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정의와 양심의 수난

● 칼럼 2013. 11. 10. 20:04 Posted by SisaHan
“우리는 과연 전체주의적 색깔이 농후한 ‘조직’만이 있고 ‘양심’이 거의 불가능한 사회에서 살고 싶은 것인가?”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에서 ‘한국 종교와 철학’을 12년째 가르치며 자신의 이름도 아예 한국식으로 고친 한국통 학자인 박노자(Vladimir Tikhonov) 교수가 한국정부의 ‘전교조’ 불법(법외노조)화 선언을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교직사회에서 전교조가 ‘양심’을 대표한다고 보았다. 전교조 교사들은 고질적인 사학 비리에 맞서왔고, 또 촌지와 같은 악질적 관행의 근절에 가장 적극적이었으며, 바른 것을 교육하려 노력하는 등 학원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 학생들에게 양심을 가르치는데 힘써왔다고 했다. 그런데 이들 단체를 법 밖으로 내모는 것은 국제노동기구의 권고를 무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양심에 따른 행동을 제재함은 물론 동료를 배신하고 학생들에게는 양심을 가르치지 말라는 탄압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의 말대로 한국은 이제 양심이 불가능한 사회로 급속히 달려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양심을 지키며 핍박을 받느냐, 아니면 양심이니 정의니 하는 고상한 단어는 접어두고 당장의 안락한 삶을 위해 조직외압에 타협해 버리느냐는 고민의 기로에서 번민해야 하는 사람들이 단지 교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당하지 못한 권력 행사에 겹겹이 에워싸여 양심의 갈등을 겪는 소시민, 소직업인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에라 눈 한번 질끈 감으면” 잠시 마음이 불편해도 무사히 살 것이라는 편안함의 유혹은 대다수의 삶을 옭아맬 수밖에 없다.
 
거대한 정부기관인 국가정보원의 대통령선거 개입 단초가 된 댓글수사로 영-욕(榮辱)의 격랑에 휩쓸렸던 권은희 수사과장은 경찰관 신분으로 양심이냐 정의냐, 눈감고 굴종이냐의 기로에 섰을 근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경찰조직이라는 유무형의 압박 속에서도 결연한 선택을 했다. 불법을 덮는 거대권력에의 순응이 정의가 아닌 이상 양심에 어긋난 행동은 안된다는 ‘행동하는 양심’을 실천했다. 검찰은 물론 청와대와 국정원을 포함해 더 큰 권력의 압박에 대항한 소신수사로 역시 영욕의 희비를 겪은 윤석렬 검사 또한 수사법관의 양심으로 조직의 부정의(不正義)를 고발했다. 
당사자들의 육성고백은 없어도 그들이 얼마나 심한 고충과 심적 갈등에 시달렸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조직과 권력의 생리를 모를 리 없고, 조직논리를 거스른 자가 걸어야 할 길이 가시밭길임은 수많은 권력의 희생자들이 앞서 걸으며 입증했기에 그렇다. 
‘양심선언’의 시대와도 같았던 90년대, 재벌들의 비위와 감사원의 은폐를 폭로한 이문옥 감사관, 그는 양심을 지킨 죄로 ‘국가기밀 누설죄’ 라는 엉뚱한 죄목으로 구속되는 신세가 됐다.
국군보안사가 사찰한 야당 정치인들을 포함해 재야, 종교계 인사 등 1300여명의 개인 정보와 기록을 담은 디스크를 들고 탈영한 윤석양 이병은 군과 동료들의 질시로 오랫동안 은둔생활을 해야 했다. 92년 군 부재자 공개투표 등 군내 부정선거를 고발한 이지문 중위도 불명예제대에 취업이 막히는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 조차 무차별 도감청을 폭로하고 최근 러시아로 임시 망명한 에드워드 스노든을 비롯해, 이라크전 기밀문서로 전쟁의 무모성에 경종을 울린 브래들리 매닝 일병 등 내부의 양심적인 고발자들은 똑같이 험한 수난을 당하고 있다. 
부정과 부패의 고리 단절과 사회정의를 깨우치는 지대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그 흔한 공로상 한번 주었다는 이야기도 못듣는다. 한낱 ‘용기있는 비양심 사회의 희생자’들로만 기억되는 비정하고 불의·부도덕한 인간사회의 속성이다. 
용감한 양심의 사람들이 대우 받기는커녕 ‘배신자’로 손가락질을 받는 세태는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양심적 선언과 행동들은 비정상적이고 후진적인 상황, 정의롭지 못한 정치현실에서 이뤄진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는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나오지 않는 게 상식이다.
정의와 도덕률, 심지어 진리마저 ‘내게는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식으로 아전인수 적용과 이기적인 강요로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더럽히는 권력의 행패. 화려하게 포장된 민주주의 문명국 뒤안길의 헌법에 규정된 양심의 자유 묵살과 추잡한 전체주의적 양태들이 빚어내는 양심과 도덕의 실종 현상들이다.
어려서부터 “정의롭게 양심적으로 살라”고 가르치기 보다는 “일류대에 들어가라,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돈 많이 벌어라”라는 교육이 자리잡은 지금, 어느 것이 정의이고 양심적인 것인지 ‘정의와 양심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리는 세상이니, 갈수록 양심행동은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정의를 향한 양심의 고독한 싸움은 소중하고 위대하며, 마땅히 대우받아야 한다. 한 마리 제비가 봄소식을 알리듯, 긴긴 겨울에도 어김없이 희망의 전령이 찾아오는 자연의 섭리와 정의의 생명력을 기억하며-.
 
