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닮은 꼴 역주행 망령

● 칼럼 2013. 9. 30. 10:58 Posted by SisaHan
근래 일본을 보면 한심하고 걱정스런 일들이 한 둘이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방사능 오염수가 인근 바다로 엄청난 양이 흘러나갔고, 수산물이 오염돼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국제사회에 오염수는 철저히 차단된다고 큰소리 쳐 올림픽을 유치한 것 까지는 원래 낯 두꺼운 사람들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이웃 여러 나라들이 자국의 수산물을 수입 금지시켰는데, 유독 최근린국인 한국에 대해서만 항의사절단을 파견하는 쇼를 부리고,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겠다는 둥 씩씩거리는 작태는 무엇인가. 참 가소로운 섬나라 근성이다.
과거사를 부인하고 깔아뭉개고 되돌리는 몰염치한 짓을 정부수반인 총리가 앞장서서 외친다. 오죽하면 여러 선진국들이 일본의 행태를 비난할까. 아베 총리 취임 1년이 가까워 오는데도 사상 유례없이 가장 가까운 이웃 한국과 중국과는 정상회담 조차 여태 못하고 있을 정도다. 
많은 사료와 증거들을 못 본체 외면하며 일제의 전쟁 성노예인 군대위안부 강제동원 사실마저 부인하고 묵살하는 ‘양심에 털난’ 총리가, 유엔총회에 나가서는 ‘여성인권’ 운운하는 연설을 하겠다고 벼른단다. 참 웃기는 이야기다.
 
그 총리 정부가 이번에는 수많은 조선인 징용자들의 피와 땀과 목숨이 절절이 찌들고 배어있을 태평양전쟁 당시의 군수공장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겠다고 나섰다. 과거 잘못을 두고두고 기억하자는 독일식 ‘사죄 기념물’이 아니라, 근대일본의 산업화를 상징하는 역사적 자산이라는 것이다. 참 뻔뻔한 이야기다. 
평화헌법을 고치겠다고 서둘고, 해외파병도 마음먹은 대로 하겠다는 집단적 자위권 발동에도 목을 맨다. 교과서 역사왜곡 문제나 야스쿠니 참배, 독도주장 같은 사안들은 이미 ‘옛 버전’이다. 일본의 우경화는 소극에서 적극으로, 당당하고 빠르게, 또 폭넓게 전개되고 있다. “해볼 테면 해보라, 우리 식대로, 우리 맘대로 달린다”는 마이 웨이 일본의 걱정스런 과거망령이 괴물처럼 내습하고 있다.
그런데, 국제규범도, 인간적 도덕과 양심도 내팽개치는 그 저질과 안하무인의 일본 극우병이 부러운 것일까. 아니면 요즘 자꾸만 커지는 외침들처럼 거기서 비롯된 혈맥이 흐르는 때문일까. 바로 한국 땅에도 그런 류의 몰염치·몰양식에 비민주적인 망발사례들이 늘어만 가고, 거리낌없이 닮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아무리 “일본을 넘지 못하는 아류국”이라고 스스로를 비하한다손 쳐도, 어떻게 우리가 그토록 혐오해온 일제망령과 수준이하의 모리배 정치를 따라하고 닮아 갈 수가 있는 것일까?
 
새로 내정된 국사편찬위원장이 가담했다는 뉴라이트 교과서라는 것은 그 간판 상품이다. 일본인이 쓴 것 같다고 할 정도라면 변명의 여지도 없다. 3.1정신과 임시정부와 4.19이념을 부정하면서, 일제에 의해 조선이 근대화됐다고 평가한다면, 일본의 우익들 주장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군사쿠데타와 유신과 독재를 불가피했다고 감싼다면, 조선병탄과 일제침략은 잘한 일이고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급 전범들이 당시엔 불가피했던 시대의 영웅이라며 기를 쓰고 참배하는 일본 극우의 그 것과 얼마나 다른가. 
지지율 착시 속에 오만불손한 정치도 오십보 백보다. 정보기관이 법과 원칙을 깔아뭉개고 선거와 정치에 개입한 일이 드러난 뒤에는 아예 ‘어쩔거냐’는 듯 정치를 쥐고 흔드는 모양이 됐다. 야당은 무시당하고, 정당하게 법대로 하겠다는 검찰총수를 편법으로 몰아내는 무리수에도 뻔뻔한 퇴물권력과 언론은 낯 두껍기만 하다. 
거짓을 거짓으로, 불법을 불법으로 막으려다 자꾸만 병소가 깊어지고 커진 꼴이다. 중앙정보부를 정치수단으로 삼았던 과거망령이 되살아난 것이다. 오죽하면 수많은 사제와 성도들이 시민에 합세해 서울광장에 몰려나와 장탄식의 외침으로 정의회복을 토해낼까. 
선거 때 국민 앞에 다짐했던 공약들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고, 전교조 취소를 공언하는 등, 국제사회 웃음을 살 일에도 거리낌이 없는 얼굴들, 정의가 짓밟히고 나라는 병들어 가는 데도 태평성대 찬양일색인 관변언론과 단체들만 설친다. 한-일의 닮은 꼴 역주행 망령이 정말 걱정스럽다.
 
