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주권은 양도하지 않았다는 게 핵심"
멕시코 첫 여성 대통령 셰인바움 취임 1년
트럼프, 수출품에 최고 30% 관세 부과해

"멕시코, 절차와 기술적 양보 거래했을 뿐
"트럼프식 세계에선 이중 게임 여지 작다"
룰라 정부 '전략적 모호성'에 우려 표명

이재명, 룰라와 셰인바움 특징 모두 갖춰

 

"단호한 실용주의"(Assertive pragmatism). 국제 컨설턴트인 기욤 슈나이더 박사는 '단호한 실용주의 대 전략적 모호성: 트럼프의 미국에서 멕시코와 브라질'이란 2일 자 <모던 디플로머시> 기고를 통해 동맹국, 경쟁국을 가리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폭력'에 대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63) 멕시코 대통령의 접근법을 이렇게 표현했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의 접근법은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으로 규정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63) 멕시코 대통령이 취임 1년을 맞이한 1일 멕시코시티 대통령궁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 10. 01 [AFP=연합]

 

트럼프, 수출품에 최고 30% 관세 부과했지만
"멕시코, 분노 아닌 절제된 단호함으로 대응"

 

이 글에서 슈나이더 박사는 "트럼프의 미국은 적응하든, 저항하든, 재조정하든 선택을 강요받는 익숙한 위치로 라틴 아메리카를 되돌려 놓았다지만, 이 지역의 두 거인, 멕시코와 브라질은 너무도 다르게 대응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관세 부과와 이민·마약 단속 등 중남미에 전방위 압박을 가하는 '트럼프 2기 미국'에 대처하는 것에 그는 "멕시코는 일찍부터 게임을 읽었다"면서 "멕시코는 과잉 반응을 하는 대신에 '단호한 실용주의'를 택했다"고 해석했다. 구체적으로, 트럼프가 멕시코 수출품에 최고 30%의 관세 부과를 발표했을 때, 멕시코는 "분노가 아닌 절제된 단호함으로 대응했다"라는 게 슈나이더의 평가다.

 

셰인바움 정부는 일시적이지만 공급망 보존과 시스템 충격 완화를 위해 대미 협상을 통해 90일간의 관세 유예를 얻어냈지만, 그만한 대가도 치렀다. 신속한 범죄인 인도, 마약 단속 협력 강화, 일부 비관세 장벽 철폐 약속 등이 그것들이다. 이에 슈나이더는 "핵심은 멕시코가 절차와 기술적 양보를 거래했을 뿐, 결코 주권은 양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방적 명령에 굴복하지 않고, 협력을 (일종의) 화폐로 전환했다"고 풀이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2일 워싱턴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열린 새로운 관세 발표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5.4.2. AP 연합

 

"멕시코, 절차·기술적 양보 거래했을 뿐
결코 주권은 양도하지 않았다는 게 핵심"

 

안보 의제에서도 멕시코는 무기 추적, 국경 검문, 정보 공유에서 더 긴밀한 협력을 허용했지만, "종속이 아닌 협력"의 원칙을 따랐다는 것이다. 슈나이더는 "워싱턴은 가시적 성과를 얻고, 멕시코는 대내외에 '자율성'을 과시하는 상징성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관세 90일 유예엔 "단순히 숨 쉴 공간 이상"이라는 그는 내년으로 예정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재검토를 앞두고 "축적되는 정치적 자본"이며, 조약이 재개될 때, 멕시코는 협력 기록을 제시하며 협정의 지속을 정당화하고 더욱 징벌적인 재협상으로부터 자국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봤다.

 

슈나이더는 '상호 의존'이 멕시코의 최대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미 제조업 회랑은 멕시코의 노동력, 물류, 지리적 근접성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멕시코는 전술적 기동을 통해 긴장을 식힘으로써 트럼프의 무역 국가주의가 자동차 생산, 전자 산업, 농업 비즈니스를 흔들지 않도록 보장한다"며 "이것이 단호한 실용주의의 숨겨진 힘이다. 즉, 멕시코의 진정한 지렛대인 구조적 통합을 보호하면서 시간을 버는 능력이다"라고 설명했다.

 

올해 3월에 미국의 관세 압박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시위를 조직하고 그것을 트위터에 게시한 멕시코 셰인바움 대통령  

 

멕시코 첫 여성 대통령 셰인바움 취임 1년
"미국 압력에 어조는 정중, 메시지는 단호"

 

앞서 슈나이더는 반년 전 '멕시코의 전략적 상승'이란 <모던 디플로머시> 기고(4월 3일)에서도 멕시코 연방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인 셰인바움이 트럼프와의 관세 협상에서 보인 태도에 대해 "어조는 정중했고, 메시지는 단호했으며, 결과는 멕시코가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협상하는 법을 배웠음을 보여줬다. 관세가 다시 부과될지는 두고봐야겠지만, 멕시코는 변덕스러운 파트너와도 긴장을 완화하고, 소통하며, 양자 간 신뢰를 유지하는 능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3월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 전 셰인바움 대통령은 각료, 기업인 등 관계자와 상의하고 미국 대통령 발언을 철저히 연구한다"며 "트럼프의 모욕적 언사에 불쾌감을 표하는 대신 침착하게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10월 1일로 취임 1주년을 맞이했다. 유대계 출신 좌파 정치인인 셰인바움은 대학에서 물리학과 공학을 전공했으며 2018년부터 5년간 수도 멕시코시티 시장을 지냈다. 멕시코 경제신문 엘피난시에로의 9월 설문조사에 따르면, 셰인바움 긍정 평가는 73%에 달하고 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7일 진행된 브릭스 정상회의 관련 기사회견 도중,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마우루 비에이라 외교장관의 말을 듣고 있다. 2025. 07. 07 [AFP=연합]

