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평통 토론토협의회(회장 김연수)가 지난 8월7일 킹시 인근에 있는 '뉴에덴 영성센터'에서 제19기 마지막 정기회의를 겸해 김득환 토론토총영사 초청 평화통일 강연회를 가졌다.
자문위원 35명이 참석한 이번 모임은 먼저 정기회의가 열려 사업 및 회계보고와 우수 자문위원 표창 등이 있었다.
김연수 회장은 인사에서 8월말로 임기를 마치는 19기 토론토 자문위원들이 유례없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업들을 펼치며 평통 위상을 높였다고 밝혔다.
평통은 19기 동안 사무실 확장 이전과 자체회의실 마련, 활동 자료집 발행 및 통일포럼, 모국 코로나돕기 성금 1만 달러 기부 등 실적을 남겼다.
2부 행사로 열린 통일강연회에서 지난 6월 부임한 김득환 총영사는 ‘대한민국의 위상과 한반도의 미래-재외동포의 역할과 기대’를 주제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김 총영사는 “최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하고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한국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에 걸맞게 기여해야 한다”고 말하고 “정부의 통일정책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이며 최근 남북연락통신선 복원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추진의 동력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김 총영사는 이어 “토론토협의회 자문위원들이 캐나다 사회에 동화되어 한국의 위상을 제고하고 동포 자녀들이 주류사회의 각계에 진출해 평화통일 지지 분위기 확산의 주역들이 되어 달라”고 당부했다.
참석자들은 이어진 여흥시간에 가족들을 포함해 게임을 즐기며 친목을 다졌다.
평통 토론토협의회는 9월부터 116명의 자문위원들과 함께 제20기 활동을 시작한다. < 문의: 416-737-6500 >
이제 그 말도 많고 말썽 많았던 동경올림픽이 끝났다. 자기들 스스로는 코로나를 극복한 성공적인 올림픽이라 말을 하지만, 특히 일본사람들은 역대 어느 올림픽에서보다 금메달을 많이 땄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끝난 올림픽이라 한다. 정말 그럴까? 무엇보다 사상초유의 무관중으로 경기가 치러진데다가 세계 각지에서 관람객이 올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성공적으로 끝난 올림픽이라 말할 수 있을까? 누가 보아도 애초부터 잘못 치러진 경기였다. 코로나 때문에 애초 계획보다 일 년늦게 치러진 것으로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사실 올림픽이 아니었다면 일본은 코로나에 더 적극적으로 효과있게 대응했을지 모른다. 처음에는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그들은 확진자를 숨겼고, 그 이후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올림픽 기간에도 많은 희생을 감춘 느낌이 든다. 이제 올림픽이 끝나고 무섭게 늘어나는 확진자를 보면 알 수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올림픽이었는가? 나라가 국민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취급해야 할 일이 있는가? 그리고 전염병의 특성상 코로나에 의한 희생자가 일본에 한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퍼질 가능성도 있다.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과 일본 두나라의 관계가 나빠졌다.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한국 탓이었다. 평화라는 올림픽의 목표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 국가적인 큰 행사를 앞에 두고 어려운 일에 처했다면 서로 돕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애초에 코로나로 인해 한국에 도움을 청하기엔 일본의 자존심이 너무 강했다. 코로나에 대한 방역 문제에 관해선 한국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모범적인 국가인데, 그들은 처음부터 한국을 무시하는 길을 택했다. 오히려 독도와 욱일기 문제로 한국을 분노하게 하는 길을 선택했다. 올림픽을 계기로 우리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는 문제도 한외교관의 극단적인 발언으로 취소하게 만들었다. 그 말이 그 시점에서 외교관이 할 말인지 의문스럽게 만든다 어쩌면 의도적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그 단어를 말하기 전에 그는 분명 일본은 한국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그들은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힘에 있어 우위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올림픽도 자신들의 힘의 우위를 과시한 마당으로 생각한 게 아닐까?
