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과 극우정치가 초래한 민주공화정의 위기

● COREA 2026. 7. 21. 11:57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빅테크·금융·인공지능 시대가 제기하는 도전
기술혁명보다 권력 이동 방식의 변화 주목해야
초국적 빅테크들이 새로운 올리가르키로 등장

 

민주적 정당성 없는 권력이 시민의 삶 좌우
새로운 권력에 대한 시민의 민주적 통제 과제

 

2026년 6월 29일, 청와대에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상징하는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삼성그룹 이재용 회장,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한자리에 모여 반도체와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국가 미래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정부와 기업은 첨단 반도체와 AI 산업을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으로 제시하며 장기적으로 수천조 원 규모에 이르는 투자와 국가적 실행계획을 함께 내놓았습니다(MBC, 2026.6.29.; 한겨레, 2026.6.30.). 이재명 대통령은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두 기업의 총수에게 "국민 영웅"이라며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산업정책 발표를 넘어, 오늘 우리가 맞이한 시대의 권력구조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오늘날 삼성전자의 경제적 영향력은 웬만한 국가의 재정 규모와 비교될 정도로 커졌고, 세계적인 플랫폼 기업들은 경제를 넘어 외교와 안보, 정보와 여론 형성에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세계적 기업의 총수가 국가의 미래를 함께 논의하는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로 그 현실은 우리에게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처럼 거대해진 새로운 권력은 과연 민주적 통제와 시민적 책임이라는 원리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가.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업 투자계획 발표 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최태원 SK그룹 회장. 2026.6.29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

 

이 질문은 대한민국만의 고민이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거대 기술기업들이 국가정책과 안보, 외교, 공론장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이른바 '빅테크 올리가르키(Big Tech Oligarchy)'라는 표현이 정치학계와 언론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권력은 더 이상 국가 안에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금융과 플랫폼, 데이터와 인공지능, 그리고 군사기술이 서로 결합하면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권력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술의 발전 자체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은 대한민국이 반드시 확보해야 할 미래 국가경쟁력입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권력입니다. 민주공화주의는 역사 속에서 새로운 권력이 등장할 때마다 그것을 시민의 통제 아래 두기 위한 원리와 제도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렇다면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권력이 등장한 오늘, 민주공화주의는 어떤 방식으로 다시 스스로를 발전시켜야 할까요.

 

민주공화주의는 절대군주정에 맞서 국민주권이라는 원리를 확립했고, 20세기 전체주의의 참사를 거치며 인간존엄을 헌정질서의 핵심 원리로 받아들이며 확장해 왔습니다. 이제 인류는 또 하나의 역사적 전환점 앞에 서 있습니다. 금융과 플랫폼,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권력은 기존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전제했던 권력의 형태를 빠른 속도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 앞에서 민주공화주의는 또 어떤 새로운 원리를 발전시켜야 할까요.

 

이번 칼럼에서는 새로운 권력이 민주공화주의를 왜 다시 시험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민주공화주의는 언제나 시대가 만들어 낸 새로운 권력에 응답하며 스스로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마주한 새로운 권력 앞에서도 민주공화주의는 다시 한 번 스스로를 확장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번 글에서는 새로운 권력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왜 민주공화주의의 새로운 과제가 되었는지를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 새로운 권력은 어떻게 민주공화주의를 다시 시험하는가

 

앞선 세 편의 칼럼에서 살펴보았듯, 민주공화주의는 국민주권에서 인간존엄으로 스스로를 확장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민주공화주의는 어느 한 시대에 완성된 정치철학이 아닙니다. 시대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권력에 응답하며 스스로를 성찰하고 발전시켜 온 살아 있는 헌정질서입니다. 권력의 모습이 바뀌면 민주공화주의가 감당해야 할 과제도 달라집니다. 오늘날 민주공화주의가 다시 새로운 질문 앞에 서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먼저 이 글에서 말하는 민주공화주의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분명히 해두고자 합니다. 정치철학에서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서로 다른 전통으로 연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정당성과 주권의 주체를 묻고, 공화주의는 그 권력이 누구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행사되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글에서 두 전통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이 선언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문장 역시 국민주권과 권력통제라는 두 원리가 결합된 하나의 헌정질서를 뜻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 말하는 민주공화주의란 국민이 권력의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와, 그 권력이 시민 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공화주의가 결합된 현대의 헌정질서를 의미합니다. 민주주의가 권력의 주인을 결정하는 원리라면, 공화주의는 그 권력이 사유화되지 않고 공공선을 위해 행사되도록 만드는 운영원리입니다. 저는 민주공화주의를 이 두 원리가 결합하여 하나의 질서로 작동하는 살아 있는 헌정질서로 이해합니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는 서로 경쟁하는 이념이 아닙니다. 하나의 헌정질서를 떠받치는 두 개의 날개입니다. 새가 좌우의 날개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하늘을 날 수 있듯, 민주공화주의 역시 국민주권과 권력통제라는 두 원리가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제 기능을 발휘합니다. 다만 두 날개가 언제나 같은 힘으로 움직였던 것은 아닙니다. 시대마다 민주공화주의가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18세기와 19세기 민주혁명의 시대에는 절대군주와 세습권력으로부터 권력의 주인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일이 가장 시급했습니다. 그래서 민주공화주의는 국민주권을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인류는 또 다른 비극을 경험했습니다. 국민의 이름으로 권력을 장악한 전체주의 국가는 인간의 존엄 자체를 부정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집단학살은 국민주권만으로는 인간을 끝까지 지켜낼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결과 전후 세계는 인간존엄을 민주공화주의의 핵심 원리로 받아들였고, 세계인권선언과 각국의 헌정질서는 이를 새로운 시대의 기준으로 제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민주공화주의가 하나의 원리를 버리고 다른 원리로 옮겨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국민주권은 인간존엄으로 대체된 것이 아니었고, 인간존엄 역시 국민주권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가치가 아니었습니다. 국민주권은 인간존엄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토대가 되었고, 인간존엄은 국민주권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밝혀 주었습니다. 민주공화주의의 역사는 앞선 가치를 폐기해 온 역사가 아닙니다. 시대가 던지는 새로운 질문에 응답하며 기존의 원리를 더욱 성숙시키고, 그 위에 새로운 원리를 차곡차곡 쌓아 올려 온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공화주의는 완성된 정치철학이 아니라 시대와 함께 진화하는 살아 있는 헌정질서입니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새로운 권력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국민주권과 인간존엄을 부정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두 원리를 더욱 굳건히 지키기 위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 새로운 권력을 어떻게 시민의 민주적 통제 아래 둘 것인가를 묻는 데 있습니다. 민주공화주의가 다시 새로운 시대적 질문 앞에 서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새로운 권력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새로운 권력은 하루아침에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세계경제와 국제질서를 뒤흔든 거대한 변화가 축적되면서 지금의 새로운 권력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그 출발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극심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 직면한 미국과 영국은 기존의 경제정책만으로는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해법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였습니다. 시장의 자유를 확대하고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는 정책은 곧 미국과 영국을 넘어 세계경제의 새로운 질서로 확산되었습니다.

