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테러방지법’에 한계는 없다

● 칼럼 2016. 3. 12. 20:31 Posted by SisaHan

일명 ‘테러방지법’이 테러 방지에는 별 신통함이 없을 것이로되, 국민사찰법, 정적감시법이라는 지적은 국회의 필리버스터를 통해 이제 많이 알려졌다. 그러니 바로 본론으로 가자. 왜 이 법이 국민사찰법이며 정적감시법으로 악용될 수 있는지 실제 조문을 가지고 볼 필요가 있다.


이 법은 ‘테러’와 ‘테러위험인물’이라는 정의 규정에서 극단의 위험성이 있다. 먼저 이 법의 테러 정의를 보면 지난해 11월의 민중총궐기 또는 2009년의 용산참사 같은 사태를 테러로 규정하게 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제2조 제1호 가, 라목). 실제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은 지난해 민중총궐기대회를 두고 “폭동을 넘어 대한민국 국민을 향한 명백한 테러 범죄”라고 규정한 바 있고, 용산참사 직후인 2009년 1월2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은 이 참사를 도심테러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번 총선에 출마하는 김석기 당시 서울경찰청장도 준도심테러 운운하며 자신의 과잉진압을 합리화했다.


이런 테러 개념을 거의 무한대로 확장하는 것이 ‘테러위험인물’ 개념이다(제2조 3호). 이 개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기타 테러예비·음모·선전·선동을 하였거나 하였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라는 대목이다. 예비란 범행 도구 구입 등과 같은 범죄의 실현을 위한 일체의 준비행위를 말한다. 음모란 범죄행위를 모의하는 것을 말한다. 선전이란 불특정 다수에게 어떤 주의·주장을 알려 이해를 구하거나 공명을 구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하고, 선동이란 타인으로 하여금 일정한 행위를 실행할 결의를 생기게 하거나, 이미 생긴 결의에 자극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테러 개념과 테러위험인물의 개념 정의를 합쳐서 보면, 용산참사나 민중총궐기 같은 사태에 관련된 사람들의 범위는 예비·음모·선전·선동 개념을 통해 거의 무한대로 확장된다. 게다가 ‘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사유’까지 포괄해 사실상 테러위험인물의 범위는 무제한이 된다.
그러면 테러위험인물로 찍히면 어떤 취급을 받게 되는가? 이 법 제9조를 보자. 테러위험인물에 대하여 ①출입국·금융거래 및 통신이용 등 관련 정보 수집 ②위치정보, 개인정보 수집 ③추적 ④감청 등 통신제한조치 등을 행할 수 있다.


즉 당신은 당신의 위치정보, 정당원인지 여부, 건강, 성생활 정보 등 개인정보, 당신의 금융거래 정보, 통신이용 정보 등이 샅샅이 파악된다. 그리고 당신은 감시, 미행, 사찰을 받는다. 패킷감청을 통해 당신이 인터넷을 이용하는 모든 것이 파악된다.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아마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극심한 스트레스에 암에 걸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테러위험인물은 누가 지정하는가? 국정원장이다. 어떤 절차를 거치는가? 정해진 절차는 하나도 없다! 국정원장은 법원은 물론 그 어디로부터도 테러위험인물 여부를 심사받지 않는다. 국회에 보고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테러위험인물로 지정된 사람은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다. 한마디로 국정원이 테러위험인물이라고 찍으면 해당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거수일투족을 샅샅이 털리는 것이다. 당신이 용산참사의 세입자 쪽을 옹호하고, 민중총궐기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테러방지법은 그 내용으로 보나, 국정원의 그간 행태로 보나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법이다. 적어도 어버이연합 수준으로 집권세력을 옹호하지 않는 한, 누구라도 ‘테러위험인물’로 국정원에 의해 찍힐 수 있고, 일단 찍히면 성생활 정보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보가 탈탈 털리게 된다.
테러방지법은 그 어떤 대안이 있을 수 없다. 오로지 폐기만이 답이다.
< 이광철 - 변호사 >



부부간 등터지는 재산싸움

남녀가 만나 백년가약을 맺으며,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사랑하며 동고 동락하기를 서약한다. 하지만 같이 살다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 남남이 되기를 서슴치 않는다. 이때에 부부가 같이 살던 집의 권리는 누구에게 있을까?


사례1) 이민 온지 5년 된 젊은 부부 남편 A씨와 부인 B 씨는 잦은 가정불화로 결국 이혼에 합의하고 별거에 들어갔다. 아내는 남편과 아이 둘이 있는 집을 나와 친척집에 기거하고 있었다. 이후, 남편 A씨는 갑작스러운 경제적 어려움으로 노스욕의 주택(A씨 혼자 명의로 되어있음)을 담보로 은행에 모기지를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부인 B씨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부인의 동의가 없이는 팔기 위한 리스팅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A 씨는 “내가 벌어서 샀고 내 명의로만 되어 있는 집을 왜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느냐?” 며 분개하였지만 그 뿐이었다.