 

"트럼프식 세계에선 이중 게임 여지 작다"
브라질 정부 '전략적 모호성'에 우려 표명

 

슈나이더는 2일 기고에서 브라질 룰라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에는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룰라 정부는 브릭스 내에서 리더십을 유지하고 중국 관계를 심화하는 동시에 워싱턴과의 공개 충돌은 피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과는 혼란스러운 신호였다. 베이징엔 유대를 재확인하고, 트럼프엔 대화를 약속하는 이런 이중 전략은 현실에선 의심을 낳았다"면서 "워싱턴은 가혹하게 대응했다. 핵심 산업 부문에 대한 징벌 관세, 주요 감시 목록에 브라질 포함, 그리고 브라질을 신뢰할 수 없는 국가로 규정하는 담론이 그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트럼프에 대한 멕시코와 브라질의 대응 차이에 그는 "멕시코가 먼저 워싱턴을 진정시키고 조약 재검토를 준비하는 순차적 기동을 했다면, 브라질은 명확한 순서나 우선순위 없이 수사적 저항과 전술적 양보를 결합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투자자와 수출업자들은 (브라질의) 이러한 일관성 결여를 감지하고 있다. 그들은 더 높은 비용, 불확실한 무역 조건, 워싱턴과 베이징 양쪽과의 협상에서 약화된 지렛대를 경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63) 멕시코 대통령이 독립기념일인 16일 멕시코시티에서 군사 퍼레이드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5. 09. 16 [AFP=연합]

 

"멕시코, 단호함과 대립 같지 않음 보여줘,
이재명, 룰라와 셰인바움 특징 둘 다 갖춰

 

슈나이더는 "트럼프식 세계에는 이중 게임일 벌일 여지는 작다. 한 국가가 워싱턴에서 특혜를 기대하는 동시에 베이징에 충성한다는 신호할 수는 없으며, 그러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대가는 이미 드러나 있다: 약화된 수출 조건, 투자자들의 의심, 그리고 글로벌 협상에서 취약한 위치가 그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슈나이더는 "멕시코는 단호함과 대립이 같지 않음을 보여준다. 단호함은 경계를 설정하고, 속도를 조절하며, 실질적인 결과물을 가지고 협상하는 것을 뜻한다. 원칙을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과정에서 양보할 의향이 있다는 의미다. 브라질은 정반대를 보여준다. 신호가 엇갈리면 비용은 증가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멕시코의 단호한 실용주의는 화려하진 않지만 효과적"이라고 평가했다.

 

슈나이더는 "이것은 단순한 외교 차원을 넘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며 멕시코 기업들엔 △ 90일 단위의 단기 계획을 세우고 △ 계약서에 관세 조정 조항을 포함하며 △ 내년 USMCA 재검토 협상에 대비해 증거 자료를 준비하라는, 그리고 정책 입안자들을 향해선 범죄인 인도, 합동작전 등 안보 협력도 대미 무역 협상의 포트폴리오 일부로 삼으라는 실질적 메시지를 준다고 풀이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홍보영상에 항공기 유도원으로 '카메오' 출연했다. 2025.10.2 [홍보영상 캡처] 연합
 

이재명 대통령의 행보는 브라질의 룰라와 멕시코의 셰인바움, 누구에 더 가까울까? 소년 노동자 출신에 시민과 함께 내란 극복을 통해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정상화하는 측면에선 룰라와 가까운 반면, 대미 협상에서 '예의는 지키면서 협력하되, 국익을 위해 굴복하지 않는’ 실용적 자세에선 셰인바움에 가까워 보인다.                           < 이유 기자 >

 

제럴드 커티스 컬럼비아대 교수 비관적 전망

아베 정권 ‘적통’ 다카이치 정권, 서로 다른 점
여대야소 아베 정권, 여소야대 다카이치 정권

야당과의 연립 또는 협조체제의 관건인 ‘감세’
이스라엘 네타냐후 극우정권과 닮은 구조?

대외정책에서도 닮은 구조, 한일관계 시험대에

 

일본 집권 자민당(LDP)의 신임 대표로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가 10월 4일 도쿄에서 열린 자민당 총재 선거 후 당 대표실을 나서고 있다. 극우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는 이날 자민당 총재로서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될 것이라며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2025.10.4. 로이터 연합
 

저명한 일본정치 전문연구자 제럴드 커티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일본 집권 자민당이 극우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를 새 총재로 선출한 것을 두고 “그런 일은 (세계)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다”며, “일본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이코노미스트> 10월 4일)

 

