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추령 교사는 혁신학교인 서울 삼각산고 1학년 부장이다. 그에게는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 하는 지금이 교사 생활 26년 중 가장 행복한 시절이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다양한 수업을 맘껏 해보고 구조화된 차별 속에서 신음하는 아이들을 돕는 활동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장·교감 선생님의 전폭적 지원 아래 이 학교 교사들은 프로젝트 수업, 팀 교습 등 아이들의 학습 흥미를 높일 수 있는 각종 방안을 도입했다. 그 결과 아이들의 학습주도력이 높아졌다. 주요 과목 학력평가에서 같은 지역 자사고보다 높은 성적을 낼 정도로 학력도 신장됐다. 기초수급자 비율이 25%가 넘는 열악한 환경에서 얻은 놀라운 결과다.
학교 부적응아 문제에도 새롭게 접근했다. 지난해 신입생 가운데는 폭력적 성향이 있는 아이들이 몇 있었다. 이들의 가정환경을 조사하면서 김 교사는 하나같이 사랑을 못 받고 자라 분노 덩어리가 됐음을 알게 됐다. 이들을 방치하면 커서 흉악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후배 교사와 힘을 합쳐 이 아이들을 위한 특별활동반 ‘나다’를 조직했다. 춤·연극·기 치료 등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열어갔고 학년 말에는 어렵사리 공개 연극공연도 했다. 아이들이 훗날 폭력을 휘두를 상황에서 여기서 사랑 받았던 기억을 되살려 참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회에 대한 교사의 기여일 것이란 믿음에서였다. 그의 사랑이 통했는지, 아이들 가운데 일부는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를 하는 등 변하기 시작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김 교사는 이제 2기 나다반을 꾸릴 계획이다.
 
그런데 교육개발원이 최근 내놓은 ‘서울형 혁신학교 평가연구보고서’가 골치다. 혁신학교가 모든 분야에서 일반학교에 뒤진다는 이 연구 결과를 근거로 문용린 교육감은 혁신학교 예산을 대폭 줄이려 한다. 그러나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대표 교육연구기관의 이름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평가등급을 A, B, C, 세 등급으로 나누면서 그 준거를 밝히지도 못했다. 혁신학교 지정 3개월 후에 치러진 학력고사 성적을 가지고 혁신학교의 학력 향상도가 떨어진다는 황당한 결론을 내놓기도 했다. 더군다나 혁신학교들이 주로 교육낙후지역에 있는 까닭에 불리할 수밖에 없는 기초체력 미달자 비율 따위를 평가의 주요 지표로 삼았다. 혁신학교 예산을 깎겠다는 시 교육청이 이 엉터리 연구에 지급한 돈은 1억원이나 된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시정연설에서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의 고통과 어려움을 해결하고, 국민에게 행복을 드리는 데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이 정권은 교육의 목표도 행복교육으로 삼았을 터다. 문 교육감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 정권이나 서울 교육청은 혁신학교의 성과를 수용하고 더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게 마땅하다. 일반학교에 비해 혁신학교에 대한 학생, 학부모, 교사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것은 개발원의 이번 엉터리 조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조사는 물론이고 혁신학교 주변의 들썩이는 집값을 통해서도 확인된 바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거꾸로다. 이 정권과 서울 교육청은 혁신학교를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다. 혁신교육이 이른바 진보교육감의 정책인 까닭이다. 겉으로는 국민행복, 행복교육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국민의 행복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집권세력의 이런 속좁은 행태를 보면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메르켈은 유로화 위기 속에서도 독일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독일을 명실상부한 유럽의 중심국으로 부상시켰다. 독일의 이런 성공은 기민당 소속인 메르켈이 사민당의 정책이었던 ‘의제 2010’을 그대로 이어받아 위기에 대한 대응력을 키웠기에 가능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녹색당의 반원전 정책을 과감하게 수용한 것도 메르켈이었다. 이렇게 당파성에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국민의 행복 편에서 좌우의 정책을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용기를 보였기에 그는 압도적 지지로 3선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우리 정치, 우리 교육에선 언제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

