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이후 검찰 행보가 수상쩍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가 핵심 인사들에 대한 소환조사도 않은 상태에서 ‘삭제’ 운운하며 중립성을 의심케 하는 발언을 늘어놓더니 7일에는 특별수사팀이 이른바 ‘박원순 문건’ 사건을 제대로 조사도 않고 “국정원 문건이 아니다”라며 각하해버렸다.
 
민주당은 지난 5월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 운영 실태 및 대응방향’과 ‘좌파의 등록금 주장 허구성 전파로 파상공세 차단’ 문건을 작성한 혐의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국정원 전·현직 직원 9명을 고발했으나,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국정원에서 생산된 다른 문건들과 비교·감정했는데 동일한 문건이 아니다”라며 문건 내용에 대해선 수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정원의 모든 문건이 외부 반출이 불가능해 문제의 문건들도 원본을 바탕으로 외부에서 새로 작성하는 과정을 거쳤을 가능성이 크다는 국정원 전·현직 직원들의 분석을 고려하면 검찰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특히 이 문건에는 일반인들이 알 수 없는 국정원 내의 작성부서와 보고라인 등이 고유 표기법으로 적혀 있고, 담당자 이름과 직책·연락처까지 있다는 점에서 검찰의 수사 의지가 부족했거나 정권을 의식한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대화록 수사에서도 핵심 쟁점인 ‘북방한계선 포기 발언’ 여부와는 동떨어진 내용을 갖고 “의미 있는 차이” 운운하며 여당의 정치공세에 보조를 맞추는 듯한 행태를 보인 것은 정치검찰이나 하던 짓이다.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현 청와대 안보실장)의 국회 운영위 발언이나 최근의 국방부 자료만 봐도 ‘북방한계선 포기’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 정치공세인지 금세 알 수 있다. ‘정치검찰’이란 손가락질을 받은 게 불과 얼마 전인데 총장 한 사람 바뀌었다고 이렇게 달라지다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다음 총장 인선 문제다. 검찰 주변에는 벌써 ‘공안통’이 된다느니, 이명박 정권 때 ‘정치검사’로 지탄받던 TK인사가 유력하다느니, 흉흉한 소문이 돈다고 한다. 이런 마당에 최근 구성된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검찰의 정치 중립을 지켜내기에는 유약해 보이는 것은 큰 문제다. 지난 2월 추천위 때는 여성계와 학계 출신 등 외부 인사들이 정권에서 낙점한 함량미달 인사를 탈락시키는 데 상당한 구실을 했다. 그런데 이번엔 과거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로 내천됐다 탈락한 인사 등 친정부 성향 인사들이 대거 참가해 과연 제구실을 할지조차 의심스러운 형편이다. 검찰청사 위로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 같아 걱정이다.


[한마당] 좀 평안했으면 좋겠습니다

● 칼럼 2013. 10. 19. 16:36 Posted by SisaHan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습니다. 세파 속의 민초들로선 어지럼증에 속이 뒤집히기 딱 좋은 시절입니다.
다시 ‘남북 정상 회의록’ 문제로 돌아갔군요. 돌고 돌아 원점이 아니라 왔다갔다 원점입니다. 그런데 국가정보원엔 있고, 봉하에도 있었는데, 국가기록원에는 없고, 최종본은 있는데 초본은 없고, 초본이 최종본이라고도 하고, 온갖 이야기가 검찰에서 정신없이 쏟아집니다. 그러다 보니, 초본엔 ‘저는’으로 되어 있던 호칭이 최종본에선 ‘나는’으로 되어 있다 따위를 두고 대단한 발견인 양 자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회의록이 국정원과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에 있었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됐고, 북방한계선(NLL)은 지금도 그대로 존재하면 됐지 또 무슨 칼질할 게 그렇게 있는지 착잡합니다. 청와대 안보실장인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뜻에 따라 북쪽과 협상에서 북방한계선을 조금도 건드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됐지 뭐가 또 문제인 거죠?
‘사초 실종’이라고? 제발 웃기지 말라고 하십시오. 음원도 있고 그것을 정리한 기록물도 두 군데나 있는데 무엇이 실종됐다는 겁니까. 기록물 관리의 원조 격인 미국이나 영국의 대통령(혹은 수상) 기록물은 퇴임 후 개인적인 대통령기념관에 보관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후임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국정원에 한 부 남기라고 ‘폼’을 잡은 게 잘못이었습니다. 어떤 사기꾼이 후임자가 되어 농락할지 모르는데, 폼을 잡은 거죠. 사초 실종을 주장하는데, 기록을 이렇게 남겨놓은 게 낫습니까, 아니면 아예 중요한 건 모두 없애는 게 낫습니까.
 