‘그런 일’이란 글로벌 민주주의적 추세가 “양극화되고 민족주의적이며 문화전사적인culture-warrior) 정치” 쪽으로 흘러가는 것으로, 극우세력이 대두하고 있는 유럽의 우경화와 최근 도널드 트럼프 재집권 이후 도드라지고 있는 미국의 극우 민족주의, 보호주의 현상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읽힌다. 지난 7월의 일본 참의원선거에서 극우 참정당과 우익으로 기운 국민민주당이 크게 의석수를 늘리며 약진했을 때, 다수의 평론가들은 일본에서도 극우정당이 집권한 이탈리아나 극우정당 AfD(독일의 대안)이 제2당으로 도약한 독일과 같은 ‘유럽적 우경화’가 일본에서도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일본의 우경화는 동서냉전이 무너지고 일본 거품경제가 꺼지기 시작한 1990년대 초에 이미 시작됐으며, 2006년의 극우 정치인 아베 신조의 1기 정권, 특히 2012년 말의 재집권(아베 2기 정권) 이후 일본에서는 이미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다카이치의 총재선출 “자민당 붕괴를 재촉할 뿐”

 

커티스는 그러나 자민당이 다카이치를 총재로 선택한 것은 이미 위기에 직면해 있는 “자민당의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고 했다.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한 자민당 붕괴 재촉 요인은 먼저 다카이치가 당을 급격히 (더욱) 우경화시킴으로써 자민당의 보수(우익)세력과 중도세력 간의 균열을 확대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카이치의 등장은 좀 더 진보적인 야당세력이 자민당 내의 중도적 유권자들을 떼어내 갈 기회를 열어 줄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다카이치 총재는 지난 25년간 자민당의 온건한 연정 파트너였던 공명당과의 동맹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공명당은 이미 다카이치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하는 극우적 발언을 문제삼고 있고, 극우 참정당 등과의 연정이나 정책협력 가능성에 거부감을 보이며 연정 이탈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4일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당선된 뒤 박수로 축하하는 동료 의원들에게 일어나서 화답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이코노미스트 10월 4일

 

논란이 된 다카이치의 배외주의적 차별 발언

 

다카이치의 최근 발언 중에서 정치적 논란거리가 된 것 중의 하나는 나라 공원에 야생상태로 방생돼 있는 사슴들을 “발로 걷어차는 어이없는 사람이 있다. 때려서 겁주는 사람이 있다”는 발언이었다. 외국인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다카이치는 선거 과정에서 여러차례 이 말을 거론했는데, 요컨대 일본의 훌륭한 미풍양속을 해치는 그런 저급하고 위험한 ‘외국인’들을 규제하고 단속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가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관광객들에 대해 그런 배외주의적이고 차별적인 발언을 거듭한 것은 그것이 일본 유권자 대중들로부터 호응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명시적으로 지목하진 않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주로 지금 일본의 외국인 이주 노동자나 관광객 중 다수를 점하고 있는 중국인을 가리킨다. 예전에 재일 조선들이 일본 거주 외국인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을 때 자민당 우익 정치인들이 입에 올리던 차별적이고 모멸적인 ‘삼국인’이란 말이 재일 조선인들을 가리킨 것과 유사하다.

 

다카이치가 그런 말을 거듭한 것이 참의원선거 결과 국회 1석밖에 되지 않았던 참정당이 15석으로 약진하고 국민민주당 역시 의석수를 대폭 늘린 것을 염두에 둔것이란 분석이 많다. 다카이치는 이시바 정권 때 치른 중참 양원 선거와 도쿄도 의회선거에서 자민당이 잇따라 참패해 창당 70년 역사에서 자민당이 양원에서 동시에 과반 미달 의석의 여소야대가 된 것은, 원래 자민당 지지세력이 확고한 보수우익의 ‘아베 노선’을 버리면서 골수 보수우익 지지자들이 자민당을 떠나 참정당 등 극우 신당 쪽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때로 정치적 논란까지 불렀던 그런 배외주의적이고 차별적인 발언을 거듭한 것은 자민당에서 떨어져 나간 그런 골수 지지자들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양날의 칼인 배외주의 극우 발언

 

하지만 다카이치의 이런 배외주의적 발언은 자민당 이탈 지지세력을 다시 불러모으는 플러스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자민당 내 보수우익세력과 중도 내지 개혁 세력 간의 균열을 확대하는 마이너스 효과도 있을 수 있다. 다카이치의 최근 행보를 보면, 그는 마이너스 효과보다는 플러스 효과 쪽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6년 아베 신조 1기 정권 때의 아베 신조 총리와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부특명담당대사. 당시 다카이치는 각료(대신=장관)로서 유일하게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아사히신문 10월 5일

 

아베 정권 ‘적통’인 다카이치 정권이 다른 점

 

오는 15일의 임시국회에서 총리로 선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이 예전 아베 신조 정권의 ‘적통’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아베 정권이 중참 양원 모두 압도적 과반수의 여대야소 정권이었던 것과는 반대로 다카이치 정권은 양원 모두 자민당 의원이 과만수 미달인 여소야대 정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다카이치가 15일 총리로 선출되고 이후 내각을 구성해 정권을 운영해 가기 위해서는 야당들과 연립정권을 구성하거나 정책들마다 야당과 협의해서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

 

자민당 내 온건보수나 개혁세력 및 공명당 등의 반발 때문에 다카이치가 새 총리로 선출된 뒤 곧바로 ‘일본 제일주의’를 부르짖는 참정당이나 일본보수당과 같은 극우정당들과 손을 잡고 연정을 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는 라이벌격인 입헌민주당은 일단 제쳐놓고 국민민주당이나 일본유신회와 같은 기존 야당들과의 연립이나 협력체제를 구축할 가능성이 높다.