해설1) 부부가 함께 생활하며 살고있는 집을 ‘Matrimonial Home’이라고 한다. 명의가 부부 중 한 사람만으로 되어 있든, 두 사람으로 되어 있든, 부부는 거주할 권리와 소유할 권리를 똑 같이 갖고있다. 결혼이 파탄날 경우, 그 권리는 동등하게 배분이 되는 것이며 쌍방의 동의 없이는 집을 담보로 모기지를 얻거나 팔거나 할 수 없다.또한 당사자인 부부끼리 ‘재산포기 각서’ 라든지 어떠한 계약을 했다해도 위의 권리는 빼앗을 수가 없다.


사례2) 남편 S 씨와 부인P씨는 결혼 15년만에 파경을 맞았다. 부인 P씨의 불륜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현재 살고 있는 이토비코의 주택은 매입 당시, 자금이 모자라 부인 P씨의 부모가 15만 달러를 보태주어 구입한 주택인데, 가격이 올라 현재는 싯가 100만 달러에 달한다. 남편 S씨는 Matrimonial Home이라 하여 그 가치를 균등하게 반분할 것을 요구해 왔으나, 부인 P씨는 그 중 15만 달러는 자기의 부모가 준 돈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해설 2) 부인 P씨의 주장이 맞다. 주택가격 중 15 만 달러 상당은 부모에게서 증여(GIFT) 혹은 상속(INHERITANCE) 으로 받은 것이기 때문에 부부간에 다른 특별한 계약이 없다면 이는 P씨의 몫이다. 그러므로 부인 P 씨는 15 만 달러에 대한 자연증가 가치(VALUE)를 계산하기를 요구할 수도 있다. 이곳 캐나다에는 증여세나 상속세가 없다.


사례3) A씨는 아들을 결혼시키면서, 주택 매입에 필요한 다운페이먼트 20만 달러를 도와주기로 작정하였다. 그러나 지인의 말을 듣고, 돌다리도 두들겨 본다는 심정으로, 20만 달러를 증여하는 것이 아닌, 모기지를 제공하는 것으로 하여 등기소에 등기까지 마쳤다. 염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아들 부부는 이혼하였고 그들의 살던 집은 반분될 위기에 놓였다. A씨는 집을 살 때에 자기가 모기지로 제공한 20 만 달러는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법정에서는 이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해설3) 모기지를 등기한 후 지난 10년동안 원금 혹은 이자를 갚는 행위라든지 채무 독촉을 위한 어떠한 행위의 증거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모기지에 대한 어떠한 권리도 완전히 소멸되었다는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이를 Squatter’s Right 혹은 Adverse Possession 이라 하는데, 아무리 나의 명의로 등기가 되어있다 해도, 아무런 권리주장 없이 10년이 지나면 그 것을 점유하고 있던 상대방은 자기의 소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즉, 빼앗길 수 있다는 말이다.

< 김종욱 - 부동산 리얼터, Golden Ridge Realty Inc. >
문의: 416-409-9039



국제민주연대와 나눔문화, 다산인권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46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더불어민주당이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를 중단하겠다고 결정한 것을 규탄하고 있다.


언론인들, SNS에 필리버스터 중단 비판
“북풍 거센데 선거연기 판 흔들기라도…”
“야권에게 유리한 상황 포기한 바보짓”

더불어민주당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종료를 선언하자 언론인들의 비판이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쏟아졌다. 이들은 ‘보수 언론의 사고방식만 생각해 더불어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철회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용마 <문화방송(MBC)> 해직 기자는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필리버스터 중단 논의를 할 시간에 박근혜 정부의 경제 실정과 선거 연기도 무시하는 행위를 어떻게 필리버스터에 반영할지 고민하는 게 낫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처럼 북풍이 거세게 휘몰아치는 판에 선거가 연기되는 정도의 판 흔들기가 있어야 오히려 야당에게 유리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면서 “야당 의원님들의 사고방식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머리가 여당이나 조중동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나 보다”라고 했다.

노종면 <와이티엔(YTN)> 해직 기자는 “도대체가 새누리당과 수구 언론이 짜놓은 협박 시나리오의 1막도 통과하지 못하는 (더불어민주당의) DNA는 어디서 온 것인가”라며 “테러방지법 이슈를 ‘이념론’으로 치부하는 것도 상상력 부재요 전략 부재의 자인으로 들리지만, 이미 달콤한 호떡을 빼앗긴 분노는 어찌할 것인가”라고 했다. 노 기자는 이어 “2014년 여름, 세월호 졸속 합의가 떠오른다. 그때도 참 어이없고 허탈했지만 진통 끝에 뒤집었다”며 “필리버스터로 저력을 보여준 더민주가 2014년 그때처럼 결정을 뒤집어주기 바란다”고 했다.

