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석방 ‘이중 트릭’…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논썰]

 

시간 단위로 계산해도 구속기간은 만료되지 않아, 기묘한 법 술수

 
 
 
[논썰] 윤석열 석방의 ‘이중 트릭’,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한겨레TV

 

검찰이 법원의 대통령 윤석열 구속취소 결정에 즉시항고할 수 있는 시한인 14일까지 즉시항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까지 “즉시항고를 통해 상급심의 판단을 받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는데도 검찰은 현행법으로 보장된 즉시항고 권한을 끝내 포기한 것입니다.

 

검찰의 이런 행태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짚어보기에 앞서, 윤석열 구속취소를 결정한 지귀연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의 ‘이중 트릭’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구속기간 산입 등의 복잡한 법률 문제에 대해 아직 헷갈리는 분들을 위해 최대한 쉽게 설명드립니다.

 

먼저 ‘그림1’처럼 법에 정해진 구속기간은 체포된 날부터 따져 10일간입니다. 그 안에 기소가 이뤄져야 합니다.

그런데 체포한 뒤 구속하려면 법원의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보통 3일에 걸쳐 진행됩니다. ‘그림2’에 파란색으로 표시된 구속영장실질심사 기간은 구속기간에 산입되지 않기 때문에, 구속기간 만료일은 3일 뒤로 미뤄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림3’에서 보시듯 빨간색으로 표시된 대통령 윤석열 기소는 구속기간 만료 시점보다 넉넉하게 앞서서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그림4’를 보시죠.

 

지귀연 부장판사는 영장실질심사에 소요된 기간을 날짜, 즉 3일로 계산하지 않고 서류가 법원에 접수된 시점부터 반환된 시점까지 시간 단위로 계산했습니다. 파란색 부분입니다. 그러면 구속기간 만료시점이 딱 이만큼 뒤로 미뤄집니다. 이렇게 되니 윤 대통령 기소 시점이 파란색 바깥으로 나갑니다. 즉 구속기간이 만료된 뒤에 기소가 이뤄졌다는 겁니다. 계산 방식을 날짜 단위로 다시 바꾸기만 하면 이 문제는 바로 해결됩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문제가 무엇인지 아시겠지만, 한단계 더 들어가 보죠.

사실은 시간 단위로 계산해도 구속기간은 만료되지 않습니다. ‘그림5’를 보시죠.

하얀색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은 ‘체포적부심’이 이뤄진 기간입니다. 체포적부심은 거의 이용되지 않는 제도인데 윤 대통령은 이걸 꺼내들었죠. 어쨌든 이 절차에 10시간가량이 소요됐습니다. 이 기간도 구속기간에서 빼야 합니다. 하얀색 부분만큼 구속기간이 늘어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윤 대통령 기소 시점은 그 하얀색 안에 들어갑니다. 구속만료 전에 기소가 이뤄진 것입니다.

 

여기에서 지귀연 부장판사는 또 하나의 트릭을 씁니다. ‘체포적부심에 소요된 시간은 구속기간에서 빼지 말아야 한다’고 한 겁니다. 기존 법해석과 완전히 다른 입장입니다.

 

이렇게 두단계의 완전히 특이한 해석을 통해, 윤 대통령 기소가 구속기간 만료 뒤에 이뤄졌다는 기묘한 결론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지귀연 판사의 결론이 왜 잘못된 것인지, 또 이에 대해 즉시항고를 포기한 검찰의 결정이 왜 터무니없는 것인지 자세한 내용을 영상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Wz1qZDvo4fs

기획·출연 한겨레  박용현 논설위원 >

 

임은정 검사 “심우정 탓에 후배는 택시도 못 타…망신스러워서”

 

 
 
임은정 대전지검 부장검사가 2024년 8월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김영철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 ‘탄핵소추사건 조사'와 관련한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연합
 

법원의 윤석열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을 심우정 검찰총장이 불복 절차 없이 수용하자 검찰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주장이 나왔다.

임은정 대전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검사는 13일 저녁 문화방송(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과 인터뷰에서 “검찰 구성원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검사들이 너무 당황스러워하고 있다”며 검찰 내부 반응을 전했다.