 

이어 냉전이 종식되면서 세계는 하나의 시장으로 빠르게 통합되었습니다. 자본과 상품, 기술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었고, 초국적 기업들은 세계를 하나의 생산기지이자 하나의 시장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자유와 번영을 약속했고, 세계화는 인류에게 더 큰 성장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확대될수록 그 성과는 사회 전체에 고르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세계경제가 만들어 낸 부는 점차 초국적 금융자본과 거대 기업으로 집중되기 시작했고, 미국은 제조업과 중산층이라는 산업국가의 기반을 서서히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기업들은 생산비 절감을 위해 제조시설을 해외로 이전했고, 금융시장은 실물경제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팽창했습니다. 세계화는 막대한 부를 창출했지만, 그 혜택은 사회 전체보다 소수의 초국적 자본에 더욱 집중되었습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는 미국 경제를 떠받쳐 온 산업국가의 기본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제조업은 해외로 이전했고, 금융은 실물경제를 압도했습니다. 중산층은 약화되었으며 소득과 자산은 극소수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산업도시는 쇠퇴했고 지역 간 격차와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직면한 경제적·사회적 위기와 정치적 분열 역시 이러한 구조적 변화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심각했던 변화는 공동체의 해체였습니다. 제조업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이었습니다. 공장이 사라지자 안정적인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중산층은 급격히 약화되었습니다. 지역경제는 활력을 잃었으며 공동체는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상실감과 사회적 불안은 기존 정치와 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훗날 미국 정치의 극단적 양극화와 포퓰리즘이 성장하는 중요한 토양이 되었습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Global Financial Crisis)는 이러한 모순을 한꺼번에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규제 없는 금융시장과 시장만능주의는 세계경제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었고, 신자유주의는 더 이상 인류의 보편적 발전모델이라는 시대적 정당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흔들렸다고 해서 권력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권력은 새로운 형태를 찾아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금융자본은 가장 높은 수익을 찾아 새로운 시장으로 향했고, 바로 그 무렵 인류는 인터넷과 디지털 혁명이라는 또 하나의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새로운 권력은 바로 이 두 흐름, 곧 신자유주의가 남긴 금융자본의 집중과 디지털 기술혁명이 서로 결합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 새로운 권력은 어떻게 민주공화주의를 다시 시험하는가

 

오늘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기술혁명 자체가 아닙니다. 권력이 이동하는 방식의 변화입니다. 1980년대 이후 세계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었습니다. 시장의 자유는 확대되었고 금융자본은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생산보다 금융이, 국가보다 시장이, 정부보다 초국적 자본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경제의 성장과 기술혁신을 촉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권력의 중심축을 국가에서 초국적 자본으로 이동시키는 역사적 전환이기도 했습니다.

 

 

2025년 1월 20일 미국 워싱턴 D.C. 연방의회 의사당(United States Capitol) 로툰다(Rotunda)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의 제2기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빅테크 CEO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이러한 질서의 구조적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계는 금융 중심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재편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대규모 공적자금을 동원해 금융권을 구제했지만, 수백만 명의 실업자와 파산자가 겪은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금융위기의 대가는 거대 금융기관보다 시민과 노동자, 그리고 중산층이 먼저 떠안았습니다. 제조업 공동화와 지역경제의 쇠퇴, 소득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고, 기존 정치에 대한 시민의 불신 역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막대한 금융자본은 다시 디지털 플랫폼과 인공지능 산업으로 이동했습니다. 데이터는 새로운 생산수단이자 새로운 권력의 원천이 되었고, 알고리즘은 정보를 전달하는 기술을 넘어 인간의 선택과 행동을 예측하고 조직하는 권력으로 발전했습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 역시 더 이상 하나의 산업기술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제 그것은 경제와 안보, 외교와 군사, 언론과 교육, 나아가 시민의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권력의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권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동했습니다. 국가에서 시장으로, 시장에서 금융으로, 다시 플랫폼과 인공지능으로 권력의 중심축이 옮겨지고 있는 것입니다. 민주공화주의가 다시 새로운 질문 앞에 서게 된 이유도 바로 이 역사적 변화 속에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최근 정치학과 언론에서는 '빅테크 올리가르키(Big Tech Oligarchy)'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빅테크 올리가르키란 민주적 선출이나 시민의 통제를 거치지 않은 소수의 거대 기술기업이 금융자본과 결합하여 경제와 정보, 안보와 외교, 공론장에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과두권력을 의미합니다.

 

민주공화주의의 관점에서 문제는 기업의 성공이 아닙니다.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지 않은 권력이 시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습니다. 절대군주정의 시대에는 왕권이 권력을 독점했습니다. 20세기에는 전체주의 국가가 인간의 존엄을 위협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신자유주의 이후 금융과 플랫폼, 인공지능과 군사기술, 그리고 극우 정치가 결합하여 형성한 새로운 초국적 권력질서 앞에서 민주공화주의는 어떤 원리로 다시 스스로를 발전시켜야 할까요. 이제 우리는 그 질문에 답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 민주공화주의는 왜 다시 위기를 맞고 있는가

 

미국의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 1968~)와 대니얼 지블랫(Daniel Ziblatt, 1972~)은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2018)에서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민주공화주의를 위협하는 새로운 권력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 학자는 현대 민주주의는 더 이상 군사쿠데타나 혁명으로만 붕괴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권력을 획득한 세력이 민주주의의 규범과 제도를 조금씩 잠식하면서 내부에서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적은 민주주의 밖이 아니라 민주주의 안에서 등장할 수도 있다는 경고였습니다.