< 권태선 - 한겨레신문 편집인 >


[한마당] 말과 사슴도 구별 못하는‥

● 칼럼 2013. 11. 25. 15:31 Posted by SisaHan
‘바카야로’는 예나 지금이나 일본인이 한국인을 경멸하는 가장 심한 욕설로 남아 있습니다. 말뜻은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닙니다. 바카(馬鹿) 곧 말과 사슴도 구별하지 못하는 자, 곧 ‘바보자식’ 정도의 뜻이고, 중국 진나라 때 지록위마(指鹿爲馬) 고사에서 유래했다고도 하죠. 욕설이 그렇게 발달(?)하지 않은 일본에서 바카야로만큼 경멸적인 표현은 많지 않습니다. 그것과 짝을 이루는 형용사가 바로 ‘오로(愚)카나’(어리석은)입니다. 아베 일본 총리가 했다는 “한국은 단지 어리석은 국가일 뿐”이라는 말은 표현만 누그러뜨렸지, 내용은 ‘조센진 빠가야로’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이 정권 관계자들이 하는 짓을 보면 지록위마의 고사를 떠올리기에 안성맞춤입니다. 환관 조고가 어린 황제 호해를 상대로 그랬듯이 국민을 상대로 농락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니까요. 남유진 구미시장은 지난 14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어난 날 그를 ‘반신반인’ ‘하늘이 내렸다’고 신격화했습니다. 지난달 26일 그가 피살당한 날 추모식에선 구미 출신의 심학봉 의원이 “아버지 대통령 각하”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급입니다. 이런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는 그의 생가는 지금 성역화되고 있습니다. 북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김일성 주석 생일을 태양절이라 하여 경축하듯이 구미에선 그의 생일날 탄신제라 하여 경축 행사를 벌입니다. 동상도 북한에서 많이 보는 그런 형태입니다. ‘따라할 게 따로 있지…’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일본인들이 보기에도 그럴 겁니다. 일왕을 살아있는 신, 곧 천황으로 모시는 것이야 수천년 내려온 전통입니다만, 여대생 옆에 끼고 술 마시다가 부하에게 피살당한 사람을 신격화하고 있으니 얼마나 가소롭겠습니까. 게다가 그는 국권을 강탈한 일본 천황에게 혈서로써 충성맹세를 했던 사람이니 더더욱 그렇겠죠. 그런 사람의 딸이 일본과 맞서는 것으로 인기를 유지한다고 생각하니, 그들의 그 짧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의 한 교회에서도 박정희 추모 예배가 있었습니다. 둘째 딸 박근령씨도 유족 대표로 참석했으니 나름 공식성을 띤 행사였습니다. 십자가가 있던 단상 정면에는 그의 대형 초상화가 걸렸었죠. 이 자리에서 목사들은 그를 하나님의 역사를 이 땅에서 이루어낸 분, 곧 메시아인 양 칭송했습니다. 거의 예수님과 동급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한국 개신교에선 삼위일체가 아니라 사위일체를 모셔야 할 판입니다.
 
지록위마는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상대를 능멸하는 걸 두고 쓰는 말입니다. 사실 사슴을 두고 말이라고 우기는 일이 ‘박정희 신격화’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 정부가 들어선 뒤 청와대·국정원·검찰·새누리당 등 권력자들은 즐겨 국민들에게 그런 일을 했습니다. 엊그제 검찰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문제는 대표적입니다. 처음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을 북쪽에 넘겼다고 주장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말대로 ‘피로써 지킨 북방한계선’을 포기한 놈이라는 것이었죠. 정상회담 배석자들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자, ‘대화록이 공개되면 다 드러난다’고 했던 건 대통령 자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았지만 그런 내용이 없었습니다. 포기 운운한 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습니다. 그걸 갖고 김무성 의원 등이 선거 때부터 지금까지 우려먹었으니, 국민들더러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우긴’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게다가 대통령은 국정원의 대선 공작을 20대 여성 감금 사건이라고 호도했던 것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내지 않고 있습니다.
 
대화록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일급비밀로 지정된 대화록이 유출돼 선거에 악용된 것이었습니다. 그런 문제제기가 있자, 사초 실종을 주장하며 국민의 눈을 속이려 했습니다. 검찰도 여기에 동원됐죠. 대화록은 저희들이 갖고 장난쳤는데, 어떻게 대화록이 실종됐다는 것인지, 진실로 어이없는 일입니다. 대화록은 물론 녹음파일까지 국정원에 잘 보관돼 있습니다. 검찰은 궁색해지자, 초본을 없앤 것을 두고 대통령기록물 폐기라고 하여 관계자들을 기소했습니다. 초본의 잘못을 바로잡아 정본을 만들었으면 당연히 초본은 없애야 합니다. 배석자가 잘못 듣거나 잘못 기록한 것을 왜 남겨둬야 하지요? 지록위마에 혹세무민의 전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짓을 하는 걸 보고, 혹은 그런 짓에 놀아나는 사람들을 보고, ‘바카’(馬鹿)란 말이 나오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겁니다.
 