이번 올림픽에서는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이 영향을 주었다. 어쩌면 이런 상황 아래서 올림픽을 치르는 것 자체가 문제인지 모른다. 특히 선거 때만 되면 그들은 한국을 공략해야만 했다. 그래야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번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철저하게 이용하려 했다. 올림픽 공식 지도에 독도와 쿠릴 열도를 자신의 영토로 넣었다. 지금 분명 한국과 러시아의 영토이다. 이 사실은 일종의 정치적인 도발이다. 욱일기(전범기)를 가지고 경기장에 들어와 응원하려 했다. 무관중 경기가 되어 무산됐다. 개회식과 폐회식에서 기미가요를 불렀고, 히로시마 피해자에 대한 묵념 순서를 넣으려 했다. 그들은 방사능 오염에서 해방된 후쿠시마의 부활을 전세계에 알리는 올림픽을 말했지만, 어찌 보면 강한 국가의 부활을 알리려 했던 올림픽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올림픽이 끝나고 바로 있을 선거에서 많은 표를 얻어 헌법 개정까지 몰고 가려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위대라는 방어적인 군대가 아니라 공격, 나가서는 해외파병 내지는 침략도 가능한 군대로 만들려 하고 있다. 만약에 코로나 팬데믹이 없었다면, 그들의 계획했던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일본은 역대 가장 많은 금메달을 따냈지만, 그와 동시에 엄청난 재정 적자를 보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엄청난 코로나 확진자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 곧 그들이 계획한 대로, 올림픽으로 한참 애국심이 고조된 시점에 선거를 치르게 되었지만, 정권을 연장하고 원하는 개헌을 할 정도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과거를 부활시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살아남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한국 교회음악의 산증인이며 음악계 거장인 토론토 큰빛교회 박재훈 원로목사가 8월2일 오전 10시 5분 입원 중인 미시사가 트릴리움 병원에서 향년 99세로 소천했다.
고 박 목사는 투병 중이던 암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한지 나흘 만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박 목사의 유족은 황영숙 사모와 (화가인 장남 은성) LA에서 목회 중인 아들 기성, 딸 순혜 씨 (등 2남 1녀)와 손자들이 있다.
큰빛교회장으로 7일 천국환송예배 드려…문 대통령도 조화
고 박 목사의 장례는 큰빛교회(담임 노희송 목사) 장으로 8월7일(토) 진행됐다. 이날 장례는 오전 10시부터 큰빛교회 임마누엘 채플에서 조문을 가진 뒤 11시부터 천국 환송예배를 드렸다. 이어 하관예배는 오후 2시에 브램튼의 큰빛동산(Meadowvale cemetery: 7732 Mavis Rd. Brampton)에서 드려졌다. 이날 장례식에는 방역지침으로 제한된 가운데 교계 목회자들은 물론 한인사회 주요 인사들과 성도들이 참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특별히 조화를 보내 고인을 추모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예배에서 노희송 목사는 “박 목사님은 예배에는 호랑이 같으셨으나, 항상 자상하게 응원하고 이끌어 주신 아버지 같으신 분이셨다”고 회고하고 “교회 가장 큰 어른이 하나님 품에 가셔서 슬픔은 크고, 빈 자리가 그리워지겠지만, 일평생 천국을 바라보고 믿음의 길을 걸으며 충성되게 사명을 완수하셨기에, 목사님을 본을 삼아 끝까지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가는 큰빛교회와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소망했다.
박 목사 애창 찬송과 작곡한 찬송가들 예배당에 울려퍼져
천국환송예배는 노희송 목사 집례로 드렸다. 고 박 목사가 즐겨 부르던 ‘구주를 생각만 해도’찬송(85장)에 이어 송민호 목사(토론토 영락교회 담임)가 기도하고, 딸 순혜 사모와 아들 박기성 목사가 부친을 추도하는 조사를 했다. 이어 생전 영상과 육성, 사진 등을 배경으로 큰빛교회 찬양대가 박 목사가 생전 작곡한 찬송가들 가운데 선곡한 ‘눈을 들어 하늘 보라’(515장) ‘어서 돌아 오오’(527장) 등 찬송들이 메들리로 예배당에 울려 퍼졌다. 설교는 박 목사가 청빙했던 큰빛교회 2대 담임 임현수 원로목사가 ‘백년 찬송의 열매’(사 43:21, 시 33:1)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임 목사는 고 박 목사의 생전 발자취를 돌아보며 “목사님의 생애는 의롭고 열매를 많이 맺는 종려나무 같고, 단단하고 향기로운 백향목 같은 모습이셨다. 흑암에 있던 우리 민족에게 소망을 준 한국 교회음악계의 큰 별이셨다”고 추모하며 평생을 하나님 찬양으로 살으신 귀한 믿음을 본받자고 전했다. 예배는 고인의 애창 찬송인 ‘나의 갈 길 다가도록’(384장) 합창에 이어 이동원·홍정길·문성모 목사·국영순 교수·조성준 장관 등 국내외에서 보내온 추모영상이 상영됐다. 축도는 온주교회협 회장 이요환 목사(소금과 빛 염광교회 담임)가 하고 예배를 마쳤다.