 

저는 이 질문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조금 바꾸어 묻고자 합니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 이후 민주공화주의는 왜 다시 위기를 맞고 있는가?"

제가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공화주의를 묻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오늘날 흔들리는 것은 선거제도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민이 권력의 주인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와, 그 권력이 시민 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공화주의의 원리가 동시에 시험받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가 마주한 위기는 민주주의만의 위기도, 공화주의만의 위기도 아닙니다. 민주공화주의라는 헌정질서 전체가 새로운 권력 앞에서 시험받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신자유주의는 국가보다 시장을, 공공성보다 효율성을 우선하는 세계질서를 확산시키며 권력의 중심을 국가에서 금융과 초국적 자본, 그리고 플랫폼과 인공지능으로 이동시켰습니다. 문제는 권력이 이동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민주공화주의를 떠받쳐 온 공공성과 사회적 신뢰, 그리고 시민의 민주적 통제가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시민들이 경험한 것은 단순한 경기침체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삶을 개선하기 어렵다는 좌절감, 기성 정치가 자신들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상실감, 공동체가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기존 정치와 제도에 대한 신뢰는 흔들렸고, 시민들은 민주주의가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깊은 회의를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경제적 불안이 민주주의의 성숙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불안과 분노를 가장 빠르게 조직한 것은 극우 정치였습니다.

미국에서는 티파티 운동이 등장했고, 이후 MAGA로 대표되는 새로운 극우 포퓰리즘이 성장했습니다. 정치학자 야샤 몽크(Yascha Mounk, 1982~)는 『국민 대 민주주의(The People vs. Democracy)』(2018)에서 경제적 불안과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이 포퓰리즘 성장의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극우는 과거와도 다릅니다. 과거의 극우가 정당과 집회, 전통 언론을 통해 대중을 동원했다면, 오늘날의 극우는 플랫폼과 알고리즘, 인공지능을 통해 시민의 감정과 분노를 실시간으로 조직합니다. 경제적 불안은 문화전쟁으로 번역되고, 사회경제적 문제는 정체성의 문제로 치환됩니다. 분노는 정치적 자원이 되고, 플랫폼은 그 분노를 증폭시키는 새로운 정치기계가 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레비츠키와 지블랫의 질문은 민주공화주의를 향한 질문으로 확장됩니다.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민주공화주의 역시 선거제도나 권력분립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떠받치는 시민적 신뢰와 공공성, 공동체의 규범이 함께 약화될 때 민주공화주의는 내부로부터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극우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히 정권교체를 추구하거나 기존 정치세력을 비판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민주공화주의를 떠받치는 공동체의 규범과 공적 권위를 지속적으로 약화시키는 데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거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고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부정하려는 시도는 단순한 역사 논쟁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 선거부정론과 음모론, 문화전쟁이 확산되는 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정치의 공통점은 시민들이 함께 신뢰해야 할 역사와 제도, 공적 권위와 헌정질서의 정당성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킨다는 데 있습니다. 공동체가 공유하는 규범이 무너지면 공론장이 무너집니다. 공론장이 무너지면 시민은 더 이상 사실과 거짓을 기준으로 판단하기보다 자신이 속한 진영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민주주의의 한쪽 날개와 공화주의의 다른 한쪽 날개가 동시에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앞에서 민주공화주의를 하나의 헌정질서를 떠받치는 두 개의 날개에 비유했습니다. 오늘날의 위기는 어느 한쪽 날개의 문제가 아닙니다. 허위정보와 음모론, 알고리즘이 증폭시키는 인지전은 국민주권이라는 민주주의의 날개를 약화시키고, 민주적 통제를 벗어난 초국적 기술권력과 플랫폼 권력은 공화주의의 날개를 흔듭니다. 두 날개 가운데 어느 하나만 약해져도 민주공화주의는 제대로 날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위기가 민주주의만의 위기도, 공화주의만의 위기도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025년 『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 디지털 뉴스 보고서』(Reuters Institute Digital News Report, 2025)는 플랫폼과 인공지능이 뉴스 소비와 공론장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이 급속히 확대되는 가운데 허위정보와 신뢰의 위기가 민주주의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Reuters Institute, 2025). 이것은 단순한 언론환경의 변화가 아닙니다. 시민이 무엇을 사실로 믿고 무엇을 공공의 기준으로 받아들일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 자체가 플랫폼과 알고리즘의 영향 아래 놓이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오늘날 민주공화주의가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위기는 기술혁명이 아닙니다. 권력의 이동입니다. 그리고 그 권력을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아직 충분히 시민의 통제 아래 두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절대군주정 앞에서 민주공화주의는 국민주권이라는 원리를 발전시켰고, 전체주의 앞에서는 인간존엄이라는 원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금융과 플랫폼, 인공지능과 군사기술이 결합한 새로운 권력 앞에서는 어떠한 원리가 필요할까요.

 

저는 이제 민주공화주의가 세 번째 역사적 확장을 요구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주권이 국가의 주인을 국민으로 바꾸었다면, 인간존엄은 국가의 존재 이유를 인간에게 두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새로운 권력은 더 이상 국가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 역시 시민의 자유와 선택, 공론장과 국가의 미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민주공화주의는 이러한 새로운 권력 역시 시민의 민주적 통제 아래 둘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그 해답을 아일랜드의 정치철학자 필립 페팃(Philip Pettit, 1945~)이 제시한 비지배(non-domination)​의 원리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민주공화주의는 언제나 새로운 권력에 응답하며 스스로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권력의 시대에 걸맞은 민주공화주의의 세 번째 역사적 확장을 함께 모색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민주공화주의는 언제나 새로운 권력에 맞서 스스로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오늘날 우리 앞에 놓인 과제 역시 그 역사적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 이병권 인문연구가 >

인권위 먹칠 안창호, 끝내 벽창호로 남을 것인가

● COREA 2026. 7. 19. 02:49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홍순구 만평작가의 ’동그라미 생각‘

인권위 신뢰 추락시키고 제헌절 경축식 참석에 거센 사퇴요구 

 

안창호 위원장에게 공직자로서의 마지막 책무 인식과 양심이 남아 있다면, 이제는 국민 앞에 책임을 인정하고 용퇴를 결단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독립기관이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동일한 인권의 기준을 적용하며 오직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 보호라는 본연의 가치보다 정치적 편향성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올해 제헌절, 그 논란의 한가운데에는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이 있었다. 국회 경축식에 참석한 그를 향해 쏟아진 것은 환영의 박수가 아니라 거센 사퇴 요구였다. 인권단체와 국가인권위원회의 노동조합은 물론, 인권교육운영과 소속 직원 8명까지 내부 게시판을 통해 공개적으로 그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위원장이 조직 내 신뢰를 잃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안 위원장의 용퇴야말로 인권위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라고 밝혔다.