 

심 총장은 법원이 70년 넘게 이어져 온 법원과 검찰의 실무례를 뒤집고 시간 단위의 구속 기간 계산법에 근거해 윤 대통령의 구속을 취소했음에도, 구속취소 시 즉시항고 규정에 대한 위헌 논란이 예상된다는 이유만으로 불복 절차인 즉시항고를 포기하고 윤 대통령 석방을 지휘해 ‘노골적 봐주기’, ‘윤석열 맞춤형 포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당연히 심 총장 등 대검 수뇌부가 즉시항고를 결정할 것이라고 봤다는 임 부장검사는 “원포인트로 단 한 사람만을 위해서만 해석례를 유지하겠다는 것인데, 무슨 약점이 잡혔냐는 생각이 들 만큼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앞서 검찰 내부 게시판인 ‘이프로스’에도 수뇌부의 즉시항고 포기 결정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문제 제기 글들이 여러 개 올라와 이목을 끌었다. 임 부장검사는 “이 정도면 (검찰 내부가) 끓는 게 맞다”며 “어느 검찰 관계자가 자조적으로 말했던 것처럼 검찰은 ‘짖으라고 짖고 닥치라면 닥치는 개’인데, 검사 게시판에 이 정도 글이 부장급들에 의해 올라오는 거는 이례적인 것이다. 말을 안 하면 너무 창피해서 얼굴을 못들 지경이니 그런 것”이라고 했다.

 

임 부장검사는 ‘택시도 못 탈 정도로 망신스럽다’는 후배 검사의 반응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후배 검사가) 검찰청 앞에서 택시를 탔다가 택시 기사분한테 ‘검찰 왜 그러냐’ 한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며 “망신스러워서 검찰청 앞에서 택시를 못 타겠다고 한다”고 전했다.

 

임 부장검사는 즉시항고는 하지 않으면서 종전대로 구속 기간을 ‘날’ 단위로 계산하라는 대검의 지시사항을 언급하며 “구속 기간 산정은 검사들 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사관, 실무관들도 매일매일 구속 사건을 배당받아 처리하며 계산한다”며 “워낙 이례적이라서 서로 점심시간에 말하는 것도 민망하다. 그런 사람이 검찰총장을 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 한겨레 심우삼 기자 >

 

대통령실 “야당 탄핵 남발 경종” 주장했지만
헌재 “헌법 내지 법률 위반, 일정 수준 이상 소명”

 

 
 
이창수 중앙지검장 등 검사 3인 및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가 열린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의회독재를 하는 거대야당의 줄탄핵’을 12·3 비상계엄 선포 주요 근거로 들었다. 특히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이유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를 직접 언급했다. 야당이 탄핵소추를 남발해 국정 마비·국가 위기상황을 초래했고, 이를 계엄으로 바로잡으려 했다는 주장이다. 이는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에서도 윤 대통령 쪽이 탄핵 반대 핵심 근거로 제시한 내용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는 13일 이창수 지검장 등 검사 3명의 국회 탄핵소추를 재판관 전원 일치로 기각하면서도 “탄핵소추권이 남용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날 대통령실이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대한 탄핵소추 기각 결정에 대해 “야당의 탄핵 남발에 경종을 울렸다”고 주장했지만, 헌재 결정은 그와는 반대였던 셈이다.

 

헌재는 “국회 탄핵소추안 의결 과정에서 필요한 법정 절차가 준수되고 피소추자의 헌법 내지 법률 위반행위가 일정한 수준 이상 소명되었다. 이 사건 탄핵소추 주요 목적은 헌법 위반 등에 대한 법적 책임을 추궁하고 동종의 위반행위가 재발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함으로써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설령 부수적으로 정치적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를 들어 탄핵소추권이 남용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야당이 주도한 탄핵소추 사유가 윤 대통령이나 국민의힘 주장처럼 아무 근거 없는 정치 공세가 아니며, 일부 그런 성격이 있더라도 탄핵소추를 할 만한 위법 행위가 확인됐기 때문에 ‘탄핵 남발’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동종 위반행위 재발” “사전 예방을 통한 헌법 수호”라는 탄핵심판의 원칙을 헌재가 재확인한 것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기각 결정이 나올 경우 직무에 복귀한 윤 대통령이 추가 비상계엄 등 강권 통치를 통한 국헌 문란이 재연될 위험이 있다는 주장에 헌재가 힘을 싣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가능하다.

 

앞서 헌재가 최우선으로 진행하겠다고 했던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 앞서 이창수 검사장 등의 선고를 먼저 하자, 그 의도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다. 헌재가 ‘탄핵소추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결정을 먼저 내놓으면서,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론에도 이번 결정이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 한겨레 김남일 기자 > 

 

사과는커녕 헌재 결정 수용 여부 밝히지 않는 윤석열

비상계엄을 정의로운 권력 행사로 보는 극우세력

윤 구속 취소 과정에서 드러난 기득권 카르텔의 민낯
탄핵 후의 과제, 극우 세력 폭력과 저항 어떻게 막을까

 

                                                                              김동춘 좋은세상연구소 대표

 

윤석열은 헌법재판소 진술에서 자신이 저지른 비상계엄 선포, 국회 군 투입과 국회의원 체포 시도, 선관위 침탈, 그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국가의 대혼란과 경제위기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특히 그는 헌재 결정에 대해 승복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그가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다고 말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헌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대통령으로서의 최소한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12.3 이후 오히려 민주당이 내란 프레임을 만들어 자신을 탄핵했다고 적반하장격의 논리를 폈으며, 자기 지지자들이 벌인 초유의 서부지법 난동에 대해 ‘감사’와 ‘미안함’을 표시했다.