 

야당과의 연립 또는 협조체제의 관건은 ‘감세’

 

그럴 경우 대내적으로 가장 큰 문제가 될 수가 있는 것이 감세 및 재정조달 문제다. 지난 중참 양원선거 때 야당들은 거의 예외없이 감세를 한결같이 주장했다. 감세는 이미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팽창한 일본 정부부채를 더 부풀리게 될 것이다.

 

일본의 누적 재정적자(정부 부채)는 2020년에 GDP(국내총생산)의 258.40%, 2022년엔 261%로 세계최대, 최고 수준이었으며, 해마다 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로 대표되는 아베 정권 시절의 무제한 금융완화정책(아베노믹스)은 무제한의 돈 풀기(양적 완화)였고, 그것은 주로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국채(국가발행 채권=정부 부채)발행을 통해 이뤄졌다.

 

일본은 연간 국채 이자 부담액만 2023년 결산 기준 7조 엔(약 70조 원)대에서 2024년에는 10.9조 엔(약 109조 원)으로 늘었으며, 2025년에는 13조 엔(약 130조 원)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2025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 예산안 규모는 약 115조 5415억 엔(약 1150조 원)이다. 13조 엔이면 그것의 약 12%로, 해마다 일본 국가예산의 12%가 정부부채 이자로 나간다는 얘기고, 그것을 메우기 위해 그만큼 국채를 더 발행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일본은행의 금리인상 기조로 정부부채와 그 이자 부담은 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한 해에 100만 명 이상씩 인구가 줄어가는 저출산 초고령 사회인 일본에서 과도한 정부부채 양산은 노령복지예산 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상황에서 지속 불가능한 정책이다. 그래서 자민당은 감세가 유권자들 표를 얻게 해 줄 방책이라는 것을 알지만, 집권당으로서 차마 감세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울 수 없었다. 하지만 야당들은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감세를 주장했다.

 

다카이치가 총리에 선출되고 내각을 구성해 정권을 운영하겠다면 그런 야당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극우정권과 닮은 구조?

 

이스라엘 우익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이 국제여론, 때로는 트럼프 정권의 반대까지 무릅쓰고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구 및 주변지역들에 대한 제노사이드(대량학살) 공격을 계속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단독 집권이 불가능한 네타냐후의 리쿠드당이 극우 정당들과 연립정권을 구성해야 집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총리직에서 물러날 경우 부패 혐의 등으로 기소돼 있는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네타냐후로서는 처벌을 피하기 어려운 처지여서 극우 정당들과의 연립을 통한 정권 유지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 팔레스타인인들을 완전히 배제히고 유대인만의 통합국가를 세우겠다는 배타적 국수주의세력인 극우정당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다카이치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컨대, 연립 또는 협력 야당들의 감세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애초에 강한 일본 부활을 외치는 다카이치는 아베노믹스류의 강력한 성장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지만, 감세를 주장하는 야당들과의 연립이나 협조체제는 돈 풀기식 재정적자 팽창을 제어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갈지도 모를 위험성이 있다.

 

‘잃어버린 30년’의 장기불황에 지친 일본 조야가 지금 모두 다카이치의 성장지향 경제구상을 지지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장래를 낙관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혁 주일 한국대사(왼쪽)와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이 2일 일본 도쿄 뉴오타니호텔에서 주일본 한국대사관 주최로 열린 국경일(개천절) 및 국군의 날 기념 리셉션에서 함께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 나카타니 방위상은 굳건한 한일관계를 바란다는 의미에서 장수를 기원하는 한자성어 '남산지수'(南山之壽)를 쓴 패널을 준비해왔다. 2025.10.2. 연합
 

대외정책에서도 닮은 구조, 한일관계 시험대에

 

대외적으로도 비슷한 구도가 펼쳐지지 않을까. 초지일관 야스쿠니 신사 참배론자인 다카이치는 지난해 총재선거에 출마했을 때도 총리가 되더라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겠다고 언명했다. 3번째로 도전한 이번 총재선거에서 총재가 된 뒤에는 기자회견에서 “적절한 시기에 적절히 판단하겠다”며 분명한 언급을 피했지만, 그런 자세로는 한국 중국 등 주변국들과의 관계가 평탄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지난 참의원선거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듯이 참정당 등의 극우정당들은 아베 정권 시절의 수정주의 역사관 쪽으로의 회귀를 노골적으로 주장했다. 심지어 군국일본의 전쟁시기 침략주의 언동들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며 그것을 정당화했다.

 

다카이치 정권이 그런 극우정당들과 직접적인 연립을 구성하긴 어려울지라도, 전반적으로 극우경향을 보이는 우익 야당들의 역사관이나 대외정책들을 일정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될 공산이 크다. 이번 총재선거 결과를 보건대 자민당 자체도 우파 민족주의 성향의 발언들이 내부에서 더 힘을 얻고 있다.