 

국가기관에서 내부 직원들이 기관장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인권 교육을 담당하는 실무진이 조직의 신뢰 상실을 공식적으로 지적했다는 점은, 이번 사태를 단순한 정치적 공방으로 치부하기 어렵게 만든다.

 

안 위원장을 둘러싼 논란은 갑작스럽게 시작된 것이 아니다. 내란을 저지른 전직 대통령의 방어권 관련 권고안 의결 과정에서 불거진 정치적 편향성 논란, 그리고 이후 해당 권고안을 폐기하고 사과하는 안건을 상정하지 않은 태도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중립성과 독립성에 심각한 의문을 남겼다. 이러한 상황에 제헌절 행사에 참석한 그의 모습은 헌법의 권위를 세우려는 행보라기보다, 공적 책임에 대한 아무런 성찰 없이 직위만 유지하려는 모습으로 비쳤다.

 

안 위원장의 법정 임기는 2027년 9월 5일까지다. 그러나 법이 보장하는 것은 임기일 뿐, 국민과 조직 구성원의 신뢰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공직의 정당성은 남은 임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에서 비롯된다. 조직 구성원과 시민사회가 공개적으로 불신을 표명하는 상황이라면, 필요한 것은 임기를 앞세운 버티기가 아니라 왜 이러한 목소리가 나오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성찰이다.

 

안창호 위원장에게 공직자로서의 마지막 책무 인식과 양심이 남아 있다면, 이제는 국민 앞에 책임을 인정하고 용퇴를 결단해야 한다.                           < 홍순구 기자 >

 

같은 혐의 전무곤 전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 구속영장 기각이어 또,

 
12·3 비상계엄 내란 가담 및 즉시항고 포기 관련 직권남용 의혹을 받는 심우정 전 검찰총장이 16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

 

12·3 비상계엄 당시 내란에 가담한 혐의 등을 받는 심우정 전 검찰총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부동식 내란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6일 심 전 총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 변소 취지, 수집된 증거 등에 비추어 증거 인멸의 염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고, 수사 및 재판 중 사건 진행 상황 등에 비추어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같은 혐의를 받는 전무곤 전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의 구속영장 역시 기각됐다. 앞서 3대 특검 잔여 사건을 수사하는 권창영 특별검사팀은 지난 14일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등으로 심 전 총장과 전 전 기조부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바 있다.

 

심 전 총장은 계엄 선포 당일인 2024년 12월3일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지시로 계엄 합동수사본부에 검사 파견을 검토한 혐의(내란 중요임무 종사)를 받는다. 박 전 장관은 같은 날 밤 법무부 간부회의에서 ‘합동수사본부에 검사 파견을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오후 11시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심 전 총장과 3차례 통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두고 박 전 장관이 당시 심 전 총장에게도 관련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종합특검팀은 계엄 선포 직후 대검의 ‘비상계엄 아래 재판 관할’ 문건 작성 과정에도 심 전 총장과 전 전 기조부장이 관여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심 전 총장에게는 지난해 3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당시 재판장 지귀연)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을 취소하자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에 즉시항고를 포기하도록 한 혐의(직권남용)도 적용됐다. 당시 검찰 특수본은 즉시항고를 통해 상급심 판단을 받아보자는 입장이었지만, 심 전 총장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즉시항고를 제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종합특검팀은 ‘김건희 씨 수사 무마’ 의혹과 관련해서도 심 전 총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 중이다. 종합특검팀은 서울중앙지검이 김건희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디올 가방 수수 의혹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김 씨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무혐의 처분하는 데 심 전 총장이 관여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 김지은 기자 >

 

"예외적 허용" 여당 소수 의견이지만 확산 기류
여성단체와 피해자들의 호소, 여론조사 등 영향
"폐지 입장 변화 없지만 우려 반영해야" 항변도
백낙청 "여성단체들의 존속 주장 이해 힘들어"


"경찰 못 미덥다고 검찰 수사권 살려두면 안 돼"
한인섭 "보완수사권이 피해자 보호 방안? 잘못"
서보학 "검사가 사회적 약자 편? 참 웃긴 얘기"
정부는 고강도 경찰 비리 근절, 통제 강화 발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유튜브 '백낙청TV' 방송 화면 갈무리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한 신중론이 점점 고개를 들자 검찰 부활의 그 어떤 불씨도 남겨선 안 된다며 철저한 개혁을 요구하는 학계 및 법조계 인사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물론 여당에서도 보완수사권 전면 존치를 주장하는 의원은 없다. 성폭력·아동학대·스토킹 등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와 보이스피싱·다단계 등 민생 범죄에 관해 보완수사권을 남기자면서도 그 범위가 모호하고 검사에 의해 악용 가능성이 높아 가장 문제가 되는 홍기원 의원의 형소법 개정안은 홍 의원을 포함해 불과 11명이 공동 발의해 법안 발의 최저 요건인 10명을 겨우 넘겼다. 일각에서는 '외교관 출신인 홍 의원이 법안을 주도한 것 같진 않다'며 배후를 의심하기도 하지만 홍 의원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공부를 정말 많이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대한변호사협회 의견도 들었다"며 "월요일(13일) 아침에 개정안을 들고 의원실을 찾아다니면서 직접 설득했다"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노동자회, 장애여성공감 등 6개 여성단체가 "형사소송법 개정이 피해자에게 개악이면 안 된다"며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동참해 항의 문자 폭탄을 받고 있는 김동아 의원의 경우 "보완수사권 폐지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해명하면서 "여성과 장애인 등 피해자 단체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우려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이 왜곡되는 상황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항변한 바 있다. 진보당 손솔 의원도 "기자회견에 참석한 저를 두고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에 반대했다고 여러 차례 단정했다. 사실이 아니다"라며 "검찰의 과도한 권한을 끝내는 개혁과 피해자의 권리를 더 강하게 보장하는 개혁은 함께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미 지난달 25일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를 정부 입장으로 최종 정리했다"고 공식 발표한 정부 방침이 달라진 것도 아니다. 대다수 언론의 집중포화 속에서 바통을 이어받은 민주당 역시 지난 9일 보완수사권은 폐지하고 보완수사 '요구권'을 강화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경찰의 '장윤기 사건' 축소·은폐 파문을 계기로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여론의 반발이 크니 보완수사를 예외적으로 허용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는 기류여서 이러다 완전 폐지는 물 건너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는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더불어민주당 김남희, 김동아 의원, 진보당 손솔 의원과 함께 13일 국회 소통관에서 '검찰개혁에 따른 형사소송법 개정에 대한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단체 기자회견'을 열고 "형사소송법 개정이 피해자에게 개악이 돼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2026.7.13. 연합