< 김종천 편집인 >


2009년 6월 이명박 정부 아래서 국가기관이 공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여 민주주의의 정당성과 공정성을 약화시키자 239명의 북미 학자들이 한국의 민주주의 후퇴에 경종을 울리는 시국선언을 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지금, 또다시 205명의 북미와 유럽 학자들이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국가정보원을 규탄하고 개혁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9월18일치로 발표하였다.
사회적 쟁점이 생길 때마다 집단적인 시국선언을 하고 공동행동에 나서는 것은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이 있어서 나는 서명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 편이다. 촛불문화제라든가, 유모차를 밀고 나온 주부들의 발랄한 저항, 중고생들도 함께 하는 인터넷 캠페인이 그랬던 것처럼, 불의를 바로잡는 일도, 새로운 변화를 위한 운동도 이제는 좀더 참신하게, 좀더 느긋하게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정원의 대선공작과 부당한 정치개입으로 초래된 민주주의의 위기는 많은 사람들을 절망하게 하는 것 같다.
 
지난여름 내내 수천명에 이르는 국내외 학자와 교수들을 비롯해, 종교인, 지식인들이 시국선언을 하였고 무수한 사람들이 촛불을 들어 국정원의 개혁과, 법원·검찰의 중립을 요구하였다. 
반면 국정원은 대선개입 논란 와중에 도리어 엔엘엘(NLL) 대화록 요약본을 배포하여 쟁점을 돌리려 했고, 채동욱 검찰총장은 혼외자 추정 언론 보도와 법무부의 감찰 압박으로 사퇴를 하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공안의 고삐를 죄며 내란음모 사건을 만들었고, 민주 발전과 함께 건강한 변화를 추구해 온 법원마저 한명숙 전 총리의 무죄 판결을 번복하여 2년 실형을 선고하니, “이것은 아닌데”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
이번에 서명한 외국 교수 및 학자들 중에는 1970년대부터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꾸준히 발언해온 브루스 커밍스 교수와 에드워드 베이커 하버드 옌칭연구소 부소장의 이름이 보인다. 단 베이커는 광주 평화봉사단 활동 중 한국말을 배워서 지금도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한국 역사학 교수다. 조지 카치아피카스는 미국 68세대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질타하는 대표적 지식인이며, 박노자 교수는 청년 같은 열정으로 한국의 진보정신을 일깨운다. 한국의 중산층을 연구해온 구해근 교수, 한국 노동문제 전문가 제이미 두셋 교수, 제니퍼 전, 주디 한, 그리고 서재정 교수 등 진심으로 한국을 걱정하는 이들이 한마음으로 국정원의 개혁과 민주주의의 회복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결국 이 시국선언에 동참하기로 했다.
 
사실 한국의 민주화와 진보 운동은 추상적 이념보다 먼저 동시대를 사는 이들의 아픔을 덜기 위해 자신부터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정의에 대한 의무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손해가 있더라도 할 얘기는 하려는 그 사람들이 우리의 희망이었다. 한국을 사랑하는 많은 지식인들의 꾸짖음을 정부가 가벼이 여기지 않길 바란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무너져서는 안 된다. 국정원의 잘못된 행동을 방치하면 안 된다. 검사들이 권력의 입김에 휘둘리거나, 대한민국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정치의 눈치를 보게 하면 안 된다.
시국선언에 서명을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안타깝다. 독재의 시대에는 바위에 맨몸을 부딪치듯 절망적 투쟁이 필요했지만, 민주주의는 국민이 굳이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정부와 관청이 나서서 국민의 의사를 추스르는 사회여야 한다. 추석 연휴에도 노숙투쟁을 하는 야당, 13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쌍용차 노동자, 그리고 새로운 정치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외침. 이 아우성들이 불통의 벽에 막히지 않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여는 다른 길은 없을까.

