대대장 숙소에 올려지고, 중대장 숙소, 선임하사 숙소 등에 나누어지고 나머지는 중대단위 비닐하우스 땔감으로 사용되는데 겨우내내 넘쳐납니다. 비닐하우스에서 길러지는 채소는 역시 선임하사들의 작은 수입원이 되어주었고, 선임하사들은 소대원들과 적당한 선에서 당기고 늦추며 관계를 유지합니다. 장병들은 속으로는 선임하사를 무시하기 마련입니다. 학력도 없지, 집안도 별 볼일 없지, 지식 또한 모자라서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 내무반에서 이루어지는 정훈교육은 그들의 무식을 그대로 폭로하는 마당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선임하사의 부인에게 ‘사모님’ 사모님’ 호칭하는 것이 무시하는 모양새가 겉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물론 사람 됨됨이 좋은 선임하사도 계셨습니다. 자신의 무지함을 인정하고 장병들에게 모르는 것을 묻고, 군 생활중 딱한 사정이 있는 소대원을 집으로 데려가 위로하고 집으로 연락도 할 수 있게 하여 주었습니다. 그 선임하사는 되레 소대원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사모님까지 마음씨가 고우셔서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농사일로 돈을 벌어, 살림에 보태고 사병들을 챙겨 주었습니다. 그러니 그분은 진짜 ‘사모님’ 이셨습니다. 우리는 공수여단이었기에 공수훈련에 들어가면 쓰러지는 병사도 생기게 됩니다. 공수교육장의 임시 교관이셨던 이 선임하사는 우리들이 자기손에 맡겨진 ‘가상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자세’를 가르키는 곳에 이르면 잠시라도 쉬게 하려고 말도 않되는 일장 연설로 시간을 끌어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요즈음 사회생활 속에서도 선임하사 부인들이 있다고 합니다. 남편의 직위를 자신의 직위로 착각하는 사모님들입니다. 겸손은 미안한 마음이고, 교만은 서운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남편과 자신을 구별할 줄 모르고 큰 소리치거나 남편과의 관계하에 있는 사람들을 간섭하는 것은 잘못된 일 입니다. 겸손은 자신이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때 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묵묵히 순종하였던 3소대 선임하사 사모님이 갑자기 생각납니다. 저와는 다른 소대였지만 나이가 많아 군에 들어온 저를 항상 챙겨 주셨던 그 선임하사가 그립습니다. 짧은 지식을 털어놓고 모르는 것을 묻고 배우려 열심이셨던 선임하사님과 박봉에 어려운 살림에도 자기 소대와도 상관없는 장병들에게 배고픔을 달래주려고 헌신하셨던 사모님이 왜 지금 생각이 날까요… 배움, 즉 교육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배우는 목적도 사람, 즉 태초에 창조하신 흠 없는 사람을 만들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사람이 사람답지 않다면, 그와 가까이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큰 상처와 영향을 미치게 됨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정훈태 - 목민교회 장로 >


“톤즈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 WORLD 2012. 8. 1. 16:17 Posted by SisaHan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로 잘 알려진 남수단이 지난 9일 독립 1년을 맞았다. 그러나 남수단은 기근과 종족분쟁 등으로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아프리카계 기독교도가 다수인 남수단은 35년간 아랍계 이슬람이 지배하는 북수단으로부터 탄압받아 250만명 이상이 숨졌고(다르푸르 학살), 500만명 이상이 주변국을 떠도는 난민이 됐다. 150년 이상 영국-이집트-북수단의 지배를 받아오다 지난해 소원이던 독립을 얻어냈지만, 여전히 수렁에 빠져있다.
풍부한 나일강 수자원과 비옥하고 광대한 토지, 아프리카에서 7번째로 석유 매장량이 많지만 오랜 내전으로 국가 모든 기반시설이 파괴돼 국민 90% 이상이 하루 1달러도 안되는 수입으로 살아가는, 독립과 동시에 세계 최빈국이 되었다. 수도 주바에도 전기·수도 시설이 없어 관공서, 식당, 호텔 등은 자체 발전기를 가동해야 한다. 나일강 물을 양수기로 끌어올려 정수도 않고 생활용수로 사용한다. 포장도로는 1%도 안 돼 우기엔 온 나라 교통이 마비된다. 아이들은 나무그늘 아래서 공부하고, 국립학교도 진흙으로 지어진 건물에 책·걸상도 없다.
 