 

앞서 거론한 국내 대표적 여성단체들의 반대, 부산 돌려차기 사건과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등 강력범죄 피해자 및 유족들의 잇딴 호소, 보완수사권 유지 응답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오는 여론조사들, 민변 변호사들조차 다수가 보완수사권을 일부 또는 전부 존치해야 한다는 의견 조사 결과가 공개된 점 등이 민주당 의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 '검수완박'을 조속히 확실하게 매듭짓길 고대하는 이들의 불안감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한병도 원내대표는 14일 민주당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를 골자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검찰개혁 '마지막 퍼즐'을 완성해야 한다"고 공언했지만 결과를 낙관할 수 없는 국면이다.

 

이에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15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검찰의 수사권 박탈을 확인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이 마지막 고비에 이르렀다.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 '신중'론이 대두하고 있지만 김용민 민주당 의원과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이 나름 섬세한 보완책을 담아서 공동 발의한 원안이 최종 확정되기를 믿고 기대한다"며 한겨레 이재성 논설위원의 칼럼 <수사권 없는 공소청이 '경찰 통제' 더 잘한다> 링크를 공유했다.

 

백 교수는 이어 "개혁적인 여성단체들이 검찰의 보완수사권 일부 존속을 주장하고 나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성범죄 사건에 둔감하기로는 경찰이나 검찰이나 사법부나 대동소이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이 땅 기득권자들의 뿌리 깊은 관행인데, 앞으로 수사 당국과 공소 당국, 재판부, 그리고 여성단체를 포함한 시민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개선하고 끝내 뿌리를 뽑아야 할 과제다. 경찰이 미덥지 않다고 검찰의 수사권을 어떤 형식으로든 살려놓자는 근시안적 판단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소위 '추-윤 갈등' 때를 비롯해 오랫동안 다른 기성 언론들과 마찬가지로 '검찰 받아쓰기'와 '친검' 논조로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백 교수가 거론한 이재성 논설위원은 검찰개혁을 강하게 주장해온 몇 안 되는 내부 필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 논설위원은 해당 칼럼에서 "검찰과 국민의힘과 다수 언론은 보완수사권이 사라지면 '장윤기 사건' 같은 경찰의 부실 수사와 사건 암장을 걸러낼 수 없을 것처럼 선동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라며 "수사기관의 수사를 법적으로 심사하고 통제하는 기소 기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으므로 더 유능한 게이트키퍼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형사소송법 개정에 대한 반발이 계속되는 핵심 이유는 성폭력을 비롯한 각종 형사 사건에서 피해자가 소외되는 제도의 한계, 피해자를 외면하는 수사기관의 태도에 있다. 검찰 해체로 인해 새로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장윤기 관련 증거인멸 및 축소 수사는 이른바 '제 식구 봐주기'라는 권력기관 범죄의 전형인데, 검찰이 이 분야의 '끝판왕'이라는 사실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호·김용민·서영교 의원과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이 26일 국회 소통관에서 검찰개혁과 관련해 형사소송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6.6.26. 연합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찰 수사 내부비리 근절 및 민주적 통제 강화 관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과 홍석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도 배석했다. 2026.7.16. 연합

 

백 교수가 언급한 대로 검사의 수사 및 보완수사권을 완전 삭제하면서도 '섬세한 보완책'을 담은 형사소송법 전면 개정안은 이미 마련돼 있다. 지난달 26일 민주당 김용민,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서영교·김영호·최혁진 의원 등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한 개정안은 검사의 수사 및 보완수사권을 규정한 형소법 제196조를 통째로 삭제하는 대신 같은 조항 번호에 '수사인권보호관' 규정을 신설하는 등 시민사회에서 숙의해온 내용들을 대거 반영하고 있다. 민주당이 9일 당 차원에서 발의한 법안도 경찰 수사권 남용을 통제할 다양한 대안을 담고 있고 국회 법사위에서 법안 심사를 통해 추가적인 보완책 또한 논의 중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보완수사권 폐지를 전제로 공소청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 권한을 확대하는 등 경찰 수사에 대한 통제를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전방위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찰의 장윤기 사건 은폐를 공식 사과하며 '경찰 수사 내부비리 근절 및 민주적 통제 강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는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과 홍석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도 배석했다.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가 아닌 보완수사 요구권만으로도 경찰 수사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담화문을 통해 정부는 ▲경찰관 배우자, 직계 존·비속 사건에 대한 자진신고 및 상피제를 통해 제 식구 감싸기 관행 근원적 차단 ▲경찰관 연고지 유착 문제를 뿌리뽑기 위해 순환인사제 전면 도입 ▲국가수사본부장 직속으로 '내부비리수사대' 가동 ▲민간 조사관 중심으로 외부 감시·통제를 맡을 100여 명 규모의 '경찰 수사 인권 감찰·조사기구'를 국가경찰위원회에 설치 ▲경찰이 공소청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를 이행하지 않아 공정한 수사 진행이 어려울 경우 검사에게 수사팀이나 수사관서 교체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 부여 ▲공소시효 임박 등 중요 사건에 대해 공소청 검사의 합동협력수사 요청이 있을 경우 즉시 응하도록 제도화 등을 제시했다.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검사 권력 오남용 사례로 본 형사소송법 개정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와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함께 앉아 있다. 유튜브 '김용민의원 민트TV' 방송 화면 갈무리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검사 권력 오남용 사례로 본 형사소송법 개정 토론회'에서는 보완수사권 존치 논리의 허구성을 다각도로 비판하는 전문가들의 발제가 이어졌다. 토론회 좌장 및 사회를 맡은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범죄 피해자 보호는 아주 중요한데 그 피해자 보호를 보완수사권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은 너무 잘못된 것”이라며 “검찰개혁이 촉발된 것은 검찰 수사가 누적된 적폐를 만들어내고 윤석열 내란으로까지 이어졌기 때문인데 지금 검찰 수사의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는 싹 사라지고 경찰 수사의 문제점을 매일같이 1건씩 올리는 언론 플레이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검사의 영장 청구 검토 및 보완수사 요구 실질화 ▲경찰이 관여된 사건은 중수청이 수사 ▲독립기관으로 수사인권보호관 도입 ▲수사 과정의 영상 녹화 전면화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 완비 등 경찰 수사권 남용 견제를 위한 실효성 높은 방안들을 제시한 뒤 "범죄 피해자 보호에 대해 그동안 이론적 발전이 많이 됐고 연구와 논의가 한 30년 쌓여 있지만 보완수사권이 방안으로 언급된 경우는 전혀 없었다"고 단언했다. 아울러 안전권, 인격권, 알권리, 참여권, 조력권, 이의제기권 등 피해자의 6가지 권리를 열거하면서 "피해자 보호는 검찰의 보완수사 단계에서 비로소 등장하는 것이 아니고 경찰 수사의 첫 단계부터 수사의 마지막까지, 그리고 법원의 공판 절차 전체에 걸쳐 관철돼야 할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보완수사를 포함해 검찰의 사건 날조와 암장 등 수사권 남용 사례를 조목조목 짚으며 "검사가 사회적 약자의 편이라고 내세우는 건 참 웃긴 얘기"라고 일축했다. 서 교수의 발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문지석 검사가 2025년 10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고용노동부에 대한 기후에너지환경고용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검찰 지휘부가 핵심 증거를 누락해 '쿠팡 일용직 노동자 퇴직금 미지급 사건'을 무혐의·불기소 처분한 사실을 밝히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5.10.15. 연합