 

집권 이후 일본의 대외정책은 적어도 이시바 정권이 추구했던 대외정책 방향과는 결을 달리하는 쪽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시바 정권과는 서로 해결 가능한 것들부터 접근해서 단계적으로 처리해 감으로써 마찰을 줄이겠다는 ‘구동존이’식 실용주의적 자세를 견지해 온 이재명 정부의 기존 대일정책이 유지될 수 있을까. 주도면밀한 대응자세가 요구된다.                                                                  < 한승동 기자 >

 

“목걸이 받았나?” “누구한테요?”…남이 준 ‘김건희의 귀금속’ [특검 완전정복]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2022년 6월29일(현지시각)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호텔에서 열린 스페인 동포 만찬간담회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지난 8월12일 김건희 여사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한창 진행되던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 “억울하다”며 변명을 쏟아내던 김 여사의 말을 끊고 정재욱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반클리프 목걸이를 받은 게 맞나요?” 김 여사는 반문하듯 답했다. “누구한테요?” 김 여사가 구속영장 발부를 자초한 결정적 장면이었다.

 

 

헷갈렸던 탓일까. 큰 문제가 됐던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의 출처조차도 곧바로 대답하지 못할 정도로, 김 여사를 둘러싼 금품 수수 의혹은 화수분처럼 터져 나오며 특검 정국을 휩쓸었다. 2022년 9월 최재영 목사가 김 여사에게 전달했던 ‘디올’ 가방 가격인 300만원의 100배를 상회하는 약 4억3000만원. 김 여사가 현재까지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금품의 총가액이다. 김 여사 쪽에 금품을 전달하려 한 혐의로 수사를 받는 공여자만 최소 5명.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이들의 진술과 증거를 여럿 확보하며 대가성을 입증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김건희 여사가 지난 8월6일 서울 종로구 케이티(KT)광화문빌딩 웨스트에 마련된 민중기 특별검사팀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귀가하고 있다.(왼쪽) 2022년 6월 일반 국민에게 개방된 서울 용산공원에서 로봇개가 대통령 집무실 경호용으로 시험 운용되고 있다.(오른쪽) 연합
 

김 여사에게 ‘직접’ 금품을 건넸다는 첫 고백이 나온 건 김 여사 영장실질심사 바로 전날인 지난 8월11일이다. ‘로봇개’ 사업자 서성빈씨는 5400만원 상당의 시계 ‘바슈롱 콩스탕탱’을 김 여사에게 줬다고 밝혔다. 서씨는 김 여사의 부탁을 받고 이 시계를 ‘브이아이피(VIP) 할인’을 받아 3500만원에 대신 샀는데 정작 서씨는 시계값으로 500만원만 받았다고 진술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김 여사는 수천만원의 ‘부외 소득’을 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씨는 윤석열 정부 초창기 대통령경호처와 수의계약을 맺고 ‘로봇개’ 경호를 시범 운영하기로 했던 인물이다. 다만 특혜 의혹이 일자 계획이 백지화돼 사실상 대가성은 없었다고 서씨 쪽은 주장한다.

 

이튿날 열린 김 여사의 영장실질심사 법정에선 ‘자수서’도 등장했다.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이 김 여사에게 6200만원대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와 2200만원대 ‘그라프’ 귀걸이, 2600만원대 ‘티파니’ 브로치를 선물하고, 자신의 맏사위인 박성근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변호사)의 공직 임명을 부탁했다는 내용이었다. 앞서 김 여사 쪽은 ‘반클리프 아펠’ 모조품을 김 여사 오빠 장모 집에 놔두고선, 특검팀 압수수색에서 발견되자 나토(NATO) 순방 당시엔 모조품을 착용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 회장이 김 여사 쪽에 전달했다가 돌려받은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 실물을 특검팀에 선뜻 제출하자 김 여사의 진술은 신빙성을 잃었다. 이에 더해 이 회장이 총 4000만원 상당의 ‘반클리프 아펠’ 귀금속 4종을 더 구매했던 정황까지 밝혀지며 김 여사의 추가 금품 수수 의혹까지 불거졌다. 특검팀은 이 회장의 자수서를 바탕으로 수사를 이어가면서, 박 변호사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상대로 당시 김 여사 쪽의 부당한 인사 개입이 있었는지 살펴보고 있다.

 

김건희 여사에게 상납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채 진위 논란을 빚고 있는 이우환 작가 서명본 그림 ‘점으로부터 No.800298’. 2022년 이 작품을 경매에 냈던 대만 경매사 이시리얼(이씨어리얼) 옥셔니어스 누리집에서 갈무리한 이미지.

 

이들 귀금속은 모두 김 여사의 친인척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이 가운데 이우환 화백의 그림 ‘점으로부터 No.800298’은 발견 당시부터 화제가 됐는데, 최근 김상민 전 부장검사가 1억4000만원 상당의 이 그림을 구매해 김 여사 오빠인 김진우씨에게 전달한 사실이 드러났다. 특검팀은 김 전 검사가 김 여사의 취향을 파악해 오빠 김씨에게 전달했고, 이들 사이 현금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없었던 점 등을 근거로 이 그림이 대가성 선물인 것으로 보고 뇌물 혐의를 적용해 수사 중이다. 김 여사가 이 그림을 받고 김 전 검사 공천을 지원하고 공직을 제공했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김 전 검사는 이에 “김씨의 부탁을 받아 대리 구매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특검팀은 또 김 여사 친인척이 운영하는 요양원 등 금고에 보관돼 있던 순금 4∼5돈(200만원 상당) ‘금거북이’를 발견해 추적하다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이를 청탁 목적으로 김 여사에게 건넨 단서를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김 여사는 통일교 쪽에서 6220만원 상당의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802만·1271만원 상당의 ‘샤넬’ 가방 2개 등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알선수재)로 지난 8월29일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김 여사는 모든 귀금속에 대해 “안 받았다”거나 “돌려줬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고수하고 있다. 특검팀의 온갖 증거가 현출될 공개 법정에서도 김 여사의 이런 꼿꼿한 태도가 유지될지 지켜볼 일이다.     < 김가윤 기자 > 