이처럼 열악한 사정을 알면서도 인근 나라로 떠났던 남수단 사람들은 독립된 조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 북수단과 국경이 봉쇄돼 북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20만명의 남수단 사람들이 국경 인근에 난민촌을 형성하고 있다. 난민촌에는 식량도 부족하고, 말라리아 등 각종 질병도 창궐한다. 타국을 떠돌다 돌아온 남수단 이주민들도 생활터전도, 직업도 없어 도시 인근이 급격히 슬럼화 되고 있다. 종족분쟁은 더 큰 숙제다. 우물과 목초지를 확보하기 위한 종족간 다툼이 소총과 각종 무기로 중무장한 상태로 진행돼 대량학살이 수시로 자행된다. 부족전쟁으로 한 해 수천명의 전쟁고아들이 발생하고, 이들은 아무 도움 없이 방치되다 어느 순간 전쟁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뀌고 있다.
남수단이 일어서려면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 일본은 남수단 독립 뒤, 발 빠르게 대사관을 설치하고 올 초 대규모 자위대를 평화유지군으로 파병하는 한편 국가원조기구 자이카를 통해 구호사업을 펼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파병요청에 약속만 한 상태다.
 
< 권기정=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남수단사무소장 >


미국이 완전 포위, 중 반격은?

● WORLD 2012. 8. 1. 16:05 Posted by SisaHan
영유권 분쟁 개입·한미일 ‘삼각동맹’등 ‘핵심이익’ 위협

중국은 요즘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당혹하고 있을 것이다.
첫째,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의 중국 주변국 외교 순방이다. 지난주 프랑스 파리를 들른 클린턴은 아시아로 날아와 일본(7일)-아프가니스탄(8일)-몽골(9일)-베트남(10일)-라오스(11일)-캄보디아(12일)를 숨가쁘게 방문했다. 중국의 동서남북 요충에 있는 나라들이다. 이례적이고 노골적인 중국 포위 외교 순방이다. 클린턴은 지난해 말 미 국무장관으로서는 50년 만에 미얀마(버마)를 방문한 데 이어, 이번에 57년 만에 라오스를 찾았다. 두 나라 모두 그동안 미국과는 최악의 관계였고, 중국과는 아주 친했다.
 
둘째, 남·동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의 격화이다. 일본 및 관련 동남아 국가들이 똘똘 뭉쳐 중국에 대항하는 양상을 확연히 보였다. 여기에는 미국의 개입과 지원이 있다.
올해 들어 중국과 필리핀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스카버러섬(중국명 황옌다오)에서 양국 순시선이 대치하며 이 지역 영유권 분쟁이 격화되어 왔다. 지난주 미국이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미 국무부가 중국과 일본이 다투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가 미-일 안보조약의 적용 범위에 있다고 밝혔다. 일본이 실효지배하는 이 섬들이 공격받는다면 미국이 개입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남·동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언급을 삼가던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 해역에서의 통행권 보장과 평화로운 분쟁 해결 등을 말하며 개입을 시작했다. 이번에 안보동맹 발동을 말하며, 무력개입까지 시사한 것이다. 미국은 또 지난주 열린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회의에서 이 분쟁 해결과 관련한 ‘남중국해행동규약’(COC) 채택을 사실상 주도했다. 이 분쟁에서 동남아국가들을 반중 단일 전선으로 묶고, 중국을 이 규약에 구속하려는 의도이다.
 
셋째, 한국과 일본의 군사정보보호협정 밀실 추진이다. 미국의 주문으로 이 협정이 한국에서 무리하게 밀실 추진됐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들 나라가 미국과의 일대일 동맹관계에서 3자 동맹관계로 바뀌는 움직임이다. 1980년대 전부터 얘기되던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이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천안문 사태에 버금가는 최대 내우외환의 위기이다. 안으로는 지도부 교체 시기에다 경제성장 동력이 떨어지고, 밖으로는 최대 고립을 맛보고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원교근공’ 책략이 중국 자신을 포위·압박하는 외교술로 미국 등에 원용된다. 중국이 말하는 ‘핵심이익’, 즉 주권과 영토, 안보가 위협받고 있다. 
한국전 참전, 1950년대 대만 진먼섬 폭격, 1962년 중-인도 전쟁, 1970년 전후 우수리강에서 중-소 충돌, 1979년 중-월 전쟁은 중국이 ‘핵심이익’ 위협에 맞선 대응들이다. 대부분 우월한 상대에 대한 선제공격이고, 그 뒤 정치적 국면이란 특징을 공유한다. 특히 중-월 전쟁은 당시 베트남에서 깜라인(캄란)만 해군기지를 조차하는 등 대중포위를 옥죄던 소련을 겨냥한 것이었다.
중국은 건국 이후 우월한 상대에 맞서 ‘선제공격’이란 억제력을 구사했다고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지적한다. 미·소 등 우월한 상대에게 허를 찌르는 전격적인 공격을 가해 “심리적인 대등감을 회복하면, 중국인들의 눈에 억제는 제대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1500자 칼럼] 소금 맛