들춰보기 좋아하는 측근들은 지금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록물에 대해서도 충분히 파악하고 있을 겁니다. 혹시 그 중에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과 관련한 기록, 민간인 사찰과 관련한 기록, 쇠고기 수입개방 대가로 부시 미국 대통령의 별장에서 했던 회담과 관련된 것 중 어떤 기록이 남아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아마 남아 있는 건 하나도 없을 겁니다. 그보다 멀리 가볼까요. 쿠데타 후 박정희 장군이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나 러스크 국무장관과 만났을 때 나눈 대화록은 도대체 있기나 합니까? 대통령님도 마찬가집니다. 2002년 야당 정치인 시절이지만 방북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1시간 동안 비밀회동을 했죠. 그때 나눈 대화록은 있기나 합니까? 있다면 그것을 우리 시대 정치인과 행정가를 위해 공개할 생각은 없습니까? 군더더기에 불과하지만, 그때 자신을 부를 때 ‘나는’이라고 했습니까, 아니면 ‘저는’이라고 했습니까. 세상에 외교적인 만남에서 자신을 낮추는 게 예의이고 관례이지, 상대를 하대하는 표현을 쓰는 멍청한 자가 어디 있습니까. 새누리당이나 친정부 황색 매체들더러 정신 좀 차리라고 하십시오. 특히 이런저런 내용을 흘리는 검찰더러는 낯뜨거우니 주구 노릇은 좀 신중하게 하라고 하십시오. 어렵게 시녀로 되돌려놨는데, 다짜고짜 흘레부터 붙는다면 누가 곱게 보겠습니까.
 
검찰 이야기가 나왔으니 ‘검찰 정치’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 말을 처음 쓴 것은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원회 산하 정치쇄신특위 위원이던 박민식 의원이었습니다. 말도 참 잘 지어내는데, 그건 야당이 아니라 이 정부가 집권하면서부터 한 짓이었습니다. 수사중인 검사에게 온갖 지침을 내리다가 여의치 않자, 검찰총장을 깝대기 벗겨 쫓아냈습니다. 검찰 정치를 제대로 한 것은 이 정부인데, 그렇게 해서 길들여진 검찰이 처음으로 정치 전면에서 나서서 하고 있는 일이 회의록 정치입니다. 이제 검찰은 국정원과 함께 집권여당의 정치를 이끌어가는 쌍두마차가 된 것입니다. 착잡한 것은 국정원이 실컷 우려먹은 대화록을 다시 고아내고 또 고아내는 일이니 보기 딱합니다. 아무리 뼈다귀를 좋아하는 개라지만, 이웃집 개가 버린 뼈다귀를 핥고 또 핥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정치 검찰의 ‘검찰 정치’ 하면 사람들은 이명박 정권을 떠올릴 겁니다. 사실 그때는 정치검찰 왕국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더니, 미네르바 사건, PD수첩 사건,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 사건 등 정권에 부담되는 이들을 집요하게 괴롭히고 폭행했습니다. 반면 BBK사건, 한나라당 대표 선거 돈봉투 사건, 민간인 사찰 사건, 대통령 사돈 기업 사건 등 대통령 주변 사건에 대해서는 한없는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공익의 대변자가 아니라 정권의 이익만 대변했던 것입니다.
 