신장개업한 상가 앞에 자주 등장하는 풍선인형이 있습니다. 바람을 불어넣는 대로 뒤죽박죽 제멋대로 춤을 추며 행인의 시선을 끄는 인형이죠. 국정원, 검찰, 새누리당, 청와대가 그런 해괴한 춤을 추었던 게 아닌지 싶습니다. 거기에 친정부 언론이 맹렬하게 호객을 하고, 바람을 잡았지요. 그런 상황이 오늘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조금은 시정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렵게 마련된 자리에서 한 말씀이 국무회의에서 매양 하던 말들이더군요. 이런 말을 덧붙이셨더군요. “정치권이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미래를 열어가는 길에 나서달라” “정치권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때 국민 모두가 행복해집니다.” 결국 정치권, 특히 야당이 문제였더군요. 여전히 지록위마 놀이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그들 특히 그들이 대표하는 국민은 결코 마록이 아닙니다.
< 곽병찬 대기자 >


[1500자 칼럼] 국화꽃 따는 아침

● 칼럼 2013. 11. 17. 21:09 Posted by SisaHan
요즘 들어 불면의 밤이 잦아졌다. 나는 반갑지 않은 이 손님이 찾아드는 시간이면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멀리 지리산 피아골 산(産) 백초차를 감히 꿈꾸어 본다. 백여 가지 넘는 산야초가 어울려서 빚어 낸 차는 쓴맛, 달큰한 맛, 새큼한 맛이 차례로 감돌아 정신을 맑게 한다는데, 어차피 깨어있는 밤이니 더 맑아져도 상관이 없겠다. 다만 그 차를 마시는 동안은 백여 가지 이름 모를 산야초의 살랑거림으로 불면의 밤이 짧아지리라는 상상도 은근히 해 본다. 
 
지난 여름 끝머리에 지인이 보내 준 책 꾸러미에서 산야초에 대한 책을 먼저 뽑았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문학 서적은 뒷전으로 하고 지리산 산야초 이야기에 한동안 정신을 빼앗겼었다. 자연과 합일을 이룬 한 지리산 붙박이가 들려주는 차(茶) 이야기는 까다로운 다도 운운하며 멀리했던 다기를 가까이 하게 했고, 손수 산야초 차를 만들어 보고 싶은 유혹이 들게도 했다. 

가을엔 감국, 구절초, 국화, 구기자차 류가 으뜸이라기에 뜰 안에서 왕성하게 자리 잡은 국화 무더기에 눈길을 자주 보냈다. 초가을부터 봉긋봉긋 올라오는 꽃봉오리를 보며 마음은 이미 국화차에 잠겨버렸다. 놈들이 개화를 하면 넉넉히 말려서 가을 노래 부르며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리라는 흑심을 품고서다. 
어느 쾌청한 날 아침, 이슬 머금은 꽃이 향기가 짙다는 지침을 상기하며 국화꽃이 벙글거리는 화단에 들었다. 하지만 해맑게 피어오른 꽃송이들 곁에 서니 손이 선뜻 나가지 않았다. 무심한 마음일 땐 그토록 곱던 꽃이 따려는 순간엔 수 백, 수 천, 적의에 찬 눈빛으로 조여 오는 듯했다. 말 못하는 식물에도 인간이 감당 못할 기가 있음을 그때야 알았다. 잔뜩 기에 눌린 나는, 손품은 좀 들어도 덜어낸 티가 덜 나는 자잘한 토종이 그래도 낫다고 자위하며 몇 줌 따서 도망치듯 나왔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수없는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낸 사실을 잊은 채 내 욕심만 채우려고 했으니, 참으로 미안했다. 
 
계절 탓인지 부질없는 생각이 부쩍 많아졌다. 무심결에 이는 바람에 이유를 묻고, 그냥 스쳐가는 인연에도 의미를 찾게 된다. 육안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인양 가볍게 흘려보낸 것들을 되새김질 하며 창밖을 보다가 기울어가는 황국에서 눈이 멎었다. 초롱초롱한 꽃망울로 꾸짖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된 서리 몇 번 다녀가고 나니 허물어지는 낌새가 역력했다. 나는 가볍게 걸쳤던 몽상가의 옷을 벗어던지고 비닐봉지 하나 챙겨서 뒤란으로 나섰다.
느슨해진 화단에서 가을 향을 딴다. 황국, 백국이 엇비슷하게 누워서 얼른 데려가 달라고 재촉 하는 듯하다. 푸근한 마음으로 한 무더기 끌어안고 얼굴을 들이민다. 농익은 향기가 온몸으로 스며든다. 수수하면서도 친숙한 향, 그럼에도 끝 모를 깊이로 이끄는 국향이다. 
 