 

윤석열의 당당함이 주는 역겨움

 

윤석열은 헌재 진술에서나 지난 8일 출옥 후 발언에서 자기의 명령에 따라 행동했다가 내란범으로 구속된 군 지휘관들, 특히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병사들에게 미안함을 표시했어야 했고,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온 국민이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점에 대해 사과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동안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응원을 보내주신 많은 국민들, 그리고 우리 미래세대 여러분… 국민의힘 지도부를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들”에게만 주로 감사를 표시했다. 즉 그가 말하는 국민은 오직 자신의 비상계엄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었다.

 

작년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그는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며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함으로써 사실상 야당을 적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그 이후 자신의 육성으로나 변호인들의 발언을 통해서도 애초의 생각을 전혀 철회하지 않았다. 그래서 비상계엄은 사실상 야당 지도부와 ‘수거 대상’인 비판 세력에게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계엄령을 경고용 계엄 혹은 ‘계몽령’ 운운한 것은 사실상 말장난인데, 국회의원 체포 시도, 선관위원 체포 고문 시도, 노상원의 수거 명단과 ‘처리’ 구상 등에서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계엄 당시 군의 모든 행동과 곽종근, 홍장원 등의 진술은 거의 일치하며, 헌재 재판정에서의 윤석열과 변호인들의 사후 발언이나 변명과는 배치된다.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서울 한남동 관저 앞에 도착, 차량에서 내려 지지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2025.3.8 연합

 

쿠데타 주역이 반대 세력 처단하려드는 기막힌 정치 상황

 

윤석열이 출옥하여 개선장군처럼 행동한 것은 헌재에서의 그의 발언들, 즉 비상계엄 선포가 법의 심판을 받지 않는 통치권 행사였으며, 이후의 수사나 탄핵이 모두 불법적이라는 주장과 같은 궤도 위에 있다. 출옥 자리에서 그는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에 따라 공직자로서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다가”라고 표현했다. 그는 자신의 비상계엄 선포는 내란이 아니며 정당한 통치권 행사라고 강변한다. 그는 비상계엄 선포의 요건이 되는 ‘전시, 혹은 준전시 상황’, ‘국무회의 의결’을 명백하게 위반하였고. 포고령에 “모든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불법적인 내용을 포함한 것에 대해 어떤 해명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당일 자신이 여러 번 전화로 명령을 내린 군 지휘관들의 증언을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서 부인했다.

 

윤석열의 모든 발언과 행동을 보면 그는 조금의 죄의식이나 범법 의식도 갖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되어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더라도, 지지자들을 선동하여 헌재 파괴 투쟁을 할 태세다. 그는 이후의 내란죄나 직권남용 관련 수사에는 거의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검찰을 제외한 경찰이나 공수처 등 다른 수사기관의 수사에도 응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보여 준다. 즉 탄핵이 되어도 윤석열은 계속 자신의 주장을 쏟아내거나 거리를 활보하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지지 세력을 결집하려 할 것이다. 우리는 실패한 쿠데타 주역이 당당하게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면서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키거나 반대 세력을 ‘처단’할 의사를 갖는 매우 역겹고, 기막힌 정치 상황에 살고 있다.

 

비상계엄은 절차적 하자 무시해도 되는 통치행위라는 주관적 결정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 위반이 아니며, 따라서 헌재가 탄핵을 기각해야 한다는 윤석열과 변호인들, 국민의힘 지도부는 12.3 비상계엄이 ‘마른하늘의 날벼락’과 같은 어이없는 조치가 아니라 ‘전시·사변 같은 국가비상사태’, ‘사실상 전쟁 상황’에서의 통치행위라고 정당화한다. 그래서 그들은 비상계엄의 이유가 ‘반국가세력의 사회 장악, 사법 업무 마비, 입법 폭거’, '일당 독재 파쇼' 행위에 있으며,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 남발로 인한 사법부 기능 마비, 국회 입법 독재 등으로 인한 정부의 정상적 작동 불능에 비춰 국가비상사태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한다. 심지어는 아예 전쟁의 개념 자체를 수정해서 “현대 전쟁은 전통적 전쟁 방식에 정치공작과 심리전 등을 더한 ‘하이브리드 전쟁’”이라고까지 강변한다. 즉 주관적 범법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천하가 알고 있는 ‘객관적 상황’을 재정의하려 한다.