< 김종천 편집인 >


국방부가 지난해 정치적으로 편향된 내용을 담은 DVD를 이용해 장교와 일반 병사들의 정훈교육을 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국가보훈처의 안보교육 빙자 DVD와 마찬가지로 군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내용이란 점에서 매우 충격적이다.
국방부 교육정책국은 지난해 반독재·반유신 투쟁을 비판하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일방적 퍼주기’로 매도하는 등 편향적 내용의 DVD로 정훈장교와 일반 병사 등에게 교육을 시키고 이를 토대로 시험까지 치렀다고 한다. 11개 묶음의 DVD를 1100여 세트나 제작해 각 군에서 교재로 사용했다니 그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DVD도 국가정보원이 넘겨줬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정원과 군, 새누리당이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이른바 ‘3각 연계’ 의혹이 점점 짙어지고 있는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국정원 심리전단과 국군사이버사령부 요원들이 함께 새누리당 SNS미디어본부장의 글을 퍼나른 사실은 이미 드러난 바 있다. 사이버사 요원들이 국정원 심리전 교육과정에서 파견교육을 받는가 하면 양쪽 요원들이 지난해 8월 말 비슷한 시기에 ‘MB스타일 동영상’을 누리집 게시판 등에 올린 것도 연계 의혹을 뒷받침하는 방증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에 대한 검찰과 국방부의 수사가 게걸음을 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늑장수사와 축소수사로 사실상 증거인멸을 방조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선거개입 혐의 사이버사 요원만 18명인데 겨우 7명만 조사하고 있을 뿐 국정원과의 연계 등 다른 의혹들에 대해선 파헤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 역시 수사팀장 교체 이후 수사 확대는커녕 공소유지에 급급한 형편이다. 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장과 차장검사는 수사 의지를 의심받는 상황이어서 검찰 안팎에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철저한 조사와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는 대로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으나 ‘철저한 조사’라는 전제 자체가 충족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축소·은폐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 결과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법원이 국정원 심리전단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글 5만여건에 대한 공소장 변경 신청을 허가한 데 이어 다른 SNS계정도 추가 확인되고 있다. 인터넷 댓글과는 규모와 내용 면에서 대선개입 정도가 확연히 다른 글들이 확인된 이상 일반 요원들을 모두 선처한 검찰조처가 맞는지 의문이다.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는 국정원 인사들의 뻔뻔한 태도를 보면 수사를 전면 확대하고 시효가 지난 선거법은 아니더라도 국정원법 등 다른 죄목을 적용해 엄중 처벌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올해 정기국회의 국정감사가 마무리되고 예산안 심사를 앞둔 시점에서 현행 제도를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상시국감이나 예결위 상설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실제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정치권은 이번엔 말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시국감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여야가 대체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정기국회 때 30일까지 국정감사를 하도록 돼 있는 현행법을 고쳐 상임위별로 탄력적으로 국감을 하자는 것이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내년 2, 4, 6월에 각 상임위가 1주일씩 피감기관을 분리해 국감을 실시하고 정기국회 때 종합국감을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상시국감을 포함해 대정부질문 개선 등 포괄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국정감사는 애초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힘이 약한 입법부가 각종 정부기관의 전횡과 불법을 집중 감시함으로써 행정부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여야간 정권 교체가 실현되는 등 어느 정도 민주주의가 자리잡은 상황에서 특정 시점을 잡아 행정부를 감시한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측면이 있다.
여야는 이번에는 말로만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협상을 진전시켜 내년부터 상시국감 체제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여야는 언제든 정권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합리적이고 실효성 있는 상시국감 제도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국감이 과도한 정치공세의 장이 되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 기능을 무력화해서도 곤란하다.
 