< 백태웅 -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국사편찬위원회(국편)의 새 위원장에 유영익 한동대 석좌교수를 내정했다. 유씨는 편향된 이념적 사고틀에 갇힌 ‘이승만주의자’로, 학문적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갖춰야 할 국편 수장으로 적합하지 않다. 그의 내정은 철회돼야 마땅하다.
유씨는 4.19 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가장 유능했던 독립운동가, 탁월한 외교가, 대한민국의 설계자’로 부각시키는 연구에 집중해온 사람이다.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은 하느님과 밤새도록 씨름한 끝에 드디어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낸 야곱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위업”이라고 했을 정도다. 이런 역사관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4.19 혁명의 정신을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규정한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이런 사람이 ‘우리나라 유일의 국립 사료편찬기관이자 한국사연구기관’이며 역사교과서 검정까지 책임지는 국편의 수장이 된다면 연구자들과 국민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유씨는 이명박 정부가 2008년 건국절을 추진할 때 역사학계에서 이를 앞장서서 지지하고 추진한 정치색이 강한 학자다. 그는 친일·독재를 미화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뉴라이트 성향 교과서포럼의 고문으로 ‘대안교과서’를 감수했고, 뉴라이트들이 중심이 돼 2011년 결성한 한국현대사학회의 고문을 맡고 있다. 그는 얼마 전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백년전쟁>과 관련해 이승만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김일성 찬양’으로 몰아가는 공안적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뉴라이트 성향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교학사)의 내용은 교과서포럼 및 한국현대사학회의 주장과 동일하다. 교학사 교과서는 대안교과서의 확장·수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교과서 모두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를 미화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와 주요 친일인사들의 행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교학사 교과서가 일선 학교에서 사용된다면 우리가 일본 쪽에 역사왜곡에 대해 항의할 근거조차 취약해질 것으로 학계 인사들은 내다본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유씨의 국편 위원장 임명을 강행한다면, 교학사 교과서를 무리하게 합격시킨 국편을 옹호하고 역사왜곡에 힘을 실어주는 일이 될 뿐이다.
 
유씨는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국편 위원장으로 맞지 않는다. 하지만 청와대 쪽은 유씨에 대해 “사료 수집과 보존, 연구 등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올바르게 정립하는 역할을 담당할 국사편찬위원장으로 적임”이라고 했다.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는 더 늦기 전에 잘못을 바로잡기 바란다.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에서 검찰이 기소유예한 국정원 고위간부 2명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도록 법원이 23일 검찰에 명령했다. 민주당이 검찰의 결정에 불복해 낸 재정신청을 서울고법이 받아들인 것이다. 기소단계부터 청와대와 법무부의 외압으로 검찰이 소신껏 처리하지 못했던 터라 법원의 이번 결정은 늦었지만 당연한 귀결이다.
앞으로 검찰이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에 대한 기소절차를 밟겠지만, 애초의 대선개입 사건이 제대로 마무리되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아직도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난해 대선 때 새누리당 대선캠프와 국정원의 조직적 연계 의혹은 이대로 덮고 넘어갈 수 없다. 새누리당 대선캠프를 이끌던 김무성·권영세씨의 의문의 행적뿐 아니라 최근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한 여당과 국정원 공조 의혹까지 제기된 바 있다. 국정원 심리정보국 직원 이 모씨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박근혜 후보 대선캠프 공식 트위터가 작성한 글이 여러 차례 전파되고, ‘십알단’ 윤정훈 씨가 리트위트한 글이 다시 리트위트되기도 했다. 검찰은 국정원 직원들이 운영한 트위터 계정 402개를 철저히 조사해 조직적 대선개입 음모를 파헤치는 데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또 법원의 재정신청 수용을 계기로 댓글 공작 관련자들에 대한 처리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법원은 김하영씨 등 3명에 대해 “상급자 지시 등에 따라 가담하게 된 점”을 참작해 재정신청을 기각한다며 “일부 수사가 진행중인 점 등을 고려”한다고 덧붙였다. 검찰이 수사결과에 따라 처리하도록 여지를 둔 것이다. 기록상 드러난 이들의 행위를 보면 애초 기소하지 않은 것이 검찰의 권한남용에 가깝다. 상부 지시 없이 스스로 자신이 쓴 댓글을 삭제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을 뿐 아니라 심리전단 간부의 신원을 감추기 위해 경찰에서 허위진술을 하기도 했다. 국회 청문회에 이어 법정에서도 여전히 대북심리전이었다고 강변하며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있는데도 선처를 고집한다면 검찰이 불법을 조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파문으로 이 사건의 실체 규명 작업도 어려움에 직면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3자회담 발언을 통해 이른바 ‘채동욱 찍어내기’의 배후가 자신이었음을 사실상 자인했다. 그러나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정보기관이 선거에 뛰어든 명백한 국기문란 사건을 덮을 권한은 없다. 대통령의 노골적인 압력에 직면해 판검사들이 어떻게 처신하는지 국민들은 엄정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