 

사실 정치활동 특히 권력 행사란 언제나 비판 세력의 공격을 받으며 진행되는 싸움이고, 그래서 권력 상실의 두려움 속에 살고 있는 최고 권력자가 느끼는 정치 상황이란 언제나 비상사태와 유사한 점이 있다. 그런데 이번 윤석열의 계엄 선포는 대통령과 자신의 부인이 처한 정치적 사적인 위기, 즉 ‘주관적인 비상사태’를 ‘객관적 비상사태’라고 둘러댄 것일 가능성이 크고, 국무위원이나 국민의힘조차 설득하지 못할 주관적 결정이었다.

 

계엄 포고령 1호 1항 ‘국회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불법적인 조항에서 그의 주관적 위기의식, 야당에 대한 적대의식이 잘 드러난다. 그는 헌재에서 “정치활동을 전면 금지한 게 아니라 반국가적 활동을 못하게 막은 것”이라고 옹색하게 변명한다. 김용현 국방부장관과 최종 포고령을 손질하면서 “법적으로 검토해서 손댈 건 많았다”라고 실정법상 결함이 있었다는 것을 약간 인정하고 있으나, 이런 모든 점들을 무시하고 ‘주관적’ 의지로 계엄을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과 김용현은 비상계엄이 약간의 절차적 하자를 다 압도할 수 있는 통치행위이기 때문에, 그 명령이 그대로 집행되면 야당이나 모든 비판 세력의 정치활동을 제압하고,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정치 논리를 실정법 위에 두는 몇 사람의 소신이 불러 올지 모르는 지옥

 

그의 헌법위반 여부는 헌재가 판결할 것이고, 내란 행위의 불법성은 이후 수사와 형사재판을 통해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헌재의 평결은 사실 판사들의 헌법 해석의 영역이므로, 최악의 경우 이들의 극단적인 정치적 결정, 심우정 검찰총장이 말한 것처럼 그냥 몇 사람의 ‘소신’에 의해 탄핵을 기각할 수도 있다. 그 경우 헌재나 헌법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온 국민이 똑똑히 목격하고 거의 압도적 다수의 법률가들이 예상하는 윤석열 탄핵 결정과는 배치되는 몇 재판관의 ‘소신’으로 탄핵이 기각되면 한국은 이제 법치보다는 정치적 의지, 즉 적나라한 권력투쟁만이 난무하는 지옥이 될 것이다.

 

민주당이나 탄핵 인용을 확신하는 국민들은 윤석열이 불법을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거짓말과 억지 논리를 펴는 것에 대해서 분노하면서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내란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국힘 의원들과 그가 임명한 국무위원, 검찰, 경찰, 주요 국가기관장들은 실정법보다는 정치 논리로 이 상황을 본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더라도 내란 사태가 진정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 그들은 이미 헌재, 공수처 등의 법의 집행을 불법이라고 계속 주장해 왔다. 그들과 아스팔트 우익들은 향후 수사나 법원의 모든 조치를 정치적 사안으로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에 ‘법과 상식’은 이들의 행동을 주저 앉히는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TV토론회 당시 손바닥 한가운데에 '왕(王)'자를 그려놓은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2021.10.2 [MBN 유튜브 캡처. 연합

 

국가폭력의 기억에 사로잡힌 20% 사람들, 그들의 정치적 대표들

 

50대 중반 이상의 군사정권을 겪은 한국인들은 사실 법과 도덕보다는 권력 논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시사 IN>(2025. 2. 25)의 조사에 의하면 2000명 응답자 중 17%는 계엄을 옹호하고, 탄핵을 반대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사람도 20% 정도에 달한다. 윤석열 등 내란 주범들이 대통령의 통치권이 법 위에 있다고 암묵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 것도 이들이 20% 정도 국민의 생각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의 한국 사회변화, 군대의 변화는 이들의 머리와 몸에 스며들어 있지 않다. 이들이 민주화 이후 개정된 계엄법, 즉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는 조항이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무력화하려 한 것은 이들이 개정된 계엄법에 무지해서라기보다는 군사정권 시기의 아비투스가 이들을 지배하고 있는 데서 온 무의식의 결과일지 모른다.