어느 원주민 부족은 십일월을 일컬어‘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 부른다고 한다. 조급함을 버리고 기다리다보면 언젠가 때가 오리라는, 자연의 순환 이치를 통찰한 사람들의 범접하기 어려운 경지다. 

풋풋함 대신 평온함이 배가되어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아침이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한국을 주요 정보 수집 대상으로 분류하고 도·감청을 포함한 무차별적인 정보 수집 활동을 해왔다고 외신이 폭로했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미국은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한국의 외교·안보·통상 정책의 출현 가능성을 예의주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한국의 최고위급 정책 결정자를 감시했는데, 그 과정에서 불법적인 도·감청을 자행했을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미국이 공연한 수고를 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굳이 엄청난 첨단 장비와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한국을 감시하지 않아도 한국에는 자발적으로 미국에 정보를 가져다 바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미 정보기관 요원으로 한국에 파견되어 있는 한 관리는 재임 기간 중 한국 국방부, 합참, 방위사업청 관계자들이 수시로 찾아와 자신이 속한 조직의 문제점을 까발리고 상관에 대한 험담까지 늘어놓는 데 대해 깜짝 놀란 적이 많았다고 회고한다. 
그런가 하면 정치적 야심가들이 청와대와 대통령에 대한 정보를 미국 대사관에 제공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거물급 정치인들이 자신과 관련된 정치 현안에 대해 미 대사관을 찾아가 설명하는 것도 이제는 관례화되었다.
3년 전에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전문만 보아도 한국에는 자발적인 미국의 정보원이 널려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2008년 11월13일자 외교전문은 박근혜 대통령도 2002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을 캐슬린 스티븐스 미 대사와 오찬을 함께 하면서 상세히 소개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재작년에는 한국 공군이 미국 전투기의 센서 장비인 ‘타이거아이’를 무단으로 분해했다는 제보가 미 대사관에 접수되었다. 이후 미 정부는 대규모 감시단을 한국에 파견했고 한국의 방산 보안 정책을 미국에 유리하게 바꾸도록 압력을 가했으며, 성공했다. 이 사건은 한국군 내부의 정보제공자, 즉 밀고자와 한국계 미군 장교의 합작품이었다.
 
얼마 전 미국이 한국에 판매하고자 하는 스텔스 전투기를 한국이 구매하지 않으려는 조짐을 보이자 이를 정확히 간파한 미국 정부가 모종의 압력을 가해 김관진 국방부 장관으로 하여금 기존의 사업을 부결하도록 했다. 이것도 역시 우리 국방부 내부의 정보 제공자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미군의 감청장비가 배치된 한국군 정보부대의 경우 미 정보기관과 정보 교류 비밀 합의서를 체결하였는데 그 말미에 “합의 체결 사실을 각자 본국의 정부에 보고하지 않는다”는 조항도 있다. 이 조항이 필요했던 이유는 자명하다. 미 정보기관이 한국의 주권을 유린하는 불법행위를 한국 정부에조차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에 정보를 제공하는 밀고자들에게는 조국이 두 개다. 이들은 자신이 태어난 나라뿐만 아니라 동맹국에 대한 ‘이중 충성’이 덕목이다. 이런 정보 제공자들이 국회, 국방부, 외교부, 군부대, 방위사업청에 득실거린다. 미국이 없으면 당장 우리나라가 망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중 충성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란 없다.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국방부 정보본부장은 “미국이 없이 남북한이 일대일로 싸우면 진다”고 했다. 그에게 미국이란 단순한 동맹국, 그 이상의 존재다. 여기에는 미국에 대한 의존성을 넘어선 자발적 식민성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왜 굳이 번거로운 도·감청을 하였을까? 안 해도 얼마든지 정보가 들어오는데 말이다. 
불신 때문이다. 정보 제공자가 자신의 조국을 배신하며 미국에 정보를 제공하는 데는 모종의 개인적 야심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 정부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정보를 갖고 있으면서도 도·감청에 예산을 투입하며, 앞으로도 절대 멈출 수 없다. 

< 김종대 - 디펜스21 플러스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