 

‘윤석열 관저 의혹’ 현대건설·감사원…추석 뒤 특검·국감 ‘동시 조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지난 1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모습. 연합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의 남은 과제 중 하나는 관저 이전 의혹 수사다. 21그램과 경호처 등에 대한 압수수색은 일부 진행됐지만 현대건설 등 추가로 들여다봐야 할 부분이 산적한 만큼 관저 이전 의혹은 추석 연휴 이후 시작될 국정감사에서도 본격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대통령실·관저 공사 의혹은 2022년 5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취임을 앞두고 청와대 집무실을 서울 용산으로 서둘러 이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실제 대통령실 이전·관저 공사를 맡은 21그램은 김 여사가 운영하는 코바나컨텐츠 전시회에 여러 차례 후원하고 코바나컨텐츠 사무실 설계·시공을 맡았던 ‘특수관계 업체’였다. ‘여사님 업체’인 21그램이 종합건설업 면허가 없어 불법 하도급을 통해 공사를 진행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특혜 수주 의혹은 더욱 커졌다.

 

특검팀은 공사를 맡은 경호처와 현대건설과의 유착 관계에도 주목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윤석열 정부 초기 대통령 관저의 경호초소와 스크린골프장, 야외정원 파인그라스 경내 건물 등의 공사를 주도했다. 이때 예산도 없이 졸속으로 관저 이전이 진행되면서 공사비용을 현대건설이 떠안으려 한 정황까지 파악됐다. 현대건설은 당시 건축공사업을 하는 ㄱ업체에 관련 공사들을 부탁하면서, ‘다른 건설 현장 일감을 주는 방식으로 공사 비용을 지급하겠다’며 허위세금계산서 발급 등의 불법적인 제안을 한 정황도 드러났다.

 

현대건설이 윤석열 정부 당시 관저 공사 등을 해주는 대가로 800억원대 규모의 새 영빈관 공사 수주를 약속받은 정황도 특검팀은 확보했다. 정부가 출범한 뒤 경호처한테서 미군으로부터 반환받을 용산 대통령실 앞 부지에 지상 3~4층, 지하 3~4층 규모의 영빈관 공사 수주를 약속받았던 것이다. 나아가 현대건설이 수행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 리모델링 공사 자체를 모른다고 국회에서 증언했던 윤영준 전 현대건설 대표가 실제로는 공사 현장을 방문했다는 복수의 공사 관계자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감사원도 관저 의혹에 연루돼 특검 수사와 국회 국정감사의 사정범위 안에 들어와 있다. 감사원은 2023년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이전 관련 의혹을 감사했지만, 김종철 전 경호처 차장 등 윗선의 지시를 받고 일선에서 실무 작업을 한 경호처 간부 1명의 파면을 요구하고 수사 의뢰하는 선에서 감사를 마무리했다. 부실 감사를 지적받은 감사원은 이재명 정부 들어 재감사 중이다.

 

추석 이후 관저 의혹을 정조준한 국정감사의 질의들과 특검 수사가 얼마나 진척될지 관심이 쏠린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사대금 우회 지급 의혹이 불거진 현대건설에 대해 하도급법 위반 혐의 조사에 착수했다.                        < 김지은 기자 >

 

보복성 감사·관저 특혜 은폐 의혹…‘윤석열 지원 기관’ 감사원 [특검 완전정복]

 

 
 
2023년 10월 최재해 감사원장(왼쪽)과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감사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의 질의를 듣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윤석열 정부 시절 각종 정치·부실 감사 의혹의 정점에 섰던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전 사무총장(현 감사위원)을 향한 특검의 수사는 추석이 지나면서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 두 달여 만인 7월, 최재해 원장이 국회에서 “감사원은 (대통령 국정운영의) 지원 기관이라고 생각한다”고 한 발언은 헌법기관인 감사원의 독립성을 스스로 부정한 것이었다. 과거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과 인사를 겨냥한 ‘표적성 감사’는 관련자에 대한 감사원의 수사의뢰→검찰 수사→기소라는 ‘공식’까지 만들어 냈다. ‘권력의 시녀’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던 감사원의 민낯이 드러났고 이제는 책임을 물을 시간이다.