 

"2025년 쿠팡 일용직 노동자 퇴직금 미지급 불기소 사건도 고용노동청에서는 기소 의견으로 보냈는데 검찰 내부에서 묵살돼 결국 불기소된 것이다. 내부 고발 때문에 이것이 알려졌는데 핵심적인 압수수색 결과를 빼고 대검에 보고해서 허락을 받아 불기소했다. 장윤기 사건에서 경찰이 중요한 증거물을 누락시킨 거하고 똑같은 짓을 검사들이 한 거다.

 

뉴스타파에 대한 윤석열 명예훼손 혐의 사건은 법이 아니고 공개되지 않은 대검 내규를 가지고 자기들이 자의적으로 보완수사를 해서 언론사 기자들을 괴롭힌 사건이다. 사건의 동일성 또는 직접 관련성을 법에 넣어놓더라도 검사들은 그것을 무시하고 수사, 기소한다. 나중에 이것이 결국 법원에 의해 잘못된 수사였다고 판단이 돼서 공소 기각이 되거나 무혐의 날 때까지는 많은 시간 동안 많은 돈을 들이며 고생하게 된다. 이게 보완수사권을 행사하는 검찰의 파워다.

 

그다음에 순천 부녀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인데 이것은 경찰이 사건을 송치한 이후에 검찰이 받아 가지고 부녀에 대해서 이상한 동기를 만들어내고 협박, 강압해서 사건을 사실상 만들어낸 것이다. 소설을 쓴 사건이다. 그래서 굉장히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했고 결국 2025년에 재심에서 무죄가 났다. 김학의 긴급 출국금지 보복 기소 사건도 제가 언급했다.

 

2007년에 벌어진 수원 노숙인 소녀 살해 사건도 경찰이 허위 자백을 받아낸 사건인데, 검찰이 보완수사 단계에서 시정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받아서 기소한 다음에 별도로 가출 청소년 5명을 협박하고 회유해 허위 자백을 받아서 5명을 또 살인죄 정범으로 기소했다. 경찰이 체포했던 노숙인 2명과 검사들이 누명을 씌운 가출 청소년 5명 전부 다 무죄를 받았다. 그러니까 이런 사건들이 결국 검사가 수사권, 기소권을 다 갖게 되면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론을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겠다. 이번 장윤기 사건 같은 경찰의 부실 수사는 검사에게 보완수사권이 있어야만 비로소 견제될 수 있다고 얘기하는데 그렇지 않다. 아까 한인섭 교수님도 말씀하셨지만 검사들이 기록을 잘 검토하고 문서화된, 표준화된 보완수사를 잘 요구하면 경찰의 부실 수사는 그 단계에서 다 걸러질 수 있다. 검사가 사건을 송치받아 검토하다가 수사기관의 위법행위, 불법행위를 발견할 경우에는 검사가 수사 의뢰를 할 수 있고 이걸로도 부족하다면 수사 의뢰를 받는 쪽에서 입건 전 조사나 수사 개시를 할 의무를 법에 규정하게 되면 충분히 수사기관의 불법행위를 견제할 수 있다.

 

검찰이 직접 보완수사를 해서 사건을 왜곡시켰을 때는 사후 통제 수단이 전혀 없기 때문에 경찰 수사처럼 이게 사후적으로 통제가 돼서 밝혀질 가능성이 전혀 없다. 관봉권 띠지 분실 사건의 경우 중요한 증거물이 누락된 것인데 그 실체가 지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누가 책임이 있는지 검사는 한 사람도 징계를 받거나 책임을 진 사람이 없다.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도 관련자들의 허위 진술을 강요, 협박, 공갈했다는 여러 정황이 드러나고 대장동 사건에서 녹취록이 조작된 게 다 드러나도 사후에 진상을 밝히기가 정말 어렵다. 이게 검찰 수사의 맹점이고 위험성이다.