 

윤석열이 계엄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수없이 거짓말을 반복하면서도 전혀 죄의식을 갖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도덕율이 적용되는 범위는 자신의 카르텔 내의 사람들, 동문·동료, 거래관계 사람들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도덕성과 불법성, 그리고 정치성은 한국 검찰조직의 특성이기도 하다. 과거의 검찰, 그리고 아마도 윤석열과 그의 부인인 김건희가 그렇게 살았듯이 그들은 편법과 속임수를 쓰더라도 목표를 달성하면 그것이 곧 선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기의 검사나 공안당국도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고문이나 간첩 조작을 하고서도 안보의 이름으로 정당화했으며, 이들 국가폭력 희생자들의 삶과 가정이 처절하게 파괴되어도 전혀 죄의식을 갖지 않았고 반성이나 사죄를 한 적도 없다.

 

이것이 바로 극단적인 권력정치의 행위자들 혹은 극우 파시즘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들은 적을 지목하고, 제거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 근거이자 국가의 목표라고 보기 때문에, 적에 대한 모든 폭력은 용납될 수 있다고 본다. 윤석열은 취임 후 거의 모든 담화에서 ‘적’을 지목했고, 언제부터인가 공산전체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적을 설정하고 군사력을 사용해서 내부의 적을 제거하는 일이야말로 파시즘의 가장 전형적인 특징이다. 노상원의 수첩에 ‘수거’ 대상을 설정한 것은 그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처리’ 대상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노상원은 그들에 대한 체포나 구금, 그리고 폭사나 ‘수장’까지 구상했다.

 

법 위에 최고 권력자의 의지가 있다고 보는 파시즘 논리

 

나치즘 하의 어용 법학자 칼 슈미트(Schmitt)는 “주권적 권위는 법률적 질서를 넘어선다”고 히틀러 통치를 옹호했는데, 윤석열과 국힘 지도부가 생각하는 통치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즉 비상계엄이 법적 구속을 벗어난다는 이들의 생각이 바로 파시즘 논리다. 그들은 법을 최고의 규율 체제로 보지 않고, 법 위에 주권자 즉 최고 권력자의 의지가 있다고 본다.

 

앞의 <시사 IN>의 조사 대상자 중 비상계엄은 정당하며, 필요하면 무력을 사용해도 좋다는 사람들이 대체로 파시즘 지지 세력이다. 그 주력인 보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체계가 가르치는 구원론, 선악 이분법, 그리고 적과 우리의 이분법 논리에 따라 행동한다. 보수 기독교인들이 보는 ‘신과 마귀’의 이분법은 냉전 하의 ‘적과 우리’ 이분법, 파시즘의 인종주의와 동일한 사고 구조를 갖는다. 그들에게 신과 국가 최고 지도자는 같은 반열에 선다. 윤석열의 담화에 나온 공산전체주의 용어는 한국의 극우파 지식인들로 구성된 ‘한국 자유회의’의 문건에서 나온 것인데, 그들은 주권이란 최고 권력자의 것이며, 개인이 주권자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이들 아스팔트 극우파에게 악의 무리에 대한 ‘정의로운 폭력’의 행사는 성스러운 주권권력의 행사로 간주된다.

 

'12·3 비상계엄' 기획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24일 오전 서울 은평구 서울서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24.12.24 연합.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광화문광장 관람 무대에서 건군 76주년 국군의날 시가행진을 지켜보던 중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2024.10.1 연합뉴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이 1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2025.2.17 [공동취재] 연합

 

만천하에 노출된 기득권 카르텔

 

이번 윤석열 석방 과정에서 지귀연 판사의 시간 단위 구속시간 산정, 심우정 검찰총장의 즉시항고 포기는 법의 이름을 빈 고도의 정치적인 판단이다. 지귀연 판사는 자신의 판단이 법에 의한 것이라 하지 않고 ‘변호인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했고, 검찰총장은 자신의 결정이 ‘소신’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이런 결정이 사실상 대통령 윤석열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라고 거의 실토하고 말았다. 한국은 법의 집행이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인권보호’를 위해 작동하는 봉건 왕조시대로 되돌아갔다.

 