 
 

최재해 원장은 오는 11월12일 임기가 종료되지만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표적감사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소환 조사를 앞두고 있다. 공수처는 지난달 초 최 원장에게 출석을 통보했지만, 한 달 넘게 일정 조율이 되지 않아 결국 추석 연휴를 넘겨 조사 일정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는 당시 감사 과정에 관여한 실무자급 감사관들도 재소환해 조사 중이며, 최 원장도 이달 안으로 조사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2022년 8월 더불어민주당 고발로 시작된 이 수사는 3년째 답보 상태였지만, 감사원이 정권에 복무해 보복성 감사 권한을 휘두른 것은 아닌지 규명할 주요 사건으로 거론된다. 최 전 원장과 유 전 사무총장 이하 간부들의 직권남용 여부를 겨누는 까닭이다. 공수처는 감사원이 전 전 위원장의 근태 등에 대한 제보를 받고 특별감사에 착수한 경위와 감사 과정을 들여다보며 전 전 위원장을 사직시키기 위해 무리한 감사를 한 것은 아닌지 살피고 있다. 2023년 6월 권익위 감사 결과보고서를 주심 감사위원(현 조은석 특별검사)의 열람 결재 없이 시행·공개한 혐의도 수사 대상이다.

 

2022년 6월 윤석열 정부 들어 사무총장에 임명된 데 이어 ‘피의자’ 신분으로 지난해 2월 감사위원에 임명된 유병호 전 총장은 최 원장보다 더 강력한 ‘감사원 실세’로 통했다. 2022년 10월 이관섭 당시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에게 “오늘 또 제대로 해명자료가 나갈 겁니다.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입니다”라고 보낸 문자 메시지는 감사원의 보도자료 배포 계획을 대통령실에 ‘직보’하는 장면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 보도자료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국민권익위원회 감사가 감사위원회의 의결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한겨레 보도를 반박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는 독립기관임을 자임하며 감사원의 보복·하명 감사 비판을 외면했던 감사원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흔들린 장면으로도 꼽혔다. 더불어민주당은 감사원과 대통령실의 유착 관계를 의심해 유 전 총장과 이 전 수석을 공수처에 추가 고발한 상태다.

 

감사원은 공수처에 이어 특검 수사도 대비 중이다. 김건희 여사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대통령 관저 이전 특혜 의혹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 8월 두 차례에 걸쳐 감사원을 압수수색한 특검팀은 이후 관저 감사를 맡은 감사관들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마쳤다. 특검의 수사는 김 여사와 친분이 있는 인테리어 업체 21그램이 관저 공사업체로 선정된 경위 및 특혜 여부, 그리고 감사원이 이 사안을 제대로 감사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 원장과 유 전 사무총장이 감사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혀낸 게 수사의 주요 포인트다. 특검팀은 압수수색으로 감사 관련 자료를 입수해 직권남용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현재 감사원이 실시하고 있는 자체 티에프(TF) 활동 결과가 수사까지 진행 중인 표적·부실감사 의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지난달 10일 이재명 대통령이 정상우 신임 사무총장을 임명한 뒤, 정 사무총장은 윤석열 정권 시절의 대표적인 정치·표적 감사 사안의 실체를 규명하는 티에프를 출범했다. 티에프는 전현희 전 위원장 및 관저 감사와 함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국가 통계 조작 의혹 등 지난 정부에서 감사 대상이 된 사건들의 감사 과정을 전반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 장예지 기자 >

 

국민의힘 “이번 사건이 정치적 기획수사였음을 법원이 확인한 셈”주장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연합
 

유튜브에서의 정치적 발언으로 공직선거법·국가공무원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2일 체포 이후 체포의 적법성을 판단하는 체포적부심사 결과 4일 오후 6시50분 경 석방됐다. 

 

서울남부지법 김동현 부장판사는 4일 “체포의 적법성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현 단계에서 체포의 필요성이 유지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김동현 부장판사는 “헌법상 핵심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이유로 하는 인신 구금은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는 점, 이미 상당한 정도로 피의자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고,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이 없어 추가 조사 필요성도 크지 않다는 점, 심문 과정에서 피의자가 성실한 출석을 약속하고 있는 점” 등을 언급하며 이 전 위원장을 석방했다. 

 

앞서 이진숙 전 위원장을 대리하는 임무영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범죄사실의 요지는 탄핵으로 직무정지 중인 기간에 방통위의 기능이 마비된 것은 민주당의 책임이다라고 말한 것이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의 당선을 반대하기 위한 사전선거운동이었다라는 등의 내용”이라고 밝혔다.

 

법원의 판단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에선 비판이 나왔다.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체포적부심 인용 결정은 국민 상식과 법적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공소시효가 임박한 상황에서 국회 일정을 핑계로 출석을 거부하는 것은 명백히 수사를 방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어 사법부를 향해 “신속한 범죄 사실 확인과 공소 제기 가능성을 확보해야 하는 수사기관의 긴박한 필요성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백승아 원내대변인은 “법원은 체포의 적법성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수사의 시급성과 피의자의 책임 회피는 외면했다”며 “공소시효를 완성시키려고 요리조리 피해다니는 피의자를 응원하고, 공소시효에 노심초사하며 법의 정의를 세우려는 수사기관을 가해자로 만드는 게 법원인가”라고 되물었다. 아울러 “국민들은 정치적 지위나 국회 일정으로 법 위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며 “이번 결정은 법원 스스로 사법 신뢰를 흔들고, 법치주의의 원칙을 훼손할 수 있는 위험한 선례를 남긴 것”이라고 우려했다. 