 

최근에 검사가 뭐 피해자, 성폭행 피해자, 아동 피해자, 장애인 피해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편이라고 내세우고 있는데 누가 들으면 참 웃을 얘기이다. 역사적으로 많은 사례에서 보면 검사는 항상 강자의 편, 가진 자의 편, 높은 지위에 있는 자의 편을 들어왔다. 갑자기 이들이 피해자의 어떤 수호천사 역할을 자임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김학의 사건에서 성폭행을 당한 피해 여성들이 피눈물을 흘렸을 때 검사들이 피해자의 편에 섰는가? 한동훈 처남 진동균 검사가 후배 여검사를 성폭행했을 때 검찰이 이 사건을 덮었다. 사표 내고 나가서 대기업 이사를 하고 있다가 나중에 미투 사건으로 진동균 사건이 재조명 받으면서 결국 나중에 검찰에서 수사해 기소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다. 여성단체가 왜 이런 사건에 대해서는 얘기를 안 하는지 모르겠다.

 

대표적인 민생 침해 사건으로 언급되는 다단계 투자 사기 사건도 보면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을 사기 쳐서 벌어들인 막대한 돈으로 전관 출신 변호사들을 선임하는데 다 고위직 검사, 특수부 검사 출신들이다. 이들이 막대한 의뢰비를 받아 전부 다 가해자 편을 든다. 피해자들은 돈을 사기당해 길거리에 나앉고 자살하고 이러는데 그 전직 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그걸 치부의 수단으로 삼아 가해자 편을 들고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검사들이 과연 약자의 편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수사, 기소가 완전히 분리되면 피해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완전히 막히는가? 그렇지 않다. 한인섭 교수님이 잘 말씀해 주셨지만 현재 법에도 충분한 대책이 들어가 있고 또 지금 법사위에서 논의하는 여러 안 중에서도 피해자들의 절차적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장치를 계속 보강하고 있다. 그래서 검사의 보완수사권만이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안전판이라는 주장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검사들이 보완수사권에 왜 이렇게 집착을 하느냐. 결국은 수사조직, 인력, 예산 등 현재 검찰청의 수사 전력을 보존해서 기다리는 것이다. 5년이고 10년이고 기다렸다가 상황이 바뀌고 정부가 바뀌면 검찰청으로 다시 탈바꿈해 가혹하게 수사권을 행사해서 보복하겠다는 그런 전략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수사, 기소를 완전히 분리해서 검찰 권력을 해체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다."                < 김호경 기자 >

 

"수사권 없는 공소청이 ‘경찰 통제’ 더 잘한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들머리에 있는 조형물 ‘서 있는 눈’에 반사된 청사가 일그러져 보인 다. 이 조형물은 ‘정의의 편에 서서 깨어 있는 눈으로 불의를 감시하는 눈’을 상징했다고 한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재성 논설위원

 

수사권 없는 공소청 조직은 크게 기소심사부와 공판부, 인권보호부로 나뉘게 될 것이다. 이 중 기소심사부가 현재의 형사부에 해당한다. 경찰이 송치한 사건을 검토해서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부서로, 지금 검찰에선 다들 인지수사 부서(반부패부·공공수사부 등)에 가고 싶어 해서 한직으로 분류되지만, 공소청에선 주류 부서로 등극할 것이다.

 

검찰과 국민의힘과 다수 언론은 보완수사권이 사라지면 ‘장윤기 사건’ 같은 경찰의 부실수사와 사건 암장을 걸러낼 수 없을 것처럼 선동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수사기관의 수사를 법적으로 심사하고 통제하는 기소기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으므로 더 유능한 게이트키퍼가 될 수 있다. 공소청의 엘리트 검사들이 수사에 한눈팔지 않고 수사기관의 수사를 들여다보며 협조하고 견제한다면 국가 차원의 수사의 질은 월등하게 높아질 것이다. 보완수사권이 없어야 가능한 미래다. 수사·기소 분리를 통한 선진형 형사사법시스템 도입은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내란과 관계없이 검찰개혁 세력이 지향해온 일관된 방향이었다.

 

그런데도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형사소송법 개정에 대한 반발이 계속되는 핵심 이유는 성폭력을 비롯한 각종 형사 사건에서 피해자가 소외되는 제도의 한계, 피해자를 외면하는 수사기관의 태도에 있다. 검찰 해체로 인해 새로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제도와 오랫동안 누적된 관료적 습성 탓이다. 특히 1차 수사기관인 경찰에 불만이 쏟아진다. 하지만 피해자를 귀찮아하고 무시하는 관행은 검찰도 마찬가지다. 피해자가 이의신청을 해도 사건이 많다는 핑계로 들춰보지도 않고 털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경찰이 불송치한 사건 기록 역시 공소청으로 송부되어 90일 동안 검토하게 돼 있는데, 여기서 재수사 사건을 찾아내어 성과를 낸 검사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등 창의적인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피해자 국선변호인 선임 제도, 수사기록 접근권 및 재판 참여권 보장을 비롯한 피해자 권리 신장 방안을 개정안에 포함하도록 속도를 내야 한다.

 

검찰개혁 논의만 시작되면 우리 사회는 습관적으로 마치 집단 건망증에 걸린 것처럼 과거를 잊는다. 장윤기 관련 증거인멸 및 축소 수사는 이른바 ‘제 식구 봐주기’라는 권력기관 범죄의 전형인데, 검찰이 이 분야의 ‘끝판왕’이라는 사실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 ‘김학의 사건’이나 ‘김건희 봐주기’로 대표되는 부실수사와 사건 암장도 규모와 강도에서 검찰이 경찰을 압도한다. 형사 절차의 중심에서 권한을 남용해온 검찰 제도를 손보기 위해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려 하는데, 경찰을 견제하려면 공소청에 수사권을 남겨야 한다는 주장은 무책임한 퇴행이자 본말전도다. 정부가 제출한 공소청 및 중수청 설립 법안이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두 차례나 크게 수정된 끝에 현재의 꼴이 갖춰졌는데, 형사소송법을 통해 수사권을 줄 거라면 지난 1년간 뭐 하러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쳤단 말인가. 참여연대가 지난 3월 정부 법안을 비판하며 썼던 표현을 빌리면, 검찰 ‘간판갈이’ 하려고 그 고생을 했단 말인가.

 

경찰 불신을 해소할 대안은 여권 의원들이 제출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이미 반영돼 있다. 수개월 동안 시민사회단체들이 숙의를 거쳐 마련한 개정안을 토대로 한 법안이다. 공소청 검사가 보완수사를 요구하거나 재수사를 요청했는데도 수사기관이 따르지 않을 경우, 수사관 교체나 수사기관 변경 등 제재 권한을 높이는 방안, 검사가 보완수사를 요구하면 사건번호를 삭제하던 기존과 달리, 해당 검사가 계속 그 사건을 챙기도록 하는 ‘추완’제도, 송치 이후 사건 관계자들이 검사를 만날 수 있도록 하는 면담신청 제도 등 수사권 존치론자들이 제기하는 문제점에 대한 대안이 거의 모두 나와 있다.