<교육방송>(EBS) 교양 프로그램 ‘지식채널-E’를 제작했던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도 페이스북에 “국회법에 명시된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필리버스터가 졸지에 이념 투쟁이 돼버렸다”면서 “필리버스터를 이념으로 프레이밍한 수구 보수의 관점을 야당 지도부가 그대로 차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잘못은 지난 10여년 간 매번 반복되어 왔고 그로 인해 야권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모든 상황을 스스로 포기하는 바보짓을 저질렀다”며 “수구보수 언론이 필리버스터를 ‘이념 프레임’으로 그렇게 만들고 싶어했는데 잘 안 되던 걸 더민주 스스로가 인정해버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재열 <시사인> 기자는 “보수 결집은 필연이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겪게 될 일”이라며 “필리버스터를 중단하더라도 보수 결집을 통한 진보 결집은 꾀해야 한다. 진보 결집이란 진보 성향 유권자가 투표장에 나오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질서 있는 퇴각’은 고도의 정치행위다. 이런 ‘힘 없는 퇴각’은 정치가 아니다”라며 “야권이 물러나서 잘못이 아니라 물러나는 과정이 정치적이지 못했다. 죽 쒀서 개 줬다는 얘기 듣기 딱”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일 밤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종료를 선언했다. 지난달 23일 시작된 필리버스터는 자정을 넘겨 2일까지 이어졌다. 여야는 2일 선거구 획정안을 담은 공직선거법을 처리해 62일 동안의 ‘선거구 부재’ 사태를 끝낼 예정이다.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테러방지법안)의 경우, 야당은 반대표를 던지거나 아예 표결에 불참할 가능성이 높지만 과반 의석을 확보한 새누리당의 찬성으로 통과될 전망이다.
< 박수진 기자 >



산행이 있는 날이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찻물을 올리고 수프를 끓인다. 보온병에 끓인 물을 담아 용기를 덥히는 동안 방한복이며 등산장비들을 챙기느라 한동안 부산을 떤다. 다른 계절엔 간단한 점심과 물 두어 병이면 그만인 산행 준비가 겨울철엔 여러모로 번잡하다. 잡다한 준비 과정도 그렇지만 고행에 가까운 혹한기의 산행을 잠깐 건너뛰면 좋으련만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스로 반문하며 묵직한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
오늘의 산행지는 브루스 트레일 중 가장 인기 있는 허클리 벨리이다. 숲이 울창하고 계곡이 깊은데다 강원도의 어느 산자락을 옮겨 놓은 듯 하여 특히 애착이 가는 곳이다. 짙은 안개를 헤치며 어렵게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함께 할 일행들이 각반이며 아이젠 착용 등 산행 채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바쁜 틈사이로 맑은 미소 보내는 소중한 인연들, 거룩한 시간을 함께 할 동행들의 건강한 모습이 눈물겹도록 고맙다.
 
아름드리 편백나무가 숲을 이룬 비탈길을 오르며 거칠어지는 호흡을 애써 가다듬는다. 시발점이 원만한 코스는 서서히 체력을 올릴 수 있어 무리가 없지만 오르막으로 시작하는 코스는 나만의 노하우를 가동한다. 최대한 느린 행보와 복식 호흡 그리고 지그재그로 비탈길을 오르며 온몸을 워밍업 시킨다. 찐한 향기를 뿜어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공해에 찌든 환경을 정화시켜 준다는 편백나무, 그 특유의 향기를 음미하며 몇 구비 오르내리다 보니 어느 사이 전망 좋기로 유명한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오늘은 반라(半裸)의 겨울 숲 대신 열두 폭 산수화 병풍을 펼쳐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시사철 기대했던 것보다 더 엄청난 비경으로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곳, 오늘은 안개 낀 산야를 예비하고 있었다. 빈 벤치에 고즈넉이 홀로 앉아 대자연이 빚은 걸작을 마음껏 음미하고 싶지만 저 체온이 우려되는 겨울 산행에서는 이 또한 금물이라 눈요기로 대신하고 발길을 돌린다.
흐릿한 안개 숲 사이로 알록달록한 행렬이 이어진다. 얼마 전 우리가 본 비경 속으로 들어 온 셈이다. 간간히 들려오는 찰진 웃음소리, 푸석한 눈길을 걷는 발자국 소리, 적막한 겨울 숲에 생기를 돌게 하는 작은 움직임들이 정겹다. 마치 미완성 작품에 화룡점정을 찍었다고나 할까. 자연과 합일을 이룬 광경이 흐뭇하여 나의 발걸음은 자꾸 뒤로 쳐진다.

한동안 충만한 분위기에 심취하며 걷다말고 한 생각에 빠져든다. 며칠 전 ‘삶의 목표가 희미해졌다.’는 아들의 한마디가 심중에서 맴돈 탓이다. 경쟁에서 뒤질세라 앞만 보고 달리다가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끝 모를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발견했음이리라. 안개 자욱한 산상에서 길을 묻는 아들에게 인생을 곱절 더 살았다는 어미는 고작 책에서 구한 몇 마디로 갈음하고 말았다. ‘삶의 의미’, ‘삶의 목표’ 이런 고차원적 물음을 품어본지 오래인 어미의 곤궁했던 답변을 상쇄시킬 깨달음을 오늘 길 위에서 얻는다.
한발 두발 오늘의 목적지를 향해 걷다보면 그 끝에 닿고, 그것들이 수없이 모여 하이커들의 영원한 숙원 히말라야에 닿는다고. 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하라는 평범한 진리를 건네고 싶은 어미의 간곡한 마음이다.
설한풍에도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 충분하지 않은가.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