 

백승아 원내대변인은 “수사의 실질적 필요성을 무시한 이번 판단은, 피의자의 출석 거부와 수사의 시급성을 고려할 때 전혀 타당하지 않다”며 “이러니 국민들이 사법개혁을 부르짖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4일 오후 체포적부심사에 출석해 발언하는 모습. ⓒ연합
 

반면 국민의힘은 환영했다.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법치 앞에 정권의 정치 보복 수사가 무너진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며 환영한 뒤 “정권의 입맛에 맞춰 움직인 ‘정치 경찰’의 극악무도한 폭거는 사법부의 판단 앞에서 거짓과 무능만 드러냈다. 법원의 지극히 상식적이고 올바른 결정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최수진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도 “이번 사건이 정치적 기획수사였음을 법원이 확인한 셈”이라며 “경찰의 엉터리 소환과 짜맞춘 체포임이 만천하에 밝혀졌다. 변호인이 정식으로 국회출석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음에도, 경찰은 모른척 ‘소환 불응이라 주장한 것이다. ‘절대존엄 김현지’를 지키기 위해 추석 연휴 직전에 벌인 희대의 수사기록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일선 수사경찰이 명절을 앞두고 ‘셀프로 야근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체포를 시도했을 리는 없다. 또한 그렇게 간 큰 결정을 보고 없이 시도했을 가능성도 낮다”며 “이번 체포가 경찰서장 선에서 전결된 것이었는지, 서울경찰청장이 보고를 받고 승인했는지, 아니면 김현지 사태에 놀란 윗선에서 ‘충격 완화용 아이템’을 강요한 것인지는 반드시 따져 물어야 한다”고 적었다.

 

이 같은 주장에 김지호 민주당 대변인은 “법원은 이진숙 체포 사건에서 선거법 위반 수사의 시급성과 출석 회피 사실을 분명히 인정했다. 다만 헌법상 기본권 보장을 이유로 구속 필요성만 부정한 것”이라며 “이준석 대표는 ‘윗선의 기획’ 운운하며, 법원의 판단 취지를 왜곡하고 수사를 정치공세로 몰아가고 있다. 대선 토론에서의 가학적 성비하 발언에 이어, 이번에도 국민을 갈라치고 진실을 흐리는 구태 정치를 반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철운 기자>

 

법원, 이진숙 체포적부심 인용…“체포 적법하지만 조사 상당히 진행”

‘석방’ 이진숙 “대통령 비위 거스르면 유치장 행” 날 세워

 

 
 
석방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법원의 체포적부심 인용으로 체포 이틀만에 석방됐다. 법원은 체포가 적법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조사가 충분히 진행돼 더는 체포상태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진숙 전 위원장은 “대통령의 비위를 거스르면 유치장에 갈 수 있다는 상징”이라며 이재명 정부를 향해 날을 세웠다.

 

서울남부지법 당직법관인 김동현 부장판사는 4일 “체포의 적법성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현 단계에서는 체포의 필요성이 유지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며 이 전 위원장이 청구한 체포적부심을 인용했다.

 

김 부장판사는 “피의사실의 범죄 성립 여부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상당하기는 하나, 수사의 필요성이 전면 부정된다고까지 보기는 어렵다”며 “피의자를 신속히 소환조사할 필요가 있음은 일응 인정할 수 있고, 피의자가 수사기관의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김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회신 노력이 부족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 피의자가 사전에 스스로 약속한 마지막 출석 예정 일자에 결국 불출석하게 된 이유로 들고 있는 국회 출석이 과연 불가피한 것이었는지 의문이 남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체포의 적법성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고도 인정했다. 체포영장 집행 자체가 불법이라거나, 국회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일정 탓에 조사에 응할 수 없었다는 이 전 위원장 쪽 주장을 받아들이지는 않은 것이다.

 

다만 김 부장판사는 “헌법상 핵심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이유로 하는 인신 구금은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는 점, 이미 상당한 정도로 피의자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고,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이 없어 추가 조사 필요성도 크지 않다는 점, 심문과정에서 피의자가 성실한 출석을 약속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해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체포의 적법성’에 대해서는 경찰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조사가 더 필요하지 않다’는 이 전 위원장 쪽 주장도 수용해 석방 결정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 전 위원장은 법원 결정 직후인 이날 저녁 6시46분께 서울영등포경찰서에서 석방됐다. 수갑을 푼 이 전 위원장은 기자들을 만나 “이재명 검찰과 이재명 경찰이 채운 수갑을 사법부에서 풀어줬다. 대한민국 어느한 구석에는 민주주의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것 같아서 희망을 보고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 전 위원장은 “경찰이 만약 수사권과 함께 기소권을 가지게 되면 일반 시민들에게 어떤 피해가 갈까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며 “이재명 주권 국가, 대통령 주권 국가에선 대통령의 뜻에, 대통령의 비위를 거스르면 당신들도 구치소, 유치장에 갈 수 있다는 상징 함의가 여러분이 보는 화면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 법원이 체포의 적법성을 인정한 점을 강조했다. 서울경찰청은 이날 석방 결정 뒤 입장문을 내 “법원은 수사의 필요성과 체포의 적법성은 인정되지만 체포의 필요성 유지 즉 체포의 계속성이 인정되지 않아 석방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법원이 “피의사실의 범죄 성립 여부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상당하다”, “변호인이 제기하는 일부 의문점이 충분한 경청의 필요성이 있다”는 등의 단서와 함께 이례적으로 체포적부심을 인용하면서, ‘체포영장 집행이 성급했다’는 비판론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 정봉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