한국전쟁 와중에 찬송가와 동요 작곡, 희망과 용기 전해
고 박재훈 목사는 1922년 강원도 김화군 김성(金城)에서 출생, 감리교 John Moore선교사가 세운 Bible College인 평양 요한학교와 서울 중앙신학교를 마쳤고, 동경제국음악학교에서 공부한 후 평양에서 교사로 봉직하며 동요와 찬송가 작곡을 시작했다고 생전 밝힌 바 있다.
박 목사는 6.25 와중에 동요와 찬송가를 작곡해 전란에 고초를 겪는 어린이들과 성도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 뒤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의 크리스천 신학교, 프린스턴대 웨스트민스터 Choir College (석사) 등을 나왔다. 나중 캘리포니아 아주사 퍼시픽대학에서 명예 인문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1979년 토론토에, 성가대 지휘 · 한인합창단 창단…60대 목사 안수
박 목사는 프린스턴대를 마친 뒤 한경직 목사의 부름으로 63년부터 73년 미국 이민까지 서울 영락교회 지휘자, 한양대 음대교수 등을 역임했고, 캐나다 토론토에는 79년에 이민 와 정착, 한인 연합교회 성가대 지휘를 맡았다. 박 목사는 그 해에 토론토 한인합창단을 창단, 한인동포들의 합창문화 발전을 선도하며 이민사회 음악예술과 공연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작곡가와 지휘자로 명성이 난 고 박 목사는 60대 장로였던 당시 토론토 영락교회 김재광 담임목사의 권유로 목사고시에 응시해 1982년 11월25일 목사안수를 받았다. 이후 ‘대한교회’의 청빙을 받아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교회이름을 ‘큰빛교회’로 바꾸고 사실상 개척교회로 1984년 7월15일부터 목회를 시작해 설교와 지휘를 겸한 사역을 하다 후임 임현수 목사를 청빙한 후 1990년 은퇴했다.
평생 작곡에 헌신…찬송가 500여곡 · 동요 150여곡, 오페라도
고 박 목사는 평생 작곡에 열정을 쏟아오며 5백여 곡의 찬송가와 어린이 찬송가, 칸타타 등 교회음악과 150여 곡의 동요 등을 남긴 한국음악계의 산 증인이다. 국민적 애창 동요 ‘시냇물은 졸졸졸졸’ ‘엄마 엄마 이리와’ ‘산골짝의 다람쥐’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오페라 작곡에도 심혈을 기울여 2000년 ‘오페라 에스더’와 ‘유관순’에 이어 2012년 ‘손양원’을 작곡, 제6회 대한민국 창작 오페라 최우수상을 받았다. 앞서 2011년에는 한국정부가 주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했다.
그는 백수를 바라보는 고령과 갑상선암 등 질환에도 굴하지 않고 3.1운동을 주제로 한 4번째 오페라 ‘함성 1919’를 완성,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역사적인 해에 KBS홀에서 감동의 초연무대를 가진 바 있다.
창작 오페라 최우수상 ‘손양원’, 한국교회 회복 열망 담아
고 박 목사의 역작인 ‘오페라 손양원’은 9순의 박 목사가 2년6개월에 걸쳐 완성한 총 2막의 악보 150페이지에 달하는 대작이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널리 알려진 순교자 손양원 목사(1902~1950)의 위대한 삶을 담은 기독 예술작품이다. 그는 ‘손양원’ 완성 후“이렇게 늙었는데도 하나님께서 사용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라며 “위기에 빠진 한국교회에 앞으로 참된 목자요 성자인 손양원 목사 같은 분이 많이 나오기를 간구하는 심정으로 작품에 매달려왔다”고 자신의 소망을 강조한 바 있다.