이 정부가 들어설 때만 해도 설마 이전 정부보다는 낫겠지 기대를 했습니다. 대선 시절 박 후보는 이명박 대통령과 닮은 점을 지우고 그가 한 것은 뒤집는 데 모든 정성을 다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취임 이후 작심하고 가장 먼저 벌인 일이, 국정원을 공작기구로 환원시키고, 검찰 정치를 부활하는 것이었으니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 권력이란 게 그런 건지, 대통령님이 그런 건지. 더러운 칼 노릇을 거부했다고 더러운 공작까지 벌인 것은 압권이었습니다. 직전 정권과 현 정권, 누가 더 더러운지는 아직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살림이 각박해지는 건 참을 수 있습니다만 좀 평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가을에 책도 읽고, 문화의 향기에도 젖어보고 싶습니다. ‘국민 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했는데 이 정도 여유와 행복은 꿈꿀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계속 소란을 피우는데, 이제 혼란을 틈타 우리 주머니에서 빼갈 것도 별로 없습니다.
< 한겨레신문 곽병찬 대기자 >

 

[1500자 칼럼] 종이 편지와 문자

● 칼럼 2013. 10. 6. 15:09 Posted by SisaHan
DAY 1: “아빠~~~” “우리딸? / 잘 잤어?” “네!! 잘 잤어요! / 6:45에 일어나서 / 샤워하고, 준비하고, 정리하고, 아침 먹고 / 인제 orientation 가려고~” “엄마에게 전화하든지” “지금 가야돼~~~ / 이따가 저녁에 할께!!” “카톡 전화 가능해? 물어볼 거 있는데” “응응 / 아니 / 내가” “Calling…” “Call ended” “스카이프로 해” “오케” “지금 phone wifi 안돼”

DAY 2: “Package 보냈다. 목요일쯤 도착할거야.” “♥ Okok thank u appa” “사랑해” “나도” “♥♥♥” 

DAY 30: “Also 돈 부쳐주는 거” “Will send you money asap / Too busy / Still at work / No dinner yet” “AWE DADDY / Eat!!!” “Want to but...” 

둘째 딸을 미국으로 유학 보낸지 한 달이 지났다. 위의 대화는 필자가 딸아이와 주고 받은 문자의 내용이다. 사적인 내용이라 낯이 뜨겁긴 하지만 글의 취지를 전달하기 위해 인용했다. 
옛날 같으면 유학간 자녀는 학자금을 보내달라며 ‘부모님 전 상서’로 시작하는 긴 편지를 썼을 것이고, 부모는 집안살림이 거덜날지라도 ‘다른 건 신경쓰지 말고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하라’는 격려의 편지를 썼을 것이다. 그런 편지들은 몇 시간씩 공들여서 차분하고 정겹게 쓰여졌고, 인간적인 체취만이 아니라, 문학적인 향기까지도 담겨져 있었을 것이다. 학창시절에 주고 받은 편지들을 간직하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빛 바랜 편지들을 읽을 때 받게 되는 추억과 그리움과 감동을 익히 알고 있으리라. 그러고 보면 요즘 세상에도 종이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정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고 서로 인간적인 정을 주고 받는 방법도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소위 ‘문자 (text messages)’라는 것이 처음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미래의 의사소통 수단을 만들어낸 첨단 기술의 혁명이라는 긍정적인 반응이 있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맞춤법과 문법을 무시하고 짤막하게 줄어든 은어적 표현들이 아름다운 우리 글을 파괴하고 있다는 걱정어린 시각도 있었다. 문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했던 필자는 당연히 후자에 속했으며, 그런 추세를 ‘aphasia (특정 두뇌 영역의 손상에 기인하는 언어 장애 현상)’라고까지 생각하며 강한 반발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바뀌기 시작했고, 지금은 보다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필자의 지금 생각은 이렇다. 편지는 편지대로, 문자는 문자대로 각자 차지하는 영역이 다르다고. 딸아이를 미국에 보내놓고 한 달에 한 번씩 오는 편지를 읽을 때 내 가슴은 얼마나 벅차고 기쁠 것인가! 또 정성들여 쓴 답장 편지를 부치러 우체국에 갈 때 내 발걸음은 얼마나 흥분되어 있을 것인가!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딸아이를 미국 현지에 내려놓고 돌아온 다음날 아침에 위에 인용한 문자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잘 지내는지, 불편한 것은 없는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3일이면 도착하는 속달우편물은 잘 받았는지, 돈은 충분히 남아 있는지, 이런 것들을 바로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편리하고 좋은 일인가! 종이 편지가 인간적인 체취를 듬뿍 전해주는 좋은 것이라고 해서 어찌 문자(text message)를 필요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문자가 편리하다고 해서 모든 글을 문자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지난 번 이 칼럼에 실은 글에서 ‘순간 만족(instant gratification)’과 ‘지연 만족(delayed gratification)’을 두고 ‘그릇된 이분법(false dichotomy)’에 대해 얘기했었다. ‘종이 편지’와 ‘문자’도 같은 경우가 아닐까? 어쩌면 욕심을 부려서 둘 다 가지는 것이 해결책이겠지만, 문자도 보내고 이메일도 보내고 전화도 하는 딸아이에게 종이 편지를 받는 것은 아쉽지만 기대하지 못할 것 같다. ㅎㅎ