물론 국힘 의원 전부가 윤석열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 국힘은 자신들을 지지하는 아스팔트 극우의 행동에 따라 움직인다. 윤석열과 검찰을 정점으로 해서 국힘과 최상목 등 고위 관료,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 ‘김앤장’과 같은 대형 로펌, 그리고 재벌의 네트워크가 극우 행동대의 앞뒤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한국의 기득권 카르텔이다. 이들은 윤석열이 탄핵 당하거나 이후 정권교체가 되면 모두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집단이다. 이들 내부의 양심적인 세력 일부는 비상계엄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있고, 서부지법 난동도 비판적으로 보지만, 그것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윤석열과 정치적 걀등 관계에 있었던 유승민, 한동훈 등이 모두 윤석열의 석방을 환영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이들 모두에게 대통령의 헌법위반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직 정치적 이해,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기득권 수호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치학자 라스키(Laski)가 말했듯이 파시즘은 언제나 국가권력과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무한한 권력을 부여하고, 노동자나 사회적 소수자, 외국인 등 약자들의 기본권은 완전히 박탈한다. 윤석열 정부 이후 몇 번 발생한 ‘입틀막’ 사건과 집요한 언론장악 시도가 바로 극우 파시즘적 통치의 대표적인 전조였다. 조선 노동자 파업 진압, 일방적인 의대 정원 증원 결정과 ‘의사 처단’ 포고령에서 그러한 과거의 군사독재 혹은 파시즘적 사고가 드러났다. 지난 3년 동안 윤석열의 막가파식 정치에 대해 전혀 반대하지 않았던 국힘 의원들의 모습에서, 자기 이익 때문에 국가와 법질서의 붕괴도 용인했던 과거 온건보수, 기회주의적인 보수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탄핵 결정과 상관없이 불안하고 불투명한 한국의 미래

 

탄핵은 반드시 인용되어야 하지만, 탄핵 결정이 어떻게 나오더라도 한국의 미래는 매우 불안하고 불투명하다. 그리고 탄핵 이후의 시대적 과제는 결코 정권유지/정권교체로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집권, 즉 정권이 교체되어도 지금 극우화된 세력의 폭력과 저항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도 국힘이 아스팔트 극우와 거리를 두어야 하고, 민주당이 이들 온건보수 세력과 손을 잡고 개헌과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국이라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 트럼프가 통치하는 미국은 트럼프가 아무리 잘못해도 미국의 패권과 자본주의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나라가 이렇게 적대적으로 분열되어 내전 상황이 지속되면 지난 50년 동안 성취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성과가 일거에 원점으로 돌아가고 한국은 3류 국가로 전락할 것이다. < 김동춘 좋은세상연구소 대표 >

 

윤석열 석방에 또 '국힘·극우 vs 야당·시민' 대결로

연일 '내란 동조 주장' 보도, 내란 수습 방해 아닌가
민주주의 위기인데 '기계적 중립' 내세워 국민 기만
'기만적 중립' 보도는 시민 아닌 기득권 이익 대변

 

윤석열 일당의 12.3 비상계엄 이후 10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혼란이 수습되지 못하고 있다. 내란 수괴 윤석열이 국회에서 탄핵소추 되고 가담 군인들이 구속된 것 말고는 내란 진압이 진척된 게 없다. 내란에 동조·가담한 국무위원들은 여전히 정부를 운영하고 있고, 해산되어야 할 내란 정당 국민의힘은 반성은커녕 외려 큰소리치며 야당 대표 공격으로 지지층을 끌어모으고 있다. 도대체 야당 대표가 이 혼란의 원인이란 말인가? 법원을 침탈하고 폭동을 일으킨 극우세력들도 석달 내내 광장에서 내란 지지 구호를 외치고 심지어 헌법재판관들을 협박하고 있다. 게다가 내란 수괴는 어이없게도 구속된 지 47일 만에 풀려나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니!

 

혼란이 수습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는 동안 이 나라 경제와 국민들 삶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헌정질서가 바로잡히고 국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길 갈망하는 국민들은 매일 불면의 밤을 보내며 불안과 걱정에 싸여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혼란이 계속되는 가장 큰 이유는, 두말 할 것 없이 국힘당과 검찰, 위험천만한 극우세력들의 내란 수습 방해 때문이다. 주류 언론들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여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류 언론들이 12.3 비상계엄 이후 쏟아낸 보도는 교묘한 방식으로 여론을 조작해 내란 범죄자들을 옹호하고 극우 세력을 선동함으로써 혼란을 더욱 부추겨 온 것이다.

 

주류 언론 보도의 ‘교묘한’ 내란 동조 수법 중 하나가 바로 ‘기계적 중립’이다. 주류 언론들은 12.3 비상계엄 직후부터 윤석열 탄핵 찬·반 집회를 50대 50으로 나란히 보도해왔다. 언론학자들과 언론시민단체들이 나서 이런 보도 태도를 비판했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쇠 귀에 경 읽기였다. 언론의 '자정(自淨)'이란 백년하청인가. 

 

3월12일자 동아일보 기사.

 

국민의힘은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를 방해한 내란 동조 정당이다. 내란 수괴가 그 정당 소속이다. 그런데도 주류 언론들은 내란 동조 국힘당의 윤석열 옹호성 발언을 그대로 받아써 보도해 왔다. 탄핵소추된 내란수괴 측근과 변호인들의 궤변 · 망언도 생중계했다. 이런 보도는 법원 침탈이라는 전례 없는 폭동까지 일으킨 극우 내란 지지 세력을 선동하는 데 일조했다. 언론이 해서는 안 될 이런 보도를 계속하고 있는 명분이 바로 ‘기계적 중립’이다.