● 칼럼 2012. 8. 1. 15:56 Posted by SisaHan
김치 냉장고를 열었다. 뜻하지 않은 화공약품 냄새가 후각에 와 닿는다. 잘 익은 김치를 기대했는데 가슴이 철렁했다. 열과 성을 다한 노역의 댓가로는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치가 물러서 고생했던 기억은 있어도 이런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여름 편하게 지낼 생각으로 배추 두 상자를 덜컥 담궜는데 이 많은 김치를 어떻게 소화해야 할 지 아득하기만 하다.
대체 그 냄새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일의 경과를 되짚어 보고 재료도 하나씩 점검해 본다. 문득 배추를 절일 때부터 이 냄새가 진동했던 기억이 나서 쓰다 남은 소금봉지를 열어보았다. ‘내가 변하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냐.’는 듯, 소금봉지는 싱그러운 바다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수 십 년 애용 해 온 굵은 바다소금의 변질이 아님을 확인하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리곤 원인 규명은 뒤로 미룬 채 달콤했던 소금밭 여행으로 빠져들었다.
 

최근 토론토 하이킹 그룹 맴버들과 미국 서부 공원들을 하이킹했다. 여행길 초입에서 만난 소금밭은 특이한 자연 환경만큼 특이한 경험을 갖게 했다. 일명 소금호수(Bed Water lake/ 마시기에 좋지 않은 물)라고 명명한 그곳은 모하비 사막 북쪽에 자리한 국립공원 데스 벨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가장 기온이 높은 지역으로 메마르고 뜨거우며 고도가 낮은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면이 해수면보다 무려 86m나 낮은 그곳은 미국뿐만 아니라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기도 하다.
6월초의 덜 영근 여름빛에도 데스 벨리 계곡은 다양한 색깔로 불타고 있었다. 살인적인 더위와 1500여 미터를 단숨에 오르내려야하는 좁은 비탈길로 인해 ‘데스 벨리(Death Valley)’라는 악명 높은 지명이 붙여졌지만 우리의 소금밭 행차는 무난했다. 일행을 실은 차가 계곡 모퉁이를 돌아 나올 때 마다 사막의 신기루는 바다를 연출해 놓았었다. 끝없이 펼쳐진 소금밭을 향하며 바다 밑 용궁을 꿈꾸고 있을 즈음, 뜻밖에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소금이 덧칠되어 크리스탈처럼 빛나는 식물, 살아있음이 기적인 듯 했다.
 
거친 언덕과 높은 산세에 둘러싸인 소금밭 분지에 발을 내린 나는 앞산 어깨쯤에 붙여진, ‘sea level -86m’란 표지를 보고 잠시 얼떨떨했다. 마치 바다 속 깊숙이 가라앉은 느낌이랄까. 물고기 떼며 산호초가 이리저리 유영하는 듯한 착각과 함께 소금밭 탐험에 들어갔다. 넓은 분지에 가득 피어올린 소금꽃, 몇 억 겁의 세월이 거쳐 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원거리의 바닷물이 유입되기에는 불가능한 거리의 사막에 소금층 두께가 1000피트가 넘는다는데 그 형성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니 기이한 자연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이를 두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측 주장을 내어 놓았을까. 덩달아 나도 ‘한 줄..... .’ 하다가 말문을 닫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청색 하늘, ‘태초의 하늘색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일행은 샌들을 벗어들고 까칠한 소금길을 걸었다. 촉촉하고 따끈한 감촉은 온갖 사념이며 잡병을 일시에 물리는 것 같았다. 문뜩 소금 한 조각을 입에 물었다. 여태까지 먹어 본 소금 중에서 가장 깔끔한 맛이었다. 일행 중 S도 그렇게 느꼈던지 가져다가 배추 절였으면 좋겠단다. 기특한 여인의 발상에 잠시 웃다가 배추라는 어휘 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시 착각을 했었나 보다. 좀 전에 안심했던 그 소금은 오래전의 것이었고 근래에 구입한 것은 이미 그때 사용을 다 했으니 냄새의 주범은 아직도 모호한 채다. 제발, 이제나 저제나 한결같은 소금 맛이었으면 여한이 없겠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한국문단 등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