< 노승문 - 시인, ‘시.6.토론토’ 동인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국방대에 교육 파견 중인 외교부 소속 고위 공무원이 국방대 이전과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에 대해 ‘종북세력 음모’ ‘적화통일 사전작업’이라는 글을 올려 충격을 주고 있다. 더욱이 이 외교관은 일부 군인·공무원들과 이미 ‘국방대수도권존치위원회’라는 비공식 조직을 결성했고, 조만간 국방대 안의 사무실에서 현판식까지 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먼저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정부 정책에 무조건 빨간 색깔을 입혀 비난하는 ‘색맹증 중환자’가 어떻게 고위 공무원까지 승승장구했는지 공무원 인사제도의 허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법절차를 무시하고 집단적으로 비공개 조직을 만들어 정부 정책 반대운동을 펼치겠다는 고위 공직자들의 기강해이와 집단이기주의는 엄중히 처벌해야 마땅하다.

최근까지 주러시아대사관 공사참사관 겸 총영사를 지내고 귀국한 이원우 외교부 국장이 국방대의 ‘안보’ 과정 인터넷 클럽에 올린 ‘국방대 지방 이전에 대한 저의 생각’이란 글의 주장과 논리는 두 가지다. 하나는 국방대 지방 이전의 의도가 종북세력이 “민간의 참여가 없는 쓸쓸한 국방대를 만들어 군에 대한 민의 소통 길을 차단하려는 것”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미군에게 전작권을 내놓으라고 한 것은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는 우리 국민을 속이면서 교묘하게 미군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철수하게 하는 전형적인 공산주의자들의 수법”이라는 것이다.
둘 다 너무 유치하고 한심한 논리여서 반박하기조차 부끄럽다. 다만, 국방대의 지방 이전이 군과 민의 접촉을 소원하게 해 군민을 이간하기 위한 것이라면, 육해공군의 본부가 서울이 아니고 계룡대로 이전한 것은 왜 문제를 삼지 않는지 묻고 싶다. 또 전작권 환수에 대해서도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걸 지적해 둔다. 이 국장은 “어려운 남의 나라를 도와주러 간 군대는 당연히 자신이 전작권을 가지며 세계 최강의 미국의 경우는 더욱이 그렇다”고 했는데, 우리나라 말고 세계 어디에도 자신의 전작권을 외국 주둔군에 맡기고 있는 나라는 없다.
 
이 국장 등의 집단행동은 서울 소재 국방대 논산 이전 계획을 저지하려는 세력의 집단이기주의에 편승하고 거기에 ‘전가의 보도’인 색깔론을 동원한 셈이다. 이들이 국방대에 사무실까지 내기로 했다니, 국방대 쪽이 뒤에서 관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방부가 조사를 통해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응분의 조처를 취하겠지만, 더 심각한 것은 이번 일로 군민 화합이 깨지고 공무원에 대한 민의 불신이 더욱 커지게 됐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