 

지난 7일 내란수괴 윤석열이 풀려나면서 혼란과 불안은 더욱 커졌다. 주류 언론들은 법원의 윤석열 구속취소,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 결정을 기사화하며 또다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기계적 중립’을 들이댔다. “여야 크로스 고발전”(국민일보), “심우정 ‘윤 석방 소신껏 결정’/야 ‘모든 사태 원흉, 사퇴해야’”(서울신문), “심우정 ‘윤 석방지휘는 소신’/‘사퇴·탄핵사유 안 돼’ 야 요구”(세계일보) 등 윤석열 석방을 놓고 검찰의 주장과 야당의 검찰 비판을 나란히 보도했다.

 

내란 동조 의혹을 받고 있는 심우정 총장의 ‘소신’과 이에 대한 야당의 비판은 서로 논쟁적인 주장인가? 주류 언론은 정말로 심우정 총장의 윤석열 석방 ‘소신’이 진실에 부합한다고 생각해 이렇게 보도한 것일까? 심우정 총장의 결정은 진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잘못된 ‘소신’이다. 그가 ‘소신’이라며 결정내린 즉시항고 포기는 다음 날 대검이 ‘향후 구속기간은 시간이 아닌 날짜로 따지겠다’는 발표로 하루만에 ‘기만’이었음이 증명됐다. 그저 ‘국민을 개돼지로 여겨도 된다’는 소신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주류 언론들은 이것을 마치 검찰총장의 올곧은 ‘소신’이었던 것으로 포장해서 이에 대한 비판 주장과 대등하게 보도한 것이다. 이런 보도가 내란 세력을 선동해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주류 언론들이 내란을 부추길 생각이 아니라면, 심우정의 잘못된 ‘소신’을 신랄히 비판해야지 그대로 받아쓰기하고 야당의 비판과 대등하게 기사화해서는 안될 일이다. 

 

3월12일자 서울신문 기사. 

 

윤석열 석방은 법 적용, 집행의 일관성을 무너뜨렸다. 임은정 검사는 이를 ‘한국 현대사는 물론 검찰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라고 했다. 내란 조기 수습을 갈망하는 시민들의 열망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이 결정을 내린 판사가 과거 자신이 쓴 책에서 ‘구속 기간은 날짜 기준’이라고 쓴 사실이 공개되면서 판사의 결정도 ‘개소리(bullshit)’였음이 드러났다. 공정한 법률적 판단이 아니라 오로지 윤석열을 지켜주기 위한 내란 옹호 목적이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도 주류 언론들은 내란을 옹호하는 ‘개소리’를 충실히 받아쓰기 보도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런 ‘개소리’를 내란을 비판하는 합리적 주장과 나란히 보도함으로써 그것이 ‘개소리’인지 아닌지 혼란스럽게 했다.

 

윤석열 석방으로 시민들과 야당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다. 12.3 비상계엄을 해제시켜 초기에 내란 수습에 공을 세운 야당이 즉시 윤석열 석방에 항의하는 삭발·단식·집회에 나섰다. 그러자 이번에도 여러 주류 언론들은 일제히 이를 국힘당·극우세력 집회와 같은 비중으로, 동급의 사안으로 보도했다.

 

“계엄 혼란 100일, 분열 키우는 아스팔트 정치”(동아일보)/ “국회대신 거리로...윤 석방에 극렬해진 ‘지지층 결집’ 정치”(한국일보)/ “헌재 앞 시위, 국회서 삭발...‘한쪽만 본다’ 극한 분열 키우는 여야”(서울신문)/ “거리로 나간 야당, 각자에 맡긴 여당”(중앙일보)

국힘당과 극우세력의 탄핵 반대(내란 옹호) 집회 vs 야당과 시민들의 탄핵 촉구(내란 비판) 집회는 경쟁적 사안인가? 같은 토론의 장에 올려 논쟁을 벌여도 무방한 것인가? 지금의 이 혼란의 원인은 정말 여야 모두에게 있는가? 분열의 책임은 여야가 똑같은 정도로 져야하는가?

 

여야가 모두 거리 집회에 나선 것은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주류 언론은 이 혼란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혼란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히 가려내고 이 혼란을 수습할 여론조성에 나서는 게 해야할 일이다. 옳고 그름, 책임의 경중을 명확히 가려 그에 맞는 비판을 해야지 양쪽을 똑같이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는 보도다. 양쪽 주장을 무조건 같은 크기로 보도하는 것도 진실을 호도하는 무책임한 보도다.