“한국교회가 부흥도 했지만 부패도 했고, 이제 손양원 목사 같은 분이 많이 나와야 할 때”라고 거듭 자신의 열망을 전한 박 목사는 “교회는 영적이어야 하는데, 너무 물질화되었어요, 그리스도 정신이 살아나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살아나야 합니다. 모두 기도를 부탁합니다…”라고 한국교회를 향한 사랑을 드러낸 바 있다.
수많은 악보 · 작곡집과 저서…‘창조주 하나님’은 “토론토 찬송가집”
고 박 목사는 생전 수많은 악보·작곡집과 ‘찬송가 작가의 면모’‘주일학교 음악 지도법’ 등 다수의 저서 및 기고문, 영상 자료집 등을 남겼다. 찬송가에는 ‘눈을 들어 하늘보라’, ‘지금까지 지내온 것’ 등 9곡이 수록돼 있다. 2013에 나온‘작곡가 박재훈 목사 이야기’는 장신대총장을 역임한 문성모 목사가 박 목사의 음악적 삶과 신앙 역정을 담아 낸 자서전이다.
또 최근 나온 책으로는 2016년에 출간된 ‘창조주 하나님’이 있다. 이 작곡집은 박 목사가 평생 작곡한 5백여 곡의 찬송가 가운데 437곡과 어린이 찬송 76곡 등 513곡이 수록됐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은 박 목사가 토론토에서 작곡한 곡들이어서‘토론토 찬송가집’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2019년 ‘주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의 밤’ 그의 마지막 찬양제
큰빛교회는 박 목사의 생전 작곡과 찬양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9년 11월3일 저녁 그의 곡들로 연주한 ‘주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의 밤’을 성대히 개최한 바 있다. 큰빛교회는 이후 해마다 박 목사의 곡을 연주하는 찬양제를 열기로 했는데, 지난해 코로나 사태로 열지 못함에 따라 고인에게는 첫 번째이자 마지막 찬양제가 되었다.
평생 ‘하나님 찬양과 예배’의 삶을 살다 간 고 박 목사는 생전에 가장 좋아하는 성구를 이렇게 전하곤 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 12장 1절) < 문의: 905-677-7729, lkpcoffice@gmail.com>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갑작스럽게 나온 노 목사의 사임 뜻은 지난 7월 둘째 주 당회원들에게 먼저 밝히고 7월25일 ‘목회서신’ 형식으로 성도들에게 전해져 놀라움을 주었다.
지난 2007년 밀알교회 부임이후 목회 15년차가 된 노 목사는 “한 사람이 한 교회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어느 순간부터 교회에 발전이 없을 것이라는 나름의 소신 때문”이라고 사임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노 목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밀알교회 주인노릇 하고픈 마음이 강해지고 있는 제 자신을 너무 잘 알기에 교회가 안정되고 평안하여 적당할 때 자리를 옮겨 줘야지 하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며 “지난 2년 동안 고민과 기도를 해오다 결단을 내려 이제 밀알교회 사역을 내려 놓으려 한다”고 말했다.
노 목사는 교회에 어려운 일이 있어 사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일부의 시선에 대해 “전혀 그런 것은 없다”고 단언하고 “밀알교회는 참으로 평안하고 재정적으로도 안정된 참 좋은 복된 교회”라면서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에 순종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사임 이후 목회지에 대해 노 목사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나, 미국 동부의 담임목사가 은퇴하는 한 교회를 두고 기도하고 있다”고 밝히고 “그 교회는 밀알교회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이며 아직 저에 대해서는 존재도 모를 것“이라고 전했다.
노 목사는 “9월말로 설교와 심방 등 사역은 정리하겠지만 연말까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성도들과 작별의 아픔을 달래려 한다”면서 교회의 후임목사 청빙에는 관여하지 않고 도움만을 주다가 떠나겠다는 뜻도 밝혔다. 노 목사는 사임 후 미국 쪽 교회에 청빙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가족은 캐나다에 남을 것이라는 뜻도 밝혔다. < 문의: 416-226-41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