 

지금 검찰의 지상 과제는 수사인력 보존이다. 검찰청이라는 이름은 빼앗겼지만, 수사인력만 보존한다면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생 사건이든 성폭력 사건이든, 보완수사권이든 조사권이든 어떤 형태로라도 수사권을 지켜내려 한다. 대한민국 검찰에게 수사권은 평생 소득의 크기를 좌우하는 밥그릇이기도 하지만, 기득권 세력의 무기이기도 하다. 언제든 권력만 잡으면 칼로 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권력을 잡도록 도와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검찰의 수사권은 언론이라는 여의봉을 통해 영향력이 확장되어 정치로 연결된다. 수사권을 살려두면 정치검사도 살아난다.  

 

"사회적 약자 사건, ‘보완’보다 ‘협력’ 수사를"

 

‘부산 돌려차기 사건’ 등 범죄 피해자들과 변호사들이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현재 발의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문제점에 대해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 손팻말로 얼굴을 가린 이들이 피해자들이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박용현 | 대기자

 

오래전 미국 인디애나주에 있는 ‘케이지센터’라는 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케이지(CASIE)는 아동학대에 대한 지원·수사·교육(Child Abuse Service Investigation & Education)의 앞글자에서 따왔다. 성폭력·학대를 비롯한 범죄의 피해자이거나 증인인 어린이·청소년들을 지원하는 단체인데, 특이한 것은 이 센터 건물 안에 검사와 경찰 수사관이 입주해 있다는 점이었다. 신고·발견된 피해 어린이는 마치 놀이방처럼 꾸며진 이곳에서 ‘조사’를 받는다. 특별히 훈련된 전문가가 혼자서 어린이를 대면해 질문을 한다. 어린이가 볼 수 없는 또다른 방에서 검사, 경찰 수사관, 심리분석가, 사회복지사 등이 실시간으로 이 장면을 지켜본다. 더 필요한 질문이 있으면 무선 수신기로 조사 담당자에게 전달한다.

 

이런 시스템을 구축한 이유는 피해 어린이가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고 진술해야 하는 힘겨운 상황을 여러차례, 여러명을 상대로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사건 초기부터 수사·기소 기관과 아동보호 전문가가 협력함으로써 적시에 보호 조처를 하고 사건을 신속히 해결하기 위해서다. 이 센터의 운영진에는 지역의 주민 대표, 의료인, 학자 등과 함께 검찰·경찰 책임자들이 당연직으로 결합해 있다. 미국에는 이 같은 어린이 피해자 전담조사기관이 수백곳에 설치돼 있다고 한다.

 

사회적 약자 관련 사건에 한해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유지하자는 주장을 들으며 케이지센터의 기억이 떠올랐다. 성폭력, 아동·장애인·노인 학대, 가정폭력 등 사건에서 피해자를 더욱 두텁게 보호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검찰의 보완수사가 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인지는 의문이 든다.

 

보완수사를 통한 접근법은 경찰과 검찰 중 어느 쪽이 더 약자 보호에 충실하냐는 선택의 문제로 치환된다. 이는 현실적으로 답하기도 어려운 문제다. 근본적 해법과도 거리가 멀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시민감시단이 2004년부터 성폭력 수사·재판 과정을 모니터링하며 피해자 인권 존중에 기여한 경찰·검찰·재판부를 ‘여성 인권 존중 디딤돌’로, 반대로 피해자 권리 보장에 소홀하거나 2차 피해를 야기한 이들을 ‘걸림돌’로 해마다 선정해왔다. 2023년까지의 명단을 보면, 디딤돌로 선정된 사례 중 검찰이 25건, 경찰이 46건이었다. 걸림돌로 선정된 사례는 경찰이 11건, 검찰이 30건이다. 우열을 가릴 문제가 아니다. 최소한 검찰이 더 믿을 만하다고 볼 근거는 없다.

 

경찰 단계에서 사건 처리에 문제가 있을 경우 보완수사든 보완수사요구든 검찰의 사후 견제로 걸러질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검찰 단계에서 틀어지면 더 이상 견제 장치도 없이 사건은 미궁에 빠지게 된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접대 사건이 단적인 사례다.

 

설령 보완수사를 통해 바람직한 결과에 도달한다고 하더라도 역시 최선은 아니다. 피해자는 1차 수사와 2차 수사라는 중복된 절차를 통해 고통의 시간이 연장된다.

 

근본적 해법은 어느 쪽에 더 신뢰를 줄 것인지가 아니라, 두 기관 모두를 각성시키는 것이다. 피해자의 특수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에 따라 인권친화적이고 신속한 사건 처리를 하도록 법과 규정을 만들고 인사·교육 등의 제도를 개선해가야 한다. 또 피해자와 지원기관, 민간 전문가 등이 형사절차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서 핵심이 사건 초기부터 검사와 수사기관이 협력 체계를 갖추는 일이다. 기소권자이자 영장 청구권자인 검사 그리고 수사권을 가진 경찰 수사관, 여기에 더해 민간 전문가까지 결합해 긴밀한 소통과 상호 견제 속에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면, 어느 한 기관이 사건을 왜곡하거나 피해자 권리를 무시하며 엉뚱한 방향으로 내달리는 상황을 충분히 막을 수 있으리라 본다.

 

일반 사건도 다르지 않다. 살인 등 중대 사건의 경우 초기부터 검사와 수사기관이 적극 협력 수사를 벌인다면 신속하고 철저한 정의 실현에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수사 상황을 투명하게 공유함으로써 ‘장윤기 사건’과 같은 극악한 축소·왜곡 수사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협력 수사 모델은 수사-기소가 분리된 나라들에서 제도와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 논쟁을 통해 그동안 놓쳐왔던 형사사법체계의 미비점들이 뒤늦게나마 공론장에 오른 것은 소중한 기회다. 특히 형사사법절차에서 주체가 아닌 객체로 취급받아온 피해자에게 제자리를 찾아주는 제도 개혁이 이참에 본격화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