 

국힘당은 혼란과 위기를 초래한 12.3 비상계엄에 협조해 놓고도 오히려 야당에게 내란 책임을 묻고 야당 대표 흔들기에만 온 힘을 쏟고 있다. 윤석열을 지키겠다며 광장에 나가 극우 세력을 공공연히 선동함으로써 혼란을 부추겨왔다. 내란 정당 국힘당의 뻔뻔함에 대해 주류 언론이 해야할 일은 자명하다. 단호한 목소리로 ‘그 입 다물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주류 언론들은 국힘당과 민주당 사이에서 '기계적 중립' 자세만을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 내란 정당 국힘당에게 큰 힘을 주는 편향보도일 뿐이다. 

 

3월12일자 한국일보 1면 기사. 

 

헌재의 탄핵 판결이 다가오자 내란 동조·지지 세력의 난동은 더 심해지고 있다. 국힘당은 어떻게든 정당 해산·소멸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더 적극적으로 극우세력과 한몸이 되어 내란 옹호에 나서고 있다. 최상목, 심우정 등 윤석열의 복귀를 기다리는 내란 가담자들도 마찬가지다. 언론이 이들 민주주의 부정 세력이 벌이는 혐오·증오의 집회와, 내란을 종식시키자고 외치는 야당·시민들의 집회를 나란히 보도하는 것은 중립의 탈을 쓰고 내란 옹호 세력을 돕는 것이다. 중립을 가장해 한 쪽을 편드는 기만인 것이다. 그래서 이런 보도는 ‘기계적 중립’이라고 부르기보다는 ‘기만적 중립’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류 언론들(기자들)은 미국식 ‘객관주의 저널리즘’, ‘중립 만능주의’에 빠져 사안의 경중(輕重)과 주장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그저 양쪽을 다 보도하는 ‘기계적 중립’을 채택해왔다. 100대 맞을 잘못을 저지른 자와 10대만 맞아도 될 자를 구분하지 않고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복잡하게 따질 일이 없으니 보도하기 편하다. 이쪽도 나쁘지만 저쪽도 나쁘다라고 쓰면 한 쪽으로부터 욕먹을 일도 없다. 그러나 이런 식의 '기계적 중립' 또는 양비론은 진실을 모호하게 만든다. 진실을 왜곡하고 대중을 속이는 ‘기만적 중립주의’다.

 

언론 비평가이기도 한 노엄 촘스키 교수는 “언론이 양쪽 입장을 다 보도하는 것은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의 이익을 보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언론의 ‘기만적 중립주의’ 역시 중립을 가장해 기득권 이익을 위한 모습이었다. 한국 주류 언론은 언제나 독재권력, 재벌, 검찰권력의 편에 서 온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어쩌면 주류 언론들 자신이 기득권 카르텔의 일부라고 생각해왔을 것이다. 그러니 기득권의 이익을 방해하는 자는 누구라도 주류 언론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그 피해자가 누구였는지도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뉴욕대 언론학 교수인 제이 로젠이 “기계적 중립은 양비론적 태도로 이어져 민주주의 후퇴를 방조하는 역할을 한다”고 경고한 것은 한국 언론이 ‘기만적 중립’ 보도를 연일 쏟아내는 작금의 상황에 딱 맞는 말이다. 언론학자들의 이런 고견을 꺼내들 필요도 없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주장을 민주주의를 수호하자는 주장과 기계적으로 대등하게 보도하는 것은 민주주의 파괴 세력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다. 12.3 이후 지금까지 국힘당의 뻔뻔한 태도, 최상목 권한대행의 오만한 국정운영, 법원을 침탈하고 헌재를 협박하는 극우세력의 난동을 보면 알 수 있다.

 

거대 주류 언론들과 그 언론에 종사하는 똑똑한 기자들이 ‘기계적 중립’이 실은 ‘기만적’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가끔은 그저 ‘언론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도그마에 빠진 순진한 언론인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주류 언론 기자들은 ‘기계적 중립’이 실은 기득권 편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알면서도 ‘기계적 중립’을 내세워 내란 세력의 증오·혐오·허언·망언을 그대로 보도하고 있으니 그것 자체가 ‘기만적’이다. ‘기계적 중립’, 아니 ‘기만적 중립’ 보도로 교묘히 내란을 옹호하고 국가적 혼란을 부추기는 언론은 민주주의의 독(毒)이다. 이런 위험한 언론(기자)이 고귀한 언론 자유를 누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언론개혁의 과제다. < 민들레 김성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