상시국감과 함께 예결위 상설화도 시급하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예산결산특위를 상설화해 임기 2년, 위원 30명으로 하고 다른 상임위 겸직을 금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수백조원의 국가예산을 두 달 남짓한 시기에 다른 상임위를 겸직하는 예결위원들이 주먹구구로 심의하는 것의 문제점은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예산 심의의 투명성과 전문성 확보를 위해 예결위 상설화는 더 미룰 일이 아니다.
여야는 이번에야말로 내실 있는 협상을 통해 국회가 내년부터 상시국감, 예결위 상설화 등을 통해 좀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하도록 해야 한다. 여야 원내대표들의 책무가 막중하다.


[칼럼] 홍범도 장군 묘소 앞에서

● 칼럼 2013. 11. 10. 18:07 Posted by SisaHan
비행기로 7시간을 날아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 도착한 것은 지난달 25일 오전이었다. 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이사장 이종찬)는 장군의 서거 7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현지에서 추모식을 열고 학술회의를 열었다. 현지 동포와 유지들이 다수 참석하고 저녁에는 동포들이 출연한 연극 <홍범도>가 공연되었다. 연극은 서거 한해 전에 공연되어 홍 장군이 직접 관람해 자신을 너무 추어올리지 말라고 당부한 지 71년 만에 재공연되었다.
이튿날 일행은 국내선으로 90분 거리인 크질오르다 공동묘지의 빛바래고 초라한 묘소를 찾았다. 현지 고려인(조선인) 여성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장군의 묘소에 빨간 장미꽃을 바쳤다. 장군의 넋을 위로하는 헌화와 헌주에 이어 나는 70주기에 맞춰 출간한 졸저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을 헌정하였다. 황량한 벌판에 자리한 묘역은 잿빛 하늘에서 금방 비라도 쏟아질 듯 을씨년스러웠다.
 
홍범도. 머슴 출신으로 일제의 침략에 분연히 일어나 산포수의병으로 시작해 청산리대첩을 비롯하여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으로서 일제와 줄기차게 싸웠던 빨치산 대장. 일제강점기 무장투쟁으로 30여년을 일관한 항일투사는 그가 유일하다. 그 과정에서 부인은 일본군에 붙잡혀 고문으로 숨지고 장남은 전사하고 차남은 전투중에 병사하였다. 해서 혈육 한점 남기지 않은 채 모든 것을 조국 해방에 바쳤다.
홍범도는 일본군이 ‘하늘을 나는 장군’이라 부를 만큼 공포의 대상이었고, 실제로 수십차례 전투에서 일본군을 무찔렀다. 청산리대첩의 승리에는 그의 공이 가장 컸다는 것이 연구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의 국무총리였던 이범석 장군이 자신이 속한 부대를 띄워 올리고 홍 장군을 폄하하면서 공적이 엉뚱한 사람한테 넘어갔다.
홍범도는 미천한 가문 출신이었지만 계급투쟁이 아닌 민족해방투쟁에 모든 것을 바친 혁명가였다. 그것도 ‘무장투쟁’이라는 가장 힘들고 위험 부담이 높은 투쟁에 헌신한 빨치산 대장이었다. 이들의 존재로 독립운동이 문약에 빠지지 않았고, 한민족의 당당한 패기를 지키게 되었다.
 
국가(왕조)의 온갖 혜택을 입었던 왕족, 대신, 고위 관료들이 친일파가 되어 민족을 배신할 때, 그는 산포수가 되고 의병이 되고 독립군이 되고 빨치산 대장이 되어 일제와 싸웠다. 그리고 1936년 스탈린에 쫓겨 머나먼 카자흐스탄까지 밀려갔다. 그곳에서 극장 수위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1943년 10월25일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75살을 일기로 숨졌다.
독립운동가인데도 아직까지 유해 봉환도 논의되지 않고, 교과서는 친일파들로 채워지는 시대가 되었다. 독립운동가들이 가족과 생명을 내걸고 일제와 싸울 때 친일의 대가로 자식을 건사했던 자들이 자자손손 출세하고 호강하는 사회가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친일 후손들만 보호할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면 안 되는가. 국가보훈처장은 권력에만 기웃거릴 것이 아니라 망각되어가는 항일투사들에게, 국사편찬위원장은 ‘독립운동을 훼방한’ 이승만에게만 넋을 빼앗길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에게 정신을 모으기 바란다.
일각에서는 홍범도가 레닌에게서 권총 등을 선물받은 것을 두고 ‘좌파 독립운동가’로 낙인하고 그의 공적을 비하한다. 이분들께 말한다. 일제강점기 좌우 이념 노선과 오늘의 북한 체제를 동일시하지 말 것을. 아울러 독립운동가보다 친일 경력자를 ‘건국의 아버지’ ‘부국의 아버지’ 따위로 추어올리는 몰역사·반역사의 곡필을 중단할 것을 바란다.
홍 장군의 묘역을 떠날 즈음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잘 가라는 이별의 눈물이었을까, 고국의 못난 후손들을 질책하는 눈물이었을까.
< 김삼웅 